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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시절과 이별하고 | 마침표 2021-01-1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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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가 잃어버린 것

서유미 저
현대문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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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산다는 게 그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라는 걸, 아무리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여도 모든 것을 같이 나눌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하루하루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다 가끔 같이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1쪽)

 

깊은 밤에 읽었더라면 나는 어느 순간 울고 말았을 것이다. 소설이 그렇게 슬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냥 어떤 서러움이 몰려왔다고 할까. 잘 모르겠다. 지난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때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제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유미의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처음엔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조금씩 일렁이는 감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나는 좀 울컥했다.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나만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어서, 그 마음의 끝에 내가 있는 것만 같아서.

 

소설의 주인공 경주는 매일 카페 제이니에서 구직활동을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때까지 취업 사이트를 방문하고 이력서를 쓴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경주는 카페로 나온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육아와 집안 일과는 구분된 경주 자신만의 시간 말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다니던 직장은 휴직에서 퇴사로 이어졌다. 지우를 낳았을 때는 바로 복직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불안했다. 동료나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선택은 경주의 몫이었다. 지우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경주는 다시 일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경단녀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경주는 카페 제이니에게 자신과 마주한다. 그러니까 때로는 과거 어느 시절을 돌아보고 현재의 일상을 생각한다. 아이와 남편이 있는 안온한 삶이었지만 경주는 우울했고 외로웠다. 지우가 어렸을 때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지났고 남편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남편 주원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했고 영화도 보았다. 하지만 한정된 주제였고 확장되지 않았다.

 

친구와의 관계도 그러했다. 모든 걸 공유했던 친구들과의 간격은 어쩔 수 없었다. 기혼자는 경주뿐이었다. 경주의 결혼 후 자연스레 뜸해졌다.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삶의 가치가 달라진 것일까. 경주는 종종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혼자라고 느꼈고 단톡방을 나온 후 친구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우연하게 만난 대학 동기 J가 더욱 친근했던 건 지우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주가 취업에 대해 속상해하자 J는 경주의 고민을 가볍게 여겼다. 그러니까 배부는 투정을 하는 양으로 치부하며 가까운 곳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나 편의점, 마트를 찾아보라고 말한다. 내밀한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던 J와도 멀어졌다.

 

 

 

 

경주는 자신의 이런 마음들을 카페 제이니에서 정리했다. 처음에는 구직 활동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곳은 안식처였다. 카페 제이니가 특별했던 건 카페 사장이 선택한 음악과 그녀에게 전해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카페의 세심한 소품에서 경주는 과거 자신의 취향과 만난다. 점점 더 그녀가 궁금했고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고 자신의 모든 걸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카페 제이니가 영업을 중단하면서 아쉬움은 커졌다. 경주가 결혼으로 인해 단절된 건 경력과 사회적 활동만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자신감과 경주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무너졌다. 카페 제이니는 경주에게 새로운 통로처럼 보였다. 그건 세상과의 소통이 아니라 경주 자신과의 그것이었다.

 

경주는 자신이 두 달 동안 시간을 보냈던 카페를 새삼스레 다시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미지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고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지만 여기서 보낸 한 시절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 건 분명했다. (160쪽)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경주의 생각과 감정의 기록은 중요한 일기처럼 다가온다. 그 일기는 경주가 쓴 것이지만 동시대의 수많은 경주가 쓴 것이다. 그중 하나는 내가 아는 경주라는 걸 안다. 소설 속 경주의 삶을 그려본다. 그녀의 하루가, 크게 변화 없는 그녀의 표정이, 그녀의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들이, 그녀가 다시 움직이는 모습이 선명해진다. 삶이라는 긴 여정의 어느 시절과 이별하고 잠시 멈췄고 다시 이동한다. 목표를 정해둔 건 아니다. 다만 후회와 미련은 접어두고 나아갈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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