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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사는 기-승-전-석유의 시대이다 | 인문 2020-12-2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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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최지웅 저
부키 | 2019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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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지리 수업에서 '석유'를 주제로 여러 수업을 한다. 자원의 특성, 자원으로서 석유의 생산, 이동, 소비 통계와 지도, 자원민족주의 '문제'로서 석유 등 여러 주제를 지리 수업에서 다룬다. 석유와 관련한 여러 데이터와 지도를 다루면서도, 각각의 파편적인 지식을 다룰 뿐 깊이있는 석유 그 자체의 중요성에 얽힌 이야기까지는 접근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석유가 각 지역에서, 각 시기 별로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해서 궁금했었다. 또한 화석연료가 환경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석유를 '적폐 과거' 취급을 쉽게 해버리기도 한다. 물론 저탄소 친환경적인 에너지 전환은 필수적이지만, 석유를 벌써 그렇게 저평가해버리기에는 지금도 여전히 석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현실을 간과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미처 몰랐거나 놓치고 있는 석유와 관련한 이야기들에 더 관심을 가져야, 석유와 현대 세계체제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 세계지리 교과서에 실린 석유에 대한 이야기는 소략하고 파편적이다.


  저자는 한국석유공사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자신의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영국에서 석유 분야의 경영학 MBA 과정을 수료한 이력이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MBA 과정에서 석유 비즈니스라기보다는 석유의 역사, 정치경제적 배경을 주로 공부했다고 밝힌다. 그리고 저자는 석유가 20세기 현대사 및 국제관계에서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정말 중요했었다는 부분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한국석유공사 블로그에 오랜 기간 석유가 20세기 현대사, 국제정치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한 여러 글을 연재하였고(아래 링크), 이 연재물을 엮어서 이 책을 썼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제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 4시기로 구분하여, 시간 순으로 20세기 석유의 현대사를 살펴본다.



  1장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60년대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주요 석유 메이저를 지칭하는 세븐시스터즈에 의해 석유 지정학이 결정되던 시기이다. 처칠이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석유의 군사적 중요성을 알고, 해군 함정의 에너지원을 석탄에서 석유로 바꾼 사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중동의 석유가 많이 매장된 사실을 확인하면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세븐시스터즈는 중동의 석유를 탐사하고 생산하여 '최고의 포상'을 받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과정에서 영미석유협약, 이란의 모사데그 축출, 수에즈 위기, 마테이의 도전과 실패 등 국제정치의 굵직한 사건들을 흥미롭게 살펴본다. 중동 지역에 석유가 많다는 사실을 지금은 당연하게 알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낀다. 중동의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확인하고, 이것의 지정학적 가치를 파악하여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최고의 포상'을 받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 국가, 정치인, 기업가들이 세계를 지배해 왔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1941년 미국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석유와 중동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석유는 전쟁 승패에 결정적인 요소였고, 미국은 모든 전선에 석유를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30년대 말부터 미국 내에서 새로운 유전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해집니다. 미국은 해외로 눈을 돌립니다. 미국 정부는 당시 미국 최고의 지질학자이자 석유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버렛 드골리에를 중동으로 보내 석유 매장량을 조사하게 합니다. 드골리에 일행은 그 임무를 수행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중동 석유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포상'이 될 것이다.'

  (...) 영국은 미국이 필요했습니다. 중동을 노리는 소련의 위협을 홀로 방어하기도 힘들었고, 중동 유전 개발에 필요한 자본도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중동에 들어와서 영국의 기득권을 상당 부분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복잡 미묘한 상황에서 미국 대통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뛰어난 '스케치 실력'으로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루스벨트의 제안은 1944년 영미석유협약이라는 결실로 이어집니다.(p.26-28)


  모사데크는 집권 후 곧바로 영국 소유였던 앵글로-이란 석유 회사를 일방적으로 국유화합니다. 영국으로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었기에 즉시 페르시아만에 해군 함대를 파견하고 영국 은행에 예치된 이란 자산을 동결합니다. (...) 영국의 정보기관은 모사데크 정권이 소련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를 놔둘 경우 이란이 공산화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때가 1952년,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으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격화되는 시기였습니다. 영국과 미국 입장에서는 이란의 공산화는 한반도의 공산화보다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이란이 넘어가면 사우디도 위험할 수 있었습니다. 처칠은 군사 작전까지 벌여야 한다 생각했고, 실제로 플랜 Y라는 이름이 붙은 군사 작전 계획이 실행 직전 단계까지 갑니다. 그러나 미국의 국무 장관 딘 애치슨은 영국의 무력 사용을 만류합니다. 한반도에서도 전쟁 중이었고, 다른 중동 국가들과 소련을 자극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대안이 있었습니다.(p.34-35)


  마테이는 세븐 시스터즈에 도전하기 위해 1953년 이탈리아에서 Eni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배 체제를 깨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합니다. 먼저 중동으로 날아가 당시 영미계 석유 회사들이 석유 수익을 중동 국가들과 50대 50으로 반분하는 원칙을 깨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마테이의 Eni가 세븐 시스터즈를 제치고 석유 개발권을 따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에즈 위기로 영국의 영향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판단한 마테이는 1957년 이란을 방문해 75(이란):25(Eni)의 파격적인 배분 조건으로 석유 개발권을 일부 따냅니다.(p.53)



  2장에서는 1970년대를 다룬다. 이 시기만 다루는 이유는, 이때 세계의 정세가 '오일쇼크'를 중심으로 지정학적 격변이 일어난 중요한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오일쇼크는 석유 수출국 기구(OPEC)이 세계 석유 시장에서의 비중이 커지고 미국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그리고 선진국들에서 석유의 수요 및 중동 석유 의존도가 증가하는 배경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특히 4차 중동전쟁이 격발하면서 중동 국가들에서 자원민족주의, 자원의 무기화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이다. 3차 중동전쟁의 석유 금수 조치는 별 효과가 없었는데 4차 중동전쟁에서는 효과가 있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석유의 지경학(geoeconomics)와 지정학(geopolitics)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오일쇼크로 인해 여러 국가에 미친 다양한 영향이 흥미로웠는데, 특히 프랑스의 원자력 확대, 우리나라의 중동 건설 붐 등이 인상적이었다. 2차 석유파동 시기부터 미국과 원수가 된 이란이 지금까지도 미국과 최악의 관계인 점도 흥미로웠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도 아랍 국가들이 단행한 석유 금수 조치는 남아도는 공급 물량 때문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변합니다. 잉여 공급 물량이 소멸하면서 공급 중단은 바로 공급 공백을 초래하는 상황이 됩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아랍은 석유 질서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아랍의 지위가 상승하고 협상력 또한 강해졌습니다. 석유는 더 귀한 자원이 되었고, 아랍 국가들이 석유의 국유화나 무기화를 통해 서구 세계를 위협할 경우 치명적인 에너지 위기를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p.83-84)


