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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드 진
마르크스의 비극, 아내 예니는 알았다! | - 하워드 진 2012-02-0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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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비극, 아내 예니는 알았다!

[철학자의 서재]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이재유 건국대학교 강사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1-12-09 오후 6:04:31

    

     

마르크스는 왜 돌아왔는가?!

"관료주의적인 당국의 실수로 마르크스가" 영국 "런던소호가 아니라 뉴욕에 있는 소호로 돌아왔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뿐이다.) 마르크스는 왜 돌아왔을까? 돌아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 그는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의 명예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표현된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 (36쪽)

20세기 말 소비에트 연방과 동구권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한다면서 실제로는 경찰 국가를 세워서 억압적인 통치 체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로 대변되는 사이비 사회주의이며, 자신의 이론이 왜곡된 사회주의였다.

그런데 붕괴된 현실 사회주의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마르크스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마르크스는 '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선언만으로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자본주의가 용케 살아남는 재간이 있다는 것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 병든 체제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마약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고요. 전쟁이 산업을 계속 유지시키고, 사람들을 애국심에 불타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잊게 하리라는 것도." (126~128쪽)

그러나 마르크스가 반성을 한다고 해서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시 저 하늘나라에 돌아가서도 항상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그가 늘 원하던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체로서의 공산주의'를 건설해 나가지 않는다면 마르크스는 이러한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해체

▲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당대 펴냄). ⓒ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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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주의를 해체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에게도 뚜렷한 방법이 없듯이 마르크스 역시도 그러한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떨쳐 일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엉덩이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내 말이 너무 래디컬하게 들리세요? 그러나 명심하세요. 래디컬하다는 것은 바로 문제의 뿌리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134쪽)

그런데 우리가 위대한 창조주로서의 노동자 계급임을, 현실을 변혁함으로써 역사를 진보시키는 주체임을 자각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가능성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점점 더 현실은 척박해지며, 우리의 생존을 점점 더 자본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다. 비빌 언덕이 하나도 없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일어설 수 있을 텐데, 그 비빌 언덕이 없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바라던 공산주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서 뉴욕에 온 마르크스는 답답하다. 떠날 시간이 다 됐다. 떨쳐 일어서야 한다는 선문답만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급은 남성 노동자로 상징되어 왔다. 그런데 자본주의 하에서의 이러한 남성 노동자, 즉 노동자 계급은 정말로 역사 진보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 하에서 여성은 자본과 임금 노동자인 남성 노동자에게 이중적인 착취와 억압을 당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노동 계급→자본이라는 먹이사슬 체제처럼 구성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최소한의 신체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자본은 이 노동자가 기계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노동자 역시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데, 이렇게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간 '생산' 노동에 대해서는 단 한 푼의 임금도 지불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 계급의 인간으로서의 자기 생산 내부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부불 노동(임금으로 지불되지 않은 노동)의 착취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취를 안고서 노동자 계급은 절대로 역사 진보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여성이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될 때만이 노동자 계급은 역사 진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마르크스가 노동자 계급 생산 과정의 정치경제학을 짚고 넘어갔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부인인 예니의 엄청난 희생과 돌봄에 의해 자신이 생산되었음을, 그리고 예니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음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아이와 함께 런던으로 옮겨와 살았는데, 런던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예니가 또 임신을 했어요. 이따금 나는 예니가 늘 누군가 아파 드러누워 있는 춥고 습기 찬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처지를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다 예니는 천연두에 걸렸지요. (…) 나는 여러분이 예니를 알았으면 해요. 예니가 나를 위해 한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지요." (86쪽)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생산 과정 내에 내재해 있는 착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 계급의 대 자본 투쟁은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물적 조건 확보를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물적 조건 확보를 위한 투쟁은 바로 다름 아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투쟁은 노동자 계급이 계급을 해체해가는 투쟁인데, 이는 노동자 자신의 생산 과정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지배-피지배의 계급성을 해체해 나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 보편성은 노동자 계급 자신 속에 감추어진 지배-피지배의 관계를 폭로하고 해체할 때만이 현실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 계급 내의 가부장적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토대'라고 할 수 있겠고, 자본-노동 사이의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상부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토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노동-자본 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접수해야 한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은 마르크스의 말대로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공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동시에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현실적으로 억압적인 국가 권력 또는 1당 독재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스탈린주의로 대변되는 '경찰 국가', '공포 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분노한다.

"이 얼간이들은 공산주의를 뭘로 알지요? 동료 혁명가를 살해하는 암살자가 통치하는 체제가 공산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바보 얼간이 같은 놈들!" (96쪽)
"그리고 저들이 공산주의의 목표를 알기나 할까요? 개인의 자유!" (98쪽)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그 사회의 계급과 계급 갈등 대신에, 우리는 각 개인의 발전이 모든 사람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를 갖게 될 것이다. 알겠어요? 연합체!" (98쪽)


이러한 사태를 아마도 아나키즘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쿠닌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부정하면서 "민중이 옛 질서를 무너뜨리고 바로 자유롭게 살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잃게 돼"(116쪽)라고 말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예니는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의 생각에 모순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 지적을 통해 마르크스는 반성한다.

"바쿠닌의 머리에는 무정부주의라는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낭만적이고 공상적인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나는 바쿠닌을 인터내셔널에서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니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왜 혁명가 집단은 여섯만 모이면 항상 누구를 제명하지 못해 안달이냐고 말했습니다." (105~106쪽)
"그리고 내가 이론적으로는 여성 해방론자이면서 실제로는 여성 문제를 등한시한다고 비난했지요. 그러면서 이러더군요. 당신과 엥겔스는 남녀평등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실제로는 남녀평등을 실천하지 않아." (94쪽)


이러한 마르크스의 반성이 반성으로만 끝이 날까, 아니면 현실의 삶 속에서 현실화될 수 있을까?

코뮤니즘(공산주의)의 가능성-코뮌의 가능성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코뮤니즘을 완성해 나가는 운동 과정이며, 동시에 코뮤니즘 그 자체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은 결국 그람시가 말하고 있는 진지전에 다름 아니며,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이라는 진지를 확보해 나가는 투쟁이다.

칸트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이러한 투쟁은 인간이 자신의 선의지(이 의지는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에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같은 정언명령으로 나타난다)를 현실화시켜 나가는 투쟁이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유 의지가 실현되는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선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은 노동자 자신 내부에 있는 지배-피지배라는 계급성을 해체하는 투쟁이며,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 즉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인류애의 보편성을 실현하는 투쟁이다.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은 가타리가 말하는 소수자-되기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자이며, 따라서 소수자-되기 투쟁은 결국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을 실현하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타리는 소수자-되기 투쟁의 기초에는 여성-되기 투쟁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생산과정 속에 가부장제에 기초한 여성 억압과 착취의 기제를 가지고 있다. 노동자 계급이 소수자이기 위해서는 이 가부장적 억압의 기제를 해체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을 실현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이제 다시 저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이 세상에 내려와서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돌아가면서 그저 박제화된 마르크스이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의 마르크스이길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면서 돌아가지 않았을까?

"나는 여성주의-마르크스주의자이다!"

이것이 현실화될 때 그는 진실로 그가 사랑하는 예니의 동반자가 될 것이며, 그의 반성은 반성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재유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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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비극, 아내 예니는 알았다! | - 하워드 진 2011-12-11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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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비극, 아내 예니는 알았다!

[철학자의 서재]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기사입력 2011-12-09 오후 6: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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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왜 돌아왔는가?!

"관료주의적인 당국의 실수로 마르크스가" 영국 "런던의 소호가 아니라 뉴욕에 있는 소호로 돌아왔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뿐이다.) 마르크스는 왜 돌아왔을까? 돌아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까? 그는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의 명예는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표현된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닙니다." (36쪽)

20세기 말 소비에트 연방과 동구권 공산주의가 무너졌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한다면서 실제로는 경찰 국가를 세워서 억압적인 통치 체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로 대변되는 사이비 사회주의이며, 자신의 이론이 왜곡된 사회주의였다.

그런데 붕괴된 현실 사회주의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마르크스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마르크스는 '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선언만으로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자본주의가 용케 살아남는 재간이 있다는 것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이 병든 체제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마약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고요. 전쟁이 산업을 계속 유지시키고, 사람들을 애국심에 불타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비참한 상황을 잊게 하리라는 것도." (126~128쪽)

그러나 마르크스가 반성을 한다고 해서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시 저 하늘나라에 돌아가서도 항상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그가 늘 원하던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체로서의 공산주의'를 건설해 나가지 않는다면 마르크스는 이러한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해체

▲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당대 펴냄). ⓒ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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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자본주의를 해체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에게도 뚜렷한 방법이 없듯이 마르크스 역시도 그러한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떨쳐 일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엉덩이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내 말이 너무 래디컬하게 들리세요? 그러나 명심하세요. 래디컬하다는 것은 바로 문제의 뿌리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134쪽)

그런데 우리가 위대한 창조주로서의 노동자 계급임을, 현실을 변혁함으로써 역사를 진보시키는 주체임을 자각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가능성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점점 더 현실은 척박해지며, 우리의 생존을 점점 더 자본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다. 비빌 언덕이 하나도 없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일어설 수 있을 텐데, 그 비빌 언덕이 없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바라던 공산주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래서 뉴욕에 온 마르크스는 답답하다. 떠날 시간이 다 됐다. 떨쳐 일어서야 한다는 선문답만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노동자 계급은 남성 노동자로 상징되어 왔다. 그런데 자본주의 하에서의 이러한 남성 노동자, 즉 노동자 계급은 정말로 역사 진보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 하에서 여성은 자본과 임금 노동자인 남성 노동자에게 이중적인 착취와 억압을 당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노동 계급→자본이라는 먹이사슬 체제처럼 구성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최소한의 신체적이고 기계적인 생활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자본은 이 노동자가 기계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노동자 역시 인간다운 삶을 원하는데, 이렇게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간 '생산' 노동에 대해서는 단 한 푼의 임금도 지불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 계급의 인간으로서의 자기 생산 내부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부불 노동(임금으로 지불되지 않은 노동)의 착취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취를 안고서 노동자 계급은 절대로 역사 진보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여성이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될 때만이 노동자 계급은 역사 진보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마르크스가 노동자 계급 생산 과정의 정치경제학을 짚고 넘어갔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부인인 예니의 엄청난 희생과 돌봄에 의해 자신이 생산되었음을, 그리고 예니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음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 아이와 함께 런던으로 옮겨와 살았는데, 런던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예니가 또 임신을 했어요. 이따금 나는 예니가 늘 누군가 아파 드러누워 있는 춥고 습기 찬 아파트에서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처지를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다 예니는 천연두에 걸렸지요. (…) 나는 여러분이 예니를 알았으면 해요. 예니가 나를 위해 한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지요." (86쪽)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생산 과정 내에 내재해 있는 착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 계급의 대 자본 투쟁은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물적 조건 확보를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물적 조건 확보를 위한 투쟁은 바로 다름 아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투쟁은 노동자 계급이 계급을 해체해가는 투쟁인데, 이는 노동자 자신의 생산 과정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지배-피지배의 계급성을 해체해 나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 보편성은 노동자 계급 자신 속에 감추어진 지배-피지배의 관계를 폭로하고 해체할 때만이 현실화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자 계급 내의 가부장적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토대'라고 할 수 있겠고, 자본-노동 사이의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상부 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토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노동-자본 간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접수해야 한다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은 마르크스의 말대로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공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동시에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현실적으로 억압적인 국가 권력 또는 1당 독재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스탈린주의로 대변되는 '경찰 국가', '공포 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분노한다.

