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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삶, 하나의 혁명 | 2016 2016-02-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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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 혁명가의 회고록

빅토르 세르주 저/정병선 역
오월의봄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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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혁명가로 불리는 빅토르 세르주의 자서전이다. 인터넷 서점 A의 이벤트 ebook 『젊은 작가의 책』에서 김애란 작가가 추천?은 아니고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든 책이다. 문학가나 역사가 자서전을 주로 읽어온 것 같아 사회혁명가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혁명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번쯤 제대로 겪어보고 싶기도 했다. 현대 사회는 제대로된 혁명이 사라진 세계라는 실망을 누를 수 없다. 지킬 것이 너무나 많아진 세상에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자기를 바쳐 무언가를 위해 싸우는 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바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는 차르에 반대해 러시아를 탈출한 망명객 부모에게서 태어난다. 일찌감치 아나키스트 사상을 받아들였다는데 나는 아나키스트 사상이란 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 이렇게 누군가의 삶을 읽어도 되는 것일까, 뭣모르는 내가 거룩한 삶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은 읽는 중의 책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다사다난한 이력을 채색할 힘이 부족한 건 아니다. 그는 왜 이토록 끈질기게 혁명했을까.

 

그는 결국 부모가 버린 러시아로 돌아갔다. 혁명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되어 스탈린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당에서 제명되고 체포와 유배 시절이 이어진다. 무국적자가 되어 스탈린주의 흉한들에 쫓기던 그는 삶의 대부분을 무국적자에 망명자 신세로 지냈지만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1947년 멕시코에서 사망했다. 이 책은 1951년 출간됐다. 혁명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다. 억압에 적응하고 소극적으로 투쟁하며 그럭저럭 살 것인지 아무것도 무엇이 되지 못하더라도 온 삶을 다해 맞서싸우다 죽을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다. 죽는 날까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바꾸기 위해 투쟁한 삶을 거룩하다 하지 못하면 대체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왜 이렇게 살아야 했는지 파고들지 않는다면 독서가 왜 필요할까 생각했다. 수없이 많은 문학적 성과를 남기면서도 혁명가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게 살았던 빅토르 세르주가 간헐적으로 혁명에 참가했던 다른 수많은 작가들보다 덜 알려진 건 그를 기릴 국가가 없었기 때문일까. 출판사 오월의봄이 빅토르 세르주가 남긴 저자들을 하나하나 출간할 예정이라니 다행이다.

 

많은 나라를 유랑하며 위태롭게 살던 그는 5개 국어에 능통했다. 그는 살아있는 내내 쉬지 않고 싸웠지만 정작 이뤄낸 성과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떠돌다 죽었고 어딘가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도 못했으며 어떤 자리에 올랐다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생생한 인물들이 살아숨쉰다. 그가 살던 세계, 부조리하고 비정상적인 세계의 모든 게 들어있다. 그래서 20세기 혁명사를 그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하나의 삶이 하나의 혁명이 되어버린 경우, 모든 것이 소중한 하나하나의 기록을 읽고 있다. 자신의 이상을 향해 평생을 달려가던 사람을 떠올려본다. 간혹 그의 뒤를 힘껏 뒤쫓아보지만 그는 금방 사라진다. 어디에도 없다. 그는 저 멀리, 누구보다 먼 곳에 우뚝 섰다. 저기 서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자신의 삶으로 혁명 그자체가 되어버린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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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젠더 혹은 탈젠더, 섹슈얼리티의 출발 | 2016 2016-02-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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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탈

게일 루빈 저/신혜수,임옥희,조혜영,허윤 공역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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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자체가 낯선 분야이긴 하나, 게일 루빈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도 낯설다. 여성학/페미니즘학인 줄 알고 집어든 『일탈』은 인류학/고고학 분야 책이다. 제대로 말하면 성 인류학 분야로 성 인류학의 선구자 게일 루빈 교수가 지난 40년간 써온 논문을 엮은 선집이자 다른 책으로 출간된 적 없는 유일한 단독 저서다. 급진적 성 이론 실천가로 알려진 그녀는 방대한 연구 분야의 주인공이 남자일 거라는 편견도 불식시킨다. 열다섯 편의 논문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연구에 할애되어 있으며, 성의 다양한 논쟁적 주제들을 건드려 성 담론이 행해온 수십 년의 성과를 반추한다. 성을 말하는 책은 많지만 실천의 행동 방안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은 흔치 않다. 게일 루빈은 레즈비언이자 사도마조히스트로 커밍아웃한 1949년의 문화인류학자로 알려졌다. 성적 불평등과 여성 억압의 문제를 마르크스주의의 가부장제로 환원하는 데서 나아가 섹스/젠더 개념 자체를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섹스가 사라질 순 없겠지만 젠더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급진적 주장은 스물 다섯 살의 그녀를 학계의 주목을 받아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기존 이론을 전복하며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의견을 피력하는 동시에 완전한 특수 관점에서 성을 사유하고 있어서인지, 지나치게 급진적인 그녀의 주장이 여성인 내게도 낯설어서인지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녀는 젠더를 인정하고 문제를 인식했다기보다 젠더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기존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양성 평등과도 차이가 있었다. 그녀는 기존 페미니스트들에게도 금지될 법한 완전한 성적 자유를 옹호하고 인간 자체가 누려야 하는 성적 해방과 자유를 논했다. 젠더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 자체의 성을 탐구하고 주장하는 책이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 제대로 먹힐 리도 만무하지만, 섹슈얼리티 담론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 한 권의 기준이 되어줄 것 같다. 힘들여 읽는 만큼 깊이 각인된 성과 관련한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효과가 있다.

