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서쪽 숲나라에 놀러오세요
http://blog.yes24.com/sejinjeong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네코마마
서쪽 숲나라 마녀 네코마마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8월 스타지수 : 별8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명작 속 먹는 이야기
멋진 언니들을 만나보자
넋두리..
그동안 연재했던 글들(주간한국 포함)
대중문화 리뷰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왕꽃선녀님 명월 케이준 앵글로 금욕 기황후 심봉사 공양미 소리바다 코코넛
2022 / 08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1
최근 댓글
'군 가산점 논란'은 '꼰대'로 인한.. 
올리브의 이름이 '올리브 오일' 이었.. 
저희 동네에는 '김충복 과자점'의 추.. 
빵순이라 김영모과자점을 본점으로 부러.. 
80년대에 여성학과 함께 무속 연구가.. 
새로운 글
오늘 1 | 전체 25264
2013-05-26 개설

전체보기
'김영모 빵집'의 추억 | 명작 속 먹는 이야기 2014-03-15 06:54
http://blog.yes24.com/document/762115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엄마 오늘 좀 늦으니까, 김영모 빵집에서 기다려"

초등학교 시절, 늦둥이인 나를 돌보기 버거웠던 엄마는 이런 말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섭섭함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김영모 빵집' 이란

장소는 그런 서운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곳이었다.

 

서너평 남짓한 빵집 문을 열면 점원 언니가 나를 위해 롤케이크와 우유를 준비했다.

 

점원 언니의 배려나 사장님의 미소보다도, 그곳의 진짜 매력은 당시로선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색다른 빵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야 친숙한 이름인 머핀이나 제노와즈, 팔미에

등등을 김영모 빵집에선 만날 수 있었다.

 

그냥 식빵도 다른 곳과는 달라서 버터를 아끼지 않아 촉촉한 맛이 일품이었음.... 거짓말 안보태고, 갓 구운걸 사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부드러워 납작해져 있었다. 나는 그 집의 거의 모든 빵 종류를 '섭렵'했고, 특히 치즈케익에 환장했다.

 

색다른 빵들만 찾는 나에게 사장님은 "어린게 빵 맛을 아네"라고 기특해 하시기도 했다.

 

잊고 지냈던 김영모 빵집을 다시 떠올리게 된 계기는 대학교 신입생 때였다. 학교에서 '머핀'이라는

이름이 붙은 빵이 내가 알던 납작하고 하얀 빵이 아닌 달달한 컵케이크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것..

나중에서야, 하얗고 담백한 '잉글리시 머핀'이 원조라는 사실을 알고 왠지 모를 뿌듯함마저 들었다.

 

김영모 빵집은 이제, 강남 엄마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타워팰리스에 입성했다.

우연히 찾아가 본 그곳에서, 김영모 아저씨는 나이만 얼굴에 앉은 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빵을 굽고 계셨다. 매장은 훨씬 화려해졌고, 원산지 표기에는 '프랑스산', '이탈리아산' 등이

붙어 있다. 하지만 한켠에는, 그 옛날 우리를 설레게 했던 소박한 빵들이 남아있어 작은 웃음을

짓게 한다.

 

김영모 빵집의 성공신화를 보고,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자리에 오기까지는 대한민국

최고 명장으로 불릴만한 그의 실력이 기반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시절에 지금처럼 X리

바게트, X레주르 같은 프렌차이즈점들이 널려 있었다면 어땠을까?

 

프렌차이즈를 무조건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프렌차이즈를 통해 소비자는 저렴하고, 표준화된

품질의 빵을 살 수 있다. 다만 프렌차이즈에 밀려 실력 있는 빵집들이 문을 닫는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똑같은 빵만 먹고 산다는 살짝 무서운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게

얼마나 많은데 말이지......