"이 얼간이들은 공산주의를 뭘로 알지요? 동료 혁명가를 살해하는 암살자가 통치하는 체제가 공산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바보 얼간이 같은 놈들!" (96쪽)
"그리고 저들이 공산주의의 목표를 알기나 할까요? 개인의 자유!" (98쪽)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그 사회의 계급과 계급 갈등 대신에, 우리는 각 개인의 발전이 모든 사람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를 갖게 될 것이다. 알겠어요? 연합체!" (98쪽)


이러한 사태를 아마도 아나키즘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쿠닌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부정하면서 "민중이 옛 질서를 무너뜨리고 바로 자유롭게 살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자유를 잃게 돼"(116쪽)라고 말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예니는 이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의 생각에 모순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 지적을 통해 마르크스는 반성한다.

"바쿠닌의 머리에는 무정부주의라는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낭만적이고 공상적인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나는 바쿠닌을 인터내셔널에서 쫓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니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왜 혁명가 집단은 여섯만 모이면 항상 누구를 제명하지 못해 안달이냐고 말했습니다." (105~106쪽)
"그리고 내가 이론적으로는 여성 해방론자이면서 실제로는 여성 문제를 등한시한다고 비난했지요. 그러면서 이러더군요. 당신과 엥겔스는 남녀평등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실제로는 남녀평등을 실천하지 않아." (94쪽)


이러한 마르크스의 반성이 반성으로만 끝이 날까, 아니면 현실의 삶 속에서 현실화될 수 있을까?

코뮤니즘(공산주의)의 가능성-코뮌의 가능성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코뮤니즘을 완성해 나가는 운동 과정이며, 동시에 코뮤니즘 그 자체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은 결국 그람시가 말하고 있는 진지전에 다름 아니며,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이라는 진지를 확보해 나가는 투쟁이다.

칸트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이러한 투쟁은 인간이 자신의 선의지(이 의지는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너의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에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같은 정언명령으로 나타난다)를 현실화시켜 나가는 투쟁이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유 의지가 실현되는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선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은 노동자 자신 내부에 있는 지배-피지배라는 계급성을 해체하는 투쟁이며, 동시에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 즉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인류애의 보편성을 실현하는 투쟁이다.

다른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은 가타리가 말하는 소수자-되기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수자이며, 따라서 소수자-되기 투쟁은 결국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을 실현하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타리는 소수자-되기 투쟁의 기초에는 여성-되기 투쟁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생산과정 속에 가부장제에 기초한 여성 억압과 착취의 기제를 가지고 있다. 노동자 계급이 소수자이기 위해서는 이 가부장적 억압의 기제를 해체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을 실현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이제 다시 저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이 세상에 내려와서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돌아가면서 그저 박제화된 마르크스이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의 마르크스이길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면서 돌아가지 않았을까?

"나는 여성주의-마르크스주의자이다!"

이것이 현실화될 때 그는 진실로 그가 사랑하는 예니의 동반자가 될 것이며, 그의 반성은 반성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재유 건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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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 하워드 진 2011-06-0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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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레시안 www.pressian.com

"<나가수> 순위나 매기는 욕된 우리들…"

[변방의 사색]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기사입력 2011-06-03 오후 6:01:50

<한겨레>에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의 사연이 연재되고 있다. 뜻 깊고 고마운 시도지만, 그 기사들을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심호흡이 필요하다. 마음이 몹시 아프기 때문이다.

돌이 안 된 아들과 젊은 아내를 남기고 서른 두 살의 계약직 토목 기사는 타설해 놓은 콘크리트 더미 속으로 빠져 숨졌다. 밤낮 없이, 주말도 없이 일하던 뒤끝이었다. 그곳은 경상북도 의성 낙단보였고, 같은 시간 바로 옆 공구인 경북 상주에서는 대통령이 내려와 4대강의 자랑찬 미래를 역설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건만, 오직 한 사람의 닦달로 완공을 향한 밤낮 없는 공사가 이어진다. 안전판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안타까운 죽음이 속출한다. 벌써 열아홉 명째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다. 오만과 착란을 다스리는 것은 시민들의 매서운 행동일 테지만, 운동은 이미 깊이 지쳐있다.

정권 말기지만, 저들이 맘먹은 대로 되지 않은 일은 없다. 끔찍한 일들은 끝도 없이 이어지건만, 가수들 식은땀 흘리며 부르는 노래에 점수나 매기면서 필부들의 나날은 흘러간다.

진보 진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들은 하나는 '통합'이고, 둘은 '복지'이고, 셋은 '싱크 탱크'다. 통합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치 공학일 것이고, 복지는 그 선거 때 풀어낼 선물보따리일 것이며, 싱크 탱크는 선거라는 메뉴판을 꾸미는 자들일 것이다. 내가 오래 전 읽었던 하워드 진(1922~2010년)을 떠올린 것은, '<슈퍼스타K> 방식으로 진보적 정치 엘리트들을 경쟁시켜서 검증받게 하자'는 어느 미국학 교수의 칼럼을 읽은 뒤였다. (☞관련 기사 : '슈퍼스타K2'처럼)

반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미국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누구나 고개 조아릴 세계적인 진보 지식인 하워드 진의 자서전에는 놀랍게도 선거와 정치 엘리트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그 자신, 미국 사회의 싱크 탱크들과, 혹은 정치계의 유력자와의 접촉이 없었을 리 없겠지만,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로 살아온 그의 긴 생애에서 선거로 인한 정권 교체에 대한 판단이 없을 리 없겠지만, 300쪽이 넘는 그의 자서전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는 오직 '행동'에 대해 말할 뿐이었다. '진보적 정치 엘리트들의 <슈퍼스타K>'를 제안한 그 미국학 교수는 하워드 진의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고, 그런 옹졸한 심사로 나는 하워드 진의 자서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듯 나는 깊은 위로를 받았고, 나의 뒤틀린 심사는 누그러들었고, 사진으로밖에 본 적 없는 그가 그리워졌다.

"운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살아남았다!"

▲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이후 펴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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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은 1922년 뉴욕의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유대계 이민 가정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웨이터였으며, 쉼 없이 일했지만 예순일곱 살에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결혼식과 식당에서 음식 쟁반을 날라야 했다. 장남이었던 하워드 진 또한 아버지의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가장 무도회 복장에 바보 같은 모자를 차려 입고, 새해가 시작되는 순간에 맞춰 '올드랭 사인'을 부르는 사람들 속에 웨이터 차림으로 서 있던 내 모습"이 그가 기억하는 사춘기의 자화상이었고, "새해가 시작되어도 아무 기쁨도 없이 테이블을 치우던 아버지의 긴장된 얼굴 표정"을 쓸쓸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가 뒤틀리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부모가 자애로웠고, 선량한 이웃이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받아낼 기약이 막연한 것을 알면서도 외상을 해 준 구멍가게 주인, 진료비도 받지 않고 몇 년 동안이나 소년 하워드 진의 구루병을 치료해준 친절한 의사, 군 복무로 신문 가판대 운영권을 얻어 형님네 식구가 집세를 못 내서 고생할 때면 돈을 빌려준 삼촌까지, 서로 돕고 사는 착한 사람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신문 쿠폰을 모아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구해 읽었고, 읽고 난 뒤에는 반드시 혼자만의 독후감을 썼다. 그는 10대에 이미 사회주의적 이상을 동경했다. 그리고 그는 열일곱 나이에 처음으로 시위라는 것에 참가하게 되었고, 경찰에게 곤봉으로 흠씬 얻어맞는다. 이 불세출의 행동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거기서 받은 충격을 그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 순간 이래로 나는 이제 더 이상 미국 민주주의의 자기 교정적 성격을 신봉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 나는 급진주의자가 되었으며, 이 나라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어마어마한 부와 나란히 존재하는 빈곤, 흑인들에게 대한 끔찍한 처우만이 아니라 그 뿌리에서부터 썩어있다는 사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대통령이나 새로운 법률이 아니라 낡은 질서의 근절과, 협력적이며 평화롭고 평등한, 새로운 사회의 도입을 필요로 했다. (…) 작지만 의미심장한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우리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으며, 우리의 머리가 다른 사고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관조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복잡하고 섬뜩한 진실을 그는 행동을 통해 이렇게 몸으로써 명쾌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파시즘과 맞서 싸우려는 열망으로 몸이 달아 자원 입대했고, 폭격수로 훈련받고 나서 실전에 투입되었다. 거기서 그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된다. 패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던 프랑스 주둔 독일군에게 어마어마한 분량의 네이팜탄을 투하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수많은 프랑스 인민들을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울부짖게 한 이 폭격의 실상에 대해 3만5000피트 공중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그 자신이 알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종전 이후 그곳을 방문하고 면밀한 자료 검토를 통해 깨닫게 된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그가 수행했던 임무란 '또 한 번의 승리가 필요했던' 권력자들의 필요로 생겨난 것이었다. 오직 부자와 권력자들의 필요에 의해 조종되는 전쟁의 실체를 깨달은 것이다. '미국은 파시즘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맘대로 세계를 주무르기 위해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갈파하고 있었던 그의 동료는 죽었고, 폭격수 훈련생 시절 단짝이었던 두 명의 벗들 또한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죽었다. 그는 브레히트의 시구처럼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에 살아남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는 절망할 권리가 없다'고 뇌까리게 되었던 것이다.

'행동'의 세계와 만나다

제대군인원호법의 도움으로 역사학 학위를 마친 그는 특별한 생각 없이 일자리 때문에 남부 조지아 주의 흑인 여학교인 스펠먼 대학으로 갔고, 거기서 남부의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전율스런 고통과 만나게 된다. 노예 해방이 선언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1950~60년대 남부의 흑인에게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흑인 남성을 곤봉으로 때려죽인 보안관은 무죄로 방면되고, 얼마 뒤에는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된다. 백인 전용 인큐베이터에 넣을 수 없어 흑인 산모의 쌍둥이 아이가 죽는다. 흑인에 대한 폭행에 항의하는 흑인 변호사에게 보안관이 지팡이로 머리를 때려 피투성이로 만든다. 흑인 린치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민권 운동가는 잔혹하게 암살당한다.

이런 곳에서 그는 흑인들의 편에 선다. 흑인 학생들과 '식당의 백인 좌석에서 앉아 있기', '기차의 백인 좌석 차지하고 앉아 있기' 따위의 일들에 함께 한다. 그리고 흑인 민권 운동가들의 도우미로 야만과 비참이 넘실대는 미국 남부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든다. 결국 대학에서 해직당하지만, 르포나 보고서로써 남부의 상황을 전국적으로 중계하는 역할까지 한 가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30년이 흐른 뒤 쓰인 자서전에서 그는 그때 만난 흑인들의 이름과 그들의 행동, 삶의 이력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그 기록들 속에서 그가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선량함과 헌신성이다. 기억에 남는 한 대목이 있다. 흑인들에게는 '사람 죽이는 주(州)'로 불리던 미시시피 주 그린우드에서 흑인 유권자 등록 운동을 도울 때의 일화다.

활동가들의 숙소가 꽉 차 잠자리가 없으니, 누군가가 흑인 부부의 집을 소개해준다. 남편은 부두 노동자로, 아내는 가정부로 일하는 가난한 집이었다. 새벽 3시에 들이닥쳤건만, 이 흑인 부부는 매트리스를 끌어다 주고, 자신들은 바닥에서 잔다. 아침에 깨어나니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고,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안주인의 기도 소리였다.

그 날은 이 도시의 흑인들에게는 몇 백 년 동안 없었던, 역사적인 '행동의 날'이었다. 여차하면 자신들을 향해 총구를 겨눌 주방위군과 깡패와 다름없는 보안관들이 둘러싼 곳에서,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긴 줄을 서서 백인 관리 앞에서 '유권자 등록'이라는 시위를 하기로 되어 있는, 실로 긴장된 날이었다. 하워드 진은 여인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동틀녘에 깨어나 보니 희뿌연 어둠 속에서 친구들이 아직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소리에 잠을 깼는지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소리가 들렸고, 부드럽게 되풀이되는 여자 목소리, 맑은 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오 주여, 오늘도 모든 일이 잘 되게 하옵시고, 주여, 오, 그들이 보게 하소서, 주여, 오늘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주여, 오, … 오랜 시간이었나이다, … 오… 주여, 오… 주여."

