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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집을 맞바꾸고 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 리뷰 2018-02-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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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파트먼트

S. L. 그레이 저/배지은 역
검은숲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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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치밀한 이야기 구성,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생생한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독자들의 공포와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책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현실적인 공포 스릴러소설을 선보이고 있는 S. L. 그레이의 최신작 《아파트먼트》입니다. S. L. 그레이는 시나리오 소설을 쓰는 새러 로츠와 작가이자 편집자인 루이스 그린버그의 공동 필명으로, '도시 공포 스릴러' 영역에서 독보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는 두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인 《아파트먼트》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소설이 출간되기도 전에 영화로 제작하겠다고 나서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제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 소설을 좀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소개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할게요!



1. 숙박 공유 사이트를 이용한 완벽한 여행, 그 후 우리 집이 낯설다!


많은 분들이 에어비앤비나 카우치서핑 같은 숙박 공유 플랫폼을 이용해보셨을 텐데요. (저도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해 에어비앤비를 종종 이용하는 터라 이 책에 급 흥미를 느꼈더랬지요!) 소설의 두 주인공 마크와 스테프 부부 역시 경제적인 이유로 숙박 공유 사이트를 이용한 여행을 계획합니다. 마침 프랑스의 매력적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프티 부부가 서로 집을 맞교환하여 지내면 어떻겠냐는 연락을 해옵니다. 급작스런 임신으로 신혼여행도 떠나지 못한 부부는 조금 늦은 신혼여행에 흥분과 설렘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부푼 마음을 안고 도착한 파리의 아파트는 사진과는 달리 텅 비어 있는 데다가 낡고 황량하기만 합니다. 프티 부부와는 연락도 되지 않고 마크와 스테프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지만 어떻게든 여행을 이어 가려고 노력합니다. 거기서부터 악몽이 시작되지요.   


이 소설을 즐길 첫 번째 장치로 '여행'이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통해 낯선 곳에서 겪는 두려움과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을 뽑았습니다. 일상 속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도시 스릴러를 찾으신다면 이 책을 권합니다. 혹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신가요? 게다가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 공유 플랫폼을 이용하신다고요? 당신이 비행기 안에서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이 틀림없습니다.




2. 이상한 여자 미레유, 살아 움직이는 듯한 밀랍 인형 박물관, 죽은 딸의 환영, 집 안을 돌아다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아파트먼트》를 더 생생하게 즐길 두 번째 장치는 소설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섬찟한 장면들입니다. 텅 빈 아파트에 혼자 남아 살고 있는 미레유는 이곳은 위험하다고, 떠나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파리의 아파트 침실 안에서 양동이 세 개에 가득 들어찬 머리카락이 발견되고 마크는 머리카락을 본 이후부터 이상행동을 보이며 머리카락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죽은 동물들의 털을 잘라 모으기 시작하지만 점차 마크의 행동은 과감해집니다. 잠들어 있는 어린 딸 헤이든의 머리카락을 사각사각 자르는 장면에서는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했는데요.


섬세하고 치밀한 이야기 구성,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생생한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독자들의 공포와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364쪽 분량의 소설은 그야 말로 페이지터너의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네, 그 어려운 일을 《아파트먼트》가 해냅니다!) 공포 소설 작가 R. L. 스타인은 "어둡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긴장과 공포를 떨칠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떨고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3.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현실에서 어떻게 재현되는가?


이 소설의 마지막 장치는 잠재적인 트라우마가 개인에게 끼치는 양상입니다. 마크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남자로 등장합니다. 스테프는 그런 마크를 끌어안으려고 노력하는 여성이지요. 첫 결혼의 실패로 깊은 상처를 간직한 마크는 스테프와 재혼하여 어린 딸 헤이든과 함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무장한 강도들의 침입을 받고 부부의 삶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되는데요. 결국 과거의 트라우마에 잠식당하고 마는 마크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함이라는 두 가지 본능이 어떻게 체현되는지 흡입력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안전하지 못하고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마크와 스테프가 드러내는 반응 역시 흥미롭습니다. 두 인물이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얼마나 대조적인 양상을 띠는지, 그로 인해 어떤 결말을 맺게 되는지 함께 따라가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여의치 못한 분들은 《아파트먼트》와 함께 파리로 잠깐 떠나보는 게 어떨까요? 책을 덮고나면 집 안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릴지도 모릅니다. 특히 침대 밑을 조심하세요!


