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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가 독자들에게 내미는 선물 같은 스토리 '크리스마스 타일' | Veritatem dicere 2022-11-2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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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저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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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 은하가 차디찬 회복실에서 깨어나 한 결심은 이런 것이었다.

삶에 피하지방처럼 껴 있는 모든 영양가 없는 관계들과 결별해야지.

그것들이 은하 인생에 달라 붙어 얼마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일으켜왔는지는 막 수술을 마친 은하의 몸이 증거하고 있었다.]

 

마흔 여섯의 은하는 유방암 선고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주변 지인들에게는 갑상샘암에 걸렸다며 쉽게 회복 될 것이라고 속였다.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 은하는 엄마와 함께 다녔던 성당 마저 발길을 끊어 버리며 이렇게 스스로 벌을 받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수술 후에 찾아 온 극심한 통증,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하면서 은하는 자신의 생명이 이렇게 고통 속에 서서히 산화 되고 있다는 사실에 울적해졌다.

미혼인 채로 늙어가는 건 괜찮지만 어느 날, 치료 중에 홀로 죽게 된다면,,,이라는 자조적인 생각에 사로 잡힌다.

 

'고모, 요즘엔 부모도 자기 자식한테 그런 기대 안 해요. 바라지 마세요.'

 

암 발병이 시작 되기 전 은하는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작가로 한 순간도 쉼 없이 달려 왔다. 암 투병을 하는 동안 가족들 보다 직장 동료 후배들이 은하의 상태를 더 걱정해주며 항암 치료로 고통스러워 할 때는 집안 청소와 설거지를 해주는 후배, 신입 막내 작가들이 살뜰 하게 챙겨주었다.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발병 이전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며 그런 삶에는 오로지 고독 크기를 잴 수 없이 크고 깊은 고독만이 필요 하리 라는 결론이었다.]

 

은하는 암을 도려내고 난 후 육체의 한 부분이 떼어져 나간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홀로 남미로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이른 봄, 방송국으로 돌아 와 지지부진한 시청률의 늪에 빠져 버린 예능국으로 복귀한다.

남들 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 한 은하의 바로 옆 자리에는 보도국 아나운서 출신의 딱지가 붙은 덩치가 산 만한 남자 오태만이 앉아 있다.

조직 개편을 한 날 보도국에서 예능국으로 굴러 들어 온 불운한 낙오자 오태만은 구체적인 업무 담당 조차 받지 못한 채 ,섭외로 바삐 뛰어다니는 은하의 동태만 살피고 있다.

남 국장은 4차 산업 시기에 귀농하는 청년들의 인생 역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암투병에서 살아 돌아온 은하는 사람의 인생이 이런 식으로 역전 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보도국 출신 오태만은 뉴스 보도 주제를 찾듯 취재를 하기 시작한다.

조직 생활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로 군림하는 자는 바로 한가하게 유유자적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상사이고 더 두려운 존재는 가족 모두 해외로 보내서 홀로 살고 있는 기러기 신세로 24시간 회사 일에 매달리며 직원들에게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 상사 일 것이다.

인생 역전한 귀농 청년들에 관한 프로그램의 이름은 <마망자들>로 정해지자 프로그램을 이끌고 채워 나갈 진행자와 게스트들을 섭외 하고 프로그램의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미션과 상금을 걸기로 한다.

상금의 액수를 얼마로 정할 지 실강이를 벌이는 동안 은하는 정규직인 담당 피디 지민과 충돌한다.

아무리 이름난 작가여도 방송국의 개별 프로그램들 방송 되는 동안에 일하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자칫 정규직 피디들과 충돌 했다가는 곧바로 일자리를 잃게 되기에 아홉 번 도전 만에 겨우 아나운서 시험에 붙은 오태만에게 이런 저런 하소연을 늘어 놓는다.

보도국에서 예능국으로 굴러 들어 온 오태만은 아나운서 시험에 여덟 번 떨어 졌을 때 훌쩍 쿠바로 떠났다. 은하는 항암 치료 후 암 세포가 제거 되자 마자 홀연히 쿠바로 떠났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함께 회식 자리에서 고기를 굽던 피디 지민은 암 항암 치료 후에는 단백질 섭취가 필수 라며 자신의 엄마가 유방암 투병 했다는 말을 꺼낸다.

은하가 자신의 암이 갑상샘 암이라고 속였지만 아이돌 출신 방송인을 통해 유방암 투병 중이라는 걸 그녀의 모든 지인들이 알게 되었다.

 

'모두 방송계에서 계속 볼 사이잖아요. 이 바닥에서 위성처럼 빙글빙글 돌며 만나고 헤어지고 할 사이요. 방송국이 폭발하지 않는 한 함께 있을 운명이고요.'

 

뉴스 화면을 장악 하기에는 인물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보도국에서 쫓겨난 오태만은 오로지 발로 뛰어 다니는 취재와 섭외가 중요한 예능국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프로그램 장소를 찾느라 무리 할 정도로 기여코 산에 올라가는 오태만, 입과 코를 가리고 있던 마스크가 순식간에 불어 온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오태만은 젖어 있는 덤불에 미끄러져서 발목을 다친다.

은하는 자신도 함께 미끄러질 수 있는 상황에 발목을 다친 태만을 부추켜서 겨우 산 아래로 끌고 내려 와 간신히 연출 부 사람들에게 구조 요청을 한다.

섭외 장소인 식당에 도착한 은하는 주인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식당 안과 방을 둘러 보다가 대 식구가 모여 찍은 사진에 쓰여진 '회갑 기념' 문구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

'뭐 바랄게 있겄어. 그냥 아프지 마라, 허지.'

'아프지 마라. 죽어서도 아프덜 말고 살아서도 아프덜 말고 그 말벢에 더 있겄어.'

드디어 <마망자>가 방영 되는 날, 방송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은하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눈이 오고 있었다.

은하가 눈 오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 시키고 있는 동안 8시 뉴스가 시작 되기 전까지 후속 작업 편집이 끝날 수 있는지 오태만과 피디 지민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업으로 시끌벅적한 방송국 내분 상태에서 시작 되는 아홉 시 예능이 성공 할 수 있을까?

시청자들은 방송국의 이런 복잡한 상황을 알지 못하고 보도국에서 추방된 아나운서들의 시위 목소리가 점점 크게 울리더니 뉴스 방송 중에 거리 현장에서 취재 중인 기자 뒷 편에 누군가가 불쑥 나타난다.

 

'국민 여러분, MTN 부당 전보의 진실을 보도하겠습니다! 보도국 정상화 투쟁 중입니다. 저는 앵커 최지영, 김무한, 정치부 기자 주성태...'

 

뉴스 화면에서 곧바로 광고 화면으로 넘어 가버렸다.

<마망자들> 프로그램 출연 게스트로 준비 중인 오태만을 급히 호출하는 피디와 작가들

 

'나와, 나와요. 오태만 씨, 지금 사고 났어. 얼른 테이프 틀어야 해. 뉴스 사고 났다고.'