 

리치몬드 홍대점이 있던 자리에는 흔하디 흔한 카페가 자리잡았다. 맛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환경까지도 비슷비슷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뽀빠이와 시금치 | 그동안 연재했던 글들(주간한국 포함) 2014-03-14 06:19
http://blog.yes24.com/document/762010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문화 속 음식기행] <뽀빠이> 시금치맛 길

2005/07/16 22:40

복사http://blog.naver.com/hispi/40015315809

전용뷰어 보기


힘과 무관, 뇌기능 향상엔 탁월
시금치 회사 홍보 목적으로 '힘'설정, 눈 건강에 필수 영양소 듬뿍


‘체력이 국력’이던 시절, 우리 어린이들의 식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화 한편이 있다. “뽀빠이, 살려줘요!”라는 외침과 함께 등장하는 근육질의 사나이, 시금치만 먹으면 괴력이 솟아나는 <뽀빠이>가 그 주인공이다.

1929년 1월 17일. 일간지의 시사만화가였던 엘지 세가(Elzie Segar)는 그의 한 줄 짜리 만화‘골무극장(Thimble Theater)'에 뽀빠이 캐릭터를 처음 등장시켰다. 처음에는 단역에 불과했던 뽀빠이는 시간이 갈수록 큰 인기를 끌며 당당히 주인공으로 발탁된다. 뽀빠이 만화는 1933년 ‘뱃사람 뽀빠이’(Popeye the Sailor)라는 이름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으며, 80년에는 로빈 윌리엄스와 셀리 듀발이 주연한 뮤지컬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뽀빠이라는 뜻은 눈이 튀어나온다는 뜻의 ‘Pop eye'에서 나왔다고 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발음으로 알려진 탓에 패스트푸드점 ‘파파이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 전혀 다른 캐릭터로 혼동되는 일도 있었다. 뽀빠이의 연인인 올리브의 성은 재미있게도 ‘올리브 오일’이다. 이들은 올리브의 오빠인 ‘캐스터 오일’을 통해 만나게 되었으며 뽀빠이가 태어난 지 70년이 되던 99년 뒤늦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 강한 미국의 상징

대중 문화의 역사에서 뽀빠이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바는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다. 작은 키에 팔뚝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해 있고, 뱃사람 특유의 거친 말투까지 지닌 그는 요즘의 기준으로 볼 때 ‘매력 없는’ 남성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악당 부르터를 무찌르는 영웅으로 묘사되며, 연인 올리브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마초’의 원조와도 같은 뽀빠이라는 인물은 바로 그 당시 국력이 팽창하고 있던 ‘강한 미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뽀빠이와 같은 힘을 내고 싶어 싫어하던 시금치를 억지로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뽀빠이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될 당시 미국의 시금치 소비량은 30% 이상이나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시금치의 영양소는 힘을 내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힘이 세진다는 설정은 말 그대로 만화 같은 내용이다. 영양학적으로 힘을 내기 위해서는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같은 에너지원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시금치에는 이들 영양소가 거의 들어있지 않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게 된 것은 원래 미국 어린이들에게 시금치를 많이 먹도록 하기 위한 시금치 회사의 홍보가 목적이었다. 당시 시금치는 칼슘과 철분이 많아 성장 촉진과 빈혈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의해 시금치가 철분의 왕이라는 속설 역시 허상이라는 것이 ‘폭로’되었다. 1870년 시금치의 영양소를 분석하던 E. 본 울프 박사는 실수로 소수점 하나를 잘못 찍었고 그 때문에 시금치에는 실제보다 10배나 많은 철분이 들어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실들이 시금치의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시금치에는 철분은 그다지 많지 않은 대신 우리 몸에 필요한 비타민 A, B1, B2, C와 섬유질, 요오드 등이 골고루 들어 있다. 특히 비타민 A는 채소 중에서 시금치에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눈의 건강에는 시금치가 필수적이다. 또한 시금치는 뇌기능의 노화를 막는 데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반드시 끓는 물에 데쳐먹어야

시금치를 조리할 때는 반드시 끓는 물에 데친 다음 삶은 물을 따라내고 먹어야 한다. 생 시금치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수산은 신장과 요도 결석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금치를 데치면서 소금을 넣으면 색상이 더 선명해지고 조직도 단단해져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식당에 가면 색을 유지하기 위해 중조를 넣어 데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중조가 시금치의 섬유소를 파괴하여 쉽게 뭉그러지게 된다.