 

동성애와 사도마조히즘을 모두 옹호하는 그녀 개인의 이력으로는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 억압의 철폐나 여성 해방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관습 탈피를 옹호하지 않을 수도 없으며, 친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는 여성에 불리한 관습에 반기드는 일이 반가울수록 한결 조심스러워진다. 민감한 문제인 만큼 자칫 논의도 되기 전에 비난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작년 한 해는 이상하리만치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속속 번역된 해였다. 제대로/골고루 읽혔는지 아쉬운 사람에게만 읽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더 많은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말아야 할 논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젠더로 나뉘다 감정싸움으로 끝나는 논쟁 말고 서로의 관점에서 좀 더 다가서는 의미있고/도움이 되는 논쟁화가 필요하다. 나아갈 길이 멀다. 게일 루빈이 지난 40년간 축적한 연구와 사유의 성과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이 책의 내용은 더더욱 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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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리,2016 | 2016 2016-02-2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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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현실보다 더 현실 속으로 깊이 침투해 있는 반면, 정치는 드라마를 지향할 때 가장 큰 지지를 받는다는 게 의아하다. 거의 모든 필리버스터 등장 의원들 발언-연설이 아닌 게 이상-을 듣고 있는데, 국회의장과 한 분의 부의장은 대놓고 지겨워하고 계신다. 그건 그래, 나도 가끔 지겹다. 특히 법조항을 주루룩 읽을 때. 법조항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들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가 밤을 세워 이 고생-정말 밤에 나오시는 분에게 미안해서 새벽에도 보느라 수면시간이 모자랄 지경- 을 해야 하는 건지. 토론할 가치도 없는, 당연한 주제를 가지고 간절하게 호소하다 못해 목숨을 걸고 발언해야 하다니 이게 무슨 민주주의 국가의 독재 코스프레인지 도를 넘은 이해력을 발휘해도 절반도 못 따라올 지경이다.

 

행사 때 봉하(마을)에 가면 온갖 의제에 대한 서명 신청과 후원 신청 기관들의 명함을 받는데 그중 하나가 팩트tv다. 사실 그 어려운 곳에 서 있으면서도 가끔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한 적 있는데 이번에 확실히 믿게 되었다. 그런데 국회방송 채널은 평소에는 무얼 방송하나. 있는 줄도 모르던 국회방송을 의무적으로 틀어보는 하루하루가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니, 한 달 이상 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옳다고 믿는 것만이 아니라 옳은 것을 위해 투쟁하는 게 이토록 힘들다니, 말과 글을 보태는 게 이토록 도움이 된다니, 극장가에서 <귀향>이 나흘 만에 손익분기점을 훌쩍 뛰어넘어 주행하는 것만큼 기쁘다. 간절함이 늘 이기는 가치가 아닐지도 모르지만-실제로 그럴 때가 많다- 이번만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래야 한다. 

 

광주항쟁은1980년도에 일어났는데 경상도 사람이지만 엄마,아빠는 몰랐어? 자주 묻곤 했다. 할아버지할머니/외할아버지외할머니는 젊은 시절 6.25 전쟁을 겪었는데-심지어 엄마와 열 살 차이 나는 이모는 그해에 태어났는데-뭐 들은 거 없어? 나는 물었는데 제대로된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소통 수단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아서이기도 했겠지만, 아마 전쟁이 국지전일 수밖에 없고, 광주항쟁 역시 벽을 둘러치고 한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TV가 없었던 시절인데다 언론이 제대로 전했을 리가 없으니 당연. 그런데 지금도, 인터넷 실시간 인기검색어에 하루종일 야당 현직 의원들이 번갈아 올라오고 TV 채널만 돌리면 들을 수 있는 국회방송이 나오는데도 관심 있는 사람만 듣는다. 저들은 훗날 손자가 태어나 역사책에 나오는 당시 야당이 모조리 나선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에 대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도 제대로 대답할 리 없을지도. 역사를 살고 있는데, 본인이 역사가 되기를 강력히 거부하는 것도 능력. 

 

국회공무원을 꿈꿨는데 그건 내가 국회의원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되면 되지라고 말하지 말자. 법정만큼이나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이 멋져 보였는데, 요즘 이 뜨거운 국회가 정말 멋지다. 더이상 없을지도 모를 만큼, 살아생전 다시는 보지 못할 수도 있는 모습에 가슴이 뜨겁다. 우리가 제대로된, 국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을 갖지 못한 건 비극이자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뜨거운 국민 되는 일,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회의 주인이 의장단을 비롯한 의원인 줄 아는 자들에게 빼앗긴 주인 자리, 끝까지 제대로 지키려면 지치지 않아야 한다. 이제 닷새를 지나가는데 벌써 한 달처럼 느끼는 이 몹쓸 끈기가 결국 발목 잡힐지도 모른다. 지치면 안 돼.

