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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타고 2017년1월 연재소설 쉼표( )로구분하세요.(최대10개까지등록가능) 윤고은 YES블로그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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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5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1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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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플라이프의 인터뷰는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엄마가 친구와 통화할 때 그 인터뷰에 대해 ‘평소대로 하면 되지 뭐, 준비할 게 뭐 있나?’ 라고 말하는 걸 들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식탁 위에는 그 토요일이 오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60가지 항목으로 세분화되어 적혀 있었다. 60가지라니, 이를테면 담벼락 다시 칠하기처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것부터 세차처럼 조금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싶은 것까지 포함되었다. 엄마는 ‘이참에’ 라든지 ‘이 기회에’ 같은 말을 자주 썼다. 아빠는 주말에도 일찍 눈을 떴지만, 식탁 위에 놓인 60가지 목록과 대면하고는 미리부터 지쳐서 다시 침대로 갔다. 그래 봤자 오래 잠들지도 못했다. 아침을 먹으며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는 게 우리의 평범한 토요일 풍경이었고, 그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빠였다.

 

  그런데 오늘은 텔레비전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서야 했다. 엄마가 ‘이참에’ 하라고 했던 일 중에는 센터에서 준비하고 있다던 그 폐기물 보관소가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분명히 확인하라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센터의 폐기물 보관소에 다녀오는 건 이미 지난주에 할 일이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나머지 59개의 항목이 모두 이 하나를 위한 들러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건 엄마가 가장 강조하는 숙제였다. 아빠는 지난 주말에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했다. 폐기물 보관소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이미 서류로 다 얘기가 된 건데, 굳이 그걸 황금 같은 주말에 따로 가서 확인해야 하냐는 거였다. 

 

  “그냥 두 눈으로 확인하자는 거야. 그게 어디에 있는지. 세차도 좀 하고.”

 

  엄마의 말만 들으면 폐기물 보관소를 보고 오는 게 세차처럼 꽤 간단한 일인 듯 느껴졌다. 아빠는 괜히 세차를 문제 삼았다.

 

  “내일 비 온다던데. 다음주에 하자.”

 

  “그럼 세차는 다음주에 하고, 오늘은 거기는 다녀와. 직원도 두 시까지 오기로 했다며. 약속 다 해놓고 왜 그러는지 몰라.”

 

  “팀원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주말인데.”

 

  “본인이 같이 가겠다고 했다며, 그리고 거기 담당자잖아. 일 확실히 해.”

 

  막내가 엄마 뒤에 숨어서 후렴구를 따라 했다.

 

  “일 확실히 해.”

 

  오후 두 시, 나는 아빠를 감시하겠다는 핑계로 따라나섰다. 엄마는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내가 숙제를 다 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동행을 허락했다. 두 동생들은 안 된다고 했다.

 

  아빠가 차를 약속장소로 몰면서 말했다.

 

  “미소약국 보이지? 칠팔 년 전에 엄마가 차를 몰고 돌진한 데야. 저 유리문 앞으로 슝.”

 

  “왜? 저기서 뭘 잘못했어?”

 

  “아니. 운전 미숙으로.”

 

  미소약국 앞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빠는 그쪽으로 차를 댔다. 

 

  “근데 왜 여기서 만나, 하필이면? 찜찜하게.”

 

  “이 통유리, 아빠가 갈아준 거니까 우리 문이나 마찬가지지. 앞으로 아빠랑 밖에서 만날 때는 항상 여기다. 알았지? 어이, 왔어?”

 

  한 사람이 조수석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안녕, 잘 지냈니?”

 

  나는 얼른 인사를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시퍼런 자루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날의 시퍼런 자루와는 이미지가 너무도 달랐다. 하긴, 그날 내가 기억하는 건 그의 옷이었을 뿐, 정작 얼굴을 제대로 보진 못했다. 나는 뒷자리에, 잘못 달린 블랙박스처럼 앉아서 모든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는 아빠보다 한참 젊어보였고, 심지어 향수 냄새도 났다. 자루의 뒤통수에 자꾸 시선이 가는 건 그의 뒷머리와 목이 연결되는 지점 때문이었다. 그 경계선이 꽤 깔끔해 보였다.

 

  “난 또, 직속상관이랑 같이 오신다기에 사모님인 줄 알았는데. 따님이었구나!”

 

  자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번 더 뒤를 돌아 내 얼굴을 확인했다.

 

  “와, 더 예뻐졌네. 책은 여전히 많이 읽고?”

 

  그게 뭐라고,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 얼굴에서 온도 변화가 느껴졌다는 게 당황스러워서 얼른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는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을 낮게 틀었다.

 

  “그나저나 저녁이 있는 삶을 못 도와줄망정, 이렇게 주말까지 불러내서 어째?”

 

  “그게 함정이죠. 저녁 대신 주말을! 하하.”

 

  “저녁이 있는 삶?”

  내가 여전히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리자, 자루가 대답했다.

 

  “음, 퇴근 후에 집에서 책 한 권 읽는 게 덜 부담스러운 인생이랄까?”

 

  “나도 그 나이면 그런 모토로 다시 살아볼 텐데 말이야. 이미 때가 묻었네!”

 

  아빠가 그렇게 말하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차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까지 1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주소지는 우리 집 주소와 앞머리가 같았지만, 구 단위에서부터 달랐다. 자루는 우리 시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이동하는 셈이라고 했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꽤 한산했다. 우리는 어느 한가운데서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인파가 점점 적어지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자루의 명찰을 바꿔 달고 있었다. 이제는 자루가 아니라 ‘루’ 라고 부르기로 말이다. 내가 왜 그를 자루라고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루는 적절치 않았다. 그건 어째 불길한 이름이니까.

