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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만의 색깔, 보랏빛 핑크.(feat. 20 펜처지 스트리트 20 Fenchurch Street) | 언제나 런던행 2020-09-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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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핑크색은 좀 특이하다. 채도가 살짝 낮은 보랏빛이 도는 핑크이다. 핑크 계열이 그저 밝고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우아할 수도 있고 신비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런던에서 '보았다'. 이 보랏빛 핑크의 특별함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20 펜처치 스트리트 20 Fenchurch Street>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몰이 시작될 즈음, 워키토키의 맨 윗부분은 보랏빛 핑크로 물들게 된다.

 

 

생긴 모습에 빗대어 <워키토키 빌딩 The Wakie Talkie>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건물은 무료로 개방되는'스카이 가든', 두 개의 바와 두 개의 레스토랑 등으로 인기가 있다. 건물의 맨 위의 세 개의 층 35층, 36층, 37층을 하나로 터서 벽면과 곡선의 돔형 천장 전체를 유리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런던 시내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35층, 36층, 37층은 유리 벽면을 따라 늘어선 계단을 통해 한 공간으로 이어지므로 한 바퀴 돌면서 180도로 펼쳐지는 런던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스카이 가든'은 무료이지만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입장 가능하며 인기가 많다 보니 지상층 입구에는 대기줄이 있다. 소지품 검사도 하므로 대기시간이 더 길어졌다. 36층에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한 경우라면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아 전망대 입장객들의 대기줄에 서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눈 깜짝할 사이에 35층에 도달하고, 내려서 오른 편으로 스카이 가든에 들어서면 깜짝 놀라게 된다.  날렵한 피라미드의 자태로 은빛으로 빛나는 '더 샤드 The Shard'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땅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샤드를 목이 빠져라고 올려보다가 여기 하늘 아래로 올라서니 거의 동등한 높이가 되어 손에 잡힐 듯 대면하게 된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감겨 흐르는 템스강을 중심으로 고즈넉하게 펼쳐져 있는 런던이라니... 참으로 좋은 순간의 참으로 좋은 장면은 그 어떤 말도 허락하지 않는다. 언어가 있어도 묘사가 되지 않는 장관에는 침묵만이 허락된다.한편, 35층에는 테이블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바 sky pod, 36층에는 툇마루 처럼 생긴 자리에 앉아 뷰를 내려다보며 마실 수 있는 바 city garden 이 있다.

 

 

 

 

 

하늘을 머리 위에 두른 데다가 강을 발 아래에 두다니 이보다 더 멋진 '전망대'가 있을까... 경탄을 연발하며 이동하다가 '타워 브리지'가 가장 잘 보이는 부분에서 한참을 서 있게 된다.  '가든'이라는 이름에 맞게 36층으로 오르는 곳에는 계단식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높다란 식물들이 가득하다. 손으로 만져보니 조화이긴 하지만 깊은 초록의 분위기는 이곳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모든 것을 고려해보면 런던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에 이곳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전망에다가 저녁식사도 겸한다면 그야말로 완벽해진다. 36층에 위치한 레스토랑 '다윈 브라서리 Darwin Brasserie'는 경쾌한 분위기에서 스테이크에서부터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특별한 순간을 위해 흔쾌히 지불할만한 가격대이고 주위가 서서히 보랏빛 핑크로 물들어 오는 것을 볼 수 있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로 손색이 없다. 로맨틱한 커플에서부터 다정한 가족에 이르기까지 또는 격식을 차린 비즈니스적 만남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가끔 둘러본다면, 여기가 바로 행복의 현장임을 확인하게 된다.

 

 

 

 

 

 

 

 

 

서서히 안개가 퍼져나가듯이 보랏빛 핑크가 사방에서 피어오른다. 조용히 가라앉기 시작하던 저 바깥의 런던도 어둑어둑해지는가 싶더니 아예 까맣게 내려앉았다. 캄캄한 무대에 잠시 정적이 돌더니 곧 하나 둘 조명이 켜진 듯하다. 옛날과 현대의 유적들이 기품을 발하며 장엄하게 도열하고 있던 런던 시내에 어느덧 불빛들이 무수해졌다.  아기자기하게 속삭이는 불빛 속에서 런던은 사랑스럽게 반짝이고 있다. 밤을 무대로 다른 얼굴을 내민 런던을 바라보기 위해 스카이 가든 전체를 다시 한번 거닐어 본다. 런던의 스카이라인을 한껏 치켜세워주는 마천루들도 여기서는 유리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가볍게 날아오르며 하늘과 땅을 자유자재로 드나들게 하는 마법 가루가 공중에 흩날리고 있다. 유리창으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며 온갖 신기한 아이템에 홀딱 정신이 팔린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흥분을 이기지 못하겠고 행복을 잠재울 수가 없어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다.

 

 

 

 

 

 

 

 

 

현실의 내가 추억이 된 과거의 어느 시간을 살고 있던 나를 부러워할 때가 있다. 여행하고 있던 나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절정의 행복을 누리다가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모든 영광은 사라지고 평범하게 쪼그라들어버렸던 그 경계의 시간에는 심장을 내려앉히는 섬뜩한 그 무엇이 있다. 여행이 끝날 무렵 여행의 마법이 걷어지며 현실로 추락할 나를 한없이 안쓰러워했었더랬다. 시간은 흐르는 법이므로 나는 과거에서 현재로 밀려와 버렸지만, 현재의 일상에 서 있는 나 역시 미래의 여행 안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 애타는 마음을 다독이며 기다리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감히 그 어떤 여행의 휘황찬란함도 누릴 수 없는 2020이라는 이 시간들, 나의 여행 시계도 멈추어 있다. 그러나, 먹통 상태로 멎어버린 것은 아니다.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출발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준비의 시간인 셈이다. 나를 그토록 황홀하게 에워싸 주었던 런던의 보랏빛 핑크를 자꾸자꾸 기억하며 준비한다. 그 광채 아래서 런던을 한껏 사랑하고 내 삶을 향해 무한으로 꿈꾸고 있을 그 순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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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을 좇은 인생, 그 이름은 화가 | yes24 리뷰어클럽 응모 및 우수작 선정리뷰 2020-09-1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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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전준엽 저
중앙북스(books)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세상에 맞서고 자신을 이겨내며 치열함과 의연함으로 열어나간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화가라는 이름으로 실행된 이 새로움은 숙명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숭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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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읽어주는 책들은 항상 새롭다. 유명한 그림과 화가의 이야기라면 어느 미술책에나 소개되기 마련이어서 여러 권의 책을 읽다 보면 지식을 터득하게 되기도 하지만, 책마다 보는 각도나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여러 개의 시각을 기를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결국 그림과 화가로부터 인생을 배우고 삶을 바라보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겨난다. 이것이야말로 미술책을 끊임없이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에도 누구나 기대하는 유명한 그림들이 대거 등장한다. <모나리자> <풀밭 위의 식사> <인상:해돋이> < 까마귀 나는 밀밭> 등등 제목만으로 그림이 퍼뜩 떠오르며 그림과 화가의 사연을 얼추 읊을 수 있는 '평범한' 작품들이 나온다. 다만, 'artist's view'를 통해 그림을 '보는'데에 필요한 구도와 주제를 잡아주어 실제 감상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구도를 잡을 수 있다면 화가의 '숨은' 의도도 파악할 수 있고 미술을 더 즐길 수 있다.

 

 

 

 

그림을 대할 때 나처럼 '직관'을 중시하는 경우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많다. 아무리 미술을 좋아하고 미술책을 가까이한다 하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화가와 작품을 알고 있지는 않을터이므로, 새롭게 만나는 작품에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 일부러 이 책은 '목차'를 읽지 않고 책 전체를 한번 훑지도 않은 채, ( 증폭되는 궁금증을 안고) 본문을 차례대로 착실히 읽었다. 아는 그림이 나올 때의 반가움과 처음 접하는 그림이 안겨주는 신선함을 온전히 즐기면서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시대도 화풍도 각양각색인 그림들을 (다 읽은 후 세어보니 총 62개의 작품들) 읽어나가는 사이, 나에게는 하나의 키워드가 잡혔다. 바로 '새로움'이었다.

 

 

 

 

 

 

시대가 바뀌면서 화풍도 바뀌어 새로운 걸작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기도 하지만, 일부 그림은 시대를 바꾸어 놓기도 했다.  <비너스의 탄생>이 발산하는 감미로운 신비감에  늘 감탄하지만, 이 책에서 이 그림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겨 보니까 아름다움에 위대함이 더해진다. 기독교 문명이 주를 이루었던 중세의 세계관을 깨고 그리스-로마 문명을 되살려내려는 취지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이다. 더군다나, 이 그림에는 왼쪽의 제피로스의 입에서 불어나오는 강풍에서 시작된 운동감이 있어 그림 전체에 생기가 가득하다. 비너스의 몸과 머리칼도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오른쪽의 요정들이 들고 있는 옷도 펄럭인다. 새로운 시대의 개벽을 알리는 새로운 그림의 탄생은 오늘을 사는 나의 정신에도 요동쳐 온다.

 

 

 

 

 

오르세 미술관을 갈 때마다 타지로 대여되어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나에게는 비운의 작품이 되어버린, 제임스 에벗 맥닐 휘슬러의 <회색과 검은색의 구성, 화가의 어머니>도 미술사에 중요한 지평을 연 새로운 작품이다. 근엄하면서도 카리스마를 풍기는 어머니의 옆모습일 뿐인데, 왜 '추상의 시작'을 알린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을까? '수평, 수직으로 구성'했고 '3등분의 비례'를 살려 '평면적이면서도 장식적인 화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검은색이 그림을 장악하여 지극히 평면적이지만 구성의 묘미인 곡선과 직선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긴장미가 느껴진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추상미술의 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렸을 적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물론 지금도 이 그림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꼭 가야 하는 이유는 이 그림을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은 '과학적 회화'를 시도한 작품이다. 쇠라는 '신인상주의'로 분류되는데 인상주의에 색채학적 과학 이론을 도입해 논리적인 회화를 열었기 때문이다. '순간의 이미지에 영원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에 따라 이 그림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40명에 가까운 인물이 등장하고 구성도 복잡하지만 마치 이집트 벽화와 같은 기하학적 형태미와 계산된 구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이 그림은 멈춰 있고 보는 이에게 휴일의 한가로운 정서로부터 ' 영원한 가치를' 발견하게 한다. 

 

 

 

회화와 과학이 만났듯이 음악이 회화에 '스며들기'도 했다. ' 라울 뒤피'는 속도감 있는 필치와 즉흥성이 엿보이는 색채를 이용하여 음악적 요소를 다분히 살렸다. 직접적으로 음악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에서도 음악을 포착할 수 있다. '색채와 형태를 조합하여 교향곡과 같은 예술적 감흥을 자아내는 회화'를 표방하며 음악 이론을 회화에 도입하면서, 칸딘스키는 '그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색조는 음색, 색상은 음의 고저, 채도는 음량에 비유하며 그의 그림을 살펴본다면 정말로 음악이 들릴 것이다.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 놓고 그 위를 걸어 다니며 물감을 뿌리는 방법은 어떤가? 충격적일 만큼 새로운 시도이다. 잭슨 폴록의 '드립 페인팅' 또는 '올오버 페인팅' 기법은 '무엇을' 그렸는냐 보다 '어떻게' 그렸는냐를 중시하는 '추상표현주의'를 대중에게 알린 철저하게 새로운 시도였다. 형상과 이야기가 빠져나가버린 20세기 이후의 회화는 감상과 내용 이해를 위한 대상이 아니다. 대신에 화면 구성과 제작 방법을 발견하고 점-선-과 색채 배열에서의 조화를 음미하게 한다. 물감(공업용 에나멜페인트)이 빚어내는 질감과 다양한 점과 선이 만들어내는 우연성과 운동감으로 역동성을 자아내는 폴록의 회화보다 20세기 회화의 기치에 더 적합한 메뉴는 없을 터이다. 때마침 미국 사회는 냉전 시대를 통과하며 억눌려 있던 터라 역동적이고 도발적일 만큼 참신한 폴록의 그림은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핑크빛이 살짝 도는 보라색 물감을 '뿌려' 놓고선 '라벤더 안개'라고 부르다니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까지 알았던 모양이다.

 

 

 

 

무엇을 그렸는지조차 분간이 불가능한 추상미술은 아름다움과도 한참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나, 추상미술에 진입하기 이전부터, 미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공식은 깨지고 있었다.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을 보면 미술은 아름다움의 굴레를 벗어나 새롭게 확장하고 있다. 뭉크는 '영혼의 모습을 아름다움의 영역에 추가'했다. 그의 그림에 나타나있는 질병, 고통, 광기, 불안은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유도되고 또다시 죽음은 영혼의 존재와 연결된다. 너무나 유명하여 '친근'하기까지 한 그의 <절규>에는 불안과 긴장이 넘친다. 구도와 색의 대비로 화면 전체가 출렁이며 비명 소리는 보는 이의 귓가에까지 울려온다. 이 그림을 보며 일종의 '위안'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요소에서 아름다움의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 했던 뭉크의 진정성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독일 화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도 아름답지 않은 그림을 세상에 선보였다. '거칠고 설익은 에너지의 충동이 보여주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를 시도한 '원시주의' 미술의 대가이다. 야수파 및 표현주의와도 맥이 닿는 그의 그림을 보면, 원시주의 미술이 어떤 것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마치 음악의 불협화음과 같이 부조화를 통해 색채의 가치와 감정을 부각시키고 있다.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 Galleria Borghese'을 찾았을 때 처음으로 조각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돌은 분명 감정과 스토리를 지닌 채 생기와 감동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 살아 움직이는 조각 작품들은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의 손끝에서 탄생했으며, 그는 '그림에서 가능했던 것을 처음으로 조각으로 실현'했다. 17세기 로마를 주 무대로 왕성하게 펼쳐지고 있던 바로크 양식의 대표주자로서 베르니니는 조각으로 회화보다 더욱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냈다.

