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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30 개설

-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의 수채화 | - 헤르만 헤세 2009-05-3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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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며 유쾌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일찌기 어린 시절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홀로서게 되었다.
이제 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내게는 아무런 가능성도 없으며,
나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다.
하잘 것 없고, 불안하고, 오만한 자아.
그것 때문에 그토록 오랜 세월 싸워왔지만 끊임없이 다시 정복당하고 죽었다가는
번번히 다시 살아나 기쁨을 차단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던 그의 소아 小我
그가 지금 어린 아이처럼 이토록 자신감 있게 두려움 없이
기쁨에 넘칠 수 있는 것은 이 소아 小我 가 죽었기 때문이 아닌가?
너무 많은 지식, 지나친 금욕, 지나친 실천과 노력이 자아를 죽이는데 방해가 되었다.
어떠한 스승도 자신을 가르침으로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에게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강은 어디에서나 동시에 존재한다.
원천에서나,
강어귀에서나,
폭포에서나,
나루터에서나,
여울에서나 강에서나,
산에서나
어디에든 동시에 존재하며
강에는 오로지 현재가 있을 뿐
과거의 그림자도,
미래의 그림자도 없다는 것,
나의 일생 또한 한줄기 강이었다.
모든 것은 현재에 존재할 뿐.
 


삶의 한가운데서 순간순간 단일 單一이 개념을 생각하며,
느끼며, 들이 마실 수 있는 마음의 준비이며 능력, 영혼의 태세
 


세계는 순간순간 완전한 것이며
모든 죄는 이미 그 안에 은총을 지니고 있네
모든 어린애 속에는 백발 노인이
모든 젖먹이 속에는 이미 죽음이
모든 죽어가는 존재 속에는 이미 영생이 깃들어져 있는 것이지.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세계를 경멸하지 않는 것,
세계와 나를 미워하지 않고
세계와 나 그리고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과 경외의 마음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라네.
 
글을 쓰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은 더욱 훌륭한 일이다.
지혜로운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은 인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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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 유희 | - 헤르만 헤세 2009-05-21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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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알 유희

현대 독일의 최대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헤세가 만년에 심혈을 기울여 쓴 마지막 대작. 20세기 문명을 비판하고 상실된 인간 정신의 재건을 부르짖는 미래 소설. 현대의 반문명성에 대한 회의와 경고, 그리고 유토피아적 대안으로써 창조된 헤세 문학의 가장 찬란한 진수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문학의 위대한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

 

Herman Hesse

 

1877년 남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는 처녀시집 『낭만적인 노래 Romantische Lieder』(1899)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1899)을 출판하게 된다. 특히 처녀시집『낭만적인 노래』는 R.M. 릴케의 인정을 받으면서 문단도 그를 주목하게된다.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고 그에게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얻게 해준 것은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카멘친트 Peter Camenzind』(1904)였다. 이 책에는 주인공 페터 카멘친트가 끝없는 자기 탐구를 거쳐 삶의 근원적 힘을 깨닫게 되고 관조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해 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1904년에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고, 스위스의 보덴 호반(湖畔)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사를 간다. 여기서 그는 시를 쓰는데 전념했고, 1923년에는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초기의 낭만적 분위기의 시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인도 여행을 통한 동양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야만성에 대한 경험, 그리고 전쟁 중 극단적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문학계의 비난과 공격, 아내의 정신병과 자신의 병 등 힘들어져가는 가정 생활 등은 그를 변하게 만든다.

그는 정신분석학에서 출구를 찾으려하는데 융의 영향을 받아서 이후로는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한시도 쉬지 않았던 그는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으로

 

현실의 무게는 수레바퀴 밑으로 그들을 밀어 넣지만 결코 짓눌려서도 지쳐서도 안 되는 소중한 청소년기에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한 열정과 미래, 방황과 좌절을 섬세하게 묘사한『수레바퀴 밑에서 Unterm Rad』(1906),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그린 소설로 가수 무오토, 작곡가 쿤, 이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르트루트를 그린『게르트루트 Gertrud』(1910),

 

남성과 여성 속박과 자유 시민성과 예술성이 전편을 통해 끝없는 대립 상태로 이어지면서 결국은 주인공 베리구드가 나름대로의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 『로스할데 Rosshalde』(1914)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크눌프 Knulp』(1915)등이 있다.

 

또한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미안 Demian』(1919)은 신앙이 깊고 성결하며 예의바른 부모의 세계와 하녀, 장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 주정뱅이, 강도 등 악의 세계가 자신의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어 위태로운 방황을 계속하던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수수께기 소년에 의하여 자기발견의 길로 인도되어 참된 자아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시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으나, 비평가의 문체 분석에 의해 작가가 헤세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주인공이 불교적인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싯다르타 Siddhartha』(1922) 또한 헤세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이 작품으로서 불교적 가르침과 사상의 복음서라기보다는 헤세 자신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깨달음을 갈망하면서 가장 밑바닥의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속세의 쾌락과 정신적 오만을 초극하고 완성자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43년 헤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던 『유리알유희 Das Glasperlenspiel』는 1931년에 시작되어 1943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긴 성립시기는 나치시대와 일치한다.

히틀러로 상징되는 문화의 침체와 정신의 품위상실, 야만과 원시의 시대에 작가 헤세는 정신적인 봉사와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유리알 유희속에 세운다.

이 밖에 단편집·시집·우화집·여행기·평론·수상(隨想)·서한집 등 다수의 간행물이 있다.

 

1. 소명
2. 봘트쩰
3. 연구 시절
4. 두 종단
5. 사명
6. 유희 명인
7. 재직 시대
8. 양극
9. 대화
10. 준비
11. 회장
12. 전설
13. 요제프 크네히트의 유고
14. 세 가지 이력서

 

요제프 크네히트의 이력서는 세 편이 전해지고 잇다. 우리는 그것을 원문 그대로 전하고자 한다. 그것은 분명히 이 책에서 가장 가치있는 부분이 될 것이다. 그가 이력서를 한두 편쯤 더 쓰지 않았을까, 한 두편은 없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크네히트가 세 번째로 쓴 '인도의 이력서'를 제출한 뒤에 교육국 사무처로부터 다음 이력서를 뜰 때는 역사적으로 더 가깝고 기록이 풍부한 시대로 옮겨 가서 세부 사항에 유의하도록 지시를 받았다는 것뿐이다.--- p.65


 

색색의 구슬을 들고 희롱하며
앉아 있네. 그의 주위에는
전쟁과 페스트로 물들여진 땅이 있고, 그 폐허에서
등나무가 가라고, 그 등나무 사이를 꿀벌이 윙윙거리네.
지친 평화가 작은 소리로 찬미가를,
변함없는 노년의 세계에 울리네.
노인은 오색의 구슬을 헤아리네.
이쪽에는 파란 구슬과 흰 구슬을 쥐고
저쪽에는 큰 구슬과 작은 구슬을 골라
고리에 꿰어 유희를 준비를 하네.
한때 그는 상징을 가지고 노는 유희에 탁월했으니,
모든 예술, 모든 말의 명인이며
세상 일에 익숙하고 많은 여행을 하여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었네.
또한 생도와 동료에 항상 둘러싸여 있었네.
그러나 지금은 늙고 시들어 호자일 뿐,
그의 축복을 원하는 제자는 없네.
그를 논쟁에 초청하는 명인도 없네.
그들은 떠나갔네, 카스탈리엔의
사원도, 문고도, 학교도......

노인은 손에 구슬을 들고
황야에서 쉬고 있네.
한때는 많은 의미를 주던 상형 문자도
이미 이제는 유리 조각에 지나지 않네.
그것은 소리없이 노인의 손에서
모래 속으로 굴러 사라지네...
--- p.347

 

헤세의 나이 65세에 완성된 헤세 문학의 완결판.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로 미래 어느 시대의 카스탈리엔이라는 학자들의 나라에서의 생활을 유려한 문체로 묘사한 장편소설이다. 헤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1932년-1942년 사이에 쓴 작품으로 1943년에 스위스에서 발표되었다.

카스탈리엔이라는 미래의 이상향에서 2400년 경에 씌어졌다는 설정을 해놓고 이보다 약 200년 전에 존재하였던 카스탈리엔의 유희명인 크네히트를 회상하며 서술하는 형식을 취한 정신문화사적 미래 소설이다. 20세기는 전쟁의 세기라고 불리고, 가공할 만한 정신의 황폐를 초래하였다. 이런 와중에서 정신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 교양 있는 사람들에 의해 종교적인 이상향이 건설되고, 이곳 학교에서는 "유리알 유희"라는 고래의 온갖 학예의 정화를 종합한 영재 교육이 실시된다.

이 유희는 문화의 전체 내용과 가치를 지닌 유희이며, 인류가 학문과 예술의 각 분야에서 획득한 일체의 가치를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듯이 다루는 종합예술이다. 얼핏 보기에 이 작품은 초시대적인 가공의 이야기 같지만, 20세기 문화에 대한 비판과 헤세가 도달한 최고의 지성이 잘 나타나 있다. 편재된 물질적 풍요로 인한 가속적 향락의 추구가 우리의 정신 문화를 압살해 가는 현대야말로 이 작품에 나타난 참된 가치 실현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인 것이다.

전체가 상징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헤세의 탁월한 소설 기법으로 그것들이 모두 현실 세계로 용해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헤세 사상의 정수와 아울러, 정신 문화의 진정한 의미와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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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순례 | - 헤르만 헤세 2009-05-1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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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순례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동방순례』

 

"유리알 유희"의 모태가 되어준 헤세의 소설. 여행이라는 모티브가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그 안에 담겨진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깃들인다. 동방이라는 규명되지 않은 곳에 대한 이상과 향수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수행의 과정을 기록한 자성적인 자아찾기가 절제된 언어와 작가의 일관된 주제의식 속에서 음영을 조율하며 서서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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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그 정당성을 인정하려는 모든 진지한 시도의 결과이지요. 절망이란 생을 덕과 정의와 이성으로 극복하고, 그 요구들을 실현시키려는 모든 진지한 시도의 결과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절망의 이쪽 편에는 어린아이들이 살고, 저쪽 편에는 각성한 자들이 살고 있지요..--- p.105


아주 천천히 그 상의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게 점차적으로 나는 그 상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인간 형상 중 하나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그런데 이 형상은 불안할 정도로 나약하고 거지반 비현실적이었으며 어딘지 지워져 희미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인상에는 무언가 확고하지 못하고 허약한 죽어가는 듯한 죽기를 원하는 듯한 그 무엇이 깃들여 있었다. 마치 이라든가 이라든가 혹은 그 비슷한 제목을 가진 조각 작품처럼 보였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하나의 형상은 나의 형상과 합생하고는 있지만 그 색상과 모양이 생생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이 형상이 누구를 닮았는가. 그러니까 그것이 하인이자 최고 간부인 레오를 닮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벽에 양초가 또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에도 불을 붙였다.--- p.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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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동방순례』(헤세 선집 9)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주)민음사는 1997년부터 헤세 문학 출판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독일 주어캄프Suhrkamp 사와 독점 계약하여 헤세 선집을 번역·발간하고 있다. 지금까지 『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수레바퀴 아래서』 등 헤세의 대표작들이 원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이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며 『동방순례』는 그 아홉번째로 출간되는 작품이다.

