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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샤론, 강경 태도에 '불도저' 별명 | - 중동 2014-01-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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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샤론, 강경 태도에 '불도저' 별명

이스라엘 역사상 숱한 논란 일으켜…팔'에서는 '학살자'로 불려 연합뉴스 | 입력 2014.01.12 00:58

이스라엘 역사상 숱한 논란 일으켜…팔'에서는 '학살자'로 불려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8년째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11일(현지시간) 타계한 아리엘 샤론(85) 전 이스라엘 총리는 군 장성 출신의 이스라엘 대표적인 우파 정치 거물로 꼽힌다.

샤론 전 총리는 정치 생명의 정점에 있던 2006년 1월4일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 지금까지 혼수상태로 투병하다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강경한 태도로 유명한 샤론은 이스라엘 건국 후 팔레스타인과 투쟁 과정을 이끌어온 지도자 중 하나로 각인된 인물이다.

팔레스타인, 레바논과 충돌을 야기한 군사작전, 행동 등으로 이-팔 역사상 가장 숱한 논란을 일으킨 인사이기도 하다.

2005년 8월에는 가자지구에 있던 유대인 정착촌 20여 곳을 폐쇄하고 현지에 주둔해온 이스라엘군을 전격적으로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해 국제사회의 주목도 받았다.

1928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샤론은 14세 때 유대인 지하군사조직인 '하가나'에 들어가 1973년 전역할 때까지 반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다.

샤론은 이스라엘에서는 안보의 기틀을 다진 영웅으로 칭송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도살자"로 인식될 정도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

그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아랍권 국가들의 집단 침공으로 시작된 1차 중동전쟁을 포함해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현재의 이스라엘 지도를 만들어 놓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는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공을 세웠다.

장군으로 전역한 샤론은 1970년대 리쿠드당 창당에 참여해 정계로 진출한 뒤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국방장관 시절이던 1982년 레바논에 본부를 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조직을 와해시키고자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향해 군사공격을 감행해 PLO 본부를 튀니지로 쫓아냈다.

이 공격은 이스라엘군 통제를 받던 베이루트 난민캠프 2곳에서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하는 사태로 발전해 샤론에게는 "도살자"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국방장관을 그만둔 샤론은 1984년 통산장관으로 다시 입각해 내각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내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정착촌 확장정책을 밀어붙였고 2000년 9월 이슬람 성지인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지역을 전격 방문했다. 샤론의 사원 방문은 제2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反이스라엘 봉기)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반면, 샤론은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38년간 점령했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2005년 포기하면서 극우 유대인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이런 신념에 따라 그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일부 정착촌을 추가로 포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이를 위해 2005년 11월 강경 우파가 포진한 리쿠드당을 버리고 신당을 출범시키는 승부수를 던지기까지 했다.

샤론은 팔레스타인 분리 정책을 추진하고자 카디마당을 만든 뒤 조기 총선을 준비하던 중 과로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후 여러 차례 뇌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내각은 샤론이 3개월 넘게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자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리고 2006년 4월 에후드 올메르트 당시 부총리의 총리대행 체제를 공식화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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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샤론, 강경 태도에 '불도저' 별명 | - 중동 2014-0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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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샤론, 강경 태도에 '불도저' 별명

이스라엘 역사상 숱한 논란 일으켜…팔'에서는 '학살자'로 불려 연합뉴스 | 입력 2014.01.12 00:58

이스라엘 역사상 숱한 논란 일으켜…팔'에서는 '학살자'로 불려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8년째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11일(현지시간) 타계한 아리엘 샤론(85) 전 이스라엘 총리는 군 장성 출신의 이스라엘 대표적인 우파 정치 거물로 꼽힌다.

샤론 전 총리는 정치 생명의 정점에 있던 2006년 1월4일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나서 지금까지 혼수상태로 투병하다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강경한 태도로 유명한 샤론은 이스라엘 건국 후 팔레스타인과 투쟁 과정을 이끌어온 지도자 중 하나로 각인된 인물이다.

팔레스타인, 레바논과 충돌을 야기한 군사작전, 행동 등으로 이-팔 역사상 가장 숱한 논란을 일으킨 인사이기도 하다.

2005년 8월에는 가자지구에 있던 유대인 정착촌 20여 곳을 폐쇄하고 현지에 주둔해온 이스라엘군을 전격적으로 철수시키는 조치를 취해 국제사회의 주목도 받았다.

