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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관계대명사 (feat. 장그르니에의 '섬', 카뮈의 서문) | 프랑스어에 울고 웃고(나이들어 외국어라니) 2021-09-22 00:43
http://blog.yes24.com/document/1512691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어느 때에라도 꺼내 읽으면 그 무엇이라도 평안과 기대의 분위기를 띠며 나를 안도하게 해 주는 글.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 장 그르니에의 『섬 Les Iles 』에 알베르 카뮈가 적어 둔 서문은 좀 더 잘 읽힌다. 책을 읽는 자의 행복,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감격과 흥분을 이 서문보다 더 적확하게 황홀하게 표현해 주는 글이 있을까.

 

아직도 서툴 디 서툰 프랑스어 실력으로 사실 이 서문을 프랑스어 원문으로 읽어 보겠다고 감히 엄두를 내어 본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건만 한 줄 한 줄 성실하게 읽고 싶은 바램은 포기할 수 없다. 『섬 Les Iles 』을 욕심내고 카뮈의 서문을 챙겨보고 그러면서 프랑스어를 향한 원대한 희망을 품게 된 것 이 모든 기적의 출발은 한글판 『섬』에 있다. 김화영 교수의 이 번역 글이 존재하는 덕택에 나는 그르니에의 섬을, 카뮈의 서문을 스스럼없이 읽어내고자 한다. 솔직히 말하면 '커닝'을 하는 거다. 김화영의 문장에다 그르니에의 문장, 카뮈의 문장을 얹어 두고 김화영의 단어 단어로 이 프랑스인들의 언어를 조금씩 밀고 나간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한글과 프랑스어를 오가다 보니 약간의 여유가 생겨서일까. 오늘은 카뮈의 문장 속에서 문법 또는 문장의 구조, 단어와 문장이 갖추어지는 운행방식에 눈길이 간다. '관계대명사'를 챙겨보고 싶어진다. 카뮈의 글은 처음부터, 정확히 말하면, 두 번째 문장부터 관계대명사 que가 등장한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관계대명사는 두 문장 또는 그 이상을 한 문장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편리한 장치이다. 다시 말하면 관계대명사가 쓰인 문장은 대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길이감을 갖게 되며 언어를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특히 외국어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관계대명사가 한두 개 들어간 문장을 한 호흡에 읽어낼 수 있다면 독해에서 진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아예 top-down 방식으로 프랑스어에 도전해 볼까. 내 수준을 상당히 뛰어넘는 글을 선택해서 한 문장씩 문법과 단어를 섭렵해가는 방식 말이다. 기초부터 하나씩 차근히 공부해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조급한 마음도 달랠 겸 좀 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성큼성큼 나가볼 때가 되었다. 이왕이면 언어적으로도 사유면에도 탁월한 책을 선택하자. 뛰어난 한국어 번역본도 존재하는 책....『Les Iles』과 『섬』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카뮈의 서문의 3분의 1 정도 가량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계대명사를 찾아본다. 새삼 깨닫게 되는 사실인즉 que와 qui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여태껏 구분해 보지 않았다. 현재형-과거형(반과거와 근접 과거)-미래형(단순 미래) 등 동사를 공부하다가 포기하면서 문법은 일단 앞뒤가 이어지면 그저 넘어가자는 식으로 완화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앞의 명사 (선행사)와 뒤의 문장이 대략적으로 연결(관계) 되면 이것으로 족한 것이지 따로 관계대명사를 익힐 필요나 여유가 없다고 미루어 둔 거였다.

 

 

그러나, que와 qui는 의미적으로 매치되는 영어의 관계대명사 what과 who 와는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관계대명사를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갖고 있는 초중급 수준의 프랑스어 문법 교재( 송산 출판사, 『프랑스어 문법 총정리』)를 뒤져보게 되었다.

 

프랑스어 문법 총정리 초중급

신중성,김지연 공저
송산출판사 | 2012년 12월

 

 

어? 이게 웬일인가! 프랑스어에도 이처럼 '간단한' 문법이 존재한다니. 거의 믿기지 않아 그저 탄복할 따름이다. 물론, 이 교재 가 쉽고 간단하게 축소해 놓았겠지만 나에게는 지극히 고무적이다. 프랑스어 문법, 해볼 수 있겠다!

 

프랑스어의 관계대명사 Les pronoms relatifs는 4개로 구분되어 있다.

que, qui, dont, ou

 

 

1. que와 qui는 양자 간의 차이점에 포커스를 두며 함께 공부하면 더 수월하다.

 

 

우선, qui는 주격 관계대명사이고 que는 목적격 관계대명사이다.

 

주격 관계대명사란 (영어에서와 동일하게) 선행사를 qui 문장의 주어로 파악하면 된다. 따라서, qui 뒤에는 동사가 위치한다.

Je prends le train. + Ce train part a 16 heures.

(두 문장을 관계대명사로 연결하면 le train과 ce train은 동일 사물이고 ce train은 주어이므로)

→ Je prends le train qui part a 16 heures. (나는 16시에 출발하면 기차를 탄다)

 

que는 목적격 관계대명사이므로 선행사가 que 뒤에 오는 동사 (타동사)의 목적어로 연결된다.

Je n'aime pas la chemise. + Il porte la chemise.

( la chemise가 선행사가 되고, porte의 목적어이므로)

→ Je n'aime pas la chemise qu'il porte. (que + il이지만 il이 모음'i'으로 시작하므로 qu'il) 나는 그가 입고 있는 셔츠를 좋아하지 않는다

 

qui와 que의 공통점은 선행사가 사람인지 사물 인지 구별하지 않는다는 사실. (영어보다 더 간단하다!)

 

 

 

2. 관계대명사 dont은 낯선 개념이다 (영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치인데 알고 보면 문장을 간단하게 끌어준다)

' 선행사가 관계절에 '전치사 de가 유도하는 보어를 대신'한다..... 문법 교재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어 뭔 말인지... 그러나, 예문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더 빨리 된다.

 

 

C'est le livre. + Je t'ai parle de ce livre hier.

편의를 위해 한국말로 먼저 연결해 보면 '이것은 내가 어제 너에게 말했던 책이야'

'~에 관하여 (영어의 about)'에 해당하는 'de'를 쓰지 않고 dont을 선행사 le livre 뒤에 갖다 놓는다.

→ C'est le livre dont je t'ai parle hier.

 

 

다시 ' 전치사 de가 유도하는 보어'라는 조건에 집중해 보는데, 위 예문 'parler de'에 쓰인 de는 '동사의 보어를 유도한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de가 동사 외의 다른 품사도 유도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형용사의 보어와 명사의 보어가 있다.

 

 

'형용사의 보어'는 '형용사 +de + 명사'의 모습이다:

J'ai trouve un studio. + Je suis tres contente de ce studio.

( 선행사 un studio는 'de'에 의해 형용사 contente로 유도되므로)→ J'ai trouve un studio dont je suis tres contente. 나는 매우 만족스러운 원룸을 찾았다.

 

Elle a une fille. + Elle est tres fiere de sa fille. ( fiere de에서 de를 없애고 dont를 사용)

→ Elle a une fille dont elle est tres fiere. 그녀는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딸이 하나 있다.

 

 

다음 문장은 de 앞에 명사가 있으므로 '명사의 보어'를 유도하는 상황이다 (영어의 소유격 관계대명사 whose와 유사함):

Tu dois lire ce roman. + L'auteur de ce roman a recu le prix Nobel.

ce roman을 선행사로 두고 'de ce roman'은 dont이 되므로)

→ Tu dois lire ce roman dont l'auteur a recu le prix Nobel. 너는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이 소설을 읽어야 해.

 

Voici ma copine.+ L e pere de ma copine est vacat.

(ma copine은 선행사, de ma copine을 dont으로)

→C'est ma copine dont le pere est avocat.

 

 

3. '어디'를 뜻하는 의문사 ou는 장소와 시간을 나타내는 관계대명사로 쓰인다.

영어에서는 장소와 시간의 관계사를 '관계 부사'로 부르지만, 프랑스어에서는 그냥 관계대명사.

영어에서는 장소의 관계사는 where, 시간의 관계사는 when으로 구분하지만 프랑스어에는 구분 없이 오직 ou.

(즉, quand은 관계사로 쓰이지 않는다)

 

 

선행사가 시간인 경우:

L e lundi est un jour.+ Beaucoup de magasins sont fermes le lundi.

→Le lundi est un jour ou beacoup de magasins sont fermes. 월요일은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는 요일이다.

 

 

선행사가 장소인 경우:

Son appartement a une terrasse. + Il a installe une table de ping-pong sur la terresse.

→Son appartement a une terrasse ou il a installe une table de ping-pong. 그의 아파트에는 테라스가 있는데 거기에 그들은 탁구대를 설치했다.

(문장에 따라서 해석은 영어의 '계속적 용법의 관계사'처럼. 즉, 앞 문장을 해석한 후 ou를 '거기에' 또는 ' 그때에'라고 해석하면서 뒤 문장을 이어간다)

 

 

 

관계대명사를 단순 명료하게 가르쳐주는 나의 친절한 문법 교재는 더 나아가, 연습문제도 제공한다 (정답도 알려줌)

 




 

 

 

단숨에 척척... 연습문제에서 모르는 단어 거의 없이 답도 한 번에 쓱쓱... 백 점!

물론, 중급보다는 초급에 좀 더 가까운 이 문법 교재의 예문과 카뮈의 문장은 하늘과 땅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문장이 어렵고 내용이 추상적, 철학적이 된다 하더라도 문법이 변하는 것은 아닐 터.

한글판을 옆에 두고 카뮈의 서문을 짚어나가노라면 que, qui, dont, ou 모두 눈에 쏙쏙 들어온다. 선행사와 각 관계사의 뒤 문장을 연결하면 긴 문장도 읽히고 이해도 된다. 아름다운 카뮈의 문장과 이 아름다움을 극대화해주는 김화영의 아름다운 한국어, 프랑스어에의 흥미, 알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활용하며 익혀가는 성실함. 프랑스어를 잘 하고 카뮈를, 그르니에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실천하자!

 

 

 

장 그르니에의 『섬 Les Iles 』에 앞서 알베르 카뮈가 쓴 서문 중, 관계대명사 que qui dont ou가 들어 있는 몇몇 문장들을 적어 본다:

(유감스럽게도, 예스 24의 글쓰기에는a, e,u 등의 철자 위에 찍히는 프랑스어의 악센트 표시가 잡히지 않는다. )

 

J'avais vingt ans lorsqu'a Alger je lus ce livre pour la premiere fois. L'ebranlement que j'en recus, i'influence qu'il exerca sur moi, et sur beaucoup de mes amis, je ne peux mieux les comparer qu'au choc provoque sur toute une generation par Les Nourritures terrestres. Mais la revelation que nous apportait Les Iles etait d'un autre ordre.

 

 

La mer, la lumiere, les visages, dont une sorte d'invisible barriere soudain nous separait, s'eloignerent de nous, sans cesser de nous fasciner.

Celui qui, entre une terre ingrate et un ciel sombre, besogne durement, peut rever d'une autre terre ou le ciel et la lumiere et les collines comblent a toute heure du jour, ils n'esperent plus.

 

 

Il me semblait que j'entrais dans une terre nouvelle, que m'etait ouvert enfin un de ces jardins clutures de hauts murs que je longeais souvent, sur les hauteurs de ma ville, dont je ne saisissais, qu'un parfum de chevrefeuille invisible, et dont ma pauvrete revait.

 

 

A l'epoque ou je decouvrais Les Iles, je voulais ecrire, je d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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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써 보는 미술 도록② (feat. 이불의 사이보그W7) | 아트다이어리(그림으로 쓰는 일기) 2021-09-15 22:22
http://blog.yes24.com/document/1509666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지난 8월 22일에 막을 내린 아모레 퍼시픽 아트 뮤지엄의 현대 미술 소장 품 전시 Chapter three는 긴 여운을 남긴다. 전시 도록을 별도로 발간하지 않아 더욱 아쉽지만 이로 인해 내가 만난 전시의 순간을 세미하게 들추어 보는 일에 공을 들이게 되었다. 한번 보고 그 순간 생각에 잠겨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나의 언어로 나의 미술 세계에 자그맣게 적어 둔다.

 

 

 

제1전시실에서부터 모든 면면이 만족스러웠다. 제2전시실은 제1전시실의 한켠에 마치 '숨은 장소'처럼 경계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검은색 줄 장치가 실타래처럼 축축 늘어서 있고 한 발짝 너머에는 여러 점의 하얗고 반짝이는 설치작품이 신비스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닥에도 작품의 이미지가 다른 모습으로 연장되도록 조명을 세심하게 배치한 듯하다. 작품의 시작인 천장에서부터 내 발과 맞닿는 바닥에 이르기까지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면서 생각하고 느껴보게 된다.

 

 

대표적인 한국 현대미술가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이불 Lee Bul'. 올해 3월 경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그의 특별전을 놓쳐 아쉬워하던 참에 이번 전시에서 네 점이라도 직접 만날 수 있어 감개무량했다. 이불의 분신처럼 생각되는 '사이보그'가 바로 내 머릿 자락에 고고하게 서 있다. <사이보그 W7>은 미켈란젤로의 석고상 못지않게 정교해 보이는데 실리콘, 폴리우레탄 충전재, 피그먼트를 주재료로 한다. 기계이어서 딱딱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여성의 아름다움을 입고 있다. 매끈하게 하얀 자태로 우아하기도 하면서 언제든지 짠하고 나타나서 악당을 물리쳐줄 여전사처럼 믿음직하다다. 그러나, 다시 쳐다보면 심각한 기형을 안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만능 기계 사이보그일 텐데 머리와 다리 하나가 없고 팔도 짤뚝하게 불완전한 모습이다. 여기에서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가 드러난다'. 영원과 불멸을 지향하는 꿈은 현실에서 좌초되고 만다. 이는 다만 공상 소설에 나오는 어느 외계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개 있게 목표를 높이 잡고 이를 이루겠다는 집념하에 자신의 한계를 딛고 나아가는, 그러나 곧 갖가지 장애와 불가능에 부딪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리는 오늘날의 인간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로 읽힌다. 그래서 이 말갛게 세련된 형과 색은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우울과 좌절에 매달여 있는 꿈의 껍질로 보인다. 사이보그 옆에는 <크러쉬 CRUSH>가 반짝이고 있다. 이도 인체를 형상화했는데 사이보그처럼 남성보다는 여성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전시 해설에는 '갑옷을 입은 기사처럼 보인다'라고 적혀 있지만, 내 눈에는 미끈한 A 라인의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초름한 여성이다. 아마 크리스털 구슬, 유리구슬, 니켈 크롬과 같은 반짝이는 재료로 이루어져 있어 눈부시게 하는 화려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크러쉬 역시 '신체의 일부가 없는 듯 모순적인 형상'을 지니고 있다. 팔은 맥없이 몇 가닥의 실이 풀어진 상태이고 다리도 양쪽 구별이 잘 안되겠금 힘없이 늘어져 있다. 모든 운명에 저항하며 완벽하게 살아 보겠다는 욕망을 추구해 왔지만 깨닫는 것은 오로지 한계와 불안이다. 꿈을 좇으려는 눈부신 열정은 아직도 유효할 수 있겠으나 이렇다 할만한 성과나 성취는 없어 다소 맥이 빠진 부동의 자세이다. 벽면에 드리워진 크러쉬의 반사체는 꿈과 현실의 괴리에 방향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다. 명멸하는 꿈의 잔상 속에 지금은 멈춰 있더라도 아직도 빛나고 있는 꿈의 기운을 다잡고 다시 전진할 수 있기를!

