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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음의 의미 | 책 읽고 나서 2019-10-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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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관객모독 -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저/윤용호 역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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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연극을 보러 가도 공연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내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땅바닥을 보곤 했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어색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배우가 나온 연극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좀 튀는 걸 좋아해서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제 막 연기를 끝낸 배우에게 내가 뭐라고.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의 시작은 흥미롭다. 기존 희곡의 서술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배우를 위한 규칙들로 시작된다. 연극을 준비하는 배우들은 한트케가 지시하는 규칙을 이행해야 한다. 사물의 소리를 듣고 현상을 목도하는 일. 발성을 가다듬고 호흡법을 연습하고 얼굴 표정을 짓는 일이 아닌 소리를 들으며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네 명의 배우는 대사를 따로 나누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너희들로 끝나는 기괴한 연극. 배우의 음성이 아닌 활자로 된 언어로 『관객모독』을 보면서 무대를 상상했다. 그 안에는 숨을 자유롭게 쉬고 어색하게 눈치를 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잘 차려입고 오랜만에 문화적 허영심을 충족하러 온 관객을 향해서 독설을 날린다. 기존에 봐 왔던 연극이 아니어서 관객들은 당황할 것이다.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여 그들의 의식을 허세를 낱낱이 까발린다. 『관객모독』은 줄거리가 따로 없는 희곡이다. 


연기를 하지 않는 연기를 하며 대사가 아닌 대사를 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움직임과 대사의 상징을 찾는 일은 의미 없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이 있다고 믿는 관객에게. 지금 무대의 시간이 흘러 다음이 있다고 믿는 관객에게 이곳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아무것도 흉내 내지 않는 연극을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허구의 세계 안에서 환상은 실종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환상이 되어 사라진다. 시간은 정지하고 언어는 소멸한다. 『관객모독』은 언어로써 시간의 부재를 증명하려 한다. 실컷 모욕과 모독을 보여주고 안녕히 돌아가시라는 끝인사를 하는 연극. 당신은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가 궁금해서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미 없는 일.

『관객모독』은 의미 없음의 의미를 찾아간다. 당신이 찾고자 하는 의미는 이 세계에 어디를 둘러봐도 없으며 결국 의미 없음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받아들고 쓸쓸히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에서 퇴장할 일만 남았다. 한밤중 들려오는 개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막힌 수챗구멍을 들여다보는 일.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 구멍에 나를 끼워 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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