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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 책 읽고 나서 2023-01-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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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정대건,임현석,서고운,이유리,이서수,김화진 저
읻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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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A형. ISFP.

 

이렇게 밝히면 나에 대해 다 알 수 있나. 다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짐작은 가겠지. 소심하고 소심하고.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고 누워 있어서 넘나 행복한 사람. 누워서 내일 뭐 해야지 계획하지만 막상 일어나면 계속 누워 있다. 일어나니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할 말이 있는데 울음이 먼저 터져서 못하고 이박 삼 일 동안 앓아누우면서 그때 그 말을 했어야지 대본을 쓰고 있다. 

 

알라딘에서 독자 펀딩 한다고 푸시 알림을 보내왔다. 내가 전화기에 이런 설정을 해놨던가. 아무튼. 토끼와 호랑이 일러스트 표지가 깜찍한 무엇보다 이서수의 단편이 실려있다는 말에 홀린 듯 펀딩에 참여한 책,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에 뒷장에는 내 이름이 있다. 펀딩에 참여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혈액형 성격학의 시대가 가고 바야흐로 MBTI의 시대가 도래했다. 

 

성격을 정의하는 단어는 500개가 넘는데 빠르고 간단한 걸 좋아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알파벳 16개로 상대의 성격을 알 수 있는 MBTI는 인기가 있나 보다. 하도 MBTI MBTI 하길래 나도 검사해봤다. 결과는 ISFP. 인터넷에서 잇프피에 대해 찾아보다가 마치 점쟁이 앞에서 맞아요, 맞아, 제가 그랬어요 하는 것처럼 되더라. 나도 날 잘 모르는데. 알파벳 네 개는 나에 대해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는 각각의 MBTI 유형들을 주제로 묶은 테마소설집이다. 인티제부터 인팁, 엔팁, 엔프티 등 여섯 개의 MBTI 유형의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잇프피는 없나. 잇프피는 이 소설집에는 없고 2권에서 소설가 이주란이 그린단다. 그때까지 존버. 사회적인 동물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무람없이 할 수 있는 대화의 주제란 날씨와 날씨. 그 외 다른 걸 물어보는 걸 극혐하는지라 어색해지고 만다. 

 

그럴 때 MBTI를 물어보는 건 더 최악이겠지. 80년 대생 티 나게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는 트렌드에 뒤처지는 자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 MBTI가 더 나으려나. 확실한 자기 의견이 없고 글을 쓸 때도 단정 짓는 걸 어려워하는 잇프피라 지금도 이랬다저랬다 하고 있다. 그래도 최근에는 내가 잇프피라는 걸 알았고 아이와 이의 성향 차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서 물어보곤 한다. 

 

이서수의 소설 「알고 싶은 마음」의 내용처럼 알고 싶어서 좀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MBTI를 물어보는 거라면 귀엽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테마소설집을 읽으면 좋은 게 하나의 주제로 다른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개성과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한 작가를 좋아하면 거의 사찰 수준으로 좋아하는데 MBTI까지 알 수 있다니 어찌 펀딩 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잇프피답게 주말 이틀도 누워 지냈다. 여행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좋아하죠, 여행, 내방여행이요라고 했다가 갑분싸해졌지만 잇프피들은 누워서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책으로 여행 지식 쌓고 유튜브로 본 여행지의 감성을 대신 느끼며 눈 오는 날은 밖에 나가지 않고 눈이 내리는 풍경을 화면에 띄워 놓은 채 초콜릿을 까먹는 아주 훌륭하고 방구석스러운 분위기를 느끼느라 피곤하다. 

 

책에는 소설집에 참여한 작가들에게 자신의 MBTI에 대해 인터뷰한 글이 있다. 잇프피면서 인프피 소설을 쓴 김화진 소설가의 답변이 웃겼다. 잇프피 영화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하는데 답변이 자신이 없어서 거의 울고 있다고. 어쩜. 잇프피들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를 절대 하지 못하는군. 같은 인류를 만나서 웃기고 반가웠다. MBTI 그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각박한 세상에 잠시 어색함을 내려놓고 웃을 수 있다면 MBTI 할아버지라도 믿을란다. 