 

  우리는 49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빠의 센터 이름이 적혀 있는 넓은 부지였는데, 아빠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뭔가를 한참 얘기했는데, 살짝 내린 차창 덕분에 대화가 내게도 들렸다. 아빠는 두 달 전에 이미 이곳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고 했고, 루는 깜짝 놀랐다. 나도 놀랐다. 아빠는 그때와 지금이나 이곳이 멈춰 있는 게 똑같다면서,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찍어뒀으니 비교가 가능할 거라고 했다.

 

  “보관소를 만들 생각조차 없는 거야.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

 

  “에이, 그럴 리가요. 아직 두 달 쯤 남았으니까, 기다려 보시죠. 공사야 금방 하잖아요.”

 

  두 사람의 대화에서, 아빠는 엄마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거기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고, 루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그 허허벌판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마침내 아빠가 어딘가로 가자고 말했는데, 루는 그곳이 어딘지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아빠가 어떻게든 지금 그 주소를 알아내라고 다그쳤고, 루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새로운 목적지가 내비게이션에 입력되었다. 거기까지는 30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지금 이 위치에서 다시 동쪽으로 이동하는 코스였다.

 

  30분은 1시간이 되었다. 인적이 드문 지역이라 교통체증도 없었는데, 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내비게이션조차 자신의 목적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도 영 아닌 것 같은 좁은 길로, 비포장도로 위로 우리를 인도하더니 마침내 어느 지점에 가서 이렇게 기권을 선언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흙길이었지만 타이어 자국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쩌면 차가 들어오면 안 되는 것 같은 길 위였다. 아빠가 차를 돌리자 내비게이션에서는 다급하게 유턴하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는 결국 내비게이션을 껐고, 한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더듬했다.

 

  “유나야, 아빠 휴대폰 안 가져왔니?”

 

  “난 모르는데?”

 

  “아, 놓고 왔네. 그나저나 길이 왜 이렇지. 혹시 내비 어플 없어?”

 

  아빠가 루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루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내비는 없는데요?”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정말 내비가 하나도 깔려있지 않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얼른 새로 내려받는다거나 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길 아닌 길로 계속 달리면서 말했다.

 

  “요즘에는 휴대폰 내비가 더 낫던데. 어플도 많고.”

 

  아빠의 뒤통수만 보아도 그 속에서 뭔가가 팽창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정작 옆에 앉은 루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지 가만히 있었다.

 

  “내 얘기는 얼른 내비를 깔라는 거야.”

 

  “내비를요?”

 

  루는 그렇게 되묻더니 주섬주섬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번 달 데이터를 다 써서 뭔가를 더 내려받는 건 곤란하다는 거였다. 저 아저씨가 왜 저러지? 이 상황에 내 또래나 할 법한 말을 하다니.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결국 내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얼른 내비게이션 어플을 내려받아서 아빠가 폭발하기 전에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빠가 깜짝 놀랐다.

 

  “뭐야, 너 휴대폰이 있었어?”

 

  “요즘 없는 애들이 어디 있어. 참고로, 아빠 휴대폰에도 내 번호 저장되어 있는데.”

 

  아빠는 별 대꾸가 없었다. 엄마가 내 휴대폰을 개통해준 시점은 지난 여름이었는데, 그 이후 아빠가 얼마나 나한테 무심했는지를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자, 찍어봐. 정확하게.”

 

  자루는 아빠로부터 휴대폰을 건네받아 새 주소를 입력하기 시작했는데 그조차도 서툴러서 또 남은 둘을 답답하게 했다. 다시 남쪽으로 30분을 달려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아직 지도에도 잡히지 않는 길을 통과했다. 그 결과 새 목적지까지 예상보다 금방 도착했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아빠가 기대했던 폐기물 보관소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보였다. 지하에 얼마나 많은 길이 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미 오후 다섯 시가 지나있었고, 해가 곧 저물 것처럼 보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루가 정말 데이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모든 걸 지연시킨 게 아닌가 하는 거였다. 데이터 부족이 아니라 실은 이 주소가 마땅치 않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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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타고 2017년1월 연재소설 쉼표( )로구분하세요.(최대10개까지등록가능) 윤고은 YES블로그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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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4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1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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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심고 거둔 채소를 식탁 위에 올리는 게 엄마의 자부심이었다. 엄마를 빼면 가족 중 누구도 채소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엄마와 샐러드 놀이를 할 때면 취향도 별 문제될 건 없었다. 오늘의 재료는 가늘게 채를 쳐서 드레싱으로 버무린 양배추샐러드였다. 엄마가 양배추샐러드를 한 젓가락 집어 들고 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이게 뭘까?”

 

  그러면 동생들은(절대 나는 아니다) 손까지 들어가며 대답했다.

 

  “나, 나! 거미줄!”

  “나는, 아이언맨!”

  “이만큼 큰 거미줄!”

 

  샐러드의 형상을 보고 제 멋대로 이름을 붙이면, 엄마는 마음에 드는 대답을 골라서 승자의 입에 샐러드를 넣어주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결국 두 동생 다 먹는 횟수는 똑같았다. 많아야 한두 회 차이랄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샐러드를 가지고 경쟁을 붙여놓으면 둘 다 정답을(애초에 정답은 없는 것이지만) 맞히고 싶어서 애썼고, 젓가락이 들어오면 입을 제비처럼 벌렸다. 한때 내 단골 대답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였다는 걸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모두 오래 전의 일. 이제 저건 사우전아일랜드 드레싱을 뿌린 양배추일 뿐이다.

 

  흔한 저녁이었다. 막내가 거미줄 타령을 하는 게 평소와 다르다면 좀 다른 점이었다. 엄마는 이 샐러드 놀이를 통해 야채도 먹이고 아이들의 상상력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미줄은 상상력의 점프가 아니었다. 실제로 집 구석구석에 거미줄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당의 구석마다, 나무마다, 집의 외벽마다, 모서리라면 모서리마다 거미줄이 눈에 들어왔다. 원인은 둘 중 하나였다. 집 짓는 거미들이 늘어났거나, 거미 집을 철거하던 사람이 바빠졌거나.