 

법도 국정원도 국민의 도리도 공부해야 하는 이 사태가 싫지만은 않은 건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헤쳐나가는 이 시간이 정말 소중하단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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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줘 | 2016 2016-02-2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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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글을 쓰려고 한다. 6개월의 대장정은 꽤 길고 멀 듯한데 다음 기수 파워문화블로그를 모집하는 글을 보니 벌써 끝났구나 싶다. 놀이하듯 자연스럽게 쓰고 싶었는데 늘 버티듯 쓴 게 마음에 걸린다. 솔직하고 자유롭고 싶었는데 갯수와 마감에 맞추느라 쓰다만 글을 늘 급하게 다시 고치는 일도 약간 아쉽다. 어쩌면 다음번엔 파워문화블로그로 선정되지 않을 수도 있고, 늘 그 사실과는 무관하게 어떤 생각들을 남기기 위해 애썼다. 독창적이고 싶지만 쉽지 않았고, 책을 많이 읽고 리뷰를 남기고 싶지만 항상 기대치보다 낮다. 한 달에 읽을 수 있는 인문서는 정말 한계가 있는데도 갯수를 강요당하다 보니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문학을 더 많이 읽으니 소설 분야를 신청해야 했나 싶지만 내게 파워문화블로그 활동은 늘 도전이었다. 문학 리뷰보다 인문 리뷰를 남기는 게 내게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소설 리뷰는 서점 블로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아 피하고도 싶었다. 특권과 치우침을 꺼리지만 오랜 특권(?)을 누렸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독서지원금을 받는 게 특권이라면.

 

어렵게 쓰기 위해 노력은 했는데 스스로 세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 어떤 반성같은 걸 동반해야 한다면 활동은 늘 애증어린 반성과 도전의 결과물이다. 책으로 돌아온 첫 기수에 하필이면 인문 분야를 골라서 버거울 때가 많았다. 플라톤의 『국가』나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시작하면 한 달 내내 읽어도 모자랄텐데, 또 제대로된 리뷰를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책에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거나 어느 정도의 상식과 지식을 보유한 분야의 책을 집어들었다. 그게 한계라면 한계고, 파워문화블로그로 활동하는 한 어쩔 수 없다. 얻은 게 아쉬움보다 더 많다는 생각이 들 때는 쉽게 끄적이지 못할 듯한 리뷰를 남겨놓고 한참 후 다시 읽을 때다. 책을 읽는다고 모든 걸 소화하거나 오랜 시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의 리뷰는 이후 그 책을 재독할 때나 지식을 시험할 때 생각보다 도움이 된다. 철학서를 읽는다 치면 나는 기존에 널리 보고 들어온 단순한 철학 밖에 이해하지 못해 이를 중심으로 리뷰를 쓸 것이다. 재독할 때 해당 리뷰를 찾을 수 있으면 예전에 이해한 부분 외 다른 내용을 이해하려 애쓸 수 있다.

 

나르시시즘이나 허영심으로 책을 읽고 리뷰를 남기는, 어떤 보상에 집착하는 시기는 지났다. 부수적으로 얻는 물리적 보상은 좋지만 때로 부담이고, 그 부담은 나태해질 때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결국 보상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결론에 닿는다. 아무리 본인 만족이 크더라도 타인이 읽어준다는 안도감 역시 활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모두 동반자적인 글을 쓰는 동시에 경쟁한다. 이 작은 공간에서 여전히 세상과 아무 상관 없는 개인적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건 우리가 만난다는 뜻이다. 독서에 관한 한, 아니 문화에 관한 한 약간 오만한 성향을 갖고 있다. 뜨거움을 갈망하지만 자주 벽에 부딪힐 때 다시 세상과 삶으로, 독서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몰입과 끈기와 오만함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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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이 힘이다 | 2016 2016-02-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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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역사상 '사고 싶은 책'의 포스팅을 한 적이 없다. 있을 테지만 정식으로 한 적은 정말 없다.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사면 되고, 사고 싶지 않은 책을 빼고는 거의 항상 사고 싶은 게 책인데 뭣하러 일부러 그런 포스팅을 할런지. 눌러담았더니 꽤 되고, 망설이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보다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다. 읽지 못하고 책장에 몇 년을 꽂아둘거라면 굳이 왜 지금, 을 고민하다보니 여러날이 흘러갔다.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저/김한성 역
포이에마 | 2014년 08월

 

『유대인의 역사』는 약 4000천여 년에 걸친 유대인의 역사를 자세하고 꼼꼼하게 서술한다. 이전판이 세 권으로 도서관에 꽂힌 걸 보고도 선뜻 한 권 뽑아오지 못할 만큼 엄청난 포스를 가졌다. 분권이 대세인 시대에 다시 통합돼서 나왔는데, 사도 당장 읽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내내 망설인다.

