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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 연재소설 <해적판을 타고>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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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출간 | 책 밖에서(안부) 2017-11-02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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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봄 초입까지 이곳에 연재했던 소설이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노란 빛이 꼭 병아리 같죠.

 어떤 병아리들은 닭이 되고요.

 책이 되기도 하고.

 책은 또 산책이!

 우리가 함께 산책했던 겨울과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고, 이제 가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종종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렇게 책으로 묶여서, 이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는 건 초반부뿐이랍니다.

 저 노란 책을 보시면, 반갑게 인사해주세요^^

 

 연재하던 때처럼, 아침에 글 올리는 기분이

 새록새록, 좋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기를^^

 

 -윤고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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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 책 밖에서(안부) 2017-04-1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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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는 24시간이 아니라 72시간 단위로 살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 , , 3일간 글을 쓰고 목요일에 소설을 올린 후, , , , 3일간 글을 쓰고 다시 월요일에 올린다. 목요일 하루 정도는 좀 느긋해지기도 하니, 일주일은 7일이라기보다 3+1+3의 합이 되어버렸다.

    

  3+1+3 시스템이라는 건 일단 일주일에 한번씩 손톱을 깎던 걸 일주일에 두 번씩 깎게 된다는 걸 뜻한다. 나는 여행하는 경우가 아니면 손톱에 뭘 칠하지 못하는데, 손톱까지도 노동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손톱이 민낯 그대로 숨을 쉬어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거라고 믿고 있다. 컴퓨터 자판 위의 활자를 반질반질하게 만드는 건 결국 손가락 끝이기 때문에 손톱의 길이도 중요하다. 너무 길면 안 된다. 그렇다고 바짝 깎아서 너무 짧은 상태도 곤란하다. 글이 안 써질 때마다 손톱을 깎으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정작 글이 안 써질 때 손톱을 더 깎을 여지가 없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운가. 아무튼 사흘에 한번씩 점검하느라 손톱조차도 대체 이게 뭔 일이래하는 요즘이다.

 

  내가 YES24-블로그에 소설 <해적판을 타고>를 연재하기 시작한 건 올해 1월부터였는데, 덕분에 새해 계획도 이미 무너졌다. , 매해 이월되는 재고품들 있지 않은가. 매일 운동하기, 매일 외국어 배우기, 매일 규칙적인 수면과 건강한 식사하기, 심지어 하루에 물 7컵 마시기까지. 다시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뭐랄까, 중학교 졸업앨범을 펼쳐서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동창의 이름처럼 낯설다. 새벽 두 시에 크리스피크림도너츠를 먹었다면 다 설명되지 않는가. 이미 다른 건 다 끝장난 것이다. 외국어라니 사치스럽기도 하지, 연재물을 업로드하고나면, 한국어조차도 어버버버한 상태가 되고 만다. 최근에는 주민생터 앞에 마용이가라고 말을 해서 동행이 뒤집어졌는데, 원래 전하려던 뜻은 주민센터 앞에 야옹이가였다. 의지의 표현으로 운동복을 외투 속에 입고 나왔다가도, 카페에서 글을 쓰고 나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참고로 운동복의 근육 잡아주는 기능과 땀 흡수 기능은 글 쓸 때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게 다 연재 때문이다. 이 긴장감이란 게 조금 과장하자면 결혼식을 앞둔 신부에 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두 달 반, 그리고 앞으로도 남은 몇 주를 나는 주2회씩 결혼식을 올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결혼식 전날까지도 평소처럼 운동을 가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 어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드니 좀 드물겠지!’로 정정하겠다.

 

  장편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이렇게 구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연재방식을 선호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연재를 선호하는 편인데, 일단 마감일이 규칙적인 리듬처럼 다가오는 게 좋고(마감을 견디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책으로 묶기 전에 규칙적인 원고료를 받을 수 있어서다. 모든 작가들이 이런 이유로 연재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재가 조금 더 안정적인 창작환경을 만든다는 걸 부인할 작가는 없을 것 같다. 나로서는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안전벨트 없이 전투기에 올라탄 느낌이 들기 때문에, 글을 쓰는 환경은 좀 안정적이기를 바란다.

 

  소설 연재를 하는 작가들을 또 이렇게 나눠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완성된 원고를 가지고 시작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 소설이란 건 네모난 틀 안으로 반죽을 집어넣어도 둥근 형태로 출력될 수 있는 세계라, 원고가 애초에 있었냐 아니냐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기도 하지만. 나는 원고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게 해본 적은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사전 제작같은 건 하지 못했다. 어떤 방향과 스케치 정도만 갖고 시작한 거라 부담감이 너무 컸다.

 

  소설 연재가 처음은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장편소설을 세 차례에 나눠 계간지에 연재한 적이 있었는데, 온라인 연재는 또 다른 지면이었다. 일단 분량에서도 차이가 있어서 계간지 연재가 훨씬 많은 분량의 원고를 한번에 내고 그걸로 한 계절을 간다. 그에 비해 온라인 연재는 더 적은 분량을 더 자주 올린다. 정해진 규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대략 20-25매 사이로 1회분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올리는 것도 연재의 부담요소 중 하나였다. 이른바 절단신공이 필요한 것 아닌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끊어야 할지에 대해, 그 절취선에 대해 고민했던 건 오히려 연재를 시작하기 전이었던 것 같다. 막상 연재를 시작하니 어느 지점에서 끊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독자와 작가가 서로의 호흡을 알아채게 되어 어떤 전략 같은 건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건 좀 예상 못했던, 놀라운 경험이었다. 마치 한 시간 내내 전화로 수다를 떨고서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만나서라고 말하는 친구 사이 같다고나 할까. 다음 회에 또 얘기를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온라인연재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 독자들의 반응 속도가 그렇고, 작가가 원고를 마무리한 후 지면에 게재하기까지의 속도가 그렇다. 어느 독자 한분은 내가 직접 원고를 업로드한다는 사실을 알고 최종적으로 클릭하는 순간 기분이 어떨까를 상상해봤다고 했다. 정말 이 세계에서는 클릭하는 순간 원고가 바로 독자에게로 가니까. 작가가 원고를 보내고 편집부의 교정 단계를 거쳐 인쇄되어 나오는 그 시간이 몽땅 증발한 것이다. 더 빠르고 더 쉽고 더 날것의 상태다. 온라인연재는 또, 이인삼각 달리기 같은 거여서 작가 혼자 뛸 수가 없다. 나는 오랫동안, 밤샘을 하지 못한다고 믿어왔는데, 지난 계절에는 밤을 통으로 열어둔 적도 꽤 있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해적판을 타고>로 아침을 시작한다.’ 던 댓글이 떠올라서였다. ‘혹시나 싶어서 새벽에 들어왔는데 원고가 있어서 반가웠다는 댓글은 약속한 시간보다도 좀더 일찍 원고를 올리도록 부추겼다.

 

  언젠가부터 겨울이 오는 걸 꽤 두려워했는데, 일조량 때문일까 겨울엔 좀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에 점등했던 불을 끄는 순간 내 기분도 서서히 갈변되는 것 같았다. 그런 계절의 한복판에서 연재를 시작하게 된 것이 내 스스로도 참 의아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연재가 겨울을 견디게 했다. 3+1+3의 계산법으로 지내오는 동안 어느새 겨울을 건너왔던 것이다. 매일 아침, 갓 구운 빵을 내놓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하면서.

     

(3+1+3Vogue 4월호 수록)

 

  

    

#

잘 지내시지요, 윤고은입니다.

최근 해적판을 타고연재에 대해 쓴 글이 있어 가져왔어요.

 

지난 목요일에 마지막 이야기를 올렸고,

이제 월요일. 같은 패턴으로 예스블로그에 들어왔지만

목요일과 월요일 사이에 엄청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아마 이야기를 마무리했기 때문이겠지요.