하워드 진은 이 기도를 굳이 기록하고 있다. 몇 백 년을 노예로 살았지만 잃지 않았던 그들의 가난한 마음과 고결한 영혼을 증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나는 짐작해 본다. 그들은 옹졸한 에고이즘에 젖어 무참한 폭력을 휘두르는 남부의 백인들을 이미 정신적으로 극복하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민권 운동이란 그 승리를 확인하는 한 방식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1964년 이래, 베트남문제가 십수 년간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초창기 반전 운동은 대오도 빈약했고, 우군도 없었다. 반전 운동가들에게 우익 깡패들은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씌우기도 했다. 모두가 두려워했고, 주저하고 있었다. 이런 시절에 그는 가장 단호하고 급진적으로 행동했다.

그는 1967년 <철군의 논리>를 통해 반전 운동에 불을 지폈고, 숱한 매도와 폭력에 시달리면서, 심지어 FBI의 도청과 미행 속에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활약 무대도 넓었다. 일본의 평화 운동가들과 함께 탈영한 미군 병사를 도피시키는 일을 도왔고, 베트남 하노이에서 미군 포로 석방의 당사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국방성의 기밀문서를 폭로하는 일에 함께 했고, 수배 중인 활동가들을 숨겨주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자주 강연했고, 집회 연단에서 연설을 했다. 위험 인물로 낙인 찍혀 냉대 받았고, 테러 위협에 시달렸으며, 때로 유치장 신세를 졌다. 그는 정밀한 문헌 검색을 통해 베트남전의 실체를 폭로했다. 이를테면 '주석, 고무, 원유' 이 세 단어로 거듭해서 되돌아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비밀 메모를 폭로하면서 그는 '자유, 민주주의, 자결권'을 지켜주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베트남전의 명분이 완전한 허위임을 밝혔다.

하워드 진은 확실히 미국 사회, 제1세계의 지식인으로서는 유례없는 존재였다.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그의 저작 <미국 민중사>는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야만적인 정복자에 대한 분노의 시위'로 얼룩지게 한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가 한 명문 사립고등학교에서 강연할 때, 미국이 역사 속에서 저지른 죄악상을 열거하는 그를 강연 내내 노려보던 한 소녀는 강연 후 그에게 다가와 분노에 찬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선생님은 왜 이 나라에서 살고 계시는 거죠?" 하고.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조국, 그리고 국민이지 어쩌다 정권을 잡게 된 정부가 아니'라고. 그것은 하워드 진이 진실을 부여잡을 수 있었던 핵심적인 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면서, 그 어떤 미국인도 벗어날 수 없었던 '세계 최강 대국의 성원'이라는 허위의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대단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가 변화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한 사람이 어찌 그 시대의 야만을 다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렇게 풍찬노숙의 세월을 보내지 않고, 한 사람의 진보적인 정치 엘리트로서, 의회와 국가 권력에 진출하여 정책 방향을 전환하는 일에 개입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인 활동이 되지 않았을까. 분명 그에게도 자리했을 이런 번민에 대해서는 그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 '현자(賢者)'였다고 생각한다. 그 또한 운동의 한계를, 직접 행동의 나약함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변화하는 근본적인 핵심을, 거기에 참여하는 운동의 비밀을,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야만의 시대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그는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보다 훨씬 고단하고 위험했으며 숨 가빴던,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끝머리에서 뇌까리는 말을 들어보자.

가난과 인종 차별에 대한 최후의 승리가 여전히 멀리 있었고, 아니 아마 불가능할 정도로 멀리 있었겠지만, 미시시피가 이제 결코 전과 같지 않게 될 여름이었다. 운동 안에서든, 밖에서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운 여름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바뀌었다. (…)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SNCC(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 : 하워드 진이 함께 한 흑인 민권 운동 조직) 사람들의 재회 모임에 참석해서 함께 노래하고 얘기할 때마다, 모두가, 서로 다른 식이긴 하지만 같은 얘기를 했다. 남부의 운동에서 보낸 그 시절이 얼마나 끔찍했던가,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서 얼마나 최고의 나날이었던가. (강조는 인용자)

그가 이 책 전편에서 던지는 '희망'과 '낙관'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온 선배가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 후배들에게 던지는 격려의 덕담만은 결코 아니다. 세상의 이치가, 인생의 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오자. 내가 보기엔, 지금 진보 진영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이란 결국 '어쩌다 권력을 잡게 될 정부'와 그 일원이 되고 싶어 하는 정치 엘리트들의 자기암시에 불과한 것 같다. 정치 공학이, 혹은 민중들에게 풀어줄 선물보따리가, 싱크 탱크 속에 속한 정치 엘리트들이 우리들의 삶을 과연 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인지, 거기에 어떤 자유의 공기가 해방의 기쁨이 틈입할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신뢰할 수 없다. 시인 김수영이 뇌까리듯 나 또한 이렇게 중얼거리고 싶다.

"행동의 죽음에서 나오는 이 욕된 교외에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어라."

세상의 일들 앞에서 고통스럽고 우울한 이들에게 하워드 진의 자서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유강은 옮김, 이후 펴냄)를 권한다. 위로를 얻을 것이고, 용기가 샘솟을 것이다.

 


/이계삼 밀성고등학교 교사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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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를] | - 하워드 진 2011-02-27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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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아닌 홍대 청소 노동자 앞에서 무릎 꿇는 이유

[프레시안 books]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를>

기사입력 2011-02-25 오후 6:18:55

 

 

"중국 놈들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하워드 진이 엮은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황혜성 옮김, 이후 펴냄)의 한 구절을 읽다가 며칠 전에 가리봉동 후미진 주택가를 걷던 중에 마주친 낙서가 떠올랐다.

1848년,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을 비롯한 여성 운동가들은 뉴욕 세니커폴스에서 역사적인 여성 대회를 열었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고스란히 인용해 가며 작성한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눈길이 잠시 멈추었다.

"남성은 여성에게 가장 저속하고 무식한 원주민과 외국인에게 부여된 권한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200쪽)

세니커폴스와 가리봉동은 공간적,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억압 받는 소수자가 오히려 다른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적대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령 1930년대에 시카고의 육류 가공 공장에서 노동조합조직하는 운동에서 활약한 비키 스타는 당시 노동운동의 이면을 직접 경험했다.

"여자들은 노동조합에서 몹시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이 노동조합에서도 그들의 편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 평등을 믿고 여자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형제 중에도 등사판 인쇄를 하거나 타이핑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노동조합에서 유급 직원을 채용할 때는 으레 남자들 차지였다. 하지만 비키 스타 같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에 나서면서 서서히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앤서니 아노브 엮음, 황혜성 옮김, 이후 펴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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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은 무엇보다도 변화에 관한 책이다. 아래에서 바라본 미국의 역사, 또는 그 이름도 케케묵은 민중사를, 그것도 200편에 달하는 각각의 사료를 지금 들춰보는 일은 그래도 뭔가 변화에 대한 희망을 놓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인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노예, 여성과 동성애자, 노동자와 사회주의자, 민권운동가와 반전운동가 등은 모두 원래는 평범한 장삼이사들이었다.

아이티의 아라와크 족이 콜럼버스의 잔인무도한 만행 때문에 저항을 하기 시작했듯이,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자기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고 이주시키는 백인들에게 맞서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노예 신분에서는 해방되었지만 땅 한 뙈기 없이 그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소작인으로 변신한 흑인들과 초창기 자본주의 공장의 위험하고 끔찍한 노동 조건 아래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던 노동자들은 어느 순간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인간을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것이 부당한 일임을 깨달은 흑인과 백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깨달음이 닥치는 순간,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뀐다. 사는 게 언제나 고되고 팍팍하고, 아무것도 변할 것 같지 않은 세상이었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고 작은 변화를 이루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투명하게 드러나는 법이 절대 없는 억압과 차별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고, 설사 그런 현실을 깨닫는다 할지라도 일상을 조이는 현실의 무게와 거대한 체제에 맞서서 행동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64년에 흑인 투표권 등록 운동을 지원하고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갖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열린 미시시피 자유 여름 행사에 참여한 북부의 백인 대학생은 1학년답게 향수병에 시달렸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학생은 속내를 드러냈다.

"내가 만약 미시시피에 사는 니그로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 나는 북부 백인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이 일에 언제든 참여할 수 있고, 지겹거나 절망하거나 두려울 때면 또 언제든 집으로 도망갈 수 있어. 하지만 나는 이런 북부 백인의 태도와 입장이 싫어.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을 경멸해." (695쪽)

그렇지만 1930년대 뉴욕에서 실업자 운동을 벌인 여성의 말처럼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투쟁에서 바로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587쪽) 혼자서는 전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함께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힘을 느꼈고 웃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세상을 바꾸었다.

"지금 미국식 생활 방식의 일부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이, 우리가 이를 요구하기 시작한 1930년대에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들이었다. 우리는 실직 수당을 원했고, 주택 구호를 원했고, 학교에서 따뜻한 음식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고, 도시 빈민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숙소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583쪽)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권리가 되고, 만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복지가 되었다. 이런 투쟁의 과정에서 사람들은 새롭게 거듭났다. 인간의 권리를 자각하고 착취의 비밀을 간파했으며 집단의 힘을 깨달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켰고, 역사의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소수의 저항은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고, 행동과 연대 속에서 새로운 삶과 역사가 만들어졌다.

"파업 후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자들은 노동운동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심지어 플린트 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여자가 됐다. 걸음걸이가 달라졌고, 머리를 높이 들었으며, 자신감이 넘쳤다." (599쪽)

이 책은 이렇게 자신과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남긴 기록들로 가득하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지질한 인생들이 어느 순간 유창한 연설가가 되고 시인이나 가수 못지않은 노래를 읊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만큼 절절했기 때문이리라.

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이 거대한 물결을 이뤄 분출한 1960년대 말 이래 미국 사회는 점점 보수화되었다. 노동 운동은 이미 체제에 포섭된 지 오래였고, 신자유주의가 전면에 대두함에 따라 기업 지배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빈부 양극화가 워낙에 고착되고, 소수 이민자가 자동적으로 하층계급을 이루는 오늘날의 미국 사회에서 민중의 목소리를 듣기란 어지간히 어렵다.

현실은 그저 답답하기만 할 뿐이고, 맞서 싸워야 할 적의 모습은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현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경제성장을 거듭하지만 '88만 원 세대'와 4000원 인생으로 대표되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잔뜩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이상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민중의 역사가 있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단지 조그만 양심을 지키고, 작은 신념을 고수한 이들이다. 불과 몇 명의 행동이 수백만 명의 행진으로 이어져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 세상이 온통 캄캄한 어둠속 같고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전혀 의외의 곳에서 사람들이 행동한 이야기가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민중의 역사를 기억하는 한 낙담은 금물이다. 얼마이집트에서 일어난 민주혁명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꽉 막힌 학교 당국과 싸워 결국 승리를 일궈 낸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을 보라.

목재 회사가 1000년 묵은 미국 삼나무벌목하는 것을 막기 위해 738일 동안 나무 꼭대기에서 나무와 함께 산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원래 운동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힐이 나무와 숲에서 배운 교훈은 엮은이 중 한 명인 고(故) 하워드 진을 기리는 말인 동시에 미국 민중사에 바치는 헌사이다.