  아랍은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영토도 회복하지 못했지만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습니다. 1~3차 중동전쟁까지 형편없이 밀렸던 모습이 아닌,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며 긍지를 회복한 것입니다.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이스라엘을 상당한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 아랍의 소득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랍의 강력한 무기인 석유의 힘을 드러낸 것이 더 큰 소득이었습니다. 전쟁 중 압박 수단이었던 석유 감산과 금수 조치로 인해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합니다. 아랍은 전쟁 중에 시행된 석유 감산 조치를 전쟁 후에도 그대로 유지합니다. 종전 후에도 무기를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 아랍은 군사적 승리는 거두지 못했지만, 석유를 통해 전세계에 충격을 주면서 유럽과 일본 등이 아랍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합니다.(p.100-101)


  한편 프랑스가 IEA 가입을 거부한 주된 이유는 세븐 시스터즈가 주도하는 석유 질서에서 배제되었다는 불만이었습니다.(...) 우선 프랑스는 오일쇼크 이후,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 원자력 발전에 집중합니다. 그 결과 2018년 기준으로 프랑스는 전력의 75퍼센트를 원자력으로 조달하는 세계 2위의 원자력 대국이 됩니다. 한국, 중국, 일본보다도 더 큰 규모의 원자력 발전을 유지하는 것인데, 프랑스가 원자력 대국이 된 것에는 이러한 국제정치적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대니얼 예긴은 프랑스의 원자력이 "상실한 주권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p.118)



  3장에서는 1980년대 석유의 시장 상품화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70년대 OPEC의 석유 자원 무기화로 인해, 석유 수입국들이 새로운 자원 탐사 및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였다. 이로 인해 비OPEC 국가의 석유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OPEC의 시대가 끝이 난다. 그리고 석유도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금융 상품으로서 거래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각국의 보호무역주의로서 석유의 무기화 같은 현상은 이제 발생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수도 있으나, 여전히 석유 시장에서 국가들 간의 점유율 경쟁과 유가의 변동, 각국의 이해관계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국과 사우디가 석유 관련해서 가깝다는 점만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부시가 사우디의 '덤핑 석유'에 관세를 부과해서 자국 석유기업을 보호하면서 경쟁하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1983년 이전에 원유 가격은 OPEC의 공식 판매 가격이 주도했습니다. OPEC이 정한 가격을 수요자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사우디의 주요 유종인 아라비안 라이트 등의 가격이 그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1982년을 기점으로 비OPEC의 석유 생산량이 OPEC의 생산량을 앞지르게 됩니다. OPEC이 가격 결정권을 가졌던 시기에 유지했던 고유가가 비중동 지역의 석유 개발을 촉진한 결과였습니다. 1982년부터 OPEC은 생산량 측면에서도, 가격 신뢰성 측면에서도 시장을 지배할 힘을 상실합니다. 이제 석유 시장은 다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가 경쟁하는 시대로 나아갑니다. 가격의 기준도 과거 OPEC이 일방적으로 공시하던 가격에서 시장 참여자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 이제 석유는 특수한 지위를 갖는 재화에서 시장의 원리에 지배받는 평범한 '상품'이 되었습니다.(p.169)


  사우디는 점유율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우디 국영 석유 회사인 아람코는 1988년 미국 텍사코의 정유 회사 지분 50퍼센트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이 정유 회사로 하여금 자사 원유를 지속적으로 구매하게 합니다. 미국이라는 최대의 석유 소비국에서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세계 5위의 석유 수입국인 한국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우디 아람코는 1991년 쌍용 정유(현재 에스-오일)의 지분 35퍼센트를 취득합니다. 이후 지분을 63.4퍼센트까지 늘려 최대 주주가 되면서 한국 정유 회사에 원유를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됩니다. 2019년 4월에도 아람코는 또 다른 한국 정유 회사인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17퍼센트를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로써 아람코는 이 정유 회사의 2대 주주가 됩니다. 이 역시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미국에 한국 시장 점유율을 내줄지도 모른다는 아람코의 우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 이후 한국의 정유 회사들은 미국산 원유 수입을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p.192-193)


  석유는 하나의 상품이었고 무역의 대상이었습니다. 석유라는 상품을 저가 덤핑으로 수출하는 국가에게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했습니다. 바로 무역의 대표적인 압박 수단인 관세입니다. 미국은 관세로 사우디를 압박합니다. 1986년 부시는 사우디를 방문해 관세 부과 의사를 밝힙니다. 관세가 부과되면 사우디는 미국 시장에서 수요처를 잃을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석유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자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1980년 전후 사우디의 하루 생산량 1000만 배럴 중 약 140만 배럴을 받아주던 곳이 미국이었습니다. 사우디의 최대 고객인 미국의 관세 부과는 사우디의 점유율 회복에 치명타였습니다.(p.198-199)



  4장에서는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탈냉전 시기 미국 중심의 세계화는, 석유를 중심으로 한 패권을 떨치는 과정이기도 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의 핵심적 요소로서 석유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중요했다. 특히 '자원의 무기화'같은 이야기가 옛날 이야기가 되었을 것만 같은 90년대 이후에도 미국은 끊임없이 석유 자원을 중요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무기로서 여기고 대외정책을 실천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1991년과 2003년의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석유와 무관하지 않은 전쟁이고, 또 중앙아시아의 구소련 독립국가들에 대한 석유를 둘러싼 '뉴 그레이트 게임'을 미국이 주도한 것도 해당된다. 또한 미국이 중동 국가들에게 석유 달러를 지불했지만 그것이 무기 판매 대금으로 다시 '부의 이전'이 발생하는, 즉 석유 자원이 무기로 돌아오는 '자원의 무기화' 현상도 흥미로웠다. 2010년대 이후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인해 미국이 대외정책이 변화할 것이라는 예측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고, 이 역시 석유가 국제관계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렇게 1990년대의 석유 시장은 미국의 지배하에서 안정기에 접어드는 듯했습니다. 미국은 세계화와 자유 무역의 흐름 속에서 구소련의 유전 지대였던 중앙아시아의 신생 국가를 미국 자본의 영향하에 두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반발했지만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동과 중앙아시아까지 뻗어 나가는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반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대한 강한 저항은 여러 단체와 결사로 이어집니다. (p.228)


