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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랑

이주호 저
틀을깨는생각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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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일본이 침공을 할 당시에 조선은 일반적으로 일본이 침공할 것을 전혀 모른채 당한 것으로만 표현됩니다만 사실 조선은 일본이 침공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200년 간 평화가 지속된지라 백성들이 동요할 것을 염려하여 대외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일본의 침공을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경상우수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차출하여 수군을 방어하게 하였고 병마사 이일과 신립을 중심으로 제승방략 체계를 재정비하였으며 알게모르게 읍성을 수리하고 성곽을 다시 쌓았으며 삼남지역에 인재를 파견하여 침공을 대비했었습니다만 이러한 대비는 단순한 왜구의 침공에 대비한 방어책으로 전면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때 히고 국 구마모토 성주였던 가토 기요마사를 1군으로 4월 13일(음력) 일본은 대대적으로 부산진, 동래부를 시작으로 조선을 침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장 큰 야망은 명을 점령하는 것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꿍꿍잇속이 있었습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맞으면서 아즈치성의 오다 노부나가는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목전에 있었지만 결국 아케치 쥬베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교토의 혼노지에서 결국은 할복을 하면서 그의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敵は 本能寺に あり의 유례.) 그렇게 지금은 모두 도요토미의 군력아래 복종체계가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힘에 의한 복종이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이 겉으로는 복종하나 속으로는 언제든 반란을 획책할 수 있는 다이묘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들의 군력을 어떻게든 소진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외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방법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당시 평화시대가 익숙지 않은 일본은 언제든 내전이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서야 평화시대가 도래한 일본에서 다시 군비를 증강하고 굳이 필요없는 적을 만들어 동티를 겪는 불상사를 만들고 싶지 않던 사야가는 이 전쟁을 극구 반대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는 일개 가신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야가는 자신의 주군이자 히고 국 다이묘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장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그는 상륙하자마자 바로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은 사야가의 귀순이 첩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우선은 감금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각색하여 만든 것이 바로 역랑입니다. 이 역랑은 이때까지 사야가는 항왜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일본에서 귀순할 생각을 품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원래 그 뿌리는 조선이라는 픽션을 통해서 재미를 가미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주목하지 않았던 항왜장을 이렇게 각색을 하여 임진왜란에 주목받던 조선의 영웅이 아닌 항왜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야가는 항왜가 되어 훈련도감에 조총술을 교육하였고 조총제작에 관여한 사실만 알고 있지만 이 책에는 사야가가 자신의 조총부대를 운용하여 행주산성에서의 승리에 큰 기여를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사야가는 권율의 제청으로 충선(忠善)의 이름을 하사받았으며 그간 공을 인정받아 자헌대부의 직책을 얻었습니다. 이후 정묘호란에도 참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김 충선의 이름은 사성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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