 

  아빠에게 다시 주말이 찾아온 건 10월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게 아빠의 귀환과 함께 부모님의 싸움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얘기는 무엇으로 시작하든 좀 길어지면, 마당의 폐기물 얘기로 끝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당의 변화가 눈에 보였다. 지렁이들이 자꾸 땅 위로 올라온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마당이 헤집어지고 두 달 쯤 지났을 때였다.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지렁이가 자주 보였다. 둘째는 나무젓가락으로 지렁이를 쿡쿡 찔러대곤 했다.

 

  “왜 못 들어가? 나온 데로 다시 들어가면 되잖아? 길을 몰라?”

 

  미처 땅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렁이들은 햇빛 아래서 온 몸이 굳어갔다. 나는 죽어가는 지렁이 위로 물을 가져와 뿌려주기도 했다. 땅 위로 올라온 것이 몇 마리에 불과했을 때의 얘기다. 우리는 더 이상 마당에서 놀지 않았다. 집 안에 있었고, 엄마의 목소리는 방문 밖에서도 다 들릴 만큼 컸다.

 

  “감사 끝나면 가져간다더니, 아직도 그대로잖아. 신경은 쓰고 있는 거래? 이 동네에 얼마나 말이 많은데.”

   이건 엄마의 말이었고.

 

  “상황을 좀 보자니까 그러네. 기다려봐. 연말까지만 양해를 구한다잖아.”

   이건 아빠의 말이었다.

 

  “누나. 근데 현철이네 엄마아빠는 매일 싸운대.”

  이건 둘째의 말이었다. 둘째는 부모님이 싸우면, 괜히 친구네 집 사정을 들먹였다.

 

  “현철이네가?”

  그렇게 대꾸해주면 둘째는 다른 친구들의 이름도 들먹였다. 애꿎은 현철이, 승호, 연준이…… 부모들이 죄다 싸우거나 고약하다는 거였다. 친구네 집을 들쑤시면서까지 확인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는 골목 끝에 있었고, 거기엔 둘째에게 행복감을 주는 미끄럼틀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미끄럼틀 쪽을 향하고 있으니, 둘째가 마치 사냥하는 코요테처럼 행동하는 게 보였다. 미끄럼틀은 이미 몇 명의 아이들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둘째는 그중에 한 아이를 은근슬쩍 무리 밖으로 꾀어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야, 너 몇 살이야?”

 

  무리 밖으로 나온 아이가 두 손을 활용해서 대답했다.

 

  “여섯 살.”

 

  둘째는 콧방귀를 뀌었다.

 

  “난 일곱 살이거든?”

 

  ‘그래서, 뭐?’ 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다. 한 살 밀린 그 아이는 슬금슬금 물러났고, 무리는 함께 떠나갔다. 둘째는 잽싸게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가며, 막내를 불렀다. 그리고 나도 불렀다. 미끄럼틀 아래에 붙어있던 그네가 내 자리였다. 둘째가 지정해준 자리에 앉아 무게중심을 이리저리 옮겨보았다. 아까 들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는 싸우고 있었지만, 둘 다 아무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편이었다. 권한은 센터에 있는 모양이었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센터에서 그 폐기물을 회수하기로 한 기한이 이미 지났는데도 그걸 가져가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일주일 전에는 가져갔어야 했다. 아빠 말로는 센터에서 폐기물 보관소가 준비되는 연말까지, 세 달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는데, 엄마는 그게 싫은 거고, 말은 안했지만 나도 그랬다.

 

  센터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마당이 소화할 수 있는 건 비글 두 마리. 그 정도였다. 그 이상은 무리였다. 저 아래에 수많은 토끼들이 묻혀 있다는 걸 떠올리면, 어쩐지 우리 셋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도 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놀이터에서 나와 우리의 초록 대문 앞에 섰을 때, 집은 그새 낯설어져 있었다. 건물의 오른쪽과 왼쪽에 밀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단지 기분 탓이었을까. 담벼락과 접한 쪽이 단단한 콘크리트 같았다면, 큰 마당 쪽과 접한 면은 마치 비스킷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비가 오면 문드러지고 눅눅해지는 비스킷.

 

  그 비스킷 앞에서 아빠가 잔디를 다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지렁이를 이제야 발견했는지, 언제부터 이랬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폐기물 회수가 연말까지 늦춰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다른 방향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다음 달에 우리 마당에서 잡지 촬영을 하기로 한 건, 그런 노력의 성과였다. ‘심플라이프’라는 잡지였는데, 엄마랑 친한 이모가 일하는 데여서 나도 몇 번 읽어본 적이 있었다. 주로 텃밭을 가꾸거나 가구를 만들거나 파이를 구우면서 웃는 가족들이 많이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두 페이지의 지면, 그리고 사이트에 올릴 짧은 영상, 그게 우리 가족의 몫이었다.

 

  촬영일까지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었지만, 엄마는 벌써 가족 모두에게 일감을 줬다. 아빠와 동생들이 마당 곳곳을 다듬는 동안, 나는 2층 방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어떤 말을 할까 고민했다. 내가 할 일은 2분가량, 우리 가족과 마당에 대해 소개하는 거였다. 반장 선거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그 2분이 잘 준비되고 있는지 수시로 검사하려고 했다. 심지어 공중목욕탕 같은 곳에서도 말이다.

 

  “준비 다 했니? 지금 해봐. 엄마가 보게.”

 

  나는 서 있었고, 엄마가 내 오른쪽 다리를 이태리타월로 밀고 있을 때였다.

 

 

  “싫어. 지금 안 할래. 나중에 집에서.”

 

  “엄마 시간 있을 때 해. 집에 가면 언제 시간이 나니?”

 

  

  결국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준비한 내용을 읊어보려 했지만 고역이었다. 엄마야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나는 서 있었고, 내 눈에는 칸막이 너머 다른 여자들이 다 보였던 것이다. 나는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 본단 말이야.”

