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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하는 마음 - 김혜리 영화 산문집 | 서평 2022-11-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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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묘사하는 마음

김혜리 저
마음산책 | 2022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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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하는 마음>은 김혜리 기자가 '씨네21'의 개봉작 칼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에 2017~2020년 연재했던 글과 그 전에 쓴 '틸다 스윈튼' 배우론 외 몇 편의 에세이를 더해 엮은 책이다. 특히 이 책은 두터운 팬층을 보여한 김혜리 기자가 5년 만에 출간한 산문집으로 눈길을 끈다.

 

<묘사하는 마음>은 여전히 영화라는 대상을 주어로 놓고 그 그림자를 좇는 김혜리 기자의 겸손한 태도가 빛난다. 볼거리에 대한 단정적 평가가 범람하는 시대에 취향을 전시하기보다 영화라는 창작물이 스스로에게, 또 자신의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무엇일까를 찬찬히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세는 그에게 영화의 '묘사'를 추동하는 힘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영화의 '이목구비'를 살펴 사람들에게 그 초상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전망 좋은 언덕'처럼 해석에 이르게 된다고 고백한다.

 

<묘사하는 마음>은 1부의 배우론 '부치지 못한 헌사'로 시작해 영화의 주제로 가름한 부(2부 각성하는 영화, 3부 욕망하는 영화, 4부 근심하는 영화), 나아가 형식에 천착한 부(5부 액션과 운동, 6부 시간의 조형)를 거쳐 2010년대 이후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지형을 다룬 '팽창하는 유니버스'로 막을 내린다. 영화의 나라를 경유하는 총 53편의 글들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긴밀하게 배치되어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사유가 다음 영화를 사유하게 하며 촘촘한 고리를 이룬다. 밀도 높은 글 사이사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비유와 은근한 유머는 독자를 책의 마침표로 이끄는 쉼표다.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사진 찍기 원하고 귀에 감기는 노래를 들으면 따라 부르려 한다. 영화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그 초상을 그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허락된 재료로 방금 본 영화와 비슷한 구조물을 짓고 싶었다. 가능하면 상징이나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고 스크린 안에 있는 것들만 물증으로 쓰려고 했다. 그러나 영화는 1초에 24번 소멸했다 생성되고, 스크린과 우리의 뇌리에서 동시에 이중 상영되는 총체이니, 묘사를 위해서는 개별 영화가 내용과 형식에서 도모하는 바와 긴밀히 연결된 '부분'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했다. 시사회에서 본 영화를 충분히 침전시켜 결론을 품고 쓰기 시작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해석은 묘사의 길을 걷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전망 좋은 언덕과 같았다. 묘사하는 마음이란, 그런 요행에 대한 기대와 '아님 말고. 이걸로도 족해' 하는 태평스러운 태도를 포함한다. 묘사는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지만 제법 낙천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김혜리 기자는 성장영화로서 자신에게 <레이디 버드>의 비범함은 두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는 주인공의 비중을 위협할 만큼 레이디 버드를 둘러싼 모든 인물을 사려 깊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둘째, <레이디 버드>는 실망을 끌어안는다. 뿐만 아니라 김혜리 기자가 <레이디 버드>의 마지막 장은 뉴욕으로의 탈출이 아니라 뉴욕에서 느끼는 실망이라고 이야기하는 글에 공감한다.

 

