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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30 개설

- 남한산성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 - 『남한산성』 김훈과의 만남 | - 남한산성 2015-03-0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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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 - 『남한산성』 김훈과의 만남

우리는 어쨌든 어떤 시대가 되었든 살아남아야……

 

http://ch.yes24.com/Article/View/13383

 

원고지와 연필, 그리고 지우개를 사용하는 언어의 장인. 원고지와 대면한 그의 모습에서 불상을 조각하는 장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기만의 소설 미학을 완성하고 있는 김훈을 만났다.

 

갤러리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듯 김훈의 문장은 독서하는 눈길을 오랫동안 멈추게 한다. 안개 낀 차밭을 휘어 감으며 조용히 그리고 묵직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보는 심정이 되곤 한다. 김훈의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위대한 무엇과 대면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새삼 말을 말답게 하는 작가의 소명을 떠올리게 한다.

원고지와 연필, 그리고 지우개를 사용하는 언어의 장인. 원고지와 대면한 그의 모습에서 불상을 조각하는 장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칼의 노래』『현의 노래』『강산무진』 그리고 『남한산성』까지… 자기만의 소설 미학을 완성하고 있는 김훈을 만났다. 그는 작업실에서 연필을 깎으며 글을 쓰고 있었다.

“작업실은 언제 마련하셨어요?”

“이쪽으로 온 지 이삼 일 정도 돼요. 집에서는 일을 잘 못해요. 인기척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김훈의 작업실에는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가지런히 놓인 선글라스(계절별로 쓰는 것이 다르단다). 조그만 칠판에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글이 쓰여 있었고, 책상에는 작은 구식 저울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 다 쓴 몽당연필을 올려놓는다.

“선글라스가 왜 이리 많아요? 네 개나 있네요!” “모두 용도가 달라요. 계절별로 쓰는 선글라스가 따로 있거든요.” 제일 위 은색 테두리 선글라스는 겨울에 쓰는 거다.

“칠판에 왜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고 쓰셨어요?”

“군대 있을 때 총을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치라고 배웠어요. 그래야 그 총이 오래가고 녹이 안 슬고 제대로 기능을 하죠. 군인에겐 총이 생명이니까. 하루를 엄정하게 관리하자는 뜻인데… 군대 다녀온 지가 35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저걸 써먹고 있네요.”

“조인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흔들리지 않게. 문장도 그렇게 조여야 하지요.”

“책상 위에 저울은 왜 올려놓으셨어요?”

“이 저울은 할아버지 소지품이에요. 한의사셨던 할아버지가 한약재의 무게를 재기 위해 이 저울을 사용하셨는데, 난 몽당연필을 올려놓지요. 몽당연필이 쌓이면 이 저울이 내려가요.”

작가들은 항상 글을 쓰는 것, 소설을 쓰는 것은 무척 지루한 작업이라고 고백한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 식 소설 쓰기’를 권하고 -정해진 책상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이 써지든 안 써지든 앉아있는 것-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만년필 잉크를 확인해가며 글을 쓴다. 어쩌면 김훈도 쓰는 만큼 늘어나는 몽당연필 때문에 기울어지는 저울을 보면서 지루함을 이겨내고 다음 장을 쓸 힘을 내는 것일지도….

“여전히 원고지에 연필과 지우개로 소설을 쓰시나요.”

“네.”

“연필은 몇 자루 정도 쓰셨어요?”

“연필이 수도 없이 들어가죠. 몇 장 못 써요. 없어지는 것보다 깎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많아요. 참 아까워요. 좀 더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연필이 독일산이네요? 독일산이 좋은가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이 질감이 익숙해져서….”

“작업은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하시는 편인가요?”

“그렇게 하면 참 좋을 텐데. 저는 아침에 작업실에 와서 책상에 앉으면 한 장이나 반 장 정도 쓰면 그날 일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내가 알아요. 오늘은 안 되는 날이구나 싶으면 나가서 놀죠. 그런 날은 앉아 있어봐야 일이 안 되니까. 오늘은 되는 날이다 싶으면 하루 종일 앉아서 쓰지요.”

그는 연필로 글을 쓴다.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며. 다 쓰고 남은 몽당연필은 저렇게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저울은 소설가 김훈의 할아버님이 쓰시던 거다. 김훈의 할아버님은 한의사셨다.

“주로 뭐하고 노세요?”

“(갑자기 목소리가 밝아지면서)저는 노는 날은 들에 나가서 혼자 뛰어놀아요.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들판이 많이 나와요. 좋아요.”

“혼자 노는 걸 좋아하세요?”

“죽 혼자 놀았어요. 들판 뛰어다니고, 등산도 혼자 다녀요. 여럿이 다니면 시끄럽고 내 계획에 따라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안 따라오는 놈도 있고 모이라 하면 잘 안 모이고.”

“소설가로 사는 건 어떠세요? 노는 것만큼 재미있으신가요?”