 

 

 

풍경화에서는 어떤 새로운 시도가 가능할까? 영국을 서양 미술의 중심에 서도록 견인차 역할을 한 대표적 영국 화가 '폴 내시'의 그림은 풍경화도 얼마든지 새로울 수 있다고 말해준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풍경이 마치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은 낯선 분위기'를 품고 있으며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에 힘입어 시적인 느낌마저든다. 공포가 휩쓸고 간 적막한 침묵의 풍경에 '독특한 환상성'을 가미한 것이다.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이를 현실이 아닌 것처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그려보는 것, 화가의 자기최면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현실을 현실답지 않게 그려내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듯이 현실의 사회를 '있는 그대로' 옮겨 놓아도 충격적일 만큼 새로운 그림이 될 수 있다. 에두아르 마네라는 이름과 가장 먼저 거론되는 <풀밭 위의 식사>는 가히 혁명이라 할 만큼 '정직한' 그림이다. 파리의 부르주아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 '현실 속의 인물들로 상식 밖의 장면'을 연출한 반면, 원근법이나 누드에 대한 전형적인 관념을 깨뜨림으로써 회화는 이상이 아닌 현실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는 화가의 신념을 담았다. <올랭피아> 역시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자신이 본 사회 현실을 그대로' 그리겠다는 의지에서 탄생한, 이전의 미술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미의 모범으로 자리 잡고 있던 비너스를 모방하여 결코 성스럽지 못한 분위기로 세속적인 여인을 등장시킨 이 그림은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다. 마네는 스페인으로 몸을 피해야 할 정도였다니 당시 사회에 대해 이 그림이 내던진 도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그림을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갈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보는데 '대단하다' (<풀밭 위의 식사>는 한 벽면을 차지할 정도의 규모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그토록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새로운 그림을 그려낼 필요가 있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노이즈 마케팅 같은 효과를 거두어 자신의 명성이나 부에 발전적인 도움을 얻은 바도 없으니, (그림 때문에 시달린 것 말고) 과연 마네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지 알고 싶다.

 

 

 

 

 

마네와 불과 몇 십 년 차이밖에 않지만 파리의 유흥 문화를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은 비난을 받지 않았다. '매음굴의 내부 장식에 유명 화가들이 종종 참여'할 정도로 유흥 문화가 새로운 시대적 추세로 인정받고 있어서였을까? 로트레크는 '현대적 의미의 포스터를 처음 만들었'고 포스터와 그래픽, 판화를 수백 점 제작했던 새로운 미술 세계를 열어젖힌 화가이다. 단순히 유흥문화를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화려하고 떠들썩한 이 세계에 스며들어 있는 삶의 어두운 면을 '연극적인 분위기'의 그림으로 세심하게 포착했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은 더욱 새롭게 보인다. 찬란한 도시의 강렬한 조명 빛 아래 살고 있지만 쓸쓸하고 어두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을 보면 에드워드 호퍼가 탄생시킨 뉴욕의 외로운 얼굴들이 생각난다. 물론, 21세기 도시 어딘가에서 음울해하는 우리의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렇게 새로움을 시도했던 화가들은 모두 '이제는' 위대한 화가들의 반열에 올라 있다. 자기가 살았던 시대에서 외면받거나 비난이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 새로움이 시대를 한참 앞섰기 때문이었을 테고, 시간이 흘러 제때를 만나면서 인정과 존중을 받는 것이다. 한 화가가 처음으로 시도한 새로운 속성이 다른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어 또 새로운 그림들이 탄생하는 데에 초석이 되었다면 그 위대함은 한층 더 격상된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여인의 초상은 그 이전의 초상화와 현격히 다르다. 어둡고 비틀어져 있다. 개인적 삶으로 보면 고흐 못지않게 불행했던 그는 원래 조각 지망생였기 때문에 '회화답지 않게' 기형적 형태에 눈동자가 없고 긴 목에 무너져 내린 어깨를 가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가느다랗고 긴 목에 우수 가득한 표정을 한 여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실제 그의 아내로서 역시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잔 에뷔테른을 많이 그렸다) 독특한 방식의 형태 구성은 세잔과 피카소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세잔과 피카소에서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현대미술의 첫 출발은 모딜리아니였다고 볼 수 있다.

 

 

 

 

폴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린 그림도 여느 풍경화 같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작품이다. 아예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내려와 생트 빅투아르 산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이 산을 여러 장소에서 그리고 또 그렸다. 산은 풍경의 소재가 아니라, '자연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형태가 큐빅(원통, 원뿔, 구)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생각을 실험하기 위한 연구 대상이었다. 전통적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색채의 성질을 이용하여 원근과 공간감을 표현했다. 어둡고 차가운 색으로 먼 느낌을 자아내고 밝고 따뜻한 색조로 가까움을 나타냈다. 회화는 '색채의 성질과 붓질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세잔이 구현한 '붓터치를 일정한 크기로 대립시켜 견고한 입체감을 주는 방식'은 피카소에게 영향을 주어 입체파의 탄생에 절대적 역할을 했다. 더 큰 틀에서 보면 세잔이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대중적 인기가 가장 높은 그림들은 무엇일까? 아마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일 것이다. 왕, 성서, 영웅, 신화 같은 이야기는 찾을 수 없고 다만 '현실 속에서 작가가 인상 깊게 본 장면만을 그린' 인상주의는 클로드 모네의 <인상:해돋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기존 미술과 다른 길을 개척한 이 그림은 외면과 비난을 받았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는 인상주의라는 거대한 화풍을 탄생시킨 걸작이다. 그림을 그리다 만 것처럼 윤곽이 불분명하고 명확한 주제나 교훈도 찾아볼 수 없이, 그저 풍경이나 파리의 생활상을 스케치하듯 그려놓은 인상주의 그림들은 이전 미술과의 완벽한 단절을 고하며 새로운 미술 혁명을 일으켰다.

 

 

 

 

'상징주의'는 쉽게 습득이 잘 안되는 사조였는데,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음의 섬>을 보면서 단박에 실감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인데 어딘가 모르게 낯설고 신비로우면서도 불안을 몰고 온다. 하얀 절벽으로 이루어진 외딴섬, 높고 짙은 나무들이 이루는 숲, 뱃사공, 회색빛 하늘 등은 익숙한 이 세상의 것들이지만, 화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덧입혀져 '삶과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상징주의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를 잇는 (또는 사실주의를 탄생시킨) 가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가 자연 속 불가사의한 힘, 신화나 전설, 이성 뒤의 감성 등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리며 '비현실적 낭만성'에 치중했다면, 상징주의는 현실의 사건을 극적으로 나타내는 '사실에 입각한 낭만성'을 지향했기 때문에 사실주의를 도래시켰다.

 

 

 

 

새로움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당한 면이 적지 않지만, 여성 화가는 그 존재가 미미한 탓에 ( 남성 중심의 예술계에서 합당한 대접을 못 받은 탓에) 미술사에서 늘 새로운 현상처럼 보인다. 비교적 현대로 넘어와서도 명망 있는 여성화가라고는 프리다 칼로나 조지 오키프를 비롯하여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양 미술 사상 최초의 여성 화가는 무려 400여 년 전에 등장했다. 이름은 (너무 생소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이고, 카라바조 및 루벤스와 더불어 바로크 미술을 이끈 천재적 화가였다. 그들에 뒤지지 않는 종교화와 역사화를 그렸지만, 사후에는 역사 속에 묻혀 버렸다. 그녀가 그린 유디트 그림은 그 많은 유디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미지를 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눌림 받았던 개인사가 반영되어 있어 더욱 강렬하게 와닿는다. 남성에 가려 피폐한 인생을 살아야 했던 여성작가라면 카미유 클로델을 빼놓을 수 없다. 조각가로서 천재적 소질을 일찌감치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로댕의 조수, 모델, (불행한) 연인으로만 남아 있다. "악마 같은 로댕의 머릿속에는 내가 자신을 뛰어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다'라고 유서에 적을만큼 절망적인 슬픔의 인생을 살았던 클로델은 늘 깊은 연민의 대상일 뿐이다. 반면에 프랑스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은 당대에 인정받았고 지금도 '프랑스적 감성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화가'로 사랑받고 있다. 유일하게 샤넬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지만, 당시 피카소의 친구이자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파란만장한) 러브 스토리가 로랑생의 인지도에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샤넬의 초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입체파나 인상파 같은 주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완성했다는 점, 그리고 <여자>처럼 지금까지도 애송되는 시를 쓰면서 평생 자신의 예술 세계를 다졌다는 점에서 '화가로 인정받은 최초의 여성'이라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어떤 전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인물을 색다르게 그려낸 그림들도 새로움의 경지에 서 있다. 약 380년 전 바로크 시대에 카라바조와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이 극적인 사실감을 살린 종교화를 그리고 있을 때, '성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일상적 현실성'을 갖는 종교화를 그렸다면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음에 틀림없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촛불을 모티프로 삼고 있어 '촛불의 화가'로 불리는 '조르주 드 라 투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이기도 한 <등불 아래 참회하는 막달레나>를 루브르 미술관에서 보았을 때, 나는 두 번 놀랐다. 수많은 그림들 사이에서 촛불이 강력한 광원이 되어 시선을 끌어 한 번 놀랐고, 이 숙연하기도 하면서 농염하기도 한 여성을 '막달레나'로 칭하고 있는 그림의 제목의 한 번 더 놀랐다. 예수의 생애에 등장하는 '막달레나'(예수의 임종을 지킨 여성들 중 한 명인 막달라 마리아)를 성스럽다기보다는 인간미 물씬 풍기는 (임신한) 여성으로 그려 놓았다. 폴 고갱의 <마리아를 경배하며>도 성서의 인물을 지극히 세속적인 이미지로 바꾸어 '새롭게' 그린 그림으로 꼽아야 한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리는 화풍으로 인해 '서양 미술의 이단자'로 외면받았던 고갱은 기독교 신성의 상징인 마리아와 예수마저 '불경스럽게' 그려놓았다. 타히티 원주민으로 등장한 예수와 마리아를 비롯해 그림의 어떤 요소에서도 '신성함'을 찾아볼 수 없다.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색면구성'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일본의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색채의 가치를 최대한 살리고 평면화시켜 사물의 특징을 간략하게 나타내는' 방법을 적용했다. 원시적인 타히티가 문명의 세계보다 순수함에 있어서 한 수 더 위임을 확신하며 신성과 순수성을 연결한 의도는 가히 새롭지만, 당시 시대는 이런 낯선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한 새로움 중 가장 새로운 것은 '시와 낭만이 너울대는 우리 그림'이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대로 기억에 남아있는 윤두서의 <자화상>, 정선의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박연폭포>, 안견의 <몽유도원도>, 신윤복의 <미인도> 등을 찬찬히 음미해 보기는 이 책에서 처음이다. 색채감도 거의 없고 산수 아니면 인물을 덩그러니 그려놓고 여백의 미와 섬세한 필치를 애써 강조하던 이전의 접근은 늘 궁핍해 보였었다. 살아오면서 서양미술에 압도적으로 많이 노출되다 보니, 두루뭉술한 동양화의 일부로서의 우리 그림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무덤덤하여 지루하기까지 했던 우리 그림에서 화가의 '생각'을 알아보게 되었다. '이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설정하고, 이상향을 향한 마음을 담은' 산수화의 구도를 파악한다면, 서정적인 풍경 속에서 인간과 인생을 읽어낼 수 있다. 서양에서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꿈의 세계를 그리는 초현실주의가 등장했지만, 우리 그림에서는 이미 1447년에 안견이 <몽유도원도>에서 꿈의 세계 또는 유토피아를 그려냈다. 만만치 않은 크기로 비단에 3일 만에 그려낸 이 그림은 현실 세계에서 차츰 꿈의 세계로 올라가는 힘든 여정을 풍경적 요소로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은 '역경의 행로'를 전제한다는 변하지 않는 진실을 맞닥뜨리게 하는 걸작이다. 비록 의미를 캐내어 보지 않았지만, 어떻게 저 많은 세세한 선들을 일일이 붓으로 그렸을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정선의 <금강전도>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다. 금강산을 다녀온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감동을 풀어내 그린 그림이다. 금강산의 유명한 장소들을 한눈에 보이도록 재구성한 접근 방법도 새롭다. 돌산과 흙산을 조화롭게 그려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데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조화롭게 이끄는 음양의 이치'로 확장시켜 이를 '태극의 구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분명 우리 그림에도 천재 화가가 존재했었다.

 

 

 

 

 

 

 

 

그림에 관한 책을 다 읽고 나면 늘 묵직한 감정이 솟아오른다. 감동이기도 하고 존경이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숙연한 애잔함 같은 것이 피어오른다. 화가들의 생은 한결같이 치열했고 자신의 의지대로 그림을 그려내는 데에는 항상 마뜩잖아하는 눈초리가 가해졌다. 찬사보다는 비난에 익숙해져야 했고 진심 어린 시도에는 이해보다 냉대가 뒤따랐다. 이 책에서 내가 키워드로 잡은 '새로움'의 세계에 등장하는 화가들은 더욱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는 길이 보편적 세상의 길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을까? 어두운 밤 홀로 한숨 지으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생고생을 사서하고 있는 걸까,라고 후회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화가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묵묵히 새로운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요즘 도전은 강력하게 장려되는 덕목이지만, 이 화가들의 남다른 개척과 도전 정신은 생전에 응당의 열매를 거둔 경우가 드물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새로움에의 도전이었던가? 후대의 칭송과는 별도로 선구자 정신을 몸소 실현한 이들의 노력에는 당시에 어떤 긍정적인 '의의'가 성립되고 있었을까? 자신을 희생시켜 미술사의 전진과 인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노라는 구태의연한 답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부단히 이 질문을 품으며 차츰 나만의 구체적인 해답을 마련하고 싶다. 시대와 장소를 넘나드는 여러 명작들을 통해 눈부시지만 한편으로는 처절한 '새로움'의 영역을 조망하면서 나름의 성찰을 하게 된 것, 이 책이 새롭게 선사해 준 지식과 감각 덕분이었다.

 

 

 

ps> 이 책은 84쪽에서 '에두아르 뷔야르'를 여성 화가로 거론하고 있는데, 이분은 20세기 초 나비파 일원으로 활동했던 프랑스 출신의 '남자'화가이다!

 

 

**이 글은 yes24 리뷰어 클럽의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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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의 수동태 werden+pp | 나의 독일어 2020-09-1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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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의 장점을 꼽으라면 발음이 '정직'하다는 것이다. 즉, 철자대로 발음하면 된다. 글자 하나하나 빠뜨림 없이 음을 갖는다. 그러나, 말하고 들을 때는 '자연스러움'이 앞선다. 또박또박 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묻히는 음이 생기기 때문에 특히 듣기의 상황에서는 곤혹스러워진다. 너무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읽다 보니 내가 읽는 독일어와 듣는 독일어 사이에 크나큰 간극이 생긴다. 독일어에서 아직도 초보 중 초보 수준임을 실감한 오늘, 다시 mp3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새마음으로 익힌다.

 

 

그러다가, 문법에서 걸려버렸는데 '수동태'이다. 영어의 수동태의 기본 공식 'be 동사 + 동사의 과거분사(pp)'는 귀여울 정도로 간소하다. 독일어의 수동태는 그야말로 '신세계'이다. 이 가파른 산을 넘기 위해 여전히 정리하고 연습할 뿐이다.

 

 

 

 

A. 수동태의 기본

 

 

1. 4격 목적어 (~을/를)를 주어로, 동사는 werden + pp, 주어는 von+3격으로

 

Der Mechaniker repariert das Auto. → Das Auto wird von dem Mechaniker repariert.

 

 

 

2. werden + pp는 문장의 시제에 따라 변한다:

 

① 과거시제 문장: wurde (werden의 과거형)+ pp

Der Onkel shcenkte dem Kind eine Puppe.