"더 나은 세계봉사하며 사는 삶은 사라지지 않는 전설이다. 이는 흔적이고 이 흔적은 매일, 매 순간 우리가 내리는 결정과 행동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멋진 사람은 젊건 늙건 상관없이 선한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누구보다 빛났고, 가장 아름답고 당당하고 감동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장 부자인 사람보다 힘이 세고, 어떤 모델보다 아름답다. 그들의 아름다움과 힘이 그들의 몸을 통해서 생명력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고 빛나기 때문이다. 나는 모델이나 남녀 배우, 또는 백만장자 앞에서는 절대로 무릎을 꿇지 않는

/유강은 국제 문제 전문 번역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다. 하지만 공통의 선을 위해서 일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절하고 싶다. 그것이 명예다. 돈이 명예가 아니다. 삶에서 진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명예다." (1039쪽)

책은 하워드 진이 <미국 민중사>를 집필하면서 참고한 중요한 사료를 <미국 민중사>의 각 장별로 묶고 간단한 배경 소개를 곁들인 구성이다. 일기에서부터 선언문, 신문 기사, 편지, 구술 회고, 탄원서, 시 등 다양한 사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미국 민중사>(유강은 옮김, 이후 펴냄)를 먼저 읽는 게 낫겠지만, 이 책을 먼저 읽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미국 민중사를 재구성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생한 1차 자료를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유강은 국제 문제 전문 번역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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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과 리영희를 보내며 | - 하워드 진 2011-01-14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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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www.pressian.com>

하워드 진과 리영희를 보내며

[시론] 지식인과 자유의 실천

기사입력 2011-01-14 오전 11:08:24

 

모든 개인의 삶은 하나의 예술작품일 수 있지 않은가. 회화건축미술품인데, 어째서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아야 하는가. ― 미셸 푸코

작년(2010년)에 우리는 우리시대의 가장 양심적인 지식인 두 사람을 잃었다. 한사람은 1월에 강연여행 중 숨을 거둔 미국역사가 하워드 진, 또 한사람은 12월에 이 세상을 떠난 한국의 언론인이자 학자였던 리영희.

두 사람은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각자의 주어진 사회적·개인적 현실에 대응하며 살았으나 그들의 생애가 그려 보여주는 궤적에는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매우 흡사한 정신적 경향, 세계인식, 삶의 자세가 드러나 있다. 그러한 공통성은 동시대인이었기에 물론 가능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지식인의 본분에 극히 충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프레시안
한사람은 미국이라는 패권국가의 비판적인 지식인으로, 또 한. 사람은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아온 동아시아 분단국가의 가난한 지식인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들의 지적·실천적 삶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많은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차이였을 뿐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두 지식인의 삶에는 온갖 개인적 역경과 사회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인류사회에서 오랫동안 축적되고, 전승되어온 보편적인 가치를 보존하고, 선양하기 위한 일관된 노력의 자취가 역력히 드러난다. 지식인이란, 간단히 말하면, 보편적인 인간가치에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보편성은 결국 '진실'을 외면하고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지식인의 일차적인 과업은 가능한 한 철저히 '진실'을 밝히고, 그것을 동시대인들과 공유하는 일일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식인이 이 과업을 방기할 때, 그가 속한 공동체의 건강성이 지켜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지식인 자신의 개인적인 삶도 심히 허망하고 누추해지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하여

《미국민중사》의 저자로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알려져 있는 하워드 진은 뉴욕 빈민가의 유태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책 한권, 잡지 하나도 구경할 수 없었던 가난한 집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문학을 좋아하는 소년으로 성장했고, 청년기에는 2차대전에 참전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유럽전선에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다음에 그는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전쟁 중에 자신이 네이팜을 포함한 폭탄을 투하했던 지역을 찾아가보았다. 그때 그는 미군당국이 발표했던 것과는 달리 네이팜탄 투하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거기서 또 알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날 무렵 인구가 밀집된 도시들에 대하여 자행된 무자비한 공습이 대부분 실제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군부 지휘관들의 개인적 출세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무고한 인명을 학살하고도 정부와 군부는 언제나 '불가피한 사고' 혹은 '부수적 손상'이라는 용어를 태연히 쓰면서 진실을 호도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 발견으로 '국가'에 대한 그의 순진한 믿음은 깨지고 말았다.

옛 유럽전선 재방(再訪) 경험은 확실히 하워드 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타고난 자질 탓이기도 했겠지만, 정의에 대한 그의 남달리 예민한 감수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끝없는 동정적 관심의 뿌리에는 전쟁 중에, 비록 군(軍)의 명령에 의한 것이긴 했으나, 그가 저지른 살상행위에 대한 쓰라린 죄책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 하워드 진의 일생은 평생에 걸쳐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노력으로 일관되었다. 1960년대부터 흑인사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민권운동, 여성 및 소수자 인권운동을 위시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온갖 다양한 운동에 뛰어들었고, 특히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서는 최전선에 서서 미국의 전쟁범죄를 끊임없이 규탄했다.

베트남전쟁 동안에는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하노이를 직접 방문하여 현장을 확인한 다음에, 《철병(撤兵)의 논리》(1967)라는 책을 써서 베트남에서 왜 미군이 즉각적으로 물러나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그가 보기에 베트남전쟁은 미국에 의한 침략행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미국정부의 논리는 패권주의적 지배를 은폐하는 기만적인 언어일 뿐이었다. 촘스키의 기억에 의하면,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기본적으로 범죄적이며 따라서 미군은 무조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을 "소리 높이, 공개적으로, 설득력있게" 발언한 최초의 미국 지식인이 하워드 진이었다.

물론, 국가에 의한 전쟁수행을 규탄했다고 해서, 한국의 리영희가 감옥으로 가야 했듯이, 하워드 진이 감옥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속한 사회가 기본적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군사독재 치하에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워드 진의 행동이 쉽게 용납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훨씬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이미 이 무렵부터 FBI는 그에 대한 파일을 작성하여 "국가안보에 대한 큰 위험요소"로 분류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식사회도 그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촘스키는 하워드 진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철병의 논리》가 출판되어 나왔던 당시에 이 책에 대한 단 한편의 리뷰도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하워드 진의 단호한 메시지가 지식인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늘 독자적인 사고와 판단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쩌면 일반 시민들보다도 더 국가가 만들어낸 신화(神話)나 '국익'이라는 상투적인 관념 속에 안주하는 편을 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영희나 하워드 진은 결코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가령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외신기자 리영희가 집요하게 매달렸던 것은 어디까지나 냉전시대의 폐색상황이 강요하는 지적 불구화와 사상적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필사적인 고투였고, 그 덕분에 한국사회는 적어도 정신적인 호흡정지 상태를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리영희는 자주 그가 바라는 것이 단지 "상식이 통하고, 최소한의 도덕성이 통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사회가 '인간적인 자본주의'로 불려도 좋고, '인간적인 사회주의'로 불려도 좋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결코 도식적인 도그마에 매달려 '이상사회'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하워드 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고 공언하였으나, 그가 믿는 사회주의란 "소련에 의해서 그 이름이 오염되기 이전의" 사회주의였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좀더 친절하고, 좀더 부드러운" 사회를 뜻했다. 그에 의하면 "사회주의사회란 사람들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사회,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생산을 하는 경제시스템"이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이 생애 마지막 무렵에 행한 발언도 매우 유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리영희는 거의 최후의 공식 인터뷰에서 자신이 평생 관심을 가졌던 것은 '진실'이었으며,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서 언제나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하워드 진 역시 자신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느낌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힘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말할 것도 없이, 그 희망은 '진실'의 힘에 의해 발효되고 배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식인이 진실을 정직하게, 용기있게 말한다는 것은 그 지식인 개인의 삶을 위엄있게 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희망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데 무엇보다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을 말하는 행위는 지식인이 자기의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지식인

리영희나 하워드 진과 같은 지식인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간절한 것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 그들이 보여준 강인한 정신과 양심적인 행동을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 나라 안팎의 상황은 한마디로 벼랑끝이다. 세계는 인류 전체가 합심하지 않는다면 해결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고, 우리사회는 민주주의가 어이없이 망가지고 있다. 국가권력은 단지 선거에 의해서 집권했다는 한가지 사실만을 자기정당성의 근거로 삼은 채, 시민들의 목소리를 간단히 무시하고, 국가기구를 철저히 사익 추구 수단으로 전락시키면서 가장 기초적인 민주주의 원리인 삼권분립마저 사실상 무력화시켜버렸다. 그 결과 이 사회는 지금 행정부 수장의 권력만 활개를 칠 뿐, 독립적인 입법, 사법이 존재하지 않는 흡사 식민지사회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이 정부는 연평도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지난 이십년간 애써 구축해온 남북간 화해·협력을 기조로 한 평화구조를 관리하는 데 극히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상심하고, 무력감 내지는 좌절감에 시달리며, 심지어는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쟁취한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망가질 수 있느냐며 분노와 슬픔 속에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 이러한 무력감, 좌절감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 나라 민주주의가 심각히 손상돼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그것들은 전부 예외없이 민주주의가 회복돼야만 제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나라의 현재와 장래에 사활적인 중요성을 가진 4대강 보호문제와 남북간 화해·협력체제의 재구축이 그렇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현재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권력남용이 상당수 국민의 동조 내지는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사회에서 대중의 지적 수준이나 정치적 교양에 관련하여 궁극적인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학자, 전문가, 언론인, 즉 지식인들이 결국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4대강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해온 소수의 학자, 전문가들의 노고를 잊을 수는 없다. 사실 이들의 양심적이고 성실한 노력 덕분에 그나마 종교계, 시민운동가, 일반 시민들이 정부에 4대강 공사의 중단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게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빠른 속도로 공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나 전문가들이 결국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반대의견을 학계의 극히 일부 의견일 뿐이라고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학자·전문가치고 4대강 공사의 무모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은 말은 안하고 있지만, 멀쩡한 강이 단순한 수로(水路)로 변형되고 있는 이 사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토목·수문학을 비롯하여 관련학계가 전부 나서서 발언할 필요가 있다. 개인 자격으로, 또 학회의 이름으로 나서서 이 공사의 부당성을 "소리 높이, 공개적으로, 설득력있게" 말해야 한다. 공학자만이 아니라 물리학자, 생물학자, 법학자, 정치학자, 인문학자들이 모두 나서서,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공사는 나라 전체에 크나큰 재앙을 불러올 어리석은 만행이라는 것을 정직하게, 용기있게 발언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학자, 전문가들이 말한다고 해서 귀담아 들을 권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찍이 촘스키가 말했듯이 "억압적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진실을 말해준다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무익한 노력"일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들을 마음이 없는 귀에 무슨 말을 한들 들어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의 발언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 발언에 의해 권력자의 마음이 바뀔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워드 진이나 리영희가 개인적 삶을 희생하면서 '진실'을 끈질기게 천착한 것은 그것이 권력의 자기반성을 촉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해서 우리사회에 합리적 의사소통의 공간이 극도로 위축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4대강 문제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얘기지만, 4대강 공사는 대운하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 최소한의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근본적인 의문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설명을 일절 거부한 채, 정부는 수질개선과 홍수방지라는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말만 되뇌며 서둘러 강과 유역생태계를 파괴하는 데 열중해 있다. 대체 강바닥을 다 파헤쳐놓고, 모래톱과 여울과 수변생태계를 파괴하고, 그렇게 해서 수질정화의 자연적 기능을 온통 망가뜨려놓은 다음에 어떻게 수질이 개선된다는 것인가. 국민 전부를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감히 할 수 없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사라지는 농경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오랜 세월 강의 흐름에 의해 형성된 강변 둔치는 옥토 중의 옥토이다. 그 둔치들이 지금 무참히 잘려나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농지준설토 적치장으로 변하면서 농지로서의 기능상실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도 못 볼 노릇이다. 정부가 예상하는 대로 몇년 후에 과연 이 농지들이 농지로서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실은 매우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라는 아마도 급조한 것이 분명한 이름으로 정부는 농지를 훼손하는 일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우리나라는 자원빈국이라는 상투적인 말은 따져보면 극히 어리석은 말이다. 자원이 없기는커녕, 우리나라야말로 원래 좋은 기후, 비옥한 땅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생존·생활조건이 갖추어진 천혜의 자원부국이다. 자원이 없다는 것은 예컨대 석유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지만, 석유시대는 지금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농사도 석유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 구조가 걱정이지만, 어떻든 이 구조는 바뀌어야 할 것이지 언제까지나 석유를 믿고 그대로 둘 수는 없는 것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탈석유시대를 대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땅을 최대한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석유시대가 종말을 고하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경제가치가 없다고 무시했던 우리의 논밭 하나하나는 그 어떤 유전(油田)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을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러나 정부 사람들이 사태의 진상을 모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합리적인 설명을 끝끝내 거부하는 것은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지식인들은 시민들을 위해서 발언할 필요가 있다. 지금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합리적 의사소통 공간의 재생을 위해서 지식인들의 정직하고 용기있는 발언은 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민주주의의 소생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에서 민주주의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없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회복 없이는 4대강을 보호한다는 것도, 남북간 화해·협력체제 구축을 통해서 평화구조를 확립한다는 것도 사실상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자유의 실천, 자기배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더 많은 지식인들에 의한 정직하고 용기있는 발언을 기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최근에 출판된 책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를 읽어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천안함 침몰사건에 관련하여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내용에 드러난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해온 재미 물리학자 이승헌 교수가 쓴 일기체 기록이다. 그는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된 시초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거의 매일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매우 귀중한 역사적 증언을 남겨놓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과학자들이 대부분 과학연구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별로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국가나 자본의 이익을 위하여 과학을 단지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컨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인간다운 삶에 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는 공동체의 도덕적 기반을 보호하는 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 아니다.