꽃이 올 때까지 함께 산책하자고 말씀드렸는데,

아침 꽃과 저녁 꽃이 다르더라고요. 점점 더 활짝. 정말

꽃이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뒤로 빠지라는 손짓을 하네요^^

 

 

연재 중에 공간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댓글을 봤는데

혹시 방해가 될까봐 답을 달지는 못했고요.

이제 말씀드리자면,

풍력발전단지의 이미지는 탄도항(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빌려왔어요.

물론 풍송동이란 지명과, 그 동네의 분위기는 상상의 산물이지만

갯벌과 등대, 바닷길, 풍력발전기는 실제로도 존재하는 풍경이에요.

 

풍력발전기를 담고 싶어서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여러 곳을 고려했는데 

탄도항, 세 기의 소박한 풍력발전단지가 마음에 들어왔답니다. 

 

 

풍력발전기 날개의 그림자 같은 건 그곳에 가서야 발견한 장면이었습니다. 

날개의 그림자가 리드미컬하게 돌아가는 걸 보며 위안을 받았어요.

 

 

두두두두 소리를 내는 생떽쥐베리도 제가 어느 오후, 눈에 담아둔 풍경이고요. 

 

#

해적판을 타고, 는

절반은 카페에서, 절반은 집에서 썼습니다.

 

 

주문하는 커피 사이즈에 따라 그날의 작업의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쓰다보면 커피가 맹독성 우물처럼 보일 때도 있고, 너울성 파도처럼 위험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카드도 만들었죠.

 

그리고 집에서는,

제 책상 위를 보니 차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책상 위의 물건 중 상징적인 걸 딱 하나만 올리기로 했습니다. 

 

 

 

고무망치입니다.

아마도 조립식 가구 뭔가를 주문할 때, 이 망치를 열심히 두드렸던 것 같은데 

그게 왜 제 책상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었을까요.

제 책상 위가 정글 같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고무망치 캐스팅!

결과적으로 이 고무망치도 소설을 함께 쓴 걸로요. 몰래!

고무망치는 확실히 소음을 적게 동반하지만, 그래도 힘을 실어 전달합니다.

고무망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작위적일 수 있으니, 관두기로^^

   

 

#

해적판을 타고, 는 다음 계절에 책으로 나올 거예요. 

지난 계절부터 함께 산책해주신 분들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을 볼 때마다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막연히 기다리다가, 답장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봄에 헤어지게 되어 그래도, 다행이에요. 

계절 타령이라니, 좀 감상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겨울을 통과할 때마다 어떤 강을 건너는 느낌이 나서요. 

세 달간의 산책 함께 해주신 분들, 건강하시고요.

 

어떤 산책은 이렇게 마무리되지만

산책자들은 늘 걷고 있으니, 언제든 마주치겠지요^^

편안한 봄밤 보내세요.

 

-윤고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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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위에서 자라는 | 책 밖에서(안부) 2017-02-17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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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고은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이제 이야기가 절반을 통과했습니다.

 

유나네는 결국 이사를 했고요.

해적판도, 또 새 인물도 등장했어요.

해적판에 대한 추억, 제 예상보다 더 많이 가지고 계신 것 같아

신나서 댓글을 봤습니다.

댓글 속의 풍성한 정보들을 보며 놀랐고,

또 해적판의 의미를 한 단계 깊게 해석해주신 걸 보며 감탄했답니다.

 

그리고 유나의 남사친 뒤뒤! 

유나에게 뒤뒤가 있어 다행이라고 말씀해주신 분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유나에겐 책과 집을 벗어나 산책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은데,

뒤뒤는 좋은 길동무가 될 거예요.

아직 연재가 진행 중이라 제가 너무 수다스러워지면 주책일 것 같지만

살짝 고백하자면, 뒤뒤와 유나의 관계에서는 봄맞이 제 사심이 살짝 반영되었다는 것!

제 회춘 의지의 표현이랄까요^^

 

소설 속엔 벌써 봄이 와 있고,

우리에게도 지금 봄이 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당에 있는 폐기물을 잊을 수는 없겠지요.

 

저는 쓰레기-폐기물이 흘러가는 경로에 자꾸 시선이 가서

지금까지 여러 소설에서 쓰레기의 이미지를 활용했어요.

그러다 이번 소설에서는 폐기물을 내 집 마당에 묻게 되었습니다.

끔찍하게도,

유해폐기물을 내 집 마당에 묻은 건 소설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이미 선점한 장면이에요.

 

후쿠시마 사고 이후를 다룬 뉴스에서 

방사능 폐기물을 묻은 어느 집 마당을 본 적이 있었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표정도요.

기억 속에 각인된 장면이었는데,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당을 빌려주세요' 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보게 된 거예요.

그 현수막은 쓰레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었는데, 그 순간

이 소설의 첫문장과 대략의 줄기가 떠올랐어요. 

이 소설에서는 방사능폐기물이 아니지만,

위험한 폐기물을 잘못 버려 일어나는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여전합니다.

 

슈퍼지렁이와 중금속의 관계, 궁금하다고 하신 댓글을 봤는데

실제로 영국에서 중금속에 내성이 있는 슈퍼지렁이가 발견되었다고 하고요. 

토양 오염으로 인해 지렁이가 변해버린 거죠.

일본에서 슈퍼지렁이가 발견된 기사도 있었죠.

지렁이뿐 아니라 여럿, 후쿠시마의 영향으로요. 

이 소설 속에서 슈퍼지렁이의 역할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니 잊지 말아주세요^^

 

수상한 폐기물을 발 아래 두고 성장하는 열다섯 살.

유나의 이야기는 그렇습니다만,

그게 과연 유나 만의 이야기일까, 그런 생각으로 쓰고 있습니다.

 

전 월요일 아침, 열세 번째 이야기로 오겠습니다.

좋은 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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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7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26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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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막내는 그 비밀이 뭔지 목격한 적도 없었다. 엄마가 차 안에서 방귀를 뀌었다던 ‘저번’은 막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니까. 그건 내가 막내에게 해준 이야기였고 막내는 들어서 알았을 뿐인데, 말이란 게 그렇듯 막내의 기억 속에서 몸을 부풀렸다. 엄마는 이렇게 보탰다.

 

  “차 안에 있는 식구들 때문에 좀 참아볼까 했는데, 참다가는 내 안에 있는 식구가 괴로울 것 같더라고요. 바로 요 녀석 때문에요.” 

 

  막내는 코를 틀어막는 시늉을 하며 웃었고, 기자들이 돌아갈 때는 배꼽인사를 하며 배웅했다. 잔칫날이었다. 집은 깨끗했고 예뻤다. 오랜만에 최상의 상태였다. 며칠 더 손님들이 이어졌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엄마의 친구들이 다녀갔고, 수요일에는 아빠네 팀원들이 모일 거라고 했다. 엄마는 추어탕을 끓였다. 매년 가을 꼭 한번은 집에서 만드는 음식이었다. 아빠가 팀장이 된 이후로 엄마는 추어탕을 끓이면 팀원들을 초대하곤 했다.

 

  나는 추어탕 냄비를 들고 서서 마티할머니네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이 열리자 마티가 먼저 나와 우리 집 쪽으로 움직였다. 서너 걸음이나 옮겼을까? 늙은 개라 민첩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필요 이상으로 거칠게 마티를 붙잡았다. 체념한 듯이 할머니 품에 안기는 개를 보고도, 할머니는 혹시 마티가 우리 집 쪽으로 갈까봐 경계했다. 오래 전에는 마티가 우리 마당을 뛰어다니며 놀았던 적이 있고, 우리 역시 할머니네 마당을 뛰어다닌 적이 있었는데 여름 이후 또렷해진 변화였다. .그런 몸짓을 보고 있노라니 추어탕이고 뭐고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늘 얌체 같은 분이었다. 오늘 심은 양파를 수확할 때면 늘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에게도 나눠 드리겠지만, 할머니에게서 뭘 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주말에 뭘 하던데, 뭘 한 거니?”