 

  “아무도 안 봐. 누가 봐.”

 

  결국 다시 엉거주춤 섰다. 목소리는 최대한 낮추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풍송초등학교 5학년 4반 채…….”

 

  “더 자신감 있게 해야지. 눈은 한 곳만 보고.”

 

  “안녕하세요, 저는 풍송초등학교 5학년 4반 채유나입니다. 오늘 저희들은 양파를 심을 건데요. 양파는 이 추운 겨울에 맨몸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는 채소입니다. 씩씩한 양파를 먹으면 우리도 튼튼해지기 때문에……” 

 

  쟤 뭐하는 거야, 라는 눈빛으로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도 같았고, 엄마 말대로 아무도 나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것도 같았다. 어떻든, 하나만은 확실했다. 다시는 엄마 따라 목욕탕에 오진 않을 거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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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3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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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면 휴가 계획을 짜는 게 아빠의 낙이었는데, 이번 여름만은 예외였다. 7월의 한가운데, 마당이 헤집어지는 바람에 우리는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마당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타이밍은 꼭 그랬다. 그 공사 이후로, 아빠는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다. 막내는 무료한 듯이 뒹굴다가, “아아, 오키나와 좋았는데!” 라고 말했다. 지난해의 기억을 그렇게 소환하는가 하면, “괌은 어때?” 라고, 누군가 했을 법한 말을 흉내 내기도 했다. 막내는 네 살이었지만, 가끔은 열네 살에게도 너무 이른 것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내가 조금 늘어져 있으면, 그 애는 약간 지쳤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누나. 냉동실에 누운 자반고등어처럼 왜 이래.”

 

  그러면 둘째는 흠칫 놀라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거였다. 냉동실에는 자반고등어 따위는 없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는 몰라도, 막내의 타이밍은 꽤 정확했다. 나는 정말, 냉동실에 누운 자반고등어처럼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네 살이 어떻게 저런 말을? 슬쩍 쳐다보면 막내는 다시 한번 자반고등어 타령을 했다.

 

  여름 내내 자반고등어처럼 보낸 덕분에 나는 개학 직전에 작년 일기장을 참고해야 했다. 참고라고 하기엔 거의 전면적이었다. 고스란히 한 달 분을 베껴 썼는데, 학교에서는 별 문제가 없을 게 뻔했지만(4학년 담임과 5학년 담임은 다르므로),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는 동생들이 보지 않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서 혼냈다. 내가 도둑질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내가 내 꺼 쓴 건데, 왜 도둑질이야?”

 

  “4학년 때 여름이랑 5학년 여름이랑 똑같아? 아니잖아. 그런데 왜 베껴 써. 그걸.”

 

  4학년 여름과 이번 여름이 똑같지 않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이게 정말 도둑질이라면, 그렇게 해서 훔칠 수 있는 거라면 4학년뿐 아니라 3학년 일기까지 베꼈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고 속상해했다. 일기를 그렇게 거짓말로 채우면 안 된다는 게 엄마가 누차 강조한 내용이었는데, 사실 내 입장에서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의 일기를 지금의 것처럼 다시 쓰는 동안, 나는 진심으로 즐거웠으니까.

 

  개학까지는 겨우 4일이 남았는데, 엄마는 일기를 다시 쓰라고 했다. 그것도 거짓말 아닌가. 꼭 빼닮은 두 권의 일기장을 엄마가 빼앗아 갔는데도, 작년 오늘자 일기에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기억할 수 있었다. 하도 들여다봐서 외워버릴 지경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여름, 우리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방파제를 따라 달렸다. 아빠의 자전거 뒤에 동생 둘을 실은 수레가 달려있었고, 그 뒤로 내 자전거가, 마지막으로 엄마의 자전거가 있었다. 소나기가 시작되었고, 아빠가 자전거를 멈춰 세우는 걸 보고도 엄마와 나는 계속 페달을 밟았다. 앞바퀴가 빗물을 밀어 올리는 게 꼭 고래가 숨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젖은 길 위를 매끄럽게 누비던 바퀴의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옷이 홀라당 다 젖으면서도 페달을 밟았던 그 오후를 엄마는 기억할까.

  오늘 일기를 쓰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나는 대충 휘갈겼다가, 결국 지워버렸다. 내가 지운 문장은 이랬다.  

 

  ‘배롱나무 아래, 상습훈육구역에서 엄마한테 혼났다. 일기를 베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혼낼 때 마당의 배롱나무 아래로 데려간다. 동생들 앞에서 혼내면 누나 위신 떨어진다면서.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크레센도처럼 점점 커지는 바람에, 결국엔 모두가 알게 된다. 기분 더럽다.’

 

  엄마 말대로 4학년 여름과 5학년 여름은 같지 않았다. 문제는 솔직하게 쓰자면 정말 끝이 없다는 데 있었다. 수위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수위조절을 못한 예가 바로 둘째였다. 둘째는 이 여름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기록해서 배롱나무 아래로 끌려갔다. 둘째의 일기에는 우리 마당에 구덩이를 팠고, 그 안에 수상한 뭔가를 넣었고, 그 때문에 마티할머니가 의심하고, 아빠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으며, 3년 된 채송화가 비대하게 자라나 징그럽다는 것까지 소상히 적혀 있었다. 진짜 이번 여름에 대해 쓰려면 그런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자정 즈음, 나는 동생의 일기와 내 일기, 그리고 엄마가 말하는 일기 중에 뭐가 진짜일까를 생각하다가 마당으로 내려갔다. 모두가 잠들고 배롱나무 아래는 이제 텅 비어 있었다.

