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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
[스크랩] 학창 시절의 상처가 모두 치유되는 것 같은 행복감 - 『창가의 토토』 | 한울 2008-12-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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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생활에 지쳐 있는 성인들이 그리움 가득한 눈빛으로 흔히들 입에 담는 것 중 하나가 “학창 시절 때가 가장 좋았지.”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포근한 미소로 훌륭한 조언을 해주실 것 같은 선생님과 눈빛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좋은 친구들, 봄향기 가득한 햇살이 비추는 창가의 가장 좋은 자리, 사랑과 행복의 기운이 가득한 점심 시간, 당시에는 세상 끝에서나 존재할 것 같았던 무거운 고민거리들…… 모두가 그립고 소중한 추억들인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전 “학창 시절에 좋은 기억 따위는 전혀 없어.”라고 말하고 다닐 만큼 좋은 추억 따위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무언가 아쉽고 서글픈 일이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신기하고 재밌을 것 같은 생활의 시작과 함께 선생님에 대한 공포와 선입견이 생기게 되었죠. 1학년 때 담임이던 선생님의 교육 방법 같은 건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벌을 주는 행위에 대해선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8살짜리 꼬마 아이는 사고에 대한 판단에 옳고 그름이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주 잘못을 합니다만, 그에 따르는 선생님의 벌은 너무 잔인하고 변태적인 행위였는데요,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우고는 뒤에서 입구를 꽉 조여서 숨을 못 쉬게 한다든지, 어른 힘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꼬마의 손목을 붙잡고 책상을 세게 내리친다든지, 자신의 손바닥만 한 아이의 얼굴을 인정사정없이 때리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죠. ‘사랑의 매’라는 행위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당시의 한참 잘못된 방식의 처벌에 대해선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잔인한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다는 기분보단 ‘아,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라는 공포가 훨씬 더 컸으니까요. 4,5학년 때 담임선생님도 매를 많이 때리시긴 했지만 ‘정말 좋은 분이셨지.’라는 기억이 있습니다만 나머지 4년의 초등학교 생활은 정말 지긋지긋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를 읽으면서 ‘아, 난 정말 슬픈 학창 시절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에 몹시 서글퍼졌습니다만, 이와사키 치히로의 너무도 예쁜 그림과 도모에 학원의 따뜻한 이야기가 담긴 책 한 권에 당시 받았던 상처들이 모두 치유되는 것 같은 행복감이 몰려왔습니다. 뭐 물론 잠시 잠깐 동안의 여운이였지만 말이죠.

『창가의 토토』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걸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않고 또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동하지도 못하며 더구나 가슴속 열정을 불사르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형편없는 기억들과 상처뿐인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아직까지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할 줄 알며, 좋은 음악에 행복해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이렇게 변치 않고 조금씩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창가의 토토
구로야나기 테츠코 저/이와사키 치히로 그림/김난주 역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01월

도모에 학원이라는 초등학교에서 이 책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저자가 겪은 아름다운 한 시절을 그리고 있다. 물질은 넘쳐나지만 모진 학업과 과외에 시달려 머리와 가슴이 비쩍비쩍 말라 가는 우리 아이들을 포근하게 보듬는, 풍요롭지는 않지만 여유롭게 시간이 흐르던 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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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좀 더 괴로워하고 방황해도 괜찮아. 스무 살이라는 건 그러라고 존재하는 거니까.” | 한울 2008-12-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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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근처에 작업실을 얻은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한강으로 산책을 나가본 건 단 한 번. 서울 시내를 직접 운전해서 이동해본 건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 근방에 작업실을 얻은 이유와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만, 공짜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너무 간과하고 사는 건 아닐까란 생각에 조깅을 좀 해볼까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자우림의 <ashes to ashes> 앨범을 들고 드라이브를 하러 나갔습니다.

서울의 낮과 밤은 매우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벽의 강변북로는 너무 평화롭고 여유가 넘쳤으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차들과 호흡하며 한강 특유의 정취가 느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운전하자니 기분 좋은 멋진 밤이 되어 있었습니다.

맑고 투명한 밤하늘과 작은 불빛 하나 놓치지 않고 빛내주는 한강 그리고 자우림의 무겁고 몽환적인 <ashes to ashes> 앨범은 실로 탁월한 선택이었음에 즐거움 가득한 발동작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는 도중 문득 10년 전 내 자신에겐 조금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초반 저에게 삶의 지침서는 자기개발서나 경제경영서 같은 책이 아니라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같은 책들이었습니다. 책의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다른 언어를 쓰고 있으며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생이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세상과 환경에 크게 휘둘리며, 방황하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행동들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사치라 여겨지는 것들과 부르조아의 형식주의에 대해 거칠게 비판했으며 저항과 피카소 클럽 안을 가득 채운 담배연기만이 진실이었고 날 이해해주는 건 나 자신과 음악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밤하늘과 한강 드라이브라는 명제는 '허풍이나 떠는 위선자들이 하는 부르주아적 취미생활'로 치부하는 직설적이고 좀 어딘가 막힌 친구였단 이야기입니다.