→ Eine Puppe wurde von dem Onkel dem Kind geschenkt.

 

 

② 현재완료: sein ~ pp. worden

Sie hat mir das Restaurant empfohlen.

→ Das Restaurant ist mir von ihr empfohlen worden.

* werden은 pp형은 geworden이지만, 수동태에서는 worden으로 쓴다.

 

 

③ 과거완료: war ~ pp. worden (현재완료 수동 공식에서 sein을 과거형 war로 바꾸면 끝)

 

 

 

 

 

④ 미래 :werden ~ pp werden (앞의 werden은 미래를 나태내고, 뒤의 werden은 수동태의 werden)

Meine Nachbarin wird menine Blumen gießen(물주다)

→ Meine Blumen werden von meiner Nachbarin gegossen werden.

 

 

 

⑤ 미래완료: werden ~pp. worden sein (현재완료의 수동태에 '미래'의 werden만 첨가하면 끝)

 

 

 

 

 

 

3. 일반인을 나타내는 man이 주어일 때는 수동태에서 von +3격으로 쓰지 않고 생략한다.

Was isst man in Deutschland zum Fruhstuck?

→ Was wird in in Deutschland zum Fruhstuck gegessen?

 

 

4. 조동사가 있는 수동태: 조동사 + 동사원형 → 조동사 ~ + pp. werden

Man kann die Sonnenenergie nutzen.

→ Die Sonnenenergie kann genutzt werden.

 

Der Tierarzt musste den Hund sofort operieren.

→ Der Hund musste von dem Tierarzt sofort operiert werden.

 

 

5. von +3격이외에 , durch +4격 및 mit +3격도 있다.

① von +3격 - 수동의 동작자 (사람 또는 사물)

② durch +4격 - 수동의 동작이 발생하게 된 원인 또는 매개자를 나타냄

 

 

③ mit +3격 - 직접적인 도구 또는 재료

 

 

 

 

B. 상태 수동:sein +pp

 

 

werden +pp는 '~되고 있다' 또는 '된다'의 상황을 나타내는 '동작 수동'이고, '~되어 있다'의 상태를 나타내는 수동은 따로 있다. 즉, 상태 수동이라 부르며 sein+pp로 표현한다.

 

 

Der Dome wird gebaut. 성당이 건축되고 있다.

vs. Der Dome ist gebaut. 성당이 건축되어 있다.

 

 

Der Computer ist schon ausgeschaltet. 꺼져 있다.

Fur euch war der Tisch gedeckt. 차려져 있었다

 

 

 

 

 

C. 자동사의 수동태

 

원칙적으로 수동태란 목적어(4격)를 주어(1격)로 바꾸므로, 목적어가 없는 자동사는 수동태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비인칭주어 es를 주어로 사용하여 수동태로 만들 수 있다.

이때, 도치법, 후치법이 적용되면 es는 생략한다.

 

 

Eine nette Dame half dem Auslander.

Es wurde dem Auslander von einer netten Dame geholfen.

Dem Auslander wurde von einer netten Dame geholfen.

 

 

Die Studenten warten auf den Professor.

Es wird auf den Professor von den Studenten gewartet.

Auf den Professor wird von den Studenten gewartet.

 

 

 

** 본문에서 공부한 예문들의 출처 『독일어 중고급의 모든 것』과 『최신 독일어』

 

 

 

D. 연습하면서 마무리

 

 

 

 

 정답↓

 

 

 

 해도 잘 안되는, 안 하면 깡그리 잊히는 독일어를 붙드는 방법 - 여행을 생각한다

 

비엔나의 숱하게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인 '시청 Rathous'

 

5개 첨탑이 있는 네오고딕 양식.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링도로 구축 사업에서 가장 먼저 완성한 건물.

 

 

중앙의 97.9 m 첨탑 꼭대기에는 중세의 기수였던 '프란츠 가스텔'을 모델로 한 조각상이 올려져 있다- 키 5.4m 몸무게 650kg의 일명 '라트하우스만rathousmann'이 갑옷에 창을 든 모습.

 

 

설계를 맡았던 '프리드리히 슈미트'가 보티브교회보다 더 높게 지으려고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으나, 지금은 시청 건물의 마스코트.

 

 

시청 앞 광장에는 사계절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가는 법 :

U-Bahn U2, 라트하우스 역 하차 후 도보 1분

또는 트램 1, D 번 라트하우스플라츠 / 부르크테아터역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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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는 건축, 우리가 살아야 할 공간 | yes24 리뷰어클럽 응모 및 우수작 선정리뷰 2020-09-1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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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르코르뷔지에

신승철 저
arte(아르테)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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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내 마음이 끌렸던 건축과 공간은 모두 르코르뷔지에의 진실된 마음에서 탄생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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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는 유명 건축가들 이야기마다 꼭 등장하는 그 독특한 이름으로 인해 나에게 부단히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언젠가' 알고 싶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르코르뷔지에의 전반적인 것을 다루는 이 한 권의 책은 큰 기대를 일으켰다. 그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던 흐릿하고 불분명한 편린들이 이 책에 힘입어 입체적으로 연결되면서 '르코르뷔지에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앎'이 성립된다면, 나의 인생에 또 하나의 참고할만한 본보기가 더해진다. 내가 알지 못하며 해 보지 못하는 이 다른 '삶'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지침이 되고, 지혜와 힘을 얻는 원천이 된다.

 

 

나에게 건축은 우선적으로 여행과 결부되어 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건축과 공간인데, 사실 여행안내서에든 실제 여행지에서든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을 들어보거나 본 적이 거의 없다. '현대건축의 아버지'라면 현대적 도시의 한복판 어디에서든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하나 정도는 탐방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근본적으로는 나와는 먼 20세기 초~중반에 활약했기 때문에 21세기의 여행지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제1차,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대혼란의 시기에 활동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이름난 건축가들이 서로 경쟁하듯 도시의 랜드마크를 쌓아올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화려한 수사를 달고 세계적 이목을 받는 스타 건축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르코르뷔지에를 알고자 해야 한다.

 

 

 

나처럼 건축학도가 아니라, 예술적인 측면에서 '아름다운' 공간과 건축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이 책의 건축학적인 접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책은 르코르뷔지에를 대표하는 건축물과 도시계획을 자세하게 설명은 하고 있는데 이해를 도와줄 실물 사진은 첨부해 놓지 않았다. 당시 주류를 이루던 장식적 기교에 초점에 둔 건축물들과는 달리 콘크리트라는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재료를 이용하여 표준화, 규격화, 대량생산이 가능한 건축을 추구했다든지, 그가 '필로티-옥상정원-자유로운 평면-수평창-자유로운 입면 등 근대 건축의 5원칙을 정립했다든지 등의 획기적인 사실들을 글로만 읽으며 '상상'해야 했다. 빌라 사보아, 르 랙, 위니테 다비타시옹, 롱샹 성당,라투레트수도원,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의 오두막집 등 그의 대표적 건축물을 보여주는 사진이 없어 '생생하게' 르코르뷔지에의 사상과 실천적 징표를 목격할 수 없었다. 다른 매체를 통해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로 인해 어쩌면 더 적극적인 읽기와 알기가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인물의 흔적을 저자가 '직접' 따라가보는 기행문 형식의 책일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면서 뭔가 필수불가결의 것이 빠져있다는 결핍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 책을 통과하면서 르코르뷔지에 대해서 거의 일자무식과 다름없었던 상태에서 나름의 감동과 배움을 얻은 상태로 발전할 것은 사실이기에 내가 만난 르코르뷔지에를 기억해 두고 싶다.

 

 

 

 

역시, 여행이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거의 혁명에 가까운 세계를 그토록 자신감 있게 (때로는 오만불손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르코르뷔지에의 힘은 그가 20대에 숱하게 다녔던 여행 덕분이었다. 스위스의 전형적인 산간마을 풍경에 둘러싸여 전통적인 시계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던 고향 라쇼드퐁에 머물러 자연에서 장식 패턴을 얻는 데에만 몰두했더라면, 그의 건축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궁핍하고 아직은 무지한 불과 20세의 시골 청년이었지만 르코르뷔지에는 피렌체를 시작으로 자신의 '미래'를 목격하는 여행을 감행한다. 피렌체에서는 비록 르네상스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음미하지 못했지만, '산타 크로체 성당'에서 장식-색채-프레스코-조각 등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 건축이어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는 '작고 검박하지만 모든 생활의 필요를 채워주는 수도원 공간'에 매료되었고, 외곽 갈루초에 위치한 '에마 수도원'에서는 공간이 풍경과 조화를 이룬 모습에 감동했다. '음악 같은 풍경 속에서 언덕에 왕관을 씌운 듯한 현대 도시'를 이곳에서 이미 상상하고 있었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생활의 조화가 가능하고, 합리적이면서 기능적인 공간과 구조를 갖추어 아름다운 풍경과 효율적이 동선이 보장된 이 수도원을 경험하면서, 르코르뷔지에는 '건축이 어떻게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배웠고 이를 훗날 마르세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에 완벽하게 구현했다. 피사에서 그의 마음을 끈 것은 예술과 건축의 연결성이었다. 특히, 하루 중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성당의 모습을 지켜보며 훗날 빛을 주제로 하는 자신의 건축을 위한 자양분을 습득했다. 링스트라세를 중심으로 바로크 양식과 분리파 예술이 대립, 공존하는 도시 빈에서 르코르뷔지에는 '화려한 치장에만 목숨을 거는 도시의 슬픈 현실'을 인지했다. 건축 답사에 소극적인 대신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드로잉과 조소를 배우며 건축의 '형태'에 대한 감식안을 갖게 되었다. 다음 여정인 파리에서도 건축물이 아닌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장식보다는 '합리적인 구조와 공간을 갖춘 건축이 필요하며 공학 기술이 이를 가능케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침 파리에서 철근 콘크리트가 새로운 건설 기법으로 대두하고 있었고 르코르뷔지에는 적극적인 탐색 끝에 당시 철근콘크리트 건축의 일인자로 유명세를 얻고 있던 '오귀스트 페레'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기회를 얻어낸다. '과도한 장식에서 벗어나 순수한 형태를' 가진 '순수한 건축'에 대한 확신이 점차 굳어졌고, 박물관을 탐방하며 '공학과 예술의 결합'을 꿈꾸었다. 베를린에서도 시멘트 같은 새로운 산업재료, 건축의 구조와 형태의 변화, 새로운 건축 양식의 탄생을 목격했고 이를 주도하던 건축가 페터 베렌스의 사무실에서 혹독한 실제 업무 경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르코르뷔지에에게 있어서 여행은 건축분야의 학위나 자격증으로 결코 얻을 수 없는 독학, 자기 창조, 자기 수련의 장이 되어 주었다. '삶의 희망과 예술의 기원을 찾기 위해 이국적인 타자의 문명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뎌가는 여행을 통해 르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서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미리 정립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여행은 또 다른, 더 큰 규모의 여행을 감행하게 했는데 장차 건축가로서의 르코르뷔지에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요소들을 속속들이 터득한 여행이었다. 이름하여 <동방여행>으로서 발칸반도에서 시작하여 이스탄불, 아토스산, 아크로폴리스, 이탈리아반도로 이어지는 대장정이었다. 장장 51일을 머물렀던 이스탄불에서는 삶을 경험함과 동시에 '건축과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는 후일 이스탄불 도시 계획에 적극성을 보인 이유가 되었다. 특히, 모든 건축물에서 기하학 형태를 발견하면서 이것이 예술의 공통된 기원이라 믿게 되었다. 아토스산에서는 본인이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수도사들의 노동과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고 묵상에 참여했다.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영혼을 위한 건축'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즉, 철근콘크리트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삶을 위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고 이런 건축의 순수함을 평생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아토스산의 수도원

 

 

 다음 목적지인 아테네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열어'주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예술의 척도이자 미의 기준'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첫날은 목전에 두고 카페에서 바라보기만 하면서 이 신전이 특별한 이유와 최고의 예술로 꼽히는 이유를 자문했다. 다음 날 신전이 있는 언덕에 올라 그는 '돌기둥이 신성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대지에서 예술의 세계가 열리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 폐장 시간에 거의 쫓기듯 나올 때까지 '알 수 없는 흥분' 속에 환희를 느끼다가 이 감정을 가라앉힐 길 없어 밤새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매일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난 것 같'고 기둥들은 '마치 하나의 돌에서 자라난 듯 힘 있게 솟구쳤고' 바닥 면은 저 먼바다의 수평선과 하나로 이어'져 있는 신전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여기서 그는 '조화로운 예술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고, 현대 건축이 이 신전에 비견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과 도전을 갖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동방 여행은 르코르뷔지에를 건축가로 거듭나게 했다. 자신의 건축이 나아갈 길을 명확히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여행은 그의 '시적인 건축'의 출발점이었다.

 

 

 

 

"굳건히 서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각적 기쁨을 영원으로 승화시키는 시적인 건축. 동방 여행은 건축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었고, 에두아르를 진정한 건축가로 거듭나게 했다. 언덕 위 신전에서 예술의 본질을 경험한 건축가는 이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123쪽"

 

 

 

 

동방 여행 이후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과 사상, 그리고 삶에 또 한차례의 대변혁이 일어난 곳은 파리에서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지만 콘크리트블럭 공장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화가의 꿈을 다시 지폈다. 매일 5시간씩 그림을 그리는가 하면 당시 파리로 몰려든 여러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아메데 오장팡과 어울려 간결하고 순수하여 시간을 넘어 지속될 보편적 예술을 추구하자는 결의 하에 '순수주의 Purisme'를 발족했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신'을 설파하기 위해 <에스프리 누보 Esprit Nouveau>라는 예술잡지를 창간했다. 지나친 장식을 기피하되 정확한 치수와 명쾌한 형태로 아름다움을 창출하며 자동차를 비롯한 기계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노력은 점차 지역과 국경을 불문한 문화예술계의 엘리트층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또한, 저서 『건축을 향하여』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르코르뷔지에는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주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더불어, 이 시기에 단골로 다니던 '모루아 식당'이 갖추고 있던 간결한 공간 구조, 아래층의 주방과 위쪽의 식사 공간 구분, 넓은 창문과 나선계단 등의 건축학적 요소에다가 자신의 돔이노구조를 접목하여 현대적인 주택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르코르뷔지에의 이름으로 눈부신 조명을 받은 건축물 1호는 푸아시에 건립한 '빌라 사보아'라 할 수 있다. '얇은 기둥 몇 개에 하얀 건물'을 얹어 마치 '떠다니는 흰 상자'처럼 보이게 지은 이 건축은 '가로의 넓은 창에 펼쳐지는 전원 풍경, 기능적인 내부 공간, 중앙난방장치, 현대적 주방, 필로티를 이용한 공간 분할 및 지상과 옥상의 유기적 연결, 집 안을 오가는 동안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공간을 체험하게 하는 경사로와 나선 계단 등 르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의 5원칙'이 집약되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능력과 이를 실행하는 의지가 발현된 공간을 탄생시켜 건축주에게 큰 만족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작부터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건축주에게 소송을 당할 정도로 심각한 방수 문제가 생긴 데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가가 되다시피 했지만, 프랑스 최초의 근대건축물로의 가치를 인정받아 복원되었고 201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 책은 글로만 설명하고 있어 내 나름의 상상을 해본 뒤, 사진을 찾아보니 실로 현대적인 모습에 놀랐다!) '빌라 사보아'처럼 집으로 인해 분쟁은 유감스럽게 그와 그의 부모 사이에도 발생했다. '어머니를 위한 작은 집'으로 유명한 스위스 레만 호숫가의 '르 랙 Le Lac'이 있기 전, 부모를 위해 고향 라쇼드퐁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에 2층 저택 '하얀 집 maison blanche'를 지었었다. 예산 초과로 가계 부채로 이어졌고 설계비를 부모에게 청구하여 가족 관계에 위기를 몰고 왔었다. 이를 회복하려는 마음에서 아마도 '르 랙'으로 부모를 모셨을 테고 그의 어머니가 여기서 천수를 누림으로써 행복한 공간이 되었다.

