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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감상의 거부와 작품 그 자체로 이해하자 | 예술일반 2007-11-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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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손하고 건방지게 미술 읽기

윤영남 저
시공사 | 200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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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영남 씨는 미술전공자가 아니지만 대학재학시절 교내 영자신문 기자로서 예술과 문화 전반에 걸친 식견을 넓히고, 2002년부터는 시민단체 소속으로 내외국인 대상으로 경복궁 안내활동을 하였으며, 인터넷 미술동호회에서 화가와 그림에 관한 글들을 써왔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현대미술에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적 관점에서 인터넷에 써온 글들을 묶어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현대회화라는 것이 비전문가인 관객의 입장에서 편안하게 감상하거나 이해할 수 없고, 작가나 전문가들의 해설이 매개가 되어야만 하는데 그러한 해설 역시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으로부터 출발한다. 미술을 대중으로부터 유리시켜 어렵게 하여야만 상품가치를 올릴 것으로 여기는 소수의 작가들과 미술전문가들, 그리고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현대미술이 더욱 어려워지고 대중으로부터 고립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자는 현대미술에서 관객들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관객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독백을 부르짖으며 이해만을 강요하는 현대미술을 예술이라 칭송해야 하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는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유포된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의 미술계에서 대가로, 그리고 주류로 평가받고 있는 화가나 작품들이 진정 관객의 입장에서 편안하면서도 감명 깊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인지 본질적으로 회의하고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저자는 ‘소수의 여론이 전체를 지배하는 전문가 집단의 무서운 함정’에 도전하는 불손하고도 건방진 문제제기를 시도하고 있다.

 

저자는 그러한 문제제기를 피카소로부터 시작한다. 미술역사상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는 <아비뇽의 처녀들>만 해도 그림 자체만으로 깊은 감흥을 받기는 어렵다. <게르니카>에 이르면 나치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공습으로 게르니카를 폭격한 것에 대해 항의하여 인류에게 메시지를 전한 그림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솔직히 말하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그 형태나 메시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겠으나 최선의 방법인지는 의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모양이고, 저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피카소의 작품에 호의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푸른빛이 감돌아 우울함이 가득 찬 사실적인 초기작품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피카소의 미술사에서의 위치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모든 작품이 진정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평가를 받는 것인지 하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고 유통시키는 위치에 있는 문학가, 화상, 평론가들을 잘 관리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경매과정에서 가족까지 작전세력으로 활용한 피카소의 천재적인 처세가 피카소의 작품은 뭔가 다르다는 불문율을 창조한 것은 아닐까 라는 불손하고 건방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소수의 전문가 그룹에 의해 강고하게 자리 잡힌 미술계의 통념에 대해 불손하고도 건방지게 의혹을 제기하는 노력은 계속 이어진다. 드가에 대해 그를 여성혐오자로 보고 그의 작품들에 대해 열쇠구멍 시점이라 불리는 관음적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고 설명하는 견해를 소개한다. 고갱에 대해 그가 늘 자유롭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며 문명에서 벗어난 순수한 원시를 동경하여 타히티로 갔지만, 가족을 버렸고 나아가 타히티에서 만난 어린 여성들을 무책임하게 버렸으며 타히티의 언어조차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늘 파리의 시장상황을 주시하고 유럽에서 공수된 음식을 먹으며 타히티의 고관들과 관계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등 순수해야 할 타히티를 흐려놓은 타히티의 적의 한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을 제시한다. 달리에 대해 그의 작품에 한 번만 보아도 그의 작품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독특함이 묻어 있어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나, 거기에서 나아가 미디어를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중심에 서기 위해 온갖 행위들을 연출하여 작품보다 자신의 행위로 유명세를 치렀고, 윤리적 잣대마저 거부한 아내 갈라와의 러브 스토리 등이 합쳐져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자연향이라기보다는 잘 정제된 인위적인 향수라고 해야 옳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현재의 미술계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절대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인상주의와 같은 시기에 보다 엄격한 훈련과정을 거치고 보다 많은 노력과 정성을 그림에 투여한 프랑스의 아카데미 화가들은 잊혀지고 있다. 이 유파에 속하는 화가들은 오랜 시간 스승의 대작과 조각상을 모사하여 훈련해야만 하고 탄탄한 화법, 안정된 구성, 원근법과 해부학을 중시한 사실적인 묘사를 강조하여 기술적 측면에서 최고수준의 표현력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인상파의 등장으로 아카데미 화가들은 경쟁력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인상파 화가들의 짧은 제작기간과 빛에 따라 예술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같을 수 없다는 논리로 연작 탄생이 정당화됨에 따라 미술 산업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한 점의 작품을 위해 끊임없이 덧칠하고 재작업을 해야 했던 아카데미 화가들은 새로운 미술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카데미 화가들이나 빅토리안 화가들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라는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아카데미 화가인 윌리엄 부그로의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아름다움과 순수한 영혼을 담은 예술작품이 시대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형식의 변화로 한 때 각광받던 예술가가 사장되고 예술혼이 매도되는 사태가 정당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아카데미 화가인 장 레옹 제롬의 작품도 제시하고, 비평가들에 의해 ‘비현실적이며 시장의 요구에 충실한 겉만 번지르르한 퇴폐적 산물’로 비판받은 빅토리안 화가에 속하는 프레드릭 레이튼의 작품들도 제시하면서 관객 나름대로 감상의 방식으로 미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폼페이에 깊이 매료되어 현지답사와 고증을 통해 폼페이를 화폭에 재현하고자 각고의 노력을 한 로렌스 알마 타데마로부터 예술가들의 잊혀진 사명을 확인하고 있다. 알마 타데마의 경우 한 주제에 침잠하여 작품에 혼을 싣고 인생의 철학을 담는 의식적 행위들이 예술활동에 수반되었는데, 그런 점에서 알마 타데마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폼페이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려 평생을 바친 알마 타데마처럼 예술가에게는 풍파를 이기고 유행에 편승하지 않으며 지고하고 순수하게 지켜나갈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조급증이나 경박, 의미 없는 배설, 그리고 일회성 쇼가 아니고 인생이고 철학이며 가치 있는 소중한 유산이고, 크기로 압도하거나 현란한 색채와 기교 등으로 눈을 어지럽히는 예술가들보다는 작품 한켠에 소중한 추억과 가치 있는 의미를 담을 줄 아는 그런 예술가들이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저자는 인상파들의 경우 양심과 인격의 문제마저 면제부가 허락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드가는 인상파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사건에서 양심을 호소했을 때 이를 철저히 외면하였고, 고갱은 타히티에서 식민주의자들과 별 차이 없는 행위들을 하였고, 마네는 대표작 ‘올랭피아’를 인상파전에 출품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살롱전에 출품하였다.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형성된 소위 주류적 관점과 선입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

