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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30 개설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스크랩] 햄릿의 준비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2-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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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은 "준비되어 있는 것, 그게 전부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이론이든 실천이든, 행동하는 것이든 행동하지 않는 것이든, 내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면, 그 방향성 속에서 이 모든 대극들은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다. 


아주 사적인 신화 읽기

김서영 저
현암사 | 2018년 11월

 3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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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셰익스피어 ‘햄릿’ 주석서 펴낸 84살 언어학자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1-29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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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사랑방

전상범 교수 올 초부터 7개월 집필
영어 원문에 300쪽 넘는 주석 달아
퇴임 뒤 ‘라틴어 입문’ 등 13권 출간

 

 

<주석과 함께 읽는 햄릿>(한국문화사 펴냄), 올해 84살인 전상범 서울대 명예교수(사진)가 최근 펴낸 책이다.

 

“셰익스피어(1564~1616) 4대 비극(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에 자세한 주석을 달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했어요. 먼저 <햄릿> 편을 내기로 하고 지난 1월 1일부터 매일 오전 3시간씩 하루도 쉬지 않고 7개월 동안 썼죠. 눈이 좋지 않아 3시간 이상은 할 수 없었어요. 그 이상 하면 글자가 겹쳐 보이거든요.” 지난 25일 전자우편으로 만난 저자의 말이다.


<햄릿> 영어 원문을 먼저 싣고 그 뒤에 300쪽 이상의 한국어 주석을 달았다. 한국어 번역문은 따로 없다. <햄릿>을 원문으로 공부하는 영문과 학생이나 한국어 번역본을 읽으면서 원문의 맛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주석은 원작의 뜻을 파악하는 데 보탬이 되는 단어나 문구 풀이에 초점을 뒀다. 이 책은 영어학 전공자인 전 교수의 정년 퇴임 뒤 13번째 저술이다. 10년 전에는 퇴임 뒤 독학한 라틴어 학습서(<라틴어 입문>)를 손녀와 함께 내기도 했다.


왜 첫 주석서가 <햄릿>이었을까? “셰익스피어 희곡 36편 중 하나를 고른다면 당연히 <햄릿>이죠. 셰익스피어가 한창 물이 올랐을 때 작품이고, 따라서 완성도가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이야깃거리도 가장 많이 제공해주죠.” 그는 <햄릿>의 교훈을 이렇게 말했다. “셰익스피어는 모든 비극은 성격에서 나온다고 해요. 비평가들이 셰익스피어의 철학을 말하면서 ‘성격이 두 번째 운명이다(Character is the second destiny)’고 규정하는 이유이죠.


<맥베스>는 권력욕, <오셀로>는 의심(정확히는 의처증), <리어왕>은 사람을 볼 줄 모르는 무지의 비극이죠. <햄릿>은 보통 ‘지성의 비극’이라고 하죠. 행동과 사고 사이에는 여러 패턴이 있는데 햄릿은 생각하고 나서도 행동하지 않아요. 흔히 지성인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왕인 삼촌이 참회의 기도를 하는 중에 죽이면 삼촌이 천당에 갈 것이라는 생각에 복수를 미루다 애인은 미치고 자신도 죽는 비극을 맞이하죠.”


그는 <고대영어>나 <중세영어>와 같은 책을 쓴 영어사 전공자다. “셰익스피어는 중세에서 현대 영어로 넘어오는 시대의 작가입니다. 그가 활동한 시대는 영어 철자법 통일이 되기 한참 전이었고 영어 문법도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어요. 셰익스피어는 과도기 언어가 갖는 유연성을 최대한 이용한 언어의 마술사입니다.” 덧붙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언어학자인 이치카와 산키는 영어학 전공학자이면서 셰익스피어의 거의 전 작품에 주석을 달았어요. 저도 주석 작업을 계속하고 싶지만 지금의 건강 상태로는 희망 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커요. 책 원고를 늘 웃는 낯으로 받아주는 출판사 사장님에게 미안해서 더는 책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아요.”

 

전 교수는 오전에 집필하고 오후엔 쉬운 소설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잠을 자는 데 쓴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펄 벅의 <대지>를 보면 주인공인 왕룽이 나이가 들면서 잠을 많이 자는 대목이 나옵니다. 앞으로 맞이할 오랜 잠의 예행연습이 아닐는지요.”

