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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일 | 책 읽고 나서 2019-10-2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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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저
난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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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에 버려진 책상을 주워 왔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주말 오후의 일이다. 책상은 단단하고 깨끗했다. 비싼 유리까지 끼워져 있었다. 누가 버렸을까, 이 좋은걸. 빈 벽을 보는 보는 시간이었다. 저기에 책상 하나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책상을 꾸미고 몇 권의 책을 올려두고 아끼느라 쓰지 않은 연필을 꽂아 두는 일. 그 일로 나는 글 다운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저녁은 급하게 찾아오고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하는 10월의 하순. 비루한 비유이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이 있었다.

10월의 일. 자주 상념에 빠지고 무수한 가정으로 시작하는 자책을 한다. 말기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이는 체념했다. 그러다 10년만 더 살았으면 했다. 그이가 죽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가 10월에 아팠고 11월에 떠났다. 한 번쯤 만나봤으면 했던 시인은 1년을 아프고 10월에 시의 세계로 돌아갔다. 떠나고 돌아가는 일이 죽음이라면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아야겠다. 담담히 맞이하는 연습을 이제부터 해야겠다. 죽는다는 건 온 힘을 다해 사랑한 이들에게로 떠나가는 것.

허수경. 언젠가 한 번은 만나겠지. 그가 떠난 세계 역시 내가 가야 할 곳이므로. 시인이 남기고 간 시작 메모와 미발표 시, 작품론과 시론이 담긴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을 주워온 책상에 앉아 다 읽었다. 2011년부터 쓰인 시작 메모는 메모라기보다는 시였다. 시가 되지 못한 글은 얼마나 아프고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을까. 자신도 시가 되고 싶다는 아우성.

평생 시를 쓰는 일에 종사하면서 얻은 것은 병이고 잃은 것은 나다. 이 말을 어떤 직업에다 대고 해도 맞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일은 일이다.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中에서)

시인은 오로지 시만 생각하며 살았다. 생활인으로서의 자의식도 시인을 유지했다. 글을 쓰겠다는 안간힘이 애써 모은 용기가 『가기 전에 쓰는 글들』에 있었다. 타국에서 쓰고 쓰려고 했던 시의 언어는 결국엔 모국어였다. 서울과 진주에 두고 온 불빛과 친구, 거리였다. 죽어 잊힌 고대의 유물을 발굴하는 일에도 힘의 원천은 시였다. 간절히 힘을 다해 생의 끝에서까지 하고 싶어 했던 일 역시 시 쓰기였다. 오로지 시가 아니면 안 되는 삶을 살았다. 마지막에 가서도 시라는 절대자 앞에서 희구했다. 시를 쓰게 해달라고.

일요일이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中에서)

사랑이 있었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이 삶을 끌고 갈 수 있는 바보 같은 동력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급하게 찾아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시를 향한 사랑. 그 사랑에 이름을 붙이기를 허수경은 간절히 원했다. 그가 쓰는 시는 사랑이 되었고 가장 깨끗한 용서를 말한다. 시의 정의를 내리는 일에 서툴렀다. 쓸쓸한 시절을 통과한 자리에 시만이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앞으로도 사랑과 아픔을 노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이르게 혹은 너무 급하게 아니면 너무 늦게 찾아온 시의 멈춤.

저녁이다. 긴 잠을 자고 있는 일어난 나무들. 뿌연 눈앞을 연기로 채워둔 마음의 골목들. 아마도 초봄이라 발 시린 아이들이 있나 보다.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中에서)

이 글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제문이 된다. 애초에 책상이 있다고 해서 시가 쓰일 일은 없었다. 버려진 책상이 안쓰러워서. 덩그러니 거기 왜 찬바람을 맞고 있나. 언젠가 당신으로부터 결별의 말을 듣고 오랫동안 당신을 떠나온 시절이 있었다. 버림받았다는 사실. 당신은 시. 책상은 나. 시가 아니어도 살아갈 수 있음을 버림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책상 너는 버려졌지만 같은 처지였던 내가 이 공간으로 가져와 시가 아닌 다른 글을 쓴다. 시로써 살고 싶어 했던 그가 떠난 지 일 년의 시간이 흘러나온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을 읽고 한 사람을 애도하는 일로 너의 시간은 다시 살아난다.

언젠가 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中에서)

언젠가 쓸 수 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었는데 좀 더 살아내지 못한 시인의 예언인 '언젠가 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라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죽음은 이토록 가까이에 있고 그리움은 멀어지지 않는다. '가기 전에 쓰는 시들'이라고 썼다가 시를 지우고 글이라고 썼던가. 시인을 통해서 세상에 나오고 싶어 했던 시는 어디에서 울고 있는가. 연필을 들었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글과 시를 적었다. 시면 어떻고 글이면 어떻겠는가. 귤 하나를 먹고 가지 못한 삶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나서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음이 있고서야 삶이 존재한다는 듯이. 살아가기가 고통밖에 없으면 어쩌지 했다가 고통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지,라는 참혹한 깨달음. 잘린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나온 잎이 뒹구는 오후를 지나 당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이 별의 세계에서 이별의 인사를 준비하고서. 다시 만나면 이별이 아닌 게 될 것이므로. 간단하게. 안녕을 말하고 그간의 안부를 묻는 일로. 시가 있어서 시가 당신 곁을 함께해서 온전히 시의 시간을 살아간 당신이었다는 것을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을 넘기며 안심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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