1928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샤론은 14세 때 유대인 지하군사조직인 '하가나'에 들어가 1973년 전역할 때까지 반평생을 군인으로 살았다.

샤론은 이스라엘에서는 안보의 기틀을 다진 영웅으로 칭송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도살자"로 인식될 정도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

그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후 아랍권 국가들의 집단 침공으로 시작된 1차 중동전쟁을 포함해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현재의 이스라엘 지도를 만들어 놓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는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공을 세웠다.

장군으로 전역한 샤론은 1970년대 리쿠드당 창당에 참여해 정계로 진출한 뒤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국방장관 시절이던 1982년 레바논에 본부를 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조직을 와해시키고자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향해 군사공격을 감행해 PLO 본부를 튀니지로 쫓아냈다.

이 공격은 이스라엘군 통제를 받던 베이루트 난민캠프 2곳에서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하는 사태로 발전해 샤론에게는 "도살자"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이 사건의 여파로 국방장관을 그만둔 샤론은 1984년 통산장관으로 다시 입각해 내각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내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정착촌 확장정책을 밀어붙였고 2000년 9월 이슬람 성지인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지역을 전격 방문했다. 샤론의 사원 방문은 제2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反이스라엘 봉기)를 촉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반면, 샤론은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38년간 점령했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2005년 포기하면서 극우 유대인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이런 신념에 따라 그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는 일부 정착촌을 추가로 포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이를 위해 2005년 11월 강경 우파가 포진한 리쿠드당을 버리고 신당을 출범시키는 승부수를 던지기까지 했다.

샤론은 팔레스타인 분리 정책을 추진하고자 카디마당을 만든 뒤 조기 총선을 준비하던 중 과로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후 여러 차례 뇌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은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이스라엘 내각은 샤론이 3개월 넘게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자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리고 2006년 4월 에후드 올메르트 당시 부총리의 총리대행 체제를 공식화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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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의 별세에 대한 세계의 반응 | - 중동 2014-01-12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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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의 별세에 대한 세계의 반응

뉴시스 | 양평 | 입력 2014.01.12 06:20

【AP/뉴시스】양문평 기자 =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11일 별세한 데 대해 세계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를 정리해 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샤론은 가자지구로부터 이스라엘 정착민들과 군대를 철수하도록 고통스럽고도 역사적인 결단을 내린 그의 정치적 용기와 결의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정치인으로써나 총리로써 이스라엘을 위해 계속 '과감한 전사'였던 샤론의 별세에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샤론의 가족들과 온생애를 이스라엘을 위해 바친 한 지도자를 잃은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위로를 보내며 "우리는 그의 헌신을 기리는 이스라엘 국민과 함께 한다"고 말했다.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샤론의 집권 당시 부총리로써 그가 2006년 졸도하자 총리에 올랐던 올메르트는 "그는 싸워야 할 때는 가장 어려운 자리에서 선두에 섰다. 그러나 그는 스마트하고 현실적인 인물로 우리의 전쟁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기도 했다"고 평했다.

▲타우픽 티라위(전 팔레스타인 정보국장)= 샤론이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 팔레스타인 정보국장으로 있었단 티라위는 "샤론은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워버리려 했다. 그는 우리를 죽이려 했으나 결국 그는 사망했고 팔레스타인 국민들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칼릴 알 하야(하마스의 고위 지도자)="8년만에 그는 손이 팔레스타인인들의 피로 얼룩진 다른 폭군과 범죄자들과 같은 길을 가게 됐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샤론의 친구이자 정적이기도 했던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은 "샤론이 국민을 사랑했고 국민도 그를 사랑했던 용감한 군인이자 과감한 지도자였다"고 평했다.

▲ 요시 사리드(전 야당지도자)= 샤론과 경쟁관계였던 요시 사리드는 샤론이 "지난 2세대에 걸쳐 이스라엘의 가장 두드러지고 영향력있었던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 "나는 그의 장례식에 미국의 조문단을 이끌고 참석해 그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결속을 위해 흔들림없이 헌신한 데 경의를 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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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 85세로 타계(종합) | - 중동 2014-01-1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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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 85세로 타계(종합)

뇌졸중으로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연합뉴스 | 입력 2014.01.11 23:38

뇌졸중으로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예루살렘 AFP·AP·dpa=연합뉴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에서 투병해온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11일 타계했다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가족이 발표했다. 향년 85세.

