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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30 개설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스크랩] 목계지덕(木鷄之德)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6-07-2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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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사랑방

 

기성자(紀渻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기르고 있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

 

닭이 쓸만한가?”

아직 멀었습니다.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덤벼들려고 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도 상대를 노려보고 혈기왕성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

이젠 됐습니다. 옆에서 다른 닭이 아무리 울음소리를 내며 싸움을 걸어와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木鷄)’ 같습니다. 비로소 그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다른 닭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 버립니다. - 장자, 외편

 

유명한 목계지덕의 우화이다. 노자의 부쟁지덕’(不爭之德: 다투지 않는 덕)이 장자에게 와서 목계지덕으로 한층 구체화되고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옛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근거로 나무를 깎아 닭을 만들어서 앞에 두고 정신수양을 했다고 한다. 싸움닭들이여, 이 우화를 깊이 새겨들으시라. 

 

노자 3

차경남 저
글라이더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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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빙자한 리더십 이론은 사상누각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3-11-0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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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상식 반이성의 시대에 ‘예수’와 ‘공자’는 무엇인가?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3-11-0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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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경영 도우미인가?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3-11-02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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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가 기가 막혀!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3-11-02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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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상이 문란할 때, 리더는 자기를 내세운다.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3-11-0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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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처세술을 가르쳤는가?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3-09-1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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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리더십에 반하다.-3
 <’반하다’는 말을 혹시 오해할지 몰라 한자를 덧붙입니다. 이 때의 ‘반’은 反, 또는 叛 입니다.>
 
3 . 공자는 처세술을 가르쳤는가?
 
공자 노자가 처세술을, 리더십을 가르쳤는가?
일단 논어 그리고 노자가 지은 책의 성격을 생각해 보자.
요즈음 출판된 많은 수의 책들이 공자를 처세술의 교사로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실제 공자가 그러한 사람이었던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1) 공자는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지난 호에 말한 바와 같이 남에게 보여주려고 공부하는 것에 대하여 공자는 무어라 했을까? 남에게 보여주는 것에 대하여 그는 남의 평판을 개의치 말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러워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자왈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락호아 인불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 아) (학이 -1)
 
<공자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아니해도 화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런 글을 처세술로 이해하는 학자도 없지 않다. 신정근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는 구절은 일종의 처세술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논어가 전형적인 학문이라기보다 세상살이의 지혜니 현명한 처세술의 창고로 보인다. 물론 학문의 정의가 달라지면 그것에 따라 이야기도 달라질 것이다.> ( <논어의 숲,공자의 그늘> 신정근, 373쪽)      
 
그러나 논어 학이편에서 공자는 계속 말한다.
 
子曰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학이 -16)
(자왈불환인지불기지요 환불지인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치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다.>
 
이 말은 이인편에서도 발견된다.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이인- 14)
(자왈 불환무위요 환소이립하며 불환막지요 구위가지야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위가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설 곳을 근심하라.>
 
공자의 결론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기를 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따라서 애초에 공자는 리더가 되고 말고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군자의 학문은 그것으로 자기를 아름답게 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

[중용] 11장에도 같은 의미의 글이 보인다,
 
君子依乎中庸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
(군자는의호중용하야 둔세불견지이불회하나니 유성자아능지니라)

<군자는 중용에 의지하여 세상에서 숨어 있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니, 오직 성자라야 그렇게 할 수 있다.>
 
2) 노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노자의 책 [도덕경]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
 
오강남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경은 일차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위한 지침서라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도덕경, 오강남, 57쪽)고 하니 오강남은 도덕경을 사람을 다스리는 즉, 리더십의 지침서로 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박영호는 말한다.
<사람들은 노자를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처세(處世)의 글로만 여긴다. 그러나 그 먼저 노자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각도(覺道)의 글이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따라서 알게 된다.> (박영호.서문중에서)    
 