 

셰익스피어는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언어유희(pun)에 능했다. 전 교수는 한국어 번역이나 영화로는 이런 재미를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면서 <햄릿>의 대표적인 펀을 소개했다.


(a) of the chameleon’s dish. I eat the air, promise-cramm’d.

표면적인 뜻: “카멜레온의 모이를 먹습니다. 약속으로 가득찬 공기말입니다”

 

또 다른 뜻: “실속 없는 상속자(heir=air)라는 말만 듣고 삽니다.”

 


(b) I am too much in the sun.

표면적인 뜻: “햇볕은 충분히 쏘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뜻: “그놈의 아들(son=sun)이란 말에 신물이 납니다.”


(c) Let her not walk i’ the sun.

Conception is a blessing, but not as your daughter may conceive.

“햇볕을 쬐게 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대한 상식(conception)이 느는 것은 다행이지만 잘못해서 따님이 임신(conceive)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이 문장 역시 sun을 son과 등치해 ‘따님의 임신’과 연결했음.)

 

*출처 : 셰익스피어 ‘햄릿’ 주석서 펴낸 84살 언어학자

 

주석과 함께 읽는 햄릿

전상범 저
한국문화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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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知音), 백아절현(伯牙絶絃)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1-07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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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아와 종자기의 고사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출전은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이름난 거문고 연주가인 백아와 종자기는 가까운 벗이었다.

종자기는 늘 백아가 연주하는 곡을 듣고 백아의 마음 속을 알아채곤 했다.

백아가 산을 오르는 생각을 하면서 연주하면 종자기는 태산과 같은 연주라 말하고,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연주하면 흐르는 강의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하였다.

이에 백아는 진정으로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知音) 사람은 종자기밖에 없다고 하였고, 이로부터 지음(知音) 이라는 말은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둘 도 없는 친구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자신을 알아주던 종자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자신의 연주를 더 이상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며 거문고의 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고사성어로 백아절현(伯牙絶絃)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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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몬과 피디아스 Damon and Pythias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1-07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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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몬과 피디아스  Damon and Pythias

 

신뢰는 다 용서를 받을 수 있다.

 

A young man whose name was Pythias had done something which the tyrant Dionysius did not like. For this offense he was dragged to prison, and a day was set when he should be put to death.

 

His home was far away, and he wanted very much to see his father and mother and friends before he died.

 

피디아스라는 젊은이가 폭군 디오니시우스가 싫어하는 어떤 일을 저질렀다. 그 죄로 그는 감옥에 끌려갔고 처형될 날자가 정해져 있었다.

그의 집은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와 친구들을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

 

“Only give me leave to go home and say good-bye to those whom I love,” he said, “and then I will come back and give my life.”

The tyrant laughed at him.

“How can I know that you will keep your promise?” he said. “You only want to cheat me, and save yourself.”

Then a young man whose name was Damon spoke and said.

 

집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라도 할 수 있게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그런 뒤에는 돌아와서 목숨을 내놓겠습니다.” 라고 그는 말했다.

폭군은 비웃었다.

네가 약속을 지킬지를 내가 어찌 아느냐?”하고 그는 말했다. “너는 나를 속여서 목숨을 구하려는 것뿐이야.”

그 때 다몬이라고 하는 청년이 말했다.

 

“O king! put me in prison in place of my friend Pythias, and let him go to his own country to put his affairs in order, and to bid his friends farewell. I know that he will come back as he promised, for he is a man who has never broken his word. But if he is not here on the day which you have set, then I will die in his stead.”

 

, 왕이시여! 제 친구 피아디스 대신 저를 감옥에 가두시어,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하고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저는 피아디스가 약속한 대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왕께서 정해주신 날짜에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제가 그를 대신해서 죽겠습니다.”

 

The tyrant was surprised that anybody should make such an offer. He at last agreed to let Pythias go, and gave orders that the young man Damon should be shut up in prison.

폭군은 이런 제의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는 결국 피디아스가 집에 가는 것을 허락하고 다몬이라는 청년을 옥에 가두도록 명령했다.`

 

Time passed, and by and by the day drew near which had been set for Pythias to die, and he had not come back. The tyrant ordered the jailer to keep close watch upon Damond, and not let him escape. But Damon did not try to escape. He still has faith in the truth and honor of his friend. He said, “If pythias does not come back in time, it will not be his fault. It will be because he is hindered against his will.”