 





 

 

 

 

 

2000년의 사이보그와 크러쉬에 이어 2006년은 <브루노 타우트에 대하여 After Bruno Taut>를 이야기한다. 사실 작가 이불의 작품 세계에 문외한인지라 이 작품에 대해서는 몇 줄의 작품 설명을 읽어 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크리스털, 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알루미늄, 구리, PVC, 강철 ..... 현장에서 내 눈으로는 하나하나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매체들을 동원하여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을까. 사이보그와 크러쉬는 오늘을 사는 우리와 나의 이야기가 되어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켰다면, 브루노 타우트 (처음에는 어느 공룡의 이름인 줄)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호기심을 일게 했다. 한 가닥 한 가닥 손으로 잇고 매만지며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을까. 이상과 현실, 좌절된 꿈, 인간 추구의 한계 등을 말하는 앞선 두 작품과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온전한 자연을 상징하는 알프스는 이상의 세계이며 인간의 꿈을 실체로 변환시키는 건축은 좌절과 불안, 인간의 한계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함을 완벽하게 추구했다고 내놓은 건축조차도 결국은 알아보기 힘든 요상한 모습에 불과하여 인간을 더욱 우울하게 할 뿐이다,라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 아닐까. 생소한 작품에다가 내 나름의 해석을 갖다 붙여보게 되는 것, 현대 미술의 난해함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한편, 브루노 타우트는 건축가 이름이다. 바이마르 시대 건축가였고 작가 이불은 그의 논문 <알프스 건축>에 수록된 드로잉과 글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유토피아적인 도시 모델을 구상하였던 근대 건축가들'을 모태로 해서 작가 이불은 2005년에 <나의 거대 서사 Mon Grand Recit> 연작을 시작했다. 작품은 그저 신기하게 보일 뿐 내가 알고 있는 대로의 알프스나 도시와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대신에 이불에 대하여 '20세기 문화와 사회, 역사의식 등에 관한 철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여러 장르의 작업을 선보이며 미술의 형식적, 서사적 확장을 이뤄왔다'라는 작품 설명을 되새겨둔다. 미술의 영역을 넓혀가는 그 멋짐에 감탄하면서 이런 확장의 현장에서 나도 영감을 받고 있다고 믿고 싶어졌다.

마지막 네 번째 작품 <스턴바우 No. 29 Sternbau No. 29>도 <나의 거대 서사> 연작의 일환이다. '스턴바우'란 독일어로 '별자리'라는 뜻으로 브루노 타우트가 제안한 건축 구조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건축가를 모르는 탓에 한글로 적힌 작품 설명도 정확하게 읽히지 않는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타우트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이상적인 건축을 도모했으며 작가 이불은 과하게 장식된 이 작품으로 타우트에게 '풍자적인 오마주 satirical homage를' 건네고 있다. 타우트가 인간의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에의 꿈을 자신의 건축에 담으려고 애썼지만 이불은 이의 한계와 운명적 좌절을 일러 주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화려할지 모르나 본질적으로는 요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고 뭉개어져 있는 나의 꿈.... 꿈 깨시라...

 



 

 

 

 

물속을 잠영하는 외계 생명체인가? 블루와 퍼플의 발광체가 몸의 중추를 이루며 오징어의 삼각형 머리를 닮은 투구를 쓴 채 몸의 상하에 수십 개의 삐죽한 지느러미를 퍼득이고 있는 이 작품은 최우람 Choe U-Ram의 <울티마 머드폭스 Ultimal Mudfox>이다. 물속을 느리게 헤엄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키네틱 조각 kinetic sculputures'이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조각이라는 점에서 알렉산더 콜더의 야리야리한 철사에 매달여 바람과 빛에 몸체를 맡긴 모빌 조각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다. 울티마 머드폭스는 판타지의 요소를 다분히 갖는다. 최우람은 작품 각각에 학명과 탄생 비화를 부여하는데 울티마는 '오래전 탈출한 나노머신이 도시 지하에 버려진 기계들 혹은 지상의 떠도는 정보와 조합을 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종'이라는 구체적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또한, '고고학적이며 과학적인 가상 이론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설계'하여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더했기 때문에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인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국내외 어디에서든 이처럼 획기적으로 독창적인 작품은 처음인 것 같다. 현대미술에서 비일비재한 상상의 표현 측면에서 최고봉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신비로운 창조물을 통해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걸까. 이불의 작품과 같은 전시실에 있다는 사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진대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의 과도한 욕망을 성찰'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울티마보다는 친숙한 모습이지만 우리 곁에 자리 잡고 있는 여러 종류의 인공지능 AI 기계가 바로 울티마와 같은 종족에 속하지 않을까. 기술 발전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이점을 누리고 있는 오늘날 삶의 이면에는 인간의 욕망에서 발화된 폭발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제2전시실은 단 다섯 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비교적 제한적 공간이다. 그러나, 조명에 의해 공간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바닥에 비친 작품은 천장에서 내려서 있는 실제 작품의 그림자이면서 또 다른 작품이 되어 있다. 각 작품은 벽면에서도 다른 각도에서 다르게 보인다. 또한, 각 작품은 혼자 돋보이면서 동시에 옆과 앞뒤에 있는 다른 작품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분위기로 다른 이야기를 울려 낸다. 더 나아가, 인간의 꿈은 고매한 이상을 향하고 있으나 현실에서 한계와 좌절에 부딪힌다라는 인류 공통의 주제를 담고 있으므로 관람자마다 눈 앞의 작품에 각자의 이야기를 투영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 작품은 적어도 관람자의 수만큼 증식한다. 전시실 한 칸에 자리한 실물 세계에서 여러 차원의 내적 세계들이 끝없이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몇몇 안되는 진정한 신비로운 순간이 여기서 펼쳐지고 있다.

 

이불과 최우람의 작품을 곱씹어 보건대 이들은 인간의 지나친 욕망과 과부하에 놓인 꿈을 부각시켜 놓았다. 희망을 갖고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기도 하다. 꿈이 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성취될 때에는 욕심으로 변질되어 자신을 쥐어뜯는가 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을 때에는 좌절을 가져오고 각자의 한계에 가두고 만다. 그렇다고 이 작품들은 우리에게 꿈은 허황된 것이니 아예 좇아가 볼 생각을 말라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과정이 어떻게 되든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일단 꿈을 좇아가는 것은 우리의 운명과도 같아 피할 수 없다. 좌절과 한계에 심히 흔들리고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꿈을 노래하는 것, 살아있는 인간이 하게 될 마땅한 바이다. 부서진 모습으로 슬픔 속에 외로이 서게 될지라도 꿈은 여전히 에너지를 발동시키며 우리를 빛나게 한다. 나의 생각은 이랬다. 이제껏 변변한 성취 없이 살아온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하지만 아직 꿈을 마음에 담고 있기에 암담하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사이보그를 한 번 더 올려다보고 뒤돌아선다 (하마터면 만져볼 뻔). '네 삶의 창窓은 여전히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열어두라'라고 이들 모두가 합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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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써 보는 미술 도록 ① (feat.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chapter three 제1전시실) | 아트다이어리(그림으로 쓰는 일기) 2021-09-1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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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 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렸던 현대 미술 전시 <chapter three>를 되짚어본다.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전시가 막을 내리고 나면 왠지 허전하다.

화려하게 들떠있던 무대가 막을 내리고 찬란했던 조명이 꺼져버린 후, 감동과 행복으로 들썩이던 마음속에 쓸쓸함이 밀려드는 것과 같다.

 

 

현대 미술을 조금씩 알아가는 일은 아마 평생 이루어지는 ing 진행형이다. 진행의 속도와 파장에는 변화가 있다. 이번 APAM의 전시는 그 진행에 순풍을 얹어주는 촉매제였다. 경계도 한계도 없는 현대 미술의 매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고 나의 정신에 새로운 바람이 일게 한 '전진 ADVANCE'이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정식으로 출간된 도록이 없어 매우 유감이었다. 전시는 한 번 다녀온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가끔 도록을 펼치는 순간마다 재생되고 재구성되며 즐거움과 의미가 증축된다. 하는 수없이 일종의 개인 도록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그날의 전시를 하나씩 되새겨보며 영원한 추억과 기억의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나름의 대단한 작업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사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지하철에서 본사로 진입하는 통로부터 남다르다. 공간에 빛을 입혀 아름다움에 대해 감각이 먼저 반응하도록 한다. 지하 1층에는 독특한 카페와 맛집이 즐비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사옥 1층으로 올라간 후, 왼편의 미술관 구역으로 이동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리 예약을 했고 현장에서 실물 티켓을 수령한다. 미술관 로비에서부터 예술이 펼쳐진다. 현장에서는 특별해 보여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작품인지는 몰랐다. 한국 작가 '양아치(예명이겠지?)'의 설치 작품이라 하는데 비행기 혹은 씽씽카를 닮은 탈것과 홀로 빠져나온 바퀴 하나이다. 동심의 세계로 마음을 열어주면서 이번 현대 미술 전시에서 마냥 아이처럼 순수한 즐거움을 발견해 보라는 메시지 같다. 난해하든 무척 낯설든 '이상해 보이는 것'에 대해 아이들은 호기심을 먼저 보이지 않던가. 새로운 것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가며 가리지 말고 위험할만치 바싹 다다가 보라는 조언으로 읽힌다.

 

 

양아치의 작품 너머 벽면에 집중한다. 이곳은 뮤지엄숍으로 전시 관련 굿즈, apam을 로고로 하는 여러 기프트 아이템과 서적을 판매한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숍의 벽면 역시 예술 오브제가 된다. '알 프리먼'의 작품 <부드러운 마이크>를 걸어 두었다. 노래와 미술은 유쾌함을 공통분모로 가진다. 언제든 노래를 흥얼거리며 스스로 즐거워할 수 있는 것처럼 미술도 보는 것만으로 삶에 흥을 더해줄 수 있다. 전시장을 찾지 못하더라도 책장에서 미술책을 하나 꺼내어 정독을 하든 그림만 쓱쓱 넘겨보든 알고 느끼는 바에 의해 지대한 즐거움을 느낀다.

 



 

 

 

 

미술관은 지하 1층에 7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이번 전시의 공식 명칭은 <APMA. CHAPTER THREE>이며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이다. 1960년대부터 2020년까지 제작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50여 점을 선정했다. 회화, 설치, 사진, 미디어, 공예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 사이를 누비느라 한 눈 팔 사이 없이 흥미로웠다. 1전시실에서 7전시실까지 매 전시실에 들어갈 때마다 궁금했고 기대되었다. 제1전시실은 회화와 공예의 조화이다. 우선, 전시실의 중앙에 하얀 삼각형 보드가 두 개 놓여 있고 그 위에 황토색과 브라운 계열의 단순 묵직한 목공예품들을 올려놓았다. '에른스트 갬펠 Ernst Gamperl'의 <목공예 오브제 Objects>이다. 작품의 색감과 제목은 단조로운 듯하지만, 작업 방식은 진정 현대적이며 흥미롭다. 갬펠은 바람에 쓰러지거나 물에 떠내려온 나무만을 사용, 습기를 머금고 있는 상태일 때 작업을 시작한다. 각 나무마다 마르면서 뒤틀리고 수축하며 고유의 모습을 드러낸다. 갬펠은 나무를 자르는 순간부터 나무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작품마다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갬펠의 목공예 작품이 차분한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네 개의 벽면에는 큼직한 회화 작품들이 각자 넘치는 개성을 뿜어내고 있다. 갬펠의 공간을 중심으로 각 벽면을 둘러보면 서로 다른 분위기로 활기를 느끼게 된다. 저마다 시선을 끌어들이고 있어 누구의 서사를 먼저 들어볼지 마음이 분주해진다.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제니퍼 바틀렛 Jennifer Bartlett의 <보라색 통로 Purple Corridor>이다. 사실 보라색이 눈에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오렌지 계열의 옐로가 돋보인다. 23개의 구운 에나멜과 강철판으로 된 판넬 위에 작가가 직접 작성한 글을 써 놓았는데 자세히 보면 이 글을 이루고 있는 글자들이 보라색이다. 내용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가상의 보라색 통로에 대한 이야기라 한다.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요소가 다분히 녹아 있으며 뉴욕 지하철 표지판에서 영감을 받았다. 현대미술이 이해불가한 경우도 있지만 이때 문제는 내게 있다.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새롭게 접하는 작품을 바라보다 보니 기존의 좁디좁은 지식, 상식 및 감각의 틀에 새로운 재료가 담기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이해불가의 경험도 쌓이다 보면 자연히 나의 지경이 넓어지면서 새롭고 낯선 작품들을 점점 더 많이 수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머뭇거리게 되더라도 꾸준히 현대미술 작품 앞에 서 보아야 한다.


 

 

 

켈티 페리스 Keltie Ferris의 <흐르는 강 River run>. 사진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하얗고 파란 작은 네모들은 두꺼운 입체감을 가진다. 고흐도 즐겨 사용했던 '임파스토 impasto'기법으로 물감을 두텁게 쌓아올린 것이다. 이 두터운 임파스토는 군데군데 납작해지며 뭔가 쓸고 지나간 흔적을 담고 있다. 정반대 기법이라 할 수 있는 와이프아웃 wipe-out으로 쓱쓱 문질러낸 부분들이다. 강약을 달리한 검은 윤곽선으로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선명해지는 것 같다. 제목처럼 흐르는 이미지가 넘실댄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강물을 상상하며 곡선으로 굽이굽이 치는 화폭으로부터 심신의 쇄신을 꾀해본다.


 

 

 

제목을 읽지 않았다면 이 역시 세차게 흘러내리는 폭포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눈 덮인 언덕 위로 썰매를 끌어올리다 Pulling Sledge up a Snowy Slope>라고 정확하게 화면을 해석해 놓은 제목이다. 빌리 차일디쉬 Billy Chilish...'어린애 같은'을 뜻하는 childish가 본명은 안지 않을까... 화가, 소설가, 시인, 음악가라는 화가의 다채로운 프로필에 한번 놀라고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를 오가는 작품 스펙트럼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이 그림에도 이중적인 이야기가 녹아 있다. 겨울날 아들과 썰매를 즐겼던 화가 개인적 경험을 그렸고 동시에 자신에게 깊은 영감을 준 소설가 로베르트 발저의 눈 내린 언덕을 오르는 사진을 소재로 삼았다.