이승헌 교수의 책에는 천안함 '피격'의 증거로 정부 측이 제시한 결정적 자료, 즉 '1번 표시 어뢰추진체'의 신빙성 여부를 밝히는 과학적 검토 과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동시에 거기에는 과학계의 동료, 선후배, 스승들에게 이 작업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는 이승헌 교수의 간절한 호소가 담겨있고, 또한 그 호소에 대한 과학자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과학자들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결론은 한결같이 동참불가라는 것이다. 끝내 답변을 주지 않고 침묵을 고집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이승헌의 실험결과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두려워서", "해봐야 소용없을 것이기 때문에" 참여를 하지 않겠다는 답변인 것이다.

이러한 과학자들이 빠져있는 가장 큰 함정은 역시 국익이라는 관념이다. 많은 경우, 그들은 진실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침묵이나 회피가 결과적으로는 '국익논리'에 동조하게 된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는, 안락한 연구실 환경에 익숙한 오늘의 학자, 전문가들이 이런 성가신 일에 뛰어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이 범인이라는 정부와 극우언론의 '결론'을 거스를지도 모를 일에 개입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불안할 것이다. 게다가 연구비 생각을 하면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승헌 교수와 그의 몇몇 동지들이 문제의 '1번 어뢰추진체'가 결국은 출처불명의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용기있게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해외 거주 과학자들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물론 해외 거주 과학자라고 해서 모두 과학적 양심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오늘의 현실에서 예외적인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실력있는 전문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승헌은 그의 일기 속에서 극히 부실한 증거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려 한 정부의 무모함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감추어야 할 치부를 갖게 된 한국정부가 앞으로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경제적·도덕적 손실을 끼칠 것인가"라고 탄식한다. 이러한 고뇌는 정말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고결한 인간이 아니면 기대할 수 없다. 상투적인 국익논리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정신적 자세가 거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적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 일찍이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서 진지하게 물었던 루이스 코저는 《지식인과 사회》(1965)라는 고전적인 저서에서 "오늘날 대학교수를 지식인이라고 부르기에는 그들의 시야가 너무나 좁다. 그들은 자신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신랄한 말은 그대로 오늘의 한국 대학사회에 적용하더라도 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식인이 정직하고 용기있는 발언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의 사회적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의 개인으로서 지식인 자신이 위엄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한, 그것은 불가피하다.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고자 한다면 그 자유는 실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의 자유의 실천이야말로 아마도 공자가 말한 인(仁)의 실천이며, 철학자 푸코가 말한 '자기배려'이기도 할 것이다.

* 이 글은 <녹색평론> 1ㆍ2월호에 실린 것으로 필자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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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 - 하워드 진 2010-03-26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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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향년 87세로 타게한 '실천하는 지식인 하워드 진'과 데이비드 바사미언(저널리스트, 인터뷰 전문가)과의 인터뷰 형식의 역사, 정치, 예술에 관한 대담집이다.

서문 추천의 글에서 인도작가
아룬다티 로이 

'하워드 진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나 진배없다'라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본문 중 발췌-


'자본주의의 위기는 구조적인 위기다'

-근본적인 문제는 부의 불균형한 분배입니다. 상위 1퍼센트가 40퍼센트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배계급의 논리에 저항해야 한다'

-로버트 케네디는 인종 간의 평등을 옹호한 사람이란 이미지에 갈맞지 않는 짓을 많이 했습니다.

-무저항은 답이 아닙니다. 행동이 꼭 폭력으로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권력자가 비폭력적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떄문에 행동이 폭력으로 발전하는 겁니다.


'문화 지도자들은 대중을 이끌 수 있다'

-눈에 띄지 않고 주목받지도 못하지만, 지배계급의 의견에 반대하는 국민이 미국에 많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정치 지도자들이나 신문과 텔레비전에 뻔질나게 얼굴을 내미는 문화 지도자들과 생각을 달리한다는 뜻입니다. 노암 촘스키의 [촘스키9-11]이 20만 부나 팔린 것을 보면서 미국이 아직은 건강한 나라라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

-미국의 군사비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 군사비를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막대한 부가 국민의 손에서 벗어나 전쟁에 허비되고, 핵무기와 전폭기, 공격용 헬리콥터를 제작하는 기업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줍니다. 미국인, 미국 납세자가 그 모든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모든 돈이 전쟁에 허비되고 있는데도 교육, 건강, 육아를 위한 재정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예산안을 뜯어보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과 관련된 부분은 삭감됐습니다.


'예술가들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역할이 있다'

-달튼 트럼보의 [쟈니, 전장에 가다]의 주인공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정부가 전쟁의 실상을 어떻게 감추고 싶어 하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비판적 사고와 의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미국이 파시스트 국가가 된다면 그건 미국 언론이 침묵하고 한심스러울 정도로 유약한 모습을 보인 결과일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미국 언론은 옛날에도 그랬듯이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하면 무작정 협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자이든 대학교수이든 간에 당신의 일자리와 고용 보장은 당신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윗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윗사람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심해서 처신해야 합니다. 언론계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삶과 죽음, 전쟁과 평화 등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다릅니다. 우리 교육 체제는 미국의 대외정책을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학생들을 교육시키지 못하는 듯합니다. 아주 정통적인 생각만을 가르치고 있을 뿐입니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한다'

-프로파간다는 국민에게 뭔가를 잊게 만드는 데 목표를 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미국 국민의 경우에는 잊을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애초부터 진실을 알지도 못했으니까요.... 과거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라크 침략이 기나긴 제국주의적 침략의 일환이란 걸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집에든 무단으로 들어가면 감옥행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를 침략하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세상입니다.

-솔직히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게 존경받지 못합니다. 그냥 두려운 존재일 뿐입니다. 미국이 그들에게 안겨주는 경제적 혜택을 상실할까 무서워하는 겁니다.

-미래에 있을 잔혹 행위를 막기 위해서 지금 잔혹 행위를 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국경 없는 세계를 위하여'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교육은 정보의 습득, 즉 정보량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는 지식과...어떤 역할도 못하는 정체된 지식을 구분하는 분별력을 키워주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더구나 미제국주의가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어린 학생들이 제국주의화된 미국을 비판하지 않고, 선생들이 그 어린 세대를 의심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행동주의자로 키워내지 못하도록 견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존 핸콕 금융회사이고 프루덴셜 생명보험회사입니다. 이런 고층 건물을 지어야 돈이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집을 지어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습니다. 핵폭탄을 건조하고, 항공모함과 잠수함...

-그 젊은이가 조국을 위해 싸우러 가는 걸까요, 아니면 정부를 위해 싸우러 가는 걸까요?... 독립선언서에 바로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렇듯 독립선언서는 정부와 국가를 뚜렷이 구분합니다. 정부는 인위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정부가 국가는 아닙니다. 국가는 국민입니다.

-전쟁은 국익이란 이름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국경 너머에 사는 사람들을 적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이 시작되는 겁니다. 국경 없는 세계가 가능하다면 우리가 전쟁을 벌일 적도 없을 겁니다... 인종과 종교과 국가라는 경계가 더 이상 반목의 원인이 되지 않는 세계, 문화의 차이와 언어의 차이는 있더라도, 그런 차이가 서로를 미워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원인으로 발전하지 않는 세계는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던, 무엇이 되던, 여러분의 자식, 아니 모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여러분의 삶을 조금이라도 투자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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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1922년 8월 24일 ~ 2010년 1월 27일) | - 하워드 진 2010-03-2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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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1922년 8월 24일 ~ 2010년 1월 27일)은

 

가난한 조선소 노동자 출신의 역사학자, 정치학자, 사회비평가,사회운동가,희곡 작가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미국 민중사》의 저자이다.

 

그는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등의 평등,평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한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이러한 그의 활동은 그의 저서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 잘 나타나 있다.

 

2010년 1월 27일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의 명예교수였으며, 매사추세츠에 살았다.

 

2008년 3월 20일 그의 부인이자 아티스트인 로슬린 진(Roslyn Zinn)이 세상을 떠났다.[1]

 

목차

생애

2차 대전 참가

학력

경력

시민권 운동

대학 사회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진은 흑인들의 민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자신이 일하고 있던 스펠만 대학교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서도 싸웠다. 당시 스펠만 대학교는 보수적인 색채의 흑인 대학교였다. 진은 흔하지 않은 백인 교수로서 이곳에 있던 많은 흑인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후 진은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 약칭 SNCC)의 고문 역할을 했으며, 1964년에는 SNCC에 관한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진은 까다로운 등록절차로 인해 실질적으로 막혀 있었던 흑인들의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으며, 백인과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흑인 활동가들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기도 하였다.

 

스펠만 대학교의 학교당국은 이러한 진의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진은 스펠만 대학교의 종신 재직 교수(Tenured Professor)였지만, 1963년에 해고당한다. 하지만 인종 차별을 없애려는 진과 그의 제자들의 노력까지 꺾을 수는 없었다.

 

스펠만 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민권 운동에 투신했던 이 순간들은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에세이집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제1부에서 상세하게 실려 있다. 진은 훗날 스펠만에서의 7년을 "가장 즐겁고, 흥분되고, 교육적이었던 순간들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내게 배워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학생들에게서 배웠다"고 회상하였다.[2]

 

2005년 진은 스펠만에서 졸업식 연설을 하게 되었다.[3] 당시 그의 연설 "실의에 맞서서"는 현재 온라인 곳곳에 돌아다니고 있다.[4]

반전운동

하워드 진의 반전운동 경력은 예전부터 익히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내에서 전쟁반대를 이끌던 유명인 중 하나였으며, 당시 미국 정부의 베트남 전쟁이 잘못되었음을 알려 화제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이라크 전쟁 반대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진은 2차 대전미국 공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바가 있다. 그 때 그는 베를린,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지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가던 1945년 4월에는 프랑스의 로얀 지역에 네이팜탄 투하 작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집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 "반파시즘이라는 정의감에서 참전"하였으나, 전쟁이 끝나가던 막바지에 항복 직전의 독일군과 민간인들에게 폭격을 가하는 현실을 보고 전쟁에 대한 환멸감을 키웠다. 이러한 경험이 훗날 그의 정치적 입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훗날 그는 자신이 폭격했던 로얀을 방문하여 직접 현장을 목격하였다. 훗날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전쟁 막바지에 이러한 결정들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들이 정당한 군사적 목적보다는 지도부의 경력 쌓기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밝혔다.

죽음

하워드 진은 2010년 1월 27일 87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

미국 민중사

'미국 민중사'는 하워드 진의 베스트셀러이다. 기존의 위로부터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그 밑에 깔려 있는 미국의 민중들을 살펴보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을 찬양하는 기존의 미국사를 뒤집어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투쟁에 주목하였으며, '프론티어 정책'에 대한 칭송 대신 그 밑에 희생된 가난한 사람들, 노예제도의 희생자들을 살폈다. 이후의 세계대전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최근의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ism)에 대해서도 기존의 정통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실제로 그것이 미국 민중들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를 묘사하였다.