아이들에게 시금치를 먹이는 일은 아직도 많은 부모들에게 난제일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억지로 먹기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에 섞어 자연스럽게 그 맛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오믈렛이나 그라탕 등에 시금치를 첨가하면 색다른 맛이 난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중에는 반죽에 시금치 즙을 넣어 고운 초록색이 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몸에 좋은 시금치를 좀 더 쉽게 먹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 아닌가 싶다.

시금치의 영양가를 효율적으로 섭취하기 위해서는 기름에 살짝 볶아 먹거나 육류의 간, 등푸른 생선, 굴, 조개 등 비타민 B2가 풍부한 음식과 함께 먹으면 좋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그 많던 프랑스 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 멋진 언니들을 만나보자 2013-10-13 08:59
http://blog.yes24.com/document/743458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볼거리가 그닥 풍부하지 못하던 쌍팔년도 시절... 우리집 연례행사 중 하나는 미스유니버스,

미스월드 같은 미인대회였다.

 

미인대회 감상 포인트는 어느 지역 여자가 이쁜지, 한국 대표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지

(글고보니 우리집 딸들 살짝 재수없었구나..--;;) 등등이었음.

 

그당시엔 동양인이 체격이 좋지 않았던지라 역시 한국여자는 안돼...라는 자조섞인 이야기도 나왔고..

(하긴 그때 벌써 서구식 미인이 표준처럼 자리잡았었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미인 많기로 이름난 프랑스 대표가 하나같이 좀 안습이었던 거다...

 

당시 기준으로 키도 작은편..통통하고 그닥 눈에 확 들어오지도 않던..

 

그 이유를 최근에야 알았다. 미인대회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었다.

 

프랑스 여배우들을 보면 시대의 아이콘들이 넘쳐난다. 하이렌더 증후군 소리까지 돌았던

이자벨 아자니를 비롯해 그 뒤를 이은 80년대의 소피 마르소..최근엔 '여신'이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모니카 벨루치까지....(아.. 얘는 이태리 출신이긴 하네...)

 

이런 여자들은 자기 스스로가 스타일에 자신이 있다. 한마디로 내가 이렇게 잘났는데

왜 굳이 대회 같은데 나가서 점수를 매기냐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유럽에서 미인대회는 어쩌다 한번씩 구색맞추기로 나오는 행사고 사람들의

흥미도 못끈다. 아직 마초 문화가 강한 이태리 정도나 그런게 남아있지...

 

최근 읽은 책 중에 '자신의 지위, 학벌, 혹은 소속된 곳 등을 통해 자신을 말해야 하는

인간은 얼마나 비루한가'라는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한국이란 사회가 아직 외모나 타이틀 같은 외적인 면에 집착하는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라는 그녀들의 구호가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면도 많다.

 

얼마전 인터넷에는 판박이로 똑같은 한국 미인대회 프로필 사진들이 돌았다.

솔직히 말해 소름끼쳤다.

 

TV를 보면 아저씨들 취향에 맞춰 뜯어고친 얼굴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색기를

폴폴 풍기는 소녀들이 넘쳐난다.

 

이젠 조금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왕꽃선녀님'은 우리 이웃일 수 있다. | 대중문화 리뷰 2013-10-03 15:14
http://blog.yes24.com/document/742387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우리 부모님은 별별 책을 안 가리고 읽는 분들이다보니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접하게 된 책 중 하나가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 중 '팔도 굿' 편이었다. 한국 무속을 연구해온 황루시 교수가 저자임.

 

첫 장에 펼쳐진 사진과 설명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인간문화재 김금화씨가 수제자 채희아씨에게 내림굿을 해 주는 장면이 자세히 묘사됐다. 더 놀라웠던건..새 무당이 된 채희아씨는 서울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엘리트 여성이었던 것.. 그땐 어린 마음에 무섭다...불쌍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십여년이 지나 나름 세상 알만큼 안다고 생각되는 나이에 나는 브라운관에서 '신병'이라는 운명을 맞은 또 한명의 여성을 접했다. 바로 임성한 작가의 '왕꽃선녀님' 속 이다해가 연기했던 초원이다. 그녀 역시 있는 집 자식에 똑똑한 대학원생. 엄친아 신랑감까지 있는 남부럼지 않은 몸이었다가 갑자기 찾아온 신병으로 인생의 굴곡을 경험한다.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이 두 여성이 무당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인 후 어떻게 살아가게 됐느냐이다. 그 둘의 삶은 망가지지 않았다. 채희아씨는 자신의 신기를 무용으로 승화시킨 예술가로 활약중이라고 한다. 초원 역시 포기해야 한다 믿었던 남자(무빈)와의 사랑을 되찾아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사실 무당이 천시받았던 것은 신분제가 지배하고 있던 조선시대 이야기다. 인간이 법앞에 평등해진지 이미 백여년 넘게 지났는데 이들이 보통 사람처럼 살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실제로 무속인들 상당수는 정규 교육을 받거나 생업을 위해 다른 직업을 갖는 데 아무 제약이 없다. 사람들의 편견이 문제지...