“혼자서 하니까 아무런 구속이 없잖아요. 그것이 참 좋아요. 자기가 자기를 단속하고, 자기가 자신을 규율해 나가야 하니까 철통 같은 자기 규율을 해나가야 하지요. 그것이 매우 힘들어요. 나같이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는 나가서 놀고 싶지요. 이것을 견디고 자기가 자신을 다스려 나가는 것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먹고사는 건 어떠세요? 요즘 글 써서 밥 먹고 살기 힘들다던데요.”

“저는 겨우 먹고살아요. 책 팔아서 약간의 수입이 생기잖아요. 그 수입을 가지고 다음 책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되니까…. 책이 나오면 또 약간의 수입이 생겨서 다음 책 나올 때까지 살고,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갈 때가 되겠죠. 그러면 가면 되겠죠.”

마이 페이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소설가다. 그는 영화도 잘 안 보다고 했다. 왜 안 보느냐니까 ‘답답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 흐름에 상관없이, 세상 사람이 뭐에 관심을 가지는지 신경 쓰지 않아 낙후되어도 좋다. 시대의 뒷전이 되어 그저 혼자서 재미나게 들에서 노는 게 좋다고. 그런 그의 낙후성이 부러웠다.

김훈과 자전거 미니어처 그리고 그의 책 『남한산성』

“어느덧 다섯 번째 장편소설이네요,『남한산성』은.”

“내가 옛날부터 역사를 배경으로 하자고 생각한 것이 세 편이었어요. 이순신, 우륵, 남한산성. 이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쓰지 않을 예정이에요. 『칼의 노래』 이순신, 그 사람은 영웅이죠, 영웅. 군사적인 영웅이죠. 『현의 노래』 우륵은 예술의 영웅이고. 한 사람은 무기를 든 영웅이고, 또 한 사람은 악기를 든 영웅이죠. 남한산성은 영웅이 아니고, 치욕의 역사지요. 영광의 반대. 내가 쓸 건 다 썼어요.”

“병자호란에 끌리신 이유가 있나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어요. 성안에는 일만 명 정도의 군사가 있었고, 45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있었고, 간장이 220독이 있었고, 약간의 화약이 있었고…. 적은 20만 명. 청나라 태종이 이끌고 온 가장 우수한 군사들이 성을 둘러싸고 있었어요.

완전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47일을 버텼는데 성안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싸우자는 사람도 있고, 빨리 나가서 항복을 하자는 사람도 있고, 주전, 주화. 아무 얘기도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오늘은 이 말 했다 내일은 저 말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성을 일찌감치 빠져나가 달아나는 사람도 있고 오늘은 끝까지 싸우자고 했다가 다음 날 달아나는 사람도 있고, 성 밖에도 성 안으로 들어가야 살 수 있다고 해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자도 있고, 자살하는 자도 있고,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도 있고… 별놈이 다 있지요. 난 그 다양한 모든 인간에게 다 그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한 거죠. 나름의 정당성과 내적 필연성이 있는 것으로 봤고, 또 그것을 드러내려고 했죠. 총체적인 비극의 전체적인 모습을 들여다보려 한 거죠.”


“소설 속 인물 중 공감이 가는 인물이 있는지요.”

“저는 작가의 말에 밝혔지만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김상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주전파, 군사적 현실을 망각한 사람.”

칸은요?”

“아주 무서운 리더죠.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던 부족들을 통일하고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서 청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명을 청으로 바꾼 무서운 리더. 힘 자체.”

“선생님은 그런 절대적인 힘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신가요? 권력이 아니라 힘 자체.”

“좋아한다기보다는 이십 세기가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악의 모습. 그러나 근원적으로 회피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왜 악인가요?”

그것은 남의 자율적 삶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발로 부수고 밟아버리고… 남이 남으로서 자유롭게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그때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외양은 달라졌지요. 하지만 다르지 않죠. 본질적인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한미 FTA 도 그렇죠. 그때나 지금이나 악한 시민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죠. 더불어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과 더불어 시달리면서 저항하면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어요. 그러한 세계사의 고통을 해결할 길이 없잖아요. 그렇게 시달리면서 지지고 볶으면서 그럴 수밖에 없지요.”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그는 매일 칠판에 적어놓은 이 문구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인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설에서 인조라는 인물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모든 국면을 다 들여다보는 그런 인물로 그리려 했어요. 뚜렷한 행동이나 말이 없는, 언질로만 알 수 있는 베일 속의 인물. 인조는 비극적인 상황을 자기 몸으로 정리한 사람이에요. 올바른 삶의 길을 간다고 할 수 있지요. 그 이외에는 길이 없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살아야지요. 그런 결단을 내린 인조가 훌륭했다기보다는 삶의 길이 그러한 거죠. 인조는 그 길을 간 것이고요.”