 

나 잇프피니까 싫은 소리는 하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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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 얀다르크-염기원 | 책 읽고 나서 2023-01-2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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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구디 얀다르크

염기원 저
은행나무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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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될 때마다 귀가 가렵다. 더러운 거 아는데 그럴 때마다 손가락을 넣어 귀를 판다. 피가 나고 나중에는 염증이 생겼다. 병원 가기 싫어서 몇 년 전에 처방받은 연고를 면봉에 묻혀서 임시 조치를 했다. 감기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갔을 때 석션으로 코를 뚫고 그전에 코로나 검사도 하고 음성이어서 속으로 다행, 다행 그러면서 의사에게 귀에서 피가 난다고 했다. 의사는 귀 건드리지 마세요 했다. 네네네.

 

다행히 위병은 없는 듯. 역류성 식도염 그런 것도 없고. 불면증도 없다. 너무 잘 자는 게 문제. 베개에 머리가 닿으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잔다. 그러고도 주말에 낮잠을 기본 세 시간 때린다. 염기원의 장편소설 『구디 얀다르크』의 주인공 사이안은 직장에 다니는 내내 불면증에 시달린다. '야근해도 정시출근, 회식해도 정시출근, 야근과 회식이 없어도 새벽 네 시가 되어야 잠드는 생활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안의 불면증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구디 얀다르크』는 센스 있는 자라면 알겠지만 구로디지털단지, 이안과 잔다르크를 줄인 말이다. 과거 경공업 중심의 산업화 시절에 구로공단은 섬유 및 의류공장으로 가득했다. 지금은 지방으로 공장이 이전하고 IT 기업, 벤처 중심의 스타트업 회사들이 들어섰다. 이름도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뀌었다. 그곳에서 불면증 때문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이안이 IT 회사에 입사하고 그 또한 불면증 덕분에 업무에 쉽게 적응한다. 

 

발주 물량을 맞추기 위해 각성제를 먹어가며 일하던 여공은 잠을 자고 싶어 수면제를 먹으며 미싱 대신 컴퓨터 앞에 앉은 이안으로 21세기에 도착해 있다. 술자리에서 하는 불행 배틀은 지겹다. 쇼미 더 불행도 아닌데 다들 술만 마시면 자기 살아온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영혼 조금 담아 호응을 해주지만 힘들다. 여기 안 힘든 인간이 어딨냐. 내가 썰을 안 풀었다 뿐이지 장난 아니다.

 

책으로는 괜찮다. 이안 역시 한 불행했다. IMF 때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 일 이후 엄마는 키친드렁커가 되었다. 엄마는 헌신했던 교회에서도 버림받았다. 시집 식구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이안은 불면증을 힘 삼아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간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외면하며 대학 생활을 즐기지만 이마저도 엄마의 잘못된 선택으로 어려워진다. 이안은 간신히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다. 

 

회사에 들어가면서 고통은 증폭된다. 업무는 그렇다 치고 인간들은 왜들 그러는지. 다들 퇴사의 이유 중에 하나가 인간관계 때문인 거죠. 『구디 얀다르크』는 IT 회사와 스타트업에서 벌어지는 악독한 근로 환경을 고발한다. 이안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노조를 설립한다. 이안이 아침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면서도 꾸역꾸역 회사에 다니는 장면에서 그게 싫어 회사를 차려 대표가 되었지만 월급날이 기다려지는 게 아닌 무서워하는 장면에서 사는 건 별거 없다. 그저 죽을 때까지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농협 간부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젊은 나이였다. 그가 남긴 글과 지인들의 이야기는 슬프고 힘들었다. 『구디 얀다르크』의 결말이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자주 내가 아닌 것처럼 굴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육성으로 파이팅 외쳐주는 누군가가 옆자리에 있으면 좋겠다. 잘 싸우자, 잘 싸워라. 너도 나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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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영의 이해 | 책 읽고 나서 2023-01-2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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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사랑의 이해

이혁진 저
민음사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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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수영을 이해했다. 아니 이해하고 말았다. 감히 이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혁진의 소설 『사랑의 이해』는 제목만 들으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처럼 사랑 담론서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소설의 형식을 취한 이해 불가능한 사랑을 네 남녀를 등장시켜 풀어낸다. 풀어낸다고 썼지만 매듭을 지을 수 있는 건 소설을 끝까지 읽고 오랫동안 상수, 미경, 수영, 종현을 잊지 못하는 독자의 몫이다. 