  중동과 아랍은 20세기 석유 개발의 역사에서 부의 상당 부분을 서구가 빼앗아 갔다고 여깁니다. 그들이 아랍의 '토지'라고 여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교도의 국가를 건설한 것도 테러의 주요 이유입니다. 땅과 석유는 가장 중요한 부의 원천이었습니다. 헌팅턴조차도 <문명의 충돌>에서 걸프전을 "문명과 문명 사이의 전쟁으로 결국 세계 최대의 유전을 서구의 군사력에 안보를 위탁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아랍 토후국이 관리할 것인지 아니면 반서구적인 국가들이 관리하느냐를 둘러싼 대립"이라고 정의합니다. (...) 서구는 지속적으로 중동의 석유에 관여했고, 그것이 갈등과 분쟁의 시작이자 원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과 분쟁은 이슬람 신앙과 결합하여 이슬람 세계 공통의 반서구 정서를 형성합니다. 빈 라덴은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었습니다. 미국의 강력한 힘이 세계화로 나타나는 시기에, 빈 라덴은 이슬람 세계의 반서구 정서를 대변하며 그 정서를 자신의 자원으로 가져옵니다.(p.240-242)


  뉴욕대학 중동연구센터 티머시 미첼은 유출된 달러의 흐름을 되돌리는 금융 리사이클링에 가장 적합한 재화는 무기였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인 식품, 의류, 자동차 등의 소비재나 기계, 장치 등의 내구재는 일정량을 구매하면 효용성이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의 추가 구매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기는 실제 필요나 사용을 염두에 두고 구매하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업적 한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중동 산유국은 더 강한 무기가 나올 때마다 구입을 원했고, 군수 창고에 무기가 넘치는 상황에서도 더 많은 무기를 사들였습니다.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 UAE, 이라크 등은 현재 미국의 주요 무기 수입국이기도 합니다. 중동에서 전쟁과 갈등은 무기 수요를 꾸준히 창출했습니다. 이렇게 산유국이 벌어들인 달러는 무기를 구입하거나 국채를 매입하는 데 지출되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이러한 금융 리사이클링은 금융의 세계화와 달러 통화 시스템 하에서 가능했습니다.(p.261)



  저자는 책 말미에 현대사가 '기-승-전-석유'였다고 요약한다. 그리고 서울대 자원공학과 명예교수인 김태유 교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석유 수입 5위의 국가인 우리가 해외 석유자원 개발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화석에너지의 반환경적인 이미지, 미래에 재생에너지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익숙하기에, 저자의 주장은 얼핏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여전히 석유는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도 중요한 자원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수긍이 간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장기적인 미래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면한 현재 세계 체제에서 석유가 여전히 중요하게 사용되고 국제관계에서도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추상적으로 석유가 중요하다는 말보다는, 언제, 어느 지역에서 석유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파악하는 과정이 저자의 주장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 주었다.


  저자는 책의 많은 부분에서 대니얼 예긴의 <황금의 샘(The Prize)>을 인용하고 있다. 이 책은 석유 분야의 현대 고전으로 여겨지는 책으로, 2권짜리 두꺼운 책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일독을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를 읽은 뒤 <황금의 샘>을 읽는다면 비교적 쉽게 '벽돌책'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대니얼 예긴의 후속작인 <2030 에너지전쟁(The Quest)>, 윌리엄 엥달의 <20세기 세계사의 진실>과 같은 유명한 에너지 지정학 관련 책들을 인용하고 있다. 비교적 얇은 두께의 책이지만, 수많은 책을 인용하면서 학술적으로도 탄탄하다. 그리고 저자의 스토리텔링이 좋아서, 몰입도 있게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적절한 사례를 들면서 스토리를 전개하여 이해하기 쉬웠고, 해당 사건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었다. 석유 자원과 국제관계 및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입문서로서 권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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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상류층 청년들의 통과의례, 해외여행 | 인문 2020-12-1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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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랜드 투어

설혜심 저
휴머니스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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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특히 해외여행에 대한 관점은 사람들 마다 엇갈린다. 많은 사람들은 멀리 떨어진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와 같은 문구를 되뇌이며 일상의 힘들고 번잡한 것들을 참아내고, 해외여행을 훌쩍 떠나서 자유를 만끽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이러한 삶을 권유한다. 이런 여가, 유희의 관점에서 여행을 찬미하는 이들도 있지만, 또한 해외로의 여행을 통한 경험이 여가, 유희 그 이상으로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준다는 이야기도 꽤 쉽게 접할 수 있다.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아우구스트누스)"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는 단순히 휴식의 측면으로의 여행을 넘어서, 여행이 마치 책을 읽는 것처럼 삶의 양식을 쌓아주고, 여행자의 능력을 키워주는 역할까지 한다는 것이다. 정말 멋진 격언이면서도, 한편 이러한 '자기계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노출된 취업준비중인 청춘들은 이러한 말을 듣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마저 '스펙'이 되는 부담스러운 느낌을 받기도 한다. 당연히 해외여행이라는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반발심으로, 어떤 사람은 여행이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 돈과 시간으로 다른 걸 해도 된다면서, 해외여행이란 그저 부모 돈으로 호강하는 일부 계층의 유희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해외여행이란 무엇이고, 정말 효과가 있는 행위일까? 이쯤 되면 해외여행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고, 해외여행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었을지를 추적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해외여행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로 18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부유층의 자제들은, 성년이 되는 시기 즈음의 상급학교 진학 전에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주로 대륙 유럽의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는 여행을 하는 것이고, 이를 '그랜드 투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책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랜드 투어가 무엇인지, 어떠한 사회적 배경으로 등장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본다. 과거부터 많은 유럽 사람들은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목적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특히 탐험의 시대 이후, 경제 성장, 종교 및 정치적 안정 등을 배경으로 18세기 영국의 엘리트층에서의 그랜드 투어가 가장 두드러진 사회 현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영국사 전공자인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여, 그랜드 투어와 관련한 여러 자료와 기록을 분석하였다. 


  -영국의 젊은 남자 귀족 혹은 젠트리가 여행 주체다.

  -전체 여행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동행 교사가 있다.

  -로마를 최종 목적지로 삼는 여행 스케줄이 있다.

  -평균 2~3년에 이르는 장기 여행이다. 

