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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애호가의해피엔딩 마리엄 띠동갑횽아.. 근데예전처럼책나열이안되는군요.어떻게하는거죠?ㅠㅠ 제발한번더그러지말길.. 붕붕붕꽃향기를맡으면힘이솟는꼬마자동차 모두감사합니다.^^ 부키장하준 열린책들고전문학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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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주인공인 학교를 꿈꾸며 실현해 나간다.. | 너와 내가 주인공인 학교 2017-06-15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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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피릿베어의 기적

벤 마이켈슨 저/이승숙 역
양철북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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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철북의 책으로는 두 번째인데,(첫번째는 재스퍼존스)

두 번 다 좋은 책들이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두 권 다 직접 구매하지 않고 선물 받은 책이라^^;;)

 

 투표 유권자를 분석해 보면 세대 간 균열이 뚜렷한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세대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세대 차이가 다름을 인정하는 좋은 문화로 정착되기보다는 세대 간 갈등으로 치닫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기성세대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힘의 행사를 통해 자라나는 세대를 무시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역사는 힘있는 자들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옳고 그름도 힘있는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학교라는 공간을 돌아보면, 교장은 제일 옳고, 교사가 그 다음으로 옳고, 학생은 제일 적게 옳다. 집에서는 부모는 옳고 자녀는 틀린 것이다. 조금 시크하게 표현한 것이지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틀을 깨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경험이 부족하고 미성숙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는 경우라면,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고 도와 주어야겠지만, 기성세대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까지도 본인들이 가진 권력을 통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 민망하고 서글프고 그보다는 분노를 자아내는 일이다.

 

 학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교장? 교사? No! 콜과 같은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장과 교사 학생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제일 돋보여야 하는 건 그렇다는 말씀.. 주절주절 리뷰는 제대로 시작도 안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 많아서..ㅎㅎ

 

 벤 마이켈슨이라는 작가는 참 놀랍다..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설임과 동시에 학생과 교사에게는 교육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교육현장을 너무나 잘 아는 교육전문가가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심정으로 소설 곳곳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잘 심어 놓았다. 너무 생생해서 소름끼칠 정도로 교육현장을 묘사하면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옥상에서 볼링공을 던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십대 학생들의 심리를 너무나 잘 묘사해 주어서 놀랐고, 학교폭력에 시달라는 학생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러했고, 동아리라는 이름을 빌린 학생회가 주도적으로 학교 마스코트를 바꾸는 이야기들이 그랬다.

 

 다행히 이번 촛불집회로 인해 거의 모든 세대가 하나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가정과 학교 사회 곳곳에서는 꼰대들이 자신들의 생각이 옳고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을 즐긴다. 10대라면, 어른들이 무시하고 갑질하기 딱 좋은 대상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꼰대가 아닌 어른들도 때로는 자신이 가진 힘과 권력 때문에 가끔씩은 꼰대가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결과는 잿빛 미래.. 짓밟히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그려나갈 미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하고 아이들의 주장하는 바가 내 생각과 달라도 쉽게 판단하지 말며, 혹여 내가 틀린 건 아닌지 생각하는 노력을 쉬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그럴 때 어른인 나도 아이들로 인해 더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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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혐오와 로맨티스트 | '서양고전의 매력 속으로 풍~덩!' 2016-01-0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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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둠의 심연

조지프 콘래드 저/이석구 역
을유문화사 | 200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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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사소하고 우연한 일련의 몇 가지 사건들로 인해 인간에 대한 혐오라는 감정이 연말과 맞물려 내 안에 지속적으로 머물렀다. 이런 감정을 문학을 통해 승화시켜보자며 재작년 생일에 선물받은 이 책을 이제야 집어들었다.

