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사교과서 발행을 국정으로 전환하겠다면서 근현대사 뿐 아니라 상고사와 고대사를 보강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역사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다각도로 나오고 있다. 고조선을 축소해온 이른바 ‘식민사학’ 시절로 후퇴할지, 출처가 불분명한 신화를 검증없이 기술할지에 대한 우려이다.

실제로 국사교과서는 1974년 첫 국정교과서 이후 고조선과 고대국가 성립 등 고대사 기술에 있어 식민사학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한 비판의 근거는 현재 검인정 교과서에도 엿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는 고조선의 건국을 언제 누가 한 것인가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이냐에 있다. 과거 문화교육부 담당공무원이었던 윤종용씨가 쓴 ‘국사교과서 파동’에 수록된 교과서 비교표에 따르면, 청동기 문화의 시점에 대해 지난 1982년 국정교과서의 경우 “우리 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기원전 10세기 경 북쪽지방에서부터 시작됐다”고 기재돼 있다. 8년 뒤인 1990년 국사 국정교과서는 청동기에 대해 “신석기 시대에 이어, 한반도에서는 BC 10세기경에, 만주에서는이보다 앞서서 청동기 시대가 시작됐다”며 “청동기 시대의 유적은 요령, 길림성 지방을 포함하는 중국 동북 지역으로부터 한반도에 걸쳐 널리 분포돼 있다”고 기술했다고 윤씨는 전했다. 당시 국사교과서는 “비파형 동검은 중국 동북부로부터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포하며, 이러한 동검의 분포는 이 지역이 청동기 시대에 같은 문화권에 속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기술했다.

고조선 건국에 대해 1982년 국정교과서는 “삼국유사에는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과 곰의 변신인 여인 사이에서 출생한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2333년)”고 썼으며, 1990년 국정교과서는 “청동기 문화의 발전과 함께 군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출현했다. 이들 중에서 세력이 강한 군장은 주변의 여러 사회를 통합하고, 점차 권력을 강화해 갔다”고 기재했다고 윤씨의 책에 나온다. 1990년 교과서는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었다”며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됐다고 한다(BC. 2333)”고 기술했다. 

   
서울 종로구 사직공원 단군성전의 단군상.
@연합뉴스
 

단군의 고조선 건국을 “~라고 한다”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쓰는가 하면, ‘청동기 때 국가로 발전했다’는데, 청동기는 BC 10세기, 고조선은 BC 2333년이라는 시간적 모순을 담아온 것이다. 이 같은 고조선 건국 연대 기술 행태는 국정교과서 내내 계속됐으며, 검인정 교과서(2000년)로 바뀐 뒤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가장 최근의 검인정 교과서는 청동기 시기를 BC 10세기에서 BC 1500~2000년으로 상향했다. 리베르출판사에서 발행한 국사교과서(2013년 검정 판)는 청동기 시대에 대해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를 기원전 2000년 경에서 기원전 1500년 경에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문화와 공존하면서 점차 본격화됐다”고 기재했다. 

과거보다 많이 근접했지만, 여전히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재된 단군의 조선 건국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기술태도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최근 고등학교 검인정교과서엔 고조선의 세력범위에 대해 ‘강역 또는 영역(지배 영토)’이라는 표현 대신 ‘문화범위’라는 말로 기재했다.

이 교과서는 “고조선은 우세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주변의 여러 족장 사회를 통합하면서 점차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며 “고인돌이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는 것은 이 일대에 같은 문화권이 형성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탁자식 고인돌의 분포지역과 고조선 초기의 대표적 유물인 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등의 분포 지역을 통해 고조선의 문화범위를 짐작할 수 있다”고 썼다. 

   
과거 국사 국정교과서 비교표. 사진=윤종용 저 '국사교과서 파동' 캡처
 
   
과거 국사 국정교과서 비교표. 사진=윤종용 저 '국사교과서 파동' 캡처
 

올해 2학기 초등학교 5학년 사회과목 ‘국정교과서’에 있는 국사부분의 경우엔 한반도와 만주일부의 지도를 그려놓고 ‘고조선의 문화범위는 어디까지였을까’라는 제목의 설명을 해놓았다. 이 교과서는 “고조선은 우수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세력을 정복하거나 통합하면서 영토를 확장하고 큰 나라로 성장해나갔다”고 기술했다. 

고인돌은 지배자를 숭배하는 상징적 유물의 하나로, 다른 지역을 정복하고 통합했다면서 왜 영토라는 말 대신 ‘문화범위’라는 말로 의미를 불분명하게 하느냐는 지적이다. 