  사람들은 꼭 교육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동기를 갖고 대륙으로 떠났는데, 그들 모두를 그랜드 투어리스트의 명단에서 지우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어떤 동기를 갖고 대륙으로 떠났던 간에 최소한 몇 개월 이상 로마나 파리 같은 주요 도시를 여행하면서 문화를 체험하고 고대 유적을 답사했다면 그랜드 투어리스트에 포함했다. (p.44)



   2장에서는 여행 준비와 안내서에 대한 이야기를 모았다. 지금의 여행 가이드북과 같은 역할을 한 매체가 18세기 말 그랜드 투어 시절에도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 관심을 가지고, 비슷한 목표와 방식으로 여행을 갔으니 이와 같은 책도 있었지 않을까 싶었다. 물건은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돈은 얼마나 준비하는게 좋을지, 어떤 나라에서 치안과 질병 등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떤 나라에서 무엇을 꼭 보고 와야 하는지 등, 현재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는 해외여행 가이드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흥미로웠다. 여행지에 가서 자국인을 피하라는 지침은 공감이 되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예나 지금이나 여행자들이 보고싶어 하는 '이국적인' 모습에 자국인이 들어가면 안된다는 사실은 비슷한 것이다. 게다가 해외여행 장소에서 자국인끼리 '등쳐먹는' 것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니. 또 여행기에서 독자들을 위해 '이국적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한 과장, 그리고 여행기가 추구해야 할 '진본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행자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자국인도 조심해야 했다. 특히 여행 지침서에는 자국인을 더 조심하라는 내용이 많다. 자국인과 어울려 모국어만 쓰면 외국어 학습이 어렵다는 점과 더불어 자국인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자국인이라고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는 충고가 끊이지 않았다. (...) 색다른 환경과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던 일부 여행자들은 굳이 외국에서까지 영국인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번거로운 런던의 상류사회를 피해 망명하듯 대륙행을 택한 사람은 해외에 너무 많은 영국인이 돌아다닌다고 불평했다.(p.74-75)


  여행기가 유행하면서 여행기 작가들은 자기 여행이 특별하다는 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야 했다. 독자들은 색다른 내용을 더 많이 요구하기 마련이었고, 그러다 보니 과장이나 왜곡, 심지어 사실과 환상의 혼합까지 나타났다. 한편에서는 게걸스럽게 여행기를 소비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교육받은 청교도들을 중심으로 시와 연극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이성, 진실,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 이런 상황에서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를 둘러싸고 진본성(authenticity)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p.90-91)



  3장에서는 공간적인 접근으로서,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이 주로 어떤 국가와 장소를 여행해서 무엇을 보고 경험하고자 했었는지를 살펴본다. 우선 출발지는 영국, 도착지는 이탈리아 로마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가 파리의 도시문화를 살펴보고, 그리고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으며 자연을 탐미한다. 다음으로 이탈리아의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 나폴리 등을 돌아보며 유럽 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가면서 파리를 다시 들리거나, 또는 독일, 네덜란드 등을 둘러보는 코스가 가장 전형적이었다고 한다. 이런 필수코스는 당대 로마 문명을 찬미하고 재평가하던 분위기, 낭만주의적 자연관 등 사회적 맥락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도 특정 지역의 해외여행을 갈 때, "꼭 들려야 하는 코스 추천"을 참고하듯이, 그랜드 투어리스트들도 비슷한 경로로 다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를 통해 여행자들이 자연과 문화를 누리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또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불평을 하거나 본국과 여행지를 비교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민족적으로, 문화적으로 차이가 크다는, 즉 '하나의 유럽'은 극히 최근의 현상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광대한 자연에 공포를 느껴왔다. (...) 하지만 18세기 전후로 새로운 세대의 신학자들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자연을 바라보았다. 다양한 지형은 신의 의지에 따라 디자인된 것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기획이라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종교개혁과 과학혁명 이후 이성을 중시하는 사조가 유행하면서 인간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이런 변화에 한몫했다. 18세기 후반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계몽주의자들은 훨씬 더 단순하고 소박한 형태의 삶과 자연을 찬미하기 시작했다. (...) 이제 바닷길 여행은 갈수록 뜸해졌고,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샤모니에 들르는 것이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여행객들은 "아무도 지나치지 않은 바위들, 끝도 없는 빙하, 경계 없이 펼쳐진 광대함"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산맥의 시학'을 문학과 미술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p.113-114)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 이런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영국 음식이야말로 맛없기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18세기 유럽에서 영국 음식은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마도 영국인의 고기 소비량이 유럽 최고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영국인의 불평은 생경한 식재로 탓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이탈리아인들이 솔개, 매, 까치, 갈까마귀를 비롯해 영국인들이 잘 먹지 않는 종류의 새들까지 먹는다면서 여행자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p.119)


  독일 땅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독일은 숙박시설이나 도로 사정이 유럽 최악이라고 할 만했다. 여행 지침서는 하나같이 독일의 여행 여건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 독일 시골을 여행하던 여행자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온갖 범죄에 대한 흉흉한 소문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강도나 소집해제된 용병의 습격은 늘 경계해야 했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진 대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독일을 가로지르는 편을 선호했다. 사실 강도나 살인의 위협은 독일보다 이탈리아가 더 컸다. 하지만 독일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 함께 독일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여행자들은 독일 여행을 훨씬 더 불안하게 여겼다. (p.135-136)



  4,5장에서는 이러한 여행이 영국 상류층 자제들만의 전유물이고, '그들만의 리그'로서 그랜드 투어 문화를 구축하는 전략에 대해서 탐구한다. 그랜드 투어가 흔한 여행이 아닌, 영국 지배계층 엘리트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다양한 여행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4장에서는 엘리트들의 매너와 대화술, 지식, 인맥 등을 구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이를 소화한 뒤 귀국하여 그들만의 클럽에서 이를 공유하고 뽐내는 과정을 소화하며, 상류층 자제들이 엘리트로 성장해 나간다. 5장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상류층들이 향유하는 예술 문화와 수집 물품, 이와 관련하여 발달하는 산업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 화가가 그려준 여행장소 회화가 인기를 끌었고, 영국인 여행자를 위해 화가들이 생계를 유지하거나 심지어 사기를 치기도 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여행이 단순히 여행지의 경험을 통한 자유로운 성장이 아닌, 정해진 커리큘럼 및 분명한 문화적 지향성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현재 우리의 해외여행 문화도 혹시 그러한 것은 아닌지 비교해보게 되었다. 6장에서는 여행의 동반자로서 동행교사, 하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유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그랜드 투어의 동행교사였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여행을 마친 여행자는 자신이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특별히 그 차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했다. 만약 사교 모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면 피렌체 피티 가문의 소장품이나 이탈리아 화가의 청구액 같은 화제를 꺼내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을 추려낼 수 있었다. 그들의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부터 궁정의 왕족 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어디쯤 속해 있는지를 알아낼 수도 있었다.(p.173)


  귀족의 그랜드 투어에 화가가 처음부터 동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 여정을 시각적으로 기록한 이런 화가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살아 있는 카메라'인 셈이었다. 해외에 머물던 영국 화가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큰 수입원은 영국인 여행자를 위해 거장의 그림을 복제하는 일이었다. 후원자를 구하기 어려운 무명 화가들로서는 영국보다 오히려 이탈리아에서 부유한 영국인 후원자를 만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후원자의 요청에 따라 그림을 복제하는 일은 고상한 일도 화가 본연의 일도 아니었다.(p.210-211)