"크리스틴은 시시껄렁한 숙취에서 깨어난 다음 그토록 지겨워 했던 성당을 찾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삶은 본래 실망스럽지만 청산할 수 있는 부채가 아니다. 마침내 동부로 날아간 레이디 버드는 미움으로 말미암은 열렬한 관심이 사랑과 멀리 있지 않으며 그것이야말로 앞으로 자기가 살아갈 저력임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김혜리 기자는 테런스 데이비스 감독이 최초로 실존 인물인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다룬 <조용한 열정>에서 테런스 데이비스 감독과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두 예술가의 공통점은 가족과의 비상한 유대라고 말한다. 열 남매 중 일곱 명이 살아남은 가운에 예민한 막내였던 감독은 어린 시절 집에서 떨어진 기숙학교에 보내졌다가 심하게 앓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를 향한 미움으로 배가된 어머니를 향한 사랑, 형제자매와의 친밀한 유대가 소년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이 55세까지 평생을 보낸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의 집은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문을 닫아걸어버린 단호한 정신의 첨탑이고 요새였다. 뿐만 아니라 김혜리 기자는 <조용한 열정>은 먼저 죽은 다른 예술가의 혼에서 자신의 거울 이미지를 발견한 한 예술가가 쓴 위령의 시이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먼 목소리, 조용한 삶><긴 하루 지나고><리버풀의 추억> 등 자전적 작품을 제외한 테런스 데이비스 영화의 주인공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도 덧붙일 수 있다. 감독이 영화와 처음 사랑에 빠질 무렵 대중을 사로잡던 영화들은 <마음의 등불> 같은 여성 중심 멜로드라마들이었다. <환희의 집><더 딥 블루 씨> 같은 데이비스의 여성 영화 주인공들은 이상을 버리지 못해 현실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역설적으로 그럼으로써 주인 된 삶을 살거나 적어도 자기만의 죽음을 맞는다. 에밀리 디킨슨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에 대한 에밀리의 불안한 애착은 저녁 식사 후 한방에 모여앉아 각자의 일을 하는 가족을 돌아보는 느린 360도 패닝숏에 아름답게 함축돼 있다. 오빠는 독서하고 동생은 바느질을 하며 우울한 어머니는 촛불을 응시한다. 시간은 어김없이 연소되고 있다. 언젠가 방안의 이들은 늙고 하나씩 사라져갈 것이다. 카메라가 방 안을 한바퀴 돌아 다시 에밀리에게 도달한 그 순간 그의 얼굴은, 남은 생에는 상실만 남아 있음을 각성한 자의 공포와 슬픔을 드러낸다."

 

김혜리 기자는 <퍼스트 리폼드>를 연출한 폴 슈레이더 감독은 로베르 브레송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익리>, 잉마르 베리만의 <겨울 빝>에서 서사를 가져오고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오데트>에서 결말의 기적을 빌려 왔다고 말한다. 김혜리 기자는 폴 슈레이더 감독은 <퍼스트 리폼드>에서 모든 스타일적 요소들은 톨로가 결단을 내리고 격앙되면서 함께 고양되고, 주제화 형식, 인물의 삼휘일체를 꾀한 셈이라고 이야기한다.

 

"폴 슈레이더는 비평가로서 예찬했던 영화의 모티프들을 드러내놓고 '리폼'했다. 톨러 목사는 로베르 브레송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의 병든 신부처럼 술에 의존하며 일기로 스스로를 분석하고 무자비하게 반박하고 의혹을 표하고 다시 지운다. 그리고 지운 흔적을 지우지 않는다. 잉마르 베리만의 <겨울 빛>의 목사 토마스가 그랬듯 가족을 잃고 회의에 빠져 있으며 세속적 행복을 주겠다고 다가오는 여성을 가혹하게 밀어낸다. 토마스는 핵으로 인한 종말을 두려워하는 신도를 상담하고 톨러는 환경파괴에 절망한 교구민을 상담한다."

 

"내게 <오데트>의 기적은 세계 자체가 들림을 받는 엑스터시였던 반면, <퍼스트 리폼드>의 그것은 '이후'를 결코 떠올릴 수 없는 마침표였다. 다시 말해 폴 슈레이더는 끝나는 시점까지 나를 정확히 톨러의 죽음을 향해 데려갔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 후 살아남은 톨러를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퍼스트 리폼드>의 마지막 숏은 정확히 말해, 포옹과 음악과 카메라의 운동을 갑작스럽게 중단시키는 암흑이다. 인물도 음악도 카메라도 종말을 예견하지 않을 때 스스로의 의지를 행사하며 강림하는 어둠. 나는 순간 어렴풋이 톨러 목사의 일기가 북 뜯기는 음향을 들었다."

 

김혜리 기자는 남성 감독 아리 애스터는 <유전>과 <미드소마>에서 여성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해 이야기를 착안했으나, 그들을 그리는 방식은, 심원한 슬픔의 젠더는 여성이라고 지정하고 인물을 알레고리로 채용하는 데게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한다. 김혜리 기자는 두 영화는 공히 나이 든 여성의 나체를 그로테스크의 맥락에서 사용한다고 이야기한다. <유전>은 막판에 애니를 믹교적 풍경의 일부로 흡수시켜버리고, <미드소마>에서 대니의 캐릭터도 마지막에 이르러 증발된 인상이다. 뿐만 아니라 김혜리 기자는 연인의 심리적 방치를 오래 견뎌온 대니는 고전적이게도 성적 배신을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복수하여, 애인에게서 호르가 공동체로 의탁 상대를 바꾸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영화가 끝난 후 대니에게 20녀 년의 엄연한 지난 삶은 '전생'으로 일축될 것이다. 호흡까지 동기화해 함께 울러주는 마을 여자들의 행위는 바깥 세계에서 대니에게 필요했던 도움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지만, 감정의 모방이 관습인 공동체에서 이 행위가 갖는 무게는 미지수다. <유전>과 <미드소마>는 상반된 팔레트로 비탄과 공포를 풍경화하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재능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 감정의 거처인 인간을 지켜보는 끈기를 키울 여지가 많다는 사실도 암시한다."