네타냐후 총리는 성명을 통해 샤론 전 총리가 이날 텔아비브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며 애도를 표명했다.

↑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에서 투병해온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11일 타계했다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실이 발표했다. (AP=연합뉴스DB)

성명은 샤론 전 총리에 대한 추억이 이스라엘 국민의 가슴 속에 길이 남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아리엘 샤론 전 총리의 서거에 머리를 숙인다"고 밝혔다.

고인의 아들 길라드 샤론은 텔 하쇼머에 있는 시바 메디컬센터에서 "아버지가 별세하셨다. 그가 가시고 싶은 때 떠나셨다"고 말했다.

시바 메디컬센터는 샤론의 상태를 안정시키려고 갖가지 노력을 다했으나, 정오(GMT)께 숨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샤론은 재선 유세 도중 중증 뇌졸중을 일으키고서 2006년 1월 4일 이래 혼수상태에 빠졌다.

지난 9일 샤론이 입원 치료를 받아온 시바 메디컬센터 대변인은 "샤론의 상태가 악화해 위독하다"며 가족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샤론은 별세하기 전 신장을 비롯한 심각한 장기부전에 시달렸으며 지난 1일 병세가 급격히 악화했다.

그의 부고가 전해지자 이스라엘 고위 공직자들은 앞다퉈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시몬 페레스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친애하는 친구 아리크 샤론이 자신의 마지막 전투에서 졌다"며 "아리크는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의 사랑을 받은 용맹스런 군인이자 용감한 지도자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수호자와 가장 중요한 설계자 가운데 하나였다. 두려움을 몰랐고 결코 비전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를 정말 그리워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치피 리브니 법무장관도 큰 슬픔을 나타내면서 "아리크는 내가 사랑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위대한 군인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아리크는 8년 전 사라졌고 이제 마침내 우리를 떠났다"고 밝혔다.

리브니 장관은 샤론이 "용감한 전사이자 사령관, 지도자였고 이스라엘 땅에 굳건히 다리를 박고 선 농부였다"고 기렸다.

군인 출신인 샤론은 2001∼2006년 총리로 재임하는 등 이스라엘서 수십 년간 군과 정치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노련한 정치인이자 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만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도 드물다.

많은 이스라엘인은 그의 과단성 있는 행동에 '불도저'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열광한 반면 팔레스타인 측에선 그를 '범죄자'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샤론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하마스는 샤론을 "팔레스타인에 재앙을 안겨준 범죄자"라면서 "지옥에나 가라"고 저주했을 정도다.

샤론은 군 장성으로 1967년 '6일 전쟁',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등에서 공로를 세웠으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원을 겨냥한 레바논 침공도 진두 지휘했으나 수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면서 아랍권에서 '베이루트의 도살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스라엘 내부의 공식 조사 결과 1982년 9월 레바논 베이루트 외곽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캠프에서 2천여 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살해당한 데는 샤론이 간접적 책임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국방장관직에서 즉각 사퇴했다.

샤론은 야세르 아라파트 당시 PLO 의장과 폭력 중단 및 평화협상 재개에 합의하는 등 평화를 향한 조처를 하기도 했으나 그의 노력은 자신이 이끄는 리쿠드당의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불가 입장에 의해 무산됐다.

하지만 그는 2005년에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철수' 를 주도하기도 했다.

샤론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수개월 전에는 국수주의 성향의 리쿠드당에서 이탈해 중도 카디마당을 창당했다.

jianwa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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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족과 미국이 중동을 대하는 다른 자세 | - 중동 2013-10-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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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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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8월 23일 시리아인들이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 앞에서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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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복잡한 중동 문제가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온 불길로 인해 한층 더 타들어가고 있다. 2010년 12월 발생한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민중봉기가 벤 알리 대통령의 사우디 망명으로 연결됐고, 이것은 다시 이집트·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정권들의 연쇄적 붕괴로 이어졌다. 이 불길은 중동으로 넘어가 예멘·바레인·오만·사우디뿐만 아니라 시리아로도 번졌다. 