 

시간이 지나고, 점차로 피디아스가 죽기로 되어 있는 날짜가 가까워졌는데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폭군은 간수에게 다몬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다몬은 탈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친구의 명예와 신의를 믿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만약 디아피스가 제 시간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의지에 반하는 어떤 방해물 때문일 것이다.”

 

At the last day came, and then the very hour, Damon was ready to die. His trust in his friend was as firm as ever. and he said that he did not grieve at having to suffer for one whom he loved so much.

 

마침내 그 날이 왔고 그 시간도 왔다. 다몬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친구에 대한 그의 신뢰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확고했다. 그는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통 받는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Then the jailer came to lead him to his death, but at the same moment Pythias stood in the door. He had been delayed by storms and shipwreck and he had feared that he was too late. He greeted Damon kindly, and then gave himself into the hands of the jailer. He was happy because he thought that he had come in time, even though it was at last moment.

 

그러자 간수가 와서 그를 사형장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피아디스가 문에 와 섰다. 그는 폭풍과 조난사고로 인해 늦어진 것이었다. 그는 너무 늦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그는 친근하게 다몬에게 인사를 하고 간수에게 자기 몸을 넘겼다. 그는 비록 마지막 순간이었지만 제 시간에 왔다고 생각을 하니 기뻤다.

 

The tyrant was not so bad but that he could see good in others. He felt that men who loved and trusted each other, as did Damon and Pythias, ought not to suffer unjustly. And so he set them both free.

"I would give all my wealth to have one such friend," he said.

 

폭군은 다른 사람의 미덕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악인은 아니었다. 그는 다몬과 피디아스처럼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은 부당하게 고통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두 사람을 모두 풀어주었다.

내가 이와 같은 친구를 가질 수만 있다면 내 전 재산을 내놓겠다.”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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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우스 1세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0-27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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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우스(Claudius)는

 

로마 제국의 제4대 황제(기원전 10년 8월 1일 - 54년 10월 13일)이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손자이며,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의 손자이기도 하며, 티베리우스의 조카이기도 하다.

전임 칼리굴라 황제의 친삼촌이기도 하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에 속한다.

 

즉위 이전[편집]

로마의 장군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와 소(小)안토니아 사이에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드루수스나 형 게르마니쿠스와는 달리 그는 원래부터 병약하고, 말을 더듬고 한쪽 발을 질질 끄는 버릇 때문에 황실 안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형인 게르마니쿠스가 그를 배려해 주었고, 클라우디우스의 역사에 대한 재능과 흥미를 찾아낸 역사가 리비우스의 영향으로 에트루리아카르타고의 역사를 저술하여 역사가로서의 측면을 갖게 되었다.

 

즉위[편집]

칼리굴라가 황제로 즉위한 후, 원로원에 의해 칼리굴라와 함께 집정관으로 취임하는 명예를 안게 되었다.

41년 1월 24일 칼리굴라가 암살되자 1월 25일 황제가 되었다. 즉위에 임하기 전에 로마 원로원의 승인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근위군단의 군사력에 의해 즉위한 것인지라, 이후 군사력이 로마 황제를 결정하는 군인황제 시대의 최초의 예가 되었다.

 

교양을 갖춘 역사가였던 그는 지혜로운 정책으로 로마에 대한 저항이 극렬했던 유대의 통치 문제 등을 해결하였지만, 시민들로부터의 인기는 낮았다.

 

클라우디우스는 갈리아인이나 아니우니족 출신의 해방 노예 등을 등용하여 다양한 행정 분야를 감독할 권한을 부여했다. 이것은 비(非)원로원 의원의 정치 참여를 증대하여, 황제에게의 권력 집중이나 관료제의 발달로 이어졌다.

45년이탈리아유대인들을 강제추방하는 반유대주의정책을 실시하여 약 2만 5천 명의 유대인들이 그리스코린토스로 이주하였다. [1]

 

54년 독버섯에 중독되어 사망했다고 하지만, 4번째 아내이자 다음 황제인 네로의 어머니인 소(小) 아그리피나에게 암살되었다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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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우스 1세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0-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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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우스 1세 [Claudius I]

 

로마의 황제(재위 41∼54). 일종의 궁정관료제도를 설치하였고, 재정을 다시 일으켰으며, 남잉글랜드를 평정하였다. 또 시민권을 확대하고 식민시()를 건설하였다.

