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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 2020.review 2020-12-2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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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퍼트리샤 포즈너 저/김지연 역
북트리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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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감자에게는 단테의 지옥문 비문에 새겨진 '여기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문구가 더 와닿았다. p.39

'홀로코스트'라는 말을 들어 본적 있는가? 들어보았다면 '홀로코스트 허구설'에 대하여 들어본 적은 있는가? '홀로코스트'가 과장되었다거나 조작되었다는 말이 존재한다. 필자는 홀로코스트라는 범죄가 결코 잊혀선 안된다는 작가 개인적 신념으로 탄생한 책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를 읽으며 차라리 허구가 맞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서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는 서문을 시작으로 총 스물네 개의 챕터와 에필로그로 이루어져있으며 주인공 '카페시우스'를 중심으로 세 부류의 인간이 등장한다. 

첫째. 의도적으로 잊히려는 자, 아우슈비츠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고 도덕적으로 파산한 재벌 기업 '이게파르벤' 그리고' 카페시우스'를 비롯한 요제프 멩겔레, 아돌프 아이히만 과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 이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판에 박힌 변론으로 과거의 행동을 변명하고 정당화하며 끝까지 무죄를 주장한다. 둘째. 결코 잊으려 하지 않는 자, 나치 사냥꾼 '시몬 비젠탈' 를 비롯한 바우어 검사, 뒥스 판사 그리고 랑바인 등을 말한다. 그런데 책의 뒷표지에 언급된 '시몬 비젠탈'보다 언급되지 않은 '바우어 검사'와 '랑바인'의 활동이 본문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셋째. 모든 일을 거의 잊은 자, '모니카 라프'처럼 무관심하거나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자는 당시의 일반적인 독일인들을 언급한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카페시우스'는 학창시절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는 고향 루마니아에서부터 제약회사 '이게파르벤' 입사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유대인 상사 2명과 더불어 자신의 주 고객인 유대인들과도 자연스럽게 잘 어울렸다하지만 1939년 뉘른베르크법이 시행되면서 유대인 상사는 회사를 떠나게되었고, 대인을 상대로 한 전쟁이 점점 거세져가던 1943년 어느날 연합국의 폭격기가 루마니아 상공까지 세력을 강화하자 카페시우스는 독일군의 소집 명령을 받고 독일 군대로 입대하게 된다. 6개월간 바펜-SS(나치 무장 친위대) 훈련이 끝난 카페시우스는 대위로 임관되었고, 그의 왼쪽 겨드랑이에는 검은색 잉크로 혈액형이 새겨졌다. 이 혈액형 문신은 나치 친위대임을 증명하는 표식이었다.

당시 나치 의료 및 수용 보건 부문 수장이었던 외과 의사 '엔노 롤링' 대령의 통보로 아우슈비츠로 전근 가게 된 카페시우스는 도착 첫날만 해도 전쟁 전 자신이 다녔던 회사가 그토록 많은 생체 실험을 후원하고 있었다는 점과 더불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살충제 성분의 치클론B를 사용하여 파르벤이 이익을 챙겼다는 점을 비롯하여 치클론B가 정확히 어디에 쓰이는지 조차 몰랐다. 그러나 그는 훗날 주요 공급책이 되었고 언제 유대인과 잘 지냈냐는 듯 숨겨두었던 악마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의 악마적 모습 중 대표적 하나는 조제실 업무 이외에 맡게 된 '승강장 선별 보조 작업' 에서 나타난다. 비르츠 박사에 의해 맡게 된 '승강장 선별 작업'이란 승강장에 서서 기차에서 내리는 유대인들을 죽일지 살릴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노인, 어린이, 임신부를 포함한 신입 수감자 대부분은 자동으로 노동 부적합 판정을 받고 왼쪽으로 분류됐다. 왼쪽은 곧 가스실에서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수용소 내부에서도 노동자들이 영양실조, 구타, 질병, 처형, 등 빠르게 죽어 갔기 때문에 이들을 대체 할 새로운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존재했다. 승강장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팔뚝에는 고유 식별번호가 새겨졌고, 일부 여성은 성 노예가 되어야했다. p.62 … 특히 아우슈비츠 위안부를 선별하는 역할을 맡았던 극렬한 반유대주의자 '클라인'에게 선별된 소녀들은 밤마다 최소 여섯 번 이상 강제 성 노역에 동원됐다. 이때만큼은 유대인과 아리아인 사이에 성관계를 금지하는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클라인은 뻔뻔하게도 아우슈비츠 위안부는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p.111