 

사회의 심한 질책과 비난에 굴복하여 자신을 스스로 검열하여 그림(<마담 엑스 - 마담 피에르 고트로>) 속 여인의 오른쪽 어깨 끈을 이은 존 싱거 서전트, 로댕의 꼬리표를 벗어던지고 로댕의 연인이 아니라 조각가로서 평가되어야 할 까미유 끌로델, 부귀영화를 위해 권력과 야합한 다비드, 여성의 권위와 인격 그리고 남성에 대한 도전을 없애고 은밀한 눈빛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만 존재하는 19세기 말의 팜프 파탈들, 미술을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감상의 대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예로 제시한 루벤스와 그뢰즈의 그림 <시몬과 페로>를 둘러싼 해석들, 다비드의 작품으로 알려져 평론가들에 의해 완벽한 작품으로 칭송받았으나 마리 드니스 빌러의 작품으로 밝혀지자 평론가들에 의해 혹평을 받은 작품 <그림 그리는 젊은 여인>,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는 선입견을 벗어나야 하는 것의 예로 제시된 귀도 레니 또는 엘리자베타 시라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 서양에서 미인으로 그려지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등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평론가들에 의해 혹평을 받았으나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작품의 경매가격도 높게 치솟는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작가의 대표적인 예로 스코틀랜드 출신 화가인 잭 베트리아노를 들고 있다. 현대미술 화가들은 대중이 아닌 평론가를 위해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유추할 여지를 남겨두고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잭 베트리아노는 작품의 분석을 대중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 둠으로써, 즉 미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관람객이라 하더라도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중의 사랑을 받고 결국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였다. 미술평론가들은 잭 베트리아노의 그림에는 ‘아무런 알맹이도 없다’고 혹독하게 비판하였으나, 대중은 자신들의 욕구에 가장 솔직하게 응수한 마음의 선택에 따라 잭 베트리아노를 사랑했다고 한다.