 

출생-사망BC 10.8.1 ~ AD 54.10.13
국적/왕조고대 로마
재위기간41년 ~ 54년
본명Tiberius Claudius Nero Germanicus
활동분야정치

 

본명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게르마니쿠스(Tiberius Claudius Nero Germanicus)이며 기원전 10년 8월 루그두놈에서 출생하였다.

루그두놈은 갈리아 땅인데 오늘날의 프랑스 리옹에 해당한다.

 

아버지인 드루수스가 라인강 방위군 총사령관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루그두눔에서 살았으며 어머니인 안토니아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누나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그리고 클라우디우스는 칼리굴라의 아버지인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의 동생이며 티베리우스 황제의 조카가 된다.


아우구스투스티베리우스 두 황제가 통치하에서는 육체적 장애 때문에 공적 생활은 하지 않았으나, 그보다 율리우스 씨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린 칼리굴라에게 황제 제위가 넘어가게 되고 클라우디우스는 역사와 저술에 묻혀지냈다.

 

그는 그동안에 《에트루리아의 역사》, 《카르타고의 역사》를 저술했다.

41년에 칼리굴라가 살해되자 근위병에게 옹립되어 뜻하지 않게 황제 제위에 올랐다. 황제가 된 이후 메살리나라는 여인과 결혼하였지만 왕후의 성품이 문란하여 성적인 쾌락을 즐겼던 여자로 기록된다.

내정면에서는 일종의 궁정관료제도를 설치하였고, 칼리굴라의 실정으로 바닥난 제국의 재정상태를 긴축재정으로 다시 확충했으며, 칼리굴라가 축소한 세금을 부활하여 국가 재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였다. 또한 대중의 인기를 얻기위해 추진했던 선심성 축제와 행사를 축소하여 국가의 재정 낭비를 막았다.

 

 정치적으로는 칼리굴라가 저질렀던 실정을 아우구스투스티베리우스 황제가 통치했던 제도로 회복했다. 그로인해 전제정치에 불신을 가지고 있던 원로원 공화파의 의혹을 불식시켰다.

대외적으로는 아프리카의 마우리타니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여 다시 속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예루살렘알렉산드리아에서 촉발된 유대인 문제도 유일신을 믿는 그들의 특성을 인정하여 유대민족의 반란을 처리하였다.

43년 로마 4개 군단을 이끌고 직접 도버해협을 건너 브리타이아(남부 잉글랜드)를 공격하여 정복하였다. 나아가 로마시민권을 확대하고 식민시()를 건설하였다.

 

칼리굴라가 시작한 로마 수도교 공사를 마무리하였고 특히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로마 서쪽 테레니아 해()에 면하고 테베레 강()과 연결되는 오스티아 항구를 건설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성격에 일에만 묻혀지낸 황제는 로마 시민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별로 없었다.

클라우디우스가 로마를 비운사이 황후 메살리나의 방종은 극에 달했으며 마침내 간통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황제의 측근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후 클라우디우스는 소()아그리피나라는 여성을 비서진에게 추천받아 결혼하였다. 하지만 아그리피나는 정치적 야망이 있었던 여성이었으며 자신이 데려온 아들 도미티우스를 황제로 옹립하여 자신이 직접 로마제국을 통치하고자 야망을 품었다. 그리고 해방노예 출신의 비서진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국정의 폐해가 컸다. 황후 아그리피나는 도미티우스를 클라우디우스 양자로 입적시키고 이름을 네로로 바꾸었다. 황후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아들에게 황제 제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마침내 비서관이 자리를 비우자 클라우디우스에게 독버섯을 먹여 독살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클라우디우스 1세 [Claudius I]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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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이쇼 - 호레이쇼 케인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0-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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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속 인물]`CSI`의 카리스마 데이비드 카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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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미국 인기 외화 CSI 시리즈 중 최고의 카리스마 반장을 꼽으라면 마이애미편의 호레이쇼 케인(별명:호반장 본명:데이비드 카루소)일 것이다. 깔끔한 슈트에 짙은 선글라스, 허리에 손을 올린 당당한 포즈를 보면 `호간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 하다.