 

 

 

 

사람이 등장하는 실제적인 풍경과 전혀 딴판인 만화 같은 작품이 생경한 투 샷을 이룬다. 무엇이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을까. 창문 없는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갑갑한 기분을 사라지게 하는 이 유쾌함의 정체는 스티븐 해링턴 Steven Harringotn의 <우리 주위에서 All Around Us>이다. 일 년 반이 넘도록 우리 주위에는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와 무기력이 판을 치고 있는데 이 그림에는 야자수와 강아지가 한데 얽혀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작가가 애정하는 강아지로 이름은 '멜로 MELLO'이며 캘리포니아의 밝은 환경을 투사하는 그림의 주인공이다. 눈에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의인화된 강아지와 야자수들이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그 이면에는 '삶의 균형, 자연, 잠재의식' 등에 대한 사색이 녹아 있다고 한다. 해링턴 작품이 처음인 내 눈에는 이런 심오한 의미가 포착되지 않는다. '음양 상징'도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분간이 안된다. 잠시나마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태양 아래 활기를 띠고 있는 그 어느 동네를 상상하며 이국에 대한 설렘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그림이다. 해링턴의 작품이 주는 발랄함은 바로 옆에 전시된 마이클 베빌라쿠아 Michael Bevilacqua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의 어릴 적 기억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만화 캐릭터 뽀빠이와 그의 적수 부르터스가 유쾌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제목이 <흥망성쇠 Rise and Fall>이어서 이 산뜻한 컬러감에 코믹한 이야기를 그려놓은 그림에도 뭔가 비장한 뜻이 숨겨져 있으려나 심각해지려 한다. 하지만 괜히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미있게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작가는 다양한 문화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기법과 장르를 융합하여 '다중적인 화면을 창조'한다고 한다. 만신창이가 된 부르터스는 의기양양한 승가를 부르는 뽀빠이의 발치에 깔려 있다. 항상 승자는 뽀빠이가 아니던가. 오늘은 뽀빠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대신 'rise and fall'라는 경구가 삼단으로 화려하게 적혀있다. 어차피 인생은 흥하다가도 주저앉아 버리고 내리막길인가 싶으면 날아오르기도 하고.... 그러니까 일희일비하지 말고 각자의 방식대로 가치를 추구하며 성실하게 살아보자.


 


 

 

 

 

 

 

제1전시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스털링 루비 Sterling Ruby'의 <창문, 솜사탕 WIDW.FAIRY FLOSS>이다. 캔버스의 규모도 크고 무엇보다 핑크, 화이트, 그린, 블루, 옐로 등 예쁜 색깔을 다 모아 놓았다. 두 개의 직사각형의 블랙 프레임을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이는 화면은 제목대로 '창문'을 연상케한다. 그렇다면 캔버스 위의 색들은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될 터인데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솜사탕이라는 뜻의 FAIRY FLOSS는 '겉보기만 그럴듯한 것'이라는 이차적인 뜻도 가지고 있다. 화려한 색과는 달리 이를 표현하는 재료들은 골판지, 표백한 천, 고무밴드 및 작업실 폐기물 등이다. 이 깔끔함이 결여돼 보이는 재료들과 두껍게 발라놓은 물감으로 표현한 화폭은 무엇을 그렸는지 쉽게 알아볼 수 없다. 작가가 의도 한 걸까?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부정한 결합 illicit mergers'으로 '상반되는 형태와 개념들을 캔버스 위에 충돌'시켜 놓은 것이다. 창문 밖에서 표류하는 사회적 갈등이나 부조리한 일상의 풍경이기도 하며, 내용에 앞서 '재료와 기법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을 표상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란, 획기적으로 다양한 매체로 범상하게 희망적인 내용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한 벽면에 나란히 걸어둔 그림들은 서로 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창문. 솜사탕> 옆에 아드리안 게니 Adrian Ghenie의 <빈민가 Favela>에서 일맥상통할 그 무엇을 찾아본다. 어느 모로 보나 유쾌하지는 않을 '빈민가'를 그렸지만 특별히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흥미롭게도 '앙리 루소의 풍경화에서 영감을 받은 연작 중 하나'라고 한다. '도시 파리와 정글의 이질적인 풍경을 병치'한 가운데 옐로가 부각되어 가볍고 따뜻한 느낌이 난다. '붓 대신 팔레트 나이프와 스텐실 기법'으로 과감한 붓질을 펼쳐 그림에는 활발하고 시원시원한 기운이 가득하다. 왜 이런 장면에다 '빈민가'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표현하는 내용면에서나 제목에서나 다소 무거움이 감도는 이 분위기는 '래리 피트먼 Lari Pitman'의 그림에서 좀 더 노골적이 된다. 그림의 제목이 참 길다: 덧대어진 자수 견본 (#2) 서구 지배권 말기의 일상생활 묘사 Needlepoint Sampler with Patches (#2) Depicting Daily Life of a Late Western Impaerium. '셀 비닐과 에나멜 스프레이'를 사용한 작품이며 화려한 색으로 '표면적으로는 경쾌해' 보인다. 그러나, 하얗게 그어놓은 X와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붉게 상처 입은 인간의 형상을 발견하는 즉시, 음울한 메시지를 직감하게 된다. '죽음, 권력, 사회적 불평등과 같이 무게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 '자수'가 덧대어졌다고 한 이유는 'X'자의 재료가 바로 자수용 바늘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예술로 전해진 역사의 유산을 통해 현재와 먼 과거를 가로지르는 민족성에 대한 서사'를 담았다고 하는데.... 이 화가를 오늘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다. 다만, 주관적으로 선택한 예술적인 상징과 장식을 통해 개인을 넘어선 역사와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야말로 예술가의 특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이번 현대 미술 소장품 전시는 제1전시실부터 기대 이상이다. 완벽한 냉방과 여유있는 공간이 보장되어 있어 바깥의 땡볕과 완전히 고립된 '쉴 休'의 기회를 제공한다. 적당하게 밝은 조명과 답답하지 않게 트인 천장 덕택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갑갑하지 않다. 천장의 세심한 구조도 관람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저 하얗게 벽지를 발라 놓은 게 아니고 세심하게 배치된 조명등과 어울려 세련된 분위기를 더해준다. 반투명하고 매끈한 바닥도 전시의 일부이다. 조명을 받은 작품이 마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바닥에 은은하게 부각되어 관람의 진폭이 더 커진다. 시작이 좋으므로 이 전시는 보나 마나 대성공이다. 나만의 미술사에 하나의 큰 걸음을 더해주는, 현대 미술의 세계로 더 오묘하게 빠져들게 하는 이정표적인 사건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PS) '찍힌' 사진 한 장으로 집에 와서야 알게 된 바인데, 제1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오른 편 벽면에 그림 하나가 더 있었다. 왼편으로 움직여가며 관람을 했기 때문에 나의 동선에서 누락된 것 같다. 어떤 작가의 무슨 그림일까. 단색화처럼 보이는데. 회색빛이 감도는 편안한 푸른색의 화폭을 사진만으로라도 고이 기억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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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유 광장에서 한 걸음 더 | N번째 파리를 향하여 2021-09-1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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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번째 파리는 부디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2년 동안 파리를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아예 달 단위로 체류 SEJOUR 할 수 있을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이번에는 파리의 공기 속을 나다니는 시간을 대폭 늘리겠다. 늘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실내의 명소가 우선순위이다 보니 공원이나 센 강변을 여유 있게 걸어보는 시간이 부족했다.

 

 

 

요즘 파리에 대한 갈증을 푸는 방법 중 하나는 파리에 관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다. 다행히도 멋진 책들을 여러 권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파리, 에스파스 PARIS, ESPACE 』가 가장 나의 취향에 맞다. 지나치게 개인적 감상을 담아 나를 피곤하게 하는 책도 아니고, 어디서 베낀 것처럼 파리의 역사를 줄줄 적어놓은 지루한 책도 아니다. 건축 디자이너답게 치밀하고 세련된 시선으로 파리의 다양한 공간들을 찾아다니며 인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수준 높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찍은 사진들로 장소마다의 서사가 더 풍요로워지면서 나의 파리 열병에 거센 불길을 지펴 놓는다.

파리, 에스파스 PARIS, ESPACE

김면 저
허밍버드 | 2014년 06월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본 장소가 나올 때마다 울컥하게 하는 진한 감동이 일렁인다. 다시 갈 수 있을까라는 조급함에 마음이 아리기도 하지만, 진즉에 가보지 않은 장소에 대해 열의를 불태우느라 마음이 부산해진다. 오늘은 '엄숙한 기억의 조각'이라는 부제하에 바스티유 광장을 다룬 부분을 읽고 있다. 광장 중심에 우뚝 서 있는 '7월 혁명 기념비 Colone de Juillet'를 시작으로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바스티유 감옥에 대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처럼 지은 군사 요새로 출발했다가 루이 13세 때부터 정치범을 수감하는 장소로 사용되었고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시민들이 화약고를 찾아 이곳을 습격한 뒤 봉건 제도의 잔재로 여겨 허물어 버렸다. 건물의 잔해로 남은 돌을 사용해서 콩코르드 광장 옆에 '콩코르드 다리 Pont de la Concorde'를 만들었다는 얘기, 1899년 메트로 1호선 공사 도중 바스티유 건물을 구성하던 8개의 탑 중 일부가 발견되었고 이를 바스티유 광장 근처의 '앙리갈리 공원 Square Henri-Galli'로 옮겼다는 얘기... 파리가 파리스러운 데에는 이처럼 과거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선명하게 살아 있기 때문 아닐까.

 

 

바스티유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의 추억의 문이 활짝 열린다. 바스티유는 나의 2018년 9월 파리 여행 중 한 '점'이었다. 마레 지구 순례를 마치고 센 강 좌안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잠시 거쳐갔던 곳이다. 마레 지구 일정의 끝점이었던 바스티유 광장을 회상하는 사이 첫 시작점부터 그날 하루가 되살아난다.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나의 여정을 다시 밟아본다. 과거에 내가 걸었던 여정에 『파리, 에스파스』에서 열어 보이는 바스티유 광장과 그 너머의 여정을 덧대어 놓는다. 이는 나의 N 번째 파리를 위한 미래의 여정이 된다.

 

 

마레 지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은 퐁피두 센터와 피카소 미술관이었다. 2018년 9월 중순 퐁피두 센터를 찾아 말로만 듣던 그 획기적인 건물의 모양새를 내 눈으로 보았고, 4층과 5층에 마련된 전시를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아쉽게도 6층의 레스토랑 <조르주 Georges>가 임시 휴업 중이라서 괜찮은 식사를 하면서 파리 경관을 감상하겠다는 계획은 실현하지 못했다. 또한, 예상보다 시간이 길어져 '브랑쿠시의 작업실'도 방문하지 못했다.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워도 현실에서는 먹히지 않을 수 있음을 또다시 실감했다. 대신, 야외의 '스트라빈스키 분수 광장'에서 쾌활한 분위기를 즐기며 분주한 걸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피카소 미술관은 2018년 9월과 2019년 4월에 두 차례 찾아갔다. 2018년에는 전시 준비 관계로 1층과 2층이 폐쇄되어 3층과 4층, 즉 전시관의 절반만 다닐 수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었더라도 아마 갈 수밖에 없었을 텐데 비록 파블로 피카소의 팬은 아니더라도 옛 저택을 개조한 미술관 자체가 궁금하고 어쨌든 시대를 넘어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피카소의 역작을 몇 점이라도 직접 보려 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희한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행에서 하나의 불운을 당하면 이 불운을 상쇄하고도 남을 우연과 행운을 맞게 된다. 피카소 미술관은 비록 반 토막 밖에 보지 못했지만, 어느 책에서도 얘기해 주지 않았던 미술관 내 카페 'Sur le Toit'를 찾게 되었다. 미술관 내 뮤지엄숍이 있는 쪽의 계단을 올라가면 ( 로비에서 전시관 입구의 반대편에 위치하며 두 장소는 공간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맨 위층에 있는 카페에 도달한다. 간단한 디저트류와 커피, 차를 즐길 수 있다. 천장에 대들보처럼 생긴 목재들이 멋스럽게 덧대어져 있는 실내 외에 미술관의 야외 옥상을 테라스로 사용하고 있다. 한적한 동네의 옛 저택의 옥상, 하얀 파라솔과 반투명으로 비쳐드는 햇살... 예술은 전시관 밖으로도 확장되고 있었다. 2019년에는 미술관 전관을 다닐 수 있었다. 1층과 2층에서 피카소와 '알렉산더 칼더'의 콜라보 전시가 열리고 있어 내 생애 처음으로 모빌의 조각가 칼더의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은 피카소와 콜더 간에 합점을 찾아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미술계의 혁신가였던 피카소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현재의 피카소 미술관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6개월 만에 3층과 4층의 전시도 사뭇 달라져 있었다. 여러 개의 주제에 따라 피카소의 작품들과 소장하고 있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배치했고 6개월 전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모셔두기만 한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늘 변화를 모색한다는 어려운 일을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한편, 미술관 내 야외 정원도 찾을 수 있었다. 내 키의 여러 배가 되는 칼더의 빨간 조각상을 바라보며 나무 그늘에 놓인 초록색 의자에 앉기도 하고 선선한 바람이 이는 풀과 나무 사이를 사뿐 걸어보기도 했다. 바깥의 일상적인 삶과 잠시 단절되어 예술과 여행을 힘껏 체험하는 '영적인' 순간이었다.