연극

진은 생전에 3편의 희곡을 발표하였다 :

'에마'(Emma, 1976),

'비너스의 딸들'(Daughters of Venus, 1985),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Marx in Soho, 1999)

 

이 중 첫 번째 작품인 '에마'는 20세기 초의 아나키스트에마 골드먼(Emma Goldman)의 인생을 다룬 것이다. 골드먼은 아나키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이자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사상가였으며, 1차 대전에 대한 반대 등 때문에 미국에서 추방당한 경력이 있었다.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는 희대의 혁명 사상가 마르크스를 다룬 것으로, 그가 뉴욕에 나타나 자신의 생각에 대해 한시간 동안 변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저서 목록

(다음 목록은 모두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다.)

전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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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 - 하워드 진 2010-03-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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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하워드 진,데이비드 바사미언 저/강주헌
실천하는 지식인, 미국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온 지식인 하워드 진이 데이비드 바사미언과 진행한 여덟 차례의 인터뷰와 2005년 스펠먼 대학에서 행한 연설문을 수록하였다. 세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어가는 미국 정부, 시민불복종 운동,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예술가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하워드 진의 폭넓은 사유가 선명하게 담겨있다.

항상 그래왔듯이 하워드 진은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 억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역사에 접근하려 하면서, 국가와 힘 있는 사람들이 덮어두려 하는 '진실'을 가차없이 드러내고 있다. 특히 하워드 진과 데이비드 바사미언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그것을 초래한 역사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부시 정부를 혹평하고 있다. 그 외에도 현재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위기를 '구조적 위기'로 바라볼 것, 시민불복종 운동의 제안, 마이클 무어와 같이 규칙과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고찰 등 다양한 방면으로 오늘날을 바라볼 혜안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고 싶다면,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비판적 지성'의 한 사람인 '하워드 진'을 차마 그냥 스치고 지나가기는 힘들 것이다.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하워드 진,데이비드 바사미언 저/강주헌 역 | 랜덤하우스코리아 |

원서 : Original Zinn : Conversations on History and Politics

 

실천하는 지식인, 미국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온 지식인 하워드 진이 데이비드 바사미언과 진행한 여덟 차례의 인터뷰와 2005년 스펠먼 대학에서 행한 연설문을 수록하였다. 세계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어가는 미국 정부, 시민불복종 운동,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예술가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하워드 진의 폭넓은 사유가 선명하게 담겨있다.

항상 그래왔듯이 하워드 진은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 억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역사에 접근하려 하면서, 국가와 힘 있는 사람들이 덮어두려 하는 '진실'을 가차없이 드러내고 있다. 특히 하워드 진과 데이비드 바사미언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그것을 초래한 역사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부시 정부를 혹평하고 있다. 그 외에도 현재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위기를 '구조적 위기'로 바라볼 것, 시민불복종 운동의 제안, 마이클 무어와 같이 규칙과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고찰 등 다양한 방면으로 오늘날을 바라볼 혜안을 기르는데 도움을 준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르고 싶다면,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비판적 지성'의 한 사람인 '하워드 진'을 차마 그냥 스치고 지나가기는 힘들 것이다.

 

데이비드 바사미언

미국, 캐나다, 유럽, 남아프리카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어권에 공동으로 방송되는 얼터너티브 라디오의 창립자 겸 진행자이다. 얼터너티브 라디오는 125개 이상의 방송국을 운영하며 백만 명 이상의 청취자들이 듣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인터뷰의 대가로 하워드 진, 노암 촘스키, 에드워드 사이드, 아룬다티 로이, 타리크 알리 등 세계적인 지성들과의 대담집을 출간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사회 비평적인 칼럼을 기고해왔다. 미국시민권연맹에서 주최하는 업턴 싱클레어 상(Upton Sinclair Award)을 독립 언론 부문에서 수상했다.

 

아룬다티 로이 추천의 글

자본주의의 위기는 구조적인 위기다
지배계급의 논리에 저항해야 한다
문화 지도자들은 대중을 이끌 수 있다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
예술가들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역할이 있다
비판적 사고와 의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한다
국경 없는 세계를 위하여

하워드 진 후기
옮긴이의 글
하워드 진 저서 목록

 

자본주의에 닥친 현재의 위기가 구조적인 위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식시장은 다시 상승할 수 있겠지만, 자본주의의 구조적 병폐는 남을 겁니다. 달리 말하면 주식시장이 상승하더라도, 또 기업 구조에서 최악의 병폐가 약간만 교정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남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부의 불균형한 분배입니다. 상위 1퍼센트가 40퍼센트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고 경영자는 엄청난 연봉을 받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먹고살기에 급급합니다. 경제 체제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는 구조적 위기입니다. 내 생각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피해갈 수 없는 위기입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이윤이 사회에서 행해지는 일을 결정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이윤 추구라는 동기 때문에 저소득 가정을 위한 주택은 건설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주택을 지어서는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강과 호수, 바다가 깨끗이 정화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 일을 한다고 돈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식 세대를 위해 대기를 오염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자동차 배기가스도 규제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자동차 산업의 이익이 줄어드니까요.
하지만 핵무기와 시코르스키 헬리콥터는 이익이 되기 때문에 제작됩니다.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이윤 추구를 멋진 자극제라고 말합니다. 그런 자극 덕분에 생산이 증가하고, 국민총생산이 증가하니까요. 하지만 국민총생산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분석해보십시오. 일반 시민의 일상적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쟁에 필요한 기계와 부자들을 위한 사치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지도자들은 자유시장체제와 민간기업을 다른 나라에 전파했다고 희희낙락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다국적 기업 때문에, 또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정책 때문에 많은 나라가 고통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미국의 구조적인 위기일 뿐만 아니라, 미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으므로, 전 세계에 닥친 구조적인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4, 「자본주의의 위기는 구조적인 위기다」 중에서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마이클 무어도 대중적 인기를 크게 얻은 예술가라 할 수 있습니다. 무어는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쓰기도 했습니다. 2003년 3월, 제7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다큐멘터리 부문 오스카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부시 씨, 부끄러운 줄 아쇼!” 이렇게 말하며 이라크 전쟁을 비난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10억 명가량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입니다.

권력을 움켜쥔 사람이라면, 경계를 벗어나지 말라는 규칙을 반길 겁니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직업이란 울타리 안에서 얌전히 있기를 바라니까요. 나는 역사학자라는 직업이 정해준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역사학자답게 역사를 공부하는 데 그쳐야 하는 겁니다. 1969년 미국역사학회에 참석해서, 역사학자도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가 “우리는 역사학자다. 우리는 역사에 대해 말하고 논문을 발표하려고 여기에 모인 것이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맡겨두자.” 이런 반응을 보였거든요. 루소라면 그런 분위기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을 겁니다. 18세기 말에 루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세계에는 공학자, 과학자, 성직자 등 온갖 전문직 종사자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시민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루소의 말은, 전문직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이클 무어처럼 전문직이라는 울타리를 무너뜨린 사람은 칭찬 받고 박수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당신이 지적했듯이, 마이클 무어는 동시에 무수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를 등한시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그 특별한 만남을 박탈하는 무책임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성 3인조 그룹, 딕시 칙스도 마이클 무어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 그룹의 한 멤버는 조지 부시와 같은 고향인 텍사스 출신인 게 부끄럽다고 말했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빅 스타가 갖는 가치는 무엇이겠습니까? 사회적 문제에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비난을 능히 극복할 만한 재능이 있습니다. 팬들은 그들의 공연을 계속해서 찾을 겁니다. 마이클 무어의 책을 계속해서 읽을 겁니다. 실제로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있은 후에 무어의 책은 훨씬 많이 팔렸습니다. 
  --- p.120, 「예술가들은 사회적 변화를 위한 역할이 있다」 중에서

 

시대의 양심, 하워드 진을 읽지 않고서 시대를 논하지 마라

하워드 진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옳은 편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식인이다. 진은 주제나 지리적 위치에 관계없이 역사에 대한 급진적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 억압받는 사람들, 요컨대 공식적인 역사에서 가치 있는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정직하게 들려준다. 힘 있는 사람들이 지워버리려고 안달하는 사소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파헤친다.
이 책은 전쟁을 도발하는 미국 정부, 시민불복종 운동,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랭스턴 휴스에서 마이클 무어와 밥 딜런에 이르는 예술가의 역할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하워드 진과 데이비드 바사미언은 특히 20세기 후반의 미 제국주의와 그것을 초래한 역사에 대한 심오한 대화를 한다. 확고한 좌파 의견에서부터 전쟁하는 기계가 되어가는 미국을 혹평하면서, 이라크 침공에 관한 부시 정부에 강한 비판을 한다. 그의 주제는 명백하고 완고하다.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나라 안팎으로 정치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과거에 만행된 사회적인 부정을 피해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기억의 한 부분으로서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하워드 진 개인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그의 일생의 사명과도 같다. 사람들은 하워드 진의 정치적인 입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의 방대한 지식과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격식을 차리지 않은 대담의 특성상 전통적인 방식의 역사 쓰기를 반대하면서 최근 수십 년간의 정치적인 역사 문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진은 복잡하고 역사적인 주제를 보통의 독자들을 위해서 쉽게 설명해준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대단한 통찰과 열정이 있고, 모든 사람들이 역사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데 충분하다.
하워드 진을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 하워드 진의 진정한 생각을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실망을 이겨내고, 옳다는 것을 확신하면 도전하라, 그러면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있다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는 최근 공중파 라디오에서 바사미언과 진행한 여덟 개의 인터뷰와 2005년 스펠먼 대학 졸업식에서의 연설이 덧붙여져 있다. 하워드 진이 시민권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1963년 스펠먼 대학에서 해고된 이후 42년 만에 2005년 스펠먼 대학에 돌아가서 “실망을 이겨내고”라는 주제로 졸업식 축사를 했다. 지금의 미국은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정부는 수조 달러의 국부를 전쟁에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실망하지 말고 이겨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다.
50년 전 미국은 흑인이 구타당해 죽고, 투표권마저 거부당해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버금가던 인종차별이 존재했을 때이다. 그래서 남부의 흑인들은 그들만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하고 불매운동과 연좌농성을 했다. 미국 전역에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결과는 헌법 14조(인디언을 제외한 만민 평등권)와 15조(흑인에게 투표권 부여)가 시행되었다.
또 베트남 전쟁이 계속 되는 동안 미국인들은 저항하기 시작했고, 반전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귀향한 군인들이 전쟁을 비난하고, 젊은이들은 징병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전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역사를 통해 하워드 진은 “우리는 절망하지 말라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가 옳다는 걸 확신하고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고, 정부가 국민을 속이더라도 진실은 결국 밝혀지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의 진실이 백 개의 거짓말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는 증거이다.

역사와 정치, 예술을 아우르는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에게 듣는다

병영국가로 변해가고 있는 미국, 시민불복종 운동에 대한 생각을 하워드 진에게 들어본다.