방화 폭발 사건 전문인 그는 철저한 현장 검증 못지 않게 직관을 중시한다. 또한 이렇게 체포한 용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도 사과 한 번 하는 법이 없다. 눈을 지그시 치켜뜨며 “너 아냐? 아님 말고!”라는 식으로 뒤돌아 설 뿐이다. 용의자 또한 반장의 눈빛에 제대로 된 변명조차 못한다.

호레이쇼의 무표정하고 시니컬한 표정은 아마 그의 개인사와 관련이 깊은 듯 보인다.

어머니는 호레이쇼가 청소년 시절 마약상에게 살해당했고(이 사건은 그가 경찰에 입문한 계기가 됐다) 그의 사랑 역시 평탄치 않았다. 한 번의 이혼을 경험했고, 죽은 동생의 부인 옐리나를 잊지 못해 주변을 맴돈다. 동료요원 에릭의 누나였던 마리솔 델코는 호레이쇼와 결혼식 도중 총에 맞은 뒤 얼마 후 사망하고 만다.

경찰이 직업인데다 개인사마저 이러니 호 반장에게 웃음을 기대하긴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호 반장의 인간적인 모습을 찾는 네티즌들마저 등장했을까.

호레이쇼역을 연기하는 배우는 데이비드 카루소.

1994년 TV시리즈 ‘NYPD Blue`로 인기를 끌었던 그는 스크린으로 진출해 ’이중노출‘ ’제이드‘ ’프루프 오브 라이프‘ 등에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마이애미로 돌아와 카리스마 넘치는 호레이쇼 반장역을 제대로 보여주며 CSI의 본편인 라스베가스의 길 그리썸 반장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데이비드 카루소의 인기가 높다보니 그의 과거 필모를 찾는 팬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그가 출연했던 영화 `람보’(1982)가 팬들에게 회자된 바 있다.

카루소는 극중 어리버리한 경찰로 출연해 람보에 두들겨 맞거나 경찰 상관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금의 호 반장은 온데간데 없다. 팬들은 그 장면을 ‘호 반장의 굴욕’으로 불렀다. 아마 호 반장의 그런 모습은 당분간 보기 힘들 듯 하다.


CSI 마이애미 시즌5는 올 상반기에 OCN에서 상영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CSI마이애미팀, OCN 제공)[진정근 기자 / gagoram@yahoo.co.kr]

'가이드 & 리뷰' 방송전문 인터넷 미디어 'TV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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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0-2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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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806805&code=61181511&cp=nv

 

케인은 전형적인 런던 하층민 출신으로 데이비드 니븐이나 로렌스 올리비에처럼 영국 하면 생각나는 ‘귀족’형 배우들과는 동떨어진, ‘서민’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이른바 ‘코크니’ 배우였다. 실제로 그는 셰익스피어극 등 고전 연극을 통해 잔뼈가 굵은 대다수 유명 영국 배우들과는 달리 제대로 연기를 배운 적도, 고전 연극에 출연한 적도 거의 없었다. 1964년에 BBC가 제작한 크리스토퍼 플러머 주연의 ‘햄릿’에서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역을 맡은 게 고전극에 출연한 거의 전부였다. 바로 그런 그의 비귀족적, 서민적 이미지와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현실적인 스파이 해리 파머가 잘 어울렸던 것.

그렇다고 렌 데이턴의 소설이 원작인 해리 파머가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나 ‘팅커 테일러 솔저 앤드 스파이’같은 걸작을 쓴 스파이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의 작품에 나오는 것 같은 ‘진짜 스파이’형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본드 영화의 대표적인 악역 블로펠드와는 약간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황당한 악당을 상대하는 본드식 첩보원이다. 다만 그의 환경이라든지 캐릭터가 본드와 달리 대단히 현실적이라는 게 차이점이었을 뿐. 어쨌든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게 마이클 케인이었다. 그렇다면 본드와 파머가 같이 영화에 나온다면 어땠을까? 실제로 숀 코너리와 마이클 케인이 공연한 영화가 한편 있다. ‘왕이 될 뻔한 사나이(The Man Who Would Be King, 1975). 존 휴스턴이 감독한 19세기 배경의 모험 액션영화다.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했다.



본명이 ‘모리스 조지프 미클화이트’인 케인은 배우로 입문했을 때 ‘마이클 스코트’란 예명을 썼다.