작가 헤르만 헤세는 1899년 『낭만적인 노래들Romantische Lieder』로 데뷔한 후 1962년 사망할 때까지 시와 소설,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글들을 발표하여 전세계의 독자들을 열광케 한 바 있다. 독일 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널리 읽히는 그의 작품들은 금세기 최고의 고전들과 함께 필독서로 손꼽힌 지 오래다. 『동방순례』는 헤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게 한 『유리알 유희』의 모태가 된 작품으로, 그는 『유리알 유희』의 서문에 <동방 순례자들에게 바친다>고 헌사를 쓴 바 있다. 헤세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작품인 『동방순례』는 1978년에 최초로 국내에 소개된 이후 이번에 두번째로 번역·출간되는 것이다.

역자인 이인웅 외대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헤르만 헤세 연구>로 독일의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최고 학점을 받으며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 헤세학회 회장을 역임하여, 우리나라 헤세 연구사에서 선두적 역할을 한 바 있다. 독일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경쾌하면서도 유려한 이인웅 교수의 번역문은 그다지 쉽지 않은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한다.

이 작품에서 헤르만 헤세는 합리주의가 팽배하고, 날로 기계 문명의 이기(利器)에 잠식당하는 사회 속에서 스스로 품었던 꿈과 이상에 회의를 느끼고 절망에 빠져든 한 남자가 지난날에 겪었던 비교(秘敎)적인 경험을 영혼의 순례기로 쓰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꿈과 이상이 지닌 의미를 되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인공은 바로 헤세 작품의 화두라 할 수 있는 <자유로우면서도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자아>를 찾게 된다.

이 소설의 테마는 인간의 고독이다.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유대감, 개인을 초월한 공동체를 향한 인간의 욕구이다. 아무것도 써내지 못하는 예술가의 고독으로부터 해방되고픈 욕구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위해 헌신하기를 꿈꾸는 마음이다.

이 책을 읽은 뒤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종교와 철학과 예술의 세계로부터 현실의 일상으로 귀환한다. 인내와 유머, 인식을 향한 새로운 의지를 품고서. 또한 자신의 궁핍함과 혼란,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무장한 채로.
―헤르만 헤세

헤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라 할 수 있는, 한 인간이 존재 내부의 근원적인 불안, 고뇌, 방황을 넘어서 성숙된 자아로 나아가는 과정이 『황야의 이리』와 『유리알 유희』에서 그 어느 작품보다 특유의 아름답고 설득력 있는 필치로 그려지고 있는데, 그 같은 자아 찾기의 노정이 바로 『동방순례』에서 묘사된 순례자들의 여정이다.


주인공 HH―헤르만 헤세Hermann Hesse―가 행한 여행의 목적지인 <동방>은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아무 데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는 곳>이다. HH의 동방순례는 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느 시대 어느 곳으로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 있고, 나의 현재와 과거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죽은 예술가나 철학자, 사상가들(예컨대 조로아스터, 노자, 플라톤, 보들레르 등)과 함께 그들의 작품 속의 인물들까지도 만날 수 있는 사유의 여행이다. 그런데 견디기 어려운 일상이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이 같은 동방순례의 기억을 되새김으로써 HH는, 그리고 헤르만 헤세 자신은, 고통스런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꿈과 현실 사이의 조화를 찾는다는 점에서 전일성(全一性)이라는 후기 헤세 문학의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 책이 일반 독자인 우리에게 호소하는 바는 무엇일까? HH가 젊은 날에 행한 동방순례 여행은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유대감>, <공동체를 향한 인간의 욕구>, <헌신하기를 꿈꾸는 마음>으로, 지금처럼 이기적이지 않았던 과거 언젠가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살고자 했던 시절의 한없이 꿈에 들떠 현실의 그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었던 마음의 자세를 소설 속의 주인공인 HH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상기시킨다. 그 누군가, 그 무엇을 위해 헌신하며 살고자 했던 젊은 날의 기억을 되살아나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책을 읽은 후 헤세가 말하듯 <자신의 궁핍함과 혼란,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무장한 채로>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방순례는 현실과 환상 사이를 오가며, 진정 순수한 나를 찾는 여행에 독자들을 동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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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에서 화자인 나 HH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결맹 동지들과 함께 떠났던 동방으로의 순례 여행을 회고하면서 그에 대해 써서 남기고자 한다. 여행기를 써나가면서 그는 과거에 행한 여행에서 겪었던 신비한 경험들, 즉 시공을 초월한 불후의 인물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경이로움, 어떤 공동체 속에 강하게 결합되어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유대감, 이제는 사라진 유년기의 꿈, 젊은 이상 등등을 되돌아본다.

2장에서는 그 같은 환상적인 여행에 종말을 고하게 된 원인인 <레오>라는 인물의 실종에 대해 언급된다.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여행중이던 HH는 그가 사라지자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결국 동방순례를 그만두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맹에서 떨어져 나온 후, 그에게 결맹이, 당시의 순례 여행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깨닫는다. 무서운 고독과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던 HH는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순례기를 열정적으로 쓰려 하나 도대체 당시의 경험을 제대로 글로 옮길 수가 없어 결국엔 펜을 놓는다.

3장에서는 그 대책으로, 괴로웠던 전쟁 때의 경험을 글로 옮김으로써 영혼의 짐을 떨쳐버린 친구 루카스를 만나러 가고 그와의 만남을 통해 결명에서 사라진 레오를 찾을 실마리를 발견한다.

4장에서 HH는 레오의 집을 찾아가 그를 만나지만 그는 전혀 HH를 알아보지 못한다. HH는 이미 순례 여행 때의 순수했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었다. 헛되이 집에 돌아온 HH는 미친 듯이 레오에게 후회와 간청 어린 편지를 열 편 스무 편 반복해서 써서 부친다. 마지막 장에서는 레오가 HH를 찾아와 결맹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이젠 완전히 와해된 줄 알고 있던 결맹이 여전히 굳건하다는 사실에 놀라며 HH는 자신이 결맹에서 낙오되고 결맹의 존재를 믿지 못한 잘못을 지적당하고 뉘우침 속에 완전한 자아를 찾는 과정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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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세 | - 헤르만 헤세 2009-05-1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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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지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로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나눈 사랑과 우정, 이상과 갈등, 방황과 동경 등 인간의 성장기 체험을 아름답고 순순하게 그려낸 소설로, 『데미안』과 더불어 헤세의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작가 자신의 삶의 체험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시절 그의 영혼을 뒤흔들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헤세는 불완전한 인간이자 방황과 방랑, 예술에 대한 동경, 여성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끊임없이 낯선 세계에 부딪히는 청년 골드문트를 통해 자신의 성장기 체험을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성찰로 승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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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수도원장은 오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중년의 수도사 둘이 오늘 그를 찾아와서는 까마득한 오래전부터 서로간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하찮은 시비거리를 다시 끄집어내어 격앙된 어조로 서로를 헐뜯으며 말다툼을 벌였던 것이다.

 

수도원장은 두 사람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자 경고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엄격하게 두 사람의 직위를 박탈하고 각자에게 상당히 무거운 벌칙을 부과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자신의 조처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그는 작은 예배당의 기도실로 들어가서 기도를 드렸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그러고는 그윽하게 실려오는 장미 향기에 이끌려 잠시 숨을 돌릴 요량으로 회랑 쪽으로 걸어갔다.

 

거기서 그는 생도 골드문트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평소에는 너무나 싱싱하게 아름다운 이 젊은이의 얼굴이 빛을 잃고 초췌해진 모습에 깜짝 놀라며 골드문트를 슬프게 바라보았다.---pp.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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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문트는 그 동안 수도원의 모든 식구들과 좋은 친구가 되었지만 진정한 친구는 금방 찾을 수 없었다. 생도들중에는 각별히 친밀감을 느끼거나 마음이 끌리는 동료가 없었다. 그런데 생도들은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그들은 배짱 좋게 주먹을 휘두르던 골드문트를 멋진 싸움꾼이라 여기고 싶었지만, 사실은 골드문트가 평화를 대단히 존중하고 모범 생도의 영예를 추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수도원에는 골드문트가 진심으로 끌리는 사람이 둘 있었다. 그들은 골드문트의 마음에 들었고 그의 생각을 자극했으며, 그들에게서 골드문트는 감탄과 사랑과 경외심을 느꼈다. 다니엘 수도원장과 수습 교사 나르치스가 그들이었다. 수도원장은 그에게 성자로만 여겨졌다. 그의 소박함과 선의,맑고 사려 깊은 눈기르 명령을 하고 다스리는 일을 겸허하게 받들어 수행하는 태도, 선의에 넘치고 차분한 몸가짐, 이 모든 것이 단번에 골드문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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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달타 | - 헤르만 헤세 2009-05-1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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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
원어명 Siddhartha
저자 헤르만 헤세
장르 소설
발표 1922년


1922년에 발표된 장편소설이다. 인도의 성담()을 소재로 하여 ‘인도의 시()’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이다. 헤르만 헤세가 초기의 몽상적 경향을 탈피하고 소설의 무대를 동양으로 옮겨 내면의 길을 탐색한 작품이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바라문 집안에서 출생한 훌륭한 청년이다. 장차 바라문의 왕으로 추대될 촉망받는 청년이었으나, 깨달음을 얻고자 친구 고빈다(Govinda)와 함께 고행길을 떠난다. 이 수련기의 싯다르타는 바라문의 아들로서 정신세계에 살고 있다.

자아의 근본인 아트만(Atman)과 우주의 본질인 브라만(Brahman)과의 일치를 추구한다. 함께 고행하던 고빈다는 열반에 도달한 고타마(Gautama)의 설법을 듣고 불가에 귀의한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사변적인 가르침으로는 해탈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정신적인 방황을 하게 된다. 정신세계에 머물면서 잊고 있던 또다른 자아, 즉 감각본능의 세계에 있는 자아를 발견한다.

본능의 세계를 대변하는 여인 카말라(Kamala)를 알게 되고, 상인 카마스바미(Kamaswami) 밑에서 상인으로 살아간다. 사랑의 환희와 막대한 부를 누리지만 궁극적인 진리는 결코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또다시 생의 허무를 느낀다. 절망하여 강물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브라만의 성스러운 음인 옴(Om)을 다시 듣게 된다. 그의 앞에 자아의 구제를 의미하는 수천 개의 눈을 가진 보디삿타바(Bodhisattava)가 강물 깊은 곳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그후 고뇌의 세계에서 벗어나 뱃사공 바스데바(Vasudeva)와 함께 지내면서 상반된 대립 속에서 자아탈피의 과정을 겪는다. 뱃사공이 된 어느날 자기의 정부였던 카말라를 만난다. 카말라는 싯다르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과 함께 석가의 임종을 보러가다가 뱀에 물려 죽는다. 싯다르타는 카말라의 임종을 접하고 새로운 측면에서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죽음은 감각본능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 즉 윤회의 일면임을 깨닫는다.