 

피카소 미술관을 나와 '코냐크 -제이 뮤지엄 Cognacq-Jay Museum'을 찾아 또다시 옛 시대를 느껴보았다. 피카소 미술관처럼 마레 지구에는 옛 귀족의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한 장소들이 많다.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과 장식품도 휘황찬란하고 건축물 자체도 하나의 예술품이라 다녀보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카르나발레 박물관'도 그중 하나인데 '코냐크 -제이 뮤지엄'보다 규모가 더 크다. 무엇보다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서 꼭 들르고 싶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했던 침대를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 해서 기대가 컸다. 그러나, 2018년에는 보수공사 중이라 길목에서 구경만 했고 2019년에는 피카소 미술관에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직행하는 바람에 들를 여유를 내지 못했다. 2018년은 파리에서 8일을 머물러서 시간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었기에 마레 지구도 작심하고 돌아볼 수 있었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은 '보쥬 광장 Place des Vosges'에서 위로를 받았다. 아이스크림 가게 아모리노 Amorino에서 젤라또를 사들고 보쥬 광장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파리에서 가장 오랜 된 광장으로 빨간 벽돌과 석재로 지은 4층 높이의 건물들이 사방에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다. 정사각형의 반듯한 모양이며 앙리 4세가 단행된 도시 계획의 산물이다. 광장 중앙에는 앙리 4세가 아닌 그의 아들 루이 13세의 동상이 있다. 지금은 햇살을 받으러 모든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오로지 귀족들만의 휴식처이자 사교 및 유희 장소였다. 지금은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건물들이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또는 호텔로 사용되는 곳이 많지만 당시에는 왕, 왕후, 왕족 자녀들을 위시한 특권층의 거처였다. 젤라또를 먹으며 사람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소외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무 그늘 아래로 햇볕을 피해 앉은 사람은 우리 밖에 없다. 대부분 젊은 층이며 남녀 구분 없이 잔디에 앉아 있거나 벌렁 누워 잠을 자거나 그들만의 수다에 열중해 있다. 시원하게 웃통을 벗어버린 남자 청년들도 있는데 자꾸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아 옷을 갖춰 입고 있는 우리가 되레 민망해진다. 여유로운 듯 젤라또를 먹고는 있지만 한낮에 옷을 차려 입고 그늘에 꽁꽁 숨어 있으니 누가 봐도 어색한 여행자였을 터이다.




 

 

 

한편, 보쥬 광장의 한 모퉁이에서는 19세기로 거슬러 가볼 수 있다. 『레미제라블』과 『노트르담 드 파리 (또는 노트르담의 꼽추)』를 집필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32년부터 1848년까지 거주했던 집이 '빅토르 위고의 집 La Maison de Victor Hugo'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국립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그의 일생을 망명 전, 망명 당시, 망명 후로 나누어 보여 주고 있다. 위대한 고전을 남겼고 노트르담 대성당의 재건에 앞장섰고 에투알 광장의 개선문에서 성대한 장례를 치렀으며 팡테옹에 묻혀 있다... 평소 이렇게만 알고 있던 빅토르 위고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위고는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정도로 역량 있는 정치가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가 재정을 선포하자 이에 맞서다가 벨기에로 추방되었고 여기서도 계속 비판을 일삼다 영국과 프랑스 상이에 있는 '건지 섬 Guernsey Island'로 다시 추방당했다. 19년간 망명 생활을 이어가며 『레미제라블』을 집필했다. 또한, 위고는 미술에도 재능이 있어 드로잉과 조각 작품을 남겼고 건지 섬에서 알게 된 어떤 여인과 함께 다양한 가구와 도자기 등의 수집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위고의 생애는 망명 생활을 축으로 하나의 박물관을 아룰만큼 방대하고 깊이가 있었다. 세 개의 시기에 따라 7개의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고 입구에서부터 방방마다 호화로운 예술품과 수집품이 가득하다. 입구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도자기들을 비롯하여 곳곳에 놓인 의자와 책상 등의 가구를 보면 결코 짧지 않은 망명 생활에도 위고는 상당한 물질적 정신적 부를 누렸던 것 같다. 마지막 전시실인 7번 방이 가장 인상적이다. 물론 위고도 인생의 마지막을 맞았고 그 마지막 순간들을 말해주는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숨이 멎어가는 위고를 그린 그림, 그의 죽음에 대한 그 당시 언론의 묘사, 그리고 위고의 손자 손녀들의 증언에 토대를 두고 위고의 마지막 순간을 완벽하게 재구성 reconstruction 해 놓았다. 팡테옹에서도 빅토르 위고의 묘를 찾았다. 이 전시실의 모습을 떠올리니 비록 위고를 잘 알지 못하고 그의 작품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지만 위인을 마주하는 경외심이 차올랐다.

 








 


 

 

 

 

보쥬 광장을 정사각형으로 생각하면 '빅토르 위고의 집'은 한 면의 끝점에 해당한다. 같은 면에서 이곳과 정반대되는 끝점에도 옛 저택이 자리한다. '오텔 쉴리'라 불리는 이곳은 앙리 4세 정부의 재정부 장관을 지냈던 쉴리 백작의 거처였고 현재는 '국립 문화재 본부'로 국가가 사용 및 관리하고 있다. 마레 지구의 다른 저택들과는 달리 일반인에게 공개된 곳이 제한적이다. 이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고 사전 예약을 통해 가이드가 동반한 관람만 가능하다. 혹자는 1층의 도서관이 개방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1층에 있는 서점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수 년을 파리에서 살면서 속속들이 알아볼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누군가에서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도중에 와전되고 다른 재료와 뒤섞여 사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 한정된 시간을 다녀야 하는 여행자로서 쉴리 저택은 실내를 들어가 볼 생각은 할 수 없었고 정원과 서점이라도 보고자 달려간 것이었다. 실제로 철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어 있어 마치 저택으로 초대받은 기분이 들었다. 높다란 벽을 메우고 있는 담쟁이와 풍성하게 자란 나무에게서 묵직한 세월의 켜가 느껴졌다. 서점은 생각보다 넓지만 뭐하나 딱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는데 뒤통수로 날아오는 그 어떤 시선이 느껴진다. 오후 5시도 채 안 되었지만 점원이 문을 닫을 생각이라는 것을 대번 알 수 있었다. 느릿 돌아보며 책 한 권을 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아쉽다는 마음을 담아 '문을 닫으실 건가 봐요?'라고 먼저 말문을 열었고, 사든 안 사든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얼른 나가 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응답을 들었다. 참 좋은 직장이라는 부러움. 인적이 드문 정원에서 얼마 동안이라도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늘이 드리워진 현관 앞 테라스의 난간에 걸터앉아 이 우아하고 고즈넉한 공간을 메우고 있는 파란 공기를 들이켜 본다.





 

 

 

쉴리 저택의 뜰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다시 본격적인 여행 가도에 오른다. 그런데 배가 고프다. 아무리 많이 보고 싶고 많은 곳을 다니려는 열정을 지녔어도 먹는 일은 생략할 수는 없다. 호텔 조식으로 푸짐하게 출발했지만 늦은 오후가 되도록 점심을 먹지 못하고 있다. 사실 여행 전 마레 지구의 식당을 여러 곳 찾아보았는데 바로 여기라고 할만한 데가 없었다. 결국은 배고프면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기로 해 두었는데 이 모르는 동네에서 '아무 데나'는 너무 어렵다. 보쥬 광장에서 다음 행선지인 바스티유 광장으로 향하는 길로 나왔지만 책에서는 그 많던 식당들이 실제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정말 '아무 데나'에서 멈추었다. 잘 차려 놓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동네 빵집으로 자리를 지켜온 듯한 느낌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섰다. 이게 웬일인가! 우리 눈앞에 초밥이 있고 만두가 있다. 각종 빵과 과일도 팔면서 일본식 메뉴도 갖춘 곳, 나중에 보니 안주인으로 보이는 일본 여성이 주방과 홀을 왔다 갔다 한다. 군만두는 전자레인지에 데워주고 간장까지 건네준다. 나무젓가락까지 챙겨 자리에 앉으니 여기가 파리가 맞는지 헷갈리면서 낯익은 메뉴에 긴장이 풀린다. 연어 초밥과 김초밥은 냉장 진열장에 넣어 둔 상태라 신선한 감칠맛은 없고 밥알도 너무 질어 물컹하다. 만두도 군만두인지 찐만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꾸덕꾸덕하다. 그래도 젓가락으로 간장에 찍어 먹는다는 사실에 흥분이 되기까지 하면서 굉장히 즐겁게 먹었다. 당근과 비슷한 색을 내는 멜론의 단맛은 이 애매한 초밥과 만두의 부족한 맛을 보충해 준다. 도넛도 기분 좋은 단맛을 선사해 주어 이 아무 데서나 먹는 조촐한 늦은 점심을 행복한 순간으로 승격시켜준다. 다시 파리에 가면 이 가게가 안녕한지 찾아볼 생각이다. 나 혼자만 아는 사람의 안부를 일방적으로 궁금해하는 것과 같다. 이곳 '윌리네 빵집Willy's boulangerie'가 이 자리에서 여전히 초밥과 만두를 내놓고 있다면 안도와 그 어떤 고마움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말끔하게 다 먹어 치우고 가게를 나서는 순간, 약간은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내가 서 있는 곳의 바로 맞은편에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상호가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 '랑주L'Anges 20'.... 여러 여행 책자에서 강추하던 식당이고 나도 점심을 먹어볼 만한 장소로 별표를 해둔 곳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생각도 나지 않았고 어차피 시간도 애매해서 이곳의 요리는 먹을 형편도 아니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PS. 내친김에 구글 지도로 이 빵집을 찾아보니 안타깝게도 상호도 바뀌고 매장 내부의 분위기도 달라져 있다. 비싸지만 고급스럽고 품질이 좋다는 리뷰들이 여러 건 올라와 있는 걸로 보아 정통 프랑스 브랑제리인 듯하다. 매장 내 사진 어디에서도 초밥과 군만두는 찾을 수 없고 점원도 깔끔한 유니폼 차림의 젊은이들 일색이다. 그 소탈해 보이던 프랑스인 남자 주인과 일본인 여성은 어디로 간 걸까...)



 

 

 

다음으로는 '레스토랑 랑주 20' 앞을 지나 '보마흐쉐 대로 Bd. Beaumarchais'로 나온다. 오른쪽으로 쭉쭉 걸어내려가면 '바스티유 광장'에 닿는다.보쥬 광장에서 다음 목적지인 퐁네프 Pont Neuf로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스티유 역'에서 메트로 1호선을 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유명한 바스티유 광장을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광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오페라 가르니에로 가는 거리나 샹젤리제 거리 보다 한산했다. '7월 혁명 기념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기념비의 꼭대기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자유의 여신상'(19세기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알렉상드르 뒤몽의 작품이다)도 눈여겨본다.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면 오른손에 횃불, 왼손에는 끊어진 사슬을 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광장 한 편에 자리한 '오페라 바스티유' 앞에도 가 보았다.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프로제 GRAND PROJECT'의 일환으로 1989년에 건립되었고 지휘자 정명훈이 음악 감독을 역임했던 곳이다. 유리와 알루미늄, 화강암을 이용하여 모던하게 지어 놓은 이 건물에 대해 호불호가 갈린다고 한다. 바로 앞에서 보면 일단 신식 건물이라 쾌적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든 혼자 있든 계단에 앉아 햇살을 쬐는 파리지앵들의 모습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바스티유 역 부근에서 바라보면 기념비와 오페라가 시대적 차이만큼 분위기도 엇박자가 난다. 차갑고 인공적인 모습의 오페라 건물은 역사의 흔적을 안고 있는 광장 전체의 수수한 분위기와 맞지 않아 보인다. 여하튼, 기념비와 오페라 건물 주변에 잠시 머물며 '할 일'을 마친 양 서둘러 퐁네프로 발길을 돌린다. 바스티유 역에 내려와서 한산한 모습에 기회를 얻어 사진도 찍어 둔다.




 

 

 

그러나, 『파리, 에스파스』를 읽으면서 후회와 아쉬움에 탄식하게 된다. 바스티유 광장에서 좀 더 머물러 있어야 했고 부근으로 몇 걸음 더 옮겨갔어야 했다. 옛 바스티유 감옥의 유물을 찾으러 '앙리갈리 공원'에 가지는 않을지라도 리옹 거리를 내려와 '도메닐 거리 Avenue Daumesnil'로 살짝 꺾은 후 계단을 찾아 올라가야 한다. 지상 7미터 높이에서 '베르트 산책로 Coulee Verte ( 또는 '프롬나드 플랑테 Promenade Plantee')'가 펼쳐진다. 원래 바스티유와 동쪽 외곽의 뱅센느VINCENNES를 연결하는 기찻길이었는데 (현재 바스티유 오페라가 있던 자리가 종착역이었다) 1969년에 기차 운행이 중단되자 한동안 버려져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시작된 도시 재생 사업으로 녹지 공간으로 변모, 4.5 킬로미터에 달하는 산책로로 재탄생했다. 선로에 식물을 심어 놓은 이 공중 산책로 자체도 고즈넉한 멋이 있고 파리 12구의 멋진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다리 아래도 재개발 사업을 벌여 선로를 받치던 아치형 기둥 사이사이에 예술가들의 공방과 상점이 들어서게 했다. 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대표적 영화 중 하나인 <비포 선셋>에도 이 산책로가 등장한다. 9년 만에 두 남녀 주인공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재회하고 파리 곳곳을 누비는데 철제 벤치에 앉아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던 곳이 바로 이 산책로이다. 이곳을 걸어보았던 이들의 이야기만으로도 매력적인데 나는 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을까? 미술관과 박물관에 일정을 전폭으로 할애하다 보니 야외에서 파리를 느껴보는 사치는 후일로 계속 미루었던 것 아닐까. 이제 N 번째 파리 여행에서는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바스티유 광장에서 이곳으로 한 걸음 더 옮겨볼 것이다.

『파리, 에스파스』에서 보여주는 '베르트 산책로',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파리, 에스파스』의 바스티유 광장에 관한 이야기를 읽노라니 '베르트 산책로' 말고도 '아르스널 항구 Port de l'Arsenal '역시 찾고 싶어진다. 내가 파리 여행에 참고로 삼았던 가이드북 『설렘 두 배 파리』의 지도를 보아도 바스티유 광장에서 아르스널 항구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파리, 에스파스』에서도 저자가 바스티유 광장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아르스날 항구를 서성이는 갈매기들과 점심시간을 함께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광장과 항구는 가깝다는 말인데 왜 내 눈에는 항구 갈매기도 항구도 보이지 않았고 세느 강에서부터 항구로 불어오는 시원한 공기도 느끼지 못했을까. 강바람이라면 퐁뇌프나 예술의 다리에서 맞는 세느 강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고, 운하라면 레퓌블리크 역에서 내려 생 마르탱 운하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 마르탱 운하도 찾을 시간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이곳 아르스널 항구는 아예 고려 대상도 되지 않았던 게다. 그러나, N 번째 파리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긴 시간이 될 것이므로 생 마르탱 운하도 아르스널 항구도 모두 찾으면 된다. 온종일을 마레 지구에 할애하게 될 터이다. 아침 일찍 퐁피두 센터나 피카소 미술관에서 일정을 시작하고 카르나발레 미술관을 찾고 (점심은 피카소 미술관과 가까운 메르시 Merci로 정해 놓고) 보쥬 광장의 아케이드에서 커피 구어멍을 먹으며 한참을 쉬다가 바스티유 광장을 거쳐 베르트 산책로로 올라간다( 혹시라도 시간상 여유가 있으면 보쥬 광장에서 바로 생 마르탱 운하로 이동해도 된다). 어느 쪽이든 베르트 산책로는 아마 해지기 직전쯤 찾게 되지 않을까. 이날의 마지막 여정은 아르스널 항구로 하겠다. 두세 군데 미리 점찍어 둔 레스토랑 중 직관적으로 마음에 드는 곳을 들어간다 (아니면 전날 미리 정해 예약을 해둘 수도 있겠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항구가 잘 보이는 창가에 자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는 와인 페어링이 가능한 메뉴로 선택해서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모든 여유를 대동할 것이다. 저녁으로 접어들며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하는 파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다시 찾은 파리, 다시 바라보는 세느강....N 번째의 만남을 자축하며 이 땅에서의 삶을 향해 무한한 찬사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파리, 에스파스』에서처럼 바스티유 광장과 아르스날 항구에서 여유를 가져보자


바스티유 광장에서 한 걸음 더, 프롬나드 프랑테와 아르스널 항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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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저 편 (feat.헬싱키의 수오멘린나) | 어바웃 헬싱키 2021-09-0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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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유럽'이 가능해지자마자 찾아야 할 도시 중에는 헬싱키도 우선순위에 있다.