 

  “잡지 촬영이요. 심플라이프.”

 

  “요란하다, 요란해.”

 

  “시끄러우셨어요?”

 

  “마음이 시끄러워. 너희 마당 쪽만 보면, 불안해서 못 살겠다.”

 

  마티할머니의 말대로라면, 나는 불안과 한 이불을 쓰고 동거하는 셈이었다.

 

  “이건 뭐니? 아, 추어탕인가.”

 

  그렇다고 하자 마티할머니는 마치 배달음식을 받듯이 당연하게 냄비를 받았다. 그러면서 제피가루를 잘 썼나 어쩌나, 라고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아빠는 저녁 무렵 루와 함께 왔다.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 있었고, 아빠의 팀에서 두 명이 다른 팀으로 이동해서 현재 아빠의 팀원은 루 한 명 뿐이었다. 곧 채워질 거라고는 했지만 뭔가 어수선해보였다. 두 사람은 마당에 있는 나무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나와 둘째가 부엌에서 마당까지를 오가며 음식을 날랐는데 어느 순간, 루가 이렇게 말하는 게 귀에 쏙 들려왔다.

 

  “소장은 거의 좌천된 거라던데요.”

 

  그 말에 아빠의 표정이 얼마나 어두워졌는지, 아빠는 바로 옆에 덜컥 앉아버린 딸을 의식하지도 못했다. 표정을 한 겹도 코팅할 여력이 없어보였다. 소장이라면 아빠에게 폐기물에 대해 약속했다던 그 사람 아닌가. 나는 ‘좌천’이 뭔지 얼른 검색해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꼈다.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소장 쪽 라인이 다 무너졌다던데. 이제 소장도 뭐, 그냥 아저씨죠. 어디서 만나도 편하겠죠, 이제.”

 

  루의 말투가 좀 웃겼는지, 어느새 루 옆에 앉은 막내가 그 말을 따라했다.

 

  “뭐, 그냥 아저씨죠? 뭐 그냥 아저씨죠.”

 

  아빠가 술을 연거푸 두 잔 들이켰다. 아빠가 소장이 그냥 아저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루는 그게 무슨 뜻인지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바람이 배롱나무를 마치 탬버린처럼 흔들었다. 우수수 나뭇잎이 떨어졌다. 루가 허리를 굽혀 붉은 나뭇잎 하나를 주워들고는, 막내에게 손을 내밀어보라고 말했다.

 

  “선물! 자, 저기 가서 놀아.”

 

  손바닥 위의 나뭇잎을 가만히 보던 막내가 그걸 꼭 쥐고 제 형에게 달려갔다. 둘째가 조금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난 또 돈이라도 주는 줄 알았지.”

 

  막내가 그 나뭇잎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저녁에 옷을 벗다가, 내 후드티셔츠의 모자 속에서 은행잎 하나를 발견했던 순간은 명확하게 기억한다. 우리 집에는 은행나무가 없었는데 어디서 온 걸까. 은행잎은 아직 덜 자란 것처럼 보였다. 막내의 귀보다도 더 작았으니까. 나는 그 은행잎을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심플라이프 촬영일로부터 일주일 쯤 지났을까. 우리를 취재했던 기자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우리 이야기를 이번 11월호에 넣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 가족이 그 지면에 나가는 게 적절치 않다고 익명의 누군가가 잡지사로 건의를 해왔고, 잡지사에서도 회의 결과 무리수를 두지 말자는 결론이 났다는 거였다.

 

  그 누군가가 제보한 내용은 이랬다. 우리 마당에 몇 달 전 수상한 공사가 있었고, 그 공사는 센터의 폐기물과 관련된 걸 거라고.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아는 것과 정확히 일치했으니까. 다만 우리 모두 그 다음 내용까지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 센터에서 이런 식으로 폐기물을 매립한 적이 처음은 아니며, 어쩌면 우리 마당은 이미 중금속 오염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엄마는 기자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라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가 공사를 했던 건 사실이지만 센터의 폐기물과 관련된 게 아니라 단지 마당에 저장고 공사를 한 것뿐이다, 누가 그런 소문을 낸 것이냐, 사실이 아니다.

 

  분명한 건 잡지사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꼭 담아야 할 그런 사람들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도 중요하지만, 때로 어떤 세계는 소문 자체로도 타격을 입거든요.”

 

  기자는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게다가?”

 

  사진작가가 그날 열심히 찍었던 사진들 중에는 꺼림칙한 소문을 뒷받침할만한 것도 몇 장 있었던 것이다. 찍는 사람도 찍히는 사람도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 예를 들면 슈퍼지렁이 같은 것. 기자는 그날 찍은 가족사진 중에 잘 나온 몇 장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다. 기자는 우리의 기사를 잠시 보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앞으로도 심플라이프에 우리가 들어갈 지면은 없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무기한 보류된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지난 여름 이후로 우리가 늘 마당 생각만 하고 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당으로부터 아주 자유로웠던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는 마당에 대해서 우리가 좀더 생각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문이 불어나 있었다. 마치 우리의 마당이 잡지 편집에서 제외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대문 밖에서 도는 그 소문에 가속이 붙었다.

 

  엄마의 추궁에 아빠는 우리 마당 아래에 묻힌 토끼들이 실험에 활용되고 버려진 종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다음 말을 들어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실험에 활용되기도 전에 이미 다른 방식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실험동물에게 마취주사를 쓰지 않는 건 아주 조금의 변수도 두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중금속 오염이라니. 그 토끼들은, 이 토끼들은, 실험용으로 부적합했다. 비소가 기준치 이상으로 많이 검출되는 폐기물이었지만, 센터는 감사를 앞두고 있었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폐기물이 필요 이상으로 확대 해석되어 센터를 뒤흔드는 문제가 되는 걸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내부에서 해결하자는 데 모두 합의를 했고, 그 내부에서 선택된 이가 아빠였다.

 

  아빠는 컨테이너박스로 지하저장고를 만든 이웃 이야기를 했고, 조만간 아빠도 그걸 만들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연구원들끼리 차 한 잔 하면서 주고받은 얘기였다. 사실 우리는 그때 컨테이너박스로 지하저장고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때로는 말이 앞서가고 행동이 그를 뒤따르는 경우도 있으니까. 아빠가 지하저장고를 팔 거라는 얘기를 며칠 전에 했다는 이유로, 또 이미 실험동물을 마당에 자의로 묻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마당 아래를 관통하는 다른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가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감사 기간만 넘기면 다시 회수해 갈 거라고 했다. 센터에서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랬다. 우리는 그렇게 마당을 빌려준 것뿐이었다.

 

  잔인하게도 심플라이프에서는 11월호가 발행되자마자 우리 집으로도 한 부를 보내주었다. 예상대로 거기에 우리 마당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건 우리에게 또 한번 취재 요청이 왔다는 것인데 잡지 이름이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과학과 우리’ 였는데, 거기서는 ‘중금속을 먹고 크는 슈퍼지렁이’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다. ‘과학과 우리’의 기자가 몇 번 더 전화를 했지만,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설 연휴로 월요일은 쉽니다. 8회는 다음 목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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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 장면 | 책 밖에서(안부) 2017-01-26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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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고은입니다.

 

7회 원고를 가지고 왔어요.

대략 25회까지 진행될 예정이니

이제, 전체 분량의 1/4 을 넘긴 셈이네요.

처음에 제가 소설을 8시에 올리겠다고 말씀을 드려서

(실은 예약글 기능이 되는 줄 알고!)

알람시계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8시에 가까이 가려고 했어요 ㅎ

그런데 이른 새벽에,

<해적판을 타고>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

요즘엔 자정부터 8시 사이에, 최대한 일찍 올리고 있어요.

올려주시는 댓글들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많은 응원이 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한 장의 사진을 들고 왔는데,

마당 삼남매의 모델이 된 아이들이랄까요.

