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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 서평 2020-11-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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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아서 P. 시아라미콜리,케서린 케첨 공저/박단비 역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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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아서 p.시아라미콜리 & 케서린 케첨 (지음) | 박단비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공감에 관한 책이다. 책을 읽고 나서 문고사이트에 들어가 해당 책의 분류 카테고리를 일부러 찾아보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를 거의 다 읽었을 무렵 분류 카테고리를 검색해 보았다. '인문, 심리학, 정신분석학'으로 분류 되어 있었다. 이 카테고리의 책을 읽고 이렇게 감동받은 적이 없었다. 공감에 관한 뻔한 얘기. 이해,사랑,포용 뭐 이런 다른 책이나 강연에서 우려먹을대로 우려 먹은 뻔한 얘기로 '그래, 결국은 속 좁은 내 탓으로 몰고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결단코 아.니.다!

책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는 제목.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를 처음 접했을 땐 '뭐가 이리 길어? 너무 감성적으로 지은거 아냐?'했는데 완독하고 난 지금은 이 책 제목에서 작가의 진심이 느껴진다. 자신은 동생의 자살을 경험하며 늦게 깨달은 공감의 힘을 독자들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

공감이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이심전심, 동감,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부모의 마음 등등. 여기에 나는 공감이 곧 동감은 아니라는 생각을 보태서 하고 있었다. "네 마음이 그렇다는 것은 이해하고 알겠다"까지. '그러나 그 마음에 꼭 같은 의견이나 마음이어야만 공감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양 날의 칼과 같은 공감의 양면성.

"공감이 마음 따뜻한 사람만의 특권은 아니다."라고 얘기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건설적 공감에 반대되는 파괴적 힘을 가진 공감을 짚어 준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사기나 영업 더 나아가 범죄에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런 파괴적 힘을 가진 공감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방어해야 하는지도 말해주고 있다. 공감이 없다면? 깨어 있지만 무감각하고, 의식이 있지만 무신경하며, 감정이 차 있어도 그것을 이해하거나 영향을 주지도 못하는 삶...

공감이 꼭 타인과의 관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진실을 기반으로 한 객관적인 시각이 전제 된 자신을 향한 공감은 성장으로 이어진다. 공감은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섣부른 동정으로 자기연민이나 타인에게 위로를 건네는 대신 깊은 이해를 해야 한다. 현재를 만든 과거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해를 위해서는 듣기, 공감적 듣기를 해야 한다. 나의 경험과 상대방의 경험을 하나로 일원화 시킨 교감적 듣기가 되면 모든 문제는 일반화가 되어버려 진정한 공감이라 할 수 없게 된다.

정직,겸손,용납,관용,감사,믿음,희망,용서는 공감이 선행되기도 하고 공감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상호 보완적인 키워드이다.

가차없이 진실을 폭로하고서 정직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음과 무조건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겸손이라는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내가 옳다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견해를 넓히고 '난 못해'가 아니라 '아직 배울게 많아'라는 긍정적 힘의 성장을 바라보아야 한다. 완전하지 않은 나와 타인을 불완전한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고통을 통한 성장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편견을 내려 놓고 가끔 삶의 속도를 늦춰 뒤돌아보며 반성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저자 자신의 개인적 경험으로 시작되는 공감의 이야기는 쉽지만 깊은 울림으로 먹먹함을 주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때로는 공감의 침묵이 강한 위로와 응원이 될 때가 있다. 눈맞춤 조차 없는 공감없는 "그랬구나~"하는 위로를 섣불리 건넨적은 없는지...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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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 1 | 서평 2020-11-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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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레 망다랭 1

시몬 드 보부아르 저/이송이 역
현암사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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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이송이 (옮김) | 현암사 (펴냄)

1954년에 발표되었다는 <레 망다랭>.2차 세계대전 종식 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러시아라고 불리는 옛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레 망다랭> 은 자신의 신념인 신문사 '레스푸아'를 지키며 고독과 자유를 즐기고 싶어하는 앙리의 시점과 신념에 가득차 정치적 행보를 하려는 뒤브뢰유의 아내이자 정신과 의사인 안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읽기 전에 두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오래전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가 떠올랐다.

같은 문제와 같은 사건들을 두고 바라보는 견해는 처해진 입장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초반부를 읽어 가면서는 이상의 '날개'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다. 날개에 나오는 박제 되어버린 천재만큼은 아닐지라도 앙리의 현실은 그닥 자유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자유와 고독은 연인 폴에 의해 제한되고 신념은 뒤브뢰유와의 견해차이와 신문의 구독자를 신경쓰느라 자유롭지 못하다. 한 때 레지스탕스 운동을 할 정도의 신념에 찬 좌파이기도 했으나 여러 분파로 갈리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공산주의에 회의가 일기도 한다. 같은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이 되는 무서운 현실이다.