이번에도 마지막 목적지로 삼을 터이고, 이번에는 좀 더 알차게 준비해서 찾을 것이다.

헬싱키에서는 자연을 벗 삼아 충분히 쉬겠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도시에 비해 준비가 허술했었다. 이런 불성실의 대가로 우왕좌왕하는 일이 많았고 엉뚱한 곳을 가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아는 게 별로 없으니 그만큼 놓친 것도 많아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다.

 

 

 

나의 박약했던 의지 말고도 핑곗거리를 보태자면 헬싱키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안내서도 거의 없고 인문 교양서적으로도 여행 준비에 도움 될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헬싱키를 다니면서 알게 된 바, 헬싱키의 명소마다 기대 이상의 안내 자료를 비치해 두고 있다. 한국에서 자료를 못 찾아 허둥대던 시간에 명소마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라면 더 값진 여행이 되었을 텐데...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워 목이 멘다. 그중에서도 수오멘린나 Suomenlinna의 팸플릿은 실로 경탄스러웠다. 무료로 집어오기가 미안할 정도였는데 디자인과 내용면에서 완벽했다. 안타깝게도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제대로 읽는다. 받은 자리에서 꼼꼼하게 읽고, 읽어 알게 된 대로 다니려 했다면 아마 그날에는 수오멘린나에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수오멘린나에서 들고 들어온 이 안내서는 장차 또 다른 헬싱키 여행을 '명하는' 증서이다. 첫 여행에서 수오멘린나에 대해 몰라서 놓친 게 많았다고 아쉬워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것도 몰랐고 저것도 못했으니 다시 가서 원 없이 한없이 짚고 다녀보아야 할 것 아닌가!







 

 

 

 

수오멘린나 Suomenlinna는 도시의 '바로 저 편에' 자리한 섬이다.

헬싱키의 명소인 야외 시장 '카우파토리 Kauppatori'에서 페리를 타면 20분 이내에 도달 가능하다. 페리는 HSL FERRY이며, 교통 카드 기능을 포함하는 헬싱키 카드를 구매했다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카우파토리에는 HSL 말고도 JT-LINE이라고 적힌 키오스크도 있는데 이는 WATERBUS이며 교통카드가 포함된 헬싱키 카드로도 무료 이용이 안 된다. HSL과 JT-LINE은 내리는 곳도 다르다. HSL은 수오멘린나의 입구에 해당하는 'Main quay'에 내리고 수오멘린나에서 돌아올 때도 여기서 탑승한다. JT-LINE은 섬의 맨 끝에 해당하는 '킹스 게이트 키King's gate quay'에 내리고 출발한다. 나는 교통카드 기능이 포함된 72시간짜리 헬싱키 카드를 갖고 있으므로 HSL을 이용했는데 섬의 입구에 내려 원하는 대로 다니다가 다시 입구로 돌아오면 되니까 JT-LINE보다 더 용이해 보이기도 했다.

 

 

 

상상만으로도 설레지 않은가. 시끌벅적한 도시의 핫스폿에서 '바다 건너' 잠시만 이동하면 천혜의 자연이 펼쳐진다니 말이다. 수오멘린나는 도시와 가까워 도시의 정취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그런 일상적인 섬이 아니다. 도시와 쉽게 오고 갈 수 있으면서 도시와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한 세계이다. 섬의 시작은 역사적 암울함을 배경으로 한다. 핀란드가 스웨덴의 통치를 받고 있던 18세기 중엽에 스웨덴은 이곳을 요새로 구축했다. 수오멘린나에는 '바다의 요새 sea fortress'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그렇다고 험악한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교훈적 장소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별도로 마련된 역사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에는 전쟁과 피지배의 어두운 역사를 알아차릴 수 없다. 이곳을 찾은 사람은 오로지 자연을 본다. 자연이 선사하는, 지연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평온과 평화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는 곳이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만큼 섬 전체가 하나의 성지이다.

 

 

 

헬싱키의 명소 중에서 '평화스러워 보이는' 수오멘린나에 유독 특별한 관심 또는 욕심을 가졌던 것 같다. 여행책자에서 수오멘린나 부분을 찢어갔고 수오멘린나에 들어가는 페리에서도 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여러 번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이동 경로를 재차 연습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재하는 수오멘린나에 입성하는 순간, 이 모든 계획은 내 머리에서 사라졌다. 평소 자연에 애착이 강한 편이 아닌데도 '이것이 자연이구나!'라는 놀람과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일명 '블루 루트'를 알려주는 파란 표식을 따라 걸으면 수오멘린나의 핵심적인 곳을 둘러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자연의 한복판에서 몸과 맘이 완전히 풀어지고 나니 방향을 잡을 의미가 없어졌다. 그저 눈이 닿는 곳으로 발이 제 알아서 가는 것이다. 어디를 향하든 푸르르고 부드럽고 고요한 바다요 나무들이다.

 

 

 

카우파토리의 선착장에서 HSL을 타고 발트해를 건넌다. 페리에서 바라보는 헬싱키는 참 수수하면서 차분한다. 대표적 스파 '알라스 시 풀 Allas Sea Pool'과 '스카이휠 헬싱키 Skywheel Helsinki'가 오른 편으로 보인다. 거기에서 더 오른 편으로 우스펜스키 사원의 독특한 민트빛 지붕도 보인다. 정중앙에는 헬싱키 대성당의 하얀 몸체도 보인다. 바다에 바로 잇대어 있는 이런 도시에서 살고 싶다...



 

 

 

코발트블루의 발트해 위를 둥둥 유영하여 수오멘린나에 도착한다. Main Gate를 통과하면서 뒤를 돌아본다. 바다를 건너 또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이다. 자연이 자연을 품었고 자연 위에 자연이 얹혀있는 진정 호화로운 세상이다.


 

 

 

방향을 읽을 필요가 없어진다. 여행에서 항상 중요시 여겼던 방향과 목적지... 여기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눈으로 이 모든 것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눈에 투영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의 깊은 곳으로 굳은 심상을 심어주면 좋겠다. 이 여행을 마치고 나서 언제 어디에서든지 그리워할 수 있는 영혼의 장소가 되어주면 좋겠다. 시골 냇가를 본 적이 있었던가? 여기는 냇물도 아니고 호수도 아니다. 북유럽 일대를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발트해의 바닷물이 바로 내 눈앞에 차 있다. 냇가에 손을 넣어 본 적이 아마득한데 이 멀리 헬싱키에 와서 발트해의 한자락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게 되었다니!





 

 

 

 

수오멘린나에는 8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한다. 그러나, 여행자 외에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여행자도 우르르 몰려다니는 관광객이 아니다. 한적한 풍경 가운데 간혹 한 두 명씩 발견된다. 모두들 부드러운 미소로 눈인사를 주고받게 되는데 자연을 거닐며 고운 심성을 드러내게 된 것일지도. 누구에게라도 친절하게 되는 곳이다. 나 스스로도 섬에 입성한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정화되어 가고 있는 느낌.

 

 

마냥 걷기만 하기에는 아깝다. 수오멘린나에서의 이 시간을 더욱 유의미하게 하려면 숲속에서의 휴식, 바다 곁에 머물러보는 휴식이 필요하다. 이 때 '딱' 맞는 장소가 나타난다. 그냥 발길 가는 대로 향하고 있었지만, 여행안내서에서 '가고 싶은 곳'으로 표시해 둔 곳에 도착한 것이다.'Cafe Piper'.... 카페로는 최고의 명당을 차지하고 있다. 주변이 온통 나무로 작은 숲이 연이어져 있고, 무엇보다도 바로 앞이 발트해이다. 바다를 바로 앞에 둔 야트막한 둔덕에 테라스를 마련해 두었다. 금발의 여성분이 주인인데 씩씩하고 시원스러운 분위기를 가졌다. 샌드위치나 파이, 페스츄리 등 모든 먹는 메뉴를 본인이 직접 다 만든다고 했다. 나름 신경 써서 (세련된 멋은 없지만) 꾸며 놓은 카페 내부도 볕이 잘 들고 테이블도 여유롭게 마련되어 있지만, 나무와 바다를 마다하고 실내를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푸드 쇼케이스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직접 골라 담는다. 핫초코와 뜨거운 카페라테를 곁들이는데 유리컵에 푸짐하게 담아준다. 처음에는 숲속의 휴식 분위기를 내려고 나무들 곁에 자리를 잡았다. 5월 첫째 주를 맞은 헬싱키는 아직도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터라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는 아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그대로 내려앉으며 약간 쌀쌀한 대기를 딱 기분 좋게 데워놓고 있다. 하나, 둘, 참새로 보이는 새가 등장한다. 참새라 하기에는 덩치들이 큰 것 같은데... 아무 생각 없이 빵 부스러기를 던져 주었다. 이럴 수가!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가 떠올랐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새들이 퍼드덕퍼드덕 몰려온다. 이제는 겁도 없이 우리 테이블에 바싹 다가와서 내 손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접시를 공격할 태세들이다. 이러다가 녀석들에게 내 이마를 쪼이는 건 아닐지. 무섭다! 거의 본능적으로 빵을 크게 한 조각 잘라내어 최대한 멀리 던졌다. 새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틈을 타 먹던 음식과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영화 <새>의 끔찍한 장면을 혼자 상상하며 패닉에 빠진 것도 잠시. 이제는 발트해와 마주하며 이 세상의 모든 평화를 느낀다. 햇살이 바다 표면에서 반짝인다. 보석 같은 물결이 일렁인다. 차가운 북부 유럽이라 바다에도 거센 파도가 몰아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색깔은 짙푸르되 고요하기 짝이 없다. 지도를 보면 내가 지금 카페 piper의 야외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발트해는 헬싱키 본토와 수오멘린나 사이에 펼쳐져 있다. 어떻게 보면 육지와 섬에 둘러싸여 있거나 혹은 갇혀 있어 잔잔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동해에서 만나는 다이내믹한 파도는 이곳에는 아예 없나 보다. 바라보기만 해도 나의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바다.... 이 세상인지 저세상인지.... 덩그러니 놓여 있던 내 가방이 여행 중임을 상기시키다. 즉, 하염없이 앉아 있을 수 없다. 갈 길이 있는 여행자에게 이 지상 낙원은 잠시 거처 가는 곳임을 자각, 이제 일어선다. 지도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걸어볼 텐데 발트해와 최대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테다. 돌계단도 나오고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바위가 연거푸 출현하다가 다시 평평한 돌 언덕이 나온다. 간혹 반대 방향에서 여행자들이 나타난다. '당신이 왔던 그 길에는 뭐가 있나요?' ' 쏘 뷰티풀! 저기는요?' ' 쏘 뷰티풀 투 (so beautiful, too)! ' 세계 만국어인 뷰티풀, 수오멘린나의 발트해 곁에서는 다른 언어가 필요 없다. 홍길동도 이렇게 담장을 넘어 다녔을까? 내가 날아다니고 있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모든 여행지는 다시 가면 더 잘 다닐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수오멘린나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더듬어 보니, 카페 Piper에서 위로 향하지 말고 아래로 내려갔어야 했다. 지도를 펴놓고 우리의 동선을 추적해보니 '우니마란타Unimaranta' -섬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백사장으로 현지인들은 해수욕을 즐긴다고 한다-에서 발이라도 담가봐야 했다. 더 아래로 내려와 별 모양의 요새 '쿠스탄미에카 Kustaanmiekka'에서 요새의 흔적인 대포를 찾아보아야 했고, 큰 바위에 걸터 앉아 풀밭과 바다 경관을 더 즐겨야 했다. 그러고는 수오멘린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왕의 문 King's gate'까지 갔어야 했다. 18세기에 스웨덴 왕이 닻을 내리고 핀란드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이다. 문안에 자리한 레스토랑 '발할라 Walhalla'에서 바다의 절경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다. 전체적으로 수오멘린나의 2/3 정도만 밟은 셈이고, 수오멘린나의 진면목을 이루는 경관들과 역사적 자리들을 찾지 않고 뒤돌아 나온 것이다. '왕의 문'까지 가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루트이건만 왜 그때는 카페 piper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버렸는지 .... 아무리 자연 그대로를 즐긴다 해도 따질 것은 따져가며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했어야 했는데.... 너무 바보 같았다는 후회에 가슴이 저며온다. 다음 일정으로 정해놓은 '아테네움'을 너무 의식한 탓이었으리라. 비로소 아테네움에 들어가서야 알게 된 바로는 1시간이면 충분했다. 되돌이켜 맞추어보면 수오멘린나에서 한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었던 게다. 나의 여행 파트너인 아들은 '왕의 문'을 찾아가자고 했고 나는 아테네움에 가야 하니까 시간이 없다고 만류했다. 더욱이 다음날 오전 11시에 우리는 헬싱키를 떠나게 되어 있었기에 아테네움은 지금 아니면 영원히 찾지 못한다고 강력하게 설득했다. 못내 아쉬워하던 아들은 아테네움 관람이 단 한 시간 만에 싱겁게 끝나자 나에게 야속한 눈빛을 쏘아댔고 나는 미안하고 속상해했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 보지 않고서는 한치의 어긋남 없는 시간표가 나오지 않는다. 이래서 처음 여행은 한 조각의 상처를 남긴다. 이 고통을 만회하고자 두 번째 여행을 작심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내가 헬싱키 여행에 재도전할 날을 기다리고 있고 헬싱키에서의 첫 여정은 무조건 수오멘린나라고 반복 맹세하는 것처럼. 이번에는 내 맘대로 가지 않고 블루 루트를 따라야 한다. 카페 파이퍼에서 반드시 왼쪽 아래 방향으로!