 

푸아시의 빌라 사보아가 있는 거리

 

 

자신의 근대건축에 자신감이 넘치고 다소 일방적이며 오만한 태도로 불미스러운 사태를 빚은 한편, 르코르뷔지에는 '공장 건물'처럼 보이는 디자인으로 인해 하이데거 등 1920년대 당시의 여러 보수적 세력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특히, 파리 장식미술 박람회에 제안한 '에스프리 누보관'은 '예술가의 감성으로 아름다운 집을 꾸며 주기를 기대'한 박람회 측의 반발로 우여곡절 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전쟁의 여파로 도시계획이 절실했던 파리를 위해 '부아쟁 계획'을 수립, 이를 전시해서 표준화-규격화-대량생산을 골자로 하는 만인을 위한 집을 주장했다. 이 계획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전시장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어 그의 이름을 한층 더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보다는 '엔지니어의 미학'을 내세우며, 주택은 편리한 기계이면서 예술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시적인 감상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일명 '건축의 시학'은 개별 건축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르코르뷔지에는 '모든 사람에게 쾌적한 주택을 선물하겠다'라는 의지를 '찬란한 도시 Ville radieuse' 건설로 확장하며 이제 '건축이 혁명을 대신'해야 할 차례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세계 각처의 건축가들을 규합해 '근대건축 국제회의'를 결성, 전 세계의 주거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건축양식을 확립하고자 했다. 산업화된 재료와 기술로 건축을 혁신하면서 도시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에 앞장섰다. 브라질리아, 이스탄불, 알제 등 국경을 넘어 도시계획에 관심을 가졌고 (알제의 경우 '플랑 오뷔 Plan Obus'로 지중해 일대의 도시계획의 거점으로 삼았다) 심지어 뭇솔리니의 초청에 응할 만큼 도시계획을 위해서라면 이념도 개의치 않았다.

 

 

 

젊은 시절의 여행, 평생 이어진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로 시대를 뛰어넘는 자신만의 건축사상을 구축한 르코르뷔지에의 진가가 아낌없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마르세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에서부터였다. 오랫동안 현대 도시를 위한 최선의 대안이라고 주장해온 '주상복합아파트'를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실현해 놓았다. 단 한 채의 건물 안에 독신 가정부터 대가족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주거 형태를 포함했고, 학교에서부터 수영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자신의 핵심 개념인 모뒬로르 원리를 적용했고 햇빛을 가리는 차양으로 건물에 율동감을 더하는가 하면 다양한 색과 면 분할을 적용하여 따뜻한 인상을 더했다. 이 획기적인 주상복합 건축물이 성공리에 건립됨에 따라 편리하고 아름다우면서 경제적이기도 한 주거시설의 유용성이 입증되었다. 이로써 낭트, 브리에, 베를린 등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나 편리한 아파트가 지어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스무 살 때 에마 수도원에서 가졌던 꿈에 따라 건축의 모더니즘과 휴머니즘이 실현한 것이었다.

 

 

 

'위니테 다비타시옹'이 획기적이고 현대적인 주거 혁명이었다면 '롱샹 성당'은 르코르뷔지에의 이상향인 '진실의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언덕 위 밝은 햇살 아래 빛나던 간결한 백색의 아름다운 건축'으로서 '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자 영원에 다가가는 예술로서의 건축이라고 숭상하던 파르테논 신전을 르코르뷔지에 자신의 방식으로 재현, 발전시킨 작품이었다. 여기에서 건축의 '촉각적' 경험을 위해 '빛'을 활용했는데 신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성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콘크리트 건물의 내부로 빛을 끌어들였고 설교단으로 향하는 계단을 공중에 띄워 놓는가 하면 지붕을 공중으로 들어 올려 '신과 인간, 세속과 영적 세계를 매개하면서 건축의 본질과 예술가의 위대한 성취를 동시에 기리'는 하나의 기념비적 건축을 탄생시켰다.

 

 

 

 

 

 

르코르뷔지에를 대표하는 '진실의 건축'이 하나 더 있다. '르토로네수도원'을 모태로 지은 '라투레트수도원'이다. 르토로네수도원을 탐방했을 때 르코르뷔지에는 '신성한 빛과 고요한 어두움'에 매료되었고 라투레트수도원에도 빛이 들어오면서 그림자를 생성하게 했다. '빛 대포'로 예배당에 찬란한 빛이 쏟아지게 했고 지하 예배실에도 빛 대포를 설치하여 빛이 주는 신성함과 풍요로운 공간감을 구현했다. 예배당에 진입하는 90도의 회전문 맞은편 벽에 수평창을 배치하여 십자가 형태를 이루도록 연출하고, 예배당 벽에 과감한 색을 입혀 빛 대포로 들어오는 빛이 색을 띠어 미사 공간에 숭고함이 더해지는 효과를 낳았다. 한편, 수도원은 신만이 아니라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이므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프로그램에 기반해서 기능적으로 구분 배치함과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그렇다면, 르코르뷔지에 자신은 어떤 건축에서 살았을까? 근대건축의 선구자로 널리 추앙받는 세계적 건축가의 반열에 올라섰기에 굉장히 훌륭한 집에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터이다. 파리에 세련된 펜트하우스를 지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별나고 기본적으로 파리 생활 자체를 싫어했던 아내 이본 때문에 이 좋은 집에서 오래 살지 못했다. 이 부부는 모나코와 가까운 지중해의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이라는 마을로 옮겨갔고,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가 지은 '해안가 바위 틈의 흰 집'을 별장으로 이용했다. 곧 이 부근에 나무 오두막집을 지어 부부의 거처로 삼았다. 4평밖에 안 되는 협소한 집이었지만 모뒬로르에 따라 계획해서 편안했고 무엇보다도 지중해와 빛, 파도 소리, 바람과 연결되어 있어 부부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궁전'이었다. 이본이 사망하지 극도로 의기소침해진 르코르뷔지에는 대규모 건축과 도시계획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이곳에서 수영으로 자신만의 노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의 죽음도 바다에서 맞았다. 화려한 업적에 맞게 루브르 궁에서 장례를 치른 첫 번째 예술가가 되었지만, 본인은 생전에 자신의 마지막 날은 라투레트수도원에서 보내고 싶다고 적어 두었다(루브르로 옮겨 오기 전, 그는 이 수도원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르코르뷔지에의 펜트하우스가 있는 낭주세에콜리가24번지

 

 

르코르뷔지에가 마지막 나날들을 보낸 지중해

 

이 책을 읽는 내내 '드라마틱'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았다. 르코르뷔지에의 사진을 바라본다. 스위스 시골 태생의 반항심 가득하고 고집스러우며 자기주장이 강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있는 얼굴이다.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매진하면서 유행에도 관심이 많았던 패션니스트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당돌하고 과감한 여행으로 세상을 읽고 자신의 진정한 꿈을 발견하면서 자신만의 건축사상을 정립해나간 독학의 달인이다. 기술을 '시적'으로 활용하여 '서정성'을 살릴 줄 알았고 수학적 비례와 기하학 형태를 따르면서 유연하고' 아름다운' 건축을 지어냈다는 점은 내게 영원한 감동을 심어 주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줄 랜드마크를 세우는 것보다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집을 주겠다는 신념을 가진 휴머니스트. 동시에 더불어 사는 삶이 편리하며 아름다울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합리적인 공간에 예술을 덧입힌 진정한 아티스트.푸른 하늘과 지중해를 바라보는 곳에 자신이 묻힐 무덤을 손수 콘크리트로 만들어 둔 무한의 이상주의자. 결국,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은 '행복'을 목표로 한다. 콘크리트와 돔이노, 모뒬로르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의 삶에 행복과 시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해내는 것이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주제이자 결과였다.

 

 

 

 

 

 

푸른 하늘과 지중해를 품은 르코르뷔지에의 무덤

 

 

 

내가 살고 있는 이 직육면체의 콘크리트 아파트를 살펴본다. 처음에는 르코르뷔지에의 민주적이고 인간 본위적인 아이디어에서 탄생했지만, 지금은 '부동산'으로 전락하여 욕망의 대상이자 갈등의 원인이다. 집안을 걸으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빛을 경험할 수 있고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집다운 집은 평생 꿈으로만 남게 생겼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어떠한가? 합리적인 거주를 위해 현대적으로 계획되었지만, 획일적인 고층건물들이 늘어서 삭막한데다가 온갖 문제의 온상이 되어 버렸다. 르코르뷔지에는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직육면체의 아파트를 고집한 게 아니었다. 마천루와 고층 아파트를 짓는 만큼 공간을 확보하여 도시의 70 퍼센트를 녹지로 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 도시는 거주문제 해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녹지는 뒷전으로 밀쳐두고 점점 더 비대해지는 고층건물만 들여놓은 것이다. 내 집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상의 주변에서는 '진정한 건축'을 접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행 동안 특별한 공간과 건축물에 쉽게 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건축학도가 아니면서 건축 관련 책을 열심히 읽고 미미하나마 내 집의 이모저모를 수시로 바꾸려 하는 것도 건축 다운 건축, 공간 다운 공간에 대한 갈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중 하나라도 직접 보아야 할 텐데... 취리히 호숫가에 자리 잡은 '르코르뷔지에 하우스'라도 찾을 수 있기를, 또는 마르세유에 들러 위니테 다비시타시옹을 볼 수 있기를, 아니면 롱샹 성당을 찾아가는 뜻밖의 행운이 생길 수 있기를.

 

 

 

처음에는 이 책에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을 확인할 수 있는 실제 사진이 거의 없어 실망했고 글로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건축가에게 감동을 준 풍경과 건축, 그가 만들어낸 놀라운 공간들을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겠는가,라는 저자의 토로를 접하면서 이 정도로 충분히 훌륭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우선 시각으로 반응하면서 차츰 공감각으로 경험하게 되는 건축이라는 입체적이고 다변적인 대상을 이렇게 세세한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예삿일은 절대 아닐 테니 말이다. 사진이 없는 덕분에 여러 책을 찾아볼 수 있었고 그러는 동안 '시적, 진실, 순수, 아름다움'이라는 르코르뷔지에의 키워드를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공간들을 떠 올려 볼 수 있었고 내가 꿈꾸고 있는 나의 공간도 자세하게 그려보며 부단히 행복할 수 있었다. 르코르뷔지에로부터 탄생한 아름답고 진실된, 행복을 안겨 주는 건축이 지금도 누군가의 열정으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며 순수하고 시적인 공간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의 살아가는 집도 도시도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소소한 바람을 가져본다.

 

 

**이 글은 예스24 리뷰어 클럽의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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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이어주는 파리의 다리(4) (feat.이에나 다리. 에펠탑. 샹 드 마르스) | ParisParis 2020-09-0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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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가 오기 전, 파리로 가는 비행편은 오전 9시대와 오후 1시대 두 번 운행되고 있었다. 불치의 야행성으로 살고 있기에 아침의 인생이 어떠한지 거의 모르지만, 파리로 가는 비행기는 무조건 오전이었다. 평소보다 더 일찍 자정쯤에 잠을 청하지만 내 몸의 리듬이 갑작스럽게 빨라진 잠에 적응하지 못하여 뒤척이기 마련, 그래도 새벽 4시 30분에 거뜬히 일어나 씩씩하게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출발시간까지의 그 긴장과 설렘이란 내가 겪을 수 있는 인생의 모든 감정 중 가장 오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천을 출발하여

 

어느 하늘 위를 날다가

 

파리의 근교로 날아 들어

 

 드디어, 파리.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면 오후 2시경, 과감하게 택시를 탄다. 20kg을 훌쩍 넘는 가방을 건사하느라 길을 잃지 않으려 용을 쓰느라 숙소까지 가는 도중에 힘이 다 빠져버리는 불상사를 막고, 파리에서의 오후 나절을 아낌없이 누리기 위한 전략이다. (작년에는) 세느강을 기준으로 우안으로 갈 때는 50유로, 좌안으로는 55유로로 택시요금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별다른 횡포를 당하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파리로의 입성은 택시를 타고 '이에나 다리 Pont d'Iena'를 건널 때였다. '어쨌든 파리하면 에펠탑', 이 공식이 무너지지 않는 한 '이에나 다리'의 의미와 가치도 영원할 터이다. 1806년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이 건립을 지시한 다리인 만큼 역사적 내력도 깊지만, 파리 여행의 중심축 중 하나이다. 에펠탑 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샤요궁 Palais de Chaillot', '트로카데로 정원 Jardin du Trocadero', 에펠을 일직선으로 잇는 절대적 통로이다. 세느강을 오가며 파리의 또 다른 아름다운 얼굴을 선사해 주는 '바또 파리지앵 Bateaux Parisiens'과 '베데트 Vedettes de Paris' 등 유람선의 선착장도 이에나 다리 아래에 있다. 파리의 부유한 동네 중 하나인 16구 파시 Passy의 골목을 지나 어느덧 대로로 나오기 시작하면 곧 다가올 에펠탑의 위용을 기다리며 긴장과 설렘이 더해진다. '철'이라는 소재가 이렇게도 아름답고 유려할 수 있을지 매번 반사적으로 감격할 수밖에 없다. 이에나 다리 자체는 평범하다. 샤요궁에서 에펠로 가는 방향이든 에펠에서 샤요로 올라가는 방향이든 이 다리에서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은 꼭 가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파리 여행의 환상적 아우라에 잠겨들며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감지해보아야 한다. 나의 여행 행복이 배가 된다.

 

 

이에나 다리 위, 위용을 자랑하는 에펠탑. 아치 너머로 몽파르나스 타워도 보인다.

 

 세느 강변에서 이에나 다리와 에펠탑을 한눈에.