보도국에서 추방된 이들의 항의 시위로 뉴스 방영도 중단 되었고 뒤이어 방송 되는 아홉시 예능 <마망자>는 단 1초도 방영 되지 못했다.

'뉴스에서 그런 사고가 났는데 보도국 퇴사자가 상 받는 프로를 냈어 봐요. 일이 더 커졌겠죠.'

입봉작을 열심히 준비 했던 작가의 울분을 달래는 피디 지민, 첫 예능 방송 작가로 인생 역전의 꿈이 무너져 버린 막내 작가는 은하에게 쿠바에 가서 무엇을 위로 받고 구원 받았는지 묻는다.

'아, 그게 쿠바 였구나 페루 아니고.' 라며 말을 돌리며

'응, 구원이 있긴 있었더라고.'

은하는 쿠바에서 사흘 째 되던 날 문득 바다라도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해변으로 나갔지만 신기한 듯 홀로 있는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워서 한적한 숲 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걷고 또 걷다가 목 속 깊은 곳까지 모래 알들이 올라오듯 갈증이 차올랐다.

물탱크에 연결된 수도꼭지에 입을 대려는 순간, 앙상하게 말라 버리고 송곳니가 멧돼지처럼 입 밖으로 튀어나온 개와 맞닥뜨렸다.

무서움에 뒤로 물러 선 은하가 수도 꼭지를 돌리자 개는 물이 뿜어 나오는 호수에 혀를 대로 찹찹찹 마시기 시작했다.

갈증에 목 마른 개와 은하, 홀로 이곳을 떠도는 개의 모습을 보며 은하는 자신은 절대로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은하는 창밖을 한번 바라보았다. 회사가 보도에 세워 놓은 대형 전광판으로 눈이 계속 내렸고 은하는 잠깐 조카 겨레의 전화번호를 눌렀다가 신호가 가기 전에 끊었다.

잠시 후,,,

 

'고모 아까 전화 잘못 걸었어요?'

'아니'

'ㅋㅋㅋㅋ 다행이다.'

'고모 이제 안 아파요? 다 나았어요?'

 

크리스마스 이브, 새 하얀 눈이 하늘에서 흩날리는 동안 은하는 홀로 누운 방안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지도 않았고 하느님에게 기도조차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어떤 용서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 홀로 있는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구원 되지 않는 날, 그저 그렇게 크리스마스 날은 흘러가고 있었다.

 

[멋지다. 멋져. 방송하는 사람은 말이야. 바로 은하 작가처럼 넓은 세상을 체험해야지. 망망대해를 헤밍웨이 처럼 일엽편주로 나가서 청 새치도 낚고 고등어도 낚고, 이 작업 해보고 저 작업 해보고, 그래서 은하 작가가 훌륭한 작가이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거지]

 

명절이나 자신의 생일 조차 제대로 챙기거나 기념하지 못한 채 오로지 방송 프로그램을 위해 살아 가고 있는 사람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이 잃은 사람에게 전해주던 그 기적 같은 입김들이 세상을 덮던 밤의 첫눈 속으로....'

 

김금희 작가가 독자들에게 내미는 선물 같은 스토리 <크리스마스 타일>

 우리 모두 각기 다른 어려움과  슬픔 그리고 기쁨과 고독을 경험하며 2022년의 시간을 통과 하고 있다. 

한 해의 끝 자락 11월, 그리고 12월이라는 종착지에 다다르게 되면 앞 서 흘러간 시간들을 이겨낸 우리 모두에게 축복하듯 하늘 높은 곳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쏟아지길 바란다.

 

 

 

하늘 가득 눈 가루가 내릴지 모르는 그날, 2022년 12월 25일 ,우리 모두의 행복을 빌어주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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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후 삶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1,825개의 하루’를 갖게 만드는 마법 같은 다이어리북 | Veritatem dicere 2022-11-2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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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5년 후 나에게 Q&A a day(2023 Sandglass Edition)

포터 스타일 저/정지현 역
토네이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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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 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부지런해야 한다.'

'새로운 나로 거듭 태어나자.'

'망설이지 말자.'

인간은 매일 매일 눈을 뜨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과 동시에 규칙적으로 하고 행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요건인 의-식-주를 해결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면 오늘 그리고 내일의 나는 어떤 목표를 두고 살아가야 할까?

인간이 소망 한대로 모든 것을 얻고 죽을 때까지 별 탈 없이 행복하게 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누구에게 나 평탄하게 흘러 가지도 않고 평생 동안 아무 걱정 없이 살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궁금한 거, 해결해야 할 것, 찾아야 할 것들 대부분을 구글링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시대에 더 이상 미래를 위한 설계를 손으로 그려나가지 않게 되었다.

 

'우리 마음은 우주와 같아서 지옥이 천국이 되게 할 수도, 천국이 지옥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존 밀턴

그렇다. 매일 잠들기 전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타인의 삶의 한 단면을 쫓고 있는 내 동공 속에는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위한 계획이나 걱정이 들어 있지 않다.

“당신 삶의 소중한 변화와 성장을 지금 이 책에 기록하세요”

 

sns시대에 기록은 이미지를 찍어 올리는 시대로 터치 하나만 누르면 저장 되어 무심코 흘려보낼 뻔했던 우리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이미지로 남기면 그만 이다.

그리고 매년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구입해 놓는 다이어리는 펼쳐 보지도 않은 채 쌓아 놓고 있다.

막상 펼치고 나면 뭘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닫고 말아 버리는 다이어리는 어떤 용도라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다이어리는 한 번 페이지를 열면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 온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변한다고 들 하지만 자기 스스로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앤디 워홀

그렇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변할 것 같았던 나는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도전보다 현재에 안주 하는 것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 하고 있을 뿐이다.

무언가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답을 적어 놓게 될까?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성장과 변화를 거쳐왔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빛나고 행복했는지.....

어떤 문장을 적을 수 있을까?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해 있는가?

'현재 읽고 있는 글이나 책이 있다면?'

'내 삶에서 가장 결별하고 싶은 것은?'

 

'마지막으로 SNS에 접속한 때는?'

지금 이 순간 삶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시간을 이렇게 365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적어 나가다 보면 내가 목표 하고 있는 거, 꿈꾸고 있는 거, 추진 해야 하는 것들, 머뭇거리고 있는 것들, 화내고 성내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를 되돌아 보며 성찰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2010년 출간 이래 현재까지 600주 연속 미국·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를 기록 중인 365개의 질문+ 5년+ 1825개의 답으로 구성된 이 다이어리는 , 지난 12년 동안 영미 권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다이어리 북이다.

 

5년 동안 365개의 질문에 대해 하루에 하나 씩 답을 적어 나가다 보면 해가 바뀔 때 마다 지난 날의 내가 어떤 답변을 써 놓았는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쉽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5년 후 삶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1,825개의 하루’를 갖게 만드는 마법 같은 다이어리북

 

바쁜 일상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는 이유, 삶의 진정한 행복과 사랑,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록하며 5년 후에는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있는 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사람의 성격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시도에서 뭘 하느냐에 따라 규정된다.'