시리아는 국민의 4분의 3이 다수파 이슬람교도인 수니파이지만 집권층은 소수파 이슬람교인 시아파다.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신봉하는 알라위파 이슬람교는 시아파의 분파다. 수니파 반정부 세력은 시아파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 위의 불길을 활용했다. 이로 인해 2011년 초부터 내전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현재까지 약 6만 명이 사망했다. 지난 8월에는 화학무기 공격까지 발생해서 수천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2011년만 해도 미국은 튀니지에서 번진 불길이 자국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 불길로 인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제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당황하고 있다. 제어하기 힘든 방향으로 문제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좀더 악화되면 미국 지도부는 "차라리 이란 핵문제가 훨씬 더 쉬웠다"고 한탄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시리아 사태를 통제하고 싶지만 상황은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검토했지만, 9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군사개입을 배제하는 전제 하에서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의했다.

유엔 안보리마저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미국 연방정부는 10월 1일부터 '부분 폐업' 상태에 들어갔다. 미합중국의 '셔터 문'이 부분적으로 닫힌 상태이니 미국의 중동 경영이 앞으로 얼마나 잘 굴러갈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미국이 중동에서 겪고 있는 곤혹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수천 년간의 중동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은 이 지역의 역대 슈퍼 파워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떨어지는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패권국에 등극한 지 100년도 안 된 미국이 중동에서 겪고 있는 곤란과 당혹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기원전부터 19세기까지 중동에서 패권을 행사한 역대 패권국과 비교할 때, 미국이 해결하지 못한 주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왜 중동에서 현지화에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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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 녹색으로 칠한 부분은 전성기인 슐레이만 1세(재위 1520~1566년) 때의 영토.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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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현지화의 문제다. 중동의 역대 슈퍼 파워들은 어떤 형태로든 현지의 문화를 수용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터키공화국의 조상인 투르크족(튀르크족)이라 할 수 있다.

터키의 영토는 지금은 아나톨리아 반도로 축소됐지만, 과거에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걸친 대제국이었다. 중간에 몽골제국이 중동에서 패권을 행사한 기간을 제외하면,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에 이 지역의 패권을 행사한 민족은 투르크족이었다.

투르크족은 한국인들은 '돌궐'로 발음하고 중국인들은 '투쥐에'로 발음하는 유목민족이다. 이 민족은 중앙아시아와 몽골초원에서 활약하다가 당나라(618~907년)와의 경쟁에서 밀려 중동과 동유럽으로 민족이동을 단행한 뒤 현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민족이다.

투르크족이 돌궐족의 후예라는 점은 오늘날의 터키가 서기 552년을 자신들이 나라를 세운 해로 기념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552년은 돌궐족이 몽골초원의 유목민족인 유연족의 지배에서 독립한 해다.

투르크족은 중앙아시아와 몽골초원에서 활약한 민족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착지인 중동에서는 당연히 이방인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중동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이 지역의 패권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도 현지화 정책이었다.

투르크족의 현지화 정책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슬람교 개종이다. 이런 적응력이 있었기 때문에 투르크족 국가인 셀주크 투르크가 11세기부터 중동의 강자로 등극하고, 또 다른 투르크족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가 14세기부터 지역 최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투르크 국가가 보여준 현지화 정책은, 이 지역에 먼저 정착한 민족들이 투르크족의 지배에 대해 반감을 덜 갖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현지화라는 측면에서 현대의 미국은 원초적 한계를 갖고 있다. 중동에 영토를 두지 않고, 이 지역을 원격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현지화를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중동 사람들을 존중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미국은 이마저 무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편파적 태도로 중동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는 점만 봐도 미국이 이 지역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다양성 존중 없인 중동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둘째, 다양성 존중의 문제다. 중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이 만나는 지역이다. 또 이곳은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와 상업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곳이다. 그래서 세계의 여타 지역에 비해 문화적 다양성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충돌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그래서 중동의 역대 패권국들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는 이 지역을 지배할 수 없었다. 투르크족은 물론이고 투르크족 이전의 패권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나라는 고대 페르시아 왕조인 아케메니드 페르시아(기원전 550~기원전 330년)다.