 

 

1789

주명철 저
여문책 | 2015년 12월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 열 권 대장정의 처음 두 권이 출간되었다. 서양사에 관심이 많고 프랑스 혁명은 언제나 매력적인 주제이며,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시점은 출간될 때마다여야 하는지, 완결이 되고나서여야 하는지. 아마 후자가 될 가능성이 큰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게 내 스타일이다.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저/이진우 역
한길사 | 2002년 12월

 

아렌트의 유명한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읽어보지 못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 아래 다 아는 것처럼 인식되어 버린 해당 작품보다 『인간의 조건』이 예전부터 끌린다. 다양한 사람들 틈으로 섞여 다양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삶. 참 작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가 점점 어려움을 느낀다.

 

 

역사

헤로도토스 저/천병희 역
숲 | 2009년 02월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가장 아름답게 등장하는(!) 내가 아는 문학작품은 마이클 온다체의 『잉글리쉬 페이션트』다. 부석거릴 만큼 건조하면서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사막과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절망인 동시에 화해인 폐허가 동시에 떠오르는 사랑하는 소설이다. 헤로도토스의 오래된 글이 이 시대에 얼마나 읽힐 것인가 하는 문제를 굳이 내가 제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언도받은 후부터 지금까지, 늘 『역사』의 어설프지 않은 완벽한 독서를 꿈꿔왔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저/김명남 역
사이언스북스 | 2014년 08월

 

가격 만큼 대단한 책이다. 빌려서도 읽고 못 읽은 채 반납도 하고 개인적으로 두껍고 무거워 반드시 소장해야겠다고 맘먹었지만 가격 때문이 아니라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바로 그 습관 때문에 사들이지 못하고 있다. 뇌과학이나 인지과학이 매력을 알고 있지만 인류의 폭력성에 초점을 두는 작품일수록 끌린다. 우리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한 물음보다 중요한 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를 제대로 아는 것, 알기 위해 애쓰는 힘이다.

 

 

인류의 범죄사

콜린 윌슨 저/전소영 역
알마 | 2015년 10월

 

콜린 윌슨은 문학철학 비평집이라 불리는 『아웃사이더』로 유명하지만 SF 소설을 쓰기도 한 다채로운 이력의 작가이다. 『인류의 범죄사』 역시 자료 취합 능력과 통합 시각이 잘 드러난 인류 범죄의 역사서다. 풍부한 사례와 이론을 잘 정리해서 감각적인 문체로 서술되어 있는 책으로, 이미 한번 읽었지만 소장의 욕구를 누를 수 없다.

 

 

중세 2 : 1000~1200

움베르토 에코 기획 /윤종태 역/차용구,박승찬 감수
시공사 | 2015년 12월

 

 

『중세』 역시 시리즈로 갈 길이 멀지만 소장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게 하는 책으로 2권부터 탐난다. 1000년 정도부터라면 아주 먼 1권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더 수월하게 중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어둠의 시대'나 '암흑기'로 표현하는 중세를 새로 쓰는 일은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과도 겹치지만 어떤 차이가 있을지 직접 읽으며 비교하고 싶다. 사랑하는 작가 에코의 별세 소식에 가장 먼저 이 책이 떠올랐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저/이기숙 역
한길사 | 2003년 12월

 

이십대 내내 부르크하르트의 이 책이 위시리스트에 들어있었다. 물론 구입이 아니라 독서의 의미에서. 르네상스와 이탈리아라는 키워드는 이십대를 관통하는 관심사. 당시 찾을 수 있는 가장 먼 곳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두었다. 책읽기는 마음만 먹는다거나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룩되는 종류의 행위가 아니다. 관심, 의지, 몰입, 지성, 시간(여유)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가능한 영역에 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트

아르놀트 하우저 저/백낙청,염무웅,반성완 공역
창비 | 2016년 02월

 

컬러 도판이 여러 장 삽입된 개정판이 나왔다고 해서 새로 사야 할까 생각했더니 결국 다시 사서 읽고 싶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시 읽어도 언제 어디서나 어디를 펼쳐 읽어도 재미있고 즐거운 사조론이 흔하지 않은 점에 비추면 반가운 세트다. 구판 역시 갖고 싶은 2,3권만 샀었는데 늘 1,4권을 보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세상에, 이제 정말 새로운 세트의 구입과 보관이 절실하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필독서.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거슬러 오를 때 샘솟는 아이디어가 되어줄 것이다.

 

 