-제임스 미치너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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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발견과 혁신의 순간들을 | Veritatem dicere 2022-11-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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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위대한 과학

톰 잭슨 저/김주희 역
BOOKERS(북커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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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학문으로 선사시대 인류는 해가 지고 난 후 어둠을 밝혀주는 밤 하늘에 별들을 관찰 하면서 특정한 모양을 찾기 시작했다.

특정한 날에 보이는 별의 패턴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졌고 동굴 벽화에도 흔적이 남아 있다.

이렇게 인류는 달마다, 밤마다 시간마다 별자리를 관찰하면서 하늘의 현상, 구름의 움직임 그리고 달이 서서히 차오르고 일그러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계절의 변화 기후의 변화를 기록해 나갔다.

이런 기록들이 여러 해 동안 쌓여 나가면서 달력을 만들게 되었고 인류는 달력을 바탕으로 한 해의 농산물을 수확하고 기르는데 활용하게 되었다.

이미 인류는 기원전 4세기 무렵 부터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그렸고 별의 패턴 변화까지 정확하게 유추 했다.

 

 

기원전 2667년경 이집트에서 최초로 피라미드를 건축한 임호텝은 정확한 측량 도구를 이용해서 피라미드를 건설 했다.

이 시기에 인도 대륙에서 활동한 의사 수슈루타는 최초로 배를 가르는 외과 수술을 시행해서 환자를 완치 시켰다.

인도인 의사 수슈루타 보다 앞선 세기에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0경)는 의학의 정의를 흙, 공기, 물, 불의 네 가지 원소에 기반을 두고 네 가지 체액의 형태로 체내에 존재 한다고 정의 했다.

그는 질병을 발생 시키는 단서나 증세, 징후를 찾아 기록하면서 향후 진행되는 질병의 상태를 기록하며 환자의 증세에 따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치료 해야 할지 의학 역사상 최초로 진단 법을 세웠다. 그가 세운 진단 법은 질병이 어떤 단계를 거쳐서 진행되는지 환자의 성별 나이 대에 따라 질병의 상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기록하며 의사의 치료 자세와 위생 상태가 환자 치료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까지 의료인의 마음가짐과 정신 상태의 기본까지 확립 시켰다.

국가를 건설하고 문명을 발전 시켜 나가면서 사람들은 영원한 부와 영생 추구에 목숨을 걸며 주변에서 흔히 만질 수 있는 물건들을 황금으로 바꾸는 시도를 했다.

돌을 황금으로 만들어주는 기술 '연금술'

검은 흙으로 이루어진 땅을 황금 가루가 뿌려진 땅으로 만들었다는 이집트 나일강에서 시작된 전설은 세상의 모든 물질을 황금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에 오랜 세월동안 박혀서 여러 광물을 이리저리 뒤섞어나가는 과정에서 인류의 삶의 질을 크게 바꾸게 된 '화학'을 탄생 시켰다.

과학이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 되었다.

 

해와 달의 움직임, 별빛의 세기, 별의 패턴 양상은 지구 밖 우주 너머까지 시선을 넓혀서 세상을 이해 하고 우주 너머 세계의 법칙을 하나 씩 밝혀 나가면서 인류의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 해왔다.

에너지와 물질과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는 물리학, 모든 물질을 탐구하며 서로 다른 물질과 융합해서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탄생 시키는 화학, 생명의 탄생과 주기, 생성을 추적하고 연구 하는 생물학까지 과학은 인류의 오랜 경험이 축적 되면서 발견하고 증명하고 추적하면서 발전 시켜 나갔다.

과학이 온갖 미신과 불신의 장막에서 빠져 나와서 명확한 법칙을 통해 확실하게 증명 시키고 입증 시킬 때까지 수천 년이 걸렸다.

현상을 증명하고 생각을 끌어내서 아이디어를 시험하고 결과물의 완벽한 증거를 통해 마침내 진리를 찾기 까지 과학이 시대를 변화 시키기 시작 했던 건 약 350년 전으로 점진적으로 세분화 된 학문이 완벽하게 자리 잡았던 시기는 1850년대 부터 이다.

이 시기 부터 과학자들은 세포 생물학, 전기 물리학, 전파학, 원자학등으로 다양한 과학 분야를 연구 하면서 인류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과학이 사회에 통용되어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까지 수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론이 진짜인지 아닌지 수 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 해야 하는 과학은 기술적인 발전과 맞물리면서 다양한 장비와 보조 기술을 통해 빛의 속도로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인간의 시력으로 볼 수 없었던 우주의 전체 물질은 망원경이란 도구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사진기를 통해 사물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었고 세상과 인간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보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발명을 시작으로 인류는 단 한번에 서로 하나로 연결 되는 시대를 맞이 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고 실시간으로 원하는 정보를 검색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자 앨런 튜링에 관한 영화를 보고 난 후 그의 삶이나 그가 발명한 테이터 해독기 튜링 기계에 관한 정보도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관련 분야 전공자가 아니거나 이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정확하게 '튜링 기계'가 무엇인지 이해 하기 힘들다.

여기 이 책에 '튜링 기계'에 대해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튜링 기계

현대 디지털 컴퓨터의 기본 기능은 1936년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이 수행한 사고 실험의 부산물이다.

튜링은 결정 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결정 문제란 논리적 과정, 다른 말로 알고리즘이 하나의 답에 도달할지, 아니면 종료점에 도달하지 않고 영원히 순환할 것 인지를 알고자 하는 수학적 수수께끼이다.

튜링이 영원히 순환하는 알고리즘을 구별하기 위해 기호나 데이터가 기록된 테이프를 사용하는 '가상 기계'를 상상해서 일련의 규칙에 따라 통제 받는 데이터의 이동을 알아내는 튜링 기계를 발명한다.

그가 고안해 튜링기계는 오늘날 컴퓨터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영원히 순환하지 않는)에 구조화되고 처리되는 방식의 모델이 되었다.

여기 이 책에 적혀 있는 설명은 읽고 나니 튜링 기계가 현재 우리가 24시간 사용하는 컴퓨터의 모든 작동 원리에 적용, 응용 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가 한 연산 연구는 이미테이션 게임과 AI인공지능 기능까지 발전 되어서 모델링을 위한 컴퓨터 그래픽까지 구현하는 세상을 맞이하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튜링 기계에서 발전 시킨 연산으로 특정 사물이나 체계를 가상의 모델로 만들어 복잡한 현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연구 할 수 있는 메타 버스의 시대가 되었다.

사물과 시각을 입체화 시켜서 우리 눈에 가상의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과학 기술은 기후까지 모의 실험을 해서 메마른 땅의 인공 구름을 띄워 놓고 비를 내릴 수 있고 유기체의 유전 암호를 편집하는 유전 공학을 통해 규칙적 간격을 갖는 짧은 회문구조 반복 단위를 배열 시켜서 마치 가위로 특정 유전자를 잘라내어 치료제를 투입해서 편집 할 수 있다.

