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라 여러 곳에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만나보지 못하는 주제의 공부를 많이 시키는 모양이다. 한 지자체 문화센터에서 “아이들에게 3주 정도 쉬운 천자문이나 가르쳐 주시오”하고 부탁을 해왔다. 손사래 치며 ‘쉬운 천자문이란 말이 온당치 않다’고 얘기해놓고 나니 천자문에 대해 오래 가져온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천자문’은 한자(漢字)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일에서 제일 먼저 듣게 되는 이름이다. 책 이름이기도 한 ‘천자문’을 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 양나라 주흥사(周興嗣 추정생몰연대 470~521년)가 지은 책. 사언(四言) 고시(古詩) 250구 1,000자로 되어 있으며, 자연현상으로부터 인륜(人倫) 도덕에 이르는 지식 용어를 수록(收錄)하였고, 한문 학습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하늘 천 따 지,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하여 ‘언재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천자문은 우리나라에서 고유명사임과 동시에 ‘한자 한문 입문서’의 뜻을 품는 일반명사로도 쓰였다. ‘천자문도 모르면서 도장(圖章)판다’는 식의 말도 있었다. 옛 중국의 문물(文物)을 활용해 한자와 한자의 활용인 문장(文章)의 기초를 가르쳐주는 중요한 교재였다.

‘천인(千人)천자문’이란 것도 있다. 문자께나 한다는 집안의 어른이 자손을 위해 글에 밝은 친지들에게 천자문을 한 자씩 써달라고 하여 만든 천자문이다. 또 ‘석봉천자문’은 조선 선조 때의 명필 석봉(石峰) 한호(韓濩 1543~1605)가 쓴 천자문 습자(習字)책이다.

   
사진 속 <천자문(千字文)>(보물 1659호)은 석봉 한호(石峰 韓濩, 1543~1605)의 필체(筆體)를 판하본(板下本)으로 하여 간행한 목판본(木板本)이다. ©문화재청
 

50대 이후 세대라면 천자문과 감정적으로 매우 가깝다. 서당 향교 등에서 옛날식으로 천자문을 배운 이들도 있다. 한자는 ‘찬 밥’ 신세이면서 한자급수시험만은 성황인 요즘도 천자문은 ‘고전(古典)’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요즘 아이들도 학원에서 천자문을 배운다. 글 배운 사람으로서 장담하건데, 급수 시험 이틀 후면 이런 한자(지식)은 대개 잊어버린다. 그리고는 ‘역시 한자는 재미없어!’하고 책 덮고 전자오락에 빠질 것이다. 한자를 마음에 새기는 공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자의 본디인 그림이 사물의 본질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이들이 ‘天은 하늘 천이다. 외워! 써!’하고는 그만인 한자교육의 결과다. 당연하다. 또 신문도 이젠 한자를 안 쓰니 그나마 한자를 만나 볼 기회조차 없다. ‘스펙’이라며 급수만 따라는 것이 ‘엄마의 주문’이기 십상이다.

한자의 원천(源泉)이 그림이라며, 만화로 한자를 가르친다는 여러 교재들도 발상은 거기서 거기다. 손오공이 “얍, 장풍을 받아라!” 하며 소리치는 대목, 말풍선에 ‘손바닥 장掌, 바람 풍風’ 하고 크게 써서 보여주는 것이 소위 ‘그림 한자 지도법’이다. 기껏해야!

자전거 타기나 수영은 한번 익히고 나면 수십 년 흘러도 잊지 않는다. 아니, 잊지 못 한다.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몸이, 마음이 기억하는 한자는 어떤 것인가. 갑골문으로부터 비롯하여 현대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문자를 궁리하는 문자학에 답이 있다.

문자학(文字學)은 기호가 된 그 그림들이 왜 그 뜻을 가지게 됐는지를 가르쳐주는 공부다. 이(夷) 겨레도 다른 족속들과 함께 모여 살던 지금 중국 땅 황하(黃河) 유역에서 갑골글자가 빚어진 이래 3,500년, 한자의 오랜 역사에 얹힌 더께를 풀어내는 작업인 것이다.