 

그리고 한국 무속에서 무당은 다소 특수한 존재였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른바 '신내림'이란 현상을 내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입장은 안되지만서도... 대체로 감성이 예민한 여성들, 특히 신분제와 남녀차별로 고통받고 살아온 여성들이 신내림을 경험하고 무속인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성직자이면서도 가장 천시받는 계급을 대변한다.

 

이들의 역할은 말 그대로 멀티 플레이어였다. 의사이면서 카운슬러, 혹은 종합 예술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른바 '보통' 사람들(특히 남자)과 가진자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능력 때문에 무당에게 의존하면서도 그들을 천시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서구 사회의 마녀(정확히 말하면 마녀사냥의 희생양)는 혼자 사는 여성이 많았고, 약초나 허브 등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녀에게 의존하면서도 마녀를 두려워하고 천하게 여겼다. 이거 한국의 무당과 싱크로율이 상당히 유사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임성한 작가 특유의 막장성 디테일들을 제외한다면 '왕꽃선녀님'의 메시지는 상당히 괜찮다는 게 내 평이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에서 무속은 떼놓을 수 없는 존재이고, 작두 탄 무당은 바로 우리 이웃일수도 혹은 가족일 수도 있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개척한 이 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쓰다보니 약간 산만한 느낌이... 추후 다듬겠습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보바리 부인을 된장녀 부류로 묶어야 하나? | 멋진 언니들을 만나보자 2013-10-01 23:03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742203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얼마 전 안선영씨가 쓴 연애지침서를 읽고 뜨끔했던 구절이 있다.

 

"드라마는 여성용 야동이다"

 

남자들이 야동으로 왜곡된 섹스를 배우듯, 나도 드라마를 통해 왜곡된 연애를 배웠었다..소싯적에...

 

그 결과 남은 것은 수없는 병크와 흑역사...ㅠㅠ(아놔.. 눈물 좀 닦고...)

 

병적 낭만주의에 빠져 현실을 돌보지 못하고, 파멸에 이르는 여성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바로 보바리 부인이다.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 나를 신데렐라로 만들어주기를 꿈꾼다는 점에서 보바리 부인은 요즘의 '된장녀'와 비슷한 여성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과연 그녀는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 뱁새에 불과한 인물인가?

 

보바리 부인을 다시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였다.

 

물론 그녀가 여러 가지 면에서 현명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아름다운 외모에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를 이용해 먹으려는 쓰레기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보바리 부인, 아니 엠마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눈뜨고 당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엠마가 후줄근한 시골 의사의 짝으로는 너무나 고귀한 여성이었다는 데 있다.

 

만약 엠마에게 결혼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아니 최소한 당시 사회의 벽을 뛰어넘을 지혜와 대담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배운 것 많고 열정에 몸을 맡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엠마는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가꿔갔을 것이다.

 

조르즈 상드처럼 남장을 하고 글을 통해 여성의 주체성을 부르짖었을 수도, 혹은 미모를 이용해 상류층 남성들을 이용해 먹으며 자유롭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을 가져다 줄 존재는 세상의 어느 왕자님도 아닌 자기 자신뿐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르쳐줄 사람이 엠마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남자만이 여자의 행복을 결정짓는다는 잘못된 정보를 끊임없이 주입했다.

 

저자인 플로베르는 말년에 "보바리는 나 자신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 여성의 삶을 허물어뜨린 것은 결국 허영심도, 병적 낭만주의도 아닌 지독한 남성중심 사회였다.

 

행복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1 2 3 4 5 6 7 8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