  애덤 스미스도 마찬가지로 교수직을 버리고 동행 교사를 택했던 인물이다. (...) 1763년 스미스는 어린 버클루 공작을 데리고 유럽 여행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여행 중 연봉 300파운드와 여행 이후 종신연금 연 300파운드를 보장받았는데, 이는 그가 당시 대학에서 벌어들이던 수입의 두 배 정도의 액수였다. (...) 스미스는 동행 교사직을 따분해하고 힘들어했던 것 같다. (p.254)



  7,8장에서는 해외여행의 허와 실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는 부분을 짚어준다. 7장에서는 현대에도 해외여행의 목적 중 하나인 '견문 넓히기'를 연상시키는, '코즈모폴리턴으로 거듭나기'라는 주제를 다룬다.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글로벌 관점을 체득할 것만 같은 상상이 있지만, 많은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은 오히려 타국과의 문화적 차이에 주목하면서 스테레오타입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타국을 비하하다가 본국에 돌아와서 타국의 매너를 체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코즈모폴리탄 개념이 등장한 것은,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에 여행을 다녀오고 쓴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책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유럽 여러 국민국가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거대한 유럽으로서 공통점이 바로 로마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국민국가보다 공간적 스케일이 더 넓은 차원의 개념이 등장했지만, 결국 유럽 범위에서의 제한된 개념이었고, 이는 또한 유럽과 비유럽을 설정하고 구분지으려 하는 욕구와 연결되었다. 이렇게 18세기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은 '기획된 코즈모폴리터니즘'을 여행을 통해 내재화했다. 우리의 해외여행도, 일부 개발된 제1세계와 그렇지 못한 세계의 이분법적인 '상상의 지리학'을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결국 해외여행이 견문을 별로 넓히지 못하는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본다. 8장에서는 여행의 득과 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탈리아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들이 흡사 오렌지족처럼 변해온 것을 비판하는 '마카로니'라는 별명이 재미있었다. 물론 그랜드 투어를 통해 유럽 여러 엘리트층의 지식이 교류되고 문화가 발전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확인된다. 


  국가별 스테레오타입은 18세기 초반에 가장 심하게 나타났다. 이때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서 근대적 형태의 국가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만들어지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자기 국민이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한 국민의 특성, 즉 국민적 정체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용이 많지만, 당시 유럽에서 각 나라의 국민적 특성이라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주제여서 18세기 학자들은 국가별 '관습과 매너'를 진지하게 탐구했다. (...) 그런데 미워하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아니면 부러워서 싫은 척했던 것일까. 이 모든 가치는 사실 양가적이다. 여행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나라의 관습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다. 존 무어는 영국인들의 이런 태도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을 남겼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세상 어느곳보다도 영국을 선호하며 현지의 관습과 매너를 조롱해서 외국인들을 놀라게 했던 영국인들이 막상 고국에 돌아오면 즉각적으로 외국 매너를 받아들이고 죽을 때까지 영국적인 모든 것에 불평을 계속한다는 것이었다.(p.287,289)


  18세기는 거대한 통합의 시대였고, 통합적인 유럽에서 모든 국가와 민족은 서로 얽혀 있는 정체성과 역사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인 나라의 역사만을 탐구해서는 전체적인 줄기를 결코 엮어낼 수 없었다. 개별 국가들의 특성은 거대한 기독교 교회와 유럽이라는 틀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면서 서서히 나타날 것이었다. 유럽을 한 덩어리로 보고자 하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사실 국민국가는 너무 최근에 생긴, 아직은 덜 익은 현상이었다. 오히려 유럽은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뭉뚱그려진 덩어리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p.297-298)


  비유럽적인 곳에 대한 묘사를 통해 '유럽성'이 무엇인지를 찾아냈던 것이다. 클라크의 여행은 더 넓은 세상을 보며 보편성을 찾아내기보다는 아직은 차이점에 더 주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시대 유럽의 범세계주의, 즉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유럽 중심주의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었다. 유럽이 세계 보편이 되리라는 기대는 역설적이게도 유럽 대륙이 특별하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었다.(p.308)



  9장에서는 이렇게 엘리트 여행의 성격을 띠던 그랜드 투어 시대가 19세기에 들면서 서민들의 대중 관광에 밀리는 현상에 주목한다. 철도 및 증기선 등 교통의 발달, 토머스 쿡의 대중관광 상품 기획 등의 영향으로, 단체관광객들이 등장하면서 엘리트 여행자들이 불편해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여행'과 '관광'을 구분하여 언급하는 이야기는 익숙한데, 이러한 이야기의 기원이 대중 '관광'을 하는 서민들과 대조하여 엘리트층의 '여행'의 특수성을 구성한 것이었다고 해서 놀라웠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개념을 언급하면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또한 여행과 관광의 이분법적인 개념이 고정된 것이 아닌, 역사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점에 대해서 상기시켜 준다.



  18세기 영국 상류층의 해외여행 모습에서 현재 우리의 해외여행 모습과 많은 부분이 겹쳐서 놀라웠다. 우리가 여행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끼며 행동하는 것들이, 사실 과거의 특정 시기에 형성된 사회적 현상이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상류층 만들기'라는 목적을 가지고 떠난 그랜드 투어리스트들도 여가와 유흥을 즐기기도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여러 국가들 간의 인적, 물적, 지적 교류가 일어났을 것이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은 넓고 여행은 많다"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행은 어떠해야만 한다"는 수렴적인 교조적 목표를 설정하고 여러 사람들과 비교해왔다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 여행의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의미화하는 게 여행자에게 도움이 될지를 열린 마음으로 찾아가는 태도가 중요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여행지리> 과목을 맡는 교사나 학생에게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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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물결은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 인문 2020-09-1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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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구의 힘

폴 몰런드 저/서정아 역
미래의창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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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성장, 인구 이동, 그리고 이로 인한 공간 변화와 관련한 내용은 학교 지리 교과에서 주요 학습 요소 중 하나이다. '인구변천 모형', '인구의 자연적·사회적 증감', '이주의 여러 유형' 등의 핵심 개념을 배우면서, 한 나라의 인구학적 상황이 어떠한지, 어떤 '인구 문제'가 나타나고 대책은 어떠한지 등을 다룬다. 인구지리학의 일반적인 개념을 특정 국가의 몇몇 사례에 적용해 보면서, 이것만 가지고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지역의 인구학적 특성을 판별하고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내용을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몇 가지 궁금증도 있었는데, 첫째, 이러한 일반적인 모형이 어느 나라에 어느 수준으로까지 적용하고 예측하는 게 가능할지, 이 모형은 경험적으로 검증이 된 것인지 등의 질문이었다. 일반 이론의 보편성 및 특수한 지역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둘째, 모형을 적용하기 좋은 지역일지라도, 그곳 사람들의 실제적인 인식, 삶의 이야기 등이 결여되었다는 아쉬움이었다. 인구가 성장하거나 성장세가 둔화되고, 인구가 대규모로 유입되거나 유출되면서, 여러 인구학적 변화가 나타나는 지역의 구체적인 사회상은 어떠할까? 사람들은 역사적인 인구 변화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갔고, 또 살아가게 될까? 이에 대해서 깊이있는 사례를 더 알고 싶었다.