“그때의 리더와 오늘날의 리더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

“강한 외세와 더불어,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조국의 운명이 갑갑한 것이죠. 앞으로도 그러할 텐데… 홀로 살 수는 없는 거예요. FTA라는 것도 그런 것이겠죠. 싸우면서 또 함께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피할 수는 없는 거죠.”

“약한 나라의 숙명이네요.”

“우리는 어쨌든 어떤 시대가 되었든 살아남아야 하는 거예요. 살아남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운명 속에는 영광과 자족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치욕과 굴종도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다 합쳐가면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거죠.”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현실을 이야기할 때면 느껴야 하는 갑갑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신처럼 바짓가랑이 아래로 기어가는 치욕만큼은 아니지만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모욕과 타협, 변명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분위기를 바꿔볼 생각으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이번 소설은 문장이 짧아진 듯한데요.”

“문장이라는 것은 소설의 주제에 맞게 문체를 변형해 나가는 것이지요. 저는 사실 긴 문장을 썼는데 이번에는 짧은 문장을 썼지요. 물론 여기서도 긴 문장, 아주 긴 문장도 있죠. 긴 문장과 짧은 문장 사이에서 리듬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지요.”

『남한산성』을 집필하시는 데에는 얼마가 걸렸나요?”

“준비한 것은 3년 전인데 쓰는 것은 7개월 정도. 매우 더뎠어요. 『칼의 노래』는 오래전부터 준비를 했지만 거의 두 달 만에 쓴 거거든요. 『현의 노래』는 한 달 만에 썼고요. 이것은 일곱 달이 걸렸으니까 나로서는 엄청 힘이 든 거죠.”

“왜 힘이 많이 드셨어요?”

“우선 기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고 등장인물이 많았어요. 인물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그려놔야 하니까.”

“이번 작품 만족하시나요?”

“저는 소설을 끝낸 후에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교정도 안 봐요. 출판사에 갖다주면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가끔 책이 내 앞에 있으면 보는데 한 줄 읽어보면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왜 이렇게 썼을까 싶어요.”

“선생님 단편도 좋아하는 독자가 참 많은데요. 단편에서 다루시는 소재와 장편에서 다루시는 소재가 참 다른 것 같아요.”

“분량이 짧으니까 수다를 떨 길이 없는 거죠. 글을 아껴서 써야 하잖아요.”

“단편 쓰는 것 재미있으세요?”

“단편은 생각보다 재미는 있어요. 원고지 100장에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지만 성공하기가 참 어렵지요. 그리고 그것은 돈이 안 돼요. 단편소설 하나에 팔십 만원, 5만 원은 세금으로 떼요. 전 단편 하나 쓰는 데 석 달 걸려요. 아무 일도 안 하고 구상에서 탈고까지…. 그러면 그것 쓰는데 내 비용이 들어가요. 취재 다니고 자료 수집하고 담배 피워야 하고 원고지랑 연필을 사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십 원도 안 준다는 거잖아요. 할 수가 없죠. 좋아도 쓸 수가 없어요. 먹고살 수가 없으니까. 문화의 기초라고 하는 문학하는 사람들이 먹고살 수가 없다면 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어요?”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그는 시무룩하다. 셔터를 누른 후 뷰 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자못 어두운 얼굴로 “화난 표정 같아요”라고 말을 하고, 다시 카메라 너머에 있는 그를 보니, 그가 웃고 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

예전 한 강연회에서 왜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그는 ‘밥벌이’라고 짧게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단지 ‘밥벌이’를 위해서 글쓰기라는 지루한 노동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쓰기는 그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영원히 그곳에 수렴되기만 하는 아득한 치욕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무릅쓰고 오늘도 작업실에 앉아 모호한 언어와 씨름을 하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렇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달려드는 작가를 통해 독자는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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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종합) | - 남한산성 2014-06-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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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종합)

카타르서 열린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서 결정
석굴암·창덕궁 등 이어 11번째
동아시아 산성 건축 및 군사 방어 기술 집대성
국제적 인지도 높아져 관광 특수 기대
이데일리 | 양승준 | 입력 2014.06.22 16:07 | 수정 2014.06.22 16:22

 

http://media.daum.net/culture/clusterview?newsId=20140622160705967&clusterId=1203935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경기 광주시에 위치한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석굴암·창덕궁 등을 포함해 11개의 세계유산 보유국이 됐다. 2010년 하회와 양동이 한국의 역사마을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4년 만의 희소식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카타르 수도 도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22일(현지시각) 열린 38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세계유산이 된 남한산성(사진=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앞서 지난 4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남한산성에 대해 '등재권고' 판정을 내려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는 유력한 상황이었다. 이코모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실사를 담당해, 이 기구의 평가결과는 세계유산 등재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카타르 수도 도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22일(현지시각) 열린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사진=문화재청).