투르크족이 중동의 여타 민족들과 혈통이 다른 것처럼, 페르시아 역시 중동의 주류 민족들과 혈통이 달랐다. 페르시아와 그 후예인 이란은 이라크·시리아·사우디·쿠웨이트·레바논 등이 속한 아랍권과 혈통이 다르다. 아랍권은 셈족인 데 비해, 페르시아는 인도·유럽어족이다. 그래서 고대 페르시아는 아랍권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이질감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아랍권 사람들은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서기 7세기를 문명의 출발점으로 인식하지만, 이란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기는 하지만 그런 인식을 거부한다. 이란인들은 서기 7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페르시아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케메니드 페르시아 제국이 인도·유럽어족으로서 아랍의 이민족들을 통치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다양성 존중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키루스 2세의 정책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키루스 2세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고레스 대왕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성경에서는 그가 이스라엘인들의 종교를 존중해준 사실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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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루스 2세의 조각상.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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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세계의 정복자들은 피정복민들에게 정치적 복종뿐만 아니라 종교적 개종까지 강요했다. 고대 사회로 갈수록 제정일치 경향이 강했으므로, 정복민이 피정복민에게 자기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키루스 2세는 그런 일반적인 방식이 중동에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중동처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그런 방식이 제국의 통치력을 도리어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피정복민이나 속국민들에게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 자기 민족의 종교를 믿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독교처럼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나라가 피정복민의 신들을 존중해준 것이다.

키루스 2세가 다양성을 얼마나 존중했는지는 기독교 성경에서 그가 매우 훌륭한 인물로 묘사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非)기독교권의 군주가 성경에서 훌륭한 인격자로 묘사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성경 이사야서 45장 1절에서는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키루스 2세)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세계 각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키루스 2세에게 기름을 부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가 중동과 주변 지역을 정복했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키루스 2세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그를 왕으로 임명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키루스 2세의 정복사업을 하나님의 뜻에 의한 일로 평가한 것은 키루스 2세의 다양성 정책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음을 반영한다.

오늘날 미국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페르시아 같은 과거의 패권국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석유에 대한 욕심에 빠져, 또 한편으로는 자국 문화에 대한 과도한 우월감에 빠져 중동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대 패권국들에 비해 미국은 가장 '무지'하고 가장 '무식'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동을 지배하는 나라가 갖춰야 할 '기본 예의'를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페르시아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돌궐족보다도 못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현지화 및 다양성 존중의 과제를 이루지 못한 미국이 2011년부터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현상을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지화나 다양성의 존중 없이도 중동을 지배하는 방법은 압도적인 파워를 보유하는 길 뿐이지만, 지금의 미국은 그것마저 힘들다. 현재의 미국은 연방정부의 '셔터 문'을 들어 올릴 기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한테 필요한 일은 하루빨리 중동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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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하나 때문에…" 군에 억류된 5살 소년 | - 중동 2013-07-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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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돌멩이 하나 때문에…" 군에 억류된 5살 소년

뉴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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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은 브첼렘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인권단체가 현지시간으로 지난 11일 홈페이지에 올린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갈등하고 있는 서안지구에서 일어난 실제 상황입니다.

동영상 속에선 한무리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한 소년을 차에 실어서 어디론가 데려가려 합니다. 한눈에도 어려보이는 이 소년의 나이는 겨우 5살, 이름은 마스와데입니다. 총을 든 군인들의 차량 앞에서 마스와데는 두려움에 휩싸여 엉엉 울며 안타겠다고 버팁니다. 지켜보던 주민들도 나와서 군인들에게 사정을 하지만 결국 군인들은 마스와데 아버지까지 불러서 함께 차에 태우고 갑니다.

군인들이 마스와데를 끌고간 이유는 팔레스타인인인 마스와데가 이스라엘 군 차량에 돌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마스와데는 개에게 던진 돌이 실수로 군인 차량에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은 마스와데의 집을 찾아가 아버지까지 불러낸 뒤 함께 군 기지로 끌고갔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이후 두 시간 동안이나 이들을 억류했습니다. '보호자'로 끌려간 아버지는 손에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린채 의자에 묶어두기까지 했습니다.

영상이 공개되자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비난이 들끓고 있습니다. 돌 하나 던졌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억류한 처사는 부당하다는 비판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과 서안지구의 형사상 책임 연령은 12세입니다. 마스와데의 나이는 고작 다섯살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성명까지 내서 비난을 일축했습니다. "마스와데를 체포하거나 기소하지 않았고 내내 부모가 함께 있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마스와데가 던진 돌 때문에 행인들이 위험했고" "지난 1~5월 사이 서안지구에서 비슷한 사건으로 이스라엘인 150명 이상이 다쳤다"며 마르와데 부자를 억류한게 정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스와데가 던진 돌이 얼마나 컸는지는 영상에 없습니다.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로 사람이 다치는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돌맹이 하나 던졌다고 다섯살 어린이를 군 기지로 끌고가서 아버지와 함께 두 시간이나 억류한 이스라엘 군의 대응이 정말 아무 문제 없고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요?