리스트를 떠올리기가 벅차서 찾아보려 했는데 어느새 이만큼 꽉 찼다. 책장 하나에 꽂아두고 올해 내내 읽어도 아쉽지 않은 책들만 골라 모은 포스팅에 앞으로 가끔 꺼내보기 위해 책갈피를 꽂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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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읽기를 되새기는 목소리 | 2016 2016-02-2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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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저/송태욱 역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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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철학/사상을 다루는 현대 사상가들의 책은 늘 넘친다. 하지만 막상 읽기 저어되는 경우도 여러 번인 이유는 기존 철학/사상 저서가 먼저인지 해설서가 먼저인지도 중요하지만 원 텍스트를 얼마나 제대로 들여다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했는가 하는 점에서 볼 때 일반 독자에게 주어진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해설서가 넘쳐나는 현대에 마르크스 저작이 아니라 해설서를 읽는 게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상징하는가.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을 선뜻 주문한 이유는 단 하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서술이 가진 서정성과 조근조근함이 참 좋기 때문이었다.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두꺼운 『야전과 영원』이 오히려 사사키 아타루의 이전 저작이라는 것도 받은 책을 펼친 다음이었다. 그리고 다시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으로 돌아가 찬찬히 다시 읽었다. 아주 여러 번 『야전과 영원』이 언급되었다. 그의 주장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행위는 혁명이며, 책은 반복해 읽어야 한다. 또한 매순간 책은 다시 읽힌다.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야전과 영원』으로 돌아갔지만 푸코, 라캉, 르장드르 때문인지 생각 외로 잘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역시 처음부터 읽고 쓰는 일의 거룩한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푸코와 라캉과 르장드르를 해석하는 이 책을 뒤로 미룬 건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을 다시 읽는 일과는 관계 없는 일이다. 독서로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지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는 두번째 그 책을 놨다. '일단 읽고 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사키 아타루의 혁명 속으로 흘러들어가기 위해.

 

저자는 인류 역사 이래 가장 중요한 혁명을 루터에게서 찾는다. 기독교리의 지류이자 출발점인 루터의 거부와 수용을 예로 들며, 읽고 쓰고 설교하고 기도하는 원천의 상징으로 성경을 든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대혁명'으로 언급하며 성경의 등장과 읽기의 혁명을 치밀하게 거듭 추적해나간다. 루터는 성경의 내용을 부정하거나 재해석하면서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고 한다. 온 우주에 단 하나로 취급되던 성경을 반박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자 목숨과 바꿀 죄. 루터가 누린 영광과 박해를 혁명의 부유물로서 높게 취급하고 있다. 법전을 다시 쓰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임을 상기하고, 독서의 혁명을 강조하면서도 정보의 양에 집착하는 행위의 천박함을 지적한다. 양보다 질, 로 단정할 수만은 없지만 읽고 쓰는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진정한 지성의 회복이다. 그렇다, 사사키 아타루의 읽고 쓰는 일은 결국 지성의 회복을 말한다.

 

그에 의하면 피로 싸우는 투쟁보다 먼저 법을 다시 쓰는 일이 혁명이며, 누군가 완벽히 설명(해석)을 했기 때문에 더이상 새로 고칠 것이 없다고 손 놓고 있는 건 혁명이 아니다. 역사는 늘 같은 동시에 다르다. 익숙한 동시에 새로 쓰여진다. 자르고 붙이고 새로 자르고 붙여서 세계와 우주의 중심축을 옮기는 일, 바로 읽고 쓰는 일이다. 루터와 마호메트가 그랬듯, 니체, 프로이트,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고전을 남김으로써 영원히 불멸하는 작가들처럼 우리 역시 이런 방식으로 뜨겁거나 차갑게 살아야 한다, 진지하고 어렵고 뜨겁게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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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벅찼던 삶 속으로 | 2016 2016-02-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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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저/이민아 역
알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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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년 여름 세상을 떠났다. 이토록 다채롭고 진실된, 온 맘을 다해 살아간 삶을 복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의 저작은 우리나라에 대부분 번역되어 있고 꾸준한 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나는 세 권을 읽었는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색맹의 섬』으로 만난 올리버 색스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내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로워 굳이 삶을 가공하거나 채색할 필요 없이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는 작가가 될 자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의 저작들이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많이 알게 될수록 모두 달랐다. 비슷해보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신경/정신장애 사례들이 끝도 없이 솟는 샘물처럼 쏟아지는 의학적 성과에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세 권을 몇 년에 걸쳐 긴 시간을 두고 읽으며 나이와 생각과 지성이 자라는 만큼 감상 역시 점점 변해왔지만 사실 그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신경의로서의 풍부한 경험과 끈질긴 연구를 토대로 (신경/정신장애에 대한) 거대한 사례집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 아닌 자의 진솔한 자서전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온 더 무브』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집필한 걸로 알려지면서 진정성마저 더해졌다. 실제로 그는 평생에 걸쳐 자서전을 계획한 듯 받은 편지는 물론 자신이 보낸 편지 사본까지 보관하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정말 재밌다. 특별히 재미있는 건 그의 유년과 청년 시절이 담긴 전반부인데, 후반부는 주로 신경의로서의 연구 사례와 저작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전하는 데 반해 전반부가 보여주는 젊음의 일탈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영국에서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으로 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색스는 의사인 부모님과 형들로 인해 충분히 평탄하게 엘리트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유년 시절은 물론 청년 시절 그의 삶은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자발적인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다. 때로 일탈이라고 느껴지는 동성애, 마약, 비행을 경험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이 즐겁고 행복한 방향으로 움직였기에 자칫 나쁜 길로 접어들거나 나쁘게 마감할 수 있었던 사건들 대부분에도 자기 본연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일반의로 평범해질 수 있는 순간에 신경/정신장애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는데, 똑똑하지만 정신질환을 앓던 형을 보며 가진 두려움과 안쓰러움이 약간의 계기가 된 걸로 보인다. 관심사를 끈질기게 공부하고 연구하여 끝내 자기 전문분야로 만드는 능력을 보면 어린시절부터 이어진 그의 자발적인 끈기가 대단해서 부럽기도 하다. 과학, 의학,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문학적 재능이 남다르기까지 하니,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걸어가는 용기가 충만한 사람이다. 시력이 나빠지면서 일시적으로 색맹을 앓는 경험, 심한 편두통, 누구보다 간절한 열정, 신경의로서의 끈질긴 연구, 환자를 대하는 절실함 같은 것들이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연인에 대한 사랑과 육체적 쾌락에 대한 단념같은 피 끓는 청춘의 고민들을 지나 신경/정신장애 환자들의 사례를 읽다보면 열 권이 넘는 시중의 저작에 통달한 듯한 기분이 든다. 더이상 그를 볼 순 없지만 남은 자료와 업적, 경험은 신경/정신장애연구가 나아가야 할 미래에 빛을 비춘다. 자서전을 에세이로 여겨 문학으로 분류된 줄 알았는데 인문과 과학 카테고리에 각각 속해 있었다. 올리버 색스가 남긴 수많은 책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널리 읽히며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신경/정신장애를 앓는 소중한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게 만드는 임상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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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가둔 여성의 꿈과 인류의 미래 | 2016 2016-01-3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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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평행 우주 속의 소녀