▶ 비상시 '임시왕궁'에 산성도시 기능도=남한산성은 특정기간과 문화권 내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와 역사적 발달 단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세계유산으로 자격을 인정받았다. 유네스코는 구체적으로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일본과 중국의 산성 건축 기술을 반영한 점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남한산성은 '비상시 임시궁궐'이란 독자성을 띈 문화유산이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장인 이혜은 동국대 교수는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가 병자호란 때 머물던, 비상시 임시수도 역할을 했던 곳"이라며 "이런 산성은 세계적으로 남한산성밖에 없다"며 의미를 뒀다.

남한산성은 군사시설이면서 안에 사람이 살면서 생활이 이뤄졌던 보기 드문 산성도시였다. 인조가 성 내부로 백성의 이주와 정착을 장려해 4000명 이상이 살았고, 아직까지 주민이 살고 있다. 살아있는 유산인 셈이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 최재헌 건국대 교수는 "조선시대 방어전략으로 군사적 기능과 읍성의 행정 기능을 산성에 결합하는 산성거주론이 실현됐고 이 기능은 오직 남한산성만 300년 넘게 유지했다"고 남한산성의 도시로서의 가치의 의미를 뒀다.

앞서 우리나라는 석굴암·불국사, 종묘(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조선왕릉(2009) 등 문화유산 9건과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등 자연유산 1건 등 10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되자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참석한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남한산성은 이제 한국의 유산을 넘어 세계인이 함께 가꾸는 세계유산이 됐다"고 의미를 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남한산성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음을 감사히 여긴다"며 "동아시아의 역사 중심이었던 남한산성을 강력한 보호체계와 예산지원으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유산된 남한산성 내 행궁 모습(사진=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남한산성·수원화성·조선왕릉 문화관광벨트로"=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관광특수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과 가까워 관광객 유입 효과가 다른 유산에 비해 클 수 있어서다. 국제적 지명도가 높아져 한국을 찾은 외국인의 남한산성 방문 횟수도 늘 것으로 보인다.

관광 프로그램 개발이 숙제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해서 모두 관광객이 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0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전남 화순 고인돌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 수는 되레 87%나 줄었다. 2005년 71만 3000명이었던 연간 관광객 수가 2010년 9만 2000명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연간 약 320만 명(2012년 기준)이 다녀간 남한산성에 관광객을 더 모아 들이려면 세계 유산 및 인근 관광 콘텐츠 개발과 투자가 지속해야 한다는 게 관광계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남한산성도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방문객은 증가했지만, 증가 폭이 2008년과 2009년 모두 40%대에서 2010년 10%대로 준 만큼 새로운 활로가 필요한 시기라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남한산성 세계유산 선정을 계기로 역사문화유적 랜드마크를 조성해 가치를 높이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남한산성과 수원화성, 조선왕릉을 문화관광벨트로 2018년까지 엮는다는 계획이다. 원준호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기획사업팀장은 "남한산성의 역사와 유·무형 문화재, 다양한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연·전시·체험행사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승준 (krank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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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어떤 점이 세계유산 가치 인정받았나 | - 남한산성 2014-06-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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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어떤 점이 세계유산 가치 인정받았나

"동아시아 도시계획과 축성술의 교류를 보여주는 군사유산"연합뉴스 | 입력 2014.06.22 15:38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40622153806292&RIGHT_COMM=R6

 

"동아시아 도시계획과 축성술의 교류를 보여주는 군사유산"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세계유산은 1972년 유네스코가 채택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기초를 둔다. 세계유산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유형 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이를 크게 자연이 빚어낸 자연유산(natural heritage)과 인류 활동의 흔적인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 그리고 이 두 가지 성격을 복합한 복합유산(mixed heritage)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이런 분류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문화유산이다.

한데 세계유산이 되기 위한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이 협약에는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는다. 이는 법률 체계로 보면 헌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조건은 '세계유산협약의 이행을 위한 운영지침'(Operational Guideline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World Heritage Convention)에서 규정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자주 바뀌는 편이다.

가이드라인이 규정한 세계유산의 조건은 ▲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 진정성(authenticity) ▲ 완전성(integrity)의 세 가지다. 하지만 이 또한 추상적인 까닭에 가이드라인은 그것을 더욱 세밀하게 10가지로 구체화한다. 10가지 중 6번째까지가 문화유산과 관련되며, 나머지 네 가지는 자연유산과 관련 사항이다. 이 세부 조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해야 세계유산이 된다.

세 가지 조건 중에서도 흔히 유네스코에서는 'OUV'로 약칭되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이에 기초해 유네스코가 정의한 6가지 문화유산 등재조건은 다음과 같다.

(i) 인류의 창조적인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

(ii) 인류의 중요한 가치 교류를 보여주는 건축이나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이나 조경설계의 발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거나 세계의 특정 문화권에서 일어난 것 .

(iii)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명과 관계되면서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것.

(iv)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들)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가 될 수 있는 특정 유형의 건조물,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이거나 경관.

(v) 문화(또는 여러 문화) 또는 돌이킬 수 없는 영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큰 환경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전통적인 인간 정주지, 토지의 이용 또는 해양의 이용과 관계되는 탁월한 사례에 속하는 것.