소설의 아이들은 열두 살, 일곱 살, 네 살이니

사진 속의 아이들과는 나이 차이가 좀 있지만 

세 명이 모여 있는 느낌, 그 앞에 놓인 책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진 속에서 가장 많이 치장한 아이가 저예요. 크흐.

다른 둘은, 지금 이 사진의 용도를 전혀 모를, 제 사촌들입니다!

 

가끔 그런 게 참 궁금한데,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장면이 언제일까.

몇 장면이 떠오르긴 하는데, 사진 속처럼 어린 시절은 아니기도 하고,

어쩌면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상상해보던 게

제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걸로 재구성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이 사진만 해도

물론 전혀 기억나지 않는 순간인데, 자꾸 그려보니까

없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기억나더라는' 거예요.

 

말이 길어졌네요.

전 이제 7번째 이야기를 올리러 가겠습니다. 

참, 다음주 월요일은 설 연휴로 휴재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 다음주 목요일에 8번째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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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6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2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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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건물 맨 꼭대기엔 피아노학원 간판이 걸려 있었다. 쌀집 간판 아래서 분식을 판다거나, 미용실 간판 아래서 구두를 파는 가게를 본 적이 있지만 이건 좀 당혹스러웠다. 폐기물 보관소니 소각장이니 하는 시설이 어떤 형태일지 상상해본 적이 없었는데도 확실히 지금 저런 건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둘, 셋. 지상으로는 3층 규모의 건물이었는데 아주 평범했다. 뭐랄까 솔직히 저 건물보다는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간 그 컨테이너박스가 더 정교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마당은 쓰레기장이 아니니까. 분명히 임시로 빌린 거라고 했으니까, 연말까지만. 그렇지만 센터에서 처음에 약속한 시간이 가을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연말이 되어서 또 뭐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빠와 루가 계단 아래로 내려가 지하를 확인하고 올라오는 동안 나는 차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 아래를 보지 못했다. 조금 후에 아빠가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남은 담뱃갑을 지하로 가는 계단 첫 줄에 내려놓는 게 보였다.

 

  오늘 내가 어떤 불안을 감지했다면 그건 아빠와 루가 주고받은 말보다는 두 사람이 방치한 침묵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반에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끊이지 않았지만, 해질 무렵 우리가 다시 미소약국으로 돌아올 때 차 안에는 거의 정적만 흘렀다.

 

  “전 솔직히 설마 진짜 여기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뭔가 착오가 있을 겁니다.”

 

  루의 말에 아빠가 월요일에 다시 확인해보자고 대꾸한 게 전부였다.

 

  “엄마한테는 헤맨 얘기는 하지 말자. 아빠가 담당자한테 다 연락해뒀거든? 확인하고서 다음주에 엄마한테도 확실히 얘기할 테니까.”

 

  아빠가 미소약국 앞에 루를 내려준 다음에 한 말은 내 예상을 조금도 비껴가지 않은 것이었다. 아빠가 취한 행동 중에 내가 미리 짐작할 수 없었던 건 딱 하나, 담뱃갑과 라이터를 그 작은 건물의 계단에 두고 온 것뿐이었다. 내가 대답을 얼른 하지 않자, 아빠가 룸미러로 내 표정을 확인했다.

 

  “아빠가 믿는 건 첫째잖아. 알지, 우리 딸?”

 

  “아까 거기가 보관소가 맞아? 연말에 거기로 짐을 가져간대? 담당자가 저 아저씨 아니야?”

 

  “저 사람은 아직 신참이잖아. 뭘 모르지. 우리 센터에서 가장 파워 있는 사람이 소장인데, 너도 전에 본 적이 있지? 소장님이 아빠랑 단단히 약속을 했어. 늦어야 연말이야. 최대 늦어야 연말이라고. 알았지? 그러니까 우리 딸은 걱정하지 마!”

 

  60가지 목록을 하나씩 실행 중인 엄마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다. 또, 나는 첫째니까. 내가 흔들리면 동생들은 통제가 안 된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미소약국에서 집까지는 안내가 불필요한 길이어서 내비게이션에서 흘러나온 그 말이 별 기능도 하지 못했지만, 내게는 그 말이 오늘 들은 그 어떤 말보다 선명하게 들렸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는데, 저 지도의 판단과 우리의 판단이 정확하게 일치한, 유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 우리의 초록 대문이 있었고, 그건 마치 반나절 동안 찾아 헤맨 진짜 목적지가 바로 여기인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했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지 않은 생각이었다. 우리는 찾던 건 폐기물 보관소였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60개 목록을 다 해결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정확히 따지면 59개일 수도 있었고, 미완성의 한 가지가 영 마음을 찜찜하게 만들었지만.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아주 화창해서 눅은 이불 같던 내 불안감을 바싹 말려주려는 것 같았다. 햇빛은 찬란했고 마당은 아름다웠다. 배롱나무는 곱게 단풍이 든 채, 오전에 도착한 손님들을 환영했다. 기자 두 명, 그리고 잠깐 우리 대문 안을 기웃거린 마티할머니. 우리 가족은 모두 청바지를 입고, 대문을 보란 듯이 활짝 열어두었다.

 

  마당 한 쪽의 텃밭에는 이미 비닐이 깔려 있었다. 양파 모종을 일정한 간격으로 심을 수 있도록 구멍이 뚫린 비닐이었다. 우리는 이미 구획을 다 나눠 두고, 각자의 영역 표시를 할 수 있는 푯말까지 준비했다. 빨간 양파 모종이 100개, 흰 양파 모종이 100개였다. 기자들은 알아서 촬영을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농사를 지으라고 말했는데, 둘째가 그 말이 웃기다고 했다.

 

  “우리가 농부인 줄 아나봐.”

 

  그러더니 정말 프로농부처럼 양파 모종 심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내게 다가와 이런 조언을 하기도 했다.

 

  “누나. 너무 깊게 심지 마. 토끼들도 생각해야지.”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둘째가 어떻게 저걸 알았지? 그 말 이후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둘째가 혹여나 자루 얘기를 꺼낼까봐 마음을 졸였는데, 막내까지도 이렇게 거들었다.

 

  “우와, 슈퍼지렁이야.”

 

  막내가 가리키는 곳에 보통 지렁이보다 훨씬 굵고 길게 느껴지는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둘째가 지렁이를 손으로 집어 들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시 지렁이가 돌아왔네. 그런데 너무 커.”

 

  우리가 웅성웅성 모여 있는 모습은 사진기자의 카메라에도 담겼는데, 지렁이도 함께 담긴 건지는 모르겠다. 아빠는 지렁이를 보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빠 어릴 때 시골에선 이 정도 크기는 흔했다.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슈퍼지렁이를 시야에서 놓친 건 그때 내가 인터뷰테 응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동영상 촬영용 카메라 앞에서 우리 텃밭에서 자라난 이름들을 읊었다. 치커리, 부추, 양배추, 당근, 상추……. 내가 그 이름들을 읊는 걸 보고는 막내가 애플이니 바나나니 말도 안 되는 걸 덩달아 읊기 시작했지만, 나는 적절한 시점에서 오늘의 주제로 돌아왔다. 텃밭식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양파라고 말이다.

 

  “양파는 추운 겨울에 맨몸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강인하고 씩씩해요. 이런 양파를 많이 먹는 게 건강에 좋대요, 제가 심은 양파를 제가 먹을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나중에 제가 어른이 되어서도 꼭 텃밭을 가꾸면서 살 거예요.”

 

  양파 모종이 실파처럼 가느다랗게 생겼다는 걸 모르는 애들도 많지만, 200개를 심는다고 해서 200개를 모두 얻을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애들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 삼남매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 마당에서 심고 거두며 사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삼남매의 하나로 뛰어노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혼자인 친구들이 나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에 대해 얘기하자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유나도 삼남매의 엄마가 되겠네요?”