재떨이를 가득 채운 담배꽁초와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맥주병들, CD와 스케치북 그리고 책들로 가득 찬 가방…… 모두 소중하고 진지한 것들이었지만, 근사한 밤하늘과 한강 그리고 드라이브가 가져다주는 평온이 이런 행복인 줄 알았다면 그렇게 미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스무 살이라는 숫자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방황’과 ‘저항’으로 가득 차야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너무 미래지향적이라 스무 살이 스무 살 같지가 않아요.)

<ashes to ashes> 앨범엔 ‘죽인 자들의 무도회’란 노래가 있습니다. “망각의 강을 떠다니는 건 흔해빠진 무용담”이란 소절이 있는데 한강을 달리는 도중 ‘아아… 그렇지, 그렇지.’ 하며 지금 하는 생각들에 대해 무릎을 탁탁 치며 합리화 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ashes to ashes> 마지막 곡인 ‘샤이닝’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별이 내리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바보처럼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서 있네.
이 가슴 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 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스무 살 때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면 좀 더 친밀하고 진지하게 공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맘 같아선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나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좀 더 괴로워하고 방황해도 괜찮아. 스무 살이라는 건 그러라고 존재하는 거니까. 시간이 지나보면 조금은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을 거야.” 라며 등 두드려주고 말이죠.

자우림 6집 - Ashes To Ashes
자우림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 | 2006년 10월

자우림의 이번 앨범은 자우림이 그간 발표했던 앨범들과는 달리 완전한 밴드 악기 사운드를 과감히 탈피하여 일렉트로닉 리듬을 사용하는등 사운드적인 차별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음악적인 궤적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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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 그럼, 시작해볼까?” - <GO> | 한울 2008-12-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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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들을 자막도 없이 몰래 보던 시기를 지나고, 일본문화가 개방되면서 처음 접했던 영화는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GO>였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괴상한 머리의 쿠보즈카 요스케를 보고는 좋은 눈을 가진 캐릭터란 생각에 흥미가 생겼고, 인트로 부분의 지하철 씬에서부턴 연출에 압도당해 영화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었죠. 원작이 소설이라는 이야기에 가네시로 가즈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원작 소설인 『GO』도 무척 재밌게 보았습니다.

평소 문학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터프한 작업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문학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나, 문체가 가지고 있는 힘, 단어 하나하나에 실려 있는 감정의 움직임은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선 많은 부분 소멸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령 잘 옮겨진 영화라 하더라도 그건 일란성 쌍둥이와 같이 외모는 거의 같지만 다른 내면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전혀 별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GO>는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텍스트를 눈으로 좇는 동안 영화의 장면들이 계속 오버랩 되며 지나갔고 캐스팅도 좋아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느낌과 상당히 매치가 잘 되었습니다. 뭐 물론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본 케이스였다면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양쪽 다 박수 칠 수 있을 만큼 좋은 결과였다는 것엔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GO>와 연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나는 것이 많습니다만, 그중에서 역시 백미는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는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너는 그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늙은이 같이.”

아버지는 싱긋 미소 지은 후 말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배울 겁니다.”

아버지는 또 싱긋 웃고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시작할 수 있지만, 그 무거운 한 발자국을 내미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요. 새장 속에 갇혀 지내던 새는 새장 문을 열어줘도 나갈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존재하는 내 삶의 울타리에서 나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는 건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두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걱정이 많을 때는 이 대화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곤 합니다.

인간 정신의 근본은 새로운 경험에서 나온다는 말을 되새기기도 하면서 말이죠.

GO
유키사다 이사오 | 스타맥스DVD | 2002년 08월

이 이야기는 나의 연애이야기이다. 나는 초급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 열혈 마르크스주의자로 조총련 활동을 한 아버지덕분에 조총련계 초중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러나 하와이를 가겠다는 아버지의 엉뚱한 발상으로 온 가족이 한국 국적으로 옮긴 후 내 나름의 뜻을 품고 일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일본에 사는 사람이다.