(vi)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 사건 또는 살아 있는 전통, 사상, 신앙, 예술ㆍ문학 작품과 직접적으로 또는 형태적으로 연계된 것.

국내 11번째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린 남한산성은 이 중에서도 (ii)와 (iv)를 충족했다.

등재 기준 (ii)에 따라 남한산성은 "동아시아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로서의 군사유산"으로 간주되었으며 (iv)에 따라서는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한 초대형 포곡식 산성"으로 평가된 것이다.

최재헌 건국대 지리학과·세계유산학과 교수에 의하면 남한산성은 등재기준 (ii)에 따라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동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일본 간에 산성 건축술이 상호 교류한 중요한 증거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남한산성은 임진왜란(1592~1598)과 정묘호란(1627)·병자호란(1637)을 거치면서 국가 유사시에 왕실과 조정의 보장처로 방어력을 갖춘 임시수도의 필요성을 절감함에 따라 등장한 산성도시로서 새로운 화포와 무기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고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성곽을 증·개축하고, 다양한 중국의 방어전술을 응용해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남한산성은 그 자체 독특성을 지니면서도 세계사, 특히 당시 동아시아 사회와 교류한 흔적이라는 것이다.

등재기준 (iv)와 관련해 남한산성은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기술적 발달 단계와 무기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낸다고 평가받았다.

남한산성은 그 원류를 찾아가면 나당전쟁 거점 중 한 곳인 통일신라시대 주장성(672년)에 닿는다. 실제 남한산성에서는 주장성 흔적이 발굴결과 드러났다. 그러다가 1624년 인조 때는 전통적인 퇴물림 방식에 따라 정방형과 장방형 돌을 20단 이상 쌓아 옆에서 보면 하단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직선에서 뒤로 굽어지는 굽도리 방식의 형태의 남한산성으로 탈바꿈한다. 화포 공격에 대비해 하단에는 대형 석재와 암반을 사용해 성벽의 지지력을 높여 화포 공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러다가 18세기 영조와 정조 때는 석재 중간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 성벽의 지지력을 더욱 높인다. 성벽과 옹성에는 불랑기 등의 화포를 쏠 수 있도록 포좌를 만들고 옆에 화약고를 만든 포대를 건설했다. 또한 여장을 만들면서 마사토와 강회, 동유를 섞은 모르타르와 전돌을 함께 사용해 구조적인 지지력을 높였고, 근총안과 원총안을 만들어 적에게 사격을 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변모에 따라 남한산성은 성벽이 시기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인조 초에 축성한 원래 성, 병자호란 이후에 만든 3개 외성, 그리고 5개 옹성과 방어시설 등은 축성술이 변모한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한 화석과 같은 유산인 셈이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고려되기는 했지만, 남한산성은 결국 이 두 가지 기준을 충족했다 해서 국내 11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물론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면서 경기도가 보여주는 보존정비 정책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기도는 산성 내 러브호텔을 철거했는가 하면, 무분별한 식당가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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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행궁, 10년만에 다시 문 열다 | - 남한산성 2012-05-2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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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행궁, 10년만에 다시 문 열다

병자호란 등 수난 현장 복원공사 끝내고 공개 서울신문 | 입력 2012.05.25 03:11
[서울신문]병자호란 47일간의 항전과 삼전도(三田渡)의 굴욕, 일제에 의한 훼손 등 굴곡진 역사를 안은 남한산성 행궁이 10여년의 공사를 끝내고 24일 일반에 공개됐다.

경기도는 남한산성 행궁권역 복원 공사 완료를 축하하기 위해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행궁 인근에서 낙성식을 가졌다.

둘레 약 8㎞로 백제 온조왕 때 축성된 남한산성 안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행궁(조선 인조 4년 건립)은 1907년 일제가 군대해산령을 내리고 성안의 무기고와 화약고를 파괴하면서 사찰 및 문화재와 함께 훼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는 행궁에 대한 발굴 작업을 거쳐 2002년 상궐(침전)의 내행전, 좌승당, 재덕당, 행각 등 72.5칸을 처음으로 복원했다. 이어 2004년에는 좌전 26칸, 2010년에는 하궐(정전)의 외행전과 일장각, 한남루, 행각, 통일신라유적지 등 154칸을 복원한 데 이어 올해 하궐 단청과 남한산성 안내전시시설 설치를 끝으로 10여년 간에 걸친 복원공사를 마무리했다. 지금까지 모두 215억원이 투입됐다.

도는 낙성식을 조선 정조 때 발간된 수원 화성 성곽 축조에 관한 경위와 제도, 의식 등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등의 고증을 통해 전통 낙성연을 그대로 재현해 진행했다.

도는 이날부터 낙성연이 계속되는 오는 28일까지 일반인들에게 남한산성 행궁을 무료 개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낙성연 기간인 26일에 풍류음악회, 27일에 광지원농악을 공연하는 등 다양한 전통문화공연도 펼칠 예정이다. 행궁 관람은 앞으로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능하다.

