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그 여자의 빈방
http://blog.yes24.com/samju97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깡통로봇
꽃이 와서 저물도록 피어있네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309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혼자 차는 깡통
수다 떠는 깡통
연필 긋는 깡통
끄적 이는 깡통
나의 리뷰
어제 읽은 책
어제 본 영화
어제 산 선물
나의 메모
색연필 긋기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18 / 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최근 댓글
신간을 홍보중이오니 .. 
서평을 읽으니 제가 .. 
이름만으로 일깨워 줬.. 
아, 영화 마지막 부분.. 
그런 생태도시들이 각..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새로운 글

전체보기
금수 | 어제 읽은 책 2017-08-08 14:40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9793968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금수

미야모토 테루 저/송태욱 역
바다출판사 | 2016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휴가 중 두 번째 읽은 책도 소설이다. 미야모토 테루는 몇 해 전 <우리가 좋아했던 것>을 읽고,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을 보고 원작이 테루의 작품인 것을 알았다. 그의 작품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평범하고 비루한 인생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거나(우리가 좋아했던 것) 자살한 남편의 죽음의 이유를 쫓는 한 여자(환상의 빛)의 쓸쓸함을 담거나 했다.

 

신혼의 아키에게 날아온 급보는 남편이 어떤 여자와 동반 자살로 사경을 헤맨다는 내용이었다. 아키는 남편 아리마에게 불륜의 낌새를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당혹스러웠다. 아리마는 사경을 헤매던 그날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는 육신을 바라보던 경험을 한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고, 아키는 역사를 전공한 대학 강사와 재혼한다. 아키의 아들은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였고, 몇 년 후 재혼한 남편이 제자와의 외도를 통해 세 살 배기 건강한 딸을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키는 자신의 불행이 모두 아리마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리마와 서신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아리마에 대한 원망을 정리한다. 이혼 후 아리마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다. 연이은 사업의 실패로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로 아키와 조우했던 아리마 역시 아키와 편지왕래를 하면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모차르트 음악으로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깨닫는 아키와 낡은 여관에서 쥐와 고양이의 싸움을 보면서 아리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자신을 발견한다.

  

 

이 소설은 예상치 못한 전개로 삶의 혼란을 겪었던 이혼한 부부의 제자리 찾기를 담고 있다. 테루의 문장은 부드럽게 읽힌다. 그러나 누적된 문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의 증폭을 낳는다. 한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에 쓸쓸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진지한 주인의 눈빛에 그만 무심코 말해 버렸습니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아주 불가사의한 것을 모차르트의 부드러운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86)

 

몇 번이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습니다. 마치 공 같은 것으로 장난치는 듯한 천진난만함이 고양이의 유연한 움직임에 담겨 있었습니다. 동물 두 마리가 뒤엉켜 있는 걸 보니 죽이려는 자와 죽임을 당하려는 자 사이의 아슬아슬한 다툼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허락한 사이의 장난처럼 보였습니다. (...) 이제 좀 그만 하라고 제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고양이는 쥐의 옆구리 언저리를 물어뜯었습니다. 쥐의 몸은 살아 있는 채 조금씩 줄어 갔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히거나 발을 실룩거리고 있던 쥐가 전혀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고양이는 다다미 위에 떨어져 있는 쥐의 피를 핥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미 죽은 작은 동물을 계속해서 먹어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는 쥐의 뼈까지 먹어 치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뼈를 으깨는 소리가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흘러나온 피를 남김없이 핥아먹은 후 앞발로 입 주위를 정성껏 손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만은 고양이의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쥐의 꼬리만이 다다미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138).

 

그런 것들을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돌연 저는 깨달았습니다. 고양이도 쥐도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자신의 생명이 품고 있는 무수한 마음속에서 문득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고양이와 쥐를 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날 죽음의 세계에 떠돌며 확실히 자신의 생명이라는 것을 본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지요(139~140).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다다를 수 없는 나라 | 어제 읽은 책 2017-08-08 13:50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9793879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저/김화영 역
문학동네 | 2002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휴가 기간 동안 읽은 소설 중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비와 함께 읽기 좋다. 소설에 묘사되는 베트남의 우기는 장대비가 장막을 드리우면, 어쩔 수 없이 고립을 택하게 되는 인간의 고독이 처연하다.