이제 인류는 유전자 서열을 미리 정하거나 설계가 완료된 DNA를 주문해서 바이오 해커가 설계한 DNA를 활용해서 신체 장애와 유전적 질병을 치료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아주 평범한 별 주위로 공전하는 조그마한 행성에 사는 진화한 원숭이 족속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주를 이해한다. 그렇기에 인류는 무척 특별하다.'

-스티븐 호킹

코로나 시대, 이상 기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기에 우리는 감염될 것을 두려워 하고 있고 기상 이변으로 발생하는 각종 자연 재난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과 고난은 이전의 시대, 수세기 전에도 있어 왔다.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이전의 세대 사람들도 두려워 했던 것으로 우리가 기후 변화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질병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 낸다면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인류의 삶에 불빛이 되어주는 과학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과학은 소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이 책을 통해 과학의 역사와 실험, 이론 연구 방법이 어떤 것인지 알아가면서 현재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조상으로 부터 물려 받은 유전자의 존재부터 단일 세포에서 성장해서 분열과 분화를 거듭한 줄기 세포를 유도해서 손상되거나 병든 신체 부위를 복원하는 기술을 넘어 500억개 이상의 기기의 데이터를 주고 받아 각양각색의 정보를 수집하고 패턴을 탐색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빅테이터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훈련 시키는지 세상을 바꾼 발견과 혁신의 순간들을 담은 <위대한 과학> 책을 통해 배워보자.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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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의 大기자, 연암

강석훈 저
니케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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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언덕에 오르니 수레와 말이 길을 메워 갈 수가 없다. 동문에서 사문까지 5리 사이에 독륜차 수만 대가 길을 꽉 메워 몸을 돌릴 곳조차 없다 뛰어나고 화려하며 번화하고 부유한 것이 이미 심양이나 산해관은 비교할 상대가 아니었다. 통주에서 북경까지 40리는 돌을 깔아 길을 놓았는데 수레의 쇠바퀴와 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더욱 웅장하여 사람의 심신을 흔들어 편치 않게 만든다.]

 

1780년 조선조 정조 4년, 조선은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70세 생일인 만수절을 앞두고 축하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한 정조는 자신의 고모부인 박명원을 진하 사절단의 단장역을 맡긴다.

진하 사절단을 이끌고 갈 단장인 박명원은 연암 박지원과 8촌 사이로 황제 건륭제의 생일인 8월 13일이 다가오기 3개월 전 5월 25일 연암 박지원을 진하 사절단의 일원으로 합류 시키고 현장 답사를 하기 위해 떠난다.

 

당시 연암 박지원은 정조의 최측근이었던 홍국영에게 쓴 소리를 한 이후 화를 입게 될 까봐 지인들이 서둘러 개성 부근 연암골로 피신 시켰다.

개성의 산골 중에 산골에 들어간 연암은 유유자적 하며 살지 않고 그곳에 가장 낮은 계급인 하층민들의 삶을 두루 살피며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들어 담을 쌓아 올렸고 목축을 하기 위해 물과 목초가 좋은 곳을 찾아 다녔다.

배고픔을 견디기 힘들어 죽고 싶다는 백성들을 구제 하고 싶었던 연암은 건륭제의 70세 생일 잔치가 열리기 전해 1779년 홍국영이 한양 밖으로 쫓겨나자 진하 사절단 단장이 된 8촌형을 돕기 위해 한양으로 돌아 왔다.

당시 조선의 사대부들은 명나라를 숭배하고 청나라를 되놈이라고 칭하며 오랑캐 문화 민족이라고 폄하했지만 연암은 조선에 없는 것을 갖고 있는 청나라의 문물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북학파로 이번 사절단 답사에서 청나라 문화를 생생하게 경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1780년 5월 25일 한양을 출발한 사절단은 압록강에서 북경까지 뻗어 있는 서른 세개의 역참을 거쳐 6월 24일 마침내 한 달 만에 북경에 도착했다.

 

 

[조회를 보는 정전 앞에 있는 궁전을 태화전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한 사람만이 산다. 그는 성을 애신각라라 하고 종족은 여진족 만주부이다. 직위는 천자이다. 호칭은 황제이다. 직분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일컬을 때는 짐이라 하고 모든 나라에서는 그를 높여 폐하라 부르며 그가 하는 말을 조라 하고 호령하는 것을 칙이라 하며 그가 쓰는 모자를 홍모라 하고 그가 입은 옷을 마제수라고 하며 왕위를 전해 온 것은 4대째요, 연호를 건륭이라 하였다.]

 

1780년 8월1일 건륭 45년 가을, 조선에서 건너 온 연암 박지원은 70세를 맞이한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세계 곳곳의 사신들과 나란히 서서 청 왕조가 그어 놓은 사절단 일원 구역에 섰다.

 

그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궁궐, 위풍당당한 위용을 드러낸 황제의 모습과 함께 직접 발로 뛰며 정보를 수집하고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며 중립적인 식견으로 현지인들의 생활 모습과 함께 광활한 청나라의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풍속, 음악, 학문 등에 대한 방대한 기록을 하기 시작 한다.

스스로를 삼류 선비로 규정하고 ‘해야 할 말을 하고 써야 할 글을 쓰는’ 자세와 정신으로 무장한 연암 박지원(1737-1805)

 

그가 기록한 조선 최고의 르포타쥬 <열하일기>의 대장정은 '보고 들은 대로 쓰되 해야 할 말은 하고 써야 할 글은 쓰는'기자' 정신에서 출발했다.

 

첫째, 남의 나라에서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갑자기 물어볼 수 없다.

둘째, 언어가 서로 달라 잠깐 사이에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외국 사람은 염참을 한다는 혐의를 받을 것이다.

넷째, 너무 깊이 파고 들어가면 그 나라에서 꺼리는 일을 범하기 쉽다.

다섯째, 묻지 않아야 될 일을 물으면 무슨 정탐을 하는 것처럼 된다.

여섯째, 타국에서는 그 나라가 금지하는 것을 지키며 거처 해야 한다.

 

연암은 '황교문답'편 서문에 청나라 현지 취재 방식의 기준을 정해 놓고 매일 아침 눈 만 뜨면 청나라 사회의 발전상과 주변국가의 정세, 청나라의 외교 정책, 만주족이 장악해 버린 청나라의 한족 구역 관리 정채, 만주족과 한족의 갈등 양상 그리고 청나라의 대 조선 정책들을 주도 면밀하게 관찰하며 현지인들과 끊임없이 접촉했다. 그는 항상 '어떻게 하면 조선이 발전해서 백성들의 삶이 지금 보다 나아질 수 있는지, 조선이 외세의 침입에 어떻게 대처 하고 방어 할지.'깊이 고뇌 했다.