 

  마티할머니 말대로, 아빠는 개 두 마리를 마당 한 구석에 묻은 적이 있다. 배롱나무 아래가 그 자리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긴 하지만, 아직도 또렷하고, 어쩌면 그 농도로 인해 내 유년기 최초의 기억이 된 건지도 모른다. 아빠는 퇴근길에 잿빛 자루를 하나 안고 왔는데, 그 자루 안에 비글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한 마리는 오는 과정 중에 이미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있었지만 겨우 사흘을 더 살고 죽었다. 비글들은 우리 마당에 잠들었다. 

 

  마티할머니가 그걸 오염된 개라고 부르는 건, 두 마리의 비글이 실험견이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일하는 곳을 우리는 간단히 센터라고 불렀는데, 그곳에서는 동물들을 활용한 임상실험을 했다. 동물이 우리 대신 화학품 부작용 검사를 받기 때문에 우리가 스킨로션도 바를 수 있는 거라고, 아빠가 말한 적이 있다. 실험에 쓰인 동물들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비닐봉지에 담긴 채 버려졌다. 드물게 실험 후에도 살아남은 경우 안락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비글 두 마리는 아빠가 직접 데리고 온 거였다. 아빠를 유독 잘 따랐던 아이들이었다고는 하지만 실험견이 밖으로 나가는 건 예외적인 경우였고, 센터 초창기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이제 실험동물을 센터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설령 살아있는 경우라고 해도 말이다. 마티할머니처럼 바이러스라든지 그런 걸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이제는 모두 센터 안에서 폐기된다. 그리고 연말에 실험동물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 그렇지만 아마도 또 한번 예외가 생긴 모양이라고, 나는 저 앞에 놓인 지하저장고의 입구를 보며 생각했다.

 

  가로세로높이가 모두 1.5m 정도 되는 컨테이너박스의 입구가 마치 통풍구처럼 바닥에 뚫려 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아래에 또 하나의 컨테이너박스가 들어가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어찌 보면 지금 이 저장고는 이 아래에 있는 다른 하나를 덮기 위해 만든 용도인 것이다. 저장고로 들어가면 여름밤의 공기가 몇 도쯤 서늘해지는 걸 체감할 수 있겠지만, 이 밤에 저 문을 열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밤낮이 뒤바뀌었구나. 개학하면 어쩌려고?”

 

  아빠였다. 아빠는 담뱃갑을 얼른 집어넣으며, 어둠 속에서 빙긋 웃었다.

 

  “요거, 눈이 아주 말똥말똥하네.”

 

  “어? 담배 끊은 거 아니었어?”

 

  아빠는 “거의 끊었다”는 애매한 말을 했다. 우리는 2인용 흔들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몸을 흔들었다. 꽤 오랜만이었다. 최근에는 아빠의 출장과 야근으로 인해 얼굴 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기회가 드물다는 생각, 그리고 아빠가 담배 때문에 수세에 몰렸다는 생각이 들자, 단도직입적으로 궁금한 게 튀어나왔다.

 

  “아빠, 이 아래에 묻은 게 혹시 비글이야?”

 

  “응?”

 

  “아니면 기니피그? 랫? 마우스?”

 

  아빠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다가, 손을 거두고 대답했다.

 

  “토끼.”

 

  토끼구나.

 

  “가을 안에 가져가. 임시로 우리 집에 두는 거야.”

 

  어둠 속에서도 잔디가 뿌리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또 파헤친다고? 그럴 거면 비싼 잔디를 왜 깔았느냐고 묻자, 아빠가 그게 질문이냐는 식으로 대꾸했다.

 

  “회사 돈으로 하는 건데 안 하면 바보지?”

 

  말 그대로 우리는 마당을 빌려준 거네. 마당 아래를. 그렇게 생각하자 그날 본 자루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 자루들이 아마 저 지하 깊은 곳 컨테이너박스 안을 채웠을 것이다. 그만큼을 채우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토끼가 필요한 걸까. 실험용 토끼에 대한 여러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토끼 눈을 고정해놓고 거기에 약품을 바르는 장면도 떠올랐고, 토끼 목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약품을 바르는 장면도 떠올랐다. 토끼는 화장품실험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동물이었다. 순하고, 체구가 작고, 개체수가 많아서.

 

  “아빠. 실험용 토끼는 1초에 세 마리씩 죽는대.”

 

  그렇게 말해놓고 덧붙였다.

 

  “물론, 아빠가 전문가니까 더 잘 알겠지만.”

 

  내 말에 아빠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건 어디서 들었니?”

 

  “책에서.”

 

  아직은 8월의 끝자락인데, 제법 선선한 바람이 의자를 흔들었다. 배롱나무 위에 매미가 벗어놓은 껍질을 발견한 밤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던 매미 껍질은 아침이 오기 전에 쿵, 하고 떨어졌다. 속이 텅 비어있을 텐데도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여름이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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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타고 2017년1월 연재소설 윤고은 YES블로그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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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롤케이크 | 책 밖에서 2017-01-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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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윤고은입니다.

<해적판을 타고> 1과 2를 올린 후

댓글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은 월, 목 아침 8시에 올리지만,

<책 밖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자유롭게 올리려고 해요.

<책 밖에서> 게시물의 댓글엔 저도 댓글을 달겠습니다. 

소설 게시물의 댓글,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모두 답을 해드리지 못해서 아쉬웠거든요.

여기선 악수하는 기분으로요, 아님 건배하는 기분^^

 

 

 

 

 

 

 

이 사진은

2회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실,

잔디롤케이크입니다.

갑자기 제품 홍보하는 듯한^^;;

 

 

 

 

제가 거의 10년 전에 찍은 사진이에요.

이때 롤잔디를 처음 보고 정말 롤케이크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써먹었습니다! 다시 봐도 롤케이크죠.