 

건조한 문체의 소설이다, 『사랑의 이해』는. 간단하게 말하면 은행에서 벌어지는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인데 간단하게 말해지지 않는 소설이다, 『사랑의 이해』는. 그 옛날 《사랑의 스튜디오》 버전 식으로 얘기하자면 네 남녀가 쏘는 사랑의 막대기는 어긋나기만 한다. 상대가 관심을 표하면 일단 받아들인다. 그러고 생각한다. 내가 저이를 사랑하는 걸까. 

 

관심과 위로에 목말라 있는 현대 사회에서 나누는 애정결핍으로 가득 찬 연애를 그리고 있다. 다시 안수영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드라마로 만들어져 방영되고 있어 원치 않아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사랑의 이해》 클립을 보고야 말았다. 덕분에 책을 읽기도 전에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획득했다. 그래 그건 좋고. 활동하지 않는 뇌세포를 굳이 깨울 필요 없게 도와준 거니까. 

 

문가영=안수영으로 가고 유연석=하상수로도 가면서 『사랑의 이해』 속으로 쉽게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소설 다 읽고 드라마 봐야지 했던 건 결말을 미리 알고 싶고 한 권의 소설을 16부작으로 늘였으면 이야기 진행이 더딜 것이라는 짐작 때문이다. 이제 나는 결말을 알고 주인공의 미래까지도 아는 전지적작가시점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 『사랑의 이해』를 읽으므로써. 

 

아. 안수영. 이제 진짜 안수영 이야기. 소설의 결말로 나아가면 안수영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든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했다. 상수는 끝까지 수영의 행동을 이해 못 한듯싶다. 왜, 왜 그랬어? 수영아를 묻고 싶지만 참는다. 나는. 수영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지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차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은행에서 벌어지는 직장 로맨스 성격을 띠는 『사랑의 이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느 직장에서나 벌어지고 있는 차별 서사도 다루고 있다. 수영은 창구 직원인 텔러이고 종현 역시 계약직 청경이다. 상수나 미경은 행원으로 분명하게 계급이 나누어진 채 사랑을 시작한다. 수영을 두고 회식에서 나누는 쓰레기 같은 대화들. 능력이 있음에도 외모와 언행으로 말해지는 수영의 업무. 자신을 뻔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는 상수 앞에서는 할 말을 다 하지만 집세와 생활비를 생각하느라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술자리에서의 수영의 머뭇거림. 

 

그런 수영의 머뭇거림을 알아채고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알려주는 인물의 등장. 그래서 수영은 새벽에 전화를 건다. 

 

가장 솔직해져야 할 사랑 앞에서 자신의 진심을 감추고 왜곡하는 인물들을 통해 이제 사랑조차 중산층만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조건과 조건을 따져가며 조건 밖에는 남지 않는 연애의 끝은 쓸쓸하다 못해 허무와 후회에 자책이 뒹군다. 사랑의 이해라고 했지만 사랑은 이해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내내 외치고 있다. 이해하려 할수록 알 수 없게 되는 정답 없이 오답풀이만 가득한 사랑이라는 난제를 받아든 우리는 상대에게 무얼 줄 수 있을까. 

 

준다고 해봤자 오해하기 딱 좋은 이상한 진심 밖에는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수영이라는 인물을 초반부에 그리는 방식은 여전히 전형적이고 틀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간과 끝으로 가기 위한 빌드업이었겠지만 이는 작가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상수는 수영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영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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