이재철 도 문화예술과장은 "연간 320만명이 찾아 도내에서 에버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객이 많은는 남한산성의 행궁이 복원 완료되면서 남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한산성은 2010년 1월 10일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정식으로 등재됐고, 지난해 2월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내 13곳의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가운데 우선 등재 대상으로 선정했다. 내년 1월 유네스코에 정식으로 등재신청서가 제출될 예정이며, 등재 여부는 2014년 6월 결정된다. 도는 낙성식을 계기로 3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추진위원회도 출범시킬 계획이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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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로 남은 섬 | - 남한산성 2010-01-0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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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산책 83호>

문학의 향기로 남은 섬



-심 경 호(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나사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젊은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은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 속성을 환상적 기법으로 드러내 보인 고전이다.
마을에서 선량하다고 칭송되는 이들이 실은 무고한 사람을 마녀재판으로 학살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끔찍한 꿈’을 통해 알게 된 젊은 브라운은 아주 딴사람이 되고 말았다.
“완전히 절망적이진 않다 하더라도 근엄하고, 슬프고, 어두운 생각에 잠기고, 모든 것을 불신하는”그는 백발노인으로 죽기까지 끝내 음울함 속에서 죽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의 비석에 “아무런 희망의 글귀 하나 새겨 넣을 수가 없었다.”(천승걸 옮김에서)

브라운이 인간의 악마적 속성을 알게 되어 음울함 속에 죽어간 것은 그가 살았던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숲이 밝음의 역사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브라운이 세일럼 마을을 벗어나 황량한 숲길로 들어섰는데, “정말이지 그 숲길은 너무 고독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고독함은 수많은 나무 기둥과 짙게 드리운 나뭇가지 뒤에 누가 숨어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음울한 풍광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숲은 나뭇가지 뒤에 숨어 있는 악마가 기분 나쁜 입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마을과 숲에 간직된 밝은 이야기와 때로는 어두운 과거사까지도 ‘역사미’로 결정화되어 있다.
그것들은 전설이 되고, 문학이 되고, 예술이 되었다.
『한시기행』과 『산문기행』을 집필하면서 내가 느낀 감흥과 신명은 바로 그 역사미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도에 서린 이야기들과 ‘역사미’


이 봄 4월 4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한강의 섬」을 주제로 학술발표를 개최할 때 나는 집행부의 요청에 따라 저자도(楮子島)와 관련된 시문에 관해 발표하였다.
그 준비를 하면서 우리 국토에 서린 역사미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였다.

저자도는 청계천이 사근동 동남쪽에서 중랑천과 합류되어 서남으로 꺾이면서 한강으로 접어드는 곳에 이루어진 삼각주였다.
고려 말 호방한 인물인 한종유가 거처하였던 일화가 전설로 되어 전해지고,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을 떠나는 이종무 일행의 출정식을 거행하였다는 사실이 역사서에 남은 섬이다.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북한강이나 남한강으로 나가는 사람을 전별하는 곳이자, 경강 어구의 선유락에서 중심지이자 경유지였다.
특히 이 섬은“서울에 가깝지만 상당히 외졌다”는 사실 때문에, 욕망이 분출하는 뜨거운 세계[열세계(熱世界)]로부터 몸을 빼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개결한 처사였던 허격(許格), 정승을 지낸 문학가였던 이세백(李世白), 이세백의 내제로서 역시 대문호였던 김창흡(金昌翕)이 이 섬에 은둔하면서 많은 일화와 시문을 남겼다.
이세백이 죽은 손녀를 애도하여 쓴 글은 너무도 애절하면서 질병에 맞선 선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글이다.
김창흡이 초가의 낙성 때 지은 상량문은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정신지향을 담아낸 명문이다.

‘저도귀범(楮島歸帆)’이라는 조어가 만들어진 데서 상상할 수 있듯이, 이 섬 일대의 안온하고 고즈넉한 풍경은 선인들의 시문 속에 원경으로 스크랩되어 있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기우제, 벌빙과 연병의 장소로서 중시되었다.
또한 저자도는 국가의 채전을 가꾸는 농민과 벌빙군을 대신하여 품삯을 받고 얼음을 채취하는 민중들이 생활하던 곳이기도 하였다.
더구나 저자도에는 백제 온조왕의 행궁이 있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저자도의 ‘역사미’를 구성하였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봉은사에서 지내며 지은 잡시[寺居雜詩]」가운데 제5수에서 저자도 수신사에서 굿 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저자도 강변에서 해 질 무렵
楮子洲邊落日時
둥둥 수신사에 무당 북소리.
巫鼓水神祠
마을 사람 공수를 가만히 들어보니
村人密聽奏
모두가 원한 품은 여인의 말.
多是閨中怨女詞



이 시를 읽으면 저자도의 수신사에서 우리네 여인들이 한스러운 마음을 공수로 풀어 흩던 광경을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그녀들의 슬픈 사연은 한강 물에 둥실 떠서 바다로, 바다로 흘러갔으리라.