십수 년 전 독서노트를 찾던 중 몇 해 전 이사를 준비하다가 버린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역자의 산문집에서 정보를 얻었고, 동네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소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은 커다란 기쁨이다. 짧은 문장에 많은 사건과 감정을 담고 있다. 혁명 전야의 루이 16세 때 프랑스 예수회는 베트남으로 신부와 수녀, 수사로 구성된 선교 집단을 보낸다. 볼모로 잡혔던 베트남의 어린 황제와 베트남의 격변사가 작가의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어린 칸은 이곳의 가을이 써늘한 것에 놀랐다. 그의 나라에서는 나무들이 쓸쓸한 색조로 변하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베르사유의 정원은 어두운 빛을 띠고 있었다. 그렇긴 해도 황제는 거기서 궁정 사람들의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그의 외로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에게 못 된 장난을 하며 놀려댔다. 그러자 칸은 눈물을 흘렸고 옆에 있던 궁녀들이 그를 위로했다. 궁녀들은 그를 주인마님들 곁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귀여운 짐승인 양 새로운 장난감이 되었다(9).

 

 

베트남과 프랑스의 전쟁도 몇 개의 짧은 문장으로 서술되었지만, 문장이 담고 있는 내용은 깊다.

사이공의 문전에서는 농민들이 쇠스랑으로 무장한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수는 굉장히 많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다. 그들은

자기들 나라에서도 멀고 전쟁에서도 먼 곳에서 외로이 죽었다.

자기네 황제를 쫓아내고 난 그 농민들은 조용하게

잘 살고 있었다.

군인들은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 점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42).

 

선교가 자리 잡자 도미니크와 카트린느는 남쪽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이동한다. 그곳이 바로 안남이다. 남쪽과 언어도 다르고 우기가 길다. 고국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그들은 점점 잊힌다. 베트남 왕조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가톨릭을 탄압한다. 도미니크와 카트린느에게 깊고 깊은 외로움만 남는다. 그들이 신부와 수녀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태초의 아담과 이브 같다. 종교보다 깊은 사랑이고, 에로티시즘이다

 

그들은 베트남 말을 했지만 따로 떨어져 지냈다. 다른 점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고독한 생활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을 헤아려보는 방법을 배웠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망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 그들은 이 겸허한 농부들 속에서 하느님을 사랑했다(58).

     

도미니크는 농부들과 같이 산돼지 사냥을 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 말은 베트남말보다 더 어려웠다. 특유의 억양법에 더하여 구문도 달랐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음씨 좋게 맞아주었었다. 그러나 고되게 일을 하고 나서는 그들을 외롭게 홀로 남겨놓는 것이었다(90~91).

      

저녁에 도미니크와 카트린느는 기도를 하는 둥 마는 둥했다. 그들은 서로 말을 나누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들은 프랑스 말을 했고 지내온 삶과 추억들을 이야기했다. (...) 1월이 되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안개비가 고원을 뒤덮었다. 영원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허연 구름들이 가까운 산들을 밑바닥부터 끊어놓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습기에 젖지 않은 것이 없었다. 습기는 그들의 고독한 몸을 적셨다(92).

 

오직 두 사람의 선교사만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채, 그리고 스스로를 잊은 채 살아남아 있었다. 베트남에서의 그들의 존재 의미는 비극적 사건들과 여러 계절들 속에서 갈피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이 나라의 포로였다(100).

 

이윽고 그는 여자를 애무했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절이 지났다. 오직 카트린느의 몸을 더듬는 성직자의 손만이 말을 하고 있었다. (...) 봉오리가 열리면서 그들에게는 아주 새로운 풍경들이 나타났다. 도미니크는 그 풍경의 지도를 발견했다. 카트린느는 그 풍경의 깊이를 실감했다. 그의 모공 하나하나에서 흙으로 얼룩진 찝찔한 물이 새어나왔다. 그들의 호흡이 여러 가지 발견들을 이끌어냈다. 우주가 그 모습을 드러낼 참이었다(109).