 

난해한 현대미술작품에 좌절하고 있던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을 큰 행운이라 할 수 있다. 미술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정립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하였다. 실망이나 좌절하지 말고 더욱 노력하고 정진하면 나름대로 일가견을 이룰 수도 있을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고 즐기고 감명을 받을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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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심리 치료 연구와 발달에 관한 위니캇의 이론 | 심리학 2007-11-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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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울타리와 공간

마델레인 데이비스,데이빗 윌브릿지 공저/이재훈 역
한국심리치료연구소 | 1997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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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와 공간은 처음과 마지막 그리고 그 중간의 3부의 정신적 이론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 위니캇의 이론적 성격들과 그의 인간적 특징 등을 기술하는 배경을 바탕으로 글을 시작하고 있다. 도날드 위니캇의 이론적 특징을 대표하는 것으로 나타내는 말 중에서 기억나는 말은 그는 삶은 살만하다라는 가치가 있다는 순수한 자신의 믿음을 기반으로 연구의 시작을 하였다고 한다. 즉 삶의 즐거움과 이익은 모두 개인이 만들어 간다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는데 조금의 이론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구절이기도 한다.

 

책의 중간 부분은 위니캇 이론의 자기의 개념과 내적 실재 그리고 의존의 사실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으로부터 출발하여 3가지 정서발달의 측면을 설명하고 있다. 위니캇은 의존의 사실에서 인간은 절대적 의존의 단계에서 상대적 의존의 단계로 그리고 상대적 의존의 단계에서 완전한 독립으로 향하는 단계로 발전해 나아간다고 하였다. 위니캇은 이러한 의존의 3대 법칙에 의하여 3가지 분류의 정서 발달 이론을 설명한 것으로 이해 되어진다. 그것은 절대적 의존인 초기 심리적 기능과 상대적 의존인 공유하는 현실에의 적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립을 향하는 발달인 환경의 제공이다. 처음으로 초기 심리적 기능에서는 의식적인 나인 자아와는 달리 인간은 절대적인 의존의 시기를 갖게 된다.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자기라는 개념을 갖게 된다. 절대적인 의존의 시기는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의존의 단계를 거쳐 독립을 향하여 계속 발돋움을 하게 되는데 이 때의 초기 심리적 하위 카테고리에는 통합과 통합되지 않는 상태, 몸과 정신의 통전, 원시적 대상관계와 전능경험. 침범과 상처, 자기방어, 거짓 자기, 지능과 거짓자기, 박해기대 등으로 나뉘어져 나타내고 있다. 특히 초기 심리학적 기능에서 대상관계에 대한 말이 나오게 된다.

 