 

 

 

 

연재는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25회 정도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1월부터 3월까지,

꽃이 올 때까지, 함께 기다려요^^

 

 

 

 

그럼, 전 목요일 아침 3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추워졌는데, 감기 조심하시고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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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2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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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운 건 작업의 속도였다. 한바탕 뒤집어진 마당을 예전처럼 봉합하는 과정이 특히 그랬다. 멀쩡한 마당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할 때부터 새 잔디를 깔기까지, 이틀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롤잔디가 트럭에 실려 도착했고, 그것으로 흙바닥을 덮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단지 잔디가 뿌리를 완벽히 내리는 데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데, 7월의 이 열기가 고비라고 했다. 

 

 

  채송화가 배달된 건, 우리가 마당을 등지고 앉아 롤케이크를 먹고 있을 때였다. 돌돌 말린 잔디가 우리 셋에게 같은 것을 연상시켰기 때문에(초코시트에 녹차크림을 바른 롤케이크), 우리는 엄마가 사온 케이크에 굴복해야 했다.

 

  “절대 좋아서 먹는 건 아니야.”

  둘째는 이렇게 말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분홍색 상자를 든 꽃가게 직원이었다. 케이크에 집중하다 불려나온 막내는 어리둥절한 채로 상자를 건네받았다. 꽃가게 직원은 막내가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 안에 있는 건 채송화였다. ‘3년 된 채송화’ 라는 푯말도 함께였다.

 

 

  “어디에 심을까요?”

 직원이 마당을 가리키며 물었다.

 

 

  다소 놀란 듯한 막내 대신 둘째가 방어적인 태세로 나섰다. 

  “채송화는 어차피 퍼져나가거든요, 여기 심으면 저기도 나고요. 저기 심으면 저기 옆에도 또 난다고요!”

 

  한 발 더 나아갔다.  

  “씨방이 터진다고요.”

 

 

  둘째가 나를 쳐다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나섰다. 나는 ‘3년 된 채송화’ 라는 푯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걸 어떻게 믿어요?”

 

 

  “이름이에요. 3년 된 채송화. 요 아이의 이름이 그거랍니다.”

  직원이 말했다.

 

 

  이름이라는데 어쩌겠어, 나는 거의 그런 표정으로 동생들을 쳐다보았다. 둘째는 자포자기한 듯이, 그래도 꽤 성의 있는 태도로 채송화가 있던 지점을 가리켰다. 막내는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서서, 그 채송화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주시했다. 능수능란한 직원은 채송화를 심었다. 농번기 모내기 수준으로, 재빨리.

 

 

  엄마는 채송화를 아빠가 보냈을 거라고 했는데, 아빠라면 퇴근길에 들고 오지 않았을까. 우리가 함께 화원에 가는 방법도 있고 말이다. 채송화가 등장할 때부터 떠올랐던 건 그 시퍼런 자루 속에 파묻혀 있던 남자였다. 막내의 민원을 접수했던 건 그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게 이런 방식으로 처리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나도 좀 당황했다. 뭐랄까, 한 방 먹은 기분이랄까.

 

 

  “우리 민호 좋지? 채송화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웃어보였지만 막내는 웃지 않았다. 채송화에 대해서는 막내의 지분이 가장 컸는데, 막내는 채송화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본 후, ‘이것은 채송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엄마는 채송화라고 했고, 객관적으로 원래 있던 채송화에 비해 꽃송이도 많고, 싱싱한 모양새였지만 막내 눈엔 채송화가 아니었다.

 

 

  “채송화 아니야!”

 

  “그래, 그 채송화는 아니야. 그런데 얘도 채송화야.”

 

  엄마가 이렇게 인정한 후에야 막내는 겨우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그 채송화’의 행방을 물었다. 엄마는 막내의 오른쪽 손을 그 애의 가슴에 올려주었다. 거기에 있다고 말이다. 다음날부터 막내는 새로 입주한, 그 3년 된 채송화에게도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흙은 출처와 이력을 쉽게 감출 수 있었다. 잔디 위로도 어떤 봉재선은 보이지 않아서, 얼핏 보면 예전 마당 그대로였다. 저 아래 흙을 파내고, 정사각형 형태의 컨테이너박스를 내리고, 그 위를 다시 흙으로 덮은…… 그 모든 게 꿈이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웃들이 있었다. 대문 앞, 같은 골목을 공유한 사람들 말이다.

 

 

  내가 이 집에 살게 된 건 다섯 살 때부터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골목에서 이사하는 집을 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군대에 가거나, 돌아오거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거나, 결혼을 하거나, 여러 이유로 구성원 몇 명이 이동하긴 했어도 집 주인들은 그대로였다. 한마디로 어떤 비밀을 유지하기 참 힘든 구조였다.

 

  이웃들은 우리가 컨테이너박스를 이용해서 지하저장고를 만들었다고 믿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이미 그런 저장고를 가진 집도 있었고 말이다. 우리의 결과물도 비슷했다. 마당 한 끝에 아래로 내려가는 문이 생겼고, 그 문을 열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와인과 색색의 콩, 채소를 저장하는 공간이 나왔다. 그러나 그날 본 자루들은 거기에 없었다. 잿빛의 자루를 본 사람 중에는 바로 옆집에 사는 마티할머니(그 집 개 이름이 마티여서, 마티할머니로 통한다)도 있었다.

 

  마티할머니는 호스를 빌린다고 우리집 문을 두드렸지만, 호스 때문일 리가 없었다. 엄마가 집을 비운 시간에 굳이 초인종을 누른 걸 보면 말이다. 마티할머니는 마당 쪽을 슬쩍 보면서 며칠 전의 잿빛자루가 뭐였냐고 물었다. 나는 흙이었다고 대답했다.할머니는 막내를 향해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울었던 거냐?”

 

  막내는 그저 할머니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공사할 때 채송화가 망가져서 운 거예요. 우리 채송화, 이러면서요.”

 

  내 말에 마티할머니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살짜리가 꽃 때문에 운다는 건 좀 어색하지. 먹을 거면 또 몰라도. 네 살이 ‘우리 채송화’라니, 글쎄다.”

 

  “뭐, 가끔 먹기도 하나 보더라고요.”