… 병영국가로 변해가고 있는 미국
미국은 현재 베트남 전쟁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기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전은 5년째이고, 아프가니스탄전은 7년째이다. 두 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희생자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군의 대부분이 전쟁 피로증후군을 보이고 있다. 2003년 5월 1일 부시가 항공모함 에이브러햄링컨호에서 “이라크 전쟁은 9.11테러 이후 지금까지 계속돼온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거둔 큰 승리”라고 말하면서 “이라크에서의 주요 전투는 종결됐다.”라고 선언한 바 있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9.11사태와 관련된 19명의 항공기 납치범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우디아라비아는 아프간의 무자헤딘을 지원했고, 알카에다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흥미롭게도 미국 언론은 정부와 결탁해서, 미국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알리지 않거나 아예 정보를 노출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라크가 9.11과 연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라크가 연루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비극적인 9.11사태로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 중에 조종사로 펜타곤에 근무하던 남편을 9.11사태로 잃은 앰버 아문젠이란 여인은 “내 남편은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의 죽음을 복수해주길 바라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테러의 근본 원인은 중동 지역 사람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갖는 반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막강한 정치 ? 경제력을 앞세워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백여 개의 나라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불만의 표출인 것이다. 결국 이런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테러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 시민불복종 운동에 대한 생각
미국의 시민불복종 운동 역사를 살펴보면 노예제도에 저항한 운동, 멕시코 전쟁에 항거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1850년 제정된 ‘탈주 노예에 관한 법’을 위반하면서 경찰과 주인으로부터 노예를 구해냈던 노예폐지론자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역사에는 옳고 바른 길을 걷기 위해 법을 기꺼이 위반하면서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였던 전통이 있다. 소로우는 미국이 멕시코와의 정복 전쟁을 도발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고발하기 위해 감옥에 가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1960년대 시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도 시민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징집을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고, 전쟁을 반대하며 탈영한 군인들도 있었다. 모두 자기주장의 정당함을 보여주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시민불복종은 의원에게 탄원서나 편지를 보내는 행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갖는다. 시민불복종은 우리가 지지하는 원칙이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현상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시민불복종은 어떤 사회 운동에서든 필요하고 중요한 전술이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나 대의(大義)가 무엇인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전술이었다.
하워드 진 자신도 1963년 스펠먼 대학 역사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보수적인 학교 운영에 반발한 학생들을 지지하는 ‘불복종’을 이유로 해고당한 경험이 있다.

하워드 진이 꿈꾸는 세계는 더 이상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하워드 진은 인종과 국적을 초월해서 우리 모두가 인간이며, 서로를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나의 국기와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국경에 매몰된 채 살상을 서슴지 않는 이런 국가주의가 인종차별, 종교적 갈등과 더불어 우리 시대를 짓누르는 해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세뇌시켜 권력자들에게는 유용한 도구가 됐고, 권력 밖의 힘 없는 사람들에게는 독이 됐다.
하워드 진이 꿈꾸는 세계는 국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 예컨대 매사추세츠에서 코네티컷으로 이동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 다닐 수 있는 세계라고 말한다. 인간적인 의미에서 진정한 세계화는 세계가 하나이고, 어디에서나 모든 인류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전쟁이 없을 것이며, 지금의 미국처럼 이웃나라나 멀리 떨어진 나라에 가서 전쟁을 벌일 생각조차 않을 것이다. 국경 없는 세계가 가능하다면 전쟁을 벌일 적도 없을 것이다. 전 세계의 부가 공평하게 분배되어, 요즘처럼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구분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인종과 종교와 국가라는 경계가 더 이상 반목의 원인이 되지 않는 세계가 된다.
또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 일할 필요가 없다. 지금 정도의 테크놀로지라면 그런 세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면 음악을 듣고 스포츠를 즐기며 시나 소설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인간답게 살 수 있다.
하워드 진은 자신의 강연과 글 등으로 모든 능력을 쏟아서 적잖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이해하는 폭을 넓혀주었고, 적잖은 사람들을 행동하는 시민으로 변화시켰기를 바란다. 하워드 진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조그만 기여를 했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때, 언젠가는 하워드 진이 꿈꾸는 그런 세계가 실현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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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 | - 하워드 진 2010-03-0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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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제국
하워드 진 저/이아정 역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은 인권과 자유, 평등과 평화의 천국으로 불리우는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매우 기만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책이다. 외교, 정치, 경제, 법제도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 사회를 분석하여 미국의 이미지는 거짓이며 현실은 매우 추악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자기 체험과 풍부한 사례를 통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 이해하기가 쉬우며 문장도 어렵지 않다. 미국이데올로기의 자기모순 등을 역사적 비사에 바탕해 고발한 진의 준엄하고 사려깊은 비판이 어떠한 파동을 몰고 올지 기대된다.

오만한 제국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  

하워드 진 저/이아정 역 | 당대

 

1. 서문 : 미국의 이데올로기

2.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와 미국의 외교정책 : 수단과 목적
이해관계 : 군주와 시민
수단 : 사자와 여우
조언자들
국력에 대한 봉사
반마키아벨리주의자들

3. 폭력과 인간 본성

4. 역사의 이용과 오용

5.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
자유주의 국가와 정당한 전쟁 : 아테네
전시의 자유주의
열성적인 폭격수
유태인을 구하기 위한 전쟁?
민족자결을 위한 전쟁?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하는 전쟁?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
드레스덴과 히로시마, 그리고 로이앙
반대의 소리들

6. 법과 정의
복종과 불복종
현시대의 법
국가에 대한 의무
너의 형벌을 받아들여라
불복종과 해외정책
시민불복종은 언제나 옳은가
베트남과 복종
법정의 정의
배심원 불복
폭력
과연 저항이 소용 있을까
소로, 제퍼슨, 톨스토이

7. 경제정의 : 미국의 계급제도
철저한 개인주의와 자립
재능과 필요
부는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가
강압
인센티브와 이윤동기
정의를 향하여
이성, 대의제 혹은 투쟁?

8. 언론자유 : 헌법 수정조항 1조에 대한 재고찰
'사전제약 금지'
언론자유와 국가안보
경찰권과 헌법 수정조항 1조
직장의 언론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비밀경찰
정보의 통제
거짓과 기만, 비밀주의
이란 - 콘트라 사건
자유의 쟁취

9. 대의제 정치 : 흑인들의 경험

10.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공산주의 : 이성적 비판

11. 궁극적인 힘
불확실한 목적, 용납할 수 없는 수단
폭력 없는 정의
새로운 현실주의

 

역대 대통령과 대법원의 결정을 아는 것을 주된 강조점으로 삼는 역사는 배울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자신들의 영향권 안으로 세계와 우리의 정신을 묶어넣으려고 드는 정부의 광기에 새로운 세대가 저항하도록 고무시키는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p.121


 

부의 평등분배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마르크스 주의의 견해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 사회의 부를 분배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가족이 있는가 하면 핵가족이 있고 병든 사람과 건강한 사람 어린이와 노인 등 각자의 삶에 필요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일이 사회주의 초기단계에서는 가능하다고 보지 않았다. 생산력의 발전정도가 모두에게 고루 돌아갈 만큼 충분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p.286


 

1974년 미국은 방글라데시와 기타 여러 나라들에 대한 식량원조를 중단했다. 그해 여름 무렵 밀값이 3배로 뛰었고 방글라데시는 더 이상 식량을 사들일 수 없게 되었다. 미국에서 23만 톤의 밀을 수입하는 계약이 완료되어 있기는 했다. 밀은 다 준비되어 석전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의 돈이 바닥나자 밀의 수송은 중지되었다. 몇 달 뒤 방글라데시는 기근과 대량 아사상태가 되었다. 경제학자 에마 로스차일드(Emma Rothschild)는 이렇게 논평했다. "정부당국은 기업들의 영리본위 행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자유기업들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정의가 실현되려면 기존의 '자유기업'에 대한 완고한 이데올로기적 주장, 즉 시장개입적 정책과 사회주의적 정책입안에 대한 공포심은, 자발적으로 계획하고 실험하고 그리고 화폐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민중의 욕구를 배려하는 정책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가난한 나라들의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23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멕시코이 '남북극 정상회담'(North-South Summit)에 참여했다. 그때 멕시코의 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Carlos Fuentes)가 레이건과 탄자니아의 지도자 줄리우스 니에레레(Julius Nyerere)의 회담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

「레이건은 … 여전히 그 일은 처음부터 민간기업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가능치 않은 얘기였다. 레이건이 농업과 식량생산 문제는 오직 민간기업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자, 니에레레가 즉각 쏘아붙였다. "하지만 대통령, 당신들은 전세게에서도 제일 많은 농업 보조비를 주고 있잖아요. … 그것이야말로 국가 개입주의에 의해 유지되는 농업이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요?」

사회주의적 계획에 대한 미국의 공포, 다시 말해 제3세계 국가들은 민간기업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은,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 하자마자 다시금 강조되었다. 분명 국내와 세계에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내딛는 큰 걸음들은 대단한 저항, 돈벌이에 골몰한 강력한 세력들의 거센 저항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국가적 우선순위, 세계적 우선순위를 평등과 경제적 민주주의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나 그 나라 시민들이 나서서 스스로를 하나의 세력으로 조직해 내야만 할 것이다.
   --- pp.307-308

 

미국의 이중성을 파헤친 화제의 책

--- 허순용(sellavy@yes24.com)

지난 토요일(2002.11.30), 광화문 일대는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는 촛불의 행렬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작은 촛불 하나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두 여학생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다.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같은 여학생 둘이 비참하게 전차에 깔려 죽었는데 가해자는 아무도 없는 형국. 정말 장갑차에게라도 유죄를 선고하고 싶은 답답한 심정으로 사람들은 걸었다. 촛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마음 한 켠은 쓸쓸했지만, 그러나, 용납할 수 없는 불의와 오만 앞에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단단해지는 듯했다.

미국은 그동안 전 세계를 상대로 경찰 노릇을 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횡포를 저질렀다.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마치 지구를 수호하는 슈퍼맨인 양 행세했지만 사실 백인과 부자와 고위층의 슈퍼맨에 지나지 않았다(임무가 끝나면 검은 돈을 세며 낄낄거리는 취미를 가진). 이에 미국의 정체를 드러내고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해 온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하워드 진이다. 그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자랐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여 조국을 위해 폭격기 조종사로서 힘없는 나라에 폭탄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훗날 그는 자신의 생각이 철저하게 국가로부터 주입된 것이었음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어왔던 많은 것들이 얼마나 자주 국가와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던가 ! 지금은 역사학 교수로서 강의를 하는 한편 인권, 노동, 반전시위 등에 깊이 개입하여 실천적인 지식인의 대명사로 불리우고 있다.

그가 쓴 『오만한 제국』은 미국이 유포해 온 이데올로기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그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가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 정부가 역사를 통해 저질러 온 죄악과 그 교묘한 전략을 속시원히 밝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부자와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임을 증명한다. 국제 사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굳이 떨어뜨리지 않아도 되었던 원자폭탄을 터뜨려 수십만명을 지옥으로 몰아놓은 잔인함,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위해 일부러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교활함, 틈만 나면 전쟁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오해와 죽음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뻔뻔함. 이 정도는 기본에 불과하다... 하워드 진은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합법적으로(?) 저질러 온 만행을 열거하며 미국이야말로 국제 사회에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나아가 그는 과연 합법이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 법을 만드는 자와 그 법을 운용하는 자는 모두 부자와 권력자이며,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런 세상에서 힘있는 자들의 아름다운 문장은 진실을 담고있기보다 사람들을 속이는 수사(rhetoric)인 경우가 더 많다. 그 결과 합법성이란 가면을 쓰고 사악한 행위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저질러졌다. 그래서 그는 합법성이 정당성을 보증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합법적이냐 아니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하여?'라는 물음이여, 이러한 삶의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모든 판단(특히 사법적 판단)은 큰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불복종의 정신이 필요하다. 하워드 진은 이미 전작 『미국 민중의 역사』에서 합법성을 넘어서는 정의의 문제를 거론하며, 부당한 정책이나 억압적인 법 체계에 저항했던 민중의 전통을 소개한 바 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역사의 진보에 기여한 일꾼들이다. 그래서 시민불복종의 정신은 다른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지적 전통을 이룬다고 그는 말한다.