_《아파트먼트》 편집자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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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재능을 펼치기엔 너무 작은 세상에 태어난 우리의 이야기 | 리뷰 2018-01-2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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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어슐러 K. 르귄 저/이수현 역
시공사 | 2017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별로 돌아간 어슐러 르 귄 작가를 추모하며

지난해 재정가 세트 출시 후 글을 옮겨 적습니다.

이 글은 2017.12.7 시공사 문학숲 포스트에 작성된 글입니다.



특별한 재능을 펼치기엔 

너무 작은 세상에 태어난 우리의 이야기


추운 계절이 시작됐습니다. 전국 곳곳에 눈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겨울잠을 준비하고, 학생들은 방학에 돌입하겠죠.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 될 것이고, 우리 모두는 한 살을 더 먹을 거예요! 


그리고 또 얼마 뒤엔 아무렇지도 않게 봄이 와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새 생명을 싹 틔울 겁니다. 다시 이 땅 위엔 따뜻한 온기와, 푸른색의 잎사귀들과, 유혹적인 빛깔의 꽃들이 찾아올 것이고요. 만물은 이렇게 계절의 오고 감을 따라 소멸과 성장을 거듭합니다. 우리들은 한 해 한 해 늙어가지만, 또다시 꽃을 닮은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겠죠. 


어슐러 K. 르 귄의 <서부해안 연대기>를 알고 계시나요? 『기프트』, 『보이스』, 『파워』까지 총 세 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춥고 거친 세상 속에서 열심히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려내는 판타지 성장 문학이라 불립니다. 그 아이들은 봄을 닮았고, 자라나는 잎사귀를 닮았고, 꽃을 닮았습니다. 1929년생으로 이미 1970년대에 세계적인 작가가 된 그녀가, 비교적 최근이랄 수 있는 2000년대에 새롭게 내놓은 시리즈입니다. 


'서부해안'이라고 하는 동일한 상상계를 배경으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세 인물이 세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 작품들은 하나의 궤도로 이어져 있습니다. 1권 『기프트』의 주인공이었던 오렉은 자신만의 성장의 진통을 겪은 후 어른이 되고, 『보이스』의 메메르와 『파워』의 가비르의 길을 안내합니다. 두 아이들의 성장통은 오렉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먼저 그 길을 힘껏 통과해 냈던 오렉은 둘의 구원을 도울 수 있습니다. 


세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고 그 자신 SF 소설가로 활동 중이기도 한 이수현 번역가는 『파워』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말해 줍니다. 


"주인공들의 여정에 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도 정답이나 완벽한 대안은 없다. 틀을 전복시키는 사고 실험도 없다. 길을 이끌어줄 현자도 없다. 영웅도 구원도 없다. 그 대신 한 사람의 구원은 존재한다. 한 사람의 꿈. 한 사람의 출발. 한 사람의 성장. 어쩌면 희망은 언제나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서부해안 연대기>에는 마치 할머니가 자신의 손자와 손녀에게 들려주듯, 조곤조곤하며 평화로운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연대기의 세 작품은 '잘못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들이 혼돈의 시기를 거쳐 자신의 능력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그 쓰일 곳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요. 『기프트』의 오렉은 시를 쓰고 노래하는 재능을, 『보이스』의 메메르는 책의 이야기를 듣는 재능을, 그리고 『파워』의 가비르는 읽은 것을 기억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힘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모두 책과 언어, 그리고 기억에 관한 재능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폭력과 억압, 독재로 얼룩진 서부해안에서 이런 재능들은 전혀 환영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재능이, 누군가를 지배하고 파괴하는 힘보다 이 세상을 분명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리라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어슐러 르 귄은 누구보다 그런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정말로 할머니가 되어 버린 노작가는, 『보이스』의 수장 어르신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메메르, 어둠 속에 들어가야 한다면, 저 어둠은 그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주려는 어머니이자 할머니라는 걸 생각하렴. 네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언어를 쓰긴 하지만, 그건 배울 수 있어. 나도 저기 들어가야 했을 때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지."


