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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 우린 결국 다 속고 있다. | book 2020-09-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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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목마름

요 네스뵈 저/문희경 역
비채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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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렇게 불길한 걸까? 시간은 멈추지 않고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며 인생은 완벽하게 밀폐된 방에서도 계속 움직이면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므로? 현재 모든 것이 완벽하므로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면 분명 나쁜 쪽의 변화일 거라는 불안감. 그래, 그거였다. 행복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아서 차라리 얼음을 깨트리고 찬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물에 빠질 때까지 불안해하며 하염없이 기다리느니 차라리 찬물에 빠져서 물에서 나오려고 싸우는 편이 나았다.    p.99~100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사랑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라고 소설이 있는 것이니까. 매번 책장을 넘길 때면 우리는 어떤 세상 안에 살게 된다. 다시 또 책장을 넘기면 또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 작가는 한 문단, 한 문구, 흔한 단어 하나로도 독자들을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갈 수 있다. 단어가 쓰인 방식, 경계를 무너뜨리는 상상의 힘, 탄탄한 플롯과 매혹적인 인물 등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요 네스뵈는 마이 셰발, 페르 발뢰의 '발코니에 선 남자'를 읽고 스톡홀름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역시 해리 홀레 시리즈를 8년 째 읽으면서 오슬로와 사랑에 빠졌다. 내가 본 적 없는 것, 가 본 적 없는 곳들이 매우 사적이고 익숙한 곳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작품 속 인물이 실제 사람이 되어 페이지 바깥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라도 내겐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해리 홀레는 최악의 상황을 연이어 겪으며 지치고 피폐했던 모습이었다. 눈동자는 충혈됐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 빡빡 깍은 금발 머리에 192센티의 거대한 몸은 비쩍 마른 북극곰처럼 살이 빠져 근육질 몸에 지방만 쏙 빠진 상태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알콜 중독 상태였다. 그럼에도 사건 수사에 있어서 만큼은 융통성 제로, 고집 불통, 그리고 진실을 향한 무조건 적인 직진, 시니컬 하고 반항적이고, 무심한 듯 보여도 살인 사건 앞에서는 언제나 세상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계산 없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해리 홀레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막무가내식, 독불장군식이지만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성에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오히려 불안정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정말 살아 숨쉬는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박쥐>에 등장하는 오슬로 경찰청 강력반 형사인 해리 홀레는 32살이었다. 풋풋하고 열정 넘쳤던 그는 노르웨이 여성이 호주에서 사체로 발견되어 호주로 출장을 가게 되고, 출발전 금주 상태였으나 호주에서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바퀴벌레>에서 33살의 그는 찌는 듯한 더위의 방콕에서 사건을 은폐하려는 철벽방어를 뚫고 노르웨이 대사의 살인 사건을 수사했다. <레드브레스트>에서 35살의 그는 미국 비밀경호원 총격사건으로 경위로 승진해서 국가정보국으로 발령을 받았고, <네메시스>에서는 은행 강도 사건과 전 여자친구의 자살 사건에 전작에서 죽은 동료에 대한 의혹을 수사하다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기도 했다. <데빌스스타>에서 36살의 해리 홀레는 강력반 최고의 형사이자 이단아로, 경찰청의 외톨이이자 심각한 알콜 중독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즈음에 이미 자기파괴적인 성향 속으로 파고 들어가 거의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로, 우리는 더 이상 경찰이 아닌 해리 홀레의 모습까지 상상해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오슬로 3부작을 거치면서 그는 외톨이에 술고래, 강력반 최고의 형사이자 이단아로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리디머>에서는 해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두 인물이 사라지게 되는 시기를 거치며, 그가 완전히 마음의 문을 닫고 고독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스노우맨>과 <레오파드>를 거치며 전대 미문의 연쇄 살인범을 만나 손가락을 하나 잃어 버리고, 얼굴 절반이 찢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여인과 그녀의 아들이 연쇄 살인범 손아귀에 들어가기도 하고,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운명의 연인 라켈 역시 도망치듯 그와 헤어지게 된다. <팬텀>에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상처받고, 사상 최악으로 망가지는 해리 홀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폴리스>에서 해리 홀레는 경찰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며, 오랜 연인 라켈과 마침내 결혼을 한다. 그리고 3년 뒤의 이야기가 이번 신작 <목마름>이다.