아일린 폴락 저/한국여성과총 역
이새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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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우주 속의 소녀』는 평행 우주도 소녀도 과학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과학자가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여성이 당하는 성차별 문제를 아일린 폴락의 경험담을 섞어 듣는 이야기다. 과학책이 아니라 성차별에 관한 여성문제를 다룬 인문학 도서다. 제목만 보면 오해하기 딱 쉬운 이 제목은 사실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핵심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다. 여성은 왜 과학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가. 스포츠, 기술처럼 정교하지만 물리적 힘을 요구하는 직업에 대해서는 여성의 부족함을 과감히 인정한다 치자.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던 소녀 아일린 폴락이 물리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하고도 결국 과학자의 길을 걷지 못하고 소설가가 된 사정을 듣다보면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남성에 의해 자행되는 성적 차별에서 나아가 어떤 권력으로 여성을 누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따져보면 과학 분야에서만 유난히 심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공대에 남자가 많은 것처럼 과학 분야 종사자나 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려는 여자의 수가 적기에 상대적으로 더 심한 공격을 받는다. 의학이나 생물학은 물리학이나 생명 공학에 비하면 차라리 나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순수과학이나 기술과학 자체가 소수의 영역으로 할당된 경우가 많고,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아시아에 한정해도 과학에 종사하는 여성의 숫자가 더 적은 편에 속한다. 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학창시절 과학을 잘한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고 대학 강의실에서는 혼자 여자라는 이유로 소외감을 느낀다. 이 책에 사례로 등장하는 수많은 아일린들은 화학, 물리학, 수학 등 분야가 달랐지만 다들 비슷한 이유로 오해를 받거나 과학의 길을 포기했다. 스포츠 경기는 혼성팀을 꾸리지 않으면 해결되지만, 집중과 협력이 필수인 과학은 그럴 수 없으니 여성과 과학이라는 비정상적으로 연결된 인식 구도를 깨뜨리는 것만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번째 열쇠가 된다. 과학을 잘 하는 여자는 여자답지 못하고 괴팍하다는 인식과 무의식 속에서 한번도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채 물러나야 했던 심정을 담담하게 기술하면서 조언으로 이끌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결국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는 말이 공허와 변명으로 들리지 않도록 다음 세대 소녀들이 과학을 맘껏 사랑하고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취업의 경우 건설, 전자, 기기, 엔지니어링, 자동차 쪽으로 이어지는 공대의 경우가 다르겠는가. 관심의 특성상 여성이 적을 수는 있지만 적은 수의 여성이라고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환경을 고착화하는 남성들의 뿌리깊은 이기심과 차별의 일상화가 공정한 연구와 사회발전을 저해한다면 마땅히 지적받고 고쳐야 하는 일 아니겠는가. 공부하고 싶다고 연구하고 싶다고 소리치는 각자의 목소리들이 얼마나 희미하게 힘과 권력과 차별 앞에 무너졌을지 생각하면 억장이 내려앉는 심정이다. 구조적 차원에서 충분히 해결될 만한 일을 단순한 인식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분야를 고립시키는 일이 결과적으로 남성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여자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자신들이 설 곳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면 연구와 공부에 더 힘쓸 일이다. 하나의 회사에서도 여성은 쉽게 소외되고 차별 당한다. 일방적 성의 압박으로 차별 당하는 과학 꿈나무들이 없기를 바라며 저자는 썼을 테지만, 우리나라처럼 과학이나 공학 자체가 남성화 되어있는 곳에서 한층 더 여성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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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왔다간다 | 2016 2016-01-3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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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저/조현욱 역/이태수 감수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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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서 읽기를 올해 목표로 정했지만 물리/화학/우주/생물/의학/공학 등 다양한 분야가 혼재되어 있고 걸맞는 책을 찾기도 어려워 부담이 됐는데 『사피엔스』를 읽으며 다윈보다는 미래 기술 과학 분야나 생명 과학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읽겠다고 결심했다. 원래 관심 없던 분야인데, 늘 과학 지식은 가장 아래층부터 차곡차곡 차근차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필립.K.딕의 『유빅』을 읽을 때 등장한 기술들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곧 도래하리라는 기대에 신났다. 예를 들면, 최근 기사에 원숭이 머리를 이식하는 작업이 성공해서 곧 사람에게도 시험 가능할 거라는데, 성공을 주장한 중국은 혈관 이식에만 성공한 거라지만 언젠가 가능한 날이 오면 사람에게도 가능해지고 그러면 과학 기술 개발 끝에 늘 등장하는 인간의 윤리적 문제는 한층 심각해질 것이다. 또 몇 백 년 안에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에 나오는 만들어진 아이들이 단지 개발 수준이 아니라 윤리성 문제를 뛰어넘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갖게 한다. 인간의 한결같은 소망은 결국 지금 가능한 120년을 훌쩍 뛰어넘는 무한한 수명일까.