이때,  전문 의료 인력은 죽음을 피하는 대신 SS의사, 약사, 치과 의사의 조수로 투입되어 가장 끔찍한 일들을 수행해야했다. 가령, 치과 의사였던 수감자는 시체의 입속에서 금니를 뽑는 일을 해야했다. 치아발치 작업은 가스실에서 나온 시체를 화장장에서 태우기 전에 쌓아두는 중간 기착점인 벙커에서 이루어졌으며, 죽은 수감자들의 입속에서 발치한 금니는 신입 수감자들의 소치품에서 탈취한 금화, 손목시계, 담뱃값, 보석류와 함께 골드바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나치가 아우슈비츠에서 거둬들인 금은 하루 평균 30킬로그램에서 35킬로그램에 이르렀다. SS입장에서는 엄청난 수익이었다. 반면 의료 인력 이외에 살아남은 수감자 가운데 가장 건장한 남자들은 '존더코만도'라 불리던 특수 직무반으로 배정되어 가스실에서 시체를 꺼내는 등의 업무를 맡았다.

한편, 기업 파르벤과 바이엘 또한 임상시험 장소가 된 아우슈비츠에서 악마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파르벤과 바이엘 그리고 SS의사들은 인간 기니피그가 된 수감자들에게 일부러 발진티푸스(급성열성질환)에 감염되도록 한 뒤 검증되지 않은 신약으로 실험적 치료를 하거나 여성 수감자 200여명의 폐에 연쇄상구균을 주입하여 피실험자 전원이 폐부종으로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두었다. 이외에도 멩겔러는 병자나 기저질환자를 대상으로 항문주사, 피하주사, 정맥주사, 알약등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약을 투여했다. 이때 카페시우스는 아우슈비츠 의사들에게 생체 실험에 사용될 약물을 내줌으로써 약사나 지지자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했다.

SS소속 의사 발데마르 호벤은 전쟁이 끝난 후 이렇게 증언했다. "강제수용소에서 자행된 생체 실험은 오직 이게파르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이게파르벤은 신약 제제의 효과를 검증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사실상 수용소에서 일어난 생체 실험의 주도권은 SS가 아니라  이게파르벤이 쥐고 있었다. " … 파르벤은 SS에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력을 공급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용을 지불하고 생체 실험에 쓸 인간 기니피그를 제공받았다. 가령 바이엘은 '수면제 신약'임상 실험에 참여할 여성 수감자 150여명의 가격을 놓고 아우슈비츠 소장과 흥정을 벌였다. SS는 수감자 한 명당 200라이히스마르크(미화 약 80달러) 를 요구했다. 바이엘은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며 170라이히스마르크를 제시했고 SS는 이를 받아들였다. p 101

그러던 어느날 승승장구하던 나치의 행보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러시아 군의 반격을 받아 25만명이 넘는 독일 군이 항복 선언을 하는가하면, 이탈리아가 제 3국을 버리고 연합국 편으로 돌아서면서 전세가 연합국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슈비츠에서는 학살 규모를 늘리기 위한 수용소를 확장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카페시우스는 전쟁이 끝났을 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을 마련해 두는 데 온힘을 다하여, 빼돌릴 수 있는 건 모조리 빼돌리고있었다. 

수감자 간호사 루트비히 뵐은 카페시우스가 의약품 속에 숨겨진 다이아몬드를 찾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카페시우스에게는 수감자의 생명보다 귀중품이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카페시우스에게 절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아우슈비츠 규정상 카페시우스는 승강장에서 개인적으로 압수한 모든 물품은 아무런 서류절차 없이 조제실로 반입할 수 있었다. 대량 학살 과정에 하나부터 열까지 개입하고 통제했던 독일의 숨막히는 관료 체제에 난 커다란 허점을 이용해 카페시우스는 주기적으로 사리사욕을 챙겼다. p127

1944년 11월 하인리히 힘러는 마침내 전쟁에서 패배했음을 실감하며 SS수장은 대량 학살을 중단하라고 명령한다. 학살 중단 명령에 의해 아우슈비츠는 대량 학살 증거를 없애려는 노력에 가속도를 올렸고 카페시우스와 그의 동료들도 황급히 떠날 채비를 한다. 다음해가 되면서 다하우 수용소가 해방되었고, 다하우가 해방 된 다음날 히틀러가 베를린 벙커에서 자살한다.