 

 

“모르겠어. 내가 아는 거라고는 살얼음판 같은 행복 위를 걸을 때 무섭다는 거야. 어찌나 무서운지 어서 끝나기를, 그냥 물속에 빠지기를 바라지.”
“그래서 우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한테서 도망치는 거예요.” 카트리네가 말했다. “술. 일. 무심한 섹스.”
우리가 쓸모 있는 일, 해리는 생각했다. 그들이 피 흘리며 죽어 가는 동안.  
"우린 그들을 구할 수 없어요." 카트리네가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그들도 우리를 구할 수 없고요. 오직 우리만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어요."      p.491

 

혼자 사는 여성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목에는 물린 자국이 있었고, 시신에선 피가 모자란 상태였다. 쇠이빨로 피를 마시는 범인을 언론에선 일명 '뱀파이어병 환자'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데이트 앱인 ‘틴더’로 남자를 만난 여자들이 살해되기 시작한다.  경찰청장 미카엘 벨만은 곧 법무부장관 자리가 내정된 상태였기에, '뱀파이어 살인마'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경찰이 아닌, 해리 홀레를 찾아간다. 라켈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경찰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살고 있는 행복한 해리 홀레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해리는 언제나 소중한 뭔가를 잃어 왔고, 그러면서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왔으니 말이다. 미카엘은 해리를 협박해 수사를 맡게 하고, 해리는 결국 전대미문의 살인마와 마주하게 된다.

 

 

행복한 해리 홀레의 모습은 작가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낯설었지만, 해리 자신도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그 행복이 깨져 버릴 까봐 더 조마조마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것도 있었다. 해리 역시 그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고, 가족과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고 싶다. 시리즈가 지속되는 내내 고통받고 분노하고 상실감에 휩싸였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았던 그였는데,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지켜내야 하는 존재가 생겼고, 그것을 잃을 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뼛속까지 경찰인 해리에게는 범인을 잡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고, 뱀파이어 살인마는 그 안의 목마름를 일깨우고, 불을 지핀다. 그 불은 꺼질 때까지 계속 타오르면서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이다. 그 동안 그래 왔듯이. 해리는 이번에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과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 희생을 치를 줄 알면서도 살인자를 쫓는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해리는 자신이 겨우 찾은 행복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가 범인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리라는 것에는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지만, 해리의 평온한 일상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 지에 대해선 독자로서 불안했다. 피를 갈망하는 범인의 목마름만큼이나 범죄에 이끌리는 해리의 목마름은 강렬하다. 우리는 누구나 뭔가를 갈망하면서 살아 간다. 단지 그 대상과 정도만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그것에 목숨을 걸고, 자신을 던지기도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해리에게는 행복 추구가 삶의 원동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는 뭘 위해 살아 가는가. 어쩌면 우리 모두 속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해리 홀레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그 진실을 알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해리 홀레 시리즈를 만나 보자. 순서에 상관없이 어떤 작품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소설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재미와 함께 해리 홀레에게 치명적으로 중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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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단단한 마음을 위한 관계심리학 특강! | book 2020-09-18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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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박상미 저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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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해보다는 오해가 많습니다. 세상은 나를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해에 분노하지 말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었을 때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건강한 마음가짐입니다. 한편 오해가 억울하고 불편한 일만은 아닙니다. 오해가 이해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걸 알면 마음이 훨씬 편해집니다. 믿음을 쌓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오해에서 이해로 건너가는 과정, 그 시간을 우리는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묵묵히 나의 길을 가면 됩니다.     p.79

 

언젠가부터 자존감, 인간관계, 우울감 등 심리학과 관련된 에세이, 자기계발서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이는 시대적인 흐름과도 관련이 있는데, 사회가 불안정하고, 개인의 자존감이 낮아지고,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러한 것에서 위로와 감성의 코드를 찾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최근에는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을 하지 못하거나 타인과의 교류가 줄어든 사람들이 답답함과 우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팬데믹이 아니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란 누구에게나 힘들고 두렵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배신당하고 상처받고 실망하고,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상대의 눈치를 보고, 그들 때문에 분노한다. 10년간 1,000회 이상 관계 수업을 진행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의연하게 대처하는 기술과 팬데믹 이후 새로운 시대에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법에 대해서 알려준다. 우리는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마도 급변한 소통방식의 체계는 다시 오프라인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오프라인, 온라인의 경계 없이 이루어지는 관계 맺기, 소통에 유연해지려면 예전보다 더 많은 ‘관계 연습’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내가 왜 이렇게 타인의 말에 흔들리고 상처받고 자책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는지 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일이에요.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평가에 민감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 때문입니다.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나 때문입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자존감 낮은 나 때문입니다. 설령 안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지적을 받더라도, 좀 더 건강한 시각으로 상대의 말을 해석해보세요. 비난이어도 괜찮아요. 그 말 속에서 나를 키울 수 있는 성장의 씨앗을 찾아보는 능력을 키우세요.    p.229

 