 

 

이와 더불어, 진정한 이에나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곳은 에펠탑 위에서이다. 에펠탑 2층에 위치한 레스토랑 '58Tour Eiffel'을 굳이 가보야 한다면 이유는 '뷰'일 테다. 충분히 미리 (나의 경우에는 한 달 전) 예약해야 할 만큼 유명 '관광지스러운'데다가 (예약을 했더라도 지상에서 엘리베이터 탑승 전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목적을 갖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멋없는 실내와 맛없고 비싼 식사 때문에 실망할 수밖에 없는 곳이지만, 운 좋게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을 잡을 수 있다면(가장 늦은 점심시간대를 예약하고 천천히 밥을 먹어서 가장 늦게까지 남으면 된다) 이 모든 불편과 실망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창밖으로 이에나 다리가 멋있게 펼쳐져 있다. 이에나 디리를 중심으로 연출되고 있는 '엽서'같은 광경은 파리다움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왜 파리는 파리인가'를 단번에 알게 된다. 말은 필요 없다.

 

 

 

 

 

 

파리에서의 시간 중 최소한 반나절은 에펠탑을 중심으로 보내는 데에 찬성한다. 에펠탑 주변으로 도보로 다닐 수 있는 훌륭한 장소들이 많이 있다. 지하철로 6호선 샤요궁에 내려 우선 샤오 광장의 널찍한 뜰에서 에펠탑의 정면을 감상한다. 보통 1유로에 다섯 개의 에펠탑 열쇠고리를 팔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 청년들을 무조건 피할 것은 아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에펠탑을 배경으로 특별한 사진을 찍을지 나름의 공식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일행과의 기념사진을 두 세장 부탁하고 고맙다는 마음으로 열쇠고리를 산다면 매우 훌륭한 윈-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샤오궁에서 양편으로 나있는 계단을 이용해서 트로카데로 정원으로 내려올 차례이다. 계단을 여러 번에 걸쳐 내려온다. 다양한 높이와 각도에서 에펠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경험해볼 수 있는 장소이어서 에펠을 배경으로 하는 여행 사진을 자유롭고도 다채롭게 찍을 수 있다. 분수와 조각으로 이루어진 정원을 걸으며 뒤로 멀어져 가는 샤요궁도 여러 번 돌아보고, 앞으로 에펠탑이 점점 더 높게 다가오면서 심장박동 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는 자신만의 설렘도 느껴보아야 한다. 세느 강을 건너기 전 또는 건넌 후 이에나 다리 양편에서 빙빙 돌아가고 있는 회전목마를 찾아보자! 처음에 보면 참 생뚱맞고 조잡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여행이 선사하는'믿기지 않는 현실'을 실감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것이 없을 듯하다. 문득, 내가 지금 어린아이이고 여기서 이 회전목마를 탄다면 내 인생의 숱한 것이 달라질 거라는 '확신'이 든다. 에펠탑 아래에서 세느강의 바람을 맞으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을 몸소 경험한 이상 이곳의 행복과 신비는 영원히 나를 따라다니는 마법이 되어 줄 테니까.

 

 

 

 

 

 

 

 

 

에펠탑은 2층 또는 3층에 있는 레스토랑을 가든 아니면 전망대에만 가든 한 번은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는데에 절대 동의한다. 2층 테라스를 한 바퀴 돌면서 파리의 사방팔방을 바라보며 '내가 파리의 하늘 아래에 있다'라는 감격을 한껏 누려볼 만하다. 그 흔한 파리 기념품도 이곳의 기념품점에서 구매하면 특별해진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에펠탑 위에서 왔다는 전설을 안게 된다. 한 편에 꽤 길게 마련된 파리와 에펠탑의 역사를 전시하는 구간에도 볼만한 영상과 사진이 많다. 유리 바닥 아래로 저만치 아래의 땅을 가늠해보며 아찔해한 순간도 잊지 못할 것이다.

 

 

 

 에펠탑 뒤편, 샹 드 마르스로 곧게 이어진다.

 

 

에펠탑을 내려와 에펠탑 구내의 작은 연못 주변에서 잠시 쉬어보는 것도 좋다. 근대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이지만, 구내는 의외로 소담하고 꾸밈이 없다. 거의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둔 공간에서 의외의 친근감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에펠탑을 완전히 벗어나서는 뒤편으로 이어지는 '샹 드 마르스 Champ de Mars'도 가봐야 한다. 수고스럽더라도 걸어오며 자주 뒤를 돌아본다. 앞에서 바라보았던 에펠이 멀어져 가며 다양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순간을 가급적 많이 담아두기 위해서이다. 걸어가는 내내 공원처럼 나무와 잔디가 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광장에 이르러서는 잔디밭이 드넓게 마련되어 있다. 여기 풀밭에서는 그야말로 국제적인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국적불문하고 모두 하나가 되어 파리가 있음을, 여행하고 있음을,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행복해하고 있다. 샹 드 마르스가 끝나는 부분에는 포토 명소로 이름난 '평화의 벽 Mur pour la paix'이 설치되어 있고, 길을 건너면 바로 나폴레옹도 다녔던 '군사학교 Ecole Militaire'가 있다. 시간상 평화의 벽과 군사학교까지는 다가가보지 못했기에 다음번( 아직도 바이러스가 지구에 달라붙어 있으니, 도대체 언제 가능할까?!) 파리 여행 때는 이곳을 들러 '로댕 박물관'까지 걸어가는 행로를 선택하겠다. 아직까지 파리의 골목길이나 명소와 무관한 동네길은 많이 걸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샹 드 마르스의 끝에는 군사학교가 있다.

 

샹 드 마르스에서 바라보는 에펠탑과 그 아래로 보이는 샤요궁.

 

 

샤요궁- 트로카데로 공원-이에나다리-에펠탑- 샹 드 마르스의 코스를 걸어서 다녀본다면, 단언컨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멋진 추억을 완성하게 된다. 이 시간에 속한 모든 것들은 정신없이 진행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떠올라 '그곳, 그 시간'과 한참 멀어져 있는'이곳, 여기'에서의 시간에 행복을 실어다 놓는다. 평생 지속되는 '축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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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음을 풀까보다 (feat. 테라로사 커피) | 여행이라는 날개를 달고 2020-09-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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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있기는 할까?

수년 전에 사라져버렸기에 옛날 사람이나 간직하고 있을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의 장소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나에게 강릉은 '영혼의 파라다이스'이며, '나의 강릉'을 형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는 커피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에디오피아의 커피 열매를 상상하며 음미하던 커피에 온통 바다와 나무들의 푸르름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강릉의 커피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Terrarosa, 땅에서 나는 장미'라니 어떻게 이보다 더 멋지게 커피를 낭만적인 그 무엇으로 숭상할 수 있는 언어가 또 있을까. 매우 아름다웠던 첫인상에 끌려 곧 이곳의 모든 것을 좋아하고 그리워했었다. 강릉에 간다는 말은 '테라로사 '에 간다는 말이었고, 강릉을 좋아한다는 선언 속에 그리고 강릉에 살고 싶다는 로망 속에 '테라로사'는 당연한 일부로 자리하게 되었다. 들어가는 마을길부터 남달랐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골에 대한 향수를 가늠해 보기에 더없이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저만치 빨간 벽돌이 보이기 시작하면 가슴이 콩콩거렸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즐기며 어디에 앉을까, 무슨 커피를 마실까, 디저트는 무엇을 먹을까, 어떤 잔에 커피가 담겨 나올까... 기대할만한 것이 너무 많았다.

 

 

커피가 은은한 향을 퍼올리며 로스팅 되고 있을 빨간 벽돌담 너머로 들어간다. 하얀 마디마디가 촘촘 드러나는 옅은 벨벳 빛의 연두색을 머금은 자작나무 사이를 걷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 고풍스러우면서 아기자기한 실내도 좋고, 푸른 나무와 어우러져 있는 야외 자리도 특별하다. 높은 벽돌 담장과 역시 높다랗게 영글어가는 나무들 사이에서 사람들의 대화도 부드럽게 익어간다. 어떤 빛도 소리도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기품 있고 고상하다. 이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은 감각적으로 충만해지고 심신이 새로워지는 별스러운 경험이기에 이 마을까지 찾아오는 그 어떤 수고도 아깝지 않았다. 감사하기까지 했다. 커피를 향해 한 사람이 오랫동안 키워온 꿈과 열정 덕택에 여러 사람이 행복할 수 있어서 말이다.

 

 

내가 아는 한의 모든 테라로사를 방문하고 싶었다. 하루는 강릉에 소재한 테라로사 세 곳을 모두 순례했다. 강릉바다를 지그시 마주하는 낭만 그 자체인 곳, 강릉 시내에 위치하지만 결코 번잡하지 않은 곳, 그리고 이곳 숲속의 커피공장... 게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종에 있는 테라로사까지! 나만 테라로사에 빠져든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서울 한복판에도 테라로사가 찾아왔다. 판교와 강남에 이어 저 멀리 부산의 어느 곳과 바다 건너 제주도까지 테라로사는 강릉 커피에서 더 나아가 우리나라 대표 브랜드로서 널리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전국이 커피 열풍에 잠겨들면서 테라로사는 스타벅스에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이 예'입증된' 커피 신화로 부상했다. 좋은 것이라면 가급적 많은 곳에서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 맞을까? 아담한 곳의 몇 안 되는 자리가 비길 바라면서 바깥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실컷 왔더니만 만석이라 허탈해하며 뒤돌아서야 하는 것보다,커피다움이 사라진 덜 쾌적한 분위기에라도 끼어 앉을 수 있는 편이 낫겠지, 아마도? 규모가 커지면 질적 퇴락이 이어지는 것도 맞지 않을까? 꿈은 늘 고집스럽고 순수해야 할까? 나의 꿈으로 더 많은 세속적 관심과 자본을 불러들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걸까?

 

 

첫 번째 실망과 충격은 서종점에서였다.

역시 빨간 벽돌과 나무가 있는 야외 공간으로 교외의 아늑한 아지트 같은 테라로사는 사라지고(캐주얼한 식당 비슷한 곳으로 바뀌었고), 바로 옆자리에 널따랗게 압도적인 모양새로 새로 지어져 있었다. 온갖 소음과 야단법석이 난무하는 그야말로 단순 '공장'으로 변신해 있었다. 커피향은 기계와 사람이 동시에 빚어내는 잡음 속으로 흔적 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내 목으로 넘어오는 커피 풍미 역시 '뜨겁다' 일뿐 어떤 다른 예리한 감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너무나 파격적인 변신에 내가 간직해온 테라로사의 모든 것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예전의 테라로사 서종> ↓

 

 

 

 

 

 

 

 

설마 강릉의 이곳도... 왠지 꼭 확인해야 할 것 같았는데, 역시 그랬다. 입구부터 마을도 개발된 모습이다. 뻥 뚫린 부지에 이제는 만인을 위한 관광터가 되어 있었다. 전세버스도 서 있다. 누군가가 주차하는 동안, 나머지 일행은 얼른 뛰어가서 주문부터 해야 한다(여럿이라면 한 사람은 주문줄에 서고 나머지는 자리를 물색해야 한다). 디저트류가 나열된 진열장 앞에서 '필요한 것 있으세요?'라는 은근한 부추김을 받지 않고서는 커피를 주문하는 카운터에 이르지 못하게 '교묘한' 동선이 짜여 있다. 감사하게도 일단 안으로는 어렵지 않게 들어올 수 있으나, 이제는 커피에 당도하기까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빈 의자와 테이블을 차지하기 위한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이런 '공장' 분위기에는 내가 간직해온 커피 또는 커피문화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장소로 인해 상처받기는 난생처음이다. 나의 취향에 맞았던 예전 모습을 그대로 고수할 이유도 의무도 이들에게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커피 낭만'을 이들에게 바랄 수도 요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런 대단한 변화가 내 마음에 들지 않다면 안 가면 그만인 것을 평가나 비판할 이유도 권한도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새롭게 단장한 테라로사를 담아둔 모든 사진을 삭제하며 나만의 이별을 고했다. 다만, 강릉 바다의 테라로사는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강릉에 갈 때 종종 들렀다. 영구한 파도를 울리고 있는 언제나 파란 바다처럼 이곳은 옛 향기를 영원히 간직해 줄 것을 바보처럼 기대하면서 말이다.

 

< 테라로사 강릉>↓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가지 않으려 했다. 제주도 자체가 대단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어차피 이곳의 테라로사도 대단히 세속적이고 상업적일 게 불 보듯 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원래 목적지로 삼았던 카페에서 브런치 메뉴가 없어진 것을 알고 나서 근처의 대안을 찾다 보니 '빵'도 팔고 있는 테라로사 밖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 기분은 뭐지? 빨간 벽돌담을 보니까 뭉클해진다. 옛날 옛적 추억의 장소로 들어가는듯한 기묘한 데자뷔 효과가 이는가 싶더니, '과연 이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혹시 아늑하고 차분하고 낭만적인 모습은 아닐까?', 엉뚱한 기대가 꿈틀대고 있었다.

 

 

이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요즘 누구나 자체 마케팅을 위한 굿즈에 열심이니까. 가격도 나름 착한데.

빵을 강요당하지 않고 커피를 주문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크루아상이다! 가격도 훌륭하고 이 겹겹의 부드러움 좀 봐!

손님들도 나긋나긋 담화하며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요소가 없다. 커피가 전하는 행복을 머금은 표정들이다.

대규모의 상업 시설이 아니다. 커피를 준비하는 직원들의 몸짓에서 여유 있는 태도가 느껴진다.

앞면 전체를 유리창으로 드리우고 천정을 적절하게 높여 근사한 공간감과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한다.

튀지 않고 서먹함을 전혀 발산하지 않는 조화로운 색조와 질감으로 '커피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수년 동안 쌓여있던 (나만의) 미운 감정이 풀어지고 있는 걸까?

벌써 에코백 두 개를 사서 쓰다듬으며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앉은 이 테이블에 베여있는 따뜻한 느낌,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의 편안함, 확연하게 감지되는 커피의 초콜릿 빛 풍미....  그 옛날 '땅에서 나는 장미'를 향해 내가 고고하게  품고 있었던 애정이 선명히 떠올랐다.

 

 

여름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야외로 나섰다. 귤밭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터라 그 옛날 테라로사를 가득 에워싸고 있던 푸른 나무들의 숲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도 자리하지 못하는 한여름 대낮의 뜨거운 해 아래, 원래 테라로사의 야외 테라스가 가졌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연의 풍광의 일부가 되어 달콤 쌉싸름한 커피의 마법에 빠진 채 너와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내 기억 속의 그런 곳과 오버랩되었다.