 

 '전쟁과 평화'의 장교 로스토프가 전장에서 알몸으로 흙탕물에서 몸을 씻는 병사들을 보며 인간에 대한 역겨움을 묘사한 장면이 떠오르던 연말이었다. 다 큰 어른이 두려움에 몸을 움츠린 채 움직이려 들지 않고, 욕심에 눈이 멀어 욕심이 있다면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을 조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역겨웠다. 동시에그들을 역겨워하는 내 자신을 보며, 내 안에 그들의 모습이 있음을 알고 인간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짙어져 갔다.

 

 소설 말미에서 커츠의 약혼녀가 말로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잘못된 신앙이 얼마나 큰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흡사 안나 까레니나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했다.(톨스토이의 작품을 보고 썼을까 하는 의심도 들지만, 내 전공도 아니고 큰 관심도 없으니까...) 온갖 허위와 기만에도 자신은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하고 창조 당시의 인간에 가장 가까운 이상적인 인간... 그런 인간이 나라고 착각하는 사람에겐 어떠한 직언을 해주는 것도 쓸데 없다고 말로는 단정해 버리고 만다.

 

 어제 어떤 모임에서 유명하고 사회적으로 꽤나 성공한 한 선생님이 내 이상형이 무엇이냐 물어보기에, 이렇게 저렇게 답을 했다. 그랬더니 나더러 로맨티스트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를 로맨티스트라 부른 이유가 착각하는 사람에게 맞춰줄 줄 모르고 직언하는 고지식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제 입장에서 이성인) 여자에겐 직언보다는 듣기 좋은 말을 해주고, 솔직함보다는 내가 어떻게 맞춰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낫다는 의견이 아니었을까...

 

 권력을 가졌지만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물질을 숭상하는 커츠와 같은 사람에게 복종하는 인간들이 많은 이유는 그들 역시 커츠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요. 그 은밀한 속을 들여다 보면 다 구제불능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표면화된 정도에 따라 성인에서 짐승만도 못한 것으로 분류될 뿐... 최소한 커츠와 같은 사람의 말 속에는 정직함진실이 들어있고, 그것이 사람을 매료시키는 것이다. 처음에는 커츠의 속물적인 근성을 혐오하다가도 언행일치하는 정직함과 진실에 대해 마음을 열고, 그러한 성품이 권력과 결합될 때 시너지를 일으켜 어느 샌가 복종케 되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한 층 더 내 맘 속 어둠이 정당화되는 기분이다. 쳇! 이런 감수성으로 이 세상을 잘 살아낼 수 있을지... 차라리 남을 짓밟으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맘 편히 눈 먼 채 행복하게 사는 인생이 몇몇 재수 없는 사람을 빼면 보다 인류에 기여하는 삶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저 고매함을 뽐내고저 책 한 권 더 읽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도 읽는 게 안 읽는 것보다 낫다는 고집스러움은 앞으로도 견지할 것 같다. 왜냐고? 답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에 대한 그럴 듯한 답은 "무용한 목적을 위하여 냉혹한 논리를 신비스럽게 배열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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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심연 메모 | 메모 2016-01-04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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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2 - 인생은. 그것은 무용한 목적을 위하여 냉혹한 논리를 신비스럽게 배열한 것.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기껏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야-때늦게 얻는-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자,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끝없는 후회뿐이지. 나는 죽음과도 싸워 보았네. 그것은 상상할 수도 없이 맥 풀리는 싸움일세. 그것은 발아래에도, 주변에도 아무것 없이, 관객도, 환호성도, 영광도 없이, 승리하겠다는 대단한 욕망도, 패배에 대한 큰 두려움도 없이, 미적지근한 회의주의가 판치는 병든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옳다는 믿음도 별로 없이, 상대방이 옳다는 믿음은 더더욱 없이, 불분명한 회색 지대에서 하게 되는 그런 싸움이라네. 만약 궁극적으로 얻게 되는 지혜가 그런 것이라면, 인생은 우리들 중 몇몇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수께끼라네..중략..p153 - 그는 요약했네-그는 판결을 내렸다네. '끔찍하다!' 비범한 사나이였지. 그 판결은 결국 어떤 믿음의 표현이었고, 그것에는 정직함이 있었고, 신념이 담겨 있었으며, 그것의 속삭임에는 떨리는 저항의 음조가 있었고, 그것은 언뜻 본 진실의 소름 끼치는-욕망과 증오가 기이하게 뒤섞인-얼굴을 하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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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킬링타임용으론 괜찮은 책 | "베스트셀러" 2015-12-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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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7년의 밤