겨울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성장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앞에 놓인 어둠은 한없이 깊고 무겁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혹독한 나날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봄은 반드시 옵니다. 우린 모두 남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것입니다. 세상은 때때로 사악하고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며, 과거의 잘못과 아픔을 기억하는 어른들로 가득합니다. 우리가 미래를 믿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가끔씩 우리 삶과 이 세계가 좀 막막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어른이든 아이이든, 어슐러 르 귄의 <서부해안 연대기>가 작은 힘이 되어줄 거라고 믿습니다. 오렉의 아내인 그라이의 말처럼 “뭔가를 품은 사람만이 그걸 찾는 법”이라면, 문학이란 언제나 그 ‘뭔가’를 말해주는 가장 좋은 안내서일 게 분명하니까요. 



SF 판타지 문학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의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올해로 작가 경력 55년을 맞이하는 SF 판타지 문학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의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기프트》, 《보이스》, 《파워》 수록)이 국내 출간 1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가격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32,000원->22,400원 정가 대비 30% 할인)


10여 차례의 휴고상, 네뷸러상 수상, 전미 SF 판타지 작가협회 선정 ‘그랜드 마스터’, 세계환상문학상과 카프카상, 필그림상 수상 등 SF와 판타지를 아우르는 화려한 수상 경력과 ‘SF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라며 누구나 인정하는 독보적인 문학성, 무엇보다 반세기 이상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선보여온 다양하고도 충실한 이야기로 매번 독자들을 설레게 하는 르 귄. 잘못된 재능을 갖고 태어났지만 책과 이야기, 그리고 시에 대한 사랑으로 힘겨운 시기를 이겨내는 특별한 아이들의 성장담을 그린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은 헤인/에큐먼과 어스시의 세계를 벗어난 새로운 판타지 성장소설로서 독자와 문학계에 인상적인 궤를 남기며 르 귄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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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멜라스’와 BTS의 ‘봄날’에 대하여 | 리뷰 2018-01-2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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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르 긘 저/최용준 역
시공사 | 2014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별로 돌아간 어슐러 르 귄 작가를 추모하며 지난해 큰 사랑을 받은 '바람의 열두 방향'에 대한 글을 옮겨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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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돌아간 어슐러 르 귄 작가를 추모하며

지난해 큰 사랑을 받은 '바람의 열두 방향'에 대한 글을 옮겨 적습니다.

이 글은 2017.6.26 시공사 문학숲 포스트에 작성된 글입니다.



“내 판타지 작품 중에 슈퍼히어로를 다룬 것은 한 편도 없다. 마법사가 등장하더라도 그들 역시 보통 사람처럼 실수를 하고 고난을 겪는 존재로 그려진다. 나는 내 판타지 작품이 가능한 한 현실적이길 바란다. 현실 그 자체가 이미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 어슐러 K. 르 귄


방탄소년단

<YOU NEVER WALK ALONE>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거침이 없습니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5월 22일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저스틴 비버, 셀레나 고메즈, 아리아나 그란데 등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K팝 그룹 최초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죠! 미국을 비롯한 97개국 아이튠즈 앨범 차트의 1위를 석권하고, 빌보드와 오리콘 등 해외 음악차트를 휩쓰는 등…. 그야말로 글로벌 스타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것 같습니다. 


<윙스WINGS>의 외전 <YOU NEVER WALK ALONE> 앨범, 그중에서도 타이틀곡 <봄날> 또한 굉장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지난 2월 발표된 <봄날>은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와 해외 여러 나라들의 아이튠즈 송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미국 빌보드 ‘버블링 언더 핫 100’ 15위에 랭크되는 등 국적을 가리지 않는 주목을 받았습니다. <봄날>의 뮤직비디오는 지금 유튜브에서 9,200만에 육박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봄날> MV, 

그리고 어슐러 K. 르 귄


오늘 저희 출판사는 <봄날>에 관하여 조금 다른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지난해 이들의 <WINGS> 앨범의 전체적인 콘셉트를 헤르만 헤세의 고전 <데미안>에서 가져와 출판계에서도 크게 주목했던 바 있죠. 이들의 문학적 영감은 단순한 일회성이 아니었나 봅니다. 방탄소년단은 <봄날> 뮤직비디오를 통해, 놀라울 만큼 훌륭하고 품격 있는 은유적 메시지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짐작하셨겠죠? 이미 <봄날> 뮤직비디오를 보고 수많은 BTS 팬분들께서 말씀해 주셨듯, <봄날>은 뮤직비디오 콘셉트는 어슐러 K. 르 귄의 『바람의 열두 방향』 속 단편 작품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뮤직비디오뿐만 아니라, 이 노래를 통해 방탄소년단이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 또한 이 소설과 정확히 상응한답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1973년 SF 및 판타지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휴고상 단편부문 수상작으로, 그리 길지 않지만 르 귄 특유의 강렬하고 선명한 문체와 메시지를 느낄 수 있는 걸작입니다. 어슐러 K. 르 귄은 『반지의 제왕』의 J. R. R.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의 C. S. 루이스와 함께 판타지 문학을 대표하는 3인방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힙니다. 