카말라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삶과 죽음의 두 세계에 놓여 있는 시간의 종적인 테두리를 넘어서서 ‘동시 동등의 인정’에 도달하게 된다. 마침내 그의 내면에서 상반된 두 세계의 대립은 지양되고, 동시 동등의 조화, 즉 궁극적인 진리를 터득함으로써 오랜 애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싯다르타는 산스크리트로 목적을 달성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름으로서, 원래는 석가의 어릴 때의 이름이다.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라는 인물이 내면의 자아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노장사상()을 언급하는 등 동양의 초월주의를 강조하며 동서양의 세계가 조화된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흐르는 강물에서 삶의 소리, 존재자의 소리, 영원한 생성의 소리'를 듣고, 그 강물을 통해서 단일성의 사상과 영원한 현재라는 시간의 초월, 즉 무상성의 극복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생의 진리를 깨닫게 했다. 강은 이 작품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으로서, 일체의 모순이나 대립을 융화시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체로 상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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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기독성 | - 헤르만 헤세 2009-05-1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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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기독성

                                                    홍   순   길 (목원대)

 

I. 서 론

 

헤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와 종교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또 헤세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오해의 소지가 많은 부분은 역시 그의 종교적인 면이다. 특히 그의 기독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고, 그의 기독성의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그를 잘못 평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헤세의 전 생애와 작품을 종교와 연관지어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며 또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종교의 관점을 통해서 헤세의 전 삶과 작품을 해석해 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헤세는 그의 작품들을 가리켜 " 나의 기독교적인 것 속에 시작되는 영혼사"1) 라고 했다.

 

헤세뿐만 아니라 유럽의 작가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무엇보다도 그 작가와 기독교와의 관계 및 그가 접하게 된 다른 종교나 사상의 수용 등을 파악하는 일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유럽 사람들의 종교적 환경은 그들의 삶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고 일률적이다. 유럽 국가들의 일반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독일의 역사가 원시 게르만족의 토속종교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종교 수용의 역사이며, 이 수용 과정에서 게르만족의 문화가 형성되어 왔다. 독일은 로마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영토뿐만 아니라 고유의 생활방식과 언어, 문화를 잃었다. 비록 용맹스러운 게르만족이 로마군과 싸워 로마제국까지 얻었지만, 그들은  로마인들의 종교의 포로가 되었으며 기독교 속으로 녹아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로마제국은 그들의 안방을 내주었지만 게르만족의 정신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유럽의 정신문화는 기독교를 바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유럽인은 기독교인으로 태어나서 기독교인으로 죽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언어, 풍습, 예술, 문학 속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특히 헤세는 기독교의 종교적 혈통 속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그 외의 많은 친척들이 목사였으며, 그들은 목사 가운데서도 가장 독실한 경건주의 자들이었다. 헤세는 어려서부터 이런 기독교 밑에서 때론 안정을 찾았고 때론 도주하고 싶었다. 그런가하면 그는 싫증난 기독교를 보상받고 싶은 심정으로 다른 종교의 문도 끊임없이 기웃거렸다. 헤세가 종교에 가진 관심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진지하고 또 지속적이다. 이런 여러 종교와의 만남을 통해서 헤세의 종교적 자산은 풍요롭고 다양하다.

그런데 대부분 헤세의 전기작가들은 헤세가 어떻게 종교적인 문제와 씨름했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종교문제를 다룸이 없이 어떻게 헤세의 진면목을 알 수 있으며, 그의 작품의 진수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헤세의 생의 분수령이 된 것이 마울브론 신학교로부터의 탈출이고 부모와 기독교로부터의 반항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런 문제는 따지고 보면 헤세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된다. 지금까지 헤세와 종교를 연관지어 다룬 글들은  주로 헤세의 종교 편력을 일반적으로 서술하거나, 헤세와 특정한 종교, 그러니까 기독교, 불교, 힌두교 또는 도 사상과 연관지어 다루거나 아니면  그에게 끼친 신비주의 영향 등을 다룬 것이었다. 그의 기독성을 자세히 분석한 글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헤세 연구 붐의 쇠퇴와 더불어 헤세와 종교문제를 다룬 글도 현격히 줄었다. 헤세를 오로지 기독교에 등돌린 동양종교 예찬자로 보는 시각도 있고 또 다른 시각은 그를 철두철미한 기독교인으로 보는 것인데 이런 결론은 그의 종교관을 단편적이고 일방적으로 본 결과다. 헤세의 종교관, 특히 그의 기독교관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본 논문에서는 그의 종교관을 알아보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단계로서 그의 종교편력과 종교가 그의 삶과 작품에 끼친 영향에 대해 다뤄질 것이다. 또한 그의 종교관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말이나 작품을 통해 헤세의 기독성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이 헤세의 기독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제이며 그의 기독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의 오해의 관점은 어떤 것인가를 따져볼 것이다.

 

헤세가 접한 여러 종교 가운데 기독교가 그와 가장 가까운 종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도라고 말하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 논문의 주안점은 바로 여기에 두어졌고 과연 그가 기독교적인가? 라는 질문을  새롭게 그리고 진지하게 던지고, 이에 대한 결론을 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논문은 그가 다른 종교를 가졌다던가 아니면 범종교관을 가졌다던가하는 결론을 염두에 둔 논문은 아니다.

이 논문만으로는 헤세의 기독성에 대해 어떤 명확한 결론을 내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이 논문에서  제기하는 일반적 고찰 이외에 보다 더 구체적인 고찰, 예를 들면 헤세가 "신 Gott"를 어떤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느냐? 하는 부분에 대한  계속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지면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려고 한다.  이 글은 헤세가 기독교를 믿고, 그가 기독교적이라는 지금까지의 견해, 특히, 헤세가 만년에 기독교로 돌아왔다는 견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다.

 

II. 본  론

 

II. 1. 생애에서의 종교

 

헤세는 모태종교를 갖고  태어났다. 기독교는 그의 가계의 혈통이었다. 경건주의적 혈통이 200년 이상 그의 가계 속에서 이어와 어린 헤세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목사의 아들과 손자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그가 받은 기독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기독교를 일회적이고 경직된, 내 삶 속의 결정적인 형태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지만 거의 사라진 약하고 덧없는 형태로 알게 되었다. 나는 기독교를 경건적 색채를 띤 개신교로 알았고 그 체험은 깊고 강했다. 왜냐하면 나의 선조와 양친들은 완전히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몸바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봉사에 전념했다.  인간의 삶을 신이 내려준 삶으로 여기고 그 삶을 이기적인 충동이 아니라 신에 대한 봉사와 희생으로 살려고 하는 것, 이 유년 시절의 가장 큰 체험과 유산이 나의 삶에 강하게 영향을 주었다.2)

 

헤세는 또 「전쟁과 평화 Krieg und Frieden」에서도 그의 삶 동안 그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 세 가지 영향 가운데 "양친 집에서의 기독교적이고 완전히 비국가주의적인 정신"을 첫 번째로 꼽고 있다.3)

이렇게 그의 혈통과 가정에서 받은 영향은 헤세의 생애를 통해서 깊숙이 미쳐서 1930년의 한 편지에서는 "나는 종교적인 충동을 나의 삶과 창작활동의 결정적인 특징으로 여기고 있다"고까지 고백하고 있다.4)

 

헤세의 어머니 마리 군데르트 Marie Gundert와  오랫동안 인도에서 선교사로 지낸 외할아버지 헤르만 군데르트 Hermann Gundert 모두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다.  친가 쪽으로 헤세의 아버지 요한네스 헤세 Johanes Hesse와 할아버지 칼 헤르만 헤세 Carl Herman Hesse 모두 독실한 신앙의 혈통을 이어 받은 사람들이다.5) 특히 헤세의 어머니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 번째 남편 찰스 아이젠버그 Charles Isenberg 역시 선교사로서 헤르만 군데르트의 선교사업을 돕던 사람이었다. 헤세의 친아버지인 두 번째 남편 역시 군데르트의 신학관련 출판업을 돕던 사람이었으며 이들 두 사람들은 모두 선교사였으며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헤세는 그래서 그의 가족을 "국제적인 선교인의 공동체"라고 말하고 있다.6) 헤세의 양가 쪽 선친들은 이렇듯 모두 신앙의 한 가운데 있었으며, 기독교적 헌신과 봉사가 그들 삶의 전부였다.7)

헤세의 혈통은 친가 및 외가를 통틀어 모두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으며 신앙의 끈으로 이어진 경건주의 자들의 신앙공동체였다.   

 

헤세는 어린 시절을 부모의 선교활동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주거의 불안정 상태 속에 보냈다. 그가 4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바젤 선교학교의 교사로 가게 되어 그는 스위스로 거처와 국적을 옮겼고 5년 후에는 집안이 다시 칼프로 돌아오고 그가 14세 되던 해에는 마울브론 신학교 입학을 위한 슈바벤의 국가고시에 응시할 자격을 얻기 위해 다시 독일 국적을 가졌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그의 어린 시절은 부모의 선교사업과 자신의 신학교 입학을 위해 고향과 국적을 바꾸었으며 정신적, 정서적 불안을 겪은 셈이다.

 

헤세의 어린 시절은 그의 뜻과는 달리 교회, 주일학교, 찬송과 예배 등으로 가득 채워졌고, 그는 때론 그 안에서 평화와 안정을, 때론 도피욕구와  내적 저항을 느꼈다. 오직 하나의 세계, 오직 하나의 신앙, 오직 하나의 세계관이 헤세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고집스러운 그는 처음에는 맹목적인 복종을 보이다가, 후일에는 비기독교적 양상을 보였다.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너무 밝고, 경건한 일요일의 성스러운 세계가 그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로 향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8) 이런 무거운 체험이 그를 보통 기독교인들의 길로부터 멀게 만들었다. 헤세의 부모는 지독한 경건주의 자들이었으며 금욕주의자들이었다. 이런 가정 분위기는 그로 하여금 더 명암이 짙은 반대 세계로 향하게 했고, 니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헤세도 "신은 죽었다"9)고 외치게까지 되었다.

 

그가 경건주의 부모를 갖지 않고 마울브론 신학교를 가지만 않았어도 그는 평범한 기독교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교회를 멀리하게 만들었으며, 유일한 기독 신을 믿지 않게 만들었으며, 종교 없이도 잘 지낼 수 있게 만들었는가?

 

물론  어려서의 성서 교육과 신앙의 목소리가 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만은 아니다. 그는  고답적이고 숨막히는 교회 안에서도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헤세가 후일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그의 생애동안 늘 종교에 관심을 갖게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의 종교적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성서 이야기를 듣고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회상하고 있다.