 

  뭐 이런 질문이 다 있나.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고, 딱히 중요한 질문도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 질문은 내가 최근에 첫째로서 가졌던 부담과 긴장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왜요? 동생들이 있어서 좋다면서요.”

 

  “그건 그거고요. 제가 나중에 부모가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죠. 부모가 된다면.”

 

  “그렇다면?”

 

  “전 한 명만 낳아서 잘 케어해줄 거예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가 가장 크게 웃었다. 엄마로서는 이게 농담이었으면 싶었을 것이다. 어머, 우리 딸 말하는 것 좀 봐, 엄마가 더 케어해줄게, 뭐 이런 말들이 오갔고, 그 반응들을 보니 정말 나도 농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로 어떤 말들은 방향성 없이 태어나는데,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뒤늦게 규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저기 저 꽃밭은 아이들이 관리한다던데, 유나만의 비법이 있나요? 아빠엄마가 힌트를 주시던가요?”

 

  기자가 가리키는 곳에 채송화가 피어있는 게 보였다. 10월 말이지만 채송화는 아직 피어 있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물들이는 꽃이니 곧 저물 것이다. 이상한건 계절보다도 시간이었다. 아침에 피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지기를 반복하는 꽃인데, 요즘에는 밤이 되어도 저물지 않았다. 불면증에 걸린 아빠처럼.

 

  “힌트요? 음, 아빠는 가끔 꽃이랑 소주를 함께 마셔요. 소주를 꽃에게 주면 꽃이 취해서 더 잘 핀대요.”

 

  어색하게 웃는 아빠를 보면서, 오늘의 가장 큰 얼룩을 꼽아본다면 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취재기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꽃이 취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거였다. ‘그보다는’ 하고 기자가 입을 열었다.

 

  “꽃이 피는 게 결국 생존경쟁의 결과라고는 하더라고요. 하나만 있을 때보다는 둘 이상이 있을 때 더 왕성하게 피어난대요. 치열한 전쟁의 결과가 꽃인 셈이죠.”

 

  이제 단체사진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막내는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아빠가 만 원 지폐를 한 장 주자 달라졌다. 최근에 막내는 만 원으로 무얼 살 수 있는지 알아버렸고, 돈을 받은 만큼 프로답게 행동하려고 했다. 얼마 전에 어린이집에서 본인이 만들었던 선글라스까지 썼다. 파란색 셀로판지와 분홍색 수수깡으로 만든 거였다. 우리는 카메라를 보고 나란히 섰고, 아직 식지 않은 햇살이 우리의 어깨를 적당히 데워주었다. 촬영이 끝났고, 기자들이 반사판이니 뭐니 하는 걸 치우면서 가방을 꾸리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연극이 아니라 진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제 유예기간은 끝난 것일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모두가 방심하고 있던 순간, 긴장감을 높여준 건 막내였다. 막내는 취재기자를 향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비밀을 하나 말해줄까요?”

 

  “야! 엄마가 말하지 말랬잖아!”

 

  둘째가 이렇게 말하고선 제 입을 틀어막았다. 기자는 비밀을 알고 싶어 혈안이 된 상태도 아니었다. 다만 발설하려는 자의 욕구가 너무 강했다. 막내가 외쳤다.

 

  “우리 엄마가 저번에 차에서 방귀를 뿡부루붕붕! 아하하.”

 

  막내는 제 흥에 도취되어 저만치 뛰어갔다. 엄마는 또 크게 웃음으로써 안도했다. 우리 모두는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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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5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1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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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플라이프의 인터뷰는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엄마가 친구와 통화할 때 그 인터뷰에 대해 ‘평소대로 하면 되지 뭐, 준비할 게 뭐 있나?’ 라고 말하는 걸 들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식탁 위에는 그 토요일이 오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60가지 항목으로 세분화되어 적혀 있었다. 60가지라니, 이를테면 담벼락 다시 칠하기처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부터 세차처럼 조금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싶은 것까지 포함되었다. 엄마는 ‘이참에’ 라든지 ‘이 기회에’ 같은 말을 자주 썼다. 아빠는 주말에도 일찍 눈을 떴지만, 식탁 위에 놓인 60가지 목록과 대면하고는 미리부터 지쳐서 다시 침대로 갔다. 그래 봤자 오래 잠들지도 못했다. 아침을 먹으며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는 게 우리의 평범한 토요일 풍경이었고, 그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빠였다.

 

  그런데 오늘은 텔레비전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서야 했다. 엄마가 ‘이참에’ 하라고 했던 일 중에는 센터에서 준비하고 있다던 그 폐기물 보관소가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라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센터의 폐기물 보관소에 다녀오는 건 이미 지난주에 할 일이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나머지 59개의 항목이 모두 이 하나를 위한 들러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건 엄마가 가장 강조하는 숙제였다. 아빠는 지난 주말에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했다. 폐기물 보관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이미 서류로 다 얘기가 된 건데, 굳이 그걸 황금 같은 주말에 따로 가서 확인해야 하냐는 거였다. 

 

  “그냥 두 눈으로 확인하자는 거야. 그게 어디에 있는지. 세차도 좀 하고.”

 

  엄마의 말만 들으면 폐기물 보관소를 보고 오는 게 세차처럼 꽤 간단한 일인 듯 느껴졌다. 아빠는 괜히 세차를 문제 삼았다.

 

  “내일 비 온다던데. 다음주에 하자.”

 

  “그럼 세차는 다음주에 하고, 오늘은 거기는 다녀와. 직원도 두 시까지 오기로 했다며. 약속 다 해놓고 왜 그러는지 몰라.”

 

  “팀원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주말인데.”

 

  “본인이 같이 가겠다고 했다며, 그리고 거기 담당자잖아. 일 확실히 해.”

 

  막내가 엄마 뒤에 숨어서 후렴구를 따라 했다.

 

  “일 확실히 해.”

 

  오후 두 시, 나는 아빠를 감시하겠다는 핑계로 따라나섰다. 엄마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내가 숙제를 다 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동행을 허락했다. 두 동생들은 안 된다고 했다.

 

  아빠가 차를 약속장소로 몰면서 말했다.

 

  “미소약국 보이지? 칠팔 년 전에 엄마가 차를 몰고 돌진한 데야. 저 유리문 앞으로 슝.”

 

  “왜? 저기서 뭘 잘못했어?”

 

  “아니. 운전 미숙으로.”

 

  미소약국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빠는 그쪽으로 차를 댔다. 

 

  “근데 왜 여기서 만나, 하필이면? 찜찜하게.”

 

  “이 통유리, 아빠가 갈아준 거니까 우리 문이나 마찬가지지. 앞으로 아빠랑 밖에서 만날 때는 항상 여기다. 알았지? 어이, 왔어?”

 

  한 사람이 조수석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안녕, 잘 지냈니?”

 

  나는 얼른 인사를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시퍼런 자루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날의 시퍼런 자루와는 이미지가 너무도 달랐다. 하긴, 그날 내가 기억하는 건 그의 옷이었을 뿐, 정작 얼굴을 제대로 보진 못했다. 나는 뒷자리에, 잘못 달린 블랙박스처럼 앉아서 모든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는 아빠보다 한참 젊어보였고, 심지어 향수 냄새도 났다. 자루의 뒤통수에 자꾸 시선이 가는 건 그의 뒷머리와 목이 연결되는 지점 때문이었다. 그 경계선이 꽤 깔끔해 보였다.

 

  “난 또, 직속상관이랑 같이 오신다기에 사모님인 줄 알았는데. 따님이었구나!”

 

  자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번 더 뒤를 돌아 내 얼굴을 확인했다.

 

  “와, 더 예뻐졌네. 책은 여전히 많이 읽고?”

 

  그게 뭐라고,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얼굴에서 온도 변화가 느껴졌다는 게 당황스러워서 얼른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는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을 낮게 틀었다.

 

  “그나저나 저녁이 있는 삶을 못 도와줄망정, 이렇게 주말까지 불러내서 어째?”