그야말로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었던 ‘살아있는 전설’인데요. 그녀의 위상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리한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SF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단연 1순위의 작가일 것,”


그럼, 작품의 스토리와 함께 <봄날> 뮤직비디오의 장면을 간단히 짚어 볼까요? 



1. 온통 겨울뿐인 고독한 시간


“요란한 종소리에 제비들이 높이 날아오르면서, 바닷가에 눈부시게 우뚝 선 도시 오멜라스의 여름 축제는 시작되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의 삭구에는 깃발이 나부꼈다.”

― 『바람의 열두 방향』,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455페이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서두입니다. 오멜라스는 먼 과거의(또는 먼 미래의) 어느 가상의 공간입니다. 왕도 없고, 전쟁도 없고, 노예도 없고, 죄인도 없는, 말 그대로 유토피아에 가까운 공간이에요. 웃음과 종소리, 행진과 잔치와 경주마 등등으로 가득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행복한 시절을 살아가는 마을입니다. 


방탄소년단의 <봄날> 뮤직비디오는 다르게 시작됩니다. 멤버들은 일영(日迎)이라는 ―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는 뜻의 ― 가상의 기차역과, 눈이 쌓인 한겨울의 철길 위에, 고요하기 그지없는 바닷가에, 수많은 ‘친구’들의 주인 없는 짐들을 실은 채 어디론가 떠나는 기차 안에 제각기 떨어져 있습니다. 정국은 “YOU NEVER WALK ALONE”이라고 적힌 퇴락한 놀이기구 앞에서 쓸쓸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혼자입니다. 



그런데 랩몬스터가 텅 빈 기차칸을 통과하여 ‘오멜라스’라는 건물 앞에서 서성이는 슈가와 제이홉을 마주합니다. 랩몬스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여기서 ‘오멜라스’가 처음 등장합니다. 

작가 어슐러 K. 르 귄은 오멜라스라는 용어에 대하여 이 작품의 후기에서 ‘옴 엘라스’, 프랑스어로 “아아, 인간이여”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적어두고 있습니다. 소설과 뮤직비디오의 세계가 ‘인간의 무대’에서 만났습니다. 


NO VACANCY, 빈 방이 없다는 네온이 반짝이고 있는 것도 보이시나요? 

 


그리고 랩몬스터의 시각을 따라, 회상의 느낌에 가까운 장면들이 깔립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고 있군요. 그들은 케이크를 던지고 방 안을 어지럽히며 난동을 피워 댑니다. 그리곤 케이크에 폭죽을 꽂아 놓고 자신들의 시절을 즐깁니다. 하지만 무언가 어긋나고, 흐트러진 모습입니다. 폭죽을 바라보는 그들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둡고 씁쓸한 정서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2. 오멜라스, ‘가짜 행복’이 지배하는 사회



눈이 내리는 겨울밤, 랩몬스터는 제이홉, 슈가와 함께 다시 오멜라스 앞에 섰습니다. 그들이 있을 곳은 거짓 행복으로 가득한 오멜라스 안이 아닙니다. 오멜라스의 행복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었느냐고요?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함께 읽어봅시다. 작가는 아름다운 공공건물들의 지하실 방. 그 지저분하고, 축축하고, 자신의 배설물들이 쌓여 있는 공간에 갇혀서 공포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어느 열 살쯤 되는 아이 이야기를 합니다. 다음 묘사가 더 충격적입니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직접 와서 본 사람도 있고, 단지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만 아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지독하리만치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알고 있다.” 