 

그 밖에도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나의 환상을 위한 세계와 가교가 흘러 넘친다. 나는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독자와 이야기꾼과 수다쟁이에 대해 들었지만 나의 어머니에 비하면 그들은 볼품없고 무미건조하다. 오, 어머니의 황홀하고 밝고 빛나는 예수 이야기, 그대 베들레헴과 그대 회당의 소년, 그대 엠마우스로 향하던 발걸음! 어린아이의 삶의 과도하고 풍부한 세계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의 모습보다 더 달콤하고 성스러운 모습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무릎에 놀라운 눈빛을 한 금발의 소년이 고개를 묻는, 그런 어머니들은 어디에서 이런 힘이 넘치고 아주 경쾌한 재주를, 화가들 같이 지칠 줄 모르는 입술의 요술을 갖게 되었을까?10)

 

헤세가 괴핑엔의 라틴어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그는 모든 면에서 모범생이었다. 학업뿐만 아니라 친구와 부모와의 관계도 모두 좋았다. 물론 주정부 시험이라는 큰 걱정거리가 있었지만 그는 자신 있고 활기차게 크나 큰 운명과 마주섰다. 그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같은 어학에 특히 뛰어났지만 종교에 있어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래서 그는 1890년 양친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것은 종교작문"11) 이라고까지 했다. 이 때만 해도 헤세 자신이나 부모 어느 누구도 종교가 헤세의 생애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요소가 될 줄 몰랐다.

 

헤세의 마울브론 Maulbronn 신학교 입학은 그야말로 헤세의 전 생애와 존재에 있어서 하나의 획을 긋는 계기가 되었다.12) 이런 일로 그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켰고 외할아버지의 뒤를 이은 선조의 대열에 낀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기대도 갖게 만들었다. 이 곳은 그로 하여금 작가가 되도록 이끈 곳이기도 하다.  이 곳은 그가 진정한 시인으로 여겼던 횔덜린이 나온 곳이며, 낭만주의 작가 뫼리케도 나온 학교였다.

 

헤세는 이 기숙학교에서 적응할 수 없었으며 결국 6 개월도 못 되어 이 곳을 도망쳐 나오게 되었다. 경건하지만 엄격하고 숨막히는 수도원 분위기를 그는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이 시기를 회고하면서 "학교와 신학과 전통과 권위라는 거대한 힘에 대한 고발자나 비판자의 역을 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13)

 

헤세가 경건주의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마울브론 신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헤세는 성공적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14)  마울브론 신학교 탈출은 부모와의 종교적 갈등의 표출이며 오직 유일한 종교로서 기독교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고 비기독교적인  이 시기는 헤세의 생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전환기가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색깔을 지닌 동양종교예찬자로서의 시작을 뜻한다.

 

헤세가 부모 특히 아버지와 갈등을 빚은 것은15)교육문제와 신앙문제인데16),  그가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그는 "작가 아니면 아무 것도 되지 않겠다"17)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그런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건과 신앙의 잣대로 아들을 재고 훈육하려 했으며, 문학이나 예술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은 헤세의  양친은18) 결국 아들을 포기하는 상실감을 맛보아야 했다. 헤세 자신도 기독교 경건주의의 가정환경 속에서는 개인의 기호나 재능이나 천부적 소질이 권장 받지 못하며 "인간의 의지는 원래 악해서, 인간이 신의 사랑과 기독교 공동체 속에서 행복해 질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의지가 우선적으로 깨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경건주의적 기독교적 원칙"19)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경건주의 가정교육에서는 수 백 년 동안 「창세기」 8 장 21 절에 나오는 "인간의 마음에 따라 글을 쓰고 어떤 목적을 갖는 것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음을 품게 한다 Das Dichten und Trachten des menschlichen Herzens ist böse von Jugend auf"는 구절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경건주의의 화신인 헤세의 부모들이 고집스럽게 이를 금하였고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음은 뻔한 일이다.

 

교육과 신앙에 대한 헤세의 저항은 고집으로 나타났고, 그의 문학이 고집문학이 된 것도 이런 상황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본다.20)

헤세가 고집이 있어 부모에 저항했는지 또는 부모의 종교적 억압으로 인해서 고집이 생겼는지는 알 수가 없다.

헤세를 유능하고 쓸모 있고 신앙심이 있는 - 이는 헤세의 부모가 그린 독단과 독선의 환영이지만 - 인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산산조각이 났으며, 헤세 자신도 그의 삶에 있어서 실존의 위기를 겪었다. 이 때는 헤세의 전 생애에 있어서 제일 괴롭고 위태로운 시기였으며 허무주의자로  또 염세주의자의 길을 가게될 뻔한 시기였다. 그는 부모도 친구도 신도 모두 부정하고 불안과 초조에 떨며, 급기야는 자살하고 싶은 광기를 느꼈다.   풍전등화 같은 헤세의 운명을 에워싸고 숨가쁘게 점철된 몇 년은 그의 양친과 헌신적인 후원자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그를 폐인으로 만들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가 수도원을 몰래 빠져 나와 황량한 들판을 헤맸듯이, 그는 신학자인 크리스토프 불름하르트 Christoph Blumhardt 집과 슈테텐 요양소와 칸슈타트 고등학교와 에스링엔 서점을  의미 없이 거쳐갔다.

 

헤세는 돌아온 탕아처럼21) 그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아가 되었다. 부모의 실망과 염려,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지만, 그는 도시로부터 시골 고향으로 돌아 왔고, 학교와 신앙의 채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는  때론 슈바르츠발트 Schwarzwald 숲 속을 거닐며, 때론 나골트Nagold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고향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셨고 흙 냄새를 흠뻑 들이 마셨다. 그는 외부의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이제 오로지 그 자신의 문제, 그 자신의 내면 속에 둥지를 틀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자아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다.22)

 

칼프에서의 탑시계 공장의 직공과 그 후 튀빙엔 서점원의 견습공 시절은 헤세가 작가로서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재충전의 시기다. 단순한 작업 - 육체적으로 힘들고, 전혀 그에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 은 그를 현실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인간으로 또 현실적인 인간을  만들었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독립되고 개성 있는 개체로 만들었다. 이제야 비로소 그는 그가 꿈꿨던  작가가 되려는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이제 부모의 간섭을 떠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독서하고 글을 쓰는 일에 몰수할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책을 읽던, 어떤 글을 쓰던 그는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았다.23) 헤세는 원래 고집스럽고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으므로 이 때부터 진정한 그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절에 그는 "세계문학의 절반"을 섭렵했고 모든 분야에 걸친 독서를 통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생긴 지식의 공백을 부지런히 메꾸었다.

 

이렇게 해서 헤세는 불안하고 위험한 청소년기를 무사히 넘기고, 스스로 구도자의 길을 갔으며 그 첫 열매가 『페터 카멘친트』였다. 몇 번의 습작 후에 쓰여진 이 작품이 대 성공을 거둠에 따라 그는 직업작가가 될 수가 있었다. 그 자신의 집과 가정과 직업과 미래를 갖게 되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양친과의 관계, 양육과 종교적 영향은, 위성이 추진 로케트로부터 완전 분리하여 목적지를 향하듯, 완전히 끝나고, 그는 그의 삶과 신앙을 먹고살게 되었다.

 

그 후 헤세의 신앙체험에 있어서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그가 눈을 동양으로 돌려 인도나 중국의 사상과 종교에 심취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 당시 유럽과 유럽인들이 갖게 된 일반적 현상인데, 특히 독일은 탐욕스런 세계화의 야망을 채우려고 뒤늦게 외국, 특히 아프리카와 동양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24) 그래서 자연히 인도나 중국의 사상과 종교가 유럽사회에 받아 들여 졌다. 헤세는, 외할아버지나 인도학자인 사촌 빌헬름 군데르트 Wilhelm Gundert의 영향을 받았지만, 스스로 인도 여행길에 올랐고 동양의 사상과 종교를 직접 체험하기에 이른다. 헤세의 이런 동양정신 탐닉을 그 스스로는 "유럽도주 Europaflucht"25) 라고 부르고 있으며 몰락하는 서양을 동양을 통해 구원하려는 생각을 갖곤 했다.

 

헤세의 인도여행과 제1차세계대전 후에 쓰여진 헤세의 작품들은 한편으론 유럽 비판적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예찬적인 글들이 대부분이며 『싯달타 Siddhartha』나 『유리알 유희』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쿠르티우스Curtius는 헤세의 『싯달타』를 "양친 집의 경건주의에 대한 헤세의 항거의 한 전조가 인도적 장면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26) 이 때의 그의 대부분의 글들은 유럽적이기보다는 동양적이고,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불교나 도교나 노장사상에 가깝다.

이렇게 해서 헤세의 종교는 한편으로는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동양의 불교나 도교의 경계가 없어진, 종합적인 것이 되었으며 어느 특정한 종교를 애호한다기보다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고 지양하여 조화의 종교의 경지에 이른다.

 

II. 2. 헤세의 기독성

 

헤세가 과연 기독교 신앙을 가졌는지,  또 적어도 그가 기독교 신을 믿는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지만  달리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 난처한 문제다. 헤세의 기독성은 그 성격과 방향과 범위를 규정하기가 어려우며, 더 나아가 그가 과연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1896 년경까지만 해도 그는 "아직 하나의 신을 찾지 못했다"27)고 부모에게 고백하고 있으며, 튀빙엔 서점원 시절에는 열심히 신학 토론클럽에 들어가 열띤  신학논쟁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임종할 때까지 매년 한번도 빠짐 없이 바흐의 마태 및 요한 수난곡을 즐겨 들으며 그 밖의 종교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의 기독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탐구를 위해서는 헤세 자신이 종교에 대해 언급한 내용 가운데 ,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의 종교성 여부에 관한 일반적 입장 표명에 해당하는 말 즉, "나는 결코 종교 없이 살지 않았고 종교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었다"28)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헤세가 말하는 종교는 어떤 종교인가? 기독교인가? 또는 불교 내지 그 밖의 다른 종교인가? 아니면 개개의  많은 종교를 통 털어 하나의 종교로 보는 그런 종교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또 한가지 의문점은 그가 말하는 종교란 어떤 성격의 종교를 말하는가? 하는 것이다. 경전을 읽는 것, 명상을 하는 것, 기도를 하는 것, 찬송가를 부르는 것, 설교를 듣는 것, 집회나 집회소에 가는 것, 종교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여러 종교 행위가 있는 데 그가 말하는  종교행위는  위에 열거한 어떠한  행위를 두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모든 의문점이 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헤세 개인 자체는 철두철미하게 종교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비록 그가 어린 시절 이래로 어떤 외적인 종교행위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늘 종교에 대해 남보다 더  많은 관심과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이 『나의 신앙』이라는 구체적인 제목 하에 쓰여진  그의 신앙고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헤세는 지극히 종교적인 사람이며 그의 삶은 온통 종교적인 것으로 가득 채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곧 이어서 그는 "교회 없이도 나의 생애동안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29)고 신비의 장막을 치고 있다.  원문에는 교회가 "Kirche"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이  기독교의 교회를 뜻하는 말인지 아니면 모든 다른 종교의 예배를 보는 곳을 뜻하는지 애매하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기독교 교회로 보고 논리를 전개하려고 한다.