안의 딸 나딘은 스무살도 되지 않았지만 사춘기 시절에 겪은 연인 디에고의 죽음으로 삶에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

남자들과의 잠자리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 하다.이런 삶이 절망 때문인지 쾌락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듯 하다. 리스본에서 마주하게 된 아름다운 야경의 불빛들이 사실은 빈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힘들어한다. 전쟁 후 어려움을 겪는 프랑스를 벗어나서도 보게 된 가난은 나딘을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한다.

195. 그래도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나라가 분명 한 곳은 있을 거에요.

앙리의 연인인 폴은 얼핏 보면 사랑밖에 모르는 집착녀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뒤에 숨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앙리를 위해서 모든것을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를 위해 포기하지 않은 삶을 살았더라도 꿈꾸던 성공가도의 삶을 살 수 없었으리란 것을 느끼고 '앙리 때문에'라는 허울 좋은 핑계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 자신조차도 그런 사실을 깨닫고 있진 못하지만...

앙리는 글쓰기를, 폴은 앙리를, 뒤브뢰유는 정치를, 나딘은 남자를 통해 삶을 증명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안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상담해 주는 그녀 자신은 정작 붙잡을 것이 없어 보인다. 신의 부재를 확신했던 스무살엔 도덕도 그녀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의 전부로 받아들인 로베르는 이제 그때의 로베르가 아니다.

335. 살아남는다는 것, 자기 인생의 반대편에서 산다는 것. 어쨌든 아주 편안한 일이다.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까.

소련에서 도주해 온 스크리아신의 냉소적인 자세나 마약에 기대어 살아가는 세즈나크,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테러하는 것에서 삶의 보람과 정당성을 찾는 뱅상, 어머니가 정해준 대로 인생을 사는 조제트. 모두가 살기 위한 이유를 찾는 발버둥 중인지도 모른다.

전쟁 후의 혼란한 정세에 지식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서로를 비방하고 적대시 한다. 통합과 화합 대신 비방과 편가르기가 판치고 속한 분파의 비리는 대의를 위해 눈감는 '소'일 뿐이다. 옷을 갈아 입듯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게 현실이라는 씁쓸한 정당함과 불가피함을 내세워 본다.

낯설지 않다. 한반도가 둘로 나뉠때의 모습처럼.

2권에서는 달라진 등장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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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 서평 2020-11-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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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만과 편견 :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제인 오스틴 저/강수정 역/앨리스 패툴로 그림
아르볼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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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 강수정 (옮김) | 지학사아르볼 (펴냄)

고전 읽기에 거의 매번 거론되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십대에 읽었을 때는 소녀소녀한 마음으로 로맨스 소설로 읽었고 십년 후쯤 재독할 때는 제목에 충실하게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에 사로잡힌 엘리자베스'에게 집중하며 읽었었다. 다시 십 여년이 흘러 읽게 된 풀컬러 일러스트의 예쁜 옷을 입은 <오만과 편견>은 각 커플들과 주변인들의 캐릭터가 통통 튀는 개성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빙리 양의 앞 뒤가 다른 태도와 캐서린 부인의 도를 넘은 무례가 신분을 떠나서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부류이고, 그런 그들에게 잘 보이려 전전 긍긍하는 콜린스, 결혼을 한탕의 장사처럼 남을 이용하려는 위컴, 금사빠인 리디아와 남일을 소문으로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지만 지금에도 너무나 현실적인 캐릭터들이다.