 

  “그게 함정이죠. 저녁 대신 주말을! 하하.”

 

  “저녁이 있는 삶?”

  내가 여전히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리자, 자루가 대답했다.

 

  “음, 퇴근 후에 집에서 책 한 권 읽는 게 덜 부담스러운 인생이랄까?”

 

  “나도 그 나이면 그런 모토로 다시 살아볼 텐데 말이야. 이미 때가 묻었네!”

 

  아빠가 그렇게 말하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까지 1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주소지는 우리 집 주소와 앞머리가 같았지만, 구 단위에서부터 달랐다. 자루는 우리 시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이동하는 셈이라고 했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꽤 한산했다. 우리는 어느 한가운데서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인파가 점점 적어지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자루의 명찰을 바꿔 달고 있었다. 이제는 자루가 아니라 ‘루’ 라고 부르기로 말이다. 내가 왜 그를 자루라고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루는 적절치 않았다. 그건 어째 불길한 이름이니까.

 

  우리는 49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빠의 센터 이름이 적혀 있는 넓은 부지였는데, 아빠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뭔가를 한참 얘기했는데, 살짝 내린 차창 덕분에 대화가 내게도 들렸다. 아빠는 두 달 전에 이미 이곳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고 했고, 루는 깜짝 놀랐다. 나도 놀랐다. 아빠는 그때와 지금이나 이곳이 멈춰 있는 게 똑같다면서,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찍어뒀으니 비교가 가능할 거라고 했다.

 

  “보관소를 만들 생각조차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에이, 그럴 리가요. 아직 두 달 쯤 남았으니까, 기다려 보시죠. 공사야 금방 하잖아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아빠는 엄마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거기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고, 루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그 허허벌판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마침내 아빠가 어딘가로 가자고 말했는데, 루는 그곳이 어딘지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아빠가 어떻게든 지금 그 주소를 알아내라고 다그쳤고, 루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새로운 목적지가 내비게이션에 입력되었다. 거기까지는 30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지금 이 위치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동하는 코스였다.

 

  30분은 1시간이 되었다. 인적이 드문 지역이라 교통체증도 없었는데, 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내비게이션조차 자신의 목적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도 영 아닌 것 같은 좁은 길로, 비포장도로 위로 우리를 인도하더니 마침내 어느 지점에 가서 이렇게 기권을 선언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흙길이었지만 타이어 자국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쩌면 차가 들어오면 안 되는 것 같은 길 위였다. 아빠가 차를 돌리자 내비게이션에서는 다급하게 유턴하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는 결국 내비게이션을 껐고, 한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더듬했다.

 

  “유나야, 아빠 휴대폰 안 가져왔니?”

 

  “난 모르는데?”

 

  “아, 놓고 왔네. 그나저나 길이 왜 이렇지. 혹시 내비 어플 없어?”

 

  아빠가 루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루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비는 없는데요?”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정말 내비가 하나도 깔려있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얼른 새로 내려받는다거나 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길 아닌 길로 계속 달리면서 말했다.

 

  “요즘에는 휴대폰 내비가 더 낫던데. 어플도 많고.”

 

  아빠의 뒤통수만 보아도 그 속에서 뭔가가 팽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정작 옆에 앉은 루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지 가만히 있었다.

 

  “내 얘기는 얼른 내비를 깔라는 거야.”

 

  “내비를요?”

 

  루는 그렇게 되묻더니 주섬주섬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번 달 데이터를 다 써서 뭔가를 더 내려받는 건 곤란하다는 거였다. 저 아저씨가 왜 저러지? 이 상황에 내 또래나 할 법한 말을 하다니.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결국 내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얼른 내비게이션 어플을 내려받아서 아빠가 폭발하기 전에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빠가 깜짝 놀랐다.

 

  “뭐야, 너 휴대폰이 있었어?”

 

  “요즘 없는 애들이 어디 있어. 참고로, 아빠 휴대폰에도 내 번호 저장되어 있는데.”

 

  아빠는 별 대꾸가 없었다. 엄마가 내 휴대폰을 개통해준 시점은 지난 여름이었는데, 그 이후 아빠가 얼마나 나한테 무심했는지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자, 찍어봐. 정확하게.”

 

  자루는 아빠로부터 휴대폰을 건네받아 새 주소를 입력하기 시작했는데 그조차도 서툴러서 또 남은 둘을 답답하게 했다. 다시 남쪽으로 30분을 달려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아직 지도에도 잡히지 않는 길을 통과했다. 그 결과 새 목적지까지 예상보다 금방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아빠가 기대했던 폐기물 보관소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보였다. 지하에 얼마나 많은 길이 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미 오후 다섯 시가 지나있었고, 해가 곧 저물 것처럼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루가 정말 데이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모든 걸 지연시킨 게 아닌가 하는 거였다. 데이터 부족이 아니라 실은 이 주소가 마땅치 않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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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4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1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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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심고 거둔 채소를 식탁 위에 올리는 게 엄마의 자부심이었다. 엄마를 빼면 가족 중 누구도 채소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엄마와 샐러드 놀이를 할 때면 취향도 별 문제될 건 없었다. 오늘의 재료는 가늘게 채를 쳐서 드레싱으로 버무린 양배추샐러드였다. 엄마가 양배추샐러드를 한 젓가락 집어 들고 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이게 뭘까?”

 

  그러면 동생들은(절대 나는 아니다) 손까지 들어가며 대답했다.

 

  “나, 나! 거미줄!”

  “나는, 아이언맨!”

  “이만큼 큰 거미줄!”

 

  샐러드의 형상을 보고 제 멋대로 이름을 붙이면, 엄마는 마음에 드는 대답을 골라서 승자의 입에 샐러드를 넣어주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결국 두 동생 다 먹는 횟수는 똑같았다. 많아야 한두 회 차이랄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샐러드를 가지고 경쟁을 붙여놓으면 둘 다 정답을(애초에 정답은 없는 것이지만) 맞히고 싶어서 애썼고, 젓가락이 들어오면 입을 제비처럼 벌렸다. 한때 내 단골 대답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였다는 걸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모두 오래 전의 일. 이제 저건 사우전아일랜드 드레싱을 뿌린 양배추일 뿐이다.

 

  흔한 저녁이었다. 막내가 거미줄 타령을 하는 게 평소와 다르다면 좀 다른 점이었다. 엄마는 이 샐러드 놀이를 통해 야채도 먹이고 아이들의 상상력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미줄은 상상력의 점프가 아니었다. 실제로 집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당의 구석마다, 나무마다, 집의 외벽마다, 모서리라면 모서리마다 거미줄이 눈에 들어왔다. 원인은 둘 중 하나였다. 집 짓는 거미들이 늘어났거나, 거미 집을 철거하던 사람이 바빠졌거나.

 

  아빠에게 다시 주말이 찾아온 건 10월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게 아빠의 귀환과 함께 부모님의 싸움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얘기는 무엇으로 시작하든 좀 길어지면, 마당의 폐기물 얘기로 끝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당의 변화가 눈에 보였다. 지렁이들이 자꾸 땅 위로 올라온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마당이 헤집어지고 두 달 쯤 지났을 때였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지렁이가 자주 보였다. 둘째는 나무젓가락으로 지렁이를 쿡쿡 찔러대곤 했다.

 

  “왜 못 들어가? 나온 데로 다시 들어가면 되잖아? 길을 몰라?”

 

  미처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렁이들은 햇빛 아래서 온 몸이 굳어갔다. 나는 죽어가는 지렁이 위로 물을 가져와 뿌려주기도 했다. 땅 위로 올라온 것이 몇 마리에 불과했을 때의 얘기다. 우리는 더 이상 마당에서 놀지 않았다. 집 안에 있었고, 엄마의 목소리는 방문 밖에서도 다 들릴 만큼 컸다.

 

  “감사 끝나면 가져간다더니, 아직도 그대로잖아. 신경은 쓰고 있는 거래? 이 동네에 얼마나 말이 많은데.”