― 『바람의 열두 방향』,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464페이지


누군가 아주 연약한 존재가 죄도 없이 비참한 삶에 시달림으로써 유지되는 마을의 행복! 그 존재를 적당히 외면하면서, 아니, 조금은 미안해하면서, 그래도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면서 행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의 모습― ‘다 그런 거지, 어쩔 수 없지 뭐’라면서 그 아이들을 애써 잊어버리려는 현대 사회의 잔인함을 어슐러 K. 르 귄은 으스스할 만큼 서늘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러한 ‘잊힌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세월호―. 세월호 참사를 굳이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2014년 봄날에 죽어간 304명의 생명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대부분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아이들과 꼭 같이 10대의 꽃다운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은 국민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우리 모두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던 비극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 비극을 외면하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세월호’라는 상징은 (어슐러 K. 르 귄의 묘사처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자신들의 눈앞의 행복과 안위만 쫓다가 내던져 버린 인간 존엄의 상징입니다. 오멜라스의 세계관으로 말하자면, “지하실 골방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이었습니다. 


3. 오멜라스를 떠나는 방탄소년단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봄날>의 가사를 통해 “너무 야속한 시간, 나는 우리가 밉다”고 노래합니다. 떠난 너를 지우겠다는 말을 그만두고 “조금만 기다리면, 며칠 밤만 더 새우면,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라고 다짐합니다. 그들은 무언가 행동을 하려는 걸까요? 



바닷가에서 신발 한 켤레를 들고 온 지민. 그와 멤버들은 오멜라스 안의 세탁실로 들어갑니다. (지민 옆에 놓인 신발, 보이시죠?) 바로 이 세탁실의 장면이야말로 뮤직비디오의 훌륭한 압권입니다. (시계가 9시 35분에 멈춰 있는 장면은 다시 한 번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방탄소년단은 오멜라스의 가짜 행복, 즉 케이크와 폭죽 대신에, 수많은 희생자들의 옷가지들을 직접 빨아주기로 합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 쌓여서 누구도 손대려 하지 않던 더러운 옷들을 모두 씻어냅니다. 어두컴컴한 옷가지 속에 들어오는 한 줄기 빛. 그 안에서 노래하고 있는 슈가―. 


그들은 드디어 자신들의 ‘봄날’이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들은 가짜 행복이 지배하는 오멜라스를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봄날’을 상징하는 ‘빛’이 그들 곁으로 돌아옵니다. 누구도 찾지 않던 놀이기구에 노란 리본들이 걸리는 동시에 전등이 들어왔고, 기차 위에 앉아있는 제이홉은 먼동이 아름답게 트는 순간, 하늘을 향하여 종이비행기를 날립니다. 



정국이 오멜라스의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따뜻한 색감의 빛들이 가득한 오멜라스의 세탁실을 지나서, 정국과 멤버들은 모두 합류합니다. 이제 방황은 끝났습니다. 8월에도 겨울이 오는 그 끝없는 추위와 어둠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오멜라스 밖은 ‘그 누구의 아픔도 잊지 않는 공간’이며, 그들의 봄날이란 ‘누군가의 슬픔을 잊지 않는 시간’입니다. 



4. 봄날의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다시 함께 모인 그들은 철없이 폭죽을 터뜨리며 시끄럽게 놀지 않습니다. 그들은 조용히 둘러앉아 촛불 하나를 켤 뿐입니다. 수많은 옷가지들은 이젠 더 이상 깊고 축축한 어둠 속에 있지 않네요. 멤버들 모두와 함께 푸르디푸른 하늘 높은 곳에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멤버들은 이제 저마다 혼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기차를 함께 타고, 따스한 태양 속에서 겨울에 내렸던 눈이 점차 녹고 있는 들판 밖으로 나아갑니다. 마치 설국열차의 엔딩을 연상케 하는 이 시퀀스에서 일곱 멤버는 서로를 서로에게 의지하며, 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 곧고 강인한 나무를 바라봅니다.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세계 전반에서도 나무는 아주 신성한 생명으로 그려지고 있답니다.)


한겨울의 황량함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벌거벗은 나무― 지민은 바닷가에서 가져온 신발을 그 나무 위에 걸어 줍니다. 말할 것도 없이, 신발에 깃들어 있는 죄 없는 영혼을 추모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 벚꽃 잎이 휘날리는 봄날의 푸른 하늘과 나무를 멀리 카메라에 담으면서 뮤직비디오는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어슐러 K.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어떻게 끝나고 있을까요? 여러분께 작품을 읽는 재미를 빼앗지 않기 위하여, 결말부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결말이 <봄날> 뮤직비디오의 엔딩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입니다. 