특히 베넷 부부는 이 '오만과 편견'을 마치 처음 읽는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름다운 미모에 반해 아내를 맞았던 베넷 씨는 매사 아내와 의견이 맞진 않지만 무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대신 적당한 무관심과 위트를 지닌 남자다. 베넷 부인은 딸 다섯을 키우며 딸들의 결혼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엄마로, 남자가 가진 재력과 지위를 매너이자 인격으로 동일시 해서 보는 속물이면서도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다. 배경인 그 시대가 여자의 행복은 재력을 갖춘 남자와의 결혼이었다는 점과 어리석기는 해도 악의는 없다는 것이 아마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그런 베넷 부인을 바라보는 부끄러움은 엘리자베스와 나의 몫?)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사교성이 보통의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말수가 지나치게 없다는 것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오만하다는 평가를 듣기 일쑤인 다아시 씨는 만약 그가 지닌 재산과 지위가 아니었다면 그런 평가들을 만회할 기회를 가져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타인을 향한 냉정한 평가가 자신을 지적이고 수준있어 보이게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듯하다. 제인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었다면 모두를 포용하는 그녀의 마음도 우유부단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신분을 뛰어넘는 결혼이 사회적 관습과 보이지 않는 경계로 어려웠다는 것에 비해서 빙리의 사랑을 그렇게 쉽게 가질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다아시의 품성과 사랑이 빛나 보였던 사건은 리디아와 위컴의 도피 행각에 대한 대처였다. 사랑하는 여자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금전은 물론이거니와 굴욕과 수치로 여겼던 사람들을 대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멋지게 비밀로 해결하려는 낭만도 지닌 채 말이다.

할 말은 해야 하는 성격의 엘리자베스는 소문 만을 듣고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을 반대하러 온 캐서린 부인에게 요즘 시각으로 봐도 사이다인 발언을 지혜롭게 한다.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후회할 줄 안다는 것이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다른 인물들과의 두드러진 차이로 보였다.

오만한 다아시와 편견으로 그를 바라본 엘리자베스이기도 했지만, 신분의 다름이라는 편견의 시각으로 엘리자베스를 보고, 냉랭한 다아시를 더 차갑게 대한 엘리자베스의 태도 또한 자신이 그보다 낫다는 오만은 아니었을까.

근래 읽은 고전들 가운데 유일하게 비극으로 치닫지 않고 해피엔딩 이었던, 그래서 좋았던! 역시 로맨스는 해피엔딩이 제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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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 서평 2020-11-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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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저/차은정 역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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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혼란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 차은정 (옮김) | 민음사 (펴냄)

단편선이라 하기에 토막 토막의 별개의 이야기들 일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넬'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편이라 보아도 무방할 만하다. 우리가 읽어 보았거나 들어라도 보았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한강의 '채식주의자'처럼 각 단편은 이어져 있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어느 부분이?'라고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애트우드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살게 되었을 선택 받지 못한 다른 인생을 상상하며 쓴 글이라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한 엄마를 보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열 두살의 소녀 '넬'은 생각이 극단에 다다를 때면 가장 좋아하는 책 '요리와 접대의 기술'을 읽는다. 그 책에 등장하는 하녀의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수동적인 삶이 '아빠가 집을 비운 동안 엄마를 돌보는 것'이 힘에 부친 넬은 부럽다. 여동생이 태어나자 넬은 또래의 십대들이 누리는 일상 대신 동생을 돌봐야 했다. 불안증이 심한 예민한 아기였다.

49. "내가 왜 해야 해요? 내 아기가 아니잖아요.내가 낳은 게 아니에요.어머니가 낳으셨잖아요."

어머니는 단숨에 일어나 뒤돌아섰다. 그리고 내 얼굴을 세게 때렸다.~ 나는 당연히 상처를 입어야 했고, 실제로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자유로워진 느낌도 들었다. 마치 마법에서 풀려난 것처럼.

학교에서 <나의 전 공작부인>을 배우며, 결혼이 거래이던 시절에 팔려가듯 결혼을 하게 된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은 완벽한 미소에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라고 넬은 생각한다. 어릴 적엔 수동적인 하녀가 부러웠지만 이제 넬은 그저 미소만 짓다가 그 미소에 질려버린 공작에게 죽임을 당한 공작부인도, 차에 태워주겠다는 친절을 믿었다가 성폭행 당한 테스도 멍청하다고 여긴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타인을 기쁘게 해 주려고 애쓰는 삶이 탐탁치 않다.

그러면 넬은 그것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생계를 꾸리기 위해 편집일을 하게 된 넬은 남자들과 오래 만나지 못하고 익숙해지면 떠나는 삶을 산다. 여자의 적은 여자인걸까? 남편과 아이들로 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오나의 짜여진 계획하에 티그와 동거하게 된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결합이었기에 쓸모가 다 되면 버림받을거란 오나의 예상과 달리 둘은 노년까지 함께 한다.

어려서는 동생을, 성인이 된 이후에는 다른 여자의 남편과 아이들을, 그리고 그들의 안심을 위해 오나까지도 책임지는 넬이 답답하기만 하다. 남의 남자와 사는 넬이 부도덕한 걸까, 아니면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위탁하듯 책임 전가한 오나가 부도덕 한걸까?

