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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 | 기본 카테고리 2018-07-1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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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보이지 않는 핀셋이 허공에서 나를 쿡, 찌를 때가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가장 소중하고 여린 부분을 찔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울어버린다. 얼마 전 한낮에 카페에서,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라는 책을 읽다 그랬다. 프랑스의 그림책 작가 ‘클로드 퐁티’가 불우했던 유년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핀셋으로 찔린 것이다. 울음을 참아야지,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내 앞에 ‘일곱 살의 내’가 앉아 있었다. 일곱 살의 나는 ‘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그것을 내 쪽을 향해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붉어. 아직도 싱싱해.”

 

나는 그 애와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울었다. 미안하다고 말을 할 수도,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도 나이고, 나도 그이니까. 우리는 그저 한쪽은 빤히 바라보고, 한쪽은 고개를 숙인 채 울면서, 오후를 지나갔다.

 

‘유년기를 단어 세 개로 표현한다면 어떤 말을 고르겠냐’는 질문에 퐁티는 이렇게 말했다. “어렵고, 슬펐고, 혼자였습니다. 혼자 주변 풍경을 관조하며 이야기를 지어내 저 자신에게 들려줬습니다.”
― 최혜진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에서

 

내 유년도 그랬다. 나도 그처럼 책을 읽고, 책 속으로 도피했다. 피노키오와 인어공주, 콩쥐나 장화 홍련처럼 삶이 고단해 보이는 이들을 따라갔다. 늘 화난 것처럼 보이는 어른들 사이에서 나는 걱정이 많아 자주 한숨을 쉬는 어린애였다. 나는 개미와 송충이가 무서웠다. 걸을 때는 발을 잔뜩 웅크리고 걸었다.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진짜호랑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호돌이와 사진을 찍을 때 덜덜 떨었다. 뒤로 넘어갈 정도로 울면서 사진을 찍었다. 밤마다 귀신에게 나를 잡아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 귀신이 무서웠다. 소리 내어 울면 혼나므로, 자꾸 눈물을 흘리는 내가 무서웠다. 화장실에 숨어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흐르는 물에 대고 울었다. 밖은 다 위험하다고 했으므로 나가 놀 수 없었다. 친구가 없었다.

 

유치원에 가는 날보다 빠지는 날이 많았다. 나는 유치원에 너무 자주 빠지는 게 아닌지, 스스로 걱정하는 애였다. 선생님께 전화해 오늘은 나를 데려다 줄 수 있는 어른이 없다고 알려야 했다. 누군가가 마시던 컵으로는 물을 마시지 못했다. 누군가가 마시던 컵이 나를 상하게 할 것 같았다. 밖에서는 오줌을 눌 수 없었다. 오줌을 참다가 자주 바지에 지렸다. 세상은 불안정했고, 나는 불안정한 세상의 모든 것을 무서워했다. 나는 ‘어쩌다’ 태어난 아이였기 때문에 있을 곳이 없다고 느꼈다. 어른들이 내 존재를 난감해 한다는 사실을, 나는 눈치 채고 있었다.

 

“어렵고 슬펐고 혼자였”던, 그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고, 상처인 줄도 몰랐다. 어느 아이에게나 슬픔은 있는 거니까. 뭐라고 정의하기도 어려워 ‘슬픔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감정’을 아이들은 겪으며 자라니까. 사라진 줄 알았던 그 애가 다시 나타났을 때 당혹스러웠다. 책에 고개를 처박고 울면서, 그 애가 빨리 사라져주길 바랐다. 아이는 바로 가지 않았다.

 

엄격하고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부모(이런 부모는 얼마나 많은지!) 때문에 힘든 유년을 보낸 클로드 퐁티는 아이들이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가 되었다. 이 사실이 감격스러워 나는 더 울었다. 그는 스스로 사랑을 배우고(그렇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다), 스스로 상처를 돌보았다. 그 과정에서 그가 겪었을 고통과 번민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상처는 사라지는 게 아니므로 아물 때까지 돌봐야 한다. 슬픔도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잠잠해지는 거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내가 그때의 슬픔을 손에 쥐고 다시 돌아온다 해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잠잠해지도록, 슬픔을 달래야 한다.

 

그 일은 몽상이 아니고, 꿈도 아니며, 지어낸 일도 아니다. 일곱 살의 나는 죽지도 않고, ‘돌아’왔다. 작년에 왔던 그 각설이처럼. 불현듯.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이야기를 지어내다 쓸쓸히 잠들던, 늘 혼자였던 그 애는 내가 그때를 떠올렸기 때문에 용기를 내었으리라. 그 애는 내 앞에 앉아 나를 한참 들여다보다 갔다. 다 큰 내가 가엾다는 듯이. 그렇게 나를 보고는 ‘조그맣고 딱딱한, 붉은 간처럼 생긴 슬픔’을 주먹에 꼭 쥐고는 돌아갔다.

 

떠나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미안하지 않다. 그도 나이고, 나도 그이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최혜진 저 | 은행나무
아이들과 소통하는 마음가짐 등에 관한 진솔하고도 경쾌한 이야기를 통해 놀라운 상상력이나 창의성의 비밀이 의외로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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