 

  내가 대충 던진 농담으로는 할머니를 멈춰 세울 수 없었다. 집요했다.

 

  “나는 어째 좀 이상한 기분이 드는구나. 음, 너희 아버지가 또 오염된 개들을 묻은 건 아니고?”

 

  “아니에요.”

 

  “저번에도 그랬잖아. 센터에서 오염된 개를 가져왔을 때, 그때도 네 동생이 그렇게 울었어.”

 

  “그거 저 유치원 때 얘긴데. 그때 얜 세상에 없었다고요.”

 

  “아버지가 혹시나 또 오염된 개들을 묻으면 가만 안 있을 거다. 그게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왜 모를까.”

 

  “오염된 개들 아니었어요.”

 

  “얘가 뭐라는 거야. 센터에서 온 거 다 아는데, 무슨.”

 

  “센터에서 아빠가 키우던 개였는데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그런 말이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마티할머니 역시 절반만 믿을 것이다.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 지하저장고의 문을 열어 내부를 보여줄 생각이었지만, 할머니는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여전히 저 컨테이너박스 하나를 넣기 위해 우리가 마당을 헤집었다고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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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타고 2017년1월 연재소설 윤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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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 타고』1회 | 해적판을 타고 2017-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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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단지 마당을 빌려준 것뿐이었다. 센터에서는 우리 집 마당이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이 동네에 우리보다 더 넓은 마당을 가진 집이 수두룩한데, 왜 하필 우리 마당이 당첨된 건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는 당첨이란 단어는 적절치 않다고 했다.

 

  우리는 부모님의 일방적인 결정에 토라진 채로, 마당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열두 살이었고, 남동생 둘은 각각 일곱 살과 네 살이었다. 둘째는 그 사실을 내게 상기시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셋을 다 합쳐도, 아빠 나이가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들인 공으로만 계산해보자면, 둘째가 마당에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는 게 마땅했다. 둘째는 학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내내 이 집 마당에 뭔가를 심고 뿌리며 놀았다. 제 방이나 바다도 마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물론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였다. 막내는 태어나면서부터 저 마당에서 뒹굴었고, 나는 마당에 사람들이 머무는 걸 좋아했다. 물론 오늘 같은 사유는 상상해본 적이 없지만.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왼쪽으로 마당이, 오른쪽으로 2층 주택이 보였다. 내 방은 그 2층, 마당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마당엔 우리가 이름 붙인 나무들과, 초대받지 않고도 찾아와 뿌리를 내린 풀꽃들이 있었다. 아빠는 이 마당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모여 사는지를 잊은 게 분명했다.

 

 

  센터에서 보내온 서류는 모두 여섯 장 분량이었는데, 나로서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빠가 서류에 서명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거대한 자루들이 집에 왔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었는데, 불투명한 비닐자루들은 내 키보다도 더 컸다. 비닐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둘째는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뛰어와서는 자루가 모두 다섯 개라고 말했다. 아직 밖에 대기 중인 자루들을 못 보고 하는 얘기였다. 곧, 먼저 배달된 자루보다 두 배는 더 많은 분량의 자루들이 초록 대문을 넘어 합류했다.

 

  그 바람에 우리가 심어놓은 채송화나 맨드라미는 즉사했다. 라벤더는 고장 난 미닫이문처럼 한쪽으로 찌그러졌으며, 죽은 벌레를 발견할 때마다 모아두던 구멍은 증발했다. 금붕어 무덤을 표시했던 십자가는 그게 하드막대 두 개로 만든 것임을 고려해도 너무 무기력하게 쓰러져서, 누가 아무렇게나 먹다 버린 쓰레기처럼 보였다. 그 모든 건 우리 삼남매에게만 보이는 것들이었다. 어른들의 눈에는 어떤 상도 맺히지 않았다.

 

  포크레인은 아침 10시 쯤 우리 집으로 와서 점심이 지나도록 가지 않았다. 그것이 오후 내내 우리 마당을 훼손하는 걸 보는 건 괴로웠다. 둘째는 안절부절 못하며 계속 뭔가를 확인하고 다녔고, 막내는 제가 심은 채송화가 사라진 걸 보고 울기 시작했다.

 

 

  “난 이제 여기서 줄넘기도 못하겠네요?”

 

 

  “할 수 있지, 왜 못하니.”

 

  내가 물었을 때, 대답한 사람은 아빠가 아니었다. 저 아래 깔린 방수포처럼 새파란 색의 점퍼를 입은 남자였다. 아빠의 동료라고 했다. 점퍼는 정강이를 덮는 길이에 품도 너무 커서 마치 저 자루들의 하나처럼 보였다. 그는 종일 우리 마당을 제집인 양 밟고 다녔는데, 시퍼런 자루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자루가 말했다.

 

 

  “지하 10m의 구멍 하나를 잠깐 빌린 것뿐이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단다. 평소대로 뛰어놀아도 돼.”

 

   “우리 채송화는요!”

 

  막내가 소리쳤다. 자루는 막내를 보고 빙그레 웃더니, 엄마를 향해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하 10m이니까요. 사실 보통 사람이 지하 10m에 대해 인식하기는 쉽진 않죠. 지상 10m라면 모를까요.”

 

  나는 병에 든 커피를 하나 잽싸게 가져와서 자루에게 내밀었다. 자루는 이미 자기가 마신 병을 흔들어보였지만, 또 마시면 어떠랴. 그가 조금 더 천천히 움직이거나, 갑자기 피곤하거나 해서, 일이 지연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내일로 마당 공사가 미뤄진다든지, 그게 아니면 모레로라도.

 

  “저 자루들이 다 뭔데요?”

 

  내가 물었을 때 자루는 ‘짐’이라고 대답했다.

 

  “짐이요? 무슨 짐이요?”

 

  “아아, 그러니까.”

 

  자루가 뭔가 말을 하려나 싶었는데 엄마가 그걸 끊었다.