정유정 저
은행나무 | 201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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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지인들이 워낙 재미있다고 권하는지라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기대를 넘어서는 작품은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재미있었고, 시간낭비라 여겨지진 않았던 것 같다.

 

 모든 주인공들이 입체적인 살아있는 인물로 그려냈다는 점, 누구나 그런 환경에 놓여지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인간의 연약함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세령호에 잠겨가는 서원의 이야기를 그릴 때, 서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의 언어가 아닌 성인의 언어가 쓰여진 점이 약간 몰입을 방해했다. 마지막 부분의 전개가 짧고 빠른 점도 아쉬웠지만, 그래도 뭐 이 정도 이야기면 꽤 잘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역시나, 글 쓸 줄은 모르지만, 뭔가 더 많은 걸 얻기를 원하는 진지한 나같은 사람에겐 시간대비 뭔가 조금 아쉽긴 한 것 같다.. 어차피 쉬어가는 타임이라 생각하고 읽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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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사는 꼭 모여야 하는가? | "이성을 뛰어넘어 영성의 세계로..-신앙서적" 2015-12-1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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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모한 교사들

송인수 저
좋은교사(잡지) | 201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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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올 한해 그리고 내년 초반까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는 교원노조 혹은 교원단체의 가입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기 위해서 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필수에 가깝다 여겨지지만, 실질적으로 10%에 해당하는 전교조가 노조로서의 대표성을 지니기도 어렵거니와 전교조라는 정체성을 지니는 것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솔직히 기독교사운동인 좋은교사운동이라는 단체를 알고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면서, 역시 기독교사운동은 그저 관망하고 중간자적 입장에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단체로 생각했다. 하지만, 금번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 좋은교사운동이 반대성명 및 서명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좋은교사운동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 반공보수의 성향을 지닐 법한 기독교사들이 국정교과서 반대에 대한 성명을 냈다는 사실이 놀랍고 또 반가웠기 때문이다. 적어도 상식은 통하는 단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희생, 헌신을 강조하는 기독교에 반감이 있다. 주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그 은혜에 감격해서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느끼고 경험한 바를 토대로 흘러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기윤실과 기독교인들을 접하자면, "이렇게 해야한다"라는 날이 선 경우들이 많고, "어떤 것을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운동을 전개할 때, 거기에는 은혜는 없고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느낌만이 물씬 풍길 때가 많다.

 

 한 개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자발적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에 대해 그 분의 삶을 존중하고, 또한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희생과 헌신과 은혜의 선후 관계가 뒤바뀌어서 먼저 희생과 헌신을 요구할 때, 나는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대개 기독교에서 희생과 헌신은 한 개인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내려놓는 것과 기도와 말씀공부로 수렴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송인수 선생님의 간증에서 아쉬웠던 점이 그런 점이다. 송인수 선생님은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로 인해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을 내려놓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시발점으로 즐겨듣던 클래식 음반을 다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중요한 일(?)을 위해 인간으로서 누리고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버리다 보면 남는 것은 인간이 아닌 예수밖에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본인이 자발적으로 인간적인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존중하고 나는 그렇게 못하는 데 그렇게 희생하시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 모임의 리더가 인간적인 것을 다 걷어내고 예수로 살기를 팔로워들에게 요구하는 순간,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폭력성을 지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숨이 막히는 청교도적인 삶으로의 이행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송인수 선생님을 대면하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실제로 송인수 선생님의 생각이 어떠한지는 모르겠다. 다만 계몽의 대상으로 인간을 대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워낙 많이 접하다보니, 이런 반감이 생기는 것 같다.