연암 박지원이 큰 누님의 상여를 실은 배를 바라보면서 통곡하며 돌아간 곳도 저자도 강변 두모포에서의 일이었다.
「큰 누님 증 정부인 박씨 묘지명(伯 贈貞夫人朴氏墓誌銘)」에서 연암은 28년 전 여덟 살 때 큰 누님이 시집가던 날 어리광 부리던 일을 추억하였다.
그리고 자형이 큰 누이의 상여를 배에 싣고 까마귀골로 향하는 것을 두모포 강가에서 바라보았다.

강가에 말을 세우고 아득히 보니,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돛대의 그림자가 구불구불 흘러가더니, 언덕에 이르러선 방향을 틀어 나무들에 가려져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강가의 먼 산은 검푸른 것이 쪽찐 머리와 같았고, 강 빛은 거울과 같았으며, 새벽달은 눈썹과 같았다.
빗을 떨어뜨리던 것을 눈물 흘리며 생각해 보니, 오직 어렸을 때의 일이 또렷하고 또 기쁨과 즐거움이 많았다.
긴 세월 가운데 사이사이 늘 이별의 고통을 겪고 빈곤을 근심했으니, 그것들은 홀홀히 지나가는 꿈과 같은데, 형제로 살았던 날들은 또 왜 그리 짧은지.


‘역사미’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에


이러한 풍광과 역사를 지닌 저자도 자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1970년대 강남 압구정을 개발할 때 이 섬에서 골재를 채취하여 섬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당시 저자도가 지닌 인문학적 배경을 충분히 검토하였는지 의심스럽다.
닭소리, 가을 기운, 별, 달, 안개, 물빛, 물새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내었던 조용한 저자도 일대의 풍광은 이제 존재하지 않기에, 한강은 영혼의 정화력을 일부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젊은 굿맨 브라운이 모든 것을 불신하다가 묘비명에 아무런 희망의 글귀 하나 새겨 넣을 수 없이 죽어간 것과는 다른 미래를 살아갈 수 있다.
‘역사미’가 뿜어내는 향기가 우리를 황폐함에서 구해내주기 때문에. ‘역사미’가 뿜어내는 향기를 맡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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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입장요금 | - 남한산성 2009-10-0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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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요금
구 분 어 른 청소년 및 군인 어린이
개인 1,000원 600원 300원
단체(30명이상) 700원 300원 200원
-->
※ 2007년 1월 1일부로 남한산성 입장요금이 폐지되었습니다.
시설요금
구 분 차 종 요 금(단위:원)

시설
사용료
1. 이륜차 500원
2. 승용차 영업용(일반승객탑승택시) - 면제
자가용 - 1,000
3. 버 12인승 미만 - 1,000
12인승 이상 - 2,000
영업용(노선버스) - 면제
4. 화물차 4.5톤 미만 - 1,000
4.5톤 이상 -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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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열전(崇烈殿)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2호 | - 남한산성 2009-10-0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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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남한산성> 
 
88쪽, " 성 안에 백제 시조 온조왕의 사당이 있으니.."
234쪽, "온조왕의 사당은 삼거리에서 오리 안쪽이었다.
볕바른 언덕은 앞이 터졌고, 숲을 벗어난 소나무 몇그루가 사당 마당에 높이 솟아있었다." 
-----------------------

 

숭열전(崇烈殿) |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2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의 영혼을 함께 모시고 음력 9월 5일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인조 16년(1638)에 지었으며 정조 19년(1795)에 숭열이라고 사액되었다.

완풍군 이서는 성을 쌓는데 총 책임자로서 공이 커 여기에 모시게 하였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2회 정제하고 향축은 예조에서 보내왔다고 한다. 본당은 좌우측에 아래 단이 둥근 형태를 한 방풍 벽을 갖은 맞배지붕 형식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처마는 겹처마를 둘렀으며 정면 3칸에는 여닫이 4쪽의 격자문을 달았다. 주춧돌은 둥글게 잘 다듬어졌으며 그 위로 민흘림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포의 형태는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

내부의 천정은 연등 천정으로 하였다. 2동의 부속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방풍 판이 없는 대신 측면에도 창을 내지 않고 회벽을 도리까지 올려 바람과 비를 막았다. 3칸으로 3개의 방을 꾸몄으며 중앙에는 여닫이 2쪽 격자문을, 좌우 칸에는 왼쪽 여닫이 격자문을 달았고 마루는 없다.