 

리뷰를 미래에서 시작했지만 『사피엔스』는 아주 옛날, 유인원이 수렵 채집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된 역사와 오지 않은 미래를 동시에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반면, 한 권의 책이 다음에 읽을 수없이 많은 책을 불러온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왔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정말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날이 올까. 저자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세 개의 중요한 혁명을 지적하면서 여러 개의 호모 종 중에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는 사라지고 호모 사피엔스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유를 추적한다. 왜 골격과 뇌가 훨씬 더 컸던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를 능가하지 못했을까. 오늘날 인간이 사육하는 소, 돼지, 양, 개와 다를 바 없던 호모 종 중 하나인 사피엔스는 왜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는 종이 되었을까.

 

영화가 담아내는 과학 이야기는 대체로 어느 시점에 그치기 때문에 유흥거리를 벗어나기 힘든 면이 있었다. 『사피엔스』는 스토리를 가진 과학 에세이이자, 과학을 담은 인문 에세이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유익하며, 적지 않은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큰 틀에서 긴 시대에 접근하기 때문에 흡수력이 빨라야 하지만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잘 읽히면서도 순간순간 생각할 문제를 던진다. 갑자기 뿌듯해지는 종에 대한 자부심은 그리 오래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 거대한 시대의 토론장에 초대받은 느낌이 끝까지 이어지는 건 분명 서술의 장점이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로, 세계사를 강의한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 그리고 인문학자다. 과학을 내러티브화하고 스토리화하는 능력은 그가 역사를 가르치기에 가능할 것이다. 과학전공자가 과학에 대한 글을 쓸 때보다 비과학전공자가 과학에 대한 글을 쓸 때 대중에게 친숙한 건 아마도 지식을 서술하는 능력/감각 때문일 것이다. 역사 분야든 진화론 분야든 전문가가 지성을 과시하는 식의 서술이 아니다. 서술방식이 통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을 참작할 만한 작가의 노력은 누구나 읽고 이야기하기 쉽게 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인류사라는 점이다.

 

과거를 알고 미래로 나아가는 자는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워 미래에 써먹을 줄 안다. 도구 사용, 언어 사용, 직립보행,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사피엔스가 사피엔스이기 위해 선택한 선택들이 우리를 만들었듯, 미래 어느 시대에 또 사피엔스 종처럼 똑똑한 종이 나타나지 말란 법 없다. 유전 공학과 로봇 공학이 인간 본성을 해칠 만큼 심각하다면 사피엔스 종이 우위에 있다고 가장할 경우 제어할 무언가가 아무도 없다는 게 가장 문제다. 다른 생명체들이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이 책을 보면서 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모의를 시작할 것 같다. 많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또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관련 분야를 많이 읽은 독자는 저자의 결론이 뻔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얻는 게 단 하나 뿐이라도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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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상상하라 | 2016 2016-01-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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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저/이재원 역
이후 | 200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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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이 『타인의 고통』에서 이야기하는 고통 역시 『은유로서의 질병』에 나오는 두 편의 에세이와 어떤 지점에서는 정확히 일치하는 메타포를 갖고 있다. 질병에서 고통으로 소재가 바뀌었을 뿐. 우리가 사진이나 TV 화면, 영화 스크린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살인사건 현장, 전쟁 실황, 아프리카 대륙 기아의 상황을 볼 수 있을까. 실제로 형사, 종군 기자, 군인, 활동가 들이 아닌 일반 대중들이 특히 전쟁이라는 스펙터클한 상황을 사진으로만 봤을 때 그 이미지에 중독되지 않는 예민함과 날카로움의 시각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거나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TV 앞에 앉아 화면 속 뉴스 자료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때로 앵커의 생생한 설명을 덧붙여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가. 또 전쟁이구나, 저기서 어떻게 살지, 내가 아니라 다행이군, 어느 나라가 잘못했네, 쟤네들은 또 왜 저러는 거야, 아직도 싸워? 전쟁 무기 돈 많이 들었겠다, 이상의 반응을 1분 정도 보이다가 그대로 잊고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

 