 

 

 

 

발길 가는 대로 발트해를 따라가고 있었기에 어떤 경로로 다시 메인 게이트로 돌아왔는지 잘 모르겠다. 지도를 보면 점선으로 똑똑똑 찍힌 오솔길을 걸어가다가 우리도 모르게 굵은 실선으로 표시된 정식루트로 들어선 것 같다. 길이 끊어진 듯한 풀만 무성한 흙길에서 조금 당황했지만 곧 들어올 때 걸었던 길을 만나 수월하게 나오고 있었다. 박물관도 몇 개 있지만 한 군데도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다른 도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순수 자연을 걸어 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특별했다.

 

 

여행에서 한 여정을 끝내야 하는 순간은 때로는 무척 서글프다. 올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지만 '지금 가면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성을 담은 질문이 튀어 오르면서 굉장히 비극적이 되는 것이다. 수오멘린나의 핑크빛 메인 게이트를 들어올 때와 나갈 때 극과 극의 심정이 된다. 그러나, 이 마무리 시점에서의 슬픔에는 변화의 환희도 섞여 있다. 들어올 때와 동일한 페리를 타고 똑같은 바다 위를 지나게 되지만, 나는 조금 달라졌다. 사실 돌아오는 바닷길도 저 앞에 보이는 육지의 세상도 아까와는 다르다. 수오멘린나에서 두 시간이 조금 넘는 '찰나'를 관통하면서 짙은 추억이 하나 더 생긴 것이고 훗날 나의 일상에 눈부신 기억이 하나 더 보태어졌다. 추억할 것이 쌓이고 기억할만한 일이 많아지는 인생은 살만한 그 무엇이 된다. 이 맛에, 이 맛을 못 잊어 여행을 목놓아 부르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는 대단한 긍정의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가겠다고 해서, 내가 갈 수 있다고 해서 여행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도 영원히 여행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이다. 벌써 당연하게 생각될 뿐이다. 다시 찾아갈 헬싱키, 다시 제대로 만나게 될 수오멘린나 ..... 발트해의 파란 공기 속을 힘차게 걷고 있을 그날이 '나'를 상상하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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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와 현대 미술 ② 지평을 넓혀가는 (feat. 헬싱키 아트 뮤지엄 HAM) | 어바웃 헬싱키 2021-09-0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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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여행에 앞서 헬싱키 내 미술관을 알아볼 때 현대 미술을 표방하는 곳으로 '키아스마kIASMA'와 '햄 HAM'을 알게 되었다. 내가 주로 참고한 여행서는 두 곳을 현대 미술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미술관이라고만 소개할 뿐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어디든 실제로 본인이 가봐야 제대로 알게 되는 법. 키아스마와 햄은 지향하는 바가 상당히 달라 보였다. 키아스마가 훨씬 더 '난해한' 쪽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건축 디자인 면에서는 키아스마가 월등히 한 수 위였다.

 

HAM은 독립된 건물을 전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레스토랑에 테니스장까지 있는 건물에 쉽게 말하면 입점하고 있는 것 같았다. 2층에서부터 HAM이 시작되는데 1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여기는 독특한 미술관'이라고 알려주는 설치 작품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알루미늄 대야를 여러 개를 한 무리로 묶어 수십 타래를 걸어 놓은 듯하다. 크기가 조금씩 다른 동그란 '합合'들은 가느다란 체인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왠지 각 묶음 안에서부터 알루미늄이 서로 부딪히는 쨍그랑쨍그랑 소리가 울려 나온 것 같다. 환청일지라도 경쾌해진다.



 

 

 

 

헬싱키 공항에서 '헬싱키 카드'를 미리 구매해와서 HAM에도 무료로 입장했다. 전시실로 들어서기 전 로비에서 주요 전시 포스터를 보며 여기서 만나볼 작품들의 분위기를 짐작해본다. 세 사람 모두 아는 바가 전혀 없기에 몰라서 지루해하기기보다는 새로워서 상당한 호기심을 갖고 살펴볼 생각이다. 크고 작은 빨간 스툴과 둥근 베이지 테이블을 매치하여 대기실도 마치 카페처럼 꾸며 놓았다. 헬싱키에서는 디자인을 일상에 들인다는 것은 쉽고도 당연한 일로 보인다.


 

 

 

 

전시는 '토베 얀손 Tove Jansson'으로 시작된다.

입구나 로비에 별도의 전시 안내가 없는 걸로 보아 상설 전시인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캐릭터인 '무민 MOOMIN'을 탄생시킨 핀란드 국민 작가이므로 상설 전시로 모셔둘 수도 있겠다. 수수한 할머니처럼 보이는 사진을 지나 들어서면 토베 얀손의 예술 일대기가 펼쳐진다.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곳곳마다 관람객이 많아 눈치가 보여 용기가 나지 않는다. 깨달은 바, 무민을 포함한 귀여운 캐릭터는 얀손의 작품 중 일부이다. 우아한 서사시 같은 대형 작품들이 많다. 자신의 캔버스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젊은 시절 토베 얀손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무민외에도 밝고 귀여운 캐릭터들도 대거 탄생시켰다. 헬싱키를 다시 찾겠다는 계획 아래 얀손의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공부'를 해 두기로 한다.





 

 

 

 

토베 얀손의 전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Ellen Thesleff (1869 - 1954)가 시작된다.

핀란드 예술의 황금시대 Golden Age를 대표하는 예술가로서 상징주의와 표현주의를 지향했다. 파리와 피렌체로도 오가며 유럽의 예술 세계에서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당대에 이미 인정받았다. 색과 빛, 동작을 살려내는 데에 대가적 면모를 보였다. 일찍이 15세에 예술 공부를 시작, 파리에도 진출했다. 어린 시절부터 화가의 꿈을 좇으면서 남달리 독립적인 성향을 보였던 그녀는 자기 자신을 레오나르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 비유할 만큼 자부심에 차 있었다. "나는 신처럼 그림을 그린다. 이미 다 이해했으니까 I paint like a god! I have understood" ...

자유롭고 자기 확신에 차 있으며 강한 인상을 남기는 그녀의 그림들은 과연 어떠한지....


 

 

차분하고 안온한 느낌을 주는 3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느질하는 여인, 책을 읽고 있는 여인, 테이블에 모여 다과와 환담을 나누는 여인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평화와 안정을 선사하는 장면이다.


 

 

1906년에 그린 'Girls / Girls in teh Meadow'에서는 색감이 완전히 바뀌었다. 혹시 위의 세 그림은 Thesleff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2019년 5월의 기억이라 사진만으로는 정확히 살려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여하튼, 이 그림에서는 핀란드 특유의 따뜻함과 빛은 찾아볼 수 없고 지중해 태양의 강렬한 열기가 돋보인다. Thesleff가 좀 더 표현주의적 색채를 선호하게 되면서 그녀의 화폭에 상당한 변화가 생긴 것 같다. 뚜렷한 터치가 강하게 보이는 색감과 더불어 두 소녀의 방향과 자세도 대조적 이어서 그림 전체가 역동적이다. 가만 보면 두 소녀의 발이 보이지 않는다. 중력에 이끌리어 흙에 뿌리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그림에는 여린 기운이 전혀 없다. 강하고 묵직한 움직임으로 흔들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세 번째 그림은 1911년으로 되어 있다. 제목은 'Human figure in nature'이지만 온갖 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시야를 압도한다. 자세히 보니까 나무 아래에 책을 읽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인이 '사람의 형상 human figure'으로 그려져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편안함을 느끼며 자연의 일부를 이루므로 눈에 띄지 않는 게 당연하다. 색채를 주로 무지개색으로 표현하던 당대 핀란드 예술 스타일을 따랐던 그림으로 어두운 색조가 전혀 없이 화폭 전체가 색으로 빛나고 있다.


 

 

 

 

토베 얀손과 엘렌 테스레프의 작품을 감상하고 한 층 더 올라간다. 이곳의 조명은 매우 어둡고 천장에도 공장을 연상케하는 철골 구조가 보인다. 바닥도 차가운 느낌의 시멘트 같다. 이제 슬슬 난해해지는 걸로 미루어 보건대 현대 미술이 시작되는 것이리라. 회화는 사라지고 설치 작품들이 거대한 형상으로 여기저기 서 있다. 층층에 올려놓은 이 수많은 피겨들... 제조품으로 구성된 누군가의 사적 컬렉션을 보는 게 아니라 예술가의 사유가 절절히 베어 있는, 심혈을 기울인 손길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아마 'otto bystrom'이라는 작가의 전시였던 것 같은데 내 카메라 앨범에는 이 사진 이외에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좀 더 성의 있게 보고 자세한 흔적을 남겨 둘걸 그랬다. 하루하루 급격하게 쇠락하는 기억력과 감각, 더 이상 안이하게 믿어줄 수가 없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Powel Althamer라는 이름의 폴란드 예술가 차례이다. 30년간 이어온 그의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전시이며 타이틀이 'I (am)'이다. 전시 제목만으로는 '나'에 중점을 두는 작품세계일 것 같지만, Althamer는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와 더불어 '집단적으로 우리는 누구인가 Who are we collectively'라는 질문을 핵심으로 삼는다. 작품의 내용도 자화상 및 협업 과정을 담았고 표현 방식은 조각, 설치, 비디오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매체를 선택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노는 것 playingtogether'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자칫 험상궂고 위협적으로 보일 그의 작품들이 재미있어 보인다. 그가 마련한 유희의 행렬 옆에 슬쩍 서 본다. Althamer과 HAM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 이유인즉, 이 넓은 전시실 외에도 다른 층에 따로 공간을 하나 더 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통 새하얀 방이었고 관람자는 휴대폰을 맡겨 두고 흰색 전신복을 착용하고 입장해야 했다. 나는 귀찮아서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작품 의도에 따르면 이 '작품' (관람자가 직접 실행해야 하니까 일종의 행위 예술인가?)은 '사우나'를 염두에 두고 있다. 사우나를 통해 몸과 마음이 정화되듯이 이 하얀 공간에서도 사방에서 밀려드는 온갖 자극에서 벗어나 사고와 감각이 정화된다는 것이다. 과감하면서도 신선한 발상과 실현, 예술가의 자질이자 본분 아닐까.





 

 

현대 미술은 어떤 식으로든 상식과 기대를 넘어서고야 만다. 그래서 흥미롭고 배움을 선사한다.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구나,를 끊임없이 깨닫게 한다. 무뎌지고 닫혀버린 감각을 뒤흔들어 깨워준다. 구태의연한 자태에 고정될 위기에서 구해준다. 5월 초의 헬싱키에는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다분했다. 투명한 햇살이 있고 에메랄드 빛으로 찰랑이는 발트해가 있어 추워 죽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을 휘저어 놓는 바람은 영락없이 겨울의 기세를 품고 있었다. 차분하면서 조금은 무미건조해 보이는 도시 헬싱키에는 키아스마나 햄과 같은 도발적인 장소가 더욱 잘 어울린다. 꾸준하고 성실한 걸음을 걷다가 가끔은 돌부리를 만나 비틀거려 보아야, 때로는 엇박자가 나며 놀라보아야 신바람을 맛볼 수 있다. 나의 헬싱키 여행은 HAM에서 한 템포 더 빨라지며 즐거움이 한 차원 더 높아졌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는 예술가들을 알게 됨으로써 삶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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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와 현대미술 ① 난해함마저도 (feat. 키아스마 Kiasma) | 어바웃 헬싱키 2021-08-29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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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어떨까?

유럽 여행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있는 시간이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남은 2021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위드 코로나 WITH CORONA'가 자리 잡으면서 2022년부터는 유럽으로 가는 하늘문이 활짝 열리면 좋겠다. 기다리는 마음이 때로는 절망에 빠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나온 시간이 길었던 만큼 코로나를 뛰어넘어 자유롭게 될 날이 가까이 왔다는 낙관에 들뜨기도 한다.

 

 

 

'다시, 여행'을 기다리는 올바른 자세로서, 지나간 여행을 새겨 두어야 한다.

재빠르게 대거 찍어둔 사진들을 지금 이때에 꺼내어 정리하지 않으면 오랜 여행의 공백 속에 추억도 기억도 증발해 버릴 위험이 크다. 참 게을렀고 태만했다. 말로는 여행이 이토록 소중할 줄 몰랐다고 한탄하면서 지나온 여행의 한 켠 한 켠은 그저 앨범 안에 쟁여 놓는 것으로 끝내버리려 했다니!

 

 

나의 유럽 여행의 끝점, 헬싱키.

여기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유럽 여행에 대한 간절함을 모아 나의 옛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여행을 맞고 싶다.

 

 

 

헬싱키를 선택한 이유는 '자연과 디자인'이다.

불리한 기후 환경을 활용하여 예술적으로 멋스러운 공간과 일상을 탄생시킨다는 이야기는 핀란드뿐만 아니라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덴마크 등 모든 북유럽의 나라들에 공통으로 적용되지만, 몇 장의 사진으로 나는 헬싱키의 발트해에 심히 끌렸다. 도시에서 우리와 다른 색깔의 바다를 볼 수 있고, 페리를 타면 20분 이내에 섬에 닿을 수 있고, 도심에는 여러 미술관이 모여 있다니 자연 nature과 인공 art를 손쉽게 오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 같은 게 생겼다.

 

 

 

헬싱키에 소재한 미술관 중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키아스마Kiasma.

발음이 너무 예쁜 데다가, 핀란드어로 ' 두 선이 만나는 교차점'이라는 뜻이라니 더욱 의미심장하다. '두 점'이란 '관람객과 작품'이라 할 수 있고, '현실 세계와 예술 세계'로 볼 수도 있다. 즉,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면서 미술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공간을 표방한다. 핀란드의 현대 미술을 전면에 내세우되 세계 유망 미술가들을 위한 특별전도 수시로 선보인다. 트램에서 내려 바로 코앞인데 외관부터 충분히 현대적이다. 미국 건축가 스티븐 홀 Steven Holl이 설계하여 1998년에 완공한 5층 규모의 건물로 유리와 하얀 벽이 정면을 이룬다. 세 개의 대형 기하학적 도형을 이어놓은 듯하며 짙은 브라운과 샛노란 색, 벽돌색을 흰색 사이에 두어 유려한 디자인의 표본이 되어준다.

 


 

 

 

미술관에서 건축이나 전시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는 카페나 레스토랑이다. 키아스마의 1층의 레스토랑은 현지인 사이에서도 인기 있는 공간이라는데 널따랗고 유리창으로 햇살을 그대로 실내로 들였다. 찾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스낵류부터 간단한 뷔페식에 이르기까지 메뉴도 다양하다. 부산하지만 대기하지 않고 바로 자리를 맡았고 주문도 빨리, 음식도 빨리 받았다.


 

 

 

 

전시 관람에 앞서 먹으면서 체력을 비축했으니, 핀란드의 현대 미술을 만나보자.