그러다 다시 이름을 바꿨는데 그 사연이 재미있다. 1954년의 어느 날 런던의 오데온 극장에 갔는데 마침 극장에 붙은 프로가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한 ‘케인호의 반란(Caine Mutiny)'이었다. 보가트는 당시 케인의 우상이었다. 그의 머리 속에 영감이 번득였다. ‘그래, 케인으로 이름을 바꾸자’. 나중에 그는 이렇게 농담을 했다. “하마터면 내 이름이 마이클 반란(Mutiny)이 될 뻔 했죠.”

그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52년 보병으로 입대한 그는 한국에 파병됐다. 출신이 프롤레타리아였던 만큼 한국에 갈 때는 공산주의에 호의적이었지만 귀국할 때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전장에서 죽을 뻔한 고비를 겪었고 이후 그 경험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아울러 그는 청소년 일탈과 관련해 그것을 막으려면 청소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군대에 들어가 나라에 소속감을 느끼고 어떻게 나라를 지켜야 하는지 배우다 보면 청소년 폭력 같은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806805&code=61181511&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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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이쇼 - 호레이쇼 케인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0-2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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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급 감식 수사관 (반장)
-키: 182 cm, 몸무게: 81 kg
-출생지: 플로리다, 마이애미
-생년월일: 1960년 4월 7일
-학력: 플로리다 주립대학 화학과 졸업
-특기: 방화, 폭발
-결혼여부: 이혼


호레이쇼 케인은 마이애미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그를 키우면서도 항상 힘은 주먹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온다고 가르치던 분이셨다.

      
17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마약 밀매상에게 총살되자, 그는 경찰을 도와 어머니를 살해한 범인을 잡느라 동분서주했다. 마침내 살해범을 잡고, 종신형이 내려지자, 그는 마이애미 시를 안전하게 지키는 경찰이 되기로 작정하고 폴리스 아카데미에 들어간다.


폴리스 아카데미 시절, 증거를 수집하여 사건 해결에 실질적이고,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과학수사대에 매료된 그는 플로리다 주립대학을 거쳐 마이애미-데이드 경찰서에 1급 감식수사관으로 들어간다. 고속승진을 거듭하던 그는 꽉 막히고 답답한 관료체제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자리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 때, 폭발팀의 ‘알 험프리즈’를 만나고 그에게 훈련을 받으면서 그를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하게 된다. 그 무렵, 메건이 일신상의 이유로 반장자리를 내놓자 경찰청장은 그 자리를 호레이쇼에게 제의하고, 폭발팀의 일원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처음 그가 경찰에 몸담게 된 이유가 과학으로 악당을 잡고자한 것이었음을 떠올린 그는 반장자리를 수락한다.

3차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그는 퍼즐을 맞추듯 사태를 파악하는데 능하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과학이 사건을 해결한다고 믿지만, 범죄 수사에는 DNA나 혈흔 등 과학적 증거뿐만이 아니라 두둑한 배짱 또한 필요하다고 믿는 그는 종종 직감에 따른 사건 추리에 의존하고, 인간적인 측면에 흔들리기도 한다. 때문에 무엇보다 객관성과 증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메건과 종종 부딪친다. 그러나 한 번 맡은 사건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 있는 과학수사대의 일원이다.

      

데이빗 카루소 (출연배우)


데이빗 카루소는 <NYPD 블루>라는 드라마에서 형사 '존 켈리' 역으로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하고, 에미 상 후보에 오르는 등 많은 찬사와 주목을 받았다.
이후 CBS의 드라마 시리즈인 <마이클 헤이즈>를 기획, 주연을 맡기도 했다.

출연한 영화로는 <프루프 오브 라이프 (Proof of Life)>, <세션 9(Session 9)>, <사관과 신사> <차이나 걸>, <킹 뉴욕( The King of New York)>, <형사 매드독 (Mad Dog and Glory)>, <이중노출 (Kiss of Death)>, < 제이드 (Jade)>, <바디 카운트 (Body Count)>, <콜드 하트 (Cold around the Heart)> 등이 있다.