GO
가네시로 가즈키 저/김난주 역 | 북폴리오 | 2006년 02월

프로복서 출신이자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전향’으로 조총련계에서 민단계로 옮긴 재일동포 3세 고교생이 일본인 소녀와의 연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일본사회에 내재한 민족차별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성장소설. 재일한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자칫 무거운 주제를 기발한 유머감각으로 경쾌하게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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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Heart shaped-box가 아닌 Heart box로 느.껴.봐.” - 『이방인』 | 한울 2008-12-0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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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연찮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을 듣고 있자니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향수에 사로잡혀 흥얼흥얼 열심히 따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문득, 서랍 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연애편지를 발견한 기분으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 떠올랐는데요. 숨 가쁘게 흘러가는 빛과 카메라의 움직임, 감각적인 대사들 그리고 작은 스테레오 기기에서 줄기차게 나오던 〈California Dreamin'〉이 말이죠.

13년 전 처음 영화를 접했을 땐 대사 하나하나, 배우들 몸짓 하나하나에 보이지 않는 화살이 가슴 속 깊숙이 박힌 것처럼 격렬히 반응했고 양조위와 금성무의 표정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보고 또 보고를 수없이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94, 95년도엔 저의 어설픈 인격이 성장하는 데 영향을 주었던 양질의 컨텐츠를 많이 접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나우누리의 존재와 그곳에서 알게 된 여러 사람들, 명동과 압구정의 수입서점,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버린 커트 코베인, 왕가위의 <중경삼림>과 타란티노의 <펄프픽션>, 장 피에르 주네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그리고 하루키와 알베르 카뮈까지 말이죠.

사실 카뮈의 『이방인』<중경삼림><펄프픽션>의 비디오테이프를 구입코자 나섰던 종로의 중고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원고의 분량은 150페이지 정도로 중편이라 보기에도 좀 짧은 편인데 책을 다 읽고 덮을 때의 그 비현실적인 허무는 몇 번이나 책을 다시 펴게끔 만드는 마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롤랑 바르트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두고 ‘건전지의 발명’과 같다고 비유하며, 이상적인 글쓰기 전범이라 했다는 말에 ‘아아, 정말 근사한 표현이다.’라고 감동했었고 말이죠.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이방인』을 추천했었지만 죄다 읽지 않으려 해서 슬퍼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가끔 어떤 특정적인 소설이나 영화 또는 음악을 ‘어렵다’는 표현을 빌려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독자나 관객이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보이고 들리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찾기 위해 너무 깊숙이 파고드는 건 자칫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하려는 관점보단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갭은 존재하겠지만 너무 군중심리에 이끌려 두리번거리며 방황하기보단 자신의 심장이 이끄는 대로 말이죠.

사춘기 시절, 음악이나 책 그리고 영화에서 본질적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고민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거나 복잡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Heart shaped-box가 아닌 Heart box로 느.껴.봐.”

이방인
알베르 까뮈 저/김화영 역 | 책세상 | 1999년 09월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 이방인. 살인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은 그의 삶과 현실에서 소외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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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종회]이제 그만 안녕을 고할까 합니다 | 한울 2008-12-0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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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한울의 그림으로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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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란 직업은 클라이언트가 있어야 존재하는 직업이고, 클라이언트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얼만큼 잘 맞출 수 있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며 조건인 것 같습니다. 화가처럼 자신의 주관적인 세계관을 한 장의 그림에 모두 쏟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의뢰의 주제와, 일정한 룰 그리고 한정된 유행의 제약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이런 한정된 틀 안에서 서로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세계를 마음껏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슬럼프나 극심한 딜레마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를 꺼내어 표현하기 보단 타인의 의뢰의 성격에 맞추다보니 그림 그리는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이죠.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일로서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기회란 좀처럼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에게 있어 <한울의 그림으로 읽는 책>은 지치기 쉬운 생활 사이클에 굉장한 에너지가 되어준 작업이었습니다. 원고의 선택도, 원고의 내용도, 일러스트의 느낌도 모두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100퍼센트 자유로운 작업이었으니까요.

2년 동안 연재했던 한 코너를 접는다는 아쉬움은 굉장히 크지만, 나와 있는 컨텐츠의 양에 비해 제 추억과 연관되는 작품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서 최근에는 힘에 부쳤던 게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한꺼번에 타버리는 쪽이 훨씬 좋다는 생각에 <한울의 그림으로 읽는 책>은 이제 그만 안녕을 고할까 합니다.

이제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조금 갖고, 좀 더 재밌는 컨텐츠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그때는 좀 더 좋은 글과 그림으로 인사드리도록 할게요. 지금 메릴 스트립이 부른 ‘The Winner Takes It All’을 반복해서 들으며 원고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 가슴 뭉클함은 뭔지 모르겠네요.

자, 그럼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열심히 찾아봐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방인
알베르 까뮈 저/김화영 역 | 책세상 | 1999년 09월

실존주의 문학의 정수, 이방인. 살인동기를 '태양이 뜨거워서'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은 그의 삶과 현실에서 소외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죽음이라는 한계상황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란 것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한편으로는 그 죽음을 향해 맹렬히 나아가는 인간존재가 얼마나 위대한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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