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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닥치는대로 아무 책이나 꺼내읽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커피 한잔과 함께 하는 독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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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어도 다가서기 힘든 이치 | Review 2022-07-0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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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자의 마지막 공부

김승호 저
다산초당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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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성경이 있다면 동양에는 주역이 있다? 이런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주역을 탐독했다. 우리나라에도 이에 몰두한 인물들이 꽤 여럿 있으니, 실학의 대가 정약용도 그 중 하나로 알고 있다. 난해하다는 설명이 일반적이요,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쉽사리 손에서 이를 놓지 않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에 정통했다는 공자를 만나본다. 책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음을 뜻하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표현은 공자가 주역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깊이 읽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터이나 한 편으로는 천하 어디에 내놓아도 뒤쳐짐이 없을 공자조차도 수없이 반복해 읽어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책이 주역인가 싶어 긴장되기도 했다.

주역이라 하면 운명을 점치는 것 정도를 떠올리는 게 흔한 발상이지만, 결론을 언급하자면 역시나 어려웠다. 고작(?) 64가지의 유형 안에 사회의 모든 이치를 담아야 했으니, 유형 하나하나가 매우 심오한 건 당연했다. 충분히 나이 들지 않았고, 지혜는 더더욱 미천하기 짝이 없는 상태에서 주역을 소화하기란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나 물속에서 허덕이는 것과도 같았다.

난해함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또 한 가지는 나로선 다소 의외였다. 저자는 책의 첫 번째 부분을 할애해 만물을 나누는 8가지 요소에 대해 설명했다. , , , , , , , 뢰가 바로 그것이다. 하나의 음으로 구성되었으므로 한글만을 보았을 땐 의미의 가늠이 어렸다. 한자 병기가 이럴 경우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 하겠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그보다 그림이 우선시 되는 듯하였다. 세 개의 직선을 변형한 것에 불과하므로 그림이라 일컫기가 민망하다. , 8개에 불과했을 때도 살짝은 헛갈렸다. 마치 세포가 분열하듯이 이들이 변형을 일으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솔직히 와 닿지가 않았다. 기본에 충실한 후에 응용을 취해야 하는 법인데, 속도 내어 읽는 일에 급급하면서 이를 방기한 탓이 컸다. 매우 짙고 푸른 나머지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그러나 얼핏 보았을 땐 아담하기 그지없는 동네 우물 앞에 선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 들었다.

해설은 건위천(乾爲天)으로부터 출발한다. 음양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할 때의 그 이 바로 건위천의 기본과 같았다. 사실 양은 혼자 존재 못하며, 음 또한 양이 없다면 성립이 불가하다. 이처럼 대립, 대비 기초하다 보면 자칫 근본을 놓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자는 모두가 중시하는 상대성이 아닌 절대성을 부각시켰다. 무언가에 의해 나중에 생긴 게 아니라 처음부터 스스로 존재해온 무언가. 이는 인류의 문명이, 인류가 살아가는 터전이라 할 수 있는 지구가 생성되기 전부터도 있어 왔다. 우리가 아는 우주가, 우리 자신이 멸망에 이르는 것과 별개로 영원을 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양이다. 모든 생명의 기원과도 같은 양, 인류가 상정한,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절대자 신보다도 우선했던 양. 양으로부터 시작한다면 그 무엇도 붕괴하지 않을 것이며, 존재의 소멸에 대해, 허무감에 젖어 울부짖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 중에는 택뢰수(擇雷隨) 같은 것도 있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의 유연화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이다. 그러잖아도 야근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한데, 앞으로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지 걱정되기도 한다. 쉬면서 기운을 축적하는 휴식이 또 다른 기운의 축적을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시야를 보다 넓게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았다. 해가 지면 보금자리로 찾아 드는 본능을 거역하는 일이 수중에 보다 많은 돈을 허락할지는 모르나 온갖 욕심과 집착, 건강의 상실 등을 부르리라는 건 자명하다. 주역은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를 알지 못하는 시기에 쓰여졌다. 마치 현대인이 마주하게 될 문제점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보여 신기함이 들었다.

간위산(艮爲山)은 이해타산에 능한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한 내용이었다. 많은 이들이 순간의 이득에 눈이 멀어 오늘과 내일 각기 다른 태도를 취하고는 한다. 차마 믿지 못하겠는 사람, 믿을 수가 없는 관계가 빈번한데, 실상 인간 사회에서 최고의 덕인 신의가 이렇게 무시되는 게 바람직하진 않다. 세상이 변하더라도 변치 않는 건 분명히 존재한다. 중첩된 산, 즉 결코 변치 않을 존재를 본받아 생각하고 실천하는 태도야말로 혼란스러운 오늘날을 뚝심 있게 살아낼 비법이 아닐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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