어슐러 K. 르 귄은 <봄날>보단 조금 더 여운을 남기고, 조금 더 고독한 해결책을 암시했지요. 더불어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뒤의 단편 「혁명 전날」에 대해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라고 작가 스스로 후기에서 밝히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에겐 일곱 멤버가 함께 봄날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봄날>의 뮤직비디오에서도 그런 다짐이 잘 드러나 있지요. 그들에게 있어 ‘YOU NEVER WALK ALONE’이란 문장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멤버들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는 격려의 말이기도 할 테니까요. <YOU NEVER WALK ALONE> 앨범의 마지막 곡, ‘A Supplementary Story: You Never Walk Alone’의 한 구절처럼 말이죠. 


“넌 같이 걸어줘

나와 같이 날아줘

하늘 끝까지 

손닿을 수 있도록

이렇게 아파도 

너와 나 함께라면 

웃을 수 있으니까”


5. 마무리하며


어슐러 K. 르 귄은 1970년대 초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쓴 배경에 대하여 “미국인이 처한 양심적 딜레마”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중 산업사회가 고도화되며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는 상황, 그리고 유례없이 부유한 생활을 누리는 미국인들이 소외된 이웃에게 일말의 죄책감이나 부채감도 없이 미국 사회를 찬양하는 분위기를 비판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리고 그 메시지에는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습니다. 


이 작품 말고도 『바람의 열두 방향』에는 작가의 광활한 작품 세계를 짐작게 하는 초기 걸작들이 수두룩합니다. 60년대에서 70년대, 작가가 아직 SF/판타지계의 거장이 되기 전에 자신의 세계관을 정립하는 ‘성장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그런 면에서 어슐러 K. 르 귄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바람의 열두 방향』으로 입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둠의 왼손』이나 어스시 전집 등 그의 대표작들을 천천히 읽어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방탄소년단 또한 이러한 경험을 통과하며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미 세계의 최정상에 서 있지만, 그들 또한 더욱더 높고 아름다운 어딘가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리라 확신합니다. <봄날>은 어쩌면 그들에게 중요한 도약이 아닐까 기대해 봅니다. 맨 처음 인용한 어슐러 K. 르 귄의 말처럼, 우리 세계에 필요한 것은 슈퍼히어로가 아니니까요. 


함께 아파할 줄 알고, 때로는 실수하면서도, 누군가의 슬픔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존재야말로 가장 강한 영웅입니다. 방탄소년단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지  출처: 방탄소년단 <봄날>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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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과 사람을 듬뿍 담아 "네 간을 먹어버릴 테야" | 리뷰 2017-12-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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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두 번째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저/김서령 역
시공사 | 2017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세상에서 하나뿐인 기발하고 재미있는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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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기도 하지만 살짝 소름 끼치는 이 표현은 

번역을 했을 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하고많은 페르시아 표현 중의 하나예요.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박에 관심을 끄겠지만,

사실 이건 페르시아 사람들의 사랑 고백이에요.


애정과 사랑을 듬뿍 담아 건네는 말로

가족이나 친구처럼 소중하게 아끼는 사람에게만 쓴답니다.

‘널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거야’나

‘넌 나의 심장’ 같은 표현과도 의미가 닿아 있어요.


그런 표현도 있잖아요.

‘정말 사랑해, 널 먹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니까.’


세상에서 하나뿐인 기발하고 재미있는 표현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_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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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마지막 회 명장면/명대사 | 책 이야기 2017-12-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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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마지막 회를 보며 폭풍오열하셨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다음날이 걱정될 만큼 눈물을 철철 흘렸고요. 드라마를 보셨던 대부분의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결국 엄마(원미경 분)는 아빠(유동근 분) 곁에서 세상을 평화롭게 떠납니다. 참 아픔 많았던 그녀의 한 생도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하겠지만, 또 어쨌든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그렇듯이….

“너 다 잊어버려도, 엄마 웃음도, 얼굴도 다 잊어버려도, 네가 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건 잊으면 안 돼.”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최민호 분)에게 말하는 장면입니다. 아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죠. 엄마는 이어 딸(최지우 분)에게 "사랑해. 너는 나지, 나는 너고. 알지, 그거?"라고 말하고 함께 통곡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번 생에서 참 아픔 많고 눈물 많았던 엄마를 잃었거나, 언젠가는 잃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 아픔과 한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요?