 

헤세를 기독교  신자라고 가정한다면 과연 그가 얼마만큼 기독교에 가깝게 서 있는가를 다져 봄직하다. 그는 1935 년의 한 독자에게 "나는 일평생 나에게 올지도 모를 종교를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알짜배기 경건한 가정에서 자라왔지만,  거기에서 제시된 신과 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30)라고 그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과 "신앙"은 부모가 믿는 신과, 부모가 가졌던 신앙으로써 다름 아닌 기독교 유일신이며 기독교 신앙이다.

그러면 왜 헤세는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가?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부터 거부감을 느껴온 부모나 주위의 지나친 경건주의적, 청교도적 신앙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었다.

 

신과 같이 비유되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반항이 후일 유일신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다고도 볼 수 있다. 헤세는 자전적 소설 『어린 영혼』에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있는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어린아이에게 전수된 신은 여호와 신인데, 이 신은 강요하는 자며, 심판하는 자며 정신이다. 그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을 지닌다. 거대하고 보이지 않게 죄의식에 차 있고, 죄책감을 가져야만 하는 소년에게 사방의 벽 뒤에서 정신이, 아버지가, 재판관이 숨어 위협하고 있다 31)

 

특히 종교적인 면에 있어서의 헤세와 아버지와의 갈등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가 이 작품의 다른 곳에서는 "저는  하느님 같은 당신에게 침을 뱉고 싶어요"32)라고 말했겠는가?

 

헤세는 어린 시절을 늘 신앙의 큰 수레 밑에서 신음하며  보내왔다. 헤세의 부모가 애정이라는 토대 위에 헤세에게 의무감을 가지고 베풀었던 것은 그들의 신앙대로 헤세를 양육하려고 한 것이었다. 일상생활이나 교육방향이나 생의 목표를 늘 이런 큰 틀 속에 짜 맞춰 놓고 어린 헤세를 양육했다.  부모가 생각하는 "최고의 삶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이며, 그 분께 그분이 만드신 세상에서 봉사하는 것"33)이었으며 그들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의 나라에 고정되어 있고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 인간의 이 지상에서의 삶이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쯤으로 알고 있었다. 인간이 그들의 삶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고, 그 삶을 어떤 이기적인 충동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봉사와 희생으로 살려고 한다"34)는 그의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체험과 유산이 그의 삶에 지나치리만큼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가 본 세계관은 신 중심 세계관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 신에 의해 이뤄지며, 신을 통해 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그의 세계관이었다. 모든 현상세계에 대한  설명은 어떤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초인간적인 신에 의해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35)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고집스러운 어린 헤세는 종교의 굴레를 벗어나 천진난만한 자연아가 되려고 했다. 그는  한 개성 있는 인간의 길을 가려고 하였다. 그는 "개성의 상실 없이 기독교인이 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36)고 말하기도 했으며 또한 경건주의자가 되고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였다면 아마도 부모와 하모니를 잘 이루었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헤세의 생애와 작품을 통털어서 일관되게 흐르는 정신이 개인과 개성의 수호임을 생각할 때, 그가 얼마나 이런 독선적이고 경건한 부모 밑에서 숨이 막혔는가는 능히 짐작이 간다.

 

그는 무엇보다도 형식을 싫어했다. 매 일요일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믿음 형식에 대해 그는 거부감을 느끼며, 교회에 가지 않더라도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만 만날 수 있는 신을 "일요일 신 Sonntagsgott"37)으로 비하했다.

 

또 그 외의 다른 이유는 그 자신은 어떤 구속을 받기 싫어하며, 어떤 종교적 독단과 독선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종교는 체험이며 삶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교리나 신학적 지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신앙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싯달타』에서도 그는 철두철미하게 교리, 가르침을 떠나 체험된 삶 속에서 인간의 완성된 모습을 그리려 했다.38)

 

그래서 그는 아예 기독교를 두 가지 형태로 양분하고 있다. "나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기독교가 있는데, 하나는 실질적이고 개인적이고 도그마에서부터 자유로운 것이고 , 다른 하나는 교회적이고 신학적인 것입니다"39)  헤세는 말할 것도 없이 개인적이고 실질적이며 도그마에서 자유로운 기독교를 갖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공동의 예배 형식, 공동의 모임. 교리에 얽매인 믿음에 대해서 그는 반발했다.

헤세 자신은 이런 그의 기독성을 아주 간단히 한 마디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개인 기독성 privates Christentum"40)이다. 특히 그는 교회를 배제한 기독교가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나름대로 이 개인 기독성 이론을 펴고 있다.

 

그렇지만 당신의 고압적인 강요는 나에게  이중으로 참을 수 없습니다. 첫째, 한 신학자가 기독교 정신에 감동되었다고 보는 평범한 사람에게  자기 신앙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밝히고, 목회자의 통제 밑에 들어와야 한다고 호통치는 것은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소명 받지 않은 면이 있는 나의 정신과정까지 간섭하는 이런 강요는, 제가 보기에는, 구두 굽으로 어린 작은 식물을 밟아 죽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둘째, 당신은 '교회'의 이름으로, 교회 없이는 기독교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나는 반대로 묻겠습니다. 그것은 어떤 교회입니까? 프러시아 교회입니가? 루터교회입니까? 고백교회입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러한 교회는 무엇보다도 비공식적인 형태로 존재하며, 교의와 규칙은 완전히  결여되어, 맨 마지막엔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권위적으로 태도를 취해도 되는 것입니다.41)

 

하인리히 게퍼르트 Heinrich Geffert 는 헤세에게 있어서 자연체험은 종교 체험이 되었는데 교회가 자연 밖에서 신을 설교하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리되었으며 교회의 도그마를 극복하는데 실패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42)

또 헤세의 종교관 특히 그의 기독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글은 「신학단상 Ein Stücken Theologie」인데, 그는 여기에서 인간 완성의 길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이 글은 아주 종교적 색채가 강한 글이다.  "인간완성의 길은 순진무구 Unschuld에서 죄로, 죄에서 절망으로, 절망에서 파멸 혹은 구원으로 이어진다"43) 헤세는 이 말이 "기독교적이고 유럽적인 의미로"44)쓰여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헤세의 기독성에 대한 많은 의문을 갖게 해주는 글이다.

 

우선 인간의 길 - 그것이 인간형성의 길이던, 인간완성의 길이던 간에 - 이 순진무구함, 즉 무죄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과연 기독교적인 해석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정통 기독교 신학에서는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이 금한 선악과를 따먹어서 원죄를 지었고, 이들의 후손인 인간은 대대로 유전된 죄 즉, 원죄Erbsünde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헤세의 견해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헤세는 인간형성의 과정의 첫 단계부터 기독교적인 인간이해와는 거리가 먼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말하는 "죄Schuld" 또한 기독교 윤리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과 다르다. 헤세는 순진무구함에서 죄로 이르는 길에 "선악을 알게되는 것, 문화나 도덕이나 종교나 인류의 이상에 대한 요구"도 포함시키고 있다. 다른 것은 논외로 한다하더라도, 어떻게 "종교의 요구"45)가 "무죄Unschuld"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 물건이나 모든 요소들이 인간을 "무죄"의 천국이나 유년시절의 세계에서 갈등과 번민의 세계로 이끌고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필연적인 시련의 단계라고 보고 있다. 또 절망에서 자비나 구원에 이르는 과정, 다시 말해 신앙에 이르는 과정을 가리켜 그는 "도덕과 법의 저 편의 한 상태의 체험"46)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것 또한  기독교적인 것과 다르다.

 

헤세는 인간형성의 길을 기독교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또 형이상학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견해는 그러므로 그의 기독성을 의심케하기에 충분하다.  언젠가 헤세는 "내 자신의, 기독교적인 것에서 시작하는 영혼사를 이야기하는 것, 또 그것에서부터 나의 개인적인 신앙의 방식을 체계적으로 풀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인지 모른다"47)고 말한 적이 있다.

헤세의 이런  불분명한 태도로 인하여 헤세의 독자들은 헤세의 기독교적인 태도에 대해 혼란을 가져온다. 만일 헤세가 자주 그리고 다양한 뜻으로 사용하는 몇 가지 기독교적인 개념들, 예를 들어 "신Gott", "구원 Erlösung", "은총 Gnade", "천국 Paradies" 등의 개념을 온전히 기독교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인다면 그는 헤세를 억지로 기독교의 틀 속에 성급하게 가두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이다.

 

헤세의 기독교적인 비기독성을 다른 의미로 표현하면, 그는 항상 살아 있어 여러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오는 신을 믿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떤  역사적 예수에 집착하는 기독교, 교회에 갇힌 기독교, 교리에 묶인 기독교를 거부하며, 그가 믿는 신도 전통적 기독교의 신도 아니다. 그는 정통적인 교리나 형식으로 믿어지는 기독교를 한결 같이 거부한다.48)

 

심지어 헤세는 역사적인 예수에 대해 큰 가치를 두지 않으며 의인화된 기독교 신이 아니라 한 위대한 인간이나 스승 정도로 본다. 만년의 예수에 대한 그의 견해를 보면 그의 예수관 내지 기독교관이 얼마나 정의하기 어려운 가를 알 수 있다.

 

예수에 대해서 나는 내 생애의 84년 동안 내 생각을 자주 바꿨습니다. 교회와 신앙고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날에도 저는 다른 견해에 가까이 할 수도 있습니다.49)

 

『데미안』에 나오는 아브락사스 Abraxas 신은 기독교 정통 신이 아니다. 이 신은 두 얼굴 다시 말하면 정신과 자연, 선과 악, 밝음과 어둠, 신과 악마의 두 얼굴을 한 신이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듯이 모든 인습과 종교적 강압에서 해방된 자아는 이 아프락사스 신을 향해 나아간다. 이런 싱클레어에게 상징적으로 제시된 신은 결코 유일신이 아니다. 싱클레어가 믿는 신은 선이며 부성적이며 아름다우며 감상적인 신이었는데 그는 데미안을 통해서 이 세상은 그 외에 다른 것을  만들어져 있음을 알고 그가 믿었던 단순한 신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다.

 

또 한가지 『데미안』에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싱클레어는 처음에 데미안의 말을 믿지 않지만 나중에는 점차 그의 비기독교적인 이론에 동조하게 되고 결국은 카인을  승리자로 만드는데 동의한다.  정통 기독교 교리로 보면 카인은 죄인이며 신의 심판을 받는 자다. 헤세는 이런 비기독교적인 주인공을 통해서 경건한 부모에 대한 종교혁명을 일으킨 셈이다.  호르스트 크류거 Horst Krüger 는 『데미안』에서 어린 싱클레어가 경건한 부모의  세계를 떠나  강하게 자아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것을 가리켜 "개인적 항거의 무한한 즐거움"50)을 표현했다고 보고 있다.