  이 책은 인구 그 자체를 다루는 책이다. 원제는 'Human Tide'이고, '인구 물결', 즉 인구가 성장하거나 급격히 이동하는 등의 변화를 일컫는다. 번역서의 제목인 '인구의 힘'이 조금 더 임팩트가 있는 것 같고, 아마도 '지리의 힘' 책 제목과 같은 효과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는 영국의 인구학자이고, 책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역사학, 지리학, 사회학 등을 전공하였을 것으로 보인다(조금 검색해봤는데 학위를 받은 학문이 무엇인지는 잘 안보인다..). 저자는 특정 시기와 국가의 인구통계적 변화를 중심으로, 그것이 어떠한 양상으로 진행되었고, 특정 시공간의 범위에서 어떠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의의를 지니는지를 살펴본다. 얼핏 책 소개만 보면 저자가 '인구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모든 현상의 원인에 인구가 있는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책 서두에서, 인구가 중요하지만 정말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인구가 중요한 원인이었음에도 이를 간과하는 경우에 대해서, 사실은 인구가 중요했다면서 재조명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이렇게 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인구가 어떻게 중요한지, 인구학의 접근법 및 기본적인 개념 등을 짚으면서 책을 시작한다.


  이 책은 인구가 운명의 일부이지만 전부는 아니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단순하고 일원론적이며 결정론적 역사관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인구가 어떤 면으로는 주요 원인이자 원동력이며 역사에 파장과 영향을 일으키는 독자적, 외부적인 현상이지만 그에 선행하는 원인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인구 자체가 원인이며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우발적이든 다른 무수하고도 복합적인 요소를 원동력으로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인구의 결과는 다양하고 지속적이며 심층적이지만 그 원인 역시 마찬가지다.(p.18)


  인구학은 데이터를 보여주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여성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급진적으로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고 자기 몸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는지가 지난 200년에 걸친 인구 이야기에서 가장 고무적인 요소임을 알리는 것도 인구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p.51)


  인구학은 삶의 일부이며 어떤 면에서는 삶 그 자체다. 출생, 이주, 결혼, 죽음은 인생의 큼직큼직한 이정표다. 인구학이 그러한 일들을 총체적으로 살펴본다고 해서 인구학의 관찰 대상인 개인의 삶과 경험이 지니는 가치와 고결함이 훼손되지는 않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인구학자와 역사학자는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합계를 내고 일반화하는 특권을 지는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다루는 숫자가 모든 개개인이 품은 희망, 사랑, 두려움의 총합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의무도 따른다.(p.59)


* 위 그래프에서 말하는 개념은 이 책에는 프랭크 노티스타인의 '인구전환(demographic transition)'이라는 용어로 언급되고(p.192), 개인적으로는 경제지리학·인구지리학 책에서 '인구변천 모형'이란 명칭으로 접했었다. 책 전반에 걸쳐 자주 등장하는 주요 개념이지만, 그래프 및 각 단계별 특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1단계에서 2단계로 접어들면서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인구가 증가하게 되고, 3단계가 되면 출생률이 감소하면서 인구 증가율이 낮아지고, 4단계가 되면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낮아서 인구가 정체된다. 5단계는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사망률이 다소 높아진 것으로, 비교적 최근에 추가되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Demographic_transition#/media/File:Demographic-TransitionOWID.png



  2장 초반부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구 물결'을 맞이한, 즉 '인구 전환' 단계에서 2단계로 처음으로 접어든 유럽의 여러 국가의 과거 인구 양상을 다룬다. 인구 전환을 최초로 시작한 영국 이야기를 많은 부분에서 다룬다. 그동안 영국이 '대영제국'을 건설하고 다른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영국만큼 하지 못한, '영국 예외주의'의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었는데, 이 책에서 그 이유는 인구 성장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영국에서 사망률 감소로 인해 인구가 2단계로 전환되고, 폭발한 인구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식민지로 이주하여 그곳의 경제 및 사회적 발전을 일구었다. 결국 인구  때문에 영국이 세계적인 제국을 경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어떤 국가들도 영국만큼 제국을 경영한 나라가 없었다는 점이 설득력 있었다. 영국은 기존의 원주민 사회를 밀어내고 직접 통치하는 체제를 형성할 정도의 많은 '인구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19세기 후반 독일의 인구 성장을 보면서 그것이 국력 성장으로 이어지는 점을 경계했고, 또 독일도 나중에 20세기 러시아의 인구 및 국력 성장을 경계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러한 인구 성장 패턴은 당대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 양상에도 영향를 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19세기의 엄청난 인구 성장이 없었다면 영국이 19세기 전반에 세계의 공장으로 발달하거나 후반에 세계 최고의 금융 강국으로 성장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구 성장이 시장 확장과 국민 소득 증대에 끼친 영향을 배제하고 경제 규모 확대에 미친 영향만 보더라도 그 당시 영국의 경제 성장 중 절반 정도는 순전히 인구 성장 덕분이었다. 또한 인구 성장이 경제 성장에 기여했듯이 경제 성장 또한 인구 성장으로 이어졌다. 국부가 증가함에 따라 영국은 공공보건 개선에 투자할 여력이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캐나다 프레리와 호주 오지에 정착한 이주민들과의 교역 덕분에 국민은 제대로된 식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영국은 충분한 인구 규모 덕분에 세계의 공장에 되었고, 그렇게 축적한 부에 힘입어 세계의 자본가 역할을 했다. (p.86)


  영국보다 적은 수이긴 했지만 비교적 많은 독일인들이 19세기 내내 더 나은 삶을 찾아 해외로 이주했다. 이들은 주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인구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독일이 산업화에 돌입하고 통일이 되어 독일 내에 더 많은 기회가 생겨나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친친척들이 자리잡고 있고 언어와 정치제도도 친근한 대영제국의 영토를 비롯하여 광범위한 영어 사용권에서의 미래에 마음이 이끌렸지만 독일인들은 조국 독일이 빠르게 발전하는 통일 국가로 발돋움하자 낯선 영어 사용권으로의 이민에 전처럼 혹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영국과 독일의 이민 패턴은 두 나라가 세계대전에서 구사한 전략에 반영되었다. 독일은 국내 인구 팽창 덕분에 세계대전이 일어날 때마다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에 대규모 병력을 보낼 수 있었고, 영국은 높은 해외 이민율 때문에 (...) 전 세계로 뻗어 있는 이민자 네트워크에 식량, 무기, 병력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p.121-122)