청나라의 상세한 상황을 알기 위해서는 황실의 주요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인물들을 만나야 했기에 연암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모색 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고 청나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접근 방식을 취했다.

 

[그 나라의 장수와 재상들의 잘나고 못난 것, 풍속의 좋고 나쁜 것, 만주족과 한족의 등용되고 소외되는 것, 고거 명나라의 사정등은 함부로 물어서는 안 될 내용이다. 저들도 응당 대답하지 않을 것이며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다.]

 

 

연암은 청나라 관리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대국 청나라의 위세와 문화, 예법, 음악을 찬미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로 대화의 문을 열어나갔다.

비록 서로 다른 말을 썼지만 종이에 한자로 적어가며 필담을 나누면서 연암은 청나라인들 얼굴 표정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탐지 해서 청나라가 어떻게 고도의 정치력으로 한족을 다스리는지 그 비책을 하나씩 헤아려 나갔다.

하지만 자신들의 나라가 천하의 제국이라고 생각했던 청나라 왕실이 조선 땅에서 건너온 학자를 자유롭게 활보하게 내버려 둘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연암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감시원을 붙이며 수시로 어디에서 누굴 만났는지 알아냈다.

연암은 그때마다 조선 땅에서 거대한 제국을 관광하러 온 낭인일 뿐이라며 자신의 신분을 낮췄다. 청나라 관료들과 감시원들은 연암의 소탈하고 호방한 성격에 서서히 마음을 문을 열었고 연암은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에게 조선 땅에서 가져온 약품들을 주며 어디에 누가 자주 가는지, 주요 인물들의 동태와 동선을 알아냈다.

당시 청나라에서는 조선의 약재가 우수하다는 걸 알고 가장 귀한 물건으로 연암은 항상 품 속에 조선 제일의 '청심환'을 품고 다니며 높은 신분의 관료들과 허물 없이 필담을 나누었다.

[내가 계단 아래에 이르렀더니, 조공이 문 밖으로 나와서 맞이하였다. 그가 몸소 나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으라고 하기에 내가 머뭇거리며 사양했더니, 조공도 굳이 내게 먼저 앉으라고 청한다. 내가 '그대는 귀인이시고 저는 먼 나라의 변변치 못한 사람인데, 손님의 예로 대해 주시어 감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라고 했다. 조공이, '당신은 공적인 일로 중국에 오셨소이까?' 라고 묻기에 나는, '아닙니다. 관광하러 귀국에 왔습니다' 라고 했다.]

관리들의 출 퇴근 시간까지 알아낸 연암은 이들의 직위와 봉급까지 정확하게 알아 맞추며 청나라 사회의 통상적인 경제 상황까지 분석해서 그동안 자세하게 알지 못했던 청나라의 무역 규모 실태까지 조사하며 제국의 형세를 가늠해나갔다.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 천하의 사대부들을 안정 시킬 방법이 필요했다. 지식인들을 장악해야 안정적인 통치와 국정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청나라는 먼저 어떤 학문을 따르는 사람이 많은지 몰래 살폈는데 주자학이었다. 그리하여 청나라는 주자를 공문십철의 반열에 올려 제사 지내고 섬기며 주자의 도학을 황실이 대대로 이어온 가학이라고 선포했다.]

 

청나라는 한족을 통치 하기 위해 무자비한 힘을 내세우지 않고 우선 지식인들 부터 포섭해나갔다. 그래야만 무분별한 반란과 어수선한 사회를 진정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죄를 묻고 형벌을 내려도 이들의 책은 불태우지 않았다.

연암은 청나라 황실이 주자를 섬기는 정책을 통해 한족의 최고위층과 지식인들의 반란을 잠재우고 민심을 사로잡은 고도의 통치술이라는 걸 알아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에는 산과 계곡이 많아 수레가 적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백성들이 이다지도 가난한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이겠는가.”

 

당시 조선은 여전히 청나라를 되놈으로 칭하며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명나라만 숭배하고 있었다.

[대체로 중국 선비들은 그 성질이 자랑하고 떠벌리기를 좋아하며, 학문은 해박한 것을 귀하게 여겨 경서와 역사서를 닥치는 대로 인용하여 이야기하느라 입에 자개바람이 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외교적 언사에 익숙하지 못해 혹 어려운 것을 묻는데 급급하거나 당대의 일을 섣불리 이야기하기도 하고 혹은 우리의 의복과 갓을 과시하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의복과 관을 부끄러워 하는지 살피기도 하며 혹은 바로 대놓고 한족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다그쳐 물어봄으로써 그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이따위 행동은 비단 그들이 꺼려하고 싫어하는 행동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어설픈 실수이고 역시 섬세하지 못한 것이다.]

주자학에 매몰된 주류 기득권층이 명분에 집착해 백성의 삶을 돌보는 데는 무능했던 조선 사대부들이 수 십명의 하인들에 둘러 쌓인 채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연암은 한양에서 가져간 붓들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청나라 곳곳을 취재 하며 백성에게 이롭고 국가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자 정수리에 수정을 단 사람은 바로 호부상서 화신이라는 자란다. 눈매가 밝고 수려하며 얼굴은 준엄 하고 날카롭게 생겼으나 다만 덕과 그릇이 작아 보였다. 나이는 이제 갓 서른 하나란다.]

청나라에 도착 하자마자 어떤 사신들 보다도 발빠르게 움직여서 현지인들을 포섭한 끝에 나흘 뒤인 1780년 8월 12일 건륭황제의 최측근이자 심복인 호부상서 화신을 찾아낸다.

 

건륭황제의 심복 화신은 만주족 출신으로 황제의 친위대에서 일하다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화술로 황제의 눈과 귀를 사로 잡았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이용해 온갖 진귀한 보물을 뇌물로 받아 먹으며 황제가 좋아하는 것만 보여주고 말해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황제가 가장 사랑하는 여섯 살 막내 딸과 약혼을 시켰을 정도로 뛰어난 술수를 갖고 있었다.

호부상서로 불리는 화신의 모든 동태에 촉각을 세운 연암은 정조에게 보고 할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5년 후에 불어 닥칠 화신의 운명까지 예언한다.

 

[화신은 황제의 총애를 한창 독차지하는 귀한 신하이기 때문에 황제 역시 선물을 받고는 '화신이 나를 위하고 공경하는구나. 자기 집에 소장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짐에게 헌납하다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황제는 장차'짐은 사해의 부를 다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진주 포도가 없는데 화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물건을 얻었을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되는 날엔 화신은 위태로우리라.]

 

1799년 2월 건륭제가 세상을 뜨자 마자 화신은 자신이 이끌고 있던 부패 관료 집단들과 함께 비극적 최후를 맞이 하고 청나라는 환란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청나라의 위세를 높이 평가했던 연암은 '무엇이든 극에 치달았다가는 언젠간 무너지게 된다.'라는 예언을 하며 역사적으로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멈춘 적이 없었던 만리장성 고북구 관문 앞에서 청나라에 휘몰아 닥칠 환란과 전쟁이 조선 땅으로 흘러들어 올까 걱정했다.