헤세는 또한 구원관에 있어서도 정통  기독교 이론을 따르지 않고 있다. 피조물인 인간은 스스로 구원받지 못한다. 오직 신을 통해서만이 구원받을 뿐이다. 그러나 헤세에게 있어서 인간의 구원은 신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자아 내면에서의 개인의 구원이다.  그러니까 내면적, 개인적 완성을 통한 구원이다. 자기 자신 속에 구원으로 이끌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방랑 Wanderung』에서 "구원의 길은 오른 쪽이나 왼쪽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 길은 자기자신의 마음으로 이끈다. 거기에만 신이 있고 거기에만 평화가 있다."51)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이라는 개념에 있어서도 헤세는 완전히 비기독교적인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Hans Küng은 이 '사랑'을 헤세에게 있어서 가장 기독교적이라고 했지만, 이 『데미안에서 쓰인 '사랑'은 아브락사스적인 사랑이다. 싱클레어는 꿈속에서 느낀 사랑에 대해 "사랑은 둘이었다. 둘이며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천사의 모습인 동시에 사탄이었으며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된 것이며, 사람인 동시에 짐승이었으며 최고의 선인 동시에 최고의 악이었다."52)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III. 결 론

 

이상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헤세의 기독성에는 많은 의문과 오해의 소지가 있다. 어느 정도 그가 기독교적인지를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섣불리 어떤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를 알게 된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조건들과 헤세의 사상이나 행위를 비교해 볼 때 헤세는 전혀 기독교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헤세의 기독성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흔히 인용하는 "나는 어떤 공동체나 교회나 종파에 결코 속하지 않는다. (...) 그러나 나는 오늘 날 거의 기독교 신자라고 여긴다"53)는 말이 얼마나 신빙성이 없는가는 지금까지 살펴본 그의 삶과 작품에서 알 수가 있다.

 

헤세 자신이나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이 추구한 신은 기독교 유일신이 아니라 아브락사스 같은 양면성이 조화된 신이며, 인간 완성의 표상으로써의 상징적인 신이다. 기독신은 선 그 자체이지 선과 악의 조화된 신이 아니다.  그가 이런 신을 추구하는 것은 그의 작품의 완성된 인간형상들과 일치한다.

 

큥 Küng은 " 헤르만 헤세는 결코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이해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전통적이고 고답적인 전통신학의 그리스도론에 대해서는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느꼈다"54)말로 그의 기독성을 애매모호하게 표현했다.

헤세의 기독교를 굳이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정통 기독교가 아니고 그 자신의 표현대로 "개인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 기독교"가 도대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헤세의 애매모호한 기독성을 그래도 기독교와  연관지어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신비주의적 성격의 기독교다. 게르하르트 마이어 Gerhart Mayer 는 그래서 헤세와 기독교와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신비주의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헤세 자신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가 "교회기독교도Kirchenchrist", "개인 기독교privates Christentum","일요일 신Sonntagsgott"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겠는가?

헤세는 어린 시절에는 모태 기독교인으로, 청소년기에는 반기독교인으로 그리고 장년에 이르러서는 언제나 교회 주위를 서성이는 이방인으로 살았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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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eshan, Vridhagiri: Das Indienerlebnis Hermann Hesses. 2. Aufl. Bonn 1980.

Gellner, Christoph: Weisheit, Kunst und Lebenskunst. Fernöstliche Religion und Philosophie bei                  Hermann Hesse und Bertolt Brecht. Mainz 1997.

Hirsch, Willi: Hermann Hesse. Beobachtungen und Gedanken zu seiner religiösen Entwicklung.                  Diss. Bern 1945.

Hunnius, Monika: Johannes. Heilbronn 1948.

Jens, Walter & Küng, Hans: Anwälte der Humanität. München 1989.

Jens, Walter: Rebellion gegen den Sonntagsgott. In:Walter Jens & Hans Küng: Anwälte der                     Humanität. München 1989.

Jessen, Jens: Unter Betschwestern. In: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v. 1. 6. 1990.

Kolby, Thomas E.: Zur Thematik des Verlorenen Sohnes. In: Volker Michels(Hrsg.): Materialien                  zu Hermann Hesses 『Demian』. Frankfurt/M. 1997.

Küng, Hans: Nahezu ein Christ? Hermann Hesse und die Herausforderung der Weltreligionen.                   In: Walter Jens & Hans Küng: Anwälte der Humanität. München 1989.

Lee, Inn-Ung: Ostasiatische Anschauungen im Werk Hermann Hesses. Diss. Würzburg 1975.

Luipold, Hans-A.: Das Evangelische Seminar Maulbronn, eine Station im Hermann Hesses                      Leben. In: Friedrich Bran(Hrsg.): Wege zu Hermann Hese. Bad Liebenzell. 1898.

Mayer, Gerhart: Die Begegnung des Christentums mit den asiatischen Religionen im Werk                      Hermann Hesse. Diss. Bonn 1956.

Mayer, Gerhart: Die Begegnungen des Christentums mit den asiatischen Religionen im Werk                    Hermann Hesses. Diss. Bonn 1956.

Pannwitz, Rudolf: Hermann Hesses West-östliche Dichtung. Frankfurt/M. 1957.

Yu-Gundert, Irmgard: Über den Einfluß innerfamiliärer Tradition auf das Bild des religiösen                    menschen im Werk Hermann Hesses. (Vortragspamphlet)

Zeller, Bernhard: Hermann Hesse und die Welt der Väter. In: Wolfgang Böhme(Hrsg.): Suche                  nach Einheit Hermann Hesse und die Religion. Karlsruhe 1978.

 

Zusammenfassung

Hermann Hesse und das Christentum

                                HONG, Soon-Kil (Mokwon Uni.)

Einer der wichtigsten und sichersten Wege Hesse zu verstehen, ist es, sein Leben und Werk im Zusammenhang mit der Religion zu betrachten, womit er sich zeit seines Lebens unermüdlich beschäftigt hat. Seine Werke seien die Ansätze seiner eigenen im Christlichen beginnenden Seelengeschichte.

Er ist wie fast alle andere Europäer auch als Christ geboren und gestorben. Das Christentum spielte also eine entscheidende Rolle im Leben und Werk  von seiner Jugend an bis zu seinem Greisenalter. Man kann sogar sagen, seine Werke seien eine Kette von Variationen seines religiösen Lebenslaufs.

Seine Väter und Eltern lebten im Überfluß vom Geist des christlichen Pietismus, worunter Hesse immens litt und wogegen er eine heftige Revolte führte.

Der Ein- und Austritt des Maulbronner Seminars war ein besonders wichtiger Trennpunkt "als Ort des Übergangs, eines Übergangs freilich in eine der schwersten Krisen." Von da an bis zum Zeitpunkt, wo er als gelungener Schriftsteller selbständig wurde, war sein Leben an sich ein schweres Ringen mit der Religion.

Die Gründe, warum er anti-christlich gehandelt hat, liegen vor allem darin, daß die religiösen Forderungen seiner Eltern zu groß waren, als daß er sie annehmen konnte. Der mißlungene Schulbesuch spielte dabei eine entscheidende Rolle. Zweitens war Hesse von Natur aus ein Mann von Trotz und Eigensinn. Er wollte seinen eigenen Weg gehen. Drittens wollte er frei sein von Dogma und Lehre. Als Naturkind zielte er auf die höchste Entfaltung des Individuums.

Sein Religionsbekenntnis, daß er nie ohne Religion gelebt habe und keinen Tag ohne sie leben könnte, trägt die janusköpfige Attitüde. Er sagt weiter, daß er  sein Leben lang ohne Kirche ausgekommen sei. In des Wortes wahrer Bedeutung ist er ein religiöser Mensch, obwohl er nie in die Kirche geht. In dem Artikel 「Ein Stückchen Theologie」 ist er der Meinung, daß der Weg der Menschwerdung mit der Unschuld beginnt, was dem traditionellen, orthodoxen Christentum widrig ist. Ein Mensch ohne Erbsünde ist im  christlichen Glauben kaum vorzustellen.

Außerdem hat er andere Begriffsauffassungen über "Gott", "Liebe", "Erlösung", "Gnade" usw.  Er sucht nicht nach einen Einzigen, christlichen Gott, sondern einen Gott wie Abraxas in  『Demian』. Oder er gibt dem Gott eine pantheistische, mystische Färbung.

Er glaubt nicht an den geschichtlichen Jesus. Jesus war ihm nur einer der Heiligen, oder der Vollendeten wie Sokrates, Buddha, Laotse u.s.w.

In seinem religiösen Leben spielt das Christentum zwar eine beherrschende Rolle, aber er war ein ewiger Fremde, ein Außenseiter, der sein Leben lang um die Kirche herumschweifte.

Je älter er wurde, desto weiter entfernte er sich vom christlichen Glauben. Er vertiefte sich in die östliche Religion und Philosophie. Besonders begeisterte er sich für den mystischen Einheitsgedanke aus Indien und China. Er treibt keine Universalreligion, aber er zieht die Idee der humanistischen Religionen dem alleingültigen, nur gotteinbezogenen Christentum vor.

Ob Hesse überhaupt ein Christen war und wenigstens ob er an einen Gott glaubt, ist nicht zu überzeugen.

Er ist ein religiöser Mensch, aber kein Christ.  Oder man kann vorsichtigerweise sagen, er steht abseits vom Christentum.  Das Christentum war nur ein Teil der Religionen, woran er zeit seines Lebens glaubte.

In den Kinderjahren war er geborener Christ unter Betschwestern, in den Jugendjahren ein Anti-Christ wie Nietzsche und in Altersjahren ein Schein-Christ, also kein echter Christ.  

 

1) Hermann Hesse: Mein Glaube. In: Hermann Hesse. Gesammelte Werke in 12 Bänden. Frankfurt/M. 1970. Bd. 10. S. 79. (앞으로는 GW라는 약어를 사용함)

2) Hermann Hesse: Mein Glaube. GW 10. S. 70/71.

3) Hermann Hesse: Krieg und Frieden. GW 10. S. 548.

4) Hesses Brief an Wilhelm Kunze v. 17. 12. 1930. In: Hermann Hesse: Ausgewählte Briefe. Frankfurt/M. 1976. S. 42. (앞으로는 AB라는 약어를 사용함)

5) 이 두 사람들의 신앙 생활에 대해서는 모니카 훈니우스 Monika Hunnius 의 방문록을 참조하기 바람. Monika Hunnius: Johannes. Heilbronn 1948.

6) Hesses Brief an die 「Baltische Rundschau」 v. Sommer 1954. In: AB S. 414.

7)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참조 바람. Bernhard Zeller: Hermann Hesse und die Welt der Väter. In: Wolfgang Böhme(Hrsg.): Suche nach Einheit. Hermann Hesse und die Religion. Karlsruhe 1978. S. 10-25; Hermann Hesse: Erinnerung an Ärzte. In: Volker Michels(Hrsg.): Kleine Freude. Frankfurt/M. 1977. S. 7-10; Monika Hunnius: Johannes. a.a.O; Hermann Hesse: Großväterliches. GW 10. S. 302-311; Hermann Hesse: Kindheit des Zauberers. GW 6. S. 371-390.

8) 헤세의 『데미안 Demian』, 『어린 영혼 Kinderseele』 등에 밝고 어두운 두 세계 속에서 겪는 어린 영혼이 잘 그려져 있으며, 이는 곧 헤세의 어린 시절의 고백이다.