  영국은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성장하는 독일을 두려워했고 독일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성장하는 러시아를 두려워했다. 이러한 두려움이 영국과 독일을 1914년 7월의 성급한 행동으로 몰고 갔다고도 볼 수 있다. 영국이 독일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 않고 독일이 러시아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해 여름에 냉철한 의견을 내세운 쪽이 주도권을 잡았을 것이다. 인구를 둘러싼 불안감이 분쟁의 원인을 제공했으며, 인구와 관련된 사실이 분쟁의 결과를 판가름했다.(p.143)



  그리고 2장에서 이어서 미국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부분도 인상깊었다. 그동안 '앵글로색슨'이라는 표현의 기원에 대해서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미국이 영국과 다르다는 의식에 따라 인구학적으로 창안된 용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렇게 영국인 기원이면서 영국과 다른 이들로서 인구학적 정체성을 가진 미국은, 인종적 편견을 바탕으로 특정 방향으로 인구 구성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적극 펼쳤다는 점도 인상깊었다. '우수한' 유전자에 대해 여러 유명인사들이 출산 장려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이민 제한을 적극 펼치는 시대가 20세기 초까지도 공공연히 있었다는 점이, 지금 기준으로는 참으로 '과거는 낯선 나라'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리고 미국의 2차대전 이후 베이비 붐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을 인구 전환과 비교하면서, 그 원인을 시대적 맥락으로 추론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서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베이비 붐 세대의 영향력이 있다는 점도 새삼 놀라웠다. 


  미국에서는 '앵글로색슨'이라는 용어가 다소 특이하게 적용된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앵글로색슨이라는 명칭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대서양 횡단을 결심하기 1,000년도 더 전에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 잉글랜드로 건너온 종족을 뜻한다. 앵글로색슨인이 잉글랜드에 도착한 때는 미국의 독립 선언서가 작성되기 1,300년쯤 전이기도 하다. 미국은은 원주민, 대륙을 건너온 유럽인, 아프리카인, 최근 늘어나고 있는 중남미인과 아시아인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인종의 거대한 용광로라고 불린다. 따라서 19세기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앵글로색슨인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은 현재의 관점으로 볼 때 다소 놀랍다. (...) 독립전쟁과 공화국 수립을 거친 후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부르려고 하지 않았다. 일부 미국인들은 스스로가 700년 전 민족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노르만인의 잔학한 통치를 받은 '자유민'의 후게자라고 생각했다. 또한 미국 백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국인의 후손은 아니었다. (p.96-97)


  인구의 '품질'에 대한 우려가 특히나 팽배했던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행한 이민 제한 정책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의 인종 구성을 유지하려는 조치였으며, 다른 곳보다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주류를 이루었던 남유럽과 동유럽의 이민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 결과 인구 성장률이 하락했지만 1920년대까지는 1.5% 가까이를 유지했다.(...) 메인 주 하원의원은 "하나님은 (미국을) 영어를 구사하는 훌륭한 사람들의 고국으로 계획하셨다. 위대한 이상을 품은 백인, 기독교 신앙, 단일 인종, 단일 국가, 단일 운명체가 그분의 계획이시다"라고 주장했다.(p.164-165)


  그런데 1945년부터 모든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일어났다. 미국의 군인들은 전쟁을 끝내고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를 고대하면서 고국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전쟁 직후의 출산 만회 정도로 치부되었다. 전쟁 때문에 결혼과 가족 구성의 계획이 지연되었다가 마침내 실행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출산 증가 추세는 단기간으로 끝나지 않았다. 미국의 합계 출산율은 전쟁 직전에 2명 남짓으로 하락했다가 1950년대 후반에 3.5명 정도로 상승했다. 프랭크 노티스타인의 인구 전환 가설로는 낮은 사망률과 낮은 출산율로 전환이 이루어진 이후에 출산율이 2배 상승한 까닭을 설명할 수 없었다. 노티스타인의 인구 전환 모형은 기각될 것까지는 없겠지만 분명 수정될 필요가 있다.(p.196-197)



  그리고 2-3장을 걸쳐 서구의 이야기만이 아닌, 러시아 및 주변국, 그리고 여러 개발도상국의 인구 변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흥미로웠다. 러시아의 경우 경제 발전이 늦었음에도 인구가 성장하였기에 여러 유럽 국가들의 위협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잘 이해가 안갔었는데, 인구 그 자체가 러시아의 힘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소련이라는 체제가 붕괴한 이유 중 큰 부분이, 소련 내에서 러시아인들이 주변지역을 인구학적으로 지배하지 못했다는 저자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앞서 언급되었던 영국의 사례를 비추어 보았을때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유럽인들이 제국주의를 하긴 했지만,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의 인구 물결을 인구학적으로 압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식민지배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한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지배를 위해 선진국 중에서 예외적으로 출산율이 높은 부분도, 이러한 저자의 인구 물결 주장에 설득력을 높여 주었다. 또한 중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산아 제한을 한 것에 대해 저자는 비판한다. 그리고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통계 수치만 보려고 하는게 아니라, 출산율에 대한 하향적인 개입을 반대하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이 책을 얼핏 보면 인구 변화에 대해 인종주의적인 분류와 편견을 조장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여러 나라의 출산율이 낮아지는 과정에서 인종적, 민족적 특성이라기보다 인류의 보편성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인구는 경제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소련의 몰락에 한 역할을 담다했다. 경제 측면에서 노동력 성장률의 하락은 소련의 경제 성장률 하락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소련의 비효율적인 경제 체제가 핵심 투입 요소인 노동력의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률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력 성장률이 떨어지자 경제 체제도 붕괴했다. (...) 러시아 입장에서 소련의 붕괴는 오랫동안 심장부로 간주되던 지역에서의 퇴각을 의미했다. 그러나 러시아를 제외한 연방 구성체의 입장에서 소련의 붕괴는 러시아와의 근접성과 근외 지역이라는 러시아인의 인식 때문에 그동안 여의치 않았던 독립의 기회와 도전을 의미했다. (...) 소련이 단순히 인구적인 원인만으로 멸망한 것이 아니듯이 서방 세계의 냉전 승리 역시 단순히 소련의 몰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소련이 중국만큼 인종적으로 동질적이었다면 아직까지 몰락하지 않았으리라고 주장한다. (p.254-256)