우리가 잔인하게 묘사된 폭력과 죽음, 전쟁의 이미지 앞에 다른 반응을 보이기가 매우 힘든 건 실제로 내게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에 타고 있다가 살 수 있었음에도 애처롭게 잃은 아이들이 나한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일어나는 분쟁과 전쟁은 내가 보는 게 전부일까? 내가 보지 못하면 일어나지 않는 일인 걸까? 이슬람국가(IS)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오렌지색 옷을 입혀 참수하고 화형하는 사람, 내전과 분쟁으로 제 고향에서 살 수 없어 목숨과 재산 전부를 걸고 험한 바다를 안전에 대한 담보 없이 건너야 하는 사람, 잘못돼서 바다에 떠다니다 모래사장으로 휩쓸려 온 난민 꼬마,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 우리는 얼마나 방관하고 얼마나 안전했으며 또 얼마나 진실에 대해 몰랐나.

 

집을 잃은 것만으르도, 하루 굶는 것만으로도, 부모를 잃은 것만으로도, 재산과 터전을 잃은 것만으로도 고통 스러운 이들에게 방관이라는 이름으로 두번 상처 주면서 나를 안도하는 빌미로 삼는 일은 우리가 지금껏 타인의 고통 앞에 수없이 해온 일이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말한 아렌트처럼 이미지로만 겪는 타인의 고통 앞에 우리의 비도덕성을 묻고 세계의 연결성을 강조하며 잃어버린 죄책감 혹은 죄의식을 되살리려는 손택의 노력이 가상하지만 뻔하게 보이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의 왕국 속에 나오는 단지 먹기 위해 살아가는, 내가 살기 위해 내 옆에 있는 애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안전해지는 다른 동물과 다를 바가 있을까. 물론 『타인의 고통』을 통해 손택이 주장하는 바가 타인의 고통을 두고 인간의 도덕과 비도덕성을 시험하자는 게 아니지만, 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면서 인간 자체의 고통을 나누자는 게 핵심이다. 모래사장으로 떠밀려 온 난민 꼬마의 사진 한 장이 세계에 일으킨 파장은 그 어느때보다 강했고, 연민을 넘어 주변 국가들의 난민 정책을 느슨하게 했지만, 이후 아랍(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연이은 폭탄테러가 또한번 우리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물었다.

 

손택이 말하는 사진(이미지)의 특성은 즉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폭격으로 집이 사라져 기아로 떠도는 어린아이 사진을 봐도 얼마나 가까운 미래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빨리 도달해도 사진은 결국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보다 느리다. 뉴스가 가장 빠른 소식을 전달해준다 해도 결국 전쟁 후, 자연재해 후, 죽음 후의 결과나 폐허를 화면으로 보여줄 뿐이다. 전쟁의 포화 속으로 직접 들어가 촬영했다고 해도 그걸 대중에게 내놓는 시간은 훨씬 후일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어느 방송국도 전쟁을 실황 중계에서 보여주는 곳은 없다. 타인의 고통을 두고도 누구보다 민감하게 연민하고 공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하나의 악의 섞인 댓글이 궁극적으로 사람 하나를 죽게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익히 알려졌다. 손택의 세상에는 사진과 카메라가 전부였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인터넷과 SNS라는 매체가 있다. 전쟁의 생중계를 일부 볼 수도 있는 수단이 과학적으로 마련된 세상에 산다. 그러면 연민과 공감의 농도는 더 짙어졌을까. 누군가의 고통을 더 쉽고 빠른 수단으로 접하면서도 왜 우리의 연민과 공감의 밀도는 예전보다 더 높지 않을까. 오히려 더 심한 자극과 강도높은 잔인함을 즐기고 있을까. 이게 인간의 속성일까.

 

이미지 과잉의 현대 사회에서 쉽고 빠르게 끔찍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독인 경우가 많다. 익숙해지고 일상화 되어 오히려 더 많은 타인을 같은 방법으로 공격하게 하기도 한다. 사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손쉽게 이미지를 남길 수 없던 시절에는 왕이 길거리를 지나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고, 고문을 비롯한 형벌과 능지처참 같은 처형은 더욱 강렬한 이미지로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됐다. 잔인한 이미지조차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린 지금과는 확연하게 달랐던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연민이 실제 생활에서 갖는 마음가짐에 영향을 크게 주기도 했다. 그때는 타인의 고통이 단지 순간의 유흥거리나 오락거리가 아니었다. TV, 영화, 인터넷 등 너무 자주 타인의 고통에 접하면서 오히려 더욱 무관심해지고 정통해지고 거르기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사진(이미지)은 실제인가. 이 문제는 소비, 관음증, 포르노그래피적인 이미지를 향한 비판과는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사진은 왜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잔인해지고 포악해질까.

 

이미지와 시공간의 즉시성이 대중에게서 생각하고 사유하고 상상할 자유를 앗아갔다고 볼 수 있다. 상상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낸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빼앗겨야 한다는 역설은 많이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지식에 대한 갈구와는 조금 다른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허구적 일회성을 극복하는 건 매체 탓이 아니라 인간성 회복과 함께 생각해볼 문제다. 생생한 이미지와 따끈한 화면이 있어서 가능했던 많은 기술적 이득까지 잃어버린 인간성에 넘겨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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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4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