천자문 외우기 전에 그 그림(기호)이 가리키는 바[지(指)]와 가르치는 바[훈(訓)]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본 글자와 그것들을 조립해 새로운 글자를 짓는 법칙이 한자의 구문론(構文論)이다.

그림글자(뜻글자)의 묘미(妙味)를 알고 나면, 그야말로 ‘하나 배우면 열을 아는’ 자(字)의 흥미진진한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字가 무엇인가? 집[면(宀)]안에서 자손[자(子)] 생기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것이 바로 글자 아니던가.           

천자문, 좋은 책이다. 그러나 중국의 옛 문물과 역사, 풍습이 그 토대(土臺)다. 중국사람(아이)들에게 맞는 책인 것이다. 지금 우리 귀한 보배 세대들에게까지 아직도 그 천자문을 가르쳐야 한다면, 이건 어른들, 특히 어문(語文) 부문 교육자들의 잘못이다. 물론 갈팡질팡 정책, 줏대 부실(不實) 언론 탓도 크다.

의당(宜當) 우리의 ‘교과서’가 활용되어야 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우리 문물을 토대로 한 ‘우리의 천자문’이 있어 되살릴만하다. 굳이 천자(千字)문은 아니지만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아학편(亞學編)’이 그것이다. 2천자 가량의 분량 때문에 ‘2천자문’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산은 세종대왕이나 충무공처럼, 우리 겨레의 학문을 드높인 어른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아학편을 김대현 씨가 추려 만든 <다산 천자문> 책 표지.
 

온고지신(溫故知新), 한문학자 김대현 씨가 1997년 이 아학편을 1천자 분량으로 간추려 ‘다산(茶山) 천자문’이란 이름으로 책을 펴냈다. 뜻있는 이들에 의해 교육 일선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또 원로 문자학자인 진태하 교수가 추려 만든 ‘진태하(陳泰夏) 천자문’도 여러 면에서 의미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시도가 더 널리 알려져 그 ‘중국 천자문’보다 더 효율적으로 한자 교육에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또 이 2종의 ‘우리 천자문’은 한자가 원래 그림인 점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품고 있어 보다 본디에 가까운 한자학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천자문’을 (번역본으로라도) 한번 읽어보자. 왜 이런 책을 우리가(우리 아이들이) 힘써 외워야(읽어야) 하지?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 터다. 단지 관성(慣性)인가? 해오던 대로? 다산 선생이나 진태하 교수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우리 천자문’을 쓰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도 느껴질 터다.
 

   
강상헌·사단법인 우리글진흥원 원장
 

이 천자 중 50여자는 별로 쓰이지도 않고, 만나기도 어려운 소위 벽자(僻字)여서 우리가 익힐 필요가 없다고 진 교수는 지적한다. 고대 중국에서나 필요했던 어휘가 다수 포함된 이 책을 현대적으로 개편하지 않은 까닭이다.

또 춘(春) 소(小) 태(太) 완(完) 객(客) 실(室) 해(害) 헌(憲) 숭(崇) 간(干) 타(打) 두(斗) 근(斤) 씨(氏) 염(炎) 상(狀) 편(片) 우(牛) 견(犬) 명(皿) 모(矛) 시(示) 화(禾) 죽(竹) 미(米) 육(肉) 지(至) 설(舌) 각(角) 패(貝) 풍(風) 신(辛) 주(走) 리(里) 혁(革) 등 없어서는 안 될 기초 글자 상당수가 빠져 완성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 결코 쉽지 않다. 보지도 않고, 아이들 보는 책이라는 생각에 무턱대고 자녀에게 천자문 타령을 하는 이들도 있을 터다. 당신은 읽어 보았는가? 필자나 이 책을 아는 상당수 전문가들의 생각은, 읽어서 나쁘지는 않겠지만 굳이 시간과 돈 쏟아 읽거나 학원에서 배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 천자문’을 살펴 활용하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