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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tz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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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둘러싸여 낯설게 살아가기 | Review 2022-12-0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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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김광기 저
김영사 | 202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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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다. 데면데면한 척 밤이면 경기보다 잠에 집중했지만, 도로에 나선 적잖은 이들을 난 알고 있다. 붉은 티를 챙겨 입은 그들은 한날한시 한 공간에서 같은 구호를 외쳤다. 골이 들어갈 때면 서로를 얼싸안았고,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될 때마다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경기가 종료되면 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흩어졌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해산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16강 경기까지 내리 네 차례 이와 같은 경험이 이어졌고, 누군가의 강요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국가대표팀 경기이므로 그저 응원하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찰나의 관계망 형성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점, 드넓고도 얕은 관계가 그토록 쉬이 해체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 주목한 이는 별로 없었지 싶다.

예전에는 지역 공동체가 견고하고도 활발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대다수의 것들을 그 안에서 얻을 수 있었고, 한 아이의 성장을 위해 마을은 기꺼이 힘을 쏟았다. 아이가 지나가면 어른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자연스레 그 아이의 부모를 떠올렸다. 배를 곯지는 않았는지를 물었으며, 거리낌 없이 제 집에 들여 한 끼를 챙겨주기도 하였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정체성은 제각각이어서 어느 하나로 묶어내는 일이 요원했다. 무엇보다도 다들 제 살길 강구하느라 바빠 바로 이웃집에 거주하는 이의 얼굴조차 알아채질 못할 때가 잦았다. 목례가 어마어마한 선의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과거가 그립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일지라도 예전과 꼭 같아질 수는 없음을 잘 안다. 변한 패러다임에 적응해야만 하는 게 현대인의 숙명이다. 살아남을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이 묵직한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해 보인다.

저자가 주목한 건 코로나19.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를 다룬 책은 시중에 널렸다. 이미 3년째 지속되고 있는 현상인 만큼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불이 꺼질 줄 모르던 서울에서 8시반, 9시만 되어도 분주히 셔터를 내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 줄 코로나19 발생 이전에는 상상치 못했다. 한산까지는 아니어도 확실히 사람들은 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가급적 모임을 자제하고, 붐빈다 싶은 장소는 굳이 가려들지 않았다. 이는 얼마 전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참사를 겪으며 더욱 심화됐다. 만남이 어려워진 사회에서 인간은 과연 어떠한 정체성을 갖게 될까.

전염병으로 전 세계가 얼룩졌다고는 해도 화성으로의 이주를 감행한 것처럼 모든 게 낯설지는 않다. 대부분은 자신에게 익숙한 제 집에서 격리생활을 했다. 행동반경이 좁아짐에 따라 늘 보아오던 동네 골목으로 동선의 제약이 이루어졌다.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삶은 익숙한 세계에 보다 유착된 형태로 변화했다. 그런데 왜 이 시대가 이리도 낯선 것일까. 심경에 변화라도 겪은 것일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설명은 더 이상의 분석을 어렵게 만든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무슨 이유에선가 변했다는데, 거기에 잣대를 어찌 들이댈 수 있단 말인지. 그보다는 서로에 대한 인식에 예전과 차이가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전에는 만남 그 자체가 중했다. 내가 얻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이 누군지를 따지는데 에너지를 집중했다. 최근으로 오면서 보다 많은 변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해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지표의 증가는 물론 아니나,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상대가 바이러스의 보균자인지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는 타자에만 적용된 게 아니었다. 유독 한국 사람들은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형국이었다.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전에도 존재했다. 그 수준으로부터 벗어났음은 물론이다. 자신이 확진자인지 아닌지, 지금 이 순간 안전하다는 확신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외쳤다. 나도 나를 못 믿는다고. 의도적으로 익숙한 세계에 머물렀지만, 그 행동의 주체는 지독하리만치 낯설었다. 나 자신조차도 내 편이 아닌 사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절대고독이려나?

모든 게 무의미로 점철되는 모양새다. 너무도 당연한 일상을 회복하는 일마저도 이토록 더디게 전개되는데, 원대한 꿈을 꿔도 이를 이루기가 요원한 건 누구나 짐작 가능한 바다.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길 자처한 이들은 그렇다면 선견지명이 뛰어났던 걸까. 삶은 죽음이 있어 더욱 빛난다. 결국에는 끝나고야 말 시간들을 기어코 살아내는 존재인 우리에게 익숙함은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이 삶을 받아들이든, 우리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탈을 벗어던질 수 없는 존재라고 하여도 괜찮다. 아플 걸 알면서도 한 걸음씩 서로에게 다가서는 고슴도치의 심정으로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어리석으면서 동시에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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