 

김혜리 기자는 <어스>는 호러 장르가 기본적으로 약속하는 정화 효과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말로 달려가는 과정의 액션들로 가벼운 카타르시스를 준 다음 피날레로 그 쾌감을 일종의 실수로 만든다. 뿐만 아니라 김혜리 기자는 레드를 지도자로 밀어올린 결정적 무기는 춤으로, 일대일로 연결된 지상 본체의 흐릿한 복사물 같은 행위밖에 하지 못하던 도플갱어들은 레드의 춤 안에서 독창성과 주체성이라는 정신을 발견한다고 이야기한다. 교육이 단절된 레드는 춤을 통해 언어 능력 및 연결된 사고 능력을 보존했고, 지하인들은 예술을 빌려 다른 세상을 비로소 꿈꾸게 된 것이라는 김혜리 기자의 글이 눈길을 끈다.

 

"마지막에 과거를 완전히 기억해낸 애들레이드는 후회나 죄책감 대신 안도감이 서린 미소를 짓는다. 함께 웃을 수는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능성이 차단된 삶을 박차고 나온 소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고도 굴복하지 않고 고통 속에서 자신뿐 아니라 동포의 해방을 꾀한 인물 역시 두려움보다 존경의 대상에 어울린다. 실상 레드와 애들레이드는 동일한 몰이꾼에게서 도주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둘의 생존 투쟁은 얼굴 없는 몰이꾼을 찾지 못한 채 한 사슬에 묶여 있는 상대를 향한다. 그리고 <어스>는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슬픔을 남긴다."

 

김혜리 기자는 가장 훌륭한 스토리텔러는 근본적으로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고 말하며, <분노의 도로>가 페미니스트 액션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평은 좀 의아하다고 이야기한다. <분노의 도로>는 세 연령대의 여성 인물들이 피폐해진 세상과 자기 삶의 복원을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다. 김혜리 기자는 나아가 남성 지배체제가 파괴한 세계에서 여성 리더십이 이끌어가는 대안적 시스템을 도모하는 결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김혜리 기자는 이 영화의 또렷한 페미니스트 지향을 외면하는 반응은, 페미니즘 미학이 여성 캐릭터의 우월성을 무차별적으로 관철시키고 모든 사건 전개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쥐는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여성의 강화가 곧 남성의 약화라는 미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분노의 도로>의 여자들은 남자를 때려눕혀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권력에 의해 태야를 담은 용기나 성욕 해소 도구로 물화되고 대상화되기를 거부하기에 페미니스트다. 총알받이 눅스도 '피 주머니' 맥스도 도구화된 인간으로서 같은 고통 아래 있고 여자들은 그들과 한 차를 타고 싸운다. 신념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남자들의 구조를 기다리지 않을뿐더러 전투 중 남자들을 구해내는 그들은 자신의 힘과 품위를 믿는 페미니스트이고, 그들을 온전히 존중하는 맥스와 눅스도 페미니스트다."

 

김혜리 기자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연출한 린 램지 감독의 영화의 본론은 폭력이 개인 안에 초래한 강렬한 상태 혹은 그것이 2차 폭력을 낳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린 램지 감독은 이 모든 상태를 인과적 설명 대신 이미지, 사운드, 편집 등을 통해 묘사하고 암시한다. 또한 소설에 비해 영화는 인물의 부서진 내면과 거기 투영된 현실에 집중한다. 김혜리 기자는 소설은 어린 조가 갈망했던 복수 대신 정의를 추구하게 되는 결말을 취해 다음 표적을 향해 움직이는 왕성한 운동 중에 끝나는 반면, 영화는 어머니와 니나가 포개지는, 죽음의 완결이자 부활의 시작인 영점에서 운동을 멈추고 종료된다고 이야기한다.