(...)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책이다. 그것은 거짓을 꿰뚫어보는 인식의 힘과 진실을 향한 저항 정신을 일깨운다. '미국 이데올로기'의 경우도 그렇다. 미국 이데올로기는 결국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이 국제 질서 안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군림하기 위해 만든 틀에 불과하다. 그 틀은 우리의 눈을 가림으로써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지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욱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또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선한 공동체를 가꾸어 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 틀을 깨뜨려야 한다. 미선이와 효순이는 우리에게 그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가 과연 미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5대 4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부시를 미국 대통령에 당선시킨 2000년 미국 대선은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불행하게도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대단한 민주주의 국가 미국'이라는 위상을 전세계의 비웃음과 조롱거리로 만들었던 미대선. 흑백과 빈부로 분열된 국민, 철저한 당파적 견해를 보여준 '공평한 법의 지배', 모순으로 가득찬 선거제도, 민주와 공화당이 아닌 제3의 당은 존재하기 어려운 정당제도 등을 보면서도 우리의 언론들은 대부분 '역시, 미국은 미국이야'라는 반응이었다. 미국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미국에 대한 인식을 이끌어냈는가? '민주주의의 모범국가' '자유와 평등의 아메리카' '인권과 자유, 평화의 천국' '완벽한 미국식 양당제도' 등 알게 모르게 우리의 뇌리에 뿌리박힌 미국 관념이 이와 같은 빈곤한 인식을 낳지 않았을까.

촘스키, 월러스틴과 더불어 대표적인 미국의 좌파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은 『오만한 제국 - 미국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원제 Declaration of Independence : Cross-Examining America Ideology)에서 아주 명료한 문체와 도전적인 시각으로 '미국의 이데올로기', 즉 지금까지 미국의 국가사상으로 간주되어 왔던 관념들을 파헤친다. 그는 "관념은 결코 흥미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의 본성,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 역사의 이용, 공산주의, 언론의 자유 그리고 은폐되어 있는 미국의 계급 문제 등에 관한 전통적인 시각들에 메스를 가한다. 그는 헌정 2백주년 기념을 둘러싼 낭만주의에 도전하면서 "헌법 수정조항 1조에 대한 재고"를 제안한다. 그는 마키아벨리와 플라톤의 사상을 중앙아메리카와 베트남의 현실과 연결시킨다. "나는 마키아벨리에서 마키아벨리와 플라톤의 사상을 중앙아메리카와 베트남의 현실과 연결시킨다. "나는 마키아벨리에서 헨리 키신저까지, 아테네 감옥의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코네티컷 형무소의 카톨릭 신부에 이르기까지 세기를 넘나들면서 내가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연관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하워드 진은 우리가 전혀 예측도 하지 못한 채 경험하였던 사건들은 우리에게 이른바 "사회적 변화의 궁극적인 힘"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속하게 발전하는 세계에서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딜레마에 대한 실천적인 길을 제시한다. 열정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논리정연함으로 씌어진 이 책은 한 인간의 인생경험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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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역사의 힘 | - 하워드 진 2010-03-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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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역사의 힘: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

하워드 진 저/이재원 역 | 예담 | 원서 : Howard Zinn on History(2001)

 

 

희망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역사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유명한 하워드 진이 다시 한번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그동안 하워드 진이 역사에 대해 썼던 에세이들을 모은 것이다. 선거, 교육, 역사 기록, 인종 문제, 홀로코스트,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부문에서 역사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무엇인지 얘기하고,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를 만들어내 진정한 역사의 힘을 전달한다. 또 우리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역사 속에서 모색한다.

하워드 진은 '아래로부터의 관점'으로 새롭게 역사를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역사가 힘을 발휘할 때는 진실을 이야기할 때이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를 통제하는 사람들의 획일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숨은 주역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보기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역사에 힘을 더해 준다. 역사는 과거에 파묻혀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개선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갖가지 신화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 역사의 힘』은 역사 속에서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을 묻는 것이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로 이어질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직접행동이 민주주의를 발견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고통받아 온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 보여준 비폭력 직접행동을 제시한다. '구경꾼' 민주주의가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불의를 묵과하지 않는 저항정신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와 민주주의, 사회 문제에 대한 하워드 진의 통찰력있는 견해는 오늘날 한국에도 귀한 교훈이 될 것이다. 역사가 사회지배층의 권리와 이익을 수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진정한 '힘'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역사관이 정립되어야 한다. 미래를 향한 희망에 대한 가능성을 가져다 주는 역사. 역사의 힘은 비록 삶이 고달프고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사회의 현실이 떡 하니 버티고 있을지라도 저항하고 행동할 수 있게 있게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1부 행동하는 양심
1장 새로운 희망의 발견
2장 시애틀, 희망의 불꽃
3장 불확실한 미래를 낙관한다
4장 비관주의에 반대한다
5장 저항 정신
6장 비폭력 직접행동

2부 진정한 민주주의
7장 거대한 침묵
8장 대통령의 거짓말
9장 누구를 위한 정부이어야 하는가
10장 투표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로

3부 홀로코스트와 역사
11장 홀로코스트를 기리며

4부 마르크스주의와 역사
12장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13장 새로운 급진주의

5부 역사가의 역할
14장 콜럼버스와 서구문명
15장 교육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16장 "대학은 민주적이면 안 된다"
17장 새로운 역사
18장 미 해병대와 대학
19장 비밀주의, 역사 기록, 그리고 공익
20장 학문의 효용
21장 자유학교
22장 시민으로서의 역사가

6부 초상들
23장 유진 뎁스와 사회주의 사상
24장 존 리드의 발견
25장 잭 런던의 《강철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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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유명한 하워드 진이 『하워드 진, 역사의 힘 -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통해 역사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그동안 하워드 진이 역사에 대해 썼던 에세이들을 모은 것이다. 선거, 교육, 역사 기록, 인종 문제, 홀로코스트,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부문에서 역사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무엇인지 얘기하고,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를 만들어내 진정한 역사의 힘을 전달한다. 또 우리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역사 속에서 모색한다.

새로운 시각

이 책의 첫째 특징은 기존 역사관과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하워드 진은 역사 속에서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찾으려면 먼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를 통제하는 사람들의 획일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숨은 주역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런 '아래로부터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진실들을 알게 된다고 하워드 진은 말한다.
역사가 힘을 발휘할 때는 진실을 얘기할 때다.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의 진실을 알게 되면 사회의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진실을 숨기고 역사를 왜곡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엄청난 사건이다. 각종 역사책에서 콜럼버스는 영웅이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문명의 개척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살해하고 노예로 만드는 끔찍한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 평범한 사람들은 기존 체제와 역사관에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콜럼버스를 끊임없이 영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의 진실과 힘을 깨닫기 위해서는 소수 영웅 중심의 역사관을 버려야 한다고 하워드 진은 말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역사의 힘

세계적 석학답게 하워드 진의 글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강한 호소력이 있다. 1960년대에 쓴 글조차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예견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1960, 1970년대 미국의 대학을 보자. 대학들은 '열린 대학'을 운운하면서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해병대 참전병을 대학 내에서 모집하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학생들의 자유로운 시위는 허용하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대학들도 기업들이 구내에서 사업을 하고 광고를 하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학생들의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와 저항은 쉽게 용납하지 않고 있다. 또한 '작은 정부'를 얘기하면서도 군사비와 기업 보조금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미국 정부의 위선을 볼 때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는 신경 쓰지 않으면서 4대강 정비사업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우리 정부가 떠오른다.
이렇듯 이 책이 21세기에 한국에서 사는 우리에게도 공감이 가는 이유는 역사를 바라보는 하워드 진의 시각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파묻혀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개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워드 진은 홀로코스트 같은 문제를 단지 과거 유대인들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이라크 전쟁과 같은 수많은 '홀로코스트'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홀로코스트를 유대인만의 문제로 특화시키는 것은 역사를 박제로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인 민주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봐야 할까? 최근 한국 사회는 국민이 선출한 사람들이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왜 국민들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야만 하는가? 하워드 진은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선거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바뀌지만 FBI 같은 국가기관은 그대로이고 기업의 지배력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대부분이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그의 역사관에서 나오는 일관된 생각이다. 사회 지배층들은 선거가 가장 중요한 시민의 권리인 양 얘기하고 그것이 사회의 의사를 결정하는 양 얘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대부분의 역사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직접행동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사회 지배층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공격해 왔다. 예를 들면,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정부가 세워졌고 정부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할 권리가 훀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할 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오히려 그런 문구들을 사문화시켰다.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와 비폭력 직접행동

그렇다면 과연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는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하워드 진은 이 책에서 일관되게 비관주의에 반대하고 낙관에 대해 얘기한다. 역사를 배우고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우리는 비관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낙관을 얻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미국에서도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는 비관주의가 팽배했지만, 얼마 안 돼 공민권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저항 운동이 벌어졌다. 그 뒤에도 1984년에 버몬트 주의 벌링턴에서 '위누스키의 44인'이 니카라과 반군 지원을 지지한 공화당 소속 로버트 스태퍼드 상원 의원에 항의하는 뜻에서 그의 사무실을 점거하는 일이 발생했다. 1985년에는 일리노이 주의 그레이트솔트 호에 위치한 해군 훈련소가 사람들에게 봉쇄됐고, 시카고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관도 봉쇄됐다. 워싱턴 주에서는 19명의 사람들이 탄두를 운반하던 기차들을 멈춰 세웠다. 시애틀에서는 WTO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대하게 벌어졌다.
역사가 정답만을 말하고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위한 가능성은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 하워드 진은 주장한다.
그리고 하워드 진은 '구경꾼'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동하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우리가 불의를 묵과하지 않는 저항 정신을 지녀야 한다고 얘기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고통받아 온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 온 비폭력 직접행동을 제시한다.

역사 속에서 길을 묻다

하워드 진은 역사가는 과거에 얽매이고 그 무게에 짓눌려 옴짝달싹 못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필연적인 일로 보게 된다. 그리하여 역사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더 나아가 행동하고자 하는 생각조차 꺾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본다면 역사는 강력한 힘과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예를 들어, 과거는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우리를 고취한다.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갖가지 신화에 맞설 수 있다. 과거를 통해 우리는 국민 전체가 세뇌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집단 학살을 자행하기도 하고,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나라가 노예제를 유지하기도 하며, 겉으로 보기에 무력하게 종속돼 있던 사람들이 지배자들을 무찌르기도 하고, 경제계획이 꼭 자유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가 전제적으로 될 수도 있고, 모든 국민이 순한 양떼처럼 전쟁에 끌려갈 수도 있고, 대의를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희생이 강요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의 힘이다.
그 밖에도 이 책은 저항 운동이 어떤 이론을 가져야 하는지, 역사에서 중립성이 있는지, 1960년대 대안학교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유진 뎁스, 잭 런던, 존 리드 같은 진보적 인물들의 역사적 유의미성 등을 다룬다.
민주주의 후퇴와 소통 부재의 시대에 교수, 역사가, 실천하는 지식인, 인생의 선배로서 하워드 진은 우리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역사란 무엇인가? 여기 한 노역사학자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역사의 미로 속에서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준다. 역사란 과거 속에 들어가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서 있는 현재의 불의에 도전하며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밑거름이 돼 민주주의가 살아나고, 더 풍성하게 가지를 뻗어 진보와 자유의 꽃을 피우는 것이 바로 역사임을 설득력 있게 그려 낸다. 시간과 지역을 뛰어넘는 하워드 진의 역사 에세이는 혼돈과 잿빛의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 강만길(역사학자,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진실을 탐구하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항상 우리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에 주목하라고 권고한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어둠의 힘이 온통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때, 이 책은 우리가 왜 낙담하는 데 멈추지 않고 비폭력 직접행동에 나서야 하는지 일깨워 준다. -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하워드 진은 나를 가르쳐 준 선생님이자 정신적 스승이고, 급진적 역사가이자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말썽꾸러기'다. 그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아픔을 함께해 왔다. 이 겸손한 영웅을 향한 내 사랑과 존경심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하워드 진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스승이자 가장 유쾌한 분이다. - 앨리스 워커(Alice Walker. 흑인 여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퓰리처상 수상작 『컬러 퍼플』 저자)


 

하워드 진의 글은 무기력한 학계의 역사 서술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열정으로 넘쳐난다. - 에릭 포너(Eric Foner. 컬럼비아 대학교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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