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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아저씨의 유럽산책 | 슥슥밑줄긋기 2009-02-0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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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 저/권상미 역
21세기북스 | 200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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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맛있는 초콜릿 크림 파이나 기대하지 않은 거액의 수표를 받는 일을 제외하고, 상쾌한 봄날 저녁 서서히 저물어가는 저녁 해의 긴 그림자를 따라 외국 도시의 낯선 거리를 한가하게 산책하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그러다가 가끔 멈춰서 가게 진열장을 들여다보거나, 교회, 예쁜 광장이나 한가한 부두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하면서 앞으로 오랫동안 흐뭇하게 기억할 유쾌하고 내 집 같은 음식점이 과연 길 이쪽에 있을지 저쪽에 있을지 망설이는 일은 또 어떤가? 나는 이런 일이 너무도 즐겁다. 매일 저녁 새로운 도시에 가보면서 평생을 살아도 좋겠다. (10.코펜하겐, p.167)


이 아저씨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란 게 이렇다. 애시당초 추억을 되짚는 여정이었기에 늘 기억하는 바와 현재를 비교하고, 그때의 좋았던 그곳을 찾아다니는 발걸음이 많다. 어느 도시에 도착하든 중요한 건 짧은 기간 동안 어디에 묵을 것인가와 그 기간이 끝나면 다음 장소로 어떻게 이동할 것이가. 그리고 그 사이 어디를 산책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이다. 이 아저씨의 가장 중요한 여행

행위는 산책. 그래서 제목이 이런 거지.

 

사람들은 따스한 밤공기 속에 별빛을 받으며, 검은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나폴리의 불빛을 배경 삼아 대여섯 명씩 모여 있었다. 저녁을 먹은 다음에 이렇게 모여서 반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게 일과인 듯했다. 10대들은 교회 계단에서 시간을 보냈고, 더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 다리 사이를 누비며 뛰어 다녔다. 모두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나도 저들 중 하나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푸른 섬에

서, 근사한 풍광과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살면서 곱디고운 테라스가 있는 이 예쁜 광장에 매일 밤 산책을 나와 내 이웃들과 담소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14. 나폴리, 소렌토 그리고 카프리, p.242-243)


챕터 제목에는 3개 도시가 있지만, 여기 묘사된 건 카프리. 내가 요새 좋아하는 맥주 이름이기도. 그 맥주 색깔처럼 청량한 듯 따사로운 듯 아스라한 느낌.

 

내가 가본 어떤 도시도 미국 문화의 달콤한 유혹에 이토록 철저하게 저항한 곳은 없었다. 소피아는 어느 모로 보나 완전히 유럽다운 도시였다. 내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유럽은 바로 이런 곳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마음 깊이 뭔가 불편해졌다. (21.소피아, p.375)


소피아의 특징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면서 빛을 잃은 곳이란 점 아닐까. '유럽답다'는 작가의 말에는 여러 가지 모순된 감상이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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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당신도 나도 | 슥슥밑줄긋기 2009-01-07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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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건투를 빈다

김어준 저/현태준 일러스트
푸른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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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가 이렇게 내용에 어울리다니. ㅎㅎ

 

딴지일보도 김어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는데, 이 분 상당히 똑똑하시고, 사회와 제도에 불만 많으시고, 덩치만 큰 영혼 미숙아들에게는 더 불만 많으신데, 그래도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러는 거 같다. 그러니 이리 잔소리 하시는 게지. (아님 책 팔려고?)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거나 혹은 직접 해봤을 법한 각양각색의 고민들-나에 대한, 가족에 대한, 일과 직장에 대한, 이성과 연애에 대한-에 대해 은근 열심히 답해주신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는 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왔고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지 우리가 신체 성장에 비해 정신적 성장에 얼마나 무심해왔는 지 깨고 떨쳐야 할 것들에 얼마나 얽매어 살고 있는 지 새삼 느끼게 되는 말씀들. 물론 다 새로운 말들은 아니다. 그냥 이 지껄임에 낄낄 웃고 장단 맞추면서 한 번 리푸레쉬되면 좋은 거지 뭐.