9) Hermann Hesse: Gertrud. GW 2. S. 38. 똑 같은 시가 「Im Leide」라는 제목으로 발표됨. Hermann Hesse: Die Gedichte 1. Frankfurt/M. 1977. S. 245.

10) Hermann Hesse: Meine Kindheit. GW 1. S. 224/5.

11) Hesses Brief an seine Eltern v. 15. 10. 1890. In: Ninon Hesse(Hrsg.): Kindheit und Jugend vor Neunzehnhundert. Hermann Hesse in Briefen und Lebenszeugnissen 1877-1977. S. 66. (앞으로는 KuJ 라는 약어를 사용함)

12) Luipold는 마울브론을 가리켜 "가장 어려운 위기 가운데 하나에 이르는 과도기의 장소"로 보았다. Luipold, Hans-A.: Das Evangelische Seminar Maulbronn, eine Station im Hermann Hesses Leben. In: Friedrich Bran(Hrsg.): Wege zu Hermann Hesse. Bad Liebenzell. 1989. S. 178.

13) Hermann Hesse: Begegnungen mit Vergangenem. GW 10. S. 352.

14) Irmgard Yu-Gundert는 경건주의에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의 두 면이 있다고 보고 특히 헤세에게는 교육에 있어서 부정적인 면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Vgl. Irmgart, Yu-Gundert. Über den Einfluß Innerfamiliärer Tradition auf das Bild des religiösen Menschen im Werk Hermann Hesses. (1997년 헤세학회 발표 원고) S. 3f. 참조

15) 여기에 대해서는 홍순길: 헤세의 생애와 작품에서의 부자갈등. 독일문학 64(1997)과 홍순길: 헤세작품에 나타난 부자갈등의 원인과 발전양상. 헤세연구 1(1998)을 참조

16)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는 헤세의 자전적 소설로써 거대한 바퀴(Rad)는 바로 학교와 신앙의 상징물이며 어린 헤세는 그 밑에 깔려 신음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17) Hermann Hesse: Kurzgefaßter Lebenslauf. GW 6. S. 393.

18) 헤세의 아버지는 창작활동이 "밥벌이 안되는 재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Vgl. Ninon Hesse(Hrsg.).: KuJ 1. S. 415.

19) Hermann Hesse: Erinnerung an Hans. GW 10. S. 212.

20) 헤세는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다고 헤세의 어머니는 일기에 적고 있다. Hirsch는 어린 헤세가 경건주의 부모를 떠난 모티브를 심미주의적인 것과 고집으로 보고 있다. Vgl. Willi Hirsch: Hermann Hesse. Beobachtungen und Gedanken zu seiner religiösen Entwicklung. Diss. Bern 1945. S. 6.

21) 헤세의 많은 작품에서는 주로 어린 주인공이 경건한 기독교 분위기를 벗어나 죄악과 양심의 가책 속에 있다가 부모와 가정과 신 속으로 돌아오는 모티브를 갖는다. 『Demian』,『Kinderseele』, 『Meine Kindheit』, 『Narziß und Goldmund』, 『Peter Camenzind』 등에 이런 모티브가 등장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Thomas E. Kolby: Zur Thematik des Verlorenen Sohnes. In: Volker Michels(Hrsg.): Materialien zu Hermann Hesses 『Demian』, Frankfurt/M. 1997. S. 150 ff. 참조

22) 헤세는 이 때 라틴어 학교장이었던 캅 Ernst Kapff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어려운 시기가 "나의 작가로서의 자아를 형성해 주었다"고 회고하였다. Vgl. KuJ. 1. S. 466.

23) 헤세가 마울브론 신학교에 다닐 때는 이런 독서의 자유로움이 없었다.

24) 헤세의 글 가운데 『Robert Agion』, 『Klingsor』 등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특히 『Robert Agion』에서 유럽인들의 종교적 침략행위를 가리켜 "닭장 안에 침입한 족제비"라고 했다. Hermann Hesse: Robert Agion. GW 3. S. 353.

25) Hermann Hesse: Besuch aus Indien. GW 6. S. 295.

26) Ernst Robert Curtius: Kritische Essays zur europäischen Literatur. 3. Aufl. Bern 1963. S. 158. Fritz Böttger 도 이와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Vgl. Fritz Böttger: Hermann Hesse. Leben, Werk, Zeit. Berlin 1977. S. 297 f.

27) Hesses Brief an seine Eltern v. 13. 9. 1896. In: KuJ 2. S. 140.

28) Hermann Hesse: Mein Glaube. A.a.O. S. 73.

29) Ebd.

30) Hesses Brief an eine Leserin v. 23. 2. 1935. In: AB. S. 137.

31) Hermann Hesse: Kinderseele. GW 5. S. 174.

32) Ebd. S. 183.

33) Johannes Hesse an Hermann Hesse v. 10. 3. 1892. In: KuJ 1. S. 187.

34) Hermann Hesse: Mein Glaube. GW 10. S. 71.

35) 헤세는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을 적은 『나의 유년시절』에서 그가 어머니에게 이성적인 질문을 하면, 곧 잘 "하느님이 바로 그렇게 만드셨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말하고 있다. Vgl. Hermann Hesse: Meine Kindheit. GW 1. S. 228.

36) Hesses Brief an Stefan Zweig v. 10. 2. 1923. In: Ursula und Volker Michels(Hrsg): Hermann Hesse. Gesammelte Briefe. Frankfurt/M. 1979. Bd. 2. S. 52. (잎으로는 GB 라는 약어로 나타냄)

37) Hesses Brief an seine Eltern v. 13-19. 1896. In: KuJ 2. S. 139.

38) 여기에 대해서는 홍순길: 『Siddhartha』 연구. -주제, 구조, 사상적 배경- 창학사 1984. 참조

39) Hesses Brief an Kuno Fiedler gegen Oktober 1939. In: AB. S. 183.

40) Hesses Brief an D. Zimmermann v. 3. 3. 1935. In: GB 2. S. 458. Gerhart Mayer 는 그의 신비주의적 종교성을 가리켜 "개인적 종교성 individuelle Reloigiösität"이라고 했다. Gerhart Mayer: Die Begegnung des Christentums mit den asiatischen Religionen im Werk Hermann Hesses. Diss. Bonn 1956. S. 39.

41) Hesses Brief an D. Zimmermann. In: GW 2. S. 458.

42) Vgl. Heinrich Geffert: Das Bildungsideal im Werk Hermann Hesses. Diss. Hamburg 1927. S. 27.

43) Hermann Hesse: Ein Stückchen Theologie. GW 10. S. 77.

44) Ebd. S. 75.

45) Ebd.

46) Ebd.

47) Ebd. S. 79.

48) Ursula Chi는 그가 헤세에게서 감명 깊게 찾은 의미를 "여러 형태로 표현되는 살아 있는 신에 대한 신념"때문이라고 했다. Vgl. Edition Isele: Die vielen Gesichter Hermann Hesses. Eggingen 1996. S. 56.

49) Hesses Brief an J. Schneider v. April 1961. In: AB. S. 534.

50) Horst Krüger: Unendliche Lust an der private Revolte. In: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v. 29. 2. 1984.

51) Hermann Hesse: Wanderung GW 6. S. 134. 또한 같은 책의 다른 곳에서는 "우리가 믿어야만 하는 신은 우리 안에 있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은 신을 긍정할 수 없다"(S. 157.)고 했다.

52) Hermann Hesse: Demian. GW 5. S. 95.

53) Hermann Hesse: Mein Glaube. GW 10. S. 78.

54) Hans Küng: Nahezu ein Christ? In: Walter Jens / Hans Küng: Anwälte der Humanität. München 1989. S.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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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평화를 사랑한 헤르만 헤세와의 만남 | - 헤르만 헤세 2009-05-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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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평화를 사랑한 헤르만 헤세와의 만남
남이섬에서 열리고 있는 헤르만 헤세 수채화원화전을 가다
04.06.16 14:56 ㅣ최종 업데이트 04.06.16 16:21 안병기 (smreoquf)
지금은 아스라한 시간의 극락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을 나의 고등학교 시절 헤르만 헤세는 내겐 정신적인 밥이었다. 나는 <데미안> <황야의 이리> <크눌프> <향수> <유리알 유희> 등 수북히 고봉으로 담긴 그 밥을 게걸스럽게 떠 넣곤 했다.

"신은 죽었다!"라고 제법 호기 있게 떠들고 다니던 니체라는 나물과 곁들여 먹던 그 밥은 제법 잘 차려진 진수성찬이었다. 내 사춘기의 정신적 기아는 그렇게 헤르만 헤세라는 한 이방의 작가에 의해 채워졌다.

▲ 안데르센 홀 입구
ⓒ 안병기
▲ 전시장 내부
ⓒ 안병기
세상은 늘 새로운 일거리를 덥석 던져주고 달아나 버린다. 그리고 그 일거리에 치이고 저도 모르게 삶에 찌들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잊혀진 헤르만 헤세를 남이섬 <안데르센 홀>에서 다시 만났다.

그가 직접 그린 수채화와 그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들과 백남준이 조각한 <싯달타상>, 헤세에게서 답장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는 전혜린의 일기 등 많은 볼거리가 관람객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전시장인 텅 비어 한산한 나머지 쓸쓸함이 감돌기까지 했다.

▲ 헤르만 헤세 기념관의 싯달타. 백남준 작
ⓒ 안병기
많은 사람들은 헤세를 소설가로서만 알고 있다. 그러나 헤세는 마흔 살이 되던 해 부터 갑자기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해서 만년에 이르도록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였다. "내가 화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현상 세계에 푹 빠져서 완전히 나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귀중한 체험입니다"라고 그림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애착을 나타냈다.

또한 음악에 대해서도 풍부한 지식을 지녔던 다재다능한 작가였다. 지식을 넘어서 때로는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가 음악적 소양이 깊다는 것은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으며 때때로 그는 작품에 음악적 요소를 도입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소설 <싯다르타>인데 이 소설은 제시부와 전개부, 재현부로 구성되어 소나타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 1919년 베를린 피셔 출판사에서 발간된 <데미안-에밀 싱클레어의 청춘에 대한 이야기>.
ⓒ 안병기
독일 시인 헤르만 카자크는 심지어, <데미안>은 비가적이고, <싯다르타>는 격정적이며 <나르치스와 골트문트>는 발라드 풍이요, <황야의 이리>는 장타령 속의 희비극, <동방 여행>은 로망스풍이라고까지 평했을 정도였다.

제 1차 세계대전의 가장 뚜렷한 정치적 원인이었던 민족주의적 입장에 섰던 헤세는 처음에는 심정적으로 독일을 지지했다. 그러나 독일군이 벨기에로 침공해 들어가자 헤세는 비판적 자세로 돌아서서 <친구여, 제발 그쳐다오!>라는 글을 발표했다.