모두들 그녀에게 기대오면서 감사는 커녕 당당하다. 흰말을 맡기는 빌리도 오히려 '호의'를 베푸는 거라고 여기고, 불안증이 심한 아기였던 동생 리지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 정신분열증이란 말을 듣자 부모님도 넬에게 의무를 지우려 한다. 천박한 여자들이나 남의 남편과 사는 거라고 만나지도 않으려던 양반들이!

알면서도 그저 내어주고 당해주면서도 큰소리로 항변하지 않는 넬이 고구마 백개쯤 먹은 답답함을 주지만, 애트우드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살았을 그 삶을 실제로 살아가는 많은 넬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덕적 혼란>은 많은 여성들의 자전적 소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리지와 넬, 릴리의 대사가 강한 여운으로 남는다.

73. 그를 비웃으면 안 돼.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니까.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야! 그냥 원래 그렇게 생긴 거야!

231. 경계선은 방어할 수 있을 때만 경계선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307. 어떤 사람은 원하는 걸 갖고 어떤 사람은 못 가지죠.

잘못이 아닌데도 비웃음과 비아냥의 대상이 되고,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의 경계선을 침범 당하고, 원하는 걸 갖지 못하면 남의 것이라도 뺏고 보는 사람들.

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도 이 대사들이 잊히지가 않는다. 각자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한 이 대사가 결코 소설 속 그녀들만의 얘기는 아닐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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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 서평 2020-11-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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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유혜자 역
열린책들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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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쥐스킨트 (지음) |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조나단 노엘은 7층 24번방에서 수십년을 지내며 오십대가 되었다. 매일 아침 복도 끝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그는 오갈때 다른 이들과의 대면과 접촉을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고 수치스러워 한다.

11. 그곳은 조나단에게 불안한 세상 속의 안전한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어린시절 겪은 전쟁과 차례로 실종되어버린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 군대에 다녀오니 이민 가버린 여동생. 친척 아저씨가 정해준 여자와의 결혼, 결혼 4개월만의 출산 그리고 아내의 도망.

조나단이 사람에게서 안식을 얻을 수 없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감옥의 방 하나와 비슷한 크기의 24번 방에서 그는 안식과 안전을 보장받았다. 무엇으로부터의 안전과 안식이었을까?

타인에 대한 믿음? 기대? 배신?

어느 날 갑자기 문앞에 날아든 비둘기 한 마리로 그의 일상은 무너진다.

은행의 경비로 일하는 그는 자신과 스핑크스를 비교해 본다. 스핑크스는 도굴로 부터 피라미드를 지키지 못하고 자신은 강도로 부터 은행을 지킬 자신이 없다. 존재의 이유는 있는데 가치가 없는 존재인걸까?

53.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휴가도 조금 받고,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으면서도, 월급의 대부분은 세금이니, 임대료니, 사회 보장 보험 분담금 등으로 흔적도 없이 뺏기며 인생의 3분의 1을 은행 앞에 서서 허송하는 일로 지내는 노릇이 도대체 의미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회의를 종종 품기도 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를 유지하기 위한 도시인의 고뇌는 만국 공통인 듯 하다. 서글픔...

55. 문 뒤로 슬쩍 사라질 곳이 이렇게 큰 도시에 없었다.

군중 속에 익명으로 존재감없이 살면서 막상 슬쩍 사라질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익명성 부재의 아이러니.

단정한 자신은 바지의 구멍마저도 과민 반응하며 초조, 불안해 하는데 길에서 본 거지는 더럽고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노엘은 거지를 보며 오히려 심리적 박탈감을 느낀다.

80. 그 모든 것을 그는 자기 자신의 의지는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완전히 자동적으로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반복되는 일상, 틀에 박힌 일상에서 비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도피를 한 노엘은 마치 관을 연상케 하는 좁디좁은 호텔방에서 인생 처음으로 내일을 계획한다. 자살 계획을!

스핑크스, 줄 끊어진 꼭두각시, 거지를 통해 자신과 비교하며 자기를 찾아가는 노엘은 용기를 내어 비둘기가 장악했을지도 모를 집으로 돌아간다.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는 조나단 노엘씨에게 박수를~!!)

심호흡 후에 눈에 담은 복도는 비둘기가 들어왔던 창문도 닫혀 있고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내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타인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개인이 지나온 과거와 경험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해서 손가락질 할 일일까? 어리석어 보이거나 때로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내일의 일상은 오늘과 같겠지만 한 걸음 내딛는 내가 바뀌었다면 일상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조나단 노엘과 우리의 다른 내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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