 

  “나중에 설명할게요. 얜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가지고, 걱정도 많거든요. 워낙 책을 좋아해서요.”

 

  엄마는 내 시력이 안 좋은 이유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너무 책을 좋아해서요.’ 내가 운동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너무 책을 좋아해서요.’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나는 아빠의 성격을 닮은 거였다. 책보다는 유전자 문제란 말이다.

 

  “나도 한 독서하는데. 어떤 책을 좋아하니?”

 

 자루가 말했다.

 

  “소설책이요.”

 

  “어떤 종류의 소설책? 수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소설 밑으로 수필이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자루는 자기 인생의 책으로 <어린왕자>를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아니?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최악으로 꼽는 게 책이란다. 큰 가구보다도 책이 늘 짐이라고. 내가 엊그제 이사를 해봐서 알지. 어서 읽고 머리에 많이 넣어 둬. 네 나이 땐 백과사전도 암기할 수 있잖니. 머리에 넣고, 집을 옮길 땐 책도 좀 버리는 게 좋아.”

 

  나는 그가 건드리지 않은 병 음료의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막내가 옆에 붙어서 또 채송화 타령을 했다. 저만치서 일을 다시 시작하자는 소리가 들렸다. 자루가 그쪽으로 갈까봐 내가 얼른 덧붙였다.

 

  “최악에서 두 번째는요? 이사할 때 최악이 책이고, 그러면 그 다음은 뭐예요?”

 

  “으응? 두 번째는, 화분이지. 아아, 그것도 만만치 않아.”

 

 

  “최악에서 세 번째는요?”

 

 이번에는 둘째가 끼어들었다.

 

  “세 번째?”

 

  남자는 동생들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더니, 다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 번째는, 요렇게 들러붙는 꼬맹이들!”

 

  그는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사라졌다. 구멍을 향해. 저만치 구멍 앞에 아빠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저 구멍이 지하 10m란 말인가? 바람이 불어 아빠의 점퍼자락이 펄럭거리는 게 거슬렸다. 자칫 잘못하면 저 구멍 안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였다.

 

  작업은 오후 내내 계속되었다. 해가 저물 무렵엔 그 거대한 구멍이 다시 흙으로 메워졌다. 집 밖에서 낯선 사람들이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고, 시퍼런 자루가 마지막으로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는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하며 ‘현장’이란 단어를 썼다. 문장 전체가 기억나진 않지만, 여기 현장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통화를 끝낸 그는 우리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대문 쪽으로 갈 거라는 예상을 깨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까, 뭐라고 했지? 누가 죽었다고?”

 

  “예?”

 

  “아까 너희들이 계속 그랬잖니. 누가 죽었다고.”

 

  나는 막내를 쳐다보았다. 막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오후 내내 목 놓아 불렀던 그 이름을 말이다. 막내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했다.

 

  “채송화요.”

 

  “채, 뭐?”

 

  “채, 송, 화, 요. 우, 리, 채, 송, 화!”

 

 네 살짜리는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나는 자루가 웃거나, 우리를 혼내거나, 그 둘 중 하나로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두 갈래의 길 중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그는 수첩을 펴들고 동생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채,송,화. 반 친구니?”

 

 반 친구냐고? 어리둥절해진 막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닌데요.”

 

  “그래, 그럼 반 친구는 아니고, 채송화. 몇 살이지?”

 

  문 밖에서 그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얼른 대답하지 못하면 그가 떠나갈 것 같아서, 내가 얼른 대답했다.

 

  “3년 쯤 됐어요.”

 

  “오케이. 3년 된 채송화. 오케이.”

 

  자루는 뭐라고 적은 후, ‘탁’ 소리가 나도록 수첩을 덮었다. 업무의 종료를 알리는 듯한, 경쾌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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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을타고 2017년1월 윤고은 YES블로그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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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앞두고 | 책 밖에서 2017-01-0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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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윤고은입니다.

 

꽤 이른 아침이란 기분이 드는 건, 시간이 아니라 날짜 때문인 것 같습니다.

1월 2일. 게다가 월요일이어서

여러 계획과 실험의 첫 시작점이 되겠지요.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앞으로 겨울에는 글을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조량 때문일까요, 겨울엔 너무 무기력해져서요.

봄부터 가을까지만 열심히 글을 쓰고, 겨울엔 어디론가 증발하는 철새처럼 지내고 싶었죠.

그런데 이렇게

겨울의 한 중심에서 소설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지면에서의 소설 연재는

이인삼각 달리기 같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혼자 뛰는 게 아니라, 모르는 분들-그러나 친해지고 싶은 분들과 함께 뛰는 것.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의 시집 <충분하다>에

담긴 시 한 편을 옮겨볼게요.

 

-----------------------------------------------------------

 

<나의 시에게>

 

가장 좋은 경우는

나의 시여, 네가 꼼꼼히 읽히고,

논평되고, 기억되는 것이란다.

 

그다음으로 좋은 경우는

그냥 읽히는 것이지.

 

세 번째 가능성은

이제 막 완성되었는데

잠시 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

 

네가 활용될 수 있는 네 번째 가능성이 하나 더 남았으니

미처 쓰이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추는 것.

흡족한 어조로 네 자신을 향해 뭐라고 웅얼대면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p90


활자가 된 부분은 미처 그렇지 못한 부분에 비하면 극히 적습니다.

이 시에서 언급한 마지막 가능성처럼, 아직 발현되지 않고 사라지는 말들도 많고요.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사라진 말들, 웅크린 말들, 웅얼거림도

이 지면에서 같이 나누고 싶어요.

 

<해적판을 타고>는 아직 제 노트북 안에서 웅크리고 있습니다만,

외출 시간이 되면 차곡차곡 순서대로 나가게 될 거예요.

소설은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 8시에 올릴 예정입니다.

첫 회를 사흘 후, 목요일에 올리게 되겠지요.

모두에게 즐거운 산책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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