  

우리들이 모두 누군가의 뱃속에서 나왔다는 것, ‘너는 나이고, 나는 너’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만큼 날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존재가 바로 ‘엄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따뜻한 안도감을 전해 줍니다. 그녀는 이 세상을 하직하더라도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예요. 너무나 당연하게 말입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엄마를 그런 존재로 완성시켜 주는 아빠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되겠죠. 우리는 아빠와 엄마의 로맨스,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사랑의 약속으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여자였기 때문에 우릴 그토록 사랑해줄 수 있던 것이고요. 

***

작가 노희경은 평생 동안 엄마를 배신하고 어마어마한 아픔을 주었던 아빠를 미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훗날 조금은 용서했지만요.) 그런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속 엄마는 훨씬 더 나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평생 가족에 치이면서 묵묵히 희생을 감수했다는 것은 다르지 않더라도, 결국 자신을 아껴주는 남편의 곁에서 조용히 눈을 감게 되니까요. 남편은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었을지언정 마지막 순간 그녀를 향한 순애보를 감동적으로 보여줍니다. 


“당신은 이 좋은 집에서 20, 30년은 더 살겠지. 집이 좋아도 신나고 재미나 진 않겠다. 나 없으면.”

특히 마지막 회에선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났죠. 아내는 자신이 죽고 나면 좋은 집에 살아도 이젠 신나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투정을 부립니다. 화제를 전환하며 남편은 그녀에게 씻으라고 하지만, 아내는 피곤하다고 씻기 싫어합니다. 남편은 웬일로 자신이 씻겨주겠다고 나섭니다. 

욕조의 비누 거품 속에 자리한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는 씬에 이어, 조용한 별장에서 둘만의 시간을 누리며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의 훌륭한 변용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더 리더>의 원작 소설이지요.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고 싶어서 더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잠이 들고, 마당의 톱질 소리도 잠들고, 지빠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부엌에 있는 물건들의 색깔 중에서 약간 밝거나 약간 어두운 잿빛 색조만이 남게 될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60페이지 중에서


남편은 『책 읽어주는 남자』의 이 구절을 골라서 읽어줍니다. 말 그대로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읽어주는 책입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가 1995년 출간했는데요. 두 연인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랑을 홀로코스트의 비극, 역사의 반성과 세대를 넘나드는 고통이라는 키워드들 안에서 촘촘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위의 구절은 청년 마이클이 한나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던 때의 기억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함께 머물고 싶어서 오랫동안 책을 읽던 마이클의 심정과 드라마 속 남편의 처지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런 순간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의 기쁨과 다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책 읽어주는 남자』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도 그 끝에는 이별과 죽음이 있습니다. 뒤이어 읽어주는 책의 구절은, 마이클과 한나의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역사의 무게에 짓눌린 채 자신의 벌을 감내해야 했던 한나. 그리고 자신이 그녀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이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도 따라 일어섰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았다. 이미 벨이 두 번이나 울린 상태였다. 다른 여자들은 벌써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그녀의 두 눈은 다시 나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나는 그녀를 두 팔로 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감촉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잘 가, 꼬마야.”

“당신도 잘 있어요.”

―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249페이지 중에서


운명적인 이별을 직감하는 그 순간, 우리들은 그 또는 그녀와 처음 사랑에 빠졌던 ‘꼬마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왜 좀 더 일찍 마지막 회 같은 애틋한 시간들을 더 많이 갖질 못했을까요? 왜 세월의 무게감과 먹고사는 일에 그다지도 쫓기면서, 자신의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던 걸까요?

  

왜 자식들은 엄마의 힘이 되어주진 못할망정 그렇게나 괴롭히며 자라왔던 걸까요?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사랑과 이별, 죽음을 그린 드라마와 영화, 책을 찾게 되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못 다한 회한이 남아서 우리를 울게 만들지만, 우리는 또 다시 이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고, 그/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시간이 남아있음을 감사하며….

  

“잘 가, 꼬마야.”와 “당신도 잘 있어요.”라는 말을 주고받을 시간이 언젠간 올 것을 알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노희경 작가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유죄’일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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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저
북로그컴퍼니 | 2018년 01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노희경 원저
북로그컴퍼니 | 2015년 05월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저/김재혁 역
시공사 | 201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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