'내가 열하에 있을 때 예부에서 우리나라와 관련된 일을 거행하는 것을 보고는 천하의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황제 자리에서 60년 동안 앉아 있었던 건륭제는 1796년에 황위를 가경제에 물려 준다. 1년 뒤 백련교도의 난이 일어 나고 청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연암은 건륭황제의 평화로운 시기에 중국 곳곳을 누비며 청 조정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심한 권력 다툼, 부패, 향락을 목격하며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는 걸 예감했다.

부패한 관료들, 간신들이 나라의 운명을 갉아 먹고 있던 시기에 연암은 청나라 한 가운데 서서 조선의 앞날에 닥쳐 올 먹구름에 대비 하기 위해 이용후생, 실사구시(實事求是)한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용(利用)이 있은 뒤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뒤에야 정덕(正德)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면 어찌 덕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부강한 나라 건설과 백성의 삶 증진에 보탬이 되는 실용을 정치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에는 산과 계곡이 많아 수레가 적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백성들이 이다지도 가난한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이겠는가.”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이 여전했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연암은 수레 등 유통수단의 발달이 청의 부국을 가져온 주요 요소라고 지적하고, 조선의 현실을 비판했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에는 산과 계곡이 많아 수레가 적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길이 좋지 않고, 수레보다 봇짐을 많이 이용하다 보니 백성들에게 필요한 물품의 원활한 유통이 안 된다. 백성들이 이다지도 가난한 까닭이 대체 무엇 때문이겠는가.”

연암은 우연히 길에사 마주친 농부, 짐꾼, 행상들과 필담을 나누며 농사 짓는 법 , 수레 만드는 법을 배워서 조선으로 돌아 온 뒤 누에치기, 나무 가꾸기 등을 연구해서 손수 농사법을 실행해 보았다.

“정치에서 먼저 필요한 것은 덕(德)과 도(道)가 아니라 백성의 삶을 도탑게 하는 것이다. 오랑캐를 배척하려거든 우선 우리나라의 무딘 습속을 바꾸고, 밭을 갈고 누에 치고, 질그릇 굽는 일부터 장사하는 것까지 배워야 한다. 천하의 도는 현실에, 저 똥 덩어리에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땅이 험준해서 수레를 사용할 수 없다 라고 말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국가에서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니 길이 닦이지 않을 뿐이다. 수레가 다니게 된다면 길은 절로 뚫리게 마련이니, 어찌 길거리가 좁다거나 고갯마루가 높음을 걱정하랴?'

연암은 광활한 요동 벌판을 처음으로 두 발을 내딛었을 때 이렇게 외쳤다.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 번 통곡할 만한 곳이구나”

그는 분명 드넓은 영토를 바라보며 청나라의 운명을 읽었고 조선의 앞날을 걱정했을 것이다.

중국 열하에서 북경으로 되돌아갔던 8월 17일 연암은 성리학의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시대의 조류에 무지몽매 했던 조선의 현실을 깨부숴 버려야 겠다고 다짐한다.

 

“천하대세를 보고 천하지우를 근심한다”

1786년 7월 오십세에 접어든 연암은 음관으로 선공감 감역에 임명되어 조정 건축물의 건축과 보수 ,토목을 담당하는 기관의 종 9품 벼슬자리에 오른다.

청빈한 선비로 가족들을 굶기면서 까지 집필에 몰두 할 수 없었던 연암은 자신이 부임한 곳의 백성들이 자신 보다 더 굶주리고 제대로 된 옷 한 벌 없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하며 백성의 삶을 돌보는 선정을 펼친다.

직접 밭을 갈고 나무를 베어 다리를 만들고 교량을 설치해서 하루 하루 노동으로 고된 백성의 삶을 위해 단 하루라도 쉼 없이 일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현실은 조선 왕조 역사상 최고로 학문에 조예가 깊고 개혁 성향이 강했던 군주인 정조가 문체반정을 통해 조선 사대부들의 문체를 검열했다.

정조가 문체반정에서 가한 제재는 다섯 가지로 중국의 잡서 반입 금지와 과거 시험응시 자격 박탈, 관리의 직위 해제, 반성문 제출, 군역에 북무하게 하는 충군 조치를 통해 지식인들의 사상을 검증했다.

하지만 기가 세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연암은 전제 군주에게 어떤 반성문도 제출하지 않았다.

1797년 연암이 면천 군수에 임명된 뒤 감사의 말을 하러 어전에 들어가자 정조는 '내가 지난번에 문체를 고치라고 했는데 과연 고쳤느냐?라고 묻고는 제주 사람 이방익의 중국 표류기를 들려주며 글을 지으라고 명한다.

정조는 자신이 아끼는 신하 연암에게 반성문 제출 대신 여행기 감상문 제출을 허락하며 세상의 이치에 밝고 아부나 아첨하지 않는 충신 연암의 직언도 듣고 있었다.

조선 사대부들은 연암의 <열하일기>가 조선 땅 전체에 해악을 가져 올 것이라는 상소문을 줄줄이 내며 파면 하라는 빗발치는 요청에 정조는 백성들이 읽지 못하게 조치만 하고 연암에게 불어 닥칠 화를 막아 주었다.

백성들이 읽지 못했던 열하일기는 조선 땅을 변화 시키지 못한 채 100년 동안 서고에 갇혀 버린다.

1901년에서야 그가 남긴 <열하일기>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다시 읽혀지면서 재평가 받기 시작했지만 조선 땅은 연암이 살았을 때보다 부국강병은 커녕 망국의 길목에서 서로 다투는 동안 온갖 외세들이 조선 땅을 헤집고 다녔다.

 

[그대는 왜, 예로부터 본래 지녀온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제도, 중국의 존중할 만한 관례와 업적을 모조리 터득하고 돌아와서는 책자로 모조리 저술하여 온 나라에 쓰이게 하지 않소? 그대는 이런 일은 아니 하고서 한갓 조공을 바치는 사신만 따라다녔단 말이오?]

 

만일 정조가 문체반정을 내세우지 않고 열하일기를 서고에 처박아 두지 않았다면 조선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안 본 것이 없이 다 살펴보아 하나도 놓친 사물이 없다'고 했을 정도로 연암은 위풍당당한 기세로 조선땅을 누르고 있었던 청나라의 모든 문화와 기술을 직접 눈으로 보고 연구 해서 조선 땅을 개혁하고 싶어 했다.

연암은 한 평생 나라와 백성을 위해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정신으로 살았다.

우물 안 개구리 격인 후진국 조선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부민강국의 방법을 고뇌 했던 연암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게 된다면 어떤 일침을 퍼부을까?

신령 한 거울은 요괴를 비추고

신령 한 구슬은 잊은 걸 생각나게 하지요.

끊어진 줄을 잇는 아교가 있는가 하면

혼을 부르는 향도 있답니다.