 

 

 

 

 

 

그러니까, 옛 테라로사에 대한 나의 좋았던 기억들이 한여름의 제주도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자본과 인기에 힘입어 속세의 성공 가도에 탄탄히 올라섰다고 '야속해했던' 이곳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여전히 잘 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봐주고 싶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서운한 마음은 남아있기에 지금 당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퍼뜩 되돌아서지는 못한다. 옛것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새것을 결합하는 방식은 왜 안될까? 원래의 아날로그적 분위기를 싹 다 밀어붙이고 완전히 새롭게 치장한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했던 걸까? 지금의 모습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옛날의 테라로사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향수를 조금이라도 존중해 주는 방식으로 '발전'과 '확장'을 시도할 수는 없었을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 '일리 illy'도 알고 보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탄생했다.

이스탄불에서 낭만적인 방식으로 일상으로 향유되던 커피를 들여와 최신의 기계로 만들어낸 '계산된' 풍미인 게다. 매일 물 마시듯 애음하는 이 검은 액체를 바라보며 평화로워하고 즐거워한다면, 더 세련되게 기획적으로 커피를 트렌드화하고 있는 내 고장의 커피 브랜드에게 반감을 가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비행기에 실려 내 앞에 건네진 커피가 만들어내는 황금 크레마에 날마다 열광한다면, '누구나의 커피'로 저마다의 손과 입에 따뜻한 한 모금의 안도를 실어다 주는 '땅에서 나는 장미'의 마력을 굳이 부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심경의 변화를 모른 척, 옹졸하게 있지 말고 일단 휴면 처리된 나의 회원 계정부터 살려 놓았다(즐겨찾기에 빨강 커피 방울의 테라로사 로고도 다시 올려놓았다).

이번 주말에는 예전에 그토록 좋아했던 '에스프레소 블렌드'를 주문할까....

커피는 빨간 봉지에 담겨 배달될 것이고, 월초니까 9월의 테라로사 신문도 어쩌면 동봉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 커피의 신비한 낭만을 가르쳐 주었던 그 풍미를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180도 돌변해버린 친구에 대해 혼자만 삭이고 있던 속상한 마음을 걷어내듯, 나 혼자 절교했다가 나 혼자 화해하려 한다. 강릉에 대한 나의 애정 한구석에 박혀 있던 모난 돌멩이 하나를 끄집어 낼 때가 된것일지도.....

바다, 예술, 그리고 테라로사의 커피 ... 나의 강릉 사랑과 커피 낭만이 온전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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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부치는 나의 반성문 (feat.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 여행이라는 날개를 달고 2020-08-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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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은 접근 자체부터 순수하지 못했다.

분명하고 직접적인 목적을 갖지 않은 채 '대안'으로 생각했다. 나의 일 년을 살려주는 먼 곳으로의 보름 동안의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이곳, 제주도에라도 간다면 무기력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으려나, 제 모습을 발휘하지 못하고 찌그러져 있는 여행 본색을 조금이라도 발산할 수 있으려나... 감히 제주도를 대체안으로 생각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교양서와 여행안내서를 각각 2~3종씩 곁들여서 몇 달 전부터 밤낮으로 비교, 분석, 정리의 '공부'를 하며 구글앱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시뮬레이션까지 해 두었던 그때 그곳(들)으로의 여행과는 달리, 이번 이곳으로의 여행을 위해서는 달랑 두 권의 책을 사두었을 뿐이다. 택배로 받은 날 한 번씩 훑어보고선 덮어 두었다가 출발일이 가까워오면서 더 자세히 읽어봐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결국은 출발 이틀 전, 둘 중 어느 책에 붙어 있던 제주도 전도를 오려내서 가볼 만한 곳에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이상하게도 충분히 설레어지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궁금한 것이 거의 없는 나태함과 게으름, 어떤 여행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태도가 감지되고 있었다.

 

 

 

 

작년 5월 13일 이래로 처음 듣는다. 비행기 발통이 활주로를 미끄러지는 소리에 그 모든 여행의 기억들이 솟구쳤다. 하늘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비행기에 몸이 흔들리자 최상의 기쁨을 느끼려고 애를 썼다. 하늘 위를 날아 구름 위를 표류하면서 내가 가고 있는 곳이 고작 한 시간의 거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제대로 흥분도 긴장도 살려내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도착한다. 아, 이건 무슨 기분일까? 더위를 식히기 위해 떠나온 나름의 vacation인데 이 여름 내내 한 번도 겪지 못했던 뙤약볕이 한꺼번에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흰색 마스크에 검은색 선글라스, 외계인 같은 우스꽝스러운 무장일 뿐 땡볕이 몰고 오는 더위를 막을 수 있는 온전한 방법은 못 된다. 높은 건물이 거의 없는 이 섬의 햇볕 아래에 무방비로 내던져 있다. 오아시스를 향해 대낮의 사막 위를 인정사정없이 질주하는 처지가 되었다. 3일간의 숙소가 되어줄 리조트를 향해 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쌩쌩 달려간다. 운 좋게도 바닷가로 향한 객실을 배정받아 잠시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하얗게 익어가고 있는 오후 3시의 햇빛에 갇혀 바다마저 숨을 못 쉬고 있다. 바다 다운 파도를 내보일 기색이 없이 푸른 바다는 빛이 바래어져 있다. 사방에서 균일하게 뜨겁게 달아오른 대낮의 대기 속에 초록들도 꼼짝을 못 하고 있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가운데 오름, 해변, 섬 방문은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만큼의 열기를 무릅쓰며 걸어 다닐 용기도 의욕도 낼 수 없다. 이렇게 하루어치를 감당해 줄 일정이 날아가고 나니 여행 목적지는 섭지코지, 이중섭거리, 본태 박물관, 오설록 티 뮤지엄, 아라리오 탑동 시네마, 김영갑 갤러리 등으로 단출해졌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라도 소화할 수 있을 이 일정을 3일하고 반나절의 시간으로 늘여뜨려야 한다. 급한 마음에 찾으려 하니 눈에 띄는 다른 곳도 없고 온통 카페뿐인데 하루에 두 곳이상의 카페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숙소를 늦게 출발해서 가급적 천천히 다니다가 일찍 돌아와 객실에서 시원하게 바다를 전망 삼아 책을 읽는 것, 이것이 최선의 답이었다. 이런 식으로 제주 여행은 서서히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인지 소화도 안된다. 속이 더부룩하니 입맛도 없어지다 보니 제주도 천지에 널린 산해진미도 그림의 떡이다. 몸의 시스템이 깨어지니 아침에 눈뜨자마자 바로 피곤하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머리가 깨지듯 지끈하고 눈이 시큰하고 무겁다. 아, 정말... 이러려고 바이러스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이곳으로 날아왔단 말이던가! 정방폭포에서 올라오는 계단길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땀을 흘리며 '내가 왜 이러고 다니는지', 나도 나를 몰라 했다. 이튿날 바로 양쪽 다리에 알이 배어 오는 날까지 욱신거렸다. 대단하게 올레길을 걸은 것도 아니고 산모퉁이라도 올라간 것도 아닌데... 어느 여행에서든 모터가 부착된 것처럼 어느 종류의 길이든지 잘도 걸어 다니던 나의 다리가 왜 이렇게 반항을 하는 것인지 심신이 괴로워지는 이 여행이 너무 가여워진다.

 

 

 

 

아름다운 순간도 물론 있다. 성산 일출봉을 지척에서 바라보며 바닷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던 섭지코지에서의 시간은 비경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다. 바다를 향해 양팔을 벌린 듯 훤칠하게 서 있는 '글라스 하우스'(일명 민트 레스토랑)에서 지켜보는 일몰 전후의 전경은 일품이다. 안도 다다오의 반듯하고 모던한 건축은 굽이 물결치는 바다와 잘 묘한 대비 효과를 내면서 잘 어울린다. 삼면의 바다를 둘러보다가 낮의 풍경이 어두움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순간들을 지켜볼 수 있어 매우 평범한 음식도 너그럽게 이해가 되었다. 가로등 하나 없이 완전히 어두워진 해변가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며 잔잔히 밀려드는 바닷소리를 느껴보는 것도 기억에 길이 남는다.

 

 

 

 

 

 

 

 

 

 

본태 박물관은 여유롭고 우아하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이 박물관에서 다다오를 '세계 3대 건축가'라고 치켜세우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지만)의 작품답게 콘크리트와 물을 주제로 하는 편안한 공간이다. 역시 일본 예술가인 쿠사마 야오이의 반짝이는 노랗고 검정인 호박 작품과 동화 같은 '거울의 방 infinite mirror room'도 이색적이다(재관람이 가능하여 더욱 신기하다). '빛의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의 전시 작품은 다소 실망적인데 1969년도 작품이라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 또는 원주 오크밸리 내에 위치한 '뮤지엄 산'에서 그의 더 현대적 작품을 본 사람에게는 별다른 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백남준, 키스 해링, 파블로 피카소, 페르난도 보테로, 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으로 현대미술의 구색도 갖추고 있다. 뜨거운 햇빛이 아니라면 옥외의 조각 작품이나 연못과 정원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리나라 전통 공예품, 불교와 유교 관련 전시 등도 있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느껴볼 수 있다. 문제는 좁고 더운 카페이다. 돈가스 맛집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어서인지 대기인원이 있는 데다가 실내는 돈가스 기름 냄새와 열기로 쾌적 지수가 떨어진다. 우리처럼 조촐한 커피와 빙수를 주문한 경우는 갑갑한 공기를 견디며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어차피 바깥은 땡볕이라 여기 말고는 피할 곳도 없으니 말이다. 가을에 와야 하는 거였다. 좋은 것들마저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이 야속한 여름, 내가 여태껏 살면서도 여름을 너무 몰랐다.

 

 

 

 

 

 

 

 

 

 

 

 

 

 

 

 

 

 

이중섭 거리는 소소하고 아담하다. 30명으로 인원 제한이 있어 인터넷 예약을 해야 입장이 가능한데 이를 몰랐기에 '이중섭 미술관'(미술작품이 전시되었다기보다는 사료와 기록이 대부분이라 한다)은 들어가지도 못했다. 한국전쟁을 피해 가족을 데리고 왔다가 약일 년 정도 살았다던 '이중섭 거주지'에서 마당과 그의 사진이 놓인 작은방 하나를 들여다본다. 바로 옆에는 '화가의 산책길'이라는 조그마한 공원과 골목길이 있고, 이곳을 벗어나면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각종 소품가게들이 길 양쪽에 자리한다. 미술관 입장이 무산되다 보니 계획에 없던 점심을 이곳에서 해결하게 되었다. 메뉴는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갈치조림, 제주도 본연의 조림 방식은 아닌 것 같지만 달근하고 매콤하다. 무엇보다도 그늘막이 거의 없는 바깥의 여름을 피할 수 있어 맛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형편이 못된다.

 

 

 

 

 

 

오설록 박물관에서도 목표는 오직 하나, 열기와 더위를 피해 빨리 에어컨 바람 가득한 실내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전 세계 여러 나라'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찻잔 컬렉션을 지나, 그 유명한 녹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차를 좀 살까 싶어 카페로 들어선 순간, 빈 테이블이 없고 주문 카운터에 길게 서 있는 대기줄을 보자 포기한다. 전망대에 올라 뜨거운 여름에 뒤덮인 주변을 휙 둘러보고 박물관 뒤편의 정원으로 내려온다. 제주도의 청정 이미지를 차용하여 착한 이미지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화장품 브랜드를 전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별도의 공간이 두 개나 더 있다. 일단 시원해서 좋고 오설록 본관보다 넓어 쾌적하다. 이 시원한 실내를 누리는 방법은 뭐라도 먹는 것이다. 오직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감귤 빙수'를 주문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상큼하다. 소화가 안 되어 막혀 있던 위와 장에 시원한 효과를 가져다준다. 꽤 넓은 부지를 초록의 풀과 나무로 정성스레 가꾸고 있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런 곳을 '무료'로 들어와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아쉽다. 나는 왜 한여름에 이곳에 와서 이렇게 좋은 환경을 십분 즐기지 못하는 걸까? 11월 초에 와보면 더없이 좋을 텐데.

 

 

 

 

 

 

 

 

 

 

드디어(!) 제주도를 탈출하는 날이 되었다. 고약한 여름의 더위와 열기에 무참히 당하며 여러 가지로 억울해 하던 차, 하늘이 흐리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날은 괜찮을까 기대한다. 김영갑 갤러리에서 아라리오 뮤지엄 삼 인방을 거쳐 바닷가의 카페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일정에 돌입한다. 무엇에든 사진이 갖는 영원한 가치를 알기에 사진을 즐겨 찍는 편이지만, 사진을 보는 방법은 모른다. 제주의 자연을 완벽하게 담아냈다는 제주도를 사랑한 사진작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도 제주도에만 있는 곳이니 가보고 싶었다. 폐교를 사진 갤러리로 바꾸었고 한창 사진을 찍다가 불의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애처로운 사연은 알았지만, 사실 김영갑의 얼굴도 모르고 오름을 담은 몇 편의 사진 밖에 본 적이 없었다. 널찍한 주차장에 한 번 놀라고 아기자기하면서도 기품있게 다듬어놓은 정원에 또 한 번 놀란다. 입장하면서 시멘트 벽체가 발산하는 냉기와 더불어 에어컨으로 아낌없이 더해주는 시원함에 만족감은 더 높아진다. 처음 본 사진은 김영갑의 얼굴이다. 외길을 걸은 예술가적 분위기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에서 투지, 고독, 초월, 몰입, 열정 등의 단어를 떠올린다. 적당히 어두운 조명 아래 소박하며서 정갈하게 전시된 사진들, 한 점씩 보는 사이 뭉클한 감동이 일기 시작한다. 작품 해설과 갤러리 소개에서 읽게 된 김영갑의 사진과 삶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1982년부터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제주도에 매혹되어 1985년 아예 섬에 정착했다. 바닷가와 산과 주변 섬 곳곳을 누비며 제주도만의 매력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가 사진으로 찍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없는 것이다'라고 할 만큼 제주도의 모든 것을 발견했다. 모든 열성과 진심, 성실을 바쳐 제주의 곳곳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의 생활은 고달팠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관광지로서의 제주는 그에게 없다. 그의 사진 작업은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찍으며 영혼과 열정을 모두 바치는 수행이었다. 차곡 쌓여가는 사진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폐교인 삼달초 분교를 자신의 갤러리로 마련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셔터를 누르기가 힘들고 허리도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카메라를 들 수도 걷지도 먹지도 못하는 중한 상태가 되었다. 루게릭 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데다가 3년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말을 듣고선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 그러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갤러리 만들기에 열중했고 2002년 여름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문을 열었다. 6년간 투병을 하다가 2005년 5월 김영갑은 세상을 떠났고 두모악 갤러리 마당에 고이 잠들게 됨으로써 그가 사랑했던 섬 제주에 '영원히'있게 되었다.