 

 이러한 개인적인 저자에 대한 아쉬움(단지 클래식을 안듣기로 하셨다는 그 이유로..ㅋ)을 뒤로 하고, 송선생님은 분명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삶의 현장에 뛰어드는 분이신 건 확실한 것 같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특히 교육분야에서 정책을 형성하고 이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을 보면, 그는 멋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솔직히 한국 기독교계가 연합해서 어떤 운동을 벌이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가에 대해선 유보적인 태도를 가진다. 송인수 선생님도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로 대변되기에 나같은 평범한 사람으로선 숨막히는 면이 있는데, 기윤실에서부터 시작한 좋은교사운동이 과연 노조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또한 좌우가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고통받는 학생들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는 것이, 그간 기독교가 사회참여에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것에서 많이 다르지 않다는 인상도 받는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명백한 것들이 있는데, 좌우가 아닌 중립을 표방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명백한 것을 명백하다 말하기를 꺼려하는 것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에는 관심을 끄고 오직 고통받는 학생들만 생각하겠다는 것은, 다른 한 편으로는 교사가 오직 고통받는 학생들만을 위한 기능인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름 아닌 것 같다. 결국 교사도 인간이고, 학생들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느끼며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럴 자유를 학생에게 오롯이 옭아메고 모든 총력을 여기에 기울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인간상일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송인수 선생님의 사교육없는 세상을 위한 노력을 정리해 놓은 책도 읽어보려 한다.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는 겨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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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방향은 여기서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이성을 뛰어넘어 영성의 세계로..-신앙서적" 2015-12-1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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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니고데모의 안경

신국원 저
IVP | 200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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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타락-구원-이후의 삶

 

기독교 세계관은 사실 간단하다.

구원받은 자는 그 은혜에 힘입어 태초에 창조된 원리에 따라 왜곡된 세상을 바로잡음과 동시에 누리며 이 땅을 살아가야 한다.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했으니 늘상 수련회나 교회에서 힘주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는 분들을 만나왔다.

"말씀대로 세상을 회복시켜 나가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하나?

설교자들, 신앙운동을 하는 사람들, 이 책의 저자인 신학교수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는

"각자가 속한 분야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

는 것이다.

 

문제는 신학교수들부터가 현장감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 목사님들도, 선교단체 간사도 모두가 하나같이 사회경험은 일천하다.

이것은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는데, 더 큰 문제는 한국 사회에 대해 관심이 없고,

뉴스도 안 보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도 공감하는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교회 내에 약한 사람들을 향해서만 관심이 있다.

 

이것도 사실 의미가 있지만, 결국 우물 안 개구리 수준 아닌가 싶다.

냉철하게 현대사회의 변화와 각종 현안들에 대해서 최소한 본인만의 생각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가진 기독교인이 진정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기독교 세계관이 힘을 얻으려면, 기독교 세계관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실제 사회변혁에 참여해야 한다.

맨날 교회나 선교단체 방구석에 앉아서 하나님 뜻대로 세상에서 살자고 생각을 나누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을 각자의 영역에서 드러내는 데 아마추어리즘밖에는 보여줄 게 없지 않냐는 말이다.

 

이 책으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기독교 세계관을 주장하는 저자가 위에서 언급한 절박한 현실인식이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과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소위 말하는 개혁주의 운동방식이 이제는 시대에 뒤쳐지는 단발마에 그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개혁주의 운동은 소통할 줄 모르면서 외길을 걸어가는 느낌이다. 시대가 어두워서가 아니라 개혁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는 것 같다.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말씀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는 부분이 훨씬 많다고 본다.

기독교 세계관을 논함에 있어서도 가능한 논쟁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부분은 생략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한다. 학자라면 개론서를 작성하는 데 있어 군더더기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가급적 걷어내고 글을 쓰면 좋을텐데, 그런 점이 아쉽다.

 

저자의 이러한 작업은 칭찬받아 마땅하나 아쉬움도 다소 남는다.