이후 SS 수장 하인리히 힘러를 연합국이 체포 하였으나 그 역시 입속에 숨겨둔 청산가리 알약으로 자살하였고 한편 연합국은 전쟁 포로들 가운데 제 3국이 주도한 대량 학살에 가담한 가해자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전쟁 포로에게 상의를 탈의하도록 한 다음 SS대원 특유의 표식인 조그만 혈액형 문신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카페시우스를 비롯해 100만 명 가까이 되는 바펜-SS대원들이 한때 엘리트 나치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표식으로서 자랑스럽게 여겼던 혈액형 문신은 이제 살인자임을 보여주는 낙인이 됐다. p.147

시간이 흘러 1963년 12월 20일 아우슈비츠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은 세 명의 판사가 진행했고, 유능하고 현실적인 인물로 알려진 '한스 호프마이어'가 주임 판사로 임명됐다. 호프마이어 이전에 주임 판사로 거론된 한스 포레스터가 있었는데, 그의 가족 중에 나치로부터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었기에 개인적 이해관계가 상충한다는 이유로 그는 물러나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정보장교였을 뿐만 아니라 나치 군사 법정 판사였던 호프마이어를 임용하는 데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재판은 1965년 4월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 시점까지 19개국에서 온  증인 359명이 법정에 섰는데 그 중 211명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고 85명은 전 SS대원이었다.

많은 생존자들은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을 괴로워했으며, 공격적인 피고 측 변호사들에게 증언의 신빙성과 기억의 정확성을 시시때때로 의심받는 일은 특히나 더 힘들고 어려워했다. 게다가 생존자들은 이런 증언을 하기 위해 직접 독일로 와야했다. 난생처음 히틀러와 최종 해결책을 탄생시킨 국가를 방문한 증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20년만에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가해자들을 대면해야 했다. 심지어 재판은 독일에서 열린 데다가 살인자들의 언어로 진행됐다. p263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지난 재판에서 비로소 카페시우스는 9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복역한지 2년반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독일 고등법원은 갑자기 카페시우스를 석방하라는 결정을내렸고 그는 자유의 몸이 된다.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정당화했다.  

나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p200

위의 문장은 대부분의 나치 전범죄들의 생각이었다. 뒤에서는 좌불안석 했는지 모르겠으나 사람들 앞에서는 보란듯 태연했다. 오히려 그들은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유대인들에게 '아직도 살아있네?' 라는 식의 경멸스러운 시선을 보낸다. 카페시우스의 경우 바우어의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된 뒤 트루켄뮐러 선임 판사와 퀴글러 검사와 만나게 되는데, 이때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음에도 '신문에 응하겠냐고 묻는' 퀴클러 검사의 말에 변호사 없이 하겠다고 대답할 만큼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그 당당함은 단순한 자만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카페시우스는 기회가 날 때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다. 여분의 식량을 챙겨서 다락방에서 몰래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해줬다던가, 자신이 아우슈비츠에서 발진티푸스를 몰아낸 주역이라던가 하는 확인할 수 없는 자기 자랑을 늘어 놓았고, 아우슈비츠에 대한 재판이 열렸을 때, 재판 중간중간 미소를 짓거나 웃음을 터뜨린 유일한 피고인이었다. 에밀 베드나레크의 경우에도 자신이 가학적인 카포였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희생자인척 배상금까지 받아낸다.

필자는 해당 리뷰의 들어가는 말에 '홀로코스트'가 차라리 허구였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책을 통해 들여다 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만큼 끔찍했고 분노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을 무슨 빨대 꽂힌 요구르트 마냥 한방울도 남김없이 쪽쪽 빨아 마셨다.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자라 죽은 이후 그들의 조직 하나하나 사용했다. 머리카락을 배게에 넣거나 양말을 만들었고 심지어 뼛가루까지 사용했다. 철저하게 유린했고 그만큼 그들은 권리를 누렸다. 하지만 누리고자 했던 권리에 비해 제대로 책임지는 이들은 없었다. 자살하거나 무죄를 주장했다. 책이 말하는 부분에 허구가 혹 들어가 있는지 좀 더 조사해보아야 겠지만, 정말 허구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할 정도로 목이메이고 가슴이 답답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전범죄를 조사했던 특수 검사 벤자민 프렌츠는 훗날 이렇게 기록했다. "유대인의 강제수용소 노동자들은 노예보다 못했다. 노예주에게 노예는 소중히 다루고 보존해야할 인간 자산이었지만 나치에게 유대인은 쓸모가 다하면 불태워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었다. p.40 

 『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나치를 보며 필자는 일본을 떠올렸고 유대인을 보며 당시의 조선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끝에 필자 본인을 떠올렸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필자가 있었다면 필자는 카페시우스와 다를 수 있을까? 

읽는 동안 참 많이 힘들었다. 저자 퍼트리샤 포즈너는 책을 통해 나치를 단순히 비판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카페시우스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말하고자 한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을 깨닫기도 전 책을 읽으며 필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치를 욕하고 카페시우스는 비난한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저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라는 그 말로 자신을 정당화 하는 모습이 상황만 다를 뿐 이따금씩 우리가 보여주는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 필자는 생각해보았다.

필자는 카페시우스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카페시우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달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시대를 아직 맛보지 않은 사람들이 떠드는 허세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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