 

밤은 불안정했다. 별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산비탈에는 숲이 두 발로 굳건히 버티면서 일어서는 것 같았다. 오두막집들이 녹아서 냇물 속으로 실려 갔다. 대자연은 개시만 할 뿐 절대로 마무리하는 법이 없는 몸짓으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존재들을 스치면서 그 감각을 드러내 보였다. 모든 것이 다 속을 드러냈다. 그 속에 숨어 있던 정령들이 깨어 일어났다. 도미니크는 바나나 나무 밑에 축축한 몸으로 엎드려 있는 호랑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코끼리가 울었다. 생명이 가까이 있었다. 밤이 가만히 머물러 있었다(111).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짧은 문장이 가느다란 비가 되어 내린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깊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악동 같은 욕망 | 어제 읽은 책 2017-07-24 16:45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9766726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저/송병선 역
문학동네 | 2010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그 여자들이 가진 것은 단지 엉덩이나 둔부, 혹은 볼기짝이나 엉치에 불과하다. 오직 그녀,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의 것만이 궁둥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마음으로는 그녀에게 충실한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다(33쪽).

행복이 가능한 곳에서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면 그건 사실이었다. 가령 그곳은 자신의 몸과 사랑하는 여인의 몸이었다. 혼자서 목욕할 때도, 그토록 열렬히 갈망하던 사람과 침대에서 몇 시간 혹은 몇 분을 함께 보낼 때도 그랬다. 행복이란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지 결코 집단적이거나 공공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52쪽).

나이로 보면 폰치토는 어린아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어떤 어른보다 더 뒤틀리고 사악하며 교활한 사람이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상냥하고 인형 같은 얼굴을 보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게 뻔했다(230쪽).

 

라틴 아메리카의 소설은 특유의 유머가 있다. 해학과 풍자가 묘하게 섞인 유머다. 일요일 오후 영화와 드라마로 채울 수 없는 빈둥거림을 소설로 메꿨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어쩌다 보니 아주 센 작품을 골랐다.
 
새엄마와 십 대 아들, 아버지의 삼각관계는 막장 드라마 같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도 막장 드라마는 많다.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막장은 예술이 된다. 줄거리는 단순한데, 단순함의 균형을 깨트리는 것이 중간에 삽입된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그 이질적인 요소가 소설의 안과 밖처럼 엮였다.  소설에 대한 해설은 역자 후기에 충실히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는 개인적 느낌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십 대 아들 알폰소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다룬 그림의 큐피드를 떠올리게 한다. 사랑의 신 에로스의 로마식 표기 큐피드는 사랑의 화살을 마구 날리는 어린아이로 그려지곤 한다. 미의 신 베누스(비너스)의 아들로 그녀가 등장하는 그림에도 항상 따른다. 아름다움과 사랑이 바늘과 실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그러나 큐피드는 좀 고약하다. 화살을 마구 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사랑이 곧 아픔이 된다. 루크레시아 부인의 엉덩이에 대한 찬사에서 수태고지로 끝을 맺는 소설은 욕망을 위한 아버지의 세정식이 꼼꼼하게 묘사되는 부분에서 간간이 웃음을 낳는다. 이런 부분이 라틴 소설의 특징이면서 읽는 즐거움이다. 아들의 관음증은 독자의 관음증과 맥을 같이 한다. 아들의 눈을 따라서 독자도 루크레시아 부인의 나신과 아름다움을 훔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새엄마를 찬양하는 아들의 글, 그 천진함 뒤에는 악이 숨어있다. 순수의 가면 뒤에는 악랄한 파괴 욕이 도사리고 있다. 짧지만 소설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많이 본 글
스크랩이 많은 글
내용이 없습니다.
오늘 4 | 전체 184505
2004-08-06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