   이건 엄마의 말이었고.

 

  “상황을 좀 보자니까 그러네. 기다려봐. 연말까지만 양해를 구한다잖아.”

   이건 아빠의 말이었다.

 

  “누나. 근데 현철이네 엄마아빠는 매일 싸운대.”

  이건 둘째의 말이었다. 둘째는 부모님이 싸우면, 괜히 친구네 집 사정을 들먹였다.

 

  “현철이네가?”

  그렇게 대꾸해주면 둘째는 다른 친구들의 이름도 들먹였다. 애꿎은 현철이, 승호, 연준이…… 부모들이 죄다 싸우거나 고약하다는 거였다. 친구네 집을 들쑤시면서까지 확인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는 골목 끝에 있었고, 거기엔 둘째에게 행복감을 주는 미끄럼틀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미끄럼틀 쪽을 향하고 있으니, 둘째가 마치 사냥하는 코요테처럼 행동하는 게 보였다. 미끄럼틀은 이미 몇 명의 아이들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둘째는 그중에 한 아이를 은근슬쩍 무리 밖으로 꾀어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야, 너 몇 살이야?”

 

  무리 밖으로 나온 아이가 두 손을 활용해서 대답했다.

 

  “여섯 살.”

 

  둘째는 콧방귀를 뀌었다.

 

  “난 일곱 살이거든?”

 

  ‘그래서, 뭐?’ 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다. 한 살 밀린 그 아이는 슬금슬금 물러났고, 무리는 함께 떠나갔다. 둘째는 잽싸게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가며, 막내를 불렀다. 그리고 나도 불렀다. 미끄럼틀 아래에 붙어있던 그네가 내 자리였다. 둘째가 지정해준 자리에 앉아 무게중심을 이리저리 옮겨보았다. 아까 들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는 싸우고 있었지만, 둘 다 아무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편이었다. 권한은 센터에 있는 모양이었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센터에서 그 폐기물을 회수하기로 한 기한이 이미 지났는데도 그걸 가져가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일주일 전에는 가져갔어야 했다. 아빠 말로는 센터에서 폐기물 보관소가 준비되는 연말까지, 세 달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는데, 엄마는 그게 싫은 거고, 말은 안했지만 나도 그랬다.

 

  센터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마당이 소화할 수 있는 건 비글 두 마리. 그 정도였다. 그 이상은 무리였다. 저 아래에 수많은 토끼들이 묻혀 있다는 걸 떠올리면, 어쩐지 우리 셋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도 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놀이터에서 나와 우리의 초록 대문 앞에 섰을 때, 집은 그새 낯설어져 있었다. 건물의 오른쪽과 왼쪽에 밀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단지 기분 탓이었을까. 담벼락과 접한 쪽이 단단한 콘크리트 같았다면, 큰 마당 쪽과 접한 면은 마치 비스킷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비가 오면 문드러지고 눅눅해지는 비스킷.

 

  그 비스킷 앞에서 아빠가 잔디를 다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지렁이를 이제야 발견했는지, 언제부터 이랬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폐기물 회수가 연말까지 늦춰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방향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다음 달에 우리 마당에서 잡지 촬영을 하기로 한 건, 그런 노력의 성과였다. ‘심플라이프’라는 잡지였는데, 엄마랑 친한 이모가 일하는 데여서 나도 몇 번 읽어본 적이 있었다. 주로 텃밭을 가꾸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파이를 구우면서 웃는 가족들이 많이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두 페이지의 지면, 그리고 사이트에 올릴 짧은 영상, 그게 우리 가족의 몫이었다.

 

  촬영일까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었지만, 엄마는 벌써 가족 모두에게 일감을 줬다. 아빠와 동생들이 마당 곳곳을 다듬는 동안, 나는 2층 방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어떤 말을 할까 고민했다. 내가 할 일은 2분가량, 우리 가족과 마당에 대해 소개하는 거였다. 반장 선거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그 2분이 잘 준비되고 있는지 수시로 검사하려고 했다. 심지어 공중목욕탕 같은 곳에서도 말이다.

 

  “준비 다 했니? 지금 해봐. 엄마가 보게.”

 

  나는 서 있었고, 엄마가 내 오른쪽 다리를 이태리타월로 밀고 있을 때였다.

 

 

  “싫어. 지금 안 할래. 나중에 집에서.”

 

  “엄마 시간 있을 때 해. 집에 가면 언제 시간이 나니?”

 

  

  결국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준비한 내용을 읊어보려 했지만 고역이었다. 엄마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나는 서 있었고, 내 눈에는 칸막이 너머 다른 여자들이 다 보였던 것이다. 나는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 본단 말이야.”

 

  “아무도 안 봐. 누가 봐.”

 

  결국 다시 엉거주춤 섰다. 목소리는 최대한 낮추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풍송초등학교 5학년 4반 채…….”

 

  “더 자신감 있게 해야지. 눈은 한 곳만 보고.”

 

  “안녕하세요, 저는 풍송초등학교 5학년 4반 채유나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양파를 심을 건데요. 양파는 이 추운 겨울에 맨몸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채소입니다. 씩씩한 양파를 먹으면 우리도 튼튼해지기 때문에……” 

 

  쟤 뭐하는 거야, 라는 눈빛으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같았고, 엄마 말대로 아무도 나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도 같았다. 어떻든, 하나만은 확실했다. 다시는 엄마 따라 목욕탕에 오진 않을 거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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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3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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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면 휴가 계획을 짜는 게 아빠의 낙이었는데, 이번 여름만은 예외였다. 7월의 한가운데, 마당이 헤집어지는 바람에 우리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마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타이밍은 꼭 그랬다. 그 공사 이후로, 아빠는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다. 막내는 무료한 듯이 뒹굴다가, “아아, 오키나와 좋았는데!” 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기억을 그렇게 소환하는가 하면, “괌은 어때?” 라고, 누군가 했을 법한 말을 흉내 내기도 했다. 막내는 네 살이었지만, 가끔은 열네 살에게도 너무 이른 것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내가 조금 늘어져 있으면, 그 애는 약간 지쳤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누나. 냉동실에 누운 자반고등어처럼 왜 이래.”

 

  그러면 둘째는 흠칫 놀라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거였다. 냉동실에는 자반고등어 따위는 없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는 몰라도, 막내의 타이밍은 꽤 정확했다. 나는 정말, 냉동실에 누운 자반고등어처럼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네 살이 어떻게 저런 말을? 슬쩍 쳐다보면 막내는 다시 한번 자반고등어 타령을 했다.

 

  여름 내내 자반고등어처럼 보낸 덕분에 나는 개학 직전에 작년 일기장을 참고해야 했다. 참고라고 하기엔 거의 전면적이었다. 고스란히 한 달 분을 베껴 썼는데, 학교에서는 별 문제가 없을 게 뻔했지만(4학년 담임과 5학년 담임은 다르므로),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는 동생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서 혼냈다. 내가 도둑질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내가 내 꺼 쓴 건데, 왜 도둑질이야?”

 

  “4학년 때 여름이랑 5학년 여름이랑 똑같아? 아니잖아. 그런데 왜 베껴 써. 그걸.”

 

  4학년 여름과 이번 여름이 똑같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이게 정말 도둑질이라면, 그렇게 해서 훔칠 수 있는 거라면 4학년뿐 아니라 3학년 일기까지 베꼈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고 속상해했다. 일기를 그렇게 거짓말로 채우면 안 된다는 게 엄마가 누차 강조한 내용이었는데, 사실 내 입장에서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의 일기를 지금의 것처럼 다시 쓰는 동안, 나는 진심으로 즐거웠으니까.