현재 이스라엘 영토의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던 지역입니다. 그 땅에 지난 1948년, 국제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서구 강대국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이 '건국'했습니다. 동시에 조상 대대로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한순간에 나라 잃은 '난민'이 됐습니다.

그나마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영토로 남아있었는데 이스라엘은 지난 1967년 중동전쟁에 승리하면서 이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했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을 이주시키면서 이 지역에 이른바 '정착촌'을 건설중입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2년 말 현재 서안지구에는 모두 482개의 유대인 '정착촌'이 있고 서안지구에 사는 유대인 정착자 수는 2011년 통계로 53만 7000명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서안지구 주민 대부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국제법상 1949년의 이른바 '그린 라인'을 넘어 팔레스타인 영토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은 모두 불법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절대소수인 유대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이 지역에 군을 주둔시키면서 무력을 앞세운 통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다못한 UN인권이사회는 지난 1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은 팔레스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하고 '정착촌'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청하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제조건 없이 즉각 모든 정착촌 건설 활동을 중단하고 모든 정착민들을 철수시키는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인권 침해의 희생자가 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충분하고 효과적이면서도 즉각적인 구제조치"를 시행하라는 요구도 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자결권, 비차별, 이동의 자유, 평등권, 적법 절차, 공정한 재판, 임의적인 구금을 당하지 않을 권리, 신앙 시설에의 접근권, 교육, 물과 주거의 권리"같은 기본적인 권리마저 침해받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또 이 지역에선 심지어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 정착민에게 서로 다른 사법 시스템과 기준이 적용된다는 사실도 고발했습니다. 구체적인 통계자료도 덧붙였습니다. 2005년부터 2012년 사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폭력을 가한 정착민들은 91%가 기소 없이 풀려났습니다. 반면 정착민들에게 폭력을 가한 팔레스타인인들은 90~95%가 법정에 서야했습니다. 2012년 한해에만 410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군 유치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21명은 16살 이하였습니다.

보고서를 다시 찾아보고 나니 어쩌면 이스라엘 군의 항변이 맞는 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섯달 사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무려 150명이나 돌에 맞아 다쳤는데, 감히 군 차량에 겁도 없이 돌 던진 팔레스타인 어린이 한 명 쯤 잡아서 억류하는게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서안지구'에서요. 다섯살이면 어떻고 네살이면 어떻습니까? '서안지구'에서요. 죄 없는 아버지까지 데려가서 수갑 채우고 눈 가려서 묶어둔들 대체 뭐가 잘못됐단 말입니까? '서안지구'에서 말입니다!

동영상이 공개된 뒤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마스와데가 탄생하는 걸 막기 위해서 이젠 정말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서안지구에서 '정착촌'이라는 비극적이고 기형적인 마을을 없애야 한다는 거지요. 하지만…UN이 나서서 '정착촌'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 UN을 주도하는 강대국 가운데 실질적인 '액션'을 취한 나라는 한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지난달, UN 보고서가 나온 지 불과 '다섯달' 뒤에 보란듯이 선언했습니다. "서안지구 정착촌에 1000채 이상의 신규 주택을 건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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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팔레스타인의 '최소한' | - 중동 2013-06-14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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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팔레스타인 1,2>의 겉표지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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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7월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네덜란드 헤이그에 비장한 표정으로 도착한 세 한국인이 있었다. 이들은 세계만방에 을사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냉담하기 그지없는 열강들의 반응이었다. 거기다가 일본의 방해까지 받아 결국 의도했던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 통탄을 이기지 못한 일행 중 한 사람은 귀국하지 못하고 끝내 순국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숙연함으로 다가오는 이준·이상설·이위종 선생의 이야기다.

<아! 팔레스타인>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서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읽는 도중 심심찮게 새어 나오던 한숨도 멈췄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나보다. 이윽고 열린 내 입에서는 아련하게 탄성이 터졌다.