사실 키아스마에 들어오자마자 감탄했었다.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던 장면 중 하나를 내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곡선과 원근법을 이용한 예술 작품 같은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닥의 블랙과 벽면의 화이트가 세련된 대비를 이루며 천장의 유리 패널로 멋스러움을 더했다 (천장에서 스며 나오는 빛은 자연채광인지 조명인지 기억이 안 난다). 이 길을 따라 전시 공간이 시작되는 2층으로 향하게 되는데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긴장과 설렘을 느끼게 한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건물 내부로 더 깊이 들어가 보니 계단이며 조명이며 쉬는 공간에 놓인 가구며 한결같이 예술적이다. 전면 유리창도 그냥 휑하니 비워 둔 게 아니라 바깥과 연결하고 햇빛을 들이면서 동시에 실내에서의 아늑함도 놓치지 않았다. 화장실마저 세심한 디자인과 편리함이 돋보였다.

 



 

 

 

 

솔직히 키아스마의 전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이다.

핀란드의 예술에 대해 사전 공부를 하나도 안 했기에 아는 작품이나 아는 예술가가 전무했다.

평소에 미술에 꽤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힘입어 이 모든 새로움을 재미있어 할 따름이었다. 특별전으로 (아마 ) 미국의 어느 여성 예술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는데 폭력의 흔적이 역력한 장면들과 어지럽혀져있는 일상의 생활 장면들을 소재로 삼고 있어서 시각적으로 많이 피곤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단 한 장도 찍지 않은 걸로 보아 상당히 비호감이라 여겼던 것 같다. 좀 후회가 된다. 여행에서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요소나 나를 기겁하게 하는 순간들도 충실히 남겨 두어야 했었는데...

 

 

 

키아스마에서 남겨온 작품 사진이 3컷이 있다. 지금 보니 너무나도 소중한 보물이다.

첫 번째 작품은 전시실 전체이자 나도 그 일부가 된다. 벽에 수많은 실패가 알록달록하게 부착되어 있고,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옷인지 옷감인지 천이 쌓여 있다. 누구든지 앉아서 '꿰매기 mending'를 할 수 있다. 꿰매기에 열중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면 좋겠다고 권하고 있다. 누군지 보이지는 않았는데 내가 직접 꿰매지 않고 꿰매어 달라고 부탁해도 된다. 단, 그 사람과 마주 앉아 역시 수다를 떨어보라고 한다. 보는 예술을 넘어 참여하는 예술이다. 연결을 촉진하고 신뢰와 환대라는 주제를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작품으로 'mending project'라는 이름으로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했다고 한다. 현대 미술의 드넓은 지경을 목격한다.


 

 

 

두 번째 사진은 다소 을씨년스러웠던 전시장 분위기를 기억나게 한다. 높다란 천장에서 실같은 뭉치들이 떼를 지어 내려와 있다. 색깔도 선명한 계통 일색이고 꽤나 부피가 큰 데다가 힘없이 축축 늘어져 있어 실신한 그 어떤 상상의 동물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의 생명체 같은 인상을 받았다. 솔직히 좀 섬뜩하기까지 했다. 재료는 머리카락 hair이다! 진짜와 인조를 섞어 놓았고 패션, 자기표현 및 허영심 fashion, self-expression and vanity과 연관된 머리카락의 본질을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도 인정했다- 뭔가 텁수룩한 재료는 예술로서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혐오감을 줄 수도 있다고 appealaign and repellign at the same time. 더욱 기묘한 것은 작가의 이름이 'shoplifter 좀도둑'이며 신경세포와 연관된 nervescape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신경 과학과 뇌 연구에도 관심을 가진 예술가이다. 머리카락 뭉치와 신경 세포들의 구조적 유사성을 보여 주고, 이 화려하게 튀는 색채들로 인해 관람자의 뇌에서 세로토닌이 분출되기를 바란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껴 다른 사람들을 더 상냥하게 대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피력해 두었다. 실제로 이 거대 작품 아래에는 매트가 깔려 있고 관람자에게 누워서 마음껏 즐기라고 권한다. 그렇다면, 나는 작품의 의도에서 한참 빗나간 관람자였다. 비정형의 털 뭉치가 원색으로 천지를 도배하고 있던 이 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마지막 세 번째 작품도 행잉 스타일이며 원색이 돋보인다.

그냥 봐서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작품인지 알 수 없다. 키아스마의 컬렉션 중 환경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을 선별하여 '공존 COEXISTENCE'이라는 전시의 일부이다. 인간, 동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인간과 타 유기체의 공존을 모색, 21세기의 환경 위기를 타개하는 데에 예술과 예술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이런 정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바라보면 이런저런 궁금증이 일고 질문이 생겨난다. 비예술가인 나의 평범한 감각으로는 그 심오한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작가의 비범한 표현 방식으로 나의 틀에 박힌 사고가 조금은 깨뜨려진다.

 


 

 

 

 

 

생전 처음으로 kiasma에 발을 들였고 온전히 깊은 관람을 했다고 자신할 수 없어도 이곳의 현대미술이 지향하는 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라보는 회화보다는 참여하게 하는 설치 작품이 주를 이룬다. 현대적 요소가 다분한, 시각적으로나 주제적으로 난해한 작품들로 나의 상식과 상상력에 도전을 가하기보다는, 일상에서나 실제 세상에서 예술이 어떤 쓸모를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런던이나 파리, 서울 그 어디에서보다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현대미술을 접했다고 할 수 있다. 2021년 8월 말 현재, 키아스마는 '임시 휴관 중'이다. 아마 길어지는 코로나의 위협에 전시를 잠정 중단하고 이 위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그래도 닫힌 문 이면에서는 재개관을 위한 모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이해 가능 여부에 소심하게 신경 쓰기보다는 예술이 이 세상 안에서 존재감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역동성에 초점을 두면서 모두의 기대를 초월하는 상상 그 이상의 예술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바랄 뿐이다. 다시 헬싱키에 갈 수 있기를. 다시 키아스마를 찾을 수 있기를. 나의 성향과 취향을 완전히 내려놓고 키아스마의 그 어떤 도발 provocation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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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이어주는 시간들 (feat. 카페 알토 바이 밀도, 헬싱키 아테네움) | 나의 삶,나의 공간 2021-08-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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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여행은 서로 긴밀히 통한다.

책은 내가 아닌 타인, 내가 알지 못할 수 있는 다른 세계를 열어 준다. 발견과 배움의 통로이다.

여행은 더 적극적인 아레나이다.

전적으로 내가 주도하는 모험이다 - 일상에서의 나와 다른, 더 바람직한 내가 되어보는 기회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내가 준거점이 되어 좌표들을 찍어가는 탐험이다.

 

책과 여행이 결합되면 그 효과와 유익은 증폭된다.

책으로 여행을 미리 연습하고 여행으로 책을 실천한다.

책이 알려주는 바를 여행에서 체험하고, 여행에서 체험한 바를 책에서 알아간다.

 

오늘은 '빵'이 책과 여행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잼이나 각종 스프레드류 그 어떤 것도 바르지 않고) 오로지 식빵으로 온전한 식사 meal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커피 한 잔은 기본으로 곁들인다.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카페 알토 바이 밀도 cafe Aalto by mealdo'를 찾는다. 들어서기도 전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여행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헬싱키의 '아카테미넨 서점 Akateeminen Kirjakauppa'의 2층에도 '카페 알토 Cafe Aalto'가 있지 않던가!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조명 삼아 우아함이 가득했던 헬싱키의 그 서점 (알바 알토가 설계한 공간이다), 2층에 올라가면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원목 특유의 따뜻함이 느껴지던 카페, 알바 알토를 알려주는 타센 Taschen의 책 『 알바 알토 Alvar Aalto 』가 카페의 입간판처럼 입구에 자리한다. 수줍은 미소에 다소곳했던 직원의 얼굴도 기억나고, (이름은 까먹었지만) 부드럽고 은은한 풍미에 맛도 뛰어났던 음식도 생각나고, 거의 만석이었지만 전혀 소란스럽지 않았던 점잖은 분위기도 잊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 세련되고 편안함, 신경 쓰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친절함, 튀지 않고 조용하지만 개성적임, 단 며칠뿐이었지만 헬싱키에 대해 추려낸 인상들로서 이곳 서점과 카페에서도 고스란히 느꼈다.


헬싱키 아카테미넨 서점과 카페 알토


 

 

 

다시 서울의 '카페 알토 바이 밀도'로 옮겨오자.

헬싱키의 '카페 알토'와 전체적으로 비슷하다. 서울 쪽이 더 모던하고 세심하게 꾸며 놓은 면면이 더 풍부하다.지하에 위치하지만 높은 천장과 부드럽게 환한 조명 덕에 더없이 쾌적하다. 골드의 펜던트 조명으로 트렌디한 멋이 반짝인다. 헬싱키를 닮은 원목 소재로 편안함을 더했고 하얀 천장의 중심부에 원목과 연결되는 색감을 가진, 흐르는 듯한 오브제가 올려져 있다. 혹시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그 비정형의 유리 화병을 모티프로 한 것 아닐까? 거울처럼 반사가 되는 걸로 보아 유리 같기도 하고, 구리 성분이 강한 어느 금속 재료로 보이기도 한다. 일명 Artist Collaborative Project의 일환으로 시작한 카페이고 알바 알토가 주인공이다. 핀란드의 건축, 디자인, 미술을 다루는 영어 원서들도 볼 수 있다. 헬싱키의 '카페 알토'처럼 타센의 『알바 알토』는 당연히 구비해 두었고 그의 건축과 디자인을 소개하는 책이 몇 권 더 있다. 또한, 무민의 작가 '토베 얀손'과 핀란드를 대표하는 디자인 브랜드 '마리메꼬'를 소개하는 책자들도 비치되어 있다. 책이 있고 바 스타일의 좌석 공간도 적지 않아 나 같은 소심한 1인도 편하게 머무를 수 있겠다.

 

이 카페에 온 일차적 목적은 식빵이었지. 지난주 수요일에 이어 일주일 만에 식빵을 사러 온 것인데 이번에는 '리치'와 '담백' 두 종류를 모두 맛보려 한다. 지난주에 리치를 하나씩 꺼내 먹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식감을 제대로 표현할 재주가 없어 유감이지만 쫄깃하면서도 폭신하고...이태껏 이런 식빵을 먹어 보지 못했다. 묵직하면서 두툼하여 과일과 커피과 함께 만족스러운 식사로 즐길 수 있다. 지난주 살까 말까 망설였던 소보루도 오늘은 추가한다. 귀여운 큐브 빵 위에 소보루가 먹음직스럽게 토핑 되어 있다. 빵이란 쟁여두고 먹을 수 없기에 다른 종류의 빵류는 눈으로만 구경, 다음에 먹어볼 대상을 찜해 둔다.





 

답백과 리치, 어느 쪽이어도 완벽하다.

 

 

오늘도 카페라테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읽어볼 텐데 .... 『 Stories of Finnish Art 』을 집는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2019년 헬싱키 여행에서 들렀던 여러 미술관들이 등장한다. 헬싱키 미술 박물관 HAM, 키아스마kiasma, 핀란드 국립 박물관, 그리고 아테네움Ateneum의 여러 모습이 동시에 떠오른다. 시대별로 대표 작가들과 작품들을 설명하는 형식이고, 퍼르륵 넘기다가 한 여인이 어린 소녀의 머리를 손질해 주는 그림에서 멈추었다. 북유럽의 그림만의 맑은 부드러움이 느껴지고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낯익음 같은 게 있다. 19세기 말 핀란드 미술을 설명하는 파트인데, 파리로 가서 당시 세기말의 미술을 터득하며 동시에 핀란드의 예술을 파리 무대에 알린, 귀국해서는 프랑스풍과 핀란드 고유의 화풍을 혼융하여 독창적인 세계를 선보인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Albert Edelfelt라는 이름의 당시 20세였던 핀란드 화가의 활약상을 읽어 본다. 조금 전 내 시선을 끌었던 그림을 그린 화가이고 이 그림의 제목은 <뤽상부르 정원 The Luxemburg Gardens>이다. 파리의 뤽상부르 정원에서 보았던 한 장면을 그려놓았다. 이 화가가 처음으로 파리지앵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림은 < Conveying the Child's Coffin>이라는데 죽은 아이의 관을 배로 옮기는 장면이다. 지독히 슬픈 상황이지만,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 위로 북유럽 특유의 빛이 번지고 있어 성스러워 보인다. 알고 보니 이 책은 아테네움에서 발간한, 핀란드 출신의 화가들을 다루는 안내서이다.



 

 

 

 

이 두 그림을 한 페이지씩 연속으로 실어 한눈에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그런데, 잠시... 이 순간의 느낌이란... 데자뷔 deja-vu이다! 내 머릿속에서 기억의 실타래들이 급속도로 풀리어간다. 이 책은 아테네움에서 발간했고 나는 3년 전 아테네움을 찾았었고 아까 <뤽상부르 정원>은 왠지 낯익어 보였고 두 번째 그림의 그 미묘한 아름다움도 처음은 아닌 것 같고. 얼른 내 카메라 속 헬싱키 앨범을 열어본다.

 

핀란드의 예술가들에 대해 알아 둔 게 없었으니, 아테네움의 전시는 당황스러울 만큼 생소했다. 겨우 세 작품 정도가 눈에 들어왔는데 헬싱키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에드바르 뭉크, 반 고흐, 폴 고갱이었다. 그 이외에는 모르는 작가의 처음 보는 그림이었으니 까막눈으로 책을 보듯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알지 못하니 선뜻 사진도 찍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Albert Edelfelt의 이 두 그림 <The Luxemburg gardens>와 <Conveing the child's coffin>이 내 앨범에 나란히 담겨 있다. 그 많던 낯선 그림들 사이에서 이 두 그림은 광채를 발하며 나에게 와닿았던 것이다. 아이의 관을 나르는 그림은 옆에 붙어 있는 그림 제목도 따로 찍어둔 걸로 봐서 상당히 의미있어 했던 것이다.





 

 

 

식빵을 사러 왔다가 카페라테가 마시고 싶어 잠시 앉았고 ,눈에 띄는 책이 있어 집어 드니 핀란드 미술에 관한 내용이고, 또한 눈길을 당기는 그림에서 시작하여 몇 페이지를 읽으며 Albert Edelfelt라는 핀란드 태생 화가에 대해 조금 익히게 되다가 그의 또 다른 그림 하나를 보게 되었고 두 그림을 한눈에 보게 된 순간, 내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이 책은 아테네움에서 발간된 것임을 알게 되면서 나의 헬싱키와 아테네움에 대한 기억의 문이 활짝 열리고.... 내 앨범에서 이 두 그림을 발견한다. 내게는, 책과 여행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연결되는 환상의 순간이다! 묘한 우연에 의해 현실과 과거가 뒤섞이면서 2021년 8월 말 서울의 '나 I' 와 2019녀 5월 초 헬싱키에서의 '나 II'가 조우한 것이다. 서울의 카페 알토와 헬싱키의 카페 알토에서 시작된 이 '연결'은 책과 여행이 서로를 관통하는 사이 현재와 과거를 한 시점, 한 공간으로 소환하여 나의 세계를 '확장'시킨다.