2022년 시진핑이 3연임에 성공했다. 세계의 시선은 21세기 황제 시진핑 주석에 꽂혀 있고 그의 목소리는 최측근인 14살에 베이징 대학에 입학한 ‘신동’으로 유명한 중앙서기처 서기 리수레이를 통해 흘러나온다.

2022년 중앙 서기처 서기로 임명된 리수레이는 2007년 차기 지도자로 낙점 된 시진핑 주석이 중앙당교 교장을 맡았을 때부터 시 주석을 보필 하며 연설문 작성은 물론 그림자 수행을 하고 있다.

 

[황금을 도굴 한 세 도적이 술을 마시기로 하고 한 명이 술을 받으러 간다. 술을 받으러 간 도적은 황금을 독차지 하기 위해 술에 독을 타고 남은 두 명은 황금을 더 많이 나눠 갖기 위해 술을 받아 온 도적을 죽이고 실컷 술을 마신다. 이리하여 세 명의 도적은 모두 죽고 황금만 남았다. 그 황금을 줍는 사람이 생겼을 것이고 그 때문에 몇 천 명이나 더 죽을지 모를 일이다.]

 

명실상부한 ‘1인 지배’를 확립한 중국 공산당, 여전히 싸움질을 일삼는 한국 정치인들, 국민의 삶은 나날이 고달 퍼지고 있고 코로나 전파력의 기세는 꺾여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말똥구리는 자신의 똥 구슬을 아끼고 여룡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여룡은 자신에게 구슬이 있다 하여 말똥 구슬을 비웃지 않는다.'

어느 해 보다 힘든 해, 2022년의 한국, 말똥구리의 비웃음 소리만 넘쳐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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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한 번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 에서 | Veritatem dicere 2022-11-0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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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경아르떼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00배 즐기기

한경arte 특별취재팀 저
한국경제신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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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정말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죽기를 원해.

남들 보다 월등히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이 세상에 마술이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 하려고 노력 하며 공유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게 아닐까?

그 마술이 성공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알게 뭐야.

안 그래?

대답도 그런 마술 같은 공간 속에서 존재하겠지.

-영화 <비포 선라이즈> 중에서

 

금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자 마자 기차 역으로 달려 가서 비엔나 행 유로 스타에 올라 탔다.

늦은 저녁 비엔나 역에 도착하면 마중 나온 친구와 함께 비스트로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 들고 야외 음악회가 열리는 빈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서 연주 되는 음악은 빈에서 태어난 음악가들 작품들로 깊어가는 여름 밤,그 시절 그 순간, 밤 하늘에 빛나는 별 만큼 내 삶은 예술의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매일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예술 공연이 펼쳐 지는 곳으로 음악회를 비롯해 오페라, 연극, 전시, 문학 행사로 예술의 빛이 단 하루도 꺼지지 않는 도시다.

 

빈의 링스트라세 중심에 자리 잡은 '빈미술사 박물관'에서는 중세 바로크 그리고 르네상스 회화와 조각상을 비롯해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주요 미술 책에서 한번 쯤은 지나쳤던 방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얀 브뤼헐 1세 (1568-1625) 꽃 다발을 꽂은 파란 꽃병 1608

피터 브뤼헐의 아들인 얀 브뤼헐은 벨벳 브뤼헐, 꽃 브뤼헐로 불릴 정도로 17세기 정물화 작품의 황금 시대를 열었다.

그의 작품 속 꽃들은 정물화 작품에서 다른 화가들이 잘 다루지 않는 종류의 꽃들 중 회색빛과 검은 빛깔의 붓꽃이 중국 명나라 청화 백자에 꽂혀있다.

그는 떨어진 꽃잎이 그려진 정물화를 '메멘토 모리'라고 부르며 덧없는 인생을 암시했다.

특히 빈 미술사 박물관은 브뤼헐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네덜란드 황금 시절의 회화 작품들 중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코르넬리스 데 헤엠(1631-1695) 아침 식사 1660-1669

 

17세기 네덜란드의 아침 식사는 하루 중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가벼운 음식들로 차려 지는데 17세기 중반 중산층 네덜란드 가정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온 과일들이 아침 식탁에 올라 갔다.

그 중 레몬은 생선 류와 굴을 자주 섭취하는 네덜란드인에게 빠질 수 없었던 과일로 17세기 정물화에 자주 등장하며 세련된 색감과 빛깔로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즐겨 그려 넣었다.

'빈미술사 박물관'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하고 있어서 매일 방문해도 항상 새로운 경험과 볼거리로 가득 찬 곳으로 빈 시민의 문화 생활의 중심이자 전 세계에서 찾아 오는 관광객들로 1년 내내 붐비는 곳이다.

 

 

'빈미술사 박물관'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예술 작품들을 방대하게 소장 할 수 있었던 건 거대한 영토를 통치 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권력 때문에 가능했다.

중세 초기 스위스 북부와 독일 남부 지방의 조그마한 성주 집안에서 시작된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에 뿌리를 내린 티롤 방계와 스페인 왕족들과 결혼한 스페인계 합스부르크 가문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으로 권력을 확장해나갔다.

 

신성 로마제국 황제 자리에 올라간 루돌프 1세를 시작으로 20세기 마지막 합스부르크 가문을 지켰던 오스트리아 최후의 황제 카를 1세까지 1564년 부터 1918년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들이 권력을 잡았다.

 

17세기 스페인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로 나눠져서 통치 하면서 수집했던 미술품들이 오스트리아 수도 빈으로 옮겨졌다,

 

*펠리페 4세

당시 스페인 왕조 통치자 였던 펠리페 4세가 수집하고 소장 한 작품들이 빈으로 넘어 갔다. 그중 펠리페 4세가 고용한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의 주요 작품들부터 방대한 스페인 작품들이 빈으로 옮겨졌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1656

 

이 작품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를 너무나 사랑했던 황제 페르디난트를 위해 그린 작품이다.

벨라스케스의 대표작인 '시녀들'에서 입었던 드레스와 비슷한 드레스를 입은 다섯 살 테레사 공주의 가장 사랑스러웠던 시절을 그렸다.

드레스의 섬세한 레이스와 장식 그리고 공주의 탐스럽게 빛나는 금발 머리카락까지 생동감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화가 벨라스케스는 어린 공주를 위해 기본 스케치를 하지 않고 대략의 형상만 잡은 뒤 공주가 움직이지 않을 때 재빠른 붓놀림으로 표면의 두께, 농도를 다르게 해서 생동감 넘치는 색감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얀 판 덴 후커(1611-1651)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1642

수집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페르디난트 2세 황제의 아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은 네덜란드 지역에서 회화 작품만 1400여점을 수집해서 빈으로 이송했다.

 

그는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한 시기에 브뤼셀에 살면서 플랑드르 회화 작품을 대거 수집하고 예술가들에게 후원을 하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품까지 끌어 모았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생활 터전이자 왕조의 상징이였던 '빈 궁전'이 시민을 위한 미술사 박물관이 된 것은 18세기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덕분으로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인물이다.