동료가 항상 불평불만이 가득해 나도 덩달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평소 감정도 점점 나쁜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데, 이 동료와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면서 공포가 밀려온다면 해결 방법이 있을까. 입만 열면 잘난 척하는 사람과 옆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어떤 날은 두통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피곤하다면, 꼴 보기 싫은 사람을 매일 봐야 하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대부분 인간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직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편한 동료와 함께 일해야 하고, 매번 트집 잡는 상사를 참아야 하며, 직장에서 버텨내야만 한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졌는데, 덕분에 가족들과의 불화까지 더해지고 있으니 심각한 상황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관계에서는 ‘신중한 행동’과 ‘약한 연결’이 핵심이며, 적당하고 가까운 거리 두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소통의 핵심은 공감과 경청이고, 경청은 자세, 공감은 표현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공감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펜을 들고 실전 연습을 해볼 수 있도록 예시가 나와 있기도 하고, 관계를 성장시키는 대화법들의 사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 외에도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 긍정을 이끌어내는 대화의 기술, 관계를 살리는 칭찬법 등 공감과 소통, 감정 등을 모두 훈련해볼 수 있는 스킬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의연하게 대처하고 마음 근육을 키워 관계의 주인이 되는 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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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벨 죽이기》 죽는 건 엄청난 대모험이라고! | book 2020-09-1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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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팅커벨 죽이기

고바야시 야스미 저/김은모 역
검은숲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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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가는 죽을지도 몰라."
"당연하지."
"죽는 게 무섭지 않아?"
"죽는 게 무서우냐고? 무슨 소리야? 죽는 건 엄청난 대모험이라고! 그렇지, 얘들아?"
피터가 대뜸 물어보자 소년들은 부리나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자, 봐." 피터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은 거야."   p.49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변주했던 <앨리스 죽이기>, '호두까기 인형'을 모티프로 한 <클라라 죽이기>, '오즈의 마법사'와 미스터리를 결합시킨 <도로시 죽이기>에 이어 이번에는 '피터 팬'이다. 작가는  ‘피터는 자신이 죽인 사람은 잊는다’, ‘네버랜드 아이들은 살육을 즐긴다’, ‘피터의 부하는 피터가 모르는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원전 문장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확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피터팬은 우리가 동화나 영화 속에서 만나왔던 피터팬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사악한 웃음을 짓는 피터팬이라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팅커벨 죽이기>를 어느 정도 읽다가 아무래도 이 '피터팬'이라는 캐릭터에게 너무 적응이 안 되어서, 제임스 매튜 배리의 <피터팬> 원작을 다시 들춰 보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대목들을 발견했다. 솔직히 세상에 피터만큼 건방진 소년은 없었다, 피터의 관심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멋진 재주를 과시하는 데 있는 것 같았다, 등의 문장들은 영원한 소년 피터팬의 아이답고 철없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이며, 악의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실제 동화에 묘사된 피터팬도 사람을 엄청 많이 죽여본 것을 자랑스레 이야기했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원했으며, 전투의 열망으로 가득하다는 걸로 나온다. 놀랍게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그 동안 이 <피터팬>이라는 동화를 어떻게 읽고, 해석해 온 걸까,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보자니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가 새삼스레 더 매력적인 작품으로 느껴졌다.

 

 

"즉 이런 말인가. 범인을 찾으려면 모두를 신문할 필요가 있지만, 여기서 신문하면 증언의 가치가 점점 상실된다."
"그러니까 범인 찾기는 신중하게 진행해야 해. 누군가 부주의하게 말을 꺼낸 순간, 누가 범인이냐는 정보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어."
"네 머릿속에는 해결에 다다르는 경로가 만들어져 있어?"
"아마도."      p.293

 

이야기는 피터팬이 후크 선장을 죽이고 나서 웬디와 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온 뒤에서 시작된다. 피터는 웬디에게 봄철 대청소를 할 때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여름이 되어서야 데리러 간다. 웬디와 동생들과 달링가에 입양된 소년들은 모두 피터와 팅커벨을 따라 네버랜드로 향한다. 하늘을 날던 중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피터가 구해 온 고깃덩이 중에 말하는 도마뱀 빌이 등장한다. '죽이기 시리즈'를 계속 읽어 왔다면 누군지 알겠지만, 사실 이 작품으로 처음 접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도마뱀 빌과 지구에 사는 인간 이모리는 꿈으로 연결되어 있다. 빌이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를 만나고, 호프만 우주의 사람들과 사건을 수사하고, 오즈의 나라에서 활약하며 모험을 펼치는 동안 지구의 이모리가 도움을 주며 빌을 구하려고 한다. 현실과 꿈 속 세계, 각기 다른 두 세계에서 일어난 죽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예를 들어 네버랜드의 누군가가 죽으면 지구에 있는 아바타라도 죽는다. 꿈 속 세계에서 살해당하더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병이나 사고로 죽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범인을 찾아낼 수도,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도 쉽지가 않다.