도날드 위니캇은 대상관계의 중요성을 주장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간이 초기 심리학적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간과함으로써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상태를 경험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몸과 정신이 통전을 이루면서 자신과 자신이 아닌지를 구분하고 그로 인하여 대상관계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 대상관계에 연관된 설명은 다음의 부분인 상대적인 의존의 단계로도 넘어가면서 더 확고히 나타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정서발달의 이론은 유아가 절대적 의존의 단계에서 상대적 의존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공유하는 현실에의 적응을 나타내는데 이때는 환상의 영역, 중간대상과 중간현상, 그리고 놀이의 중요성, 잠재적 공산, 대상사용과 공격성의 뿌리, 내적 성숙으로서의 도덕성과 관심의 능역, 반사회적 경향성, 청소년기로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절대적 의존기에 있는 유아의 욕구는 충분히 좋은 환경에 의해 충족될 때 상대적 의존의 상태로 옮겨 가게 된다. 이시시점에서 유아는 지능이 발달함으로써 모성적 돌봄과 그것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점점 자각하게 된다, 즉 나와 나가 아닌 것에 대한 분리로서 대상들은 독립되어있고 파괴되지 않는 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 위에 열거한 하위적인 세부부분들의 정서이론은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유아는 우리가 처음에 절대적 의존기에 다루었던 내용들인 전능경험과 관련된 환멸을 다룰 수 있게 되고 이 시점에서 특히 유아의 욕구에 대한 적응의 점진적인 실패는 모성적 돌봄의 측면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를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위니캇은 모성의 돌봄 즉 어머니의 유아의 돌봄에 대한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세 번째로 위니캇의 그의 이론의 전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반 이상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위니캇은 부모와 유아의 관계에 대하여 절대적 의존기에서 상대적 의존기를 거쳐 독립으로 향하는 유아의 여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특히 그는 다른 어떤 것 보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의 제공에서는 특히 앞에서 열거한 것과 같이 모성의 본능을 중심으로 하여서 엄마됨과 생물학, 엄마와 부모의 경험 축적, 일차적 모성몰두, 안아주기, 다루기, 대상제공, 적응에서 벗어나기와 환경의 실태, 자아 관계성과 의사소통, 헌신적인 보통의 엄마, 의존과 지배, 아버지, 가정을 나타내고 있다. 즉 유아의 문제적인 정서불안의 심리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를 모성의 돌봄에서 찾는 것이라고 이해했는데 엄마의 아기를 돌보는 엄마 됨 의 의미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 이었다. 엄마는 여자만이 아닌 아빠도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생물학 적으로 여성은 엄마의 엄마라는 유전적인 요인들을 통해서 도 알 수 있듯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져 있는 엄마 됨 의 요소가 어느 부분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성적인 몰두가 유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엄마의 역할과 더불어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정신 분석학 적인 측면으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유아에게 돌봄의 기능 중 안아주기의 기능을 설명하였는데 환경을 제공할 때 안아주기는 나이가 든 유아에게도 어느 정도 의무적으로 해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위니캇은 책의 대 제목과 같은 울타리와 공간의 개념을 빌려서 그의 이론을 재정립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의 발달 이론이 그의 개인을 위해 그리고 그 개인을 유지시키기도 하고 또 새롭게 창조하기도 하면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갖는 함축적인 의미들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토대로 위니캇은 건강한 사회란 좋은 부모가 아동에게 그러하듯이 구성원들에게 탐색할 수 있는 공간과 안전한 울타리를 제공해 주는 사회이며 아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함께 제한이 필요하듯이 건강한 사회도 탐색할 수 있는 자유와 동시에 그것의 한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울타리는 깨어지고 억압된 울타리가 아니라 적절한 통제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울타리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야 유아의 발달에 좋은 영향을 주어서 유아가 문제행동을 일으키지 않고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말한대로 민주주의에 빗대어서 설명할 수 도 있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대신에 그만큼의 의무가 따른다는 것, 울타리안에서의 자유로운 표현과 탐색적인 내용들이 어느 정도의 권한적 의무를 뒤따르면서 진행 되어진다면 이는 강건하고 좋은 울타리로서의 모습과 그 안에서의 안전한 공간에서 자라나는 유아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위니캇은 이런 말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자신이 바라는 것’이라고 그것은 아이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처음의 그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모든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흉내 낼 수는 없다. 그도 말하였듯이 그의 이론을 모두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라, 문명화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좋은 이론가들의 이론을 토대로 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이론을 일구어 나가라는 것이다. 위니캇의 이론은 우리의 교육적 사상에 많이 부합되는 것 들이며, 또한 이러한 이론들은 지금도 널리 사용 되어 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아교육의 목적과 취지에 얼마나 맞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그리고 그 이론이 우리의 교육적 이론에 맞을까라는 의문보다 이러한 이론적 측면이 어떻게 달리 나의 손에 의하여 활용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데 이 책의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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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형식 그러나 가볍지 않은 내용 | 동양소설 2007-11-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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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밤의 숨바꼭질

호시 신이치 저/윤성규 역
지식여행 | 200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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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더 다양한 장르의 일본 소설을 읽고는 있지만 <한밤의 숨바꼭질>은 정말 오랜만에 읽어보는 독특한 형식의 단편 묶음이다. 단편소설(short story)보다도 더 짧은 소설의 한 형식이다.  적절한 역어가 없으며 굳이 옮기자면 '소단편소설'이 된다. 대개 단편소설이 200자 원고지로 70장 안팎의 분량이라면, '쇼트쇼트 스토리'는 20장 내외의 분량이 된다. 이 소설 형식의 특징은 ① 완전한 플롯, ② 신선감을 주는 착상, ③ 의표를 찌르는 결말의 처리 등이라 하겠으며, '쇼트쇼트 스토리'라는 용어가 가리키는 것과 같이 단편소설을 그대로 단축 또는 압축해 놓은 형식을 뜻하지는 않는다.

