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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에 대한 추억과 기억 | 기본 카테고리 2020-12-30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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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맛 좋은 삶

왕증기 저/윤지영 역
슈몽 | 2020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맛에 대한 개인의 내밀한 추억과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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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 ‘싼쯔얼 (三??)’은 갓 태어난 새끼쥐를 산 채로 먹는 요리다. ‘쯔얼(??)’은 새끼쥐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기 때문에 ‘싼쯔얼’은 새끼쥐가 세번 ‘찍’하며 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막 세상에 태어난 새끼쥐가 접시에 담겨 나오면 젓가락으로 살아있는 쥐를 잡아 올리는 순간 첫번째 ‘쯔얼 (??)’, 쥐를 들어 양념장에 담그는 순간 두번째 ‘쯔얼 (??)’, 마지막으로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세번째 ‘쯔얼 (??)’, 이렇게 세번 운다고 해서 ‘싼쯔얼’이다.

 

 

 

 

대학시절 중국어를 처음 접했을 때, ‘싼쯔얼 (三??)’로 대표되는 중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솔직히 놀라움을 넘어 조금 충격적이었다. 자장면과 탕수육, 굴소스, 두반장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음식은 너무나 친숙하고 평소에도 즐겨 먹는 것이었지만, 그 종류와 역사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었던 것이다. 비행기와 책상을 제외하고 네발 달린 건 다 음식 재료가 된다고 할 만큼 오래된 역사와 넓은 대륙이 지닌 지리적 특색 속에서 지역 마다 특화되어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온 수많은 종류의 음식들의 향연은 솔직히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 후 중국어를 배우면서 언어와는 별도로 중국의 문화와 음식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책 "맛있는 음식이 삶의 재미를 더하고, 삶의 재미가 음식의 맛을 낸다." 는 중국음식에 관한 에세이 <맛 좋은 삶>을 접하게 되었다. <맛 좋은 삶>은 왕성한 호기심과 식탐을 가진 중국 문학계의 거장 왕증기 선생이 쓴 음식이야기다. 왕증기 선생이 중국의 동서남북을 종횡하고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수집한 다양한 음식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의 미식가들이 주목하는 중국미식의 경전으로 이른바 ‘왕미 (汪迷왕증기의 팬)’ 을 대거 양산한 <맛 좋은 삶>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단어절과 오리알 절임’을 비롯하여 각 지역의 전통 문화와 민간 예술이 빛나는 아름다운 산문 38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떤 음식에 대해서 자신이 먹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먹는 것까지 뭐라 하면 안된다. 하지만 '어떻게 저런 음식을 먹을 수 있냐.'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광둥 사람들이 먹는 뱀이나, 물방개, 태족 사람들이 먹는 똥곱창 같은 음식들 말이다. 이런 음식들은 광둥 사람이나 태족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음식이 아니다. 그들이 맛있어서 먹겠다는데 누가 먹지 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p. 24)

 

 

 

 

인간은 모험하는 존재이다.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곳에 도달하고, 새로운 경험을 누리고 싶다는 인간의 모험심은 우리에게 내재된 원초적인 욕구이고, 문명 발전의 근간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를 받고, <톰 소여의 모험>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소설들이 모험을 위해 태어나 모험을 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는 인간의 원형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단절되어 삶에서 모험이 거세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각자가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모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소년이었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모험 그 자체인 소년, 모험을 하지 않고선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맛 좋은 삶>을 읽으며 현대인이 추구하는 모험 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음식에 대한 탐구과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음식을 만드는 것과 소비하는 것은 탄생과 소멸인 동시에 끝없이 반복되는 생과 사의 윤회와도 같다. 또한, 그러한 행위의 반복은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역사와 문화는 논외로 하더라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삶을 지속해나가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인 동시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탐구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다. 혀와 위가 우리의 뇌에 가져다 주는 행복, 단순하기까지 한 그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저마다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소비되고 또 발전하고 있다.

 

 

 

'얘야 큰일 났구나. 며늘아기가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지 뭐냐.' 라고 말하자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요.' 하고는 파 한 뿌리를 가지고 나가서 우물가를 한바퀴 돌았다. 그러자 며느리가 우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p. 22)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권 마다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맛 좋은 삶>에서 인용하고 있는 우물 안에 들어간 며느리 조차 뛰쳐 나오게 만드는 ‘산동 대파’에 관한 에피소드는 ‘가을 전어’굽는 냄새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한국의 사례와 유사한 것이 흥미로웠다. 무언가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은 인간이 자신의 생 앞에서 가장 진실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같은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그 무언가에 관한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고, 그러한 공유된 기억들이 구체적인 음식에 대한 취향을 다를지라도 서로의 문화와 음식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맛 좋은 삶>에는‘삶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라는 저자 왕증기 선생의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입맛을 조금 더 폭넓게, 조금 더 잡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폭넓고 잡스러운 입맛이 있어야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라고 하는 중국의 다양한 음식과 문화를 맛보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자의 중국음식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여실히 드러난다. "치즈 냄새가 취두부 냄새를 따라가려면, 단언컨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중국 사람들의 잡스런 입맛은 세계에서 일등이다." (p. 17)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너 두즙에 도전해볼 수 있겠냐?"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 유무를 묻는 이 같은 질문에 저자 왕증기는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털 달린 것은 먼지털이 빼고, 다리 달린 것은 의자 뺴고, 고기라고 하면 큰 고기중에서 사람 고기 빼고, 작은 고기 중에서 파리 고기 뺴고는 다 드시는 몸이시다.'라고 대답한다. 음식에 대한 선호와 취향의 문제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문제고 강요의 대상도 아니다. 저자도 특정 음식의 대중화를 주장하며 억지로 권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 자신이 경험했던 맛있는 음식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체험할 수 있길 권할 뿐이다.

 

 

 

 

애초에 ‘맛’이라는 건 실존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내밀하고도 고유한 추억, 그리고 집단으로 공유되는 기억이 ‘맛’ 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에 ‘맛’이란 의미를 부여할 때는 공통의 관습과 개인적인 취향이 주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공유된 기억이 매개가 되어 타인의 내밀한 추억을 들여다보고,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무하며 우정을 쌓기도 한다. 결국 ‘맛 좋은 삶’이 지향하는 건 소박한 중국 가정식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중국인들, 나아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강한 삶의 방식이란 어떤 것일까?’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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