 

  개학까지는 겨우 4일이 남았는데, 엄마는 일기를 다시 쓰라고 했다. 그것도 거짓말 아닌가. 꼭 빼닮은 두 권의 일기장을 엄마가 빼앗아 갔는데도, 작년 오늘자 일기에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하도 들여다봐서 외워버릴 지경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여름, 우리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방파제를 따라 달렸다. 아빠의 자전거 뒤에 동생 둘을 실은 수레가 달려있었고, 그 뒤로 내 자전거가, 마지막으로 엄마의 자전거가 있었다. 소나기가 시작되었고, 아빠가 자전거를 멈춰 세우는 걸 보고도 엄마와 나는 계속 페달을 밟았다. 앞바퀴가 빗물을 밀어 올리는 게 꼭 고래가 숨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젖은 길 위를 매끄럽게 누비던 바퀴의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옷이 홀라당 다 젖으면서도 페달을 밟았던 그 오후를 엄마는 기억할까.

  오늘 일기를 쓰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대충 휘갈겼다가, 결국 지워버렸다. 내가 지운 문장은 이랬다.  

 

  ‘배롱나무 아래, 상습훈육구역에서 엄마한테 혼났다. 일기를 베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혼낼 때 마당의 배롱나무 아래로 데려간다. 동생들 앞에서 혼내면 누나 위신 떨어진다면서.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크레센도처럼 점점 커지는 바람에, 결국엔 모두가 알게 된다. 기분 더럽다.’

 

  엄마 말대로 4학년 여름과 5학년 여름은 같지 않았다. 문제는 솔직하게 쓰자면 정말 끝이 없다는 데 있었다. 수위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수위조절을 못한 예가 바로 둘째였다. 둘째는 이 여름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기록해서 배롱나무 아래로 끌려갔다. 둘째의 일기에는 우리 마당에 구덩이를 팠고, 그 안에 수상한 뭔가를 넣었고, 그 때문에 마티할머니가 의심하고, 아빠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으며, 3년 된 채송화가 비대하게 자라나 징그럽다는 것까지 소상히 적혀 있었다. 진짜 이번 여름에 대해 쓰려면 그런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자정 즈음, 나는 동생의 일기와 내 일기,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일기 중에 뭐가 진짜일까를 생각하다가 마당으로 내려갔다. 모두가 잠들고 배롱나무 아래는 이제 텅 비어 있었다.

 

  마티할머니 말대로, 아빠는 개 두 마리를 마당 한 구석에 묻은 적이 있다. 배롱나무 아래가 그 자리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긴 하지만, 아직도 또렷하고, 어쩌면 그 농도로 인해 내 유년기 최초의 기억이 된 건지도 모른다. 아빠는 퇴근길에 잿빛 자루를 하나 안고 왔는데, 그 자루 안에 비글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한 마리는 오는 과정 중에 이미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있었지만 겨우 사흘을 더 살고 죽었다. 비글들은 우리 마당에 잠들었다. 

 

  마티할머니가 그걸 오염된 개라고 부르는 건, 두 마리의 비글이 실험견이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일하는 곳을 우리는 간단히 센터라고 불렀는데, 그곳에서는 동물들을 활용한 임상실험을 했다. 동물이 우리 대신 화학품 부작용 검사를 받기 때문에 우리가 스킨로션도 바를 수 있는 거라고, 아빠가 말한 적이 있다. 실험에 쓰인 동물들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비닐봉지에 담긴 채 버려졌다. 드물게 실험 후에도 살아남은 경우 안락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비글 두 마리는 아빠가 직접 데리고 온 거였다. 아빠를 유독 잘 따랐던 아이들이었다고는 하지만 실험견이 밖으로 나가는 건 예외적인 경우였고, 센터 초창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실험동물을 센터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설령 살아있는 경우라고 해도 말이다. 마티할머니처럼 바이러스라든지 그런 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제는 모두 센터 안에서 폐기된다. 그리고 연말에 실험동물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 그렇지만 아마도 또 한번 예외가 생긴 모양이라고, 나는 저 앞에 놓인 지하저장고의 입구를 보며 생각했다.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1.5m 정도 되는 컨테이너박스의 입구가 마치 통풍구처럼 바닥에 뚫려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아래에 또 하나의 컨테이너박스가 들어가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어찌 보면 지금 이 저장고는 이 아래에 있는 다른 하나를 덮기 위해 만든 용도인 것이다. 저장고로 들어가면 여름밤의 공기가 몇 도쯤 서늘해지는 걸 체감할 수 있겠지만, 이 밤에 저 문을 열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밤낮이 뒤바뀌었구나. 개학하면 어쩌려고?”

 

  아빠였다. 아빠는 담뱃갑을 얼른 집어넣으며, 어둠 속에서 빙긋 웃었다.

 

  “요거, 눈이 아주 말똥말똥하네.”

 

  “어? 담배 끊은 거 아니었어?”

 

  아빠는 “거의 끊었다”는 애매한 말을 했다. 우리는 2인용 흔들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몸을 흔들었다. 꽤 오랜만이었다. 최근에는 아빠의 출장과 야근으로 인해 얼굴 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기회가 드물다는 생각, 그리고 아빠가 담배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자,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한 게 튀어나왔다.

 

  “아빠, 이 아래에 묻은 게 혹시 비글이야?”

 

  “응?”

 

  “아니면 기니피그? 랫? 마우스?”

 

  아빠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다가, 손을 거두고 대답했다.

 

  “토끼.”

 

  토끼구나.

 

  “가을 안에 가져가. 임시로 우리 집에 두는 거야.”

 

  어둠 속에서도 잔디가 뿌리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또 파헤친다고? 그럴 거면 비싼 잔디를 왜 깔았느냐고 묻자, 아빠가 그게 질문이냐는 식으로 대꾸했다.

 

  “회사 돈으로 하는 건데 안 하면 바보지?”

 

  말 그대로 우리는 마당을 빌려준 거네. 마당 아래를. 그렇게 생각하자 그날 본 자루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자루들이 아마 저 지하 깊은 곳 컨테이너박스 안을 채웠을 것이다. 그만큼을 채우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토끼가 필요한 걸까. 실험용 토끼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토끼 눈을 고정해놓고 거기에 약품을 바르는 장면도 떠올랐고, 토끼 목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약품을 바르는 장면도 떠올랐다. 토끼는 화장품실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이었다. 순하고, 체구가 작고, 개체수가 많아서.

 

  “아빠. 실험용 토끼는 1초에 세 마리씩 죽는대.”

 

  그렇게 말해놓고 덧붙였다.

 

  “물론, 아빠가 전문가니까 더 잘 알겠지만.”

 

  내 말에 아빠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건 어디서 들었니?”

 

  “책에서.”

 

  아직은 8월의 끝자락인데, 제법 선선한 바람이 의자를 흔들었다. 배롱나무 위에 매미가 벗어놓은 껍질을 발견한 밤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던 매미 껍질은 아침이 오기 전에 쿵, 하고 떨어졌다. 속이 텅 비어있을 텐데도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여름이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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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롤케이크 | 책 밖에서(안부) 2017-01-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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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고은입니다.

<해적판을 타고> 1과 2를 올린 후

댓글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은 월, 목 아침 8시에 올리지만,

<책 밖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자유롭게 올리려고 해요.

<책 밖에서> 게시물의 댓글엔 저도 댓글을 달겠습니다. 

소설 게시물의 댓글,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모두 답을 해드리지 못해서 아쉬웠거든요.

여기선 악수하는 기분으로요, 아님 건배하는 기분^^

 

 

 

 

 

 

 

이 사진은

2회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실,

잔디롤케이크입니다.

갑자기 제품 홍보하는 듯한^^;;

 

 

 

 

 

제가 거의 10년 전에 찍은 사진이에요.

이때 롤잔디를 처음 보고 정말 롤케이크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써먹었습니다! 다시 봐도 롤케이크죠.

 

 

 

 

 

연재는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25회 정도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1월부터 3월까지,

꽃이 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요^^

 

 

 

 

 

그럼, 전 목요일 아침 3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추워졌는데, 감기 조심하시고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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