 

*마르틴 판 메이텐스 2세(1695-1770) 마리아 테레지아 1745-1750

 

아버지 카를 6세의 첫 번 째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왕으로 인정 받기 위해 무려 8년 동안 왕위 계승 전쟁을 벌이며 시민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화려한 생활이 아닌 근검 절약하는 왕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선대에 지은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쇤브룬 궁전을 로코코 양식으로 개조해서 생활 반경을 줄였고 여름 별궁이였던 벨베데레 궁전을 사들여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수집품을 전시해서 시민들에게 궁을 개방했다.

 

 

합스부르크 왕가 역사상 유일한 여성 통치자 였던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남편 프란츠 슈테판에게 씌워 주고 제국의 모든 통치권을 손에 넣었다.

16명의 자식을 낳고 모든 자식들을 유럽 왕실로 보내 정략 결혼을 시켜서 제국의 안정을 다져나갔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조세 제도를 개혁해서 귀족과 성직자들로 부터 받아낸 세금을 시민 교육과 예술 행정에 투자했고 화려한 결혼 예식이나 교회 예배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시에 받아낸 벌금으로 초등교육 의무 제도 운영에 쏟아 부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예술을 통해 시민을 교육 했고 민심을 다스리며 밖으로는 예술 교류를 통해 외교력을 펼쳐나갔다.

쇤브룬 궁전에 걸려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화 속 모습은 이전의 화려한 차림의 황후 들과 달리 꾸밈 없고 소박한 모습이다.

 

그녀는 남편 프란츠 슈테판이 사망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머리에 어떤 장신구도 착용 하지 않은 채 검은 드레스를 입었다.

본격적으로 궁전이 빈 시민 전체에게 무료로 공개 되었던 시기는 제국의 시대가 저물어갔던 시기로 수도 빈을 근대적인 도시로 변모 시키며 링 스트라세 도로를 건설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 시대 였다.

 

그는 역대 통치자들 중 가장 오랜 기간인 68년의 세월 동안 오스트리아를 다스렸던 황제로 19세기 유럽 곳곳에서 일어 났던 혁명의 물결이 제국으로 밀려 들어 오던 시기에 헝가리와 합병을 해서 러시아를 견제 했다.

하지만 보수와 혁명, 전통과 개혁의 물결이 거세게 요동쳤던 시기에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제국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는 가족도 지키지 못했다.

 

그는 바이에른 공작의 둘째딸인 엘리자베트와 결혼 해서 네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첫째 딸을 장티푸스로 떠나보낸다. 극악한 성격의 시어머니 조피 대공비가 황후 탓으로 돌리며 나머지 자식 세 명을 뺏어버린다.

사실상 세 명의 아이들의 양육권을 잃어버린 황후 엘리자베트는 궁 밖을 떠도는 신세가 되버리고 조피 대공비의 명령에 엄격하고 강압적인 군대식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후계자였던 황태자 루돌프가 내연녀와 동반 자살을 하고 황후 엘리자베트는 스위스를 여행 하던 중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 당한다.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1837-1898)

 

바이에른 왕가의 외손녀로 태어난 엘리자베트 공주는 합스부르크 왕가로 시집을 가기 전 도시에서 화려한 궁전 생활을 해본 적 없이 시골에서 자유롭게 성장했다.

 

원래 합스부르크 왕실은 그녀의 언니인 헬레나를 황후로 선택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지만 15살 엘리자베트에게 첫 눈에 반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고집으로 두 자매의 운명이 뒤바뀌게 되었다.

 

시어머니와의 갈등, 두 아이의 죽음 그리고 황제인 남편의 외도로 인해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던 엘리자베트는 아들 루돌프의 자살로(암살 당했다는 설이 있음) 황후 자리를 내려 놓고 왕실을 떠난다.

건강 악화로 스위스 체류 중 제네바 호수에서 무정부주의자인 루이지 루케니의 칼에 찔린 엘리자베트는 당시 강박적일 정도로 20인치 허리를 유지 하기 위해 고래 뼈로 만든 무거운 코르셋으로 허리를 졸라 매고 있어서 자신이 칼에 찔렸다는 것 조차 알지 못했다.

 

 

엄청난 피를 흘리고 나서야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라는 말을 남긴 채 눈을 감는다.

 

 

 

황제의 후계자로 낙점 된 사촌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사라예보에서 암살 당하자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전쟁을 선포한다.

결국 황제의 동생인 오토 프란츠의 아들 카를 1세가 왕위를 물려 받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페배 한지 2년 만에 합스부르크 왕조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다.

연이은 가족들의 죽음, 제국의 암울한 앞날 속에서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링슈트라세 일대에 공공 건축물을 건설해서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고 합스부르크 소유의 궁전을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으로 건립해서 방대하게 수집한 합스부르크 가문 소장품을 전시했다.

 

빈에는 미술사 박물관 뿐만 아니라 벨베데레 궁전을 비롯해 쇤브룬 궁전 곳곳에도 유럽 전역의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미하엘 광장을 중심으로 365일 음악이 흘러 넘친다.

 

빈의 영혼으로 불리고 있는 '슈테판 대성당'은 25만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쌓아 올린 모자이크 양식의 화려한 지붕은 빈의 상징으로 대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화가 샤갈이 만든 푸른 빛을 뿜어내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 인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은 이 천명이 넘는 시민을 수용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오페라 극장이다.

 

잘츠부르크 음악제가 열리는 7월과 8월에만 문을 닫고 새해 첫 날 1월 1일 빈 필하모닉 연주를 시작으로 6월 30일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오페라와 발레 그리고 각종 음악연주회가 울려 퍼진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해질 무렵으로 맞은편에 자리한 알베르티나 미술관 테라스에서 바라보면 링슈트라세를 중심으로 화려한 빛을 내뿜는 극장들의 빛의 향연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로 유명해진 '프라터 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민 놀이 공원으로 빈 시민들은 부르스텔프라터(Wurstelprater)라고 부른다.

 

영국 런던의 대관람차 보다 더 크고 오래된 빈 프라터 공원의 대관람차에 올라가면 빈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 온다.

1년 365일 예술로 가득 찬 도시 빈의 12월의 화려한 불빛은 '빈 시청사'에 켜진다.

 

첨탑이 중앙에 솟아 있는 빈 시청사는 네오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건축물로 시청 앞 광장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이 켜지는 12월, 빈 시민들은 광장 마켓에서 파는 글루스바인을 마시며 스케이트를 탄다.

 

 

'모든 것은 끝이 있잖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간과 어떤 특정한 순간이 중요하지.'

                                                                                         -영화 '비포 선 라이즈'

 

합스부르크 왕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들이 남긴 문화적 유산, 예술의 혼은 빈에서 영원한 빛을 내며 시민의 모든 일상을 채워주고 있다.

 

 

일생의 한 번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 에서~

아니면,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2022년 11월 -20223년 3월 31일 까지)보러 가기~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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