 

빌린 책이라 반납하기 전에 읽을 때 '맞는 말이셔' 했던 부분들 메모 좀.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25)

 

남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의 뉘앙스와 조사까지 신경쓰느라 사용하는 에너지의 절반만이라도, 의식적으로,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 지 아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투입해보시라. 그렇게 자신의 경계를 파악하고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은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다. 모범 답안 따위도 없다. 당신이 스스로 겪고 배워야 한다. 삶 자체가 그렇듯. 당장은 이것부터 명심하시라. '당신만 각별하진 않다는 거' 건투를 빈다. (32)

 

편파적인 게 나쁜 게 아니라 그에 이르는 과정이 공정하지 않은 게 나쁜 거다. (85)

 

자식이 부모에게 갖춰야 할 건, 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 그리고 애틋한 연민이다. (93)

 

가족이 자신을 위한 사설 자선단체인 줄 착각하는 넘들이 있다. 자신의 몰염치와 이기심을 오히려 가족의 권리인 줄 안다. 인간관계에 이만한 착각도 없다. 이 도착적 가족 윤리, 자본주의의 출현, 사생활의 탄생과 더불어 발명된 '신성한 가족'이란, 근대의 가족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족관계가 주는 스트레스와 대면할 때, 한 가지만 기억하시라.

존재를 질식케 하는 그 어떤 윤리도, 비윤리적이다. 관계에서 윤리는 잊어라. 지킬 건 인간에 대한 예의다. (100)

 

나이 들어 가장 비참할 땐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가 아니라 그때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단 걸 깨달았을 때다 (213)

 

충분히 세계를 돌아보고 나면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세계는 우열로 나뉘는 게 아니라 차이로 나뉜다는 걸. 그리고 그 차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인간이 사는 곳이면 으레 통하기 마련인 인류의 보편 상식을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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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하게 동감 | 슥슥밑줄긋기 2008-05-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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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홍차를 주문하는 방법

츠지야 켄지 저/송재영 역
토담미디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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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패를 계속해서 비관할 것은 아니다. 실패라고 하는 것은 생각한대로 되지 않는 것이지만 다행히도 인간이 바라는 것이 언제나 적절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돈을 마련할 수 없어서 유망주를 살 수 없었는데, 얼마 후에 그 주가가 폭락한다면 살 수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좋은 태도이며 그 만큼 실패와 성공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172,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방법>에서

 

목표를 나타내는 것은 좋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고 인간은 결점투성이라는 것도 가르쳐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이는 어려운 문제에 자신감을 잃고 거짓말하는 수밖에 없다.

 

- p. 177, <친절한 거짓말>에서

 

이 책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문장들이다. 나머지는 완전 웃겨서 시종일관 허허거리면서 읽었다. 하지만 웃음 속에서 여유와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바르게,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똘똘하게, 맞춰서 살아가야 한다는 세상 온갖 잣대들에 조소를 보내보고 싶을 때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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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세설 | 슥슥밑줄긋기 2008-02-1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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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김훈 저
생각의나무 | 200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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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나는 겨우 이렇게 말하려 한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못난 나라의 못남 속에서 결국 살아내야 한다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나라의 쪽박을 깨지 않는 일이라고. 너의 의무는 몇몇 비굴한 이탈자들에 의하여 신성이 모독되었지만,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은 아니라고. (14)

 

메마른 땅과 뜨거운 햇볕은 여름 과일들의 고난이 아니다. 어디로 피서를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온 여름이 다 지나갔다. 축복은 저 숨막히는 무더위 속에 있었던 것임을 여름의 긑물에 한 입의 과일을 깨물면서 문득 알게 된다. 이 많은 과일들을 지상에 차려 놓고, 힘센 여름은 이제 물러가고 있다. (188)

 

*****

 

질타와 훈계 이면에는 아픈 긍정이 있다. 2002년에 나온 책이다. 그 이전 세상사들에 대한 설들이다. 지금의 세상사들에 대해서는 어떤 말들을 하고 싶으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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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다는 건 | 슥슥밑줄긋기 2008-01-1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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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조경란 저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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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다는 건 네 손등에 글씨를 새기는 것과 같아. 아무리 지워도 흐릿한 자국이 남거든. 그러니까 네가 정말 그걸 원한다는 확신이 필요한 거야. 잘 생각해.

 

January에 이 말이 등장하는 순간, 이 이야기는 손등에 너무 깊게 글씨를 새겨버린 여자의 이야기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가장 극단의 감각까지 자신을 몰아가버린 주원. 그로테스크한 결말이 이미지로 남아버린 건 친절한 금자씨의 마녀가 생각나버린 까닭이다. 극한으로 치달아버린 인간의 마음. 그 날것의 느낌이 식욕을 탐하는 행위들로 묘사되면서 더욱 생생해져버렸다. 가장 실재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감각도 어쩌면 무시로 기만당하고 있는 것인 지 모르겠다.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가.

 

온갖 음식들이 묘사되지만 미각보다는 촉각을 자극한다. 이렇게 맛난 음식들이 등장하면서 이토록 식욕을 떨어뜨리는 소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생생한 사랑의 절망을 맛볼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만 먹어보길 권해야겠다, 이 혀.

 

[출처]24-2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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