 

"1999년 <쥐잡이꾼>으로 데뷔해 <너는 여기에 없었다>까지 린 램지 감독이 내놓은 네 편의 영화를 아우르는 공통점은 부서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쥐잡이꾼>은 친구를 밀쳤다가 죽음을 이르게 한 소년, <모번 켈러의 여행>은 애인의 자살을 마주한 여성이 주인공이고 <케빈에 대하여>는 무차별 살상을 저지른 가해자의 엄마가 화자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조는 유년시절 아빠의 폭력에서 겨우 살아남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환자다. 수많은 영화의 중심 소재로 채택되는 가정폭력, 자살, 학살은 린 램지의 영화에서 이야기의 계기로만 다뤄진다."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가 그랬듯이 조의 현재는 과거의 고통과 회한에 실질적으로 시시각각 포위돼 있다. 영화와 소설의 제목이 비롯된 "괜찮아 그냥 가면 돼. 넌 원래 여기 없었던 거야"라는 조의 내적 독백은, 린 램지의 시각적 연출 모티브이기도 하다. 타나토스의 의인화 같은 인물인 조는, 살아 있으나 동시에 지금 여기 온전히 있지 않다. 불법 해결사로서 신원이 드러날 만한 증거와 주소를 지우는 데에 실제로 능하기도 하지만, 린 램지는 조의 반투명한 실존적 상태를 현실인지 환영인지 긴가민가한 광경으로 연출해 드러낸다."

 

김혜리 기자는 짐 자무시 감독의 <패터슨>은 무엇보다 현실의 잦은 바람 속에서 자기 안의 고요를 확보하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상하고 슬픔 세상을 견디게 만드는 언어가 시를 포함한 예술이라고 믿는 영화라고 말한다. 김혜리 기자는 <패터슨>을 연출한 짐 자무시 감독은 반복되는 노동 안에 존재하는 예술적 영감에 주목하며, 이 영화의 주인공 패터슨은 사람들의 영향에 자기를 열어두면서도 내밀한 세계를 지키는 예술가라고 이야기한다.

 

"짐 자무시의 시인 패터슨은 자기를 둘러싼 환경과 이웃 사람들에게 예술의 재료와 형상화의 영감을 구한다. 그는 시를 인쇄하는 일조차 주저한다. 명성과 불멸은 패터슨이 예술을 통해 얻는 희열과 멀리 떨어져 있다. 자무시에게 예술가의 고독은 훨씬 개방적이고 겸허한 무엇이다. 동시에 장세니슴 수도자가 추구할 법한 금욕과 정진에 가까운, 오히려 한층 완고한 예술관이기도 하다."

 

"짐 자무시는 리얼리티를 제거하지는 않되 어디까지나 영화의 중심을 인물 내면에 두고 현실의 위협은 노이즈 수준으로 제어한다. 패터슨의 생활에도 위험이 있지만 그것들은 물새처럼 수면에 파문만 남기고 스쳐간다. 예컨대 힙합풍으로 차려입은 청년들이 밤길에 차를 세우고 개가 납치될 가능성에 대해 떠드는 장면은 긴장을 야기하지만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운전하던 버스가 고장을 일으켰을 때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다는 패터슨의 방침은 잠깐 도전받는다. 같은 날 저녁 패터슨이 매일 들르는 동네 바에서는 총을 든 청년이 소동을 일으키지만 흉기는 장난감으로 판명된다. 이때 패터슨은 반사적으로 청년을 제압하고 영웅다움을 칭찬받는데 본인이 더 당황한 기색이다. 침실에 놓여 있던 군복 입은 사진이 관객에게 상기되면서 시인의 삶에 있었던 이질적 시기를 짐작하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다."

 

김혜리 기자는 영화는 한 세기 동안 2D, 셀룰로이드 필름, 인간 배우, 날씨, 카메라의 시야 등등의 물리적 한계를 끌어안고 정해진 러닝 타임 동안 이미지와 소리로 이야기하는 백만 가지 방식을 필사적으로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예술이자 엔터테인먼트가 됐다고 말한다. 100년간 짊어졌던 물리적 현실이 제약을 하나씩 벗어던진 다음, 브랜드의 가치 제고를 위해 제작되고 시설 초기 투자분을 회수하기 위해 3D로 만들어지는 작금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온 영화와는 이질적인 무엇으로 보인다는 김혜리 기자의 글에 깊이 공감한다.

 

"영화는 이야기가 전부가 아닌 매체이지만 서사의 우주에 공헌하기를 멈춘다면 이야기는 언젠가 영화에 복수할 것이다. 비즈니스가 예술을, 아니 엔터테인먼트를 잡아먹을 때 애초에 영화가 비즈니스가 될 수 있게 만들었던 차의성은 비즈니스를 역슬할 수 있다."

 

<묘사하는 마음>은 김혜리 기자의 영화에 관한 섬세한 사유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책으로 인상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미리 관람하고 김혜리 기자의 글을 읽어내려간다면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묘사하는 마음>은 영화에 대한 독창적이고 따스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을 잃지 않는 김혜리 기자의 글을 만나볼 수 있는 책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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