뉴욕 퀸즈에서 나고 자랐으며 현재 LA와 마이애미를 오가며 살고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딸 한 명이 있고, 생일은 1월 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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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호레이쇼 - 호레이쇼 넬슨 | - 햄릿을 위한 에필로그 2018-10-27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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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scount Nelson
HoratioNelson1.jpg
Vice Admiral Horatio Lord Nelson, by Lemuel Francis Abbott
Born29 September 1758
Burnham Thorpe, Norfolk, England
Died21 October 1805(1805-10-21) (aged 47)
Battle of Trafalgar, Cape Trafalgar, Spain
AllegianceGreat Britain
United Kingdom
British Empire
Service/branchRoyal Navy
Years of service1771–1805
RankVice-Admiral of the White
Commands heldMediterranean Fleet
Battles/wars

American War of Independence

War of the First Coalition

War of the Second Coalition

War of the Third Coalition

AwardsKnight of the Order of the Bath
Several others (see below)
Spouse(s)Frances Nisbet
SignatureHoratio Nelson Signature.svg

 

 

1758년 11명의 남매 중 6번째로 태어난 넬슨은 1770년 12세에 해군에 입대했다. 외삼촌이 함장으로 있는 HMS 레조너블(Raisonnable)의 조타수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관후보생이 되었다.

1780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고 그 뒤에는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프랑스 혁명정부의 함대와 싸우는데 앞장 섰다.

1794년 나폴레옹의 고향인 코르시카 섬을 점령했으나, 이때 오른쪽 눈을 잃었고, 1797년에는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승리하지만 오른팔을 잃는다. 그러나 여기에 굴하지 않고 복무를 계속하여 이집트 나일강 입구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 나일 강의 남작이라 불리는 대활약을 한다.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스페인-프랑스 함대를 무찔렀으나 전투 도중 프랑스 르두터블 호의 돛대 마스트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고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전투가 끝나기 직전 사망했다.

 

 허파를 관통하고 척추에 박힌 총탄 때문에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죽어갈때 군의관에게 자신의 치료 대신 부상병에게 집중하라는 명령을 남겼다고 한다.200년 전 동양성웅으로 불리는 제독의 모 해전과 구도가 비슷하다

관련 기록화에서는 갑판에 쓰러진 넬슨 주위에 대부분의 장교들이 모여서 임종을 지키는 모습을 묘사한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넬슨은 부상을 입은 직후 곧바로 하갑판 선실로 이송했다. 그리고 르두터블과의 교전이 워낙 치열해서 사상자가 속출한터라 도저히 장교들이 임종을 지킬 여유도 없었다.

유언으로 '신께 감사드린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다'(Thank God, I have done my duty)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했다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유언.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내 말 잘 받아 적었는가? 내가 뭐라고 했는가?'(...), '내 할머니가 자네보단 키스를 잘하겠네' 둘 중 하나라고 한다.

실제로 저 공식적인 유언을 남긴 이후 넬슨 제독은 몇번이나 자신의 말을 받아 적었는지 확인했고 심지어는 혼수상태에 빠졌다가도 깨어나서는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 '운운한 건, 죽기 직전 부관인 하디(Thomas Hardy)에게 키스해 달라고(작별인사를 뜻함) 한 다음 하디가 키스하자 남긴 말이라고.

그의 시체는 부패를 막기 위해 럼주에 담겨 7일 만에 영국에 도착했는데, 이때 당시 럼주가 그의 피에 의해 붉게 물든 일화에서 따와 붉은색 럼주를 '블러디 럼'이라 부르게 된다.

 

참고로, 그 때 당시 그 럼주는 애도의 의미로 사람들이 나눠마셨다든지, 선원들이 몰래 럼을 빼 마시느라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통 안에 럼주는 남아있지 않았고 시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호사가들이 지어낸 말이다. 넬슨의 시체가 급행으로 런던까지 이동할 때 부패를 막으려 럼주에 담겨 보내진 건 맞다. 그러나 럼주만 넣은 게 아닌 장뇌와 좀약을 잔뜩 넣고, 거기에 관이 놓인 메인마스트 밑에서 보초가 계속 지키고 있었다.

영국 해군의 전통적인 관례 중 하나는 복무 중 사망한 사람의 시체는 본국으로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장사를 지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한때 영국에게 점령당했던 거문도에 영국 해병의 묘가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전사자는 바로 그 자리에서 수장하는 것이 원래 관례였지만 넬슨의 경우 유언 때문에 수장하지 않고 본국으로 시체를 옮겨 장사를 지냈다. 이는 영국 해군에서 거의 유일한 예외에 해당한다. 그의 유해가 안장된 곳은 세인트 폴 대성당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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