임연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기획실장은 최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난 12일 “정복전쟁과 여러 교류를 통해 영토를 넓혀나갔다고 써놓고 어떻게 문화범위라 기재할 수 있는가”라며 “청동기와 고조선 건국 시기의 모순된 기술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왜 있는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독립운동가 후손 출신의 한 한국사학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BC 10세기라는 학설은 이미 새롭게 발굴된 것과 과학적 조사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다”며 “한반도에도 기원전 20세기에 해당하는 청동기가 발굴됐으며 만주에서는 기원전 25세기 청동기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건국연대가 일치하는 것 아니냐”라고 밝혔다.

이 같은 역사기술 태도는 해방이후 조선사편수회에 몸담았던 고 이병도, 신석호 교수를 주축으로 한 ‘식민사학’이 수십년간 한국 고대사학계를 지배해온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우리를 뿌리없는 민족으로 여기도록 하기 위해 일제가 평양 이북은 한사군이, 이남엔 임나일본부가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고대사 부재’론을 펴왔다. 또한 BC 2333년 건국의 근거가 수록된 삼국유사의 경우 당대 서술된 자료가 아니라 설득력이 떨어지고 역사적 사실이라 보기힘든 단군신화일 뿐으로 치부돼 왔다. 이런 주장이 학계에 여전히 뿌리깊게 퍼져있기도 하다.

   
초등학교 5학년 사회교과서의 고조선 지도 및 설명. 사진=임연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기획실장
 

또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고 신석호 전 국사편찬위원장(문교부 장관)의 제자로 알려져있다. 신 전 위원장은 경성제대 사학과를 나와 1930~1940년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수사관을 역임해 2008년 이병도 박사와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그러나 고조선 연구자이기도 한 김정배 위원장 본인이 식민사학과 같은 관점으로 고조선사를 연구한 내용은 특별히 보이지 않는다. 그는 1973년 국정교과서 전환 발표 때 신문기고를 통해 반대했던 이력이 있으나 지금은 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맨 앞에 서 있다.

또한 김정배 위원장이 지난 4일 “역사교과서 원고본이 완성이 되면 우리 위원회의 연구원의 자체 검토 및 동북아역사재단과 같은 영역별로 특화된 외부기관의 전문가 검토를 통해 내용 오류, 학설상의 이견 등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힌 것도 고조선 역사서술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동북아 역사재단은 지난 2012년 경기도교육청 교육자료가 잘못됐다며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중앙일보 등). 당시 일부 매체에서는 “동북아역사재단은 어느 나라 재단인가”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13년에는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고대사 속의 한사군-재단 번역제목)이라는 영문 서적을 발간했으나 고대 한국에 고조선에 대한 기술은 빠져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국사편찬위원회가 과거 식민사학의 관점에서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사 기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이에 반해 ‘환단고기’와 같은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연구와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사서에 기대어 고대사를 오히려 부실하게 작성하는 것 아니냐는 정반대 편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사편찬위원회는 다음 달 초에 심의를 거쳐 확정된 편찬기준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박덕호 국편위 교과서편수실장은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편찬기준을 우리가 만든 뒤 교육부 내 교과용도서 편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되는데 다음달(12월) 초까지는 걸릴 것 같다”며 “위원 구성이 늦어져서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직접 브리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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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실장은 고조선의 건국시기와 강역, 표기방식 등 고대사 부분의 쟁점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는 정확한 사실 말하기 곤란하다”며 “학설상 이견 충돌이 있기 때문에 과거 검정체제에서는 여러 사람들에 따라 교과서마다 편차가 생긴다. 특히 통설이 없는 학설의 경우 차이가 많이 난다”고 전했다. 박 실장은 “예를 들어 집필진 중 공개된 신형식 교수 등은 (고대사 연구의) 대가들이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그런 부분과 관련해 (집필방향을) 생각하고 녹여내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국편위로부터 어떤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고 전했다. 강정미 동북아역사재단 홍보팀장은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편위로부터 어떤 요구나 임무를 전달받은 바 없다”며 “역사현안으로 외교적 다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백테이터를 제공해주는 것이 우리 일”이라고 말했다.

강 팀장은 동북아재단의 활동이 식민사학의 행태와 유사하다는 비판에 대해 “일제 때 주장과 엇비슷하다고 하는데, 해방 후 지금까지 70년 넘게 (유사 주장을 하는 학자가) 수백 수천명이 있을텐데 그 사람들이 다 일제와 비슷하다는 것이냐”며 “정말 식민주의 뿌리에 의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면 사료해석을 통해 더 정치하게 비판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비판에 대해 우리가 경청하는 면이 있고, 학술회의도 열려 한다”며 “그만큼 그분들 역시 상대방의 목소리를 경청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