 

 

 

 

 

 

이런 스토리를 접하면서 단 몇 분 만에 나는 반성하게 되었다. 지난 삼 일 동안 제주에 있으면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공항에 내려서면서부터 여름을 탓하며 불평과 불만과 후회만 하고 있었다. 출발 전부터 준비하는 자세도 틀려먹었었다. 제주를 오로지 제주로 알아보며 좋아하려 들지 않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여기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삐딱하게 대했다. 본연의 제주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고, 나 자신을 포함해 뭐가 좋다고들 이 덥고 뜨거운 섬으로 몰려드는 건지 한탄하고 있었다. 푸르고 잔잔한 바다를 시원하게 파도치는 동해와 비교하며 가두어 둔 수영장 같다고 폄하했고, 푸르게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들은 땡볕 속에 타들어가고 있어 불쌍하다고 동정했고, 제대로 된 제주 밥상 한번 찾지 않고 길 가다가 아무 데나 들어가서 한 끼 때우는 식으로 먹어치웠다. 이렇게 빈약한 여행 콘텐츠로 어떻게 세계 속의 명소들 틈에 끼어들 수 있을지 한심해하기도 했고, 시원한 인공 바람이 가득한 어느 값비싼 휴양지를 예약하지 않은 내 '실수'를 계속 들먹거렸다. 김영갑이 외롭게 사투를 벌이며 발견해 둔 사진 속 제주의 풍광을 바라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제주의 알짜배기 본모습은 고사하고 단순 여행객으로서 제주의 겉모습이라도 성심껏 즐겨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이번 제주에서의 시간들을 뉘우치게 되었다. 김영갑이 이토록 사랑한 제주의 모든 것에 대하여 그저 편의와 수월함과 거창한 그 무엇을 쫓고 있었던 얄팍한 여행자로서의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뙤약볕의 여름이 원인이 아니었다. 안일하고 오만한 여행자인 나 자신이 이번 제주 여행을 망쳐 놓은 것이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아라리오 뮤지엄 세 곳을 남겨 두게 되었다.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빗방울이 후드득 돋는다. 조금이라도 구름이 있었더라면 잠시라도 비가 내렸었더라면 나도 더 마음을 열고 제주를 다녔을 텐데, 뒤늦은 후회로 속이 아려왔다. 아라리오 뮤지엄도 제주를 사랑하는 한 사람에 의해 탄생한 공간이다. 두모악에서 뼈저린 반성을 했기에 마지막 일정에는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흉내라도 내보겠다고 다짐을 한 터였다. 마침 세 곳의 뮤지엄 건물은 근거리라서 걸어서 이동한다. '동문 모텔 Ⅰ', '동문 모텔 Ⅱ'라는 곳(실제의 모텔을 사들여 미술관으로 변신시켰다)은 서로 100미터의 거리이고, 여기서부터 '아라리오 탑동 시네마'(실제의 영화관을 미술관으로 바꾼 곳이다)까지는 10~15분의 도보가 필요하다. 두 곳의 동문 모텔은 기이하고 독특하여 다소 무섭기까지 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혼자 관람 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할 듯). 마르셀 뒤샹이 화장실의 변기를 떼어다 놓고 선 '샘 spring'이라고 명명한 이래로 현대미술은 여전히 세상을 앞서고 있는 거였다. 비가 더욱 거세지는 바람에 탑동으로 걸어가는 거리에는 인적이 거의 없다. 편의점에서 급히 구한 비닐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다. 이제서야 대로와 골목길을 오가며 제주를 걷게 되었다.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새로움과 낯섬을 만끽했었어야 했는데.... 저 앞에 아라리오만의 빨간색이 나타난다. 아라리오 탑동 시네마이다 두 곳과는 달리 엘리베이터도 있고 로비부터 환하다. 세 곳의 전관을 탐방할 때 주어지는 카페 할인 혜택도 이용할 겸 휴식도 할 겸 1층의 카페 '카페 크림'부터 들른다. 1층부터 5층 그리고 지하로 이어지는 전시는 상당히 규모가 있고 볼거리도 많다. 국내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이렇게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우리 동네 어느 카페에 전시된 거랑 똑같아서 신선함이 없긴 하지만, 진짜 '앤디 워홀'의 마를린 먼로도 있고, 키스 해링의 깜찍한 빨강 하트 그림도 있다. 희한한 주제에다가 시각을 압도하는 규모의 설치작품도 여럿 있다. 층에서 층으로 이동하면서 창밖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것도 이곳의 특장점이다. 1시간 30여 분의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을 나서는데 여전히 비가 내린다. 곧 강력한 태풍이 제주에 다가올 것이라는 기상뉴스를 접하면서 땡볕 속의 제주에 머물렀던 것이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니 역시 만감이 교차한다. 잘못된 출발과 그릇된 행보로 인해 영락없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번 제주 여행이 최종 시점에서야 가까스로 '좋았다'로 살아나는 것이다. 불만과 짜증을 유발했던 여름날과 더불어 잊지 못할 또 한 편의 여행이 완성된다.

 

 

 

 

 

 

 

 

 

 

 

 

늦은 시각의 비행편이라 비교적 한산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제주 공항 장내에는 1초로 쉼 없이 비행편의 지연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공항에서 한 시간을 대기하게 되었지만, 김영갑 갤러리에서 제주에 대해 더 이상 불평하지 않기로 맹세했으니 담담하다. 알랭 드 보통이 히드로 공항에서 보냈던 일주일을 떠올리며 나만의 '제주공항에서의 한 시간'을 차려 보기로 한다. 다행히 준비해온 책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가끔씩 구경하며 나만의 평화로운 시간을 가진다. 내 동네로 돌아가서 맞이해야 할 여름, 제주의 이 여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터라 장담하니까 아무런 거부감도 생기지 않는다.

 

 

 

제주에 대해 미안해하는 마음을 담아 이별을 고한다. 이륙 차례를 기다리며 새까만 제주의 하늘 아래 빙그르르 돌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김영갑의 글을 꺼내 든다. 내가 불평하며 홀대했던 제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을 담아 김영갑이 그토록 사랑했던 제주를 읽고 또 읽는다. 약속한다. 가을의 어느 날 '제주만의 은은한 황홀'을 만나기 위해 꼭 다시 오겠다고 말이다.

 

 

 

"내게 있어 제주는, 제주의 사진은, 삶에 지치고 찌들은 인간을 위무하는 영혼의 쉼터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사람들은 그 제주를 두고 천혜의 관광지라거나, 혹은 세계 제일의 청정지역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의 제주일 뿐입니다. 칠색 띠로 치장하고도 바다는 여전히 겸손합니다. 그 바다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제주인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오름에 올라, 드센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들풀이나 야생화 따위를 보며 느끼는 순응의 미학은 오로지 제주만의 것입니다. 돌서덕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덤에서 그들은, 죽음이나 절망 따위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건져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제주입니다. 그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을 수 없는 제주만의 은은한 황홀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그 삽시간의 환상을 잡고 싶었습니다. 20여 년 세월을 미친 듯이 쏘다니며 안간힘을 쓴 것은 오로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일상의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이거다 싶을 때마다 그 황홀함을 붙잡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흐름 속에 마주해야 하는 기쁨이나 혹은 외로움 허무 따위 절망적인 감상까지 씻어줄 것 같은 황홀함은, 그야말로 삽시간에 끝이 나고 맙니다. 단 한 번도 기다려주지 않고 그저 삶을 평화롭게 응시할 것을 주문합니다. 나는, 제주의 가공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디 그대로의 그것을 붙잡으려 애씁니다. 그래서 그저 기다릴 뿐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것이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기 위해 존재해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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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위해 일해왔다.

그것은 고요와 평화다. 

- 르코르뷔지에



인간과 자연, 현대와 고전, 순간과 영원, 합리와 비합리, 

기하학적 정신과 섬세의 정신을 함께 끌어안으며

건축으로 삶을 혁명하고자 했던 예술가,    

르코르뷔지의 길을 따라가다


“그토록 오랫동안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모욕당한 이는 없다. 

그는 오로지 인간과 건축만을 위해서 싸웠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정치가였던 앙드레 말로는 르코르뷔지에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르코르뷔지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모두 통과하면서 19세기까지 특권 계급에게만 허용되었던 건축을 만인을 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일생 분투했다. 그는 ‘집은 살기 위한 위한 기계’라는 모토 아래,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간결한 구조의 돔이노 시스템을 내세워 건축의 표준화와 대량생산을 꾀했다. 또한 생활의 편의를 위하여 각종 시설을 사람 몸에 맞게 치수화했으며, 도시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주택 실험은 마침내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자유로운 입면이라는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천명으로 이어졌다. 이는 빌라 사보아, 위니테 다비타시옹 같은 작품에 잘 나타나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 원칙을 따르는 건축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르코르뷔지에는 스위스 서쪽 산간 마을인 라쇼드퐁에서 태어났음에도 스스로 지중해 사람이라고 여겼을 만큼 지중해의 자연과 건축에 깊이 매료되었다. 특히 청년 시절 이탈리아에서 본 에마수도원과, 동방 여행에서 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고대 신전은 그의 건축 세계와 늘 함께했다. 후기의 걸작 롱샹성당과 라투레트수도원은 현대인들에게 고요와 평화를 선사하며 젊은 시절에 마주한 ‘언덕 위 신전’을 성공적으로 재현했다. 


신승철

베를린훔볼트대학교에서 ‘이미지의 생명성’을 주제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학교 ‘이미지 행위 및 체현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이미지 이론과 현대 미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뉴미디어 아트를 비롯하여 이미지학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 『미래 인문학 트렌드』(공저), 『상상력과 지식의 도약』(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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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교급

1. 우등비교 :

~보다 더 ---. 'piu --- di ~' ' piu --- che~ '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piu --- di ~

Paolo e piu alto di Maria.

La terra e piu grande della luna. (di + la della)

La bicicletta e piu veloce dell'autobus.(di+l' dell')

Il vino e piu alcolico

 

piu  --- che~

하나의 주어에 속한 두 개의 형용사를 비교하는 경우

두 개의 동사, 두 개의 명사, 두 개의 전치사구를 비교하는 경우

Francesca e piu simpatica che bella.

Viaggiare e piu divertente che studiare.

compro piu caffe che te.

Studio piu per piacere che per necessita.

 

2. 열등비교:

~보다 덜 --- . meno --- di~ 또는 meno --- che~

La birra e meno alcolica del vino.

Lui e meno intelligente de lei.

Queste quaderno e meno lunga che larga.

E meno difficile fare che parlare.

 

B.원급: ---만큼 ~

(cosi) 형용사 + come 또는 (tanto) 형용사 + quanto

cosi tanto는 강조를 위해 붙이기도 한지만, 구어체에서는 드물다.

L'auto e (cosi) veloce come comoda.

Maria ha tanti libri quanti ne ho io.

( tanto quanto는 뒤에 명사가 붙을 때, 명사의 성과 수를 따른다.)

 

 

C.최상급: 상대적 최상급과 절대적 최상급이 있다.

1. 상대적 최상급:

---중에서 가장 ~,

정관사 +piu +형용사 또는 정관사 +명사 + piu +형용사

Maria e la piu alta della classe.

Paolo e il ragazzo piu alto della classe.

Maria e la piu alta delle altre sorelle?

Questa frutta e la piu fresca del mdercato.

' ~중에서' 'di + 정관사'로 표현하는데, 축약현상이 발생한다. di + la della, di + ledelle, di + il del

 

② 가장 ~한 것중 하나

uno / una + dei, degli / delle +복수명사 + piu 형용사

Mario e uno degli studenti piu intelligenti. (di + gli degli)

Lucia e una delle ragazze piu famose di tutte.

 

2. 절대적 최상급

' 매우 ~'의 뜻. molto 또는 tanto를 붙이거나, 형용사의 어미에 -issimo/i/a/e를 붙인다

Roberto e un uomo molto simpatico.

Roberto e un uomo simpaticissimo.

Ecco la persona molto elegante. (이 때, molto는 부사이기 때문에 성-수에 따른 변형을 하지 않음)

Ecco la personal elegantissimo.

 

*특수한 단어의 비교급 및 최상급*

출처: CIAO, GRAMMATICA!삼지북스

 

 

** 이탈리아어 독학이 힘들어질 때, 로마를 생각하라!

영국항공을 타고 런던에서 로마로 오는 길, 설렘가득. '정말 로마로 가고 있는 것 맞지?'

 

 알이탈리아 항공을 타고 로마를 떠나던 날, 아쉬움 가득.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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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그림이 있다(2):인생은 움직여가는 것 (feat. 피트 몬드리안) | art and life 2020-08-1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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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해야 한다.

수고와 고생을 감수해야 하며 심적 압박과 스트레스에 휘청거릴 것임이 불 보듯 뻔하지만, 안 할 경우에 떠안게 될 후회와 아쉬움보다는 낫다. 안 하면 아무런 변화 없이 익숙한 제자리 걸음에 머무를 테고, 이런 답보는 장기적으로 보면 쇠락에 해당한다. 해보겠다고 나서면 삶의 안팎이 하나둘씩 달라지기 시작하고 점점 더 강한 파동이 파생되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10년째 현재 집에 살고있다. 한 곳에 너무 오래 살았다! 정착의 편안함과 안도감이 슬슬 반감 같은 것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급함이 몰려 들었다. 지금, 완전히 낯선 곳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익숙함에 매몰된 채로 나의 인생이 끝나버릴 것이라는 우려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움직여야 해! 벗어나야 해! 그래서, 옮겨간다. 불안인지 설렘인지 좀처럼 분간이 안 되는 기분을 안고 소심함과 대담함을 오가며 내 삶의 새로운 판을 짜게 되었다.

 

 

 

피트 몬드리안의 그림은 정지해 있을까 움직이고 있을까? 몬드리안의 시그너처로 자리 잡은 삼원색 그림 앞에서 늘 떠오르는 질문이다. 수평과 수직으로 검정 선을 그어 놓았고,이들 사이에 형성된 면들을 하얗고 노랗고 빨갛고 파란색으로 정밀하게 채웠다. 몬드리안의 이 검정과 원색으로 그려진 구성화는 어느 미술관에서든 가장 눈에 잘 띤다. 각양각색으로 나열된 작품들 속에서 절도있는 단정함과 간결함으로 관람자의 시선을 잡아당긴다. 유명 화가들의 명화들이 연이어지면서 눈도 머리도 과부하 되기 시작할 즈음에 몬드리안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상적인 타이밍이다. 화려하고 눈부신 작품들을 대하면서 폭발 직전으로 팽창해있던 모든 감각이 조용히 정리된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숱한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몬드리안의 그림은 '정화'효과를 낸다. 앞도 뒤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복잡함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한숨 돌리게 한다.