 

기독교 세계관 하면 프란시스 쉐퍼빠(이렇게 표현하는 점은 쉐퍼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일종의 감에 의존함을 용서하길 바란다.)가 많던데, 다음에 그 분의 책을 읽고 나서도 이런 생각이 들지 않기를 희망한다. 주장만 있고 정책은 없는 논의는 어디까지나 내 직성에 맞진 않는 것 같다.

 

기독교 세계관... 다 아는 건데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을 하는 동지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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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는 연극 한 판~! | '서양고전의 매력 속으로 풍~덩!' 2015-12-1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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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피그말리온

조지 버나드 쇼 저/김소임 역
열린책들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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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세시간 남짓만에 한 권의 책을 뚝딱 읽어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만큼 이 책은 쉽고 재미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결말이다.

이처럼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극작가의 작품이

할리우드식 결말을 내지 않는 점이 신선하고,

그런 결말을 내게 된 데 대한 자기 나름의 논리를 펼치는 점이 무척 재밌었다.

 

"남자건 여자건 강한 사람은 더 강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뿐 아니라 친구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강한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반대의 경우 또한 사실이다. 약한 사람들은 자기들을 너무 무섭게 하지 않는 한 강한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종종 그들을 우리가 은유적으로 <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물었다>고 하는 실수로 인도한다. 그들은 너무 적은 것에서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 그리고 거래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을 때는 그 결합이 불가능해진다. 약한 쪽은 버림을 받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 약할 뿐만 아니라 어리석고 둔하기도 한 이들은 종종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소개팅이나 선 자리에서 나는 강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약한 사람으로서 강한 사람을 바라느냐는 질문에 그건 또 아니라고 대답하게 된다. 문제는 사회계급적 시선으로 나를 볼 때 나는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의 입장임에도, 내 자신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나는 그렇게 약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남자의 스스로를 향한 지나친 긍정이라는 종특성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러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신명나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결말만 살짝 바꾸면 할리우드 영화와 뮤지컬로 둔갑하는 걸 보면 더더욱..

실제 작품의 결말은 그렇지 않은 것이 조지 버나드 쇼가 명불허전인 이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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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은 인간 경험과의 대화 | "나라를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 정치경제" 2015-12-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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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회학의 쓸모

지그문트 바우만 저/노명우 역
서해문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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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학하려던 대학 교수가 지그문트 바우만 교수의 책을 번역했기에, 면접에 도움을 얻고자 책을 읽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바우만 교수와의 대담을 꾸린 것으로 사회학이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포인트를 맞추어 편집되어 있다.

 사회학은 '인간 경험과의 대화'라는 저자의 정의가 인상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경험하지만, 경험한 것에 대해 질문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하는 정도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사회학은 적극적으로 경험한 것을 해석하고, 불합리한 경험에 대해서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작업이라 이해했다. 사회학은 상대적으로 다른 학문에 비해 이상보다 현실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이상을 가질지언정 지금보다 퇴보하지 않거나 조금 더 나아질 것에 대한 기대와 대안을 제시하는 성격을 지닌다.

 이런 면에서 사회학은 인간사회의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간적이고 따라서 적어도 내게 있어선 매혹적인 학문임에 틀림없다. 나는 과거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이 아름답고 찬란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피터지게 싸우고픈 마음이 불쑥 찾아올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치열하게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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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 쓸모 - 메모 | 메모 2015-12-1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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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 사회학은 '인간 경험과의 대화'

       경험은 우리가 세계와 교류하면서 나에게 생기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체험은 우리가 세계와 조우하는 과정에서 살면서 겪는 일을 의미합니다. 즉 체험은 일어난 일에 대한 지각과, 일어난 일을 흡수하고 이해가능하게 하려는 노력이 합동으로 빚어낸 산물.