  인구 물결은 전문가나 특별한 정책을 통해 조절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다. 인구는 스스로 방향을 찾아내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어해나간다. 예를 들어, 교육을 받고 피임기구를 입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산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뿐 아니라 사회의 요구에도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특히 여성은 한층 더 그러한 경향이 있다.(...) 한 자녀 정책은 중국의 농업과 산업을 파괴한 대약진 운동의 인구학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해당 조치는 공산당이 충분히 노력을 기울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레닌주의 이론을 지침으로 삼았다." 이와 같은 하향식 정책에 대해 알아볼 때는 통계가 전달하는 큰 그림 안에 숨어 있는 개개인의 비극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중국에서 전문가들은 아이 둘은 낳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자리를 잃었다. 낙태 시술 건수는 연간 2,000만 건이 훨씬 넘었는데 그 중에는 자발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p.309)


  그 당시만 해도 유럽인들이 점점 더 많이 밀려들어와 미국과 대영제국 일부 지역에서 그러했듯이 그 지역의 인종 구성에 필연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킬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북아프리카에서도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구학적으로 유럽인의 유입은 너무 미미했고 너무 뒤늦게 이루어졌다. 유럽인들이 유입되던 당시는 이미 토착민들 사이에서 첫 번째 인구 물결이 일어나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다. (...) 제국주의가 이 지역에 입힌 피해는 현재까지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에 입힌 피해만큼이나 유달리 오랫동안 작용하여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구학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유럽 식민주의가 북아프리카 현지 주민의 인구 폭발을 자극하여 인구 성장에 기여했다. 그에 따라 유럽이 지배를 지속할 수 없는 인구 상황이 조성되었고, 결과적으로 유럽 식민주의는 이 지역에서 몰락하고 말았다.(p.323)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유별나게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까닭은 상당 부분 분쟁과 "경쟁적인 번식'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팔레스타인 인구는 이스라엘 내에서뿐만 아니라 요르단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서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960년대 초에 이스라엘의 아랍계 여성들의 평균 자녀 수는 9명 이상이었다. (...)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출산율은 최근 몇 년 동안에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내의 아랍계 여성이나 서안 지구의 아랍계 여성은 평균적으로 3명 정도의 자녀를 낳는다. (...) 이스라엘의 유대인 출산율은 1990년대 중반에 2.5명에 달했으나 그때를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후 다시 상승하여 현재 이스라엘 유대인 여성의 출산율은 3명 정도이며 이스라엘 태생 여성의 출산율은 3.5명에 가깝다. 한마디로 이곳의 여성들은 선진국 그 어느 나라보다도 최소한 한 명 더 많은 자녀를 낳는다. 출산율이 선진국 평균보다 50% 높은 셈이다.(p.352-354)



  저자는 책 말미에 인구 전환을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털털거리다가 무시무시하게 속도를 올리더니 최근 큰 폭으로 감속한 자동차(p.394)"에 비유한다. 이러한 인구 전환이 맬서스의 예상과는 달리 인종, 민족을 가리지 않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부분에 주목한다. 그리고 미래의 인구 변화에 대한 예상을 하긴 하지만, 특정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려 하거나 예언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에 저자는 "인구가 중요하다"는 주장만은 양보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인구의 지리적, 역사적 패턴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통해 놓치고 있었던 여러 인구에 대한 이야기를 보충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제국을 인구학적으로 제대로 지배하지 못하면 그 지배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흥미롭고 설득력이 있었다. 한편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얘기도 언급된다. 서구의 인구 전환 모형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너무나도 빠른 시간 내에 고령화까지 달성한(?) 우리나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단기간의 대단한 성과(?)에 비해 책에서 너무 소략하게 언급되어서 아쉬웠다. 우리나라의 최근 데이터를 더 보면, 일본의 고령화 사례보다 더 할 얘기가 많을텐데... 그러한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리학, 사회학, 역사학 등 인구를 다루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또한 세계 각국의 인구에 대한 여러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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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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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언제나 중요했다.”


산업혁명의 시작과 대영제국의 흥망성쇄, 독일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의 도발, 세계 최강의 슈퍼파워로 부상한 미국, 중동에 대변혁을 몰고 온 아랍의 봄, 일본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번지고 있는 저성장 기류,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 모든 역사적 현상의 기저에는 바로 ‘인구’가 있다. 인구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다 보면 세계사의 변곡점마다 인구가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구의 힘』은 지난 200년 동안의 세계사적 큰 변화에 주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저평가되어 왔던 ‘인구’ 문제를 다룬 최초의 대중서로서, 보이지 않는 상호 촉매제의 역할을 하는 인구의 힘을 역사적 사실과 수많은 통계자료에 기반해 설명한다. 이야기책을 읽는 듯, 쉽고 재미있게 서술한 점이 장점이다. 본서는 한국을 포함 최소 5개국(독일, 네덜란드, 일본, 중국, 미국)에 수출되었다.


■ 한 사회의 중위연령이 높을수록 그 사회는 안정적이고 사건 사고가 줄어든다. 중위연령이 낮은 사회는 범죄율이 높고 혁명세력이 많다. 스위스의 분위기가 평화로운 것은 그 나라의 평균연령이 40대라는 점이 분명 작용한다. 반면 사회 불안이 끊이지 않는 예멘은 평균연령이 20세 미만이다. 최근 팔레스타인 봉기가 줄어드는 것도 그 지역의 중위연령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테러리스트의 평균 연령이 20대인 점을 생각해보라.


■ 영국이 한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인구 덕분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상하수도가 개선되고 의료보건 기술이 발전하고 물산이 풍부해지면서 영아사망률이 떨어지고 기대수명이 늘어났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영국은 수백만의 자국 인구를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내보냈고 이를 통해 영어를 쓰는 인구의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된 까닭은 미국 국민이 유럽 각국이나 일본인보다 더 잘 살아서가 아니라 그 나라들보다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 트럼프의 당선은 ‘다시 위대한 미국’을 건설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백인의 나라로 유지’하기 위한 백인들의 마지막 몸부림으로 해석된다.


■ 여성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급진적으로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고 자기 몸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는지가 지난 200년에 걸친 인구 이야기에서 가장 고무적인 요소이다. 즉, 여성의 고학력화와 사회진출, 도시화의 확산은 어느 나라에서든 저출산으로 이어졌다.


■ 유엔은 세계 인구가 금세기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10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인구 성장 속도가 오늘날의 10분의 1 수준과 1960년대 후반 및 1970년대 후반의 2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인구가 대체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인구는 처음에는 느린 속도로 털털거리다가 무시무시하게 속도를 올리더니 최근 들어 큰 폭으로 감속한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자동차는 금세기를 지나면서 서서히 멈출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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