 

‘호시 신이치의 책 역시 처음으로 접해보았다. 단편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새롭고 기발하기까지 했다. 보통 이런 종류의 내용은 무겁고 암울한데 비해 호시 신이치의 이야기는 경쾌하고 풍자적이다. 거기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까지 더해져서 정말 한밤에 숨바꼭질을 한 것처럼 상쾌해지기까지 한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어서 좋았는데 한편으로는 어쩌면 미래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벼워 보이지만 내용은 인간의 숨겨진 본성이 담겨있기도 한 것 같아서 가볍게 취급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글의 구성과 내용 어느 것 하나 아쉬운 게 없는 것 없이 완벽한 하나의 글이 되었다.

 

처음 접한 형식의 소설이나 한국문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식의 문학이 모두 발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분량이 짧고 내용이 가벼워 보인다고 책이 말하는 궁극적인 내용 자체까지 가볍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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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서양소설 2007-11-0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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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역
문학동네 | 2007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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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출세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국내에서 독자들은 물론 작가들에게도 많은 자양분을 제공한 작품이다. 과거의 기억은 늘 희미한데, 그 흔들리는 기억을 들추어내는 단서들이 점점이 연결되다가 생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지만 끝내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흐름을 그의 소설은 공통으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몽롱하고, 아련하다. 어딘가에 두고 온 누군가를,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그 대상을 그리워하는 아픈 정서가 늘 배면에 깔려 있다.

 

겉보기에는 이 소설은 과거를 찾아 헤매는 한 기억 상실자의 이야기다. 어떤 흥신소의 퇴역 탐정인 작중 화자는 마치 다른 인물인 것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한 추적에 나선다. 한 장의 귀 떨어진 사진과 부고를 단서로 바의 피아니스트, 어떤 정원사, 사진사를 차례로 만나게 되고 그들의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증언이 1940년대, 밀수와 가짜 증명서와 배반으로 가득 찬 어는 집단을 환기시킨다. 그러면 그 기억 상실의 탐정과 ‘페드로’라는 인물은 결국 같은 사람일까? 그는 과연 저 신비스러운 ‘드니즈’, 패션 모델을 하다가 전쟁 말기에 스위스로 잠적한 ‘드니즈’를 사랑한 일이 있는가? 과연 그것은 그의 과거일까? 아니면 어떤 다른 사람의 과거일까?

 

집요하게 계속된 인터뷰의 목록들이 구성하는 저 허구 같은 과거 속으로 그는 조금씩 들어가 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어떤 향기는 이미 맡아본 냄새같이 기억된다. 어깨를 따끔하게 꼬집힌 듯한 느낌은 막연히 가슴을 떨며 지나온 길을 상기시킨다. 어느 거리에 가면 옛날에 들었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창문은 지난날 오랫동안 기다렸던 장소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은 소멸된 과거의 근원적인 애매성을 어떤 병적인 기억 상실과 탐정소설적 추리를 통해서 재구성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앙드레 말로가 우리의 개인적 일생을 두고 말한 ‘조그만 비밀들의 무더기’와 대면시킨다. 어린 시절 저녁 나절의 슬픔처럼 쉬 사라져버리는 저 충동들의 환상이 지닌 사연 같은 메커니즘을 이 소설은 분해하여 보여준다.

 

더군다나 전쟁이 사람들과 사물들을 흩고 바스러뜨려버린 1940년대의 체험은 우리들 인간 조건이 얼마나 헛된 망각을 바탕으로 지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안성맞춤이다. 바닷가에서 바캉스를 즐기며 우리들 각자가 찍은 사진들 속에 우연히 함께 나타나 있으되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를 알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바닷가의 낯 모를 사람들’처럼 우리의 삶을 그려 보이는 데 있어서, 언뜻 지나치며 본 한 장면, 끊어진 한 토막의 대화, 어렴풋한 소리들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모디아노의 감각과 탈색된 언어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의 문체는 탐정의 보고서만큼이나 간결하다. 결정적인 세부사항 하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추리가 허구로 돌아갈 것 같은 불안감과 강박관념, 어떤 중요한 목록의 누락이 환기하는 질문은 문득 심각한 형이상학으로 인도한다.