기세춘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노자는 인생이 무엇인가, 인간의 실존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장(老莊)은 세상을 등진 은퇴철학이다. 은퇴철학이란 국가. 사회 .도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을 말하는 것이다.> (기세춘, 노자, 46쪽)
 
그렇게 도덕경의 참 의미를 찾는 분들은 인간의 실존을 논하는 노자를 보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노자의 글을 처세술로 해석하고 있으니, 그 차이가 무릇 기하이뇨? 리더십으로 보고 있는 그들의 오묘한 기술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따라서 공자, 노자 할 것 없이 리더십과는 상관이 없는 분들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공자를, 노자를 리더십의 교사로, 처세술의 선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들의 마이더스적 기술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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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노자도 리더십 주창자 ?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3-09-1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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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리더십에 반하다.-2
 <’반하다’는 말을 혹시 오해할지 몰라 한자를 덧붙입니다. 이 때의 ‘반’은 反, 또는 叛 입니다.>
 
2. 공자, 노자도 리더십 주창자?
 
논어는 근본적으로 철학이다. 그러니 공자를 처세술로 읽어가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마치 우물에 가 숭늉 찾는 격이다. 먼저 철학으로 읽어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사람이 된 다음에 처세를 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논어를 처세술로, 더 나아가 리더십의 안경으로  읽어가는 것은 수박의 속은 맛보지 않고 껍질만 핥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 일찍이 공자를 리더십의 소재로 삼아 갖은 변설을 늘어 놓는 책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노자(노자마저?)를 리더십의 근거로 삼아, 리더십을 논하는 책을 보고는 더 이상 수수방관 할 수 없어, 그간 갈무리 해 놓은 자료를 떠들어 보았다. 왜 그렇게 리더십에 목을 메고 있는지?
 
지난 번 글에서 본 바와 같이 리더십 주창자들은 이제 공공연히 노자를 들먹이고 또한 공자를 들먹인다. 이제 장자도 분명 그러한 대상에 들어갈 날이 (아니 벌써 그럴지도?) 멀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그 분들이 사람들더러 리더십을 가지고 사람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라고  그토록 애를 쓰며, 평생을 바쳤던 것일까? 노자, 공자가 리더십 운운 하였을까?
 
기세춘은 도올의 논어 강의를 비판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그런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도올의 노자는 …..한군데도 취할 곳이 없다. 그의 목적은 2천여 년 전의 공자와 노자를 자본주의 사상가나 성공한 경영자로 각색하는데 있는 것 같다. 굳이 그의 공헌이라면 엄중한 역사적 학문적 자료인 논어와 노자를 비역사적이고 비학문적인 처세훈으로 둔갑시켜 시장의 취향에 영합하여 상품화에 성공한 것을 들 것이다.> (노자, 기세춘, 11쪽)  
 
먼저 공자의 글 하나를 살펴보자. 공자도 오늘의 시점에서 리더십 운운하며 자기의 생각을 처세술로 바꿔버릴 것을 예상했는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子曰 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論語, 憲問 -25)
(자왈 고지학자는 위기러니 금지학자는 위인이로다)
 
위의 글 해석 두가지를 소개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의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 충실을 위해 하였으나, 지금의 공부하는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한다.”>(논어, 김학주, 247쪽)
 
<공자왈, 옛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배웠고, 지금 배우는 사람은 남을 위하여 배운다”>.
 
위의 두 가지 번역의 문제점을 잘 파악해야 한다. 대개의 번역은 두번째 번역을 취하고 있는데, 한문을 직역하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뜻 보면, ‘남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싶은데 '남을 위한다'는 말은 '위한다'는 말이 아니라 ‘남에게 잘 보이도록’이란 뜻이다. 그래서 공자의 이 말씀은 김학주의 번역으로 읽어야만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원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근사록(近思錄)에 이 구절의 깊은 뜻을 음미하고 있는 글이 보인다.
 