"아!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은 한반도와 꼭 닮아 있었다. 마음 속 깊숙한 떨림의 진원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만국평화회의장 앞에서 울부짖던 열사를 외면했던 열강은 되지 말자. 같은 역사를 겪었던, 같은 아픔을 간직한, 같은 눈물을 흘렸던,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인간이라면 그러지 말자.  

여러분, 호소컨대 이 책을 반드시 읽으시라. 그리고 알기라도 하자. 지구 반대편에서 어떤 야만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진실이 어떻게 왜곡되어 사람들의 잠재의식을 파고들었는지. 그 추악한 왜곡의 반대편에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서글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음을 꼭 알기라도 하자.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이다.

팔레스타인의 낯선 거리에서 만화의 주인공 '진'을 만난 현지인은 커피를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나라에 가서 꼭 전해줘요. 당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요."

뒤바뀐 역사, 우리가 아는 역사, 아무것도 모르는 역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팔레스타인은 테러 국가이고 이스라엘은 그런 테러 국가들 틈바구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국가란 인식이 자리 잡고 있지 않는가? 혹독한 박해를 견디고 나라를 건국한 대단한 민족이라는 부가 설명이 덧붙으면서.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럴 수밖에.

이 점이 무서운 것이다. 진실은 묻혀버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원주민으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을 강탈한 방식을 따라하고 있다. 평화로웠던 땅을 무력으로 빼앗고, 온갖 방법으로 정당성을 부여하며, 악랄하게 박해했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인 파리드 에사크는 지적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게 펼치는 정책이 지난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정권이 행했던 악명 높은 인종 차별 정책보다 더 잔혹하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에 다시 한 번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 경찰조차도 이스라엘 군인처럼 민간인을 겨냥해 탱크나 전투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2권 70쪽)

그 근저에는 시오니즘이 깔려있다. 시오니즘이란 '박해와 학대를 받고 있는 유대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온(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뜻은 참 좋다. 그러나 종교적 광기로 발전해버린 시오니즘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야만적인 약탈과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도구일 뿐이다. 수단이 목적을 뭉개버리는 아주 좋은 예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정복 전쟁을 '독립전쟁'이라고 불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고향에서 추방된 통한의 그날이 이스라엘에겐 자랑스러운 '독립기념일'이 되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나라를 빼앗긴 대재앙(나바크)의 날이 된 것이다.(1권 133쪽)

하소연할 곳이 없다, 있어도 없다

참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들은 어디가고, 우리의 머리에는 왜 정반대의 사실이 각인되어 있단 말인가? 여기에는 복잡한 정치관계가 얽혀있다. 우선 미국이 이스라엘의 든든한 후원자라는 사실이 작용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국익이란 관점에서 서로 떨어지기 힘들 만큼 확연한 접점을 형성하고 있다. 거기다가 미국의 유대인들에게 밉보인 정치인은 사실상 정치 무대에서 살아남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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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팔레스타인 2> 143쪽에 그려진 '아랍과 이스라엘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뇌구조.
ⓒ 원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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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슬람 국가들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 생각보다 강한 군사력을 소유한 이슬람 국가가 없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언젠가부터 이슬람 국가와 테러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서구 국가들에 비해 군사력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중앙정부의 힘이 강하지 못하다. 이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꾀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이슬람 국가들은 입으로만 이스라엘을 규탄할 수 있을 뿐, 행동으로 옮기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렇게 방치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하마스였다. 우리에게 과격무장단체로 알려진 하마스는 사실 구호활동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지지를 이끌어낸 세력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하마스가 만든 교과서로 공부하며, 하마스가 세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하마스 최후의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하마스의 창설자인 야신은 이렇게 답했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 최고, 최후 목표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교인 모두가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2권 58쪽)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테러리스트라 일컫는 하마스의 지도자들의 직업이 교사(야신), 의사(란티시)인 반면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테러 단체 출신의 전쟁 영웅들이라는 점이다. 6일 전쟁을 이끈 모셰 다얀, 오슬로 협정의 주역인 이츠하크 라빈, 악명 높은 샤론 총리까지 모두 군인이면서 과거 유대인 테러 단체 '하가나' 출신이었다. 과거를 잣대로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가 알던 사실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린아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을 무차별 살상하는 국가가 있단 사실을,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고 안보(라고 쓰고 국익이라 읽는다)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화하는 국가가 있단 사실을, 민주주의를 지독히 위한다면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조세권을 박탈한 국가가 있단 사실을 말이다.