 

과거를 모두 기억할 수 없다면 살아서 무엇하나?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가장 헛되이 바스러져서 망각의 무로 변하는 우리들 삶을 가장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점에서 어떤 모럴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다. 한 일생의 기나긴 자서전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그 지속적 시간 끝에 남는 무를 고려할 때, 차라리 이 확실하고 찬란한 현재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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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간 바람직한 대화법에 관한 지침서 | 자기계발/성공학 2007-10-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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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모와 아이 사이

하임 G. 기너트 등저/신홍민 역
양철북 | 200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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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하루를 비참하게 만들겠다고 작심하는 부모는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오늘 우리 아이를 야단치고, 잔소리를 해대고, 창피를 주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어머니나 아버지는 없다. 그와 반대로 많은 부모들은 아침에 일어나 이렇게 다짐한다. “오늘은 아이들과 아무 일 없이 지내야지. 야단을 치지도 않고 말다툼을 벌이지도 않고, 싸우지도 말아야지.”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좋게 먹어도, 원치 않았던 전쟁은 다시 벌어지고 만다.

 

교육심리학자 하임 기너트(1922~1973)가 쓴 <부모와 아이 사이>의 프롤로그는 이런 반어적 표현으로 시작한다. 정말로 많은 부모들이 이유야 어찌됐든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을 야단치고 잔소리하고 창피를 준다. 그러나 이 일상적 반복이 아이를 망친다고 기너트는 말한다. <부모와 아이 사이>는 육아서의 고전이라고 할 책이다. 1965년 초판이 나와 40여년 동아 전 세계 30여 언어로 번역됐다. 이 책은 2003년 뒤늦게 한국어판이 나왔는데, 그동안은 주로 교육 전공자 중심으로 읽혔다. 그러다가 지난 8월 말 <문화방송>의 특별프로그램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서 소개된 뒤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책이 나온 줄도 몰랐던 부모들이 새 독자로 들어와 순식간에 15만부 가까이 팔렸다.

 

아이들은 굳지 않은 시멘트와 같아서 무슨 말이든 그 위에 떨어지면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흔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들만이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지극히 일반적인 보통의 부모들도 종종 아이들의 마음에 선명한 상처 자국을 남기곤 한다. 이 같은 문제는 부모들 대부분이 자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즉,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개된 바람직한 대화방법은 첫째, 아이의 말 속에 숨은 아이의 마음을 찾을 것, 둘째, 설교와 비판은 아이의 분노를 일으킨다는 것을 명심할 것, 셋째,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감정에 대응하여 대화할 것. 특히 부모들은 '손님 대하듯' 아이들을 대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어떤 가게에서 손님이 우산을 놓고 갔을 때 주인은 우산을 찾으러 온 손님에게 "당신 나이가 몇 살 이야? 머리를 어디 두고 다니는 것 아니야?"라며 윽박지르지 않는다. "우산 여기 있습니다."라고 간단히 말할 뿐.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칭찬할 때 어떤 기술을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도 흥미롭다. 가령, 아이가 마당을 쓸었을 때 "마당이 아주 깨끗해졌구나" 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칭찬이지만 단순히 "참 착하구나" 라고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아이의 인격이나 성품이 아닌, 아이가 성취한 일에 대해 칭찬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약이라도 잘못 쓰면 부작용이 생기듯, 칭찬도 무조건 다 좋은 것이 아니며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충고이다.

 

이 책의 특장은 아이들을 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자세에서부터 아이들을 이끄는 구체적인 기술까지 일관성 있게 이야기한다는 점에 있다. 통상의 육아서에서 볼 수 없는 깊이 있는 통찰이 경건함을 느끼게까지 해준다. 지은이는 부모와 아이 사이 바람직한 대화는 아이의 마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지은이는 아이를 ‘손님’처럼 대할 것을 주문한다. 그럴 때에야 아이는 진정으로 사랑을 느끼게 되고 붐와 아이가 행복한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모욕을 느끼지 않고 규칙을 지키게 하는 법, 인격을 훼손하지 않고 비판하는 법, 판결을 내리지 않고 칭찬하는 법,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분노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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