古之學者는 爲己나 其終至於成物하고
今之學者는 爲人하다가 其終至於喪己하나니라
 
해석해 보자면 이렇다
“옛날의 학자들은 자신을 위하여 학문을 하였으나 결국은 남을 성취시키기에 이르렀고,
오늘 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학문을 하다가 결국은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순자(荀子) 역시 공자의 이 말씀을 인용하여 군자의 학문방법을 말하고 있다.
 
“군자가 학문하는 방법은 귀로 들어 마음에 새기고 온 몸에 가득 펴서 모든 동정에 아낌없이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마디 말이나 한가지 거동에 절도가 있어 모든 사람의 법칙이 된다. 그러나 소인의 학문하는 방법은 귀로 들으면 바로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에는 겨우 네 치 정도에 불과한데, 일곱 자나 되는 몸뚱이를 무슨 수로 아름답게 꾸밀 것인가? 옛날의 학자들은 오로지 자기 몸을 위하여 학문을 하였건만 오늘 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학문을 한다(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군자의 학문은 그것으로 자기를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의 학문은 그것으로 자신을 짐승으로 만들 뿐이다.”
(순자, 최대림 역, 15쪽)  

정약용도 이점을 분명히 했다.
“六經四書로써 修己하고, 一表二書로써 天下國家를 다스리니 本末이 갖추어진 것이다.”
      (시문집, 권 16. 18a – 다산의 논어해석연구, 김영호, 35 쪽)

다산도 육경사서(六經四書)는 자기 자신을 닦는 책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공자는 탄식한다. “子曰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마치 지금 21세기에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는 듯이.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공자가 말한 시점이 오늘 현재의 시점이 아니다. 몇천년 전 일이다. 그러니 오늘 일이 아니라, 그때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고, 어제 오늘 만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런 일은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맞다.
 
몇천년 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앞에 있는 듯 여겨지는 공자 말씀, 그래서 공자의 그런 경구가 지금껏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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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이여, 노자도 알아두자...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2-04-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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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이여, 노자도 알아두자...

 

하여튼 목회자들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 읽기에 깊이도 있어야 하겠지만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보는게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많은 (영적) 리더십 책을 읽어보면서
느낀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 책을 쓰신 분들이, 아니 리더십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하다 못해 천자문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았더라면
이런, 저런 주장은 하지 않았을 것을 ...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난 번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를 쓰면서

노자의 도덕경에서 한 가지 생각을 빌려온 것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不尙賢 使民不爭 <불상현 사민부쟁>
똑똑하고 유식하고 현명한 것을 높이 사는 사회는 경쟁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똑똑하고 아는 것을 서로 재고 경쟁해서 보다 잘난 사람이 위로 가는 게 이세상 이치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자연히 경쟁과 다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현명한 사람을 높이 받들지 않아야만 사람들이 다투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란 존재를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으로 정의해 놓았으니 누군들 리더가 되고 싶지 않겠으며, 리더가 되기 위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사람에게 영적 리더십은 없다, 301쪽)

 

그러니 리더십 주창자들이 노자를 한번 읽었더라면
사람을 이용하여 그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하여 쓰이는 리더십 이론을
교회에 들여올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성찰이 없었으니
리더십 이론을 들여올 생각을 했겠지....
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노자, 장자 등 동양 고전을 읽으며 리더십에 관련된 부분을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노자, 장자도 사람에게는 리더십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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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가 리더십의 보고? | = 라오시우스, 리더십에 반하다 2012-02-0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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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볼 때 논어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중략) ...논어는 자기 수양을 통해 인격을 연마하고 스스로 강해짐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자기계발서이고, 지혜의 공급처이며, 리더십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양병무, 행복한 논어 읽기, 6쪽) 

 

천만에, 절대 그럴리가 없다.

그럴 리 없다는 말은 내가 논어를 읽고 내린 결론이기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위의 책 저자도 위의 책 곳곳에 주장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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