 

그리워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요즘의 바이러스 세상.

헬싱키는 현재 나의 마지막 여행지로 남아 있고,(귀국 전날 오후에 찾아갔던) 아테네움은 나의 유럽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미술관으로 남아 있다. 16박의 자유여행의 끝, 그저 잘 쉬는 곳으로 찍어두고 찾아간 도시라서 사전 준비가 소홀했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여행지에 대한 그리움에는 다른 곳과 달리 무거운 마음의 짐이 얹혀 있다. 헬싱키의 여행기도 거의 쓰지 않은 채 헬싱키에 크나큰 빚을 지고 있는 양 알게 모르게 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우연은 내 안에 잠겨 있던 모든 기억의 고리를 풀어낸다. 닫혀 있고 막혀 있던 추억이 봇물처럼 쏟아지며 '아름다운 헬싱키'를 불러보게 한다. 여행에 대한 희망도 더 커진다. 한 번이라도 거닐었던 이국의 땅에는 나의 마음, 나의 심장 한 켠이 남겨져 있다. 나는 그것을 되찾으러 또 가야 하고, 가서는 또다시 오도록 더욱더 큰 애정을 더욱 깊숙이 새겨 둔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꼭 다시 헬싱키로, 아테네움으로, 이 두 점의 그림 앞으로 돌아가겠다.

 

우연에는 강력한 계시가 담겨 있다,라고 믿는다. 오늘 '카페 알토'에서 내게 다가온 이 책 『 STORIES OF FINNISH ART 』을 읽어야 한다. 헬싱키에서 스쳐 지나갔던 핀란드 예술가들을 알아가면서 나의 헬싱키 여행 전체를 견고히 재건하라는, 그 어떤 필연적 임무를 도맡겠다. 아마 이것은 곧 시작될 그 어떤 여행을 향한 워밍업 내지 서곡일지도 모른다. 답답하게 눌려져 있던 나의 일상이 마침내 깨어나고, 무엇을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해하고 있는 내 삶이 마침내 방향, 올바른 방향을 감지해 낸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두근두근 소리가 들려 오른 걸로 보아서 말이다.

 


헬싱키의 아테네움, 곧 돌아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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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부르는 공간, 아난티 (feat. 이터널 저니) | 여행이라는 날개를 달고(&호캉스) 2021-08-24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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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좋은 이유, 평소에 가고 싶은 곳을 다닐 수 있는 소원성취의 기회가 된다.

'아난티'는 사실 일반적이고 평범한 공간이라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남다른 럭셔리라는 콘셉트 때문에 여러 면에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도 여행이니까,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고서 부담부터 가질 필요는 없으니까, 조금씩 다가서보면 된다.

 

첫 걸음은 아난티 타운에 자리한 프렌치 한식당 '아쁘앙 A POINT'이었다.

만족감CONTENTEMENT이 무엇인지 실감한, 대단한 경험이었다.

장장 두 시간에 걸쳐 꿈같은 점심을 먹고, 이제 바깥으로 향한다 

'아쁘앙'에서 창밖으로 내다보이던 그 바다 풍경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8월 대낮의 따가운 햇살을 뚫고 걸어본다. 해안 산책로는 아난티 코브까지 꽤 길게 이어진다 (기억하기로는 약 2km). 높고 얕은 바위들이 많아 바다에 바싹 다가갈 수 있다. 햇살이 만만치 않은 강도로 내리 꽂히지만 파도는 여전히 시원하고 우렁찬 소리를 들려준다. 바다의 온갖 모습을 바라보며 작심하는 바, 오늘은 짧은 방문이지만 곧 2박으로 다시 내려올 것!

 





 

 

 

이제, 아난티 타운의 이곳 저곳을 기웃거려본다.

창문에서부터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가게마다 음식점마다 개성만점의 데코로 자신의 정체성을 단번에 드러내고 있다. 가게 사이사이의 골목 같은 공간도 어디 하나 방치된 곳이 없다. 바닥, 벽, 천장에도 유려한 장식을 더해 쉬어 가고 싶은 맘, 커피를 앞에 두고 몽상에 잠기고 싶은 맘을 불러일으킨다. 머나먼 이국의 낯선 공기로 이동하지 못하는 요즈음, 이런 공간에서 위안을 찾고 희망을 다질 필요가 있다.

 


 



 

 

 

아난티 타운에서 가장 들르고 싶은 곳, 힐튼에서 숙박을 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이터널 저니'이다.

'eternal journey 영원한 여정'이라니 정말 멋들어지지 않은가.

책으로 대표되는 문화나 예술, 아름다움을 이보다 더 멋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품격있게 자리하고 있다. 카페 공간도 있고 책만 읽어도 되는 테이블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예술 분야에서 흥에 겨워지다가 여행 섹션에서 한참을 머문다. 파리와 프랑스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책, 예술, 여행, 커피 ... 이보다 더 영원한 것이 있으랴.

비록 유한성이 운명 지어진 삶을 살고 있더라도 감히 영원을 꿈꿀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영원성의 결정체들이 곁에 있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움에 무너질 것 같은 감정을 부둥켜 앉고 이 모든 장소에서 물러난다.

인간의 최상의 행복을 위해 인간이 최선의 노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바로 건축과 예술이다.

예술 그 자체인 건축인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영원한 여행에서 잠시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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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꿈꾸게 하는 한 끼(feat.아쁘앙 a point) | 여행이라는 날개를 달고(&호캉스) 2021-08-2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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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여름의 마지막을 맞는다.

 

부산 해운대를 중심으로 몇 곳을 오가며 바다와 여름의 매력을 실감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던 장소들을 실제로 가 보며 소원성취도 이룬다.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는 기장에 위치한 '아난티 타운'.

 

내게는 바닷가의 럭셔리한 휴식과 지적인 발견을 기대하게 장소이다.

 

가장 아늑하고 여유로운 식사를 하고, 바닷가에 바싹 다가가 산책을 하고, 책이 있는 풍경을 경험하기... 이 세 가지 미션을 가지고 입성한다.

 

 

 

 

숙박의 기회는 이미 부산에서 써먹었기에 힐튼에서의 환상적일 스테이는 차후로 미루어야 한다. 바다를 내다보는 공간에서의 안락한 휴식, 언젠가 꼭 이루어보리라. 대신, 여행의 마지막 식사는 최대한 원하는 쪽으로 해보려는데 .... 'A POINT'만한 선택이 없을 터이다. '아쁘앙'이라고 읽는 프랑스어 표현이다. 생김새로 보아 영어의 'to the point'와 엇비슷할 것 같은데 '적절하게, 지나침이 없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수도 없이 많은 음식을 푹푹 퍼담아 실컷 먹어보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당일 예약과 취소는 불가능하며 백 퍼센트 예약에 의해서만 운영된다.

 

미슐랭 스타 셰프인 노진성 셰프가 준비한 '완벽한 미식의 경험'이라 한다.

 

익숙한 듯 생소한 듯 '프렌치 한식'이다. 프랑스 요리와 한식을 한 코스로 먹을 수 있다.

 

점심 메뉴는 진정 '지나침 없이' 단 두 개이다. 한식 한상 차림을 넣느냐 마느냐이며 각각 1인 8만 원과 6만 5천 원이다. 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그리고 진정한 프렌치 한식을 경험하기 위해 전자를 선택한다.

 

 

 

 

입구부터 '적절한' 단아함과 모던함이다. 한껏 들뜬 여름의 분위기가 가득한 아난티 타운의 초입에 위치하지만 차분하여 오히려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 블랙 도어를 열고 들어서면...

 


 

 

 

계산된 일루전 ILLUSION 일까?

 

살짝 충격받으면서 기대감과 설렘의 수치가 급상승한다.

 

크림 베이지와 하늘색이 도는 민트, 오렌지색과 초록, 그리고 각양각색의 꽃.

 

비밀의 화원에 들어온 것이다.

 

라탄 의자로 자연스러운 휴식의 멋이 구현된다.




 

 

 

바깥을 향해 정면으로 펼쳐지는 경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초록의 잔디가 부드럽게 깔려져 있고 그 너머에는 하늘과 닮은 바다, 바다와 닮은 하늘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이런 곳이 '실재'하다니 대단히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단 한 끼라도 이런 공간에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진정 아름다운 공간은 화장실도 남다르다.

화장실의 전실은 크리미한 옐로가 조명 아래 그윽한 빛을 발하고 있다. 하나하나 특색 있는 소품들을 골라다가 모네와 잘 어우러지도록 꾸며놓았다. 장식 DECORATION은 예의Decor와 어원상 통한다. 상업 공간의 장식은 방문자를 위한 예의라 할 수 있고, 이곳처럼 세심한 장식이 돋보이는 곳에서는 환대를 향한 진의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절묘한 장식이 자리한 공간을 찾는 사람에게도 예의는 기본 소양이 될 것이다. 화장실의 세면대 벽에서도 유쾌한 색감의 장식을 발견한다.

 



 

 

 

 

음식에 대해 이토록 기대되다니...

(알코올과 전혀 친하지 않는) 평소의 나를 뒤로하고 과감하게 와인 페어링을 주문했다. 3가지 와인이 곁들어지면 1인 3만 5천 원이다. 전채요리에 앞서 맑은 초록색 병에 담긴 화이트 와인이 나온다. 와인에 대해 무지하여 설명을 다 접수할 수 없지만 색감에 이끌려 정중히 사진 촬영을 부탁했고, 이슬처럼 한 방울 한 방울씩 퍼져 오르는 기포에 신기해한다. 약간 단맛이 느껴지며 기포에 의해서인지 목 넘김이 조금 싸하다 (머릿속으로 스프라이트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집에서도 마시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곧이어 나온 전채요리 ( 재료의 배합과 특징을 조근조근 설명을 해주셨지만 대부분 잊어버렸다)는 오렌지 향이 기분을 좋게 했다. 맛은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다. 사르르 녹는 문어,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문어를 소환시키며 감동은 배가 된다.

 



 

 

 

 

두 번째 요리는 외관부터 예술적이다. 멋과 맛으로 흩트러짐없이 총총 싸매어 놓았다.

상큼함과 폭신함과 바삭바삭한 질감을 모두 가졌다.

실타래처럼 보이는 이 안에는 담백 졸깃한 생선 살이 들어있다.

깔끔한 화이트 와인이 환상적인 짝을 이루어준다.

 



 

 

 

 

세 번째 요리는 스테이크. 이를 위해 레드 와인이 서빙된다.

예약시간보다 2시간 전에 스테이크에 쓸 육류를 손질해 놓는다 한다. 최적의 냉장 상태에서 필요한 밑간을 해두는 것 같다. 홀그레인 머스터드 한 알 한 알마저 맛있고, 곁들여진 감자는 도대체 어떻게 구운 건지 눈이 번쩍 떠진다. 스테이크의 맛과 질 역시 논할 필요도 없고 정확하게 잇는 그대로 표현할 재간도 없다. 너무 맛있어 정말 그릇을 싹싹 핥은 듯 깨끗하게.

 

 

 

해산물, 생선, 쇠고기로 프렌치 요리의 주테마를 섭렵했다.

음식은 모든 감각으로 음미하며 먹는 것일진대 배부름이라기보다는 충족감에 벅차오른다.

소르베를 한 숟갈씩 녹이며 감흥을 더욱 여유 있게 누려본다.

혀에 닿는 텍스처는 가볍고 후각으로 이어지는 풍미는 시원하면서 깔끔하다. 아이스크림과는 달리 텁텁한 단맛이 없어 다음에 이어질 식사에 대한 부담도 없다.


 

 

 

 

프렌치 음식과 코스로 함께 나오는 한식은 어떤 종류일까, 상당히 기대가 된다.

재료와 맛, 시각적 차림에 있어서 프렌치와 코리안이 얼마나 조화로울 수 있을까.

간이 세지 않는 맑음이 주를 이루고 고춧가루 등 한국식 양념도 튀지 않게, 그러나 밍밍해지지도 않게 곁들여진다.

김치와 (아마) 곤드레 나물밥의 비빔장이 중재 역할을 잘 해 주고 있다. 큼직한 조갯살과 무로 담백 시원한 국, 건새우로 색깔의 포인트를 더한 호박나물, 슴슴한 김치, 그리고 쫀득한 (아마) 삼치구이 ....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배가 부르다. 조금 전까지 즐겼던 프렌치 음식과 맛, 향, 색에 있어서 절묘한 궁합을 이룬다.

 


 

 

 

 

 

이제 본격적인 디저트 차례가 되었다.

프랑스식 입맛이든 한국식 입맛이든 식사의 마지막은 뭔가 달고 감미로운 게 필요하다.

'아쁘앙'에서 직접 만드는 초코 타르트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파리에서 숱하게 초코 타르트를 먹어 보았지만, 이런 완벽한 맛으로 기억된 바는 거의 없다. 별도로 구매 가능한지 물어볼 걸 그랬나. 스며드는 질감이다. 타르트도 아이스크림도 가볍고 은은하게 달콤하다. 묵직한 느끼함은 전혀 없다. 이렇게 산뜻한 디저트라면 식후에 얼마든지 먹을 수 있겠다.


 

 

 

 

오늘 프렌치 한식의 마지막은 차나 커피에 두 점의 스낵이다.

차는 허브 잎을 띄운다. 커피는 굉장히 진한 아메리카노이다.

큐브 모양의 짙은 브라운은 캐러멜인데, 단짠의 정수! 쫄깃하기까지 하다.

하얀색 큐브는 마시멜로, 물컹하고 (몸을 움츠리게 하는) 지독한 단맛과는 거리가 멀다. 눈송이를 살살 뿌려 놓은 듯 부드럽고 적당히 달다.



 

 

 

 

7가지 메뉴를 차례차례로 즐기는 데에 약 2시간이 걸렸다.

한자리에서 먹는 데에만 이 정도의 시간을 보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두 시간이 이토록 짧게,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먹는 것에 집중하며 즐거웠던 적도 없었다. '잘' 먹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한 것이다. 먹는 것은 기본적 필수 행위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도 기쁨과 만족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비록 내 손으로 이런 기회를 직접 창조하지는 못할지라도 '참되게 호화로운' 식사의 경험을 점점 더 늘여가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도 창밖을 구경하고 실내에서 기념 촬영을 해 두었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이 아니라 모든 것에 오로지 여유와 즐김이 가능하다. 나오면서 아까 심플하고 시크하게만 보였던 입구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섬세한 패턴과 사랑스러운 색...아쁘앙 전체의 분위기와 잘 맞는 그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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