천정은 연등(삿갓)천정으로 하였으며 청색의 단조한 단청으로 소박하고 안정감 있게 보인다. 본당과 본당의 좌 우측에 마주보게 한 2동의 부속건물 외에도 한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솟을삼문은 사당 출입시에 사용하도록 된 대문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인데 중앙의 대문은 좌우측 대문보다 높게 올렸고 중앙에는 태극무늬를 장식했으며 홑처마를 두른 맞배지붕 양식이다.
--------------------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산성 축성 당시 책임자였던 이서의 영혼을 함께 모시고 음력 9월 5일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인조 16년(1638)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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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 | 국가사적480호 | - 남한산성 2009-10-0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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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남한산성>

31쪽, " 당산관들이 걸레를 적셔서 행궁안 처소의 먼지를 닦았다.

내행전 구들은 차가웠다.

 

------------------

 

행궁 | 국가사적480호

도성 안의 궁궐이 아니라 임금이 거동할 때 머무는 별궁 또는 이궁을 말하며, 조선조의 행궁으로는 수원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의주행궁, 양주행궁, 부안행궁, 온양행궁 등과 함께 남한산성의 행궁은 '광주행궁' 또는 '남한행궁' 이라 하였다. 이 행궁은 상궐, 하궐로 구분되고 좌전(행궁의 종묘), 우실(행궁의 사직단)이 뒤에 설치되었다.
또 행궁 뒤 언덕에는 숙종때 재덕당이 세워졌고, 하궐 앞에는 정조 때 한남루라는 외삼문의 누문이 세워졌다
(1798). 여기서 상궐은 내행전(행궁의 내전)으로서 1625년(인조3)에 준공한 70여 칸 건물이며, 서쪽 담에 문이 있어 좌승당으로 통하였다.
또 하궐은 외행전으로서 상궐과 동시에 지었고, 상궐의 삼문밖에 있으며, 서쪽담의 문으로 일장각과 통하는 것으로 중정남한지에 기록되어 있다. 하궐의 규모는 154칸으로 광주부읍지에 전한다. 남한산성 행궁터는 1999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1차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2000년에 2차 발굴조사를 완료하였고, 2002년에 상궐 72.5칸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2004년 8월현재 하궐지의 발굴조사와 좌전(26칸)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고, 2005년 한남루지 및 행궁주변 일곽의 조사 완료 후 하궐복원공사를 착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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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수어장대 | - 남한산성 2009-10-0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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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남한산성>

96쪽, " 이시백은 서장대에서 저녁 번 교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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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는 남한산성의 서쪽 주봉인 청량산 정상부에 세워져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건물은 남한산성의 지휘 및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어진 누각이다.
 
성내에 현존하는 건물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며, 2층 누각과 건물의 왼쪽에 2동의 사당인 청량당으로 이루어졌다. 이 건물은 선조 28년 남한산성 축성 당시 동남북의 3개 장대와 함께 만들어졌으며 유일하게 현존한다.
 
원래 단층누각으로 축조하고 '서장대' 라 부르던 것을 영조27(1751)에 유수 이기진이 왕명으로 이층누각으로 증축하고 안쪽에는 무망루, 바깥쪽에는 '수어장대' 라는 편액을 내걸었으며, 서대라고도 불렀다.
 
수어장대의 하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 상층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양식의 2층 누각이다. 지붕은 상하층 모두 겹처마루를 둘렀으며 사래 끝에는 토수를 달고 추녀마루에는 용두를 올렸으며 용마루에는 취두를 올렸다. 건물의 기둥은 높이 60cm의 팔각장주초석 위에 올려져있고, 포는 주심포 양식의 이출목익공식이다. 1층의 사방 1칸은 복도로 비워두고 정면 3칸, 측면 2칸만 장마루를 깔고 사방에 높이 45cm의 난간을 둘렀다. 2층은 1층 우측 뒷켠에 있는 사다리를 통하여 올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방에 판문을 달았으며, 판문에는 태극무늬를 그렸다. 천정은 연등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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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장대 | - 남한산성 2009-10-0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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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남한산성>

97쪽, " 서장대에서 남장대까지는  성첩을 따라가는 순찰로로 연결되어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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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

전투시 지휘가 용이한 지점에 축조한 장수의 지휘처소를 말한다. 장대는 성내의 지형중 가장 높고, 지휘와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다. 성이 넓어 한곳의 장대에서 지휘를 할 수 없는 경우 각 방면에다 장대를 마련하였다.

장대는 전투시에는 지휘소인 반면 평상시에는 성의 관리와 행정기능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성의 장대는 규모가 크지 않은 단층형식이 대부분이나 남한산성이나 수원 화성의 경우처럼 중층 누각형태의 장대도 있다.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 각 방면에 각각 하나씩 4개의 장대와 봉암성에 외동장대를 설치하여 5개의 장대가 있었다.

남한산성에 구축된 5장대중 동장대를 제외한 4장대는 17세기 말엽까지는 단층 누각건물의 형태로 남아있었으나,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5장대 모두 붕괴되어 터만 남아있게 되었다.
18세기 중후반에는 서장대와 남장대가 2층 누각형태로 건립되어 19세기 후반까지 남아 있었으며, 그중 서장대인 수어장대만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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