백기를 들고 걸어가는 여자를 쏘고, 응급 환자를 실은 구급차를 사격했으며, 야광 테이프를 붙인 의사를 조준 사격했다. 또한 구호품을 실은 배를 쫓아내고 구호품 창고를 불태웠다. 땅도, 하늘도, 바다도 막힌 채 고립된 가자는 그렇게 학살당했다. 그런 학살 행위를 국민의 94퍼센트가 지지하고 있는 국가가 있단 사실을, 국제적으로 사용을 금하고 있는 백린탄과 집속탄을 사용하는 국가가 있단 사실도 말이다.

백린탄과 집속탄
백린탄 : 일명 '살을 태우는 최악의 무기'로 알려져 있다. 인으로 만든 발화용 폭탄으로 백린탄은 공기가 있든 없든, 땅속이든 물속이든 파편 조각이 박히기만 하면 계속해서 타들어 간다. 공중에서 폭파된 폭탄은 무수히 많은 조각의 파편이 되어 떨어지면서 주변 생물체에 박혀 살을 파고 들어가 태운다.

집속탄 : 한 개의 어미 폭탄이 폭발하면 함께 탑재된 수많은 작은 폭탄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무기다. 살상 반경이 넓고 대상도 무차별적이다. 이스라엘이 사용한 집속탄은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하는데, 총 400만 발의 집속탄을 레바논에 투하했다.
- <아! 팔레스타인> 본문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반대편에는 이 모든 것을 받아내고 있는 슬픈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이 당했던 박해의 세월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동정한다. 슬픈 역사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당했던 홀로코스트를 똑같이 다른 민족에게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종교, 이념, 인종, 국경, 지역 모두 상관이 없는 문제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이라면 허울 좋은 껍데기를 초월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것이 있기 마련이다. 팔레스타인, 그 곳에도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신음하는 인간이 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있다.

저자는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다소 팔레스타인의 시각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과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찾아보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료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온통 이스라엘에 관한 자료뿐이다. 그간 팔레스타인의 눈물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제대로 된 책 하나 있었단 말인가. 이 책은 우리가 알아야 할 팔레스타인의 진실에 관한 '최소한'이다.

덧붙이는 글 | <아! 팔레스타인 1> 원혜진 지음, 여우고개 펴냄, 2013년 1월, 1만3000원
<아! 팔레스타인 2> 원혜진 지음, 여우고개 펴냄, 2013년 6월,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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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팔레스타인 32] 에필로그 | - 중동 2013-06-1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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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아!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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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팔레스타인의 고대사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성지의 대명사인 예루살렘은 어쩌다 분쟁과 냉전의 상징이 되었는가? 팔레스타인인의 몸속에는 테러리스트의 피가 흐르는가? 세계를 유랑하던 민족 이스라엘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땅에 국가를 세우게 됐는가? 미국인은 왜 유대인을 지지하는가?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통사'를 통해 이 모든 의문에 답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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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그동안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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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팔레스타인 31] 팔레스타인 땅에 평화는 오는가 | - 중동 2013-06-05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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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팔레스타인의 고대사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성지의 대명사인 예루살렘은 어쩌다 분쟁과 냉전의 상징이 되었는가? 팔레스타인인의 몸속에는 테러리스트의 피가 흐르는가? 세계를 유랑하던 민족 이스라엘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땅에 국가를 세우게 됐는가? 미국인은 왜 유대인을 지지하는가?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통사'를 통해 이 모든 의문에 답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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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음주 수요일에 '아! 팔레스타인' 마지막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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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팔레스타인 30] 팔레스타인에서 산다는 것, 두 번째 | - 중동 2013-05-2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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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아! 팔레스타인

역사에서 팔레스타인의 고대사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성지의 대명사인 예루살렘은 어쩌다 분쟁과 냉전의 상징이 되었는가? 팔레스타인인의 몸속에는 테러리스트의 피가 흐르는가? 세계를 유랑하던 민족 이스라엘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땅에 국가를 세우게 됐는가? 미국인은 왜 유대인을 지지하는가?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통사'를 통해 이 모든 의문에 답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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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아! 팔레스타인'은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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