▲ 헤세와 해바라기
"사랑은 마음 보다 크고 이해는 노여움 보다 높으며 평화는 전쟁 보다 고귀하다"라고 했던 평화주의자 헤세였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조국인 독일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나치들에게 조국을 배반한 작가로 낙인찍힌 그는 결국 나치들의 집요한 박해와 추적을 견디지 못하고 1923년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중립국 스위스로 귀화하고 말았다.

▲ 정원사 헤세. 종이에 펜, 수채
ⓒ 헤르만 헤세
▲ 종이에 펜, 수채
ⓒ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박물관 건립 위원회가 마련한 이번 전시회는 헤세가 이주해 살았던 몬타뇰라 근교의 자연 풍경을 그린 수채화들이었다.

나치와 같은 인간들에게 신물나고 혐오증을 느낀 때문이었을까. 그의 그림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무와 구름, 꽃, 호수 등 녹색과 푸른색이 가득한 풍경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전시 작품 중 <정원사 헤세>가 유일하게 사람이 등장하는 작품일 정도이다.

나치에 찍혀 스위스 몬타뇰라로 이주해서 은둔 생활을 하던 헤세의 집 대문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실례지만 방문할 수 없습니다."

'알'의 파괴를 역설했던 그 역시 알 밖으로 나오는 일은 두려움이었던 모양이다. 이 위대한 작가에게도 역시 세계라는 '알'은 파괴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일생에는 여행에 대한 기록이 꽤나 많이 나온다. 그러니까 여행도 "꿩 대신 닭"의 변형인 것이다. 이 점이 내가 헤세에게서 느끼는 동류의식이다. 사실 사람의 삶이란 "도진 개진"이 아니던가. 특별한 삶이란 희귀하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 삶이란 본디 구태의연함을 그 기본 내용으로 하기 때문이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세는 내게 묻는 듯 했다. 이젠 "너를 감싸고 있던 알을 깨트렸느냐"라고. 나는 여전히 그 알을 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라 했다. 그리고 세계라는 알을 감싸고 있는 단백질의 두꺼움에 차츰 지쳐가고 있는 중이라고 실토했다.

헤세는 알을 깨지 못하는 새는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없지만 알 속에 갇혀 사는 것도 삶의 한 방법이라고 내 등을 또닥또닥하며 위로했다.

"꿩 대신 닭이다." 내 생애를 망친 것은 이 말이었다. 삶에 대한 난관에 부닥칠 때마다 난 서둘러 그 말 속으로 도피하곤 했었다. 꿩은 꿩이고 닭은 닭이다. 그러나 닭에다 꿩의 터럭을 붙인다해서 꿩이 될 리 없건만, 닭에다 억지로 꿩의 터럭을 붙이며 살아온 날들이 무릇 기하였던가. 그렇게 자기 합리화에 맛들이고 그때마다 불면으로 몸을 뒤채고 잠꼬대를 하며 나는 차츰 삶에 이력을 붙여왔다.

헤르만 헤세가 펼쳐놓은 삶에 대한 생태학들을 되새기는 시간은 기쁨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상이라는 알의 안온함을 차마 팽개치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의 아트만을 들여다보는 동안 어느 새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다. 아니, 땅에 깔리던 건 끝없는 도로(徒勞)를 반복한 내 일생에 대한 깊고 짙은 회한이었던가.

▲ 도보여행을 떠나는 헤세

도보여행을 떠나는 헤세를 뒤쫓아 남이섬을 떠났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는' 선착장에서 그와 헤어졌다.

가늘고 흰
부드럽고 조용한 구름이
하늘에 흘러간다
그대의 시선을 수그려
희고 시원한 구름이
푸른 꿈 속을 지나가는 것을….

헤세는 그날 하루 내 꿈 속을 지나간 구름이었다. 이제 나는 그 구름이 지나간 자리를 생각한다. 그 구름이 마음의 하늘 어느 편으로 흘러갔던가. 왼쪽이었던가, 오른쪽이었던가.

헤르만 헤세 연보

▲ 자화상(1919)
ⓒ헤르만 헤세
1877년 독일 뷔르템베르크 출생
1890년 괴팅엔의 라틴어 학교 입학
1891년 마울브론 신학교 입학
1892년 작가가 되기 위해 신학교 자퇴
1902년 어머니에게 헌정한 <시집 Gedichte> 발표
1905년 <수레바퀴 밑에서> 출간
1910년 장편 <게르트루트 Gertrud> 발표.
1911년 화가 한스 쉬틀제네거와 함께 인도 여행
1913년 동방여행기 <인도에서 Aus Indien> 출간.
1914년 장편소설 <로스할데 Ro halde> 출간
1919년 에밀 싱크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 발표
1922년 "인도의 시"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 <싯다르타 Siddhartha> 발표.
1927년 장편소설 <황야의 이리 Der Steppenwolf> 발표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 나치의 탄압으로 작품들이 몰수되고 출판 금지됨
1943년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를 2권으로 취리히에서 출간.
1957년 <헤세 전집 Gesammelte Schriften>이 7권으로 증보 출간됨.
1962년 몬타뇰라의 뇌출혈로 사망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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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신비주의 : 정경량 | - 헤르만 헤세 2009-05-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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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신비주의

저자: 정경량

 

1955년 전주 출생으로 목원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있다.

서강대 독문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문학석사, 독일 뮌헨대학교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목원대학교 인문대학장을 역임하였다.

 

지은 책으로는『헤세와 신비주의』『노래로 배우는 독일어』등이 있다.

 

1. 헤르만 헤세와 동,서양 신비주의
2. 헤르만 헤세의 신비주의적 종교성
3. 신비주의를 통한 동, 서양의 종합
4. 주인공의 인간형성과 신비적 인물
5. 시간과 공간의 초월
6. 부록/제 6차 국제 헤르만 헤세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강연 원고
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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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헤르만 헤세 | - 헤르만 헤세 2009-05-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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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통해 참다운 어른이 되어 가는 소년 싱클레어의 이야기.
한 폭의 수채화같이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감수성이 풍부한 주인공 싱클레어가 소년기에서 청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자라가는 과정이 세밀하고 지적인 문장으로 그려져 있다.

진저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깊이 있는 이야기.

 

 

1. 두 세계
2. 카인
3.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4. 베아트리체
5.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6. 야곱의 싸움
7. 에바 부인
8. 종말의 시작

 

 

'우리는 고대의 그 교파의 신비적인 단체의 논법을 합리주의적인 관찰의 입장에서 생각하듯이 그렇게 소박하게 상상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가진 과학과 같은 것은 고대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대신 대단히 고도로 발전한 철학적 신비적인 진리에 대한 연구가 성행했다. 거기서부터 부분적으로는 분명히 사기와 범죄 행위로 나가기까지 한 마술과 유희가 발생했다. 그러나 그 마술 역시 고귀한 내력과 깊은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앞에서 예를 든 아프락사스의 설도 그렇다. 이 이름은 희랍의 주문과 관계가 있다고 말해지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대개는 야만 민족이 가지고 있는 어떤 악마의 이름이라고 왕왕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이 이름을 대략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관계를 지닌 일종의 신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p.48




이 글줄을 몇 차례 읽은 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떤 의심도 불가능했다. 이건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었다. 나와 그 말고 그 새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내 그림을 그가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압락사스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 p. 123




이 글줄을 몇 차례 읽은 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떤 의심도 불가능했다. 이건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었다. 나와 그 말고 그 새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내 그림을 그가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압락사스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
--- p.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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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달타 - 헤르만 헤세 | - 헤르만 헤세 2009-05-1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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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달타 - 헤르만 헤세

 

심한 노이로제 중세에 대한 시달려 온 헤세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계기로 정신분석학과 친해지고 그의 작품은 내면 세계를 추구하게된다.

이때 집필된 싯다르타는 동서의 세계관, 종교관을 자기체험속에 융화시킨 작품이다.

 

Herman Hesse  

 

 

1877년 남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출생하였다. 1895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는 처녀시집 『낭만적인 노래 Romantische Lieder』(1899)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 Eine Stunde hinter Mitternacht』(1899)을 출판하게 된다.

특히 처녀시집『낭만적인 노래』는 R.M. 릴케의 인정을 받으면서 문단도 그를 주목하게된다.

그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고 그에게 확고한 문학적 지위를 얻게 해준 것은 최초의 장편소설 『페터카멘친트 Peter Camenzind』(1904)였다.

이 책에는 주인공 페터 카멘친트가 끝없는 자기 탐구를 거쳐 삶의 근원적 힘을 깨닫게 되고 관조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삶을 보다 깊이 이해해 나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1904년에 9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고, 스위스의 보덴 호반(湖畔)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사를 간다. 여기서 그는 시를 쓰는데 전념했고, 1923년에는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초기의 낭만적 분위기의 시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인도 여행을 통한 동양에 대한 관심,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야만성에 대한 경험, 그리고 전쟁 중 극단적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문학계의 비난과 공격, 아내의 정신병과 자신의 병 등 힘들어져가는 가정 생활 등은 그를 변하게 만든다.

그는 정신분석학에서 출구를 찾으려하는데 융의 영향을 받아서 이후로는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한시도 쉬지 않았던 그는 1946년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동시에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으로 현실의 무게는 수레바퀴 밑으로 그들을 밀어 넣지만 결코 짓눌려서도 지쳐서도 안 되는 소중한 청소년기에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한 열정과 미래, 방황과 좌절을 섬세하게 묘사한『수레바퀴 밑에서 Unterm Rad』(1906),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그린 소설로 가수 무오토, 작곡가 쿤, 이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르트루트를 그린『게르트루트 Gertrud』(1910),

남성과 여성 속박과 자유 시민성과 예술성이 전편을 통해 끝없는 대립 상태로 이어지면서 결국은 주인공 베리구드가 나름대로의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 『로스할데 Rosshalde』(1914)와,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크눌프 Knulp』(1915)등이 있다.

 

또한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자기탐구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미안 Demian』(1919)은 신앙이 깊고 성결하며 예의바른 부모의 세계와 하녀, 장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부랑자, 주정뱅이, 강도 등 악의 세계가 자신의 내면에서 대립되고 있어 위태로운 방황을 계속하던 주인공 싱클레어가 데미안이라는 수수께기 소년에 의하여 자기발견의 길로 인도되어 참된 자아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시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으나, 비평가의 문체 분석에 의해 작가가 헤세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주인공이 불교적인 절대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싯다르타 Siddhartha』(1922) 또한 헤세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진리는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일생에 꼭 한 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던 시도가 바로 이 작품으로서 불교적 가르침과 사상의 복음서라기보다는 헤세 자신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깨달음을 갈망하면서 가장 밑바닥의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속세의 쾌락과 정신적 오만을 초극하고 완성자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43년 헤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던 『유리알유희 Das Glasperlenspiel』는 1931년에 시작되어 1943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긴 성립시기는 나치시대와 일치한다. 히틀러로 상징되는 문화의 침체와 정신의 품위상실, 야만과 원시의 시대에 작가 헤세는 정신적인 봉사와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유리알 유희속에 세운다.

 

이 밖에 단편집·시집·우화집·여행기·평론·수상(隨想)·서한집 등 다수의 간행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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