 

네버랜드에 도착하자마자 팅커벨이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아이들은 피터를 범인을 찾는 탐정으로 적극 추천한다. 하지만 범인을 찾겠다며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는 피터 때문에 지구에서도 사고가 잇따르자 이모리는 살육을 멈추기 위해 그의 아바타라를 찾아 나선다. 꿈의 나라 네버랜드에서는 매일매일 살인이 일어나고, 동화 속 나라에 대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지만, 그럼에도 도마뱀 빌과 이모리의 모험은 계속 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동화 속 세계가 잔혹한 환상으로 바뀌게 될 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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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명랑한 은둔자』 | event 2020-09-1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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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저/김명남 역
바다출판사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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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홈》 월켐 투 루시아 월드! | book 2020-09-1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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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웰컴 홈

루시아 벌린 저/공진호 역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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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밀가루를 물에 이겨 만든 풀로 잡지책 낱장들을 조심스럽게 벽에 붙였다. 잡지의 글이 젖을까 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통나무집 벽의 천장부터 바닥까지에 잡지책 낱장을 조각보처럼 붙여 빈틈없이 도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렇게 해놓으면 존슨 할아버지는 벽에 붙은 것을 읽으며 긴 겨울을 났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잡지의 종류와 페이지 들을 뒤섞어 붙이는 일이었다... 나는 그게 나의 첫 문학 수업, 또는 창조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배운 첫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벽들이 어떤 커다란 생각의 장이란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p.29~30

 

2015년, 미국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인기가도를 달리는 작가들을 제치고 낯선 작가의 소설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 책이 바로 무명작가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 이었다. 2004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 11년 만에 루시아 벌린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책은 사후 11년 만에 떠오른 문학 천재, 루시아 벌린의 자전 에세이이다. 그녀는 32살에 이미 세 번 이혼했고, 네 아들을 낳았으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었고, 싱글맘으로 네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고등학교 교사, 전화 교환, 병동 사무원, 청소부, 내과 간호보조 등의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경험들이 모두 그녀의 작품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청소부 매뉴얼>과 <내 인생은 열린 책> 두 권의 단편집 전체가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파란 만장했던 그녀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번에 만난 책은 진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종의 자서전이자 회고록이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책에 수록된 글을 쓰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원고의 마지막 장은 그 끝 문장까지 완성하지 못한 채 미완성 남게 되었다. 이 책은 그 유작과 함께 그녀가 삶의 한때를 보냈던 여러 집들에 대한 기록과 사진, 그리고 가장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함께 모아 수록하고 있다.

 

 

아무튼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거의 모든 페이지에 내용을 보태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까지 쓴 글의 대부분을 나도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슬픈 일은 예전엔 내 이 빌어먹을 마음이 큰 기쁨으로 가득해서 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마음도 말랑말랑했고, 그 때문에 다음 단락에서 그들을 어떻게 그릴지, 어떤 웃기거나 아름다운 일을 앞에 두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할지에 대해 세심히 배려하며 집필했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내 마음 상태가 그렇질 않은데 처음부터 다시 이 소설을 이끌어가자니 그럴 수가 없어서 슬픈 거라고요.    p.186

 

루시아 벌린의 단편들을 읽고 나면 삶을 돌아보게 되곤 했다. 그녀가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도시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희극과 비극이 뒤섞인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과 다른 듯 하면서도 같은 모습으로 공감과 이해를 불러오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루시아 벌린 특유의 반짝이는 유머와 통찰력, 담백하지만 아름다운 문장들이 더해져서 근사한 재미를 안겨 준다. 이야기들은 '비극적인 동시에 유머와 멜랑콜리를 자아내고, 감정은 극한이지만 언어는 꾸밈이 없으며, 문장은 단편적이면서도 글은 산뜻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우아하다. 그리고 최소한의 단어로 복잡한 감정과 사소한 감정을 모두 드러내고 있으니, 단편으로서는 최고의 효율적인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회고록 역시 담백하고, 간결하게 흘러가는 회고록이라 더욱 좋았다. 특히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글들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녀의 감정 상태, 글을 쓰는 과정,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루시아는 평생 열여덟 군데의 다른 집에서 살았다. 그렇게 터무니없을 정도로 수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기에, 그녀에게 집이란 정말 중요한 의미였다. "집에 가려고, 나는 집에 가려고 글을 썼다.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곳. 나는 현실을 교정하기 위해 글을 썼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말이다. 이 책은 그녀가 거쳐온 수많은 삶의 편린들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오롯하게 담겨 있다. 최소한의 단어로 복잡한 감정과 사소한 감정을 모두 드러내고, 비극적인 동시에 유머와 멜랑콜리를 자아내는 루시아 벌린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월켐 투 루시아 월드!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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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