 

p28 - 사회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설명할 때 '~하기 위해in order to' 방식의 설명을 기피하고, '~때문에because of' 유형의 논증을 사용합니다. 이런 습관의 배후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흔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나 '세상은 원래 그래, 어쩌겠어?'와 같은 형태로 표ㅕ현되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서든 함께든 원래 그런 세상이 내린 결론은 절대 변화시킬 수 없다는 신념 같은 것 말입니다. 이런 전제는 이의를 제기하거나 저항할 능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세계관을 낳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두 가지 믿음의 치명적인 혼합물입니다. 첫 번째로, 사물의 질서나 인간의 본성 혹은 인간사 등에 대한 불굴의 신뢰입니다. 두 번째로는 인간은 본래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한 존재라는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 믿음이'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항복'하는 것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태도를 유발합니다.

 

p73 - 친구들이여, 정말 나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왜 사회학이 내게 그토록 소중한지를 확실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사는 것을 배우지 못했으며, 만약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산다면 호기심을 상실하게 될 것 같습니다. 세계 속에 존재하기에 느끼는 열정을 실험하고 분간하려는 의지와 능력까지도 말입니다.

 

p101 -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사회학의 임무.

 

p126 - 사회학으로 덕분에 행복하셨습니까?

괴테 - 그럼요. 행복한 삶을 살았지요. 그런데 온전히 행복했던 한 주일을 기억할 수 없군요.

 

p204 - 사회학을 하는 것은 그저 충만한 삶을 향한 길입니다. 그렇다고 사회학 하기를 과소평가하거나 그것이 지닌 아주 특별한 중요성을 경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처음에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최소한 더 나빠지지 않은 상태로 인간 공동의 주거지인 세상과 하직하겠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를 충족적인 삶으로 이끌 겁니다.

 

p240 - 비판이 자기 의제의 최상위에 두어야 하는 것은 인간다움에 대한 존중, 그리고 존중받을 권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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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책다운 책?! 그래도 매혹적이긴 한.. | '서양고전의 매력 속으로 풍~덩!' 2015-11-23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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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리의 노트르담

빅토르 위고 저/성귀수 역/장 미셸 파예 그림
작가정신 | 201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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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대략 200년 정도 전에 쓰여진 책이다.

등장인물의 성격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고,

그러한 성격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말하자면,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의 분량은 또 수백페이지에 달한다.

빅토르 위고는 글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재판, 파리의 전경 등을 묘사하는데 절반에 가까운 페이지를 들인다. 달리 말하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내용으로 책의 절반 정도를 채우고 있다.

 

현재를 사는 독자들에게 이런 책을 출판하려 한다면,

편집자는 스토리가 아닌 내용은 대부분 편집하려 할 것이고,

빅토르 위고 역시 이를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빅토르 위고는 독자들에게 많은 욕을 먹겠지..

 

여튼 간단한 이야기를 말주변이 없다보니 길게 썼는데,

요약하자면, 이 책은 전형적이고 변하지 않는 캐릭터가 그리는 뻔한 결말을 예상할 수 있으며,

그야말로 통속적인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짧은 이야기를 너무 길게 늘여 놓았다.

중간중간 작가의 치밀하지 못한 만담을 듣고 있는 것 같아, 짜증날 때도 있고..

 

셰익스피어처럼 분량이 짧은 희곡으로 썼다면 더 좋았겠지만,

진부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인 내용들로 가득 찬 이 책이 매력적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콰지모도, 에스메랄다, 푀부스, 프롤로 신부 그리고 거지와 극작가, 노틀담 성당과 파리

모두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 있으니...

 

재밌었지만, 빅토르 위고보다 몇백년 앞에 살았던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에는 발끝에도 못미치는 작가이긴 한 것 같다.

 

레미제라블도 있는데, 그 책은 또 어찌 다보나 싶다..ㅎㅎ

그래도 아마 보게 되겠지만,

다 읽어냈다는 이야기 하려 프랑스 하수도 시설묘사와 같은 지루한 이야기들까지 읽을 생각을 하니 읽기 전부터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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