 

 

『피트 몬드리안』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니 몬드리안의 삼원색 추상회화에도 순서가 있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보았던, 단순한 흰색이 그림의 중앙을 차지하는 그림이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보았던 그림보다 앞선다. 흰색 사각형이 그림의 중심이 되고 노랑, 빨강, 파랑, 검정 사각형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선명한 원색 사각형들과 더불어 회색의 크고 작은 사각형들도 배치되어 있어서 전체적으로 중앙의 흰색이 도드라지면서 중성적인 안정감이 느껴진다. 빨강과 노랑, 파랑은 톡톡 튀면서 그림의 가장자리 밖으로 밀고 나가는듯한 이동감을 주지만, 이들을 검정과 회색이 둘러싸면서 제자리에 있으라고 조심시키는듯하다. 특히 세로로 길쭉한 왼쪽 끝자락의 빨강은 위로 날아오를 기세이지만 바로 인접한 검정과 회색이 아래로 내려가려는 반작용을 제공함으로써 안정적으로 붙들려 있다. 중앙의 넓은 흰색 면에 초점을 두면 이를 중심으로 빨강과 노랑 파랑이 리듬을 일으키며 오른쪽으로 돌아가든지 혹은 앞쪽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검정과 회색에 초점을 맞추면 검은 선들에 의해 그림의 부분부분들이 질서정연한 도열을 유지하며 숨을 고르고 있다. 수평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검은 선들에 의해 그림에는 단정한 질서가 존재하지만, 크기와 색이 서로 다른 사각형들은 뭔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비례와 조화를 이루어 여유로움과 평온함을 발산하는 동시에 선과 면이 만나며 이루는 공간들이 단 하나도 동일한 것이 없어 변화를 감지케한다. 몬드리안의 그림은 한없이 정지해 있으면서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에 마련된 몬드리안 섹션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본 그림에도 검정 선과 삼원색의 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검은 선으로 그은 수평선이 두 개라는 점에서 위의 그림과 다르다. 이 두 개의 수평축이 중앙을 가르는 검은 수직선과 만나면서 그림은 좌우 대칭이 된다. '거울처럼 반사하는 축'이 생긴 것이고 가로로 두 개의 동일한 회색 사각형이 마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동질성은 단순하거나 무미건조하지 않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 위치한 빨간 사각형과 이의 대척점에 자리하고 있는 파란 사각형에 의해 그저 하얗게 똑같게 보이던 중앙의 공간에 움직임이 살아난다. 이 때, 노란 직사각형이 어김없이 나타나면서 흰색의 반복과 파랑과 빨강의 대비에 악센트를 찍어준다. 계산된 분할이며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구성이라서 자칫 교훈적일 수 있는 화면에 -성실, 단정, 준비, 깔끔, 정리의 어조가 느껴진다.- 하나의 변칙적, 즉흥적인 요소가 뛰어 들어오면서 경쾌해진다. 그러자, 좌우로 틀을 맞추며 질서를 지향하던 그림에 생기가 불어넣어져 자유로운 호흡이 도입되고 바람개비처럼 뱅그르르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대미술에서 추상회화의 시대를 개척한 몬드리안의 이런 작품들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므로 몬드리안도 어디선가 영감을 받았거나 구체적인 '신호'를 포착하지 않았을까? 몬드리안이 마흔 번째 생일을 앞두고 파리로 이주한 것이 결정적인 첫걸음이었다. 이미 예술적으로 풍요로운 무대로 자리잡은 파리는 몬드리안에게도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여러 회화적 실험을 하며 그림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몬드리안은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가 주도하는 입체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검은 선을 모든 작품의 기초로 삼고 있었던 두 입체파 화가들처럼 몬드리안도 1912년 이래로 검은 선들을 화면 위에 그리드 형태로 배치하고 있었다. 검은 선들을 그물조직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나무와 꽃을 그려내며 미술은 더 이상 현실세계를 재현할 필요가 없다라는 신념을 실현하고 있었다. 따라서, 입체주의가 태동하던 파리를 몬드리안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회화가 꽃필 수 있는 무대로 낙점했고, 이 결정이 옳았다고 입증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출처: 마로니에북스 ㅣ Taschen 『피트 몬드리안』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에서 <타블로 Ⅲ: 타원형 구성>을 보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같은 전시실에 있는 몬드리안의 트레이드 마크인 삼원색의 구성 그림과 판이하게 다르게 보였다.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세로로 길쭉한 타원형의 틀은 화가의 이젤 같기도 하고 창문 같기도 하다. 이전에 꽃과 나무를 그렸던 둥근 패턴의 검은 선들은 이제 직선의 형태를 띠며 그림을 조밀하고 세세하게 분할한다. 색채에도 변화가 있다. 붉은색, 회색, 및 파란색 계열이 모양과 색조를 달리하며 차곡 쌓여있다. 파리의 빽빽이 들어선 집들을 그린 일종의 풍경화라는 사실을 알고서 다시 바라보면 이해가 된다. 넓거나 좁다란 창문들이 보이고 아치형의 대문도 보이고 발코니를 밝히는 둥근 등도 보인다. 양쪽에 가게들이 즐비한 파리의 어느 골목길도 보인다. 가장자리로 가면서 색이 번져있고 검은 선들의 경계도 희미해지면서 그림 안의 도시는 그림 바깥에 무한히 확장되어 있을 도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 그림에서부터 몬드리안은 기존의 어느 미술에서도 볼 수 없는 혁신을 이루었다고 할만하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구체적인 형태를 벗어버린 채 무한 반복하며 뻗어나가는 새로운 차원의 풍경이 탄생했다.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화가의 장소가 달라지면서 몬드리안이 지니고 있던 잠재력이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 <타블로 Ⅲ: 타원형 구성>

 

 

파리로 이주한 초기 시절에 확립한 이 획기적인 추상적 화풍이 바탕이 되어 1921년에 이르러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게 될 전형적인 삼원색의 작품들을 그려냈다. 이전의 그림들에 비해 한결 더 단순해졌고 그림의 각 부분이 일사분난하게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는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검은 선과 몇 개의 색만으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그림들을 그려내는 실험적 노력을 거듭하면서 몬드리안은 추상회화의 대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초기에 영향을 받았고 의도적으로 모방에 나섰든 입체주의와도 당당히 어깨를 겨루거나 어쩌면 이를 능가하는 독자적인 미술사를 개척하는 데에 성공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몬드리안의 시그너처 작품들은 1921년 파리에서 탄생하기 시작했다.

 

 

 

화가로서의 커리어로보나 개인적 삶에 있어서나 정점에 오르게 된 몬드리안의 다음 행보는 어떠했을까? 검정 선과 삼원색 및 흰색을 주제로 하는 그의 구상 세계가 어떤 식으로든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었을까?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에는 몬드리안의 불변의 삼원색 구성 작품 바로 위쪽에 매우 '이상한'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그림의 제목은 <두 선의 마름모 구성 1931년>이며 몬드리안의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흰색 부분은 색채를 입힌 것이 아니라 캔버스의 흰 바탕 그대로이므로, 몬드리안이 이 '그림'에 대하여 한 일이라고는 검은색 유화물감으로 수직선과 수평선을 하나씩 그어놓은 것밖에 없다!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급진적이다. 현실을 재현하는 기존 미술에서 한참 멀어져 나와 단순한 구성만으로 풍부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몬드리안의 특별한 재주에 더 이상 나아갈 바가 없었던 것일까? 혹은 약 20년 동안 파리에서 숨 가쁘게 혁신과 모던함을 향해 달려왔던 자신의 커리어에 잠시의 휴지기를 가지며 심호흡을 하려는 것이었을까?

 

 

 

 

단순함에 있어서는 이미 극한에 도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해 보인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그만두든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몬드리안의 선택은 후자이었고, 자신의 특징적인 구성 세계로 되돌아오는 길에서 이전과는 다른 변주를 발견한 것 같다. 검정 선들의 교차가 더욱 많아지며 그림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면들이 생겨났다. 빨강, 노랑, 파랑을 들여놓는 크기가 더 다채로워지면서 그림은 한층 더 활기 있어 보인다. 이전의 삼원색 구성 작품은 이제 '고전'이 되었고, 경력의 정점에 이른 몬드리안은 또 다른 '새로움'을 선택하여 자신의 기존 세계로부터 한층 더한 '모던함'을 창조해냈다. 몬드리안에게 있어서 '새로움'이란 이미 하나의 습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가 되어 버린 것 아닐까?

 

 

 

이제 60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혁신과 새로움을 마음껏 부리고 있던 몬드리안에게 파리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구세계로 퇴락해갔다. 20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시로운 미술을 향한 열정을 품고 파리로 옮겨왔던 것처럼, 이제 또 새로운 꿈을 갖고 다른 장소로 옮겨가야 했다. 마침 전쟁의 여파로 세계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던 시점이었기에 몬드리안이 뉴욕행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뉴욕에서 몬드리안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기존에 자신 있게 쓰고 있던 검은 선에다가 '색띠'를 결합시킨 것이었다. 이제 삼원색은 바탕을 여러 형태로 축소하거나 확대시키는 평면에만 머물지 않고 가늘고 길게 교차하는 그물을 형성하며 검은 선들과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검은 선들 위에 가볍게 얹힌 것 같은 색색의 선들은 그림에 발랄함과 경쾌함을 입혀준다. 더욱 밝아지고 활기 넘치는 색띠 작품들은 뉴욕 생활을 가장 행복해하던 몬드리안의 심상을 대변하는 것 같다. 뉴욕이 선사하는 여유와 활력에 힘입어 몬드리안은 더욱 자유롭고 거침없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그의 작품에는 '뉴욕'이라는 단어가 제목으로 붙게 된다. 실재의 세계를 추상회화로 잘 포착할 수 있다는 확신을 끊임없이 구현하던 몬드리안은 이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감 대신에 종이로 색띠를 만들어다가 이를 캔버스에 갖다 붙였다. 가로세로로 색띠들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자신이 원하는 화면을 구성하게 되었고 검은색보다 삼원색을 월등히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옛 작품들에 변화를 입혔다.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몬드리안의 <뉴욕시 New York City, 1942년>을 보았을 때, 멈칫하며 다시 그 이름을 확인하게 되었다. 흰색 및 삼원색으로 이루어진 면들과 검은 선들이 모두 사라지고 눈부실 만큼 환해져 버린 이 그림이 몬드리안다워 보이지 않았서였다. 이유인즉, 뉴욕에서 그렸던 색띠 작품이기 때문이다. 검은 선이 아예 하나도 없는 데다가, 어느 정도의 정적과 평온함이 깃들어 있는 그의 전형적 화면이 아니다. 여러 색실을 교차시켜 짜 놓은 밝은 색조의 양탄자가 하나 걸려 있는 듯했다. 접착성이 있는 색띠를 여러 겹 붙여 놓은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그렸던 스케치를 회화로 완성한 이례적인 작품이다. 자신이 수십 년간 구축해 놓은 특징적 요소들을 모두 해체시키고, 그 자리에 자신이 좋아하는 뉴욕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 뭔가 비밀스러운 것이 깨어나는 듯한 세계를 탄생시켰다. 몬드리안은 춤을 좋아했고 재즈에 빠졌다고 한다. 작품 제목에도 부기우기를 붙일 정도로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품들이 활기찬 리듬을 만들어내길 바랐다. 더해지는 나이도 이미 거둔 성공도 몬드리안에게는 한계를 설정하지 못했던 게다. 새로운 장소로 과감히 움직여가며 자신의 또 다른 전성기를 이루어내는 데에 있어서 몬드리안 보다 더 모범적인 화가가 있을까?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 <뉴욕시 New York City, 1942년>

 

 

 

재료와 디자인 면에 있어서 다양함을 시도하는 동시에 색과 형을 무한히 변경하고 재편성하여 부단히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몬드리안은 어느덧, 미국 현대회화를 주도하게 되었다. 화가로서의 일생 동안 새로운 분야를 거침없이 개척하며 보여준 그의 초월적 예술적 능력은 장차 시대를 주도할 화가를 알아보는 데에도 효력을 발휘했다. 특히, 어지러운 선들과 무계획과 충동의 결과물로 보이는 형태들로 당시 미술계를 당혹시키고 있던 잭슨 폴록의 그림에 대해 몬드리안은 자신이 보아온 가장 흥미로운 작품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무작위로 뿌려진듯한 화폭에서 피카소의 입체주의적 요소와 더불어 채색된 선으로 표면을 가로지르며 여러 중심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폴록만의 스타일을 발견해 준 것이다. 기존의 회화 전통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예술적 꿈을 집요하게 추구해온 몬드리안이었기에 역시 새로운 경지의 예술을 꿈꾸며 도약하는 신진 화가를 식별할 수 있었다.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만난 잭슨 폴록 <Number 14 1951>

파리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만난 잭슨 폴록 

 

 

몬드리안이 인생을 움직여 나가는 모습은 나에게도 도전을 가르쳐준다. 국경을 넘어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미술 세계에 가능성을 부여해 주리라고 기대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옮겨갈 태세였다. 암스테르담에서도 화가로서 길이 꽤 긍정적이었지만, 자신이 꿈꾸던 화풍이 더 잘 살아날만한 파리로 이주했다. 파리에서 본인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자신의 모습과 미술, 삶의 방식을 찾는 데 성공했지만, 이를 끝 또는 완성으로 보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를 간파했고 미술이 장차 나아갈만한 방향을 감지하여 자유와 새로움의 빛이 태동하는 뉴욕으로 건너갔다. 몬드리안에게 있어서 성공은 안주가 아닌 움직임에 대한 갈망을 지폈다. 매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화가 개인으로서의 발전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선구자적 역할도 훌륭히 수행해냈다. 평생 변화와 도전을 갈구했던 그의 예술가적 자질은 새로운 질서와 개념을 창조하는 작품들을 낳았다. 인생을 움직여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몬드리안이 위대함을 성취해가는 제1의 방식이었다.

 

 

 

내가 터전을 옮겨가는 이유도 몬드리안적으로 해석해보고 싶다. 한 곳에서 10여 년을 살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충분히 다양하게 해 보았다. 주저함 없이 '성공적인 10년'이었다고 총평을 내릴 순 없지만, 나름의 변화와 안정이 조화를 이루며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정 속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움직임에 대한 갈망을 더 이상 모른체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곳에서 이룰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천적 조항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껏 10년의 생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인생을 시도해보라는 내부의 '명령'을 묵살할 수 없어서이다. 이곳에서의 안정된 생활 패턴을 탈피하고 나도 모르는 변화와 새로움의 영역으로 뛰어들고 싶다. 머무르면 주저앉게 되고 결국은 이 모습 이대로 녹아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왜 하필 이 나이에 닥쳐오는지 알 수 없다.그러나, 파리가 몬드리안을 불러 들였고 뉴욕이 몬드리안을 끌어당긴 것처럼 나도 나를 잡아 이끄는 새로운 장소로 나아간다. 직업적인 성공은 운운하지 않는다. 새로운 생활 패턴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내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것으로 충분할 터이다. 온전한 이동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몇 가지의 복잡한 단계가 남아 있고, 시간적으로도 몇 달 이후의 일이다. 그래도 이미 시작되었다. 내 인생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나의 세계에 광대함과 평온함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며 매일매일 새로운 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몬드리안의 움직여가는 인생과 이예 따른 작품의 발전상을 체계적으로 탐색하는 데에 가이드가 되어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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