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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줍자! | 기본 카테고리 2020-05-1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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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2018년 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글을 쓰는 습관이 있어요. 그런데 그맘때쯤 회사를 옮겼더니 출퇴근 시간이 처음으로 1시간 이내로 단축됐습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회사를 가면 무려 2시간 30분이나 여유가 생긴 거예요. 그 시간을 모두 글쓰기로 보내는 건 어려웠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거든요. 뭔가 다른 일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았는데, 오래지 않아 해야 할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게임 프로그래밍을 시작했습니다.


게임? 네, 게임이요.


이런 말을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많지만, 게임은 그렇게 단순한 미디어가 아닙니다. 애들이나 하는 유치한 놀이가 아니고, 중독을 일으키는 유해 매체는 더더욱 아니에요. 게임은 이야기, 음악, 미술, 디자인, 수학, 엔지니어링 등으로 구성된 종합 예술입니다. 수용자의 반응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하면 실행조차 불가하기 때문에, 만들기 전에 온갖 것들을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창조 행위이기도 하죠. 저는 20세기의 예술이 영화였다면, 21세기의 예술은 단연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철학이 확고하다고 게임 프로그래밍을 그냥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3-4개월 동안 유튜브 강의를 보며 똑같은 코드를 따라 짜기만 했습니다. 책도 두어권 사봤어요. 그런데 그렇게 효과적이진 않더라고요. 지나고 나면 기억이 잘 안 났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외우기만 하는 거니까요. 저는 확실히 실습을 통해 이론을 구성해나가는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강의에 나온 게임들을 내 입맛에 맞게 바꾸기 시작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강의에 나오지 않는 것들을 찾아봐야 했고, 돌이켜보면 그때부터가 진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생생한데,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쩔쩔매다 일주일만에 완성한 날이었어요. 그 순간 이제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진구 구장 외야로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며 '소설가가 돼야겠다'라고 생각한 하루키처럼요.


그렇게 해서 '고양이를 줍자'라는 게임이 탄생했습니다.


iOS: https://url.kr/qv9TXt

Google Play: http://bitly.kr/jkIMQ5c7w


제작기간 1년 6개월. 이렇게 간단한 게임을 이토록 오래 만든 이유는 이 게임에 쓰인 모든 코드가 무에서 창조됐기 때문이에요. 어떠한 기능이든 새로운 코드 한 줄을 짜넣기 위해선 처음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느릴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결국 끝냈습니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미'에요. 단언컨대 '고양이를 줍자'는 그거 빼고는 꽤 잘 만든 게임입니다. 처음이니까 뭐. 새 게임이 나오면 이 자리를 빌려 또 소개드릴게요. 이렇게 또 하나, 하나 축적해 가면서. 저는 제 길을 갑니다. 그럼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위해 Cheers!


*p.s - 제발 게임 좀 다운 받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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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 대한 4개의 잠언 | 기본 카테고리 2018-06-1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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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헤아려 보니 2014년 8월부터네요. 1주일에 한개씩, 한번도 빠짐없이 약 4년간 리뷰를 올려왔습니다. 그 기록이 이번주에 깨질 것 같애요. 이번주는 뭔가 쓸만한 책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정기적으로 이 블로그를 찾는 분은 거의 없을테지만(대략 한두명쯤 될 겁니다) 그래도 알려드립니다.


이번주는 리뷰가 없어요!


왜 글을 쓰냐고 물어보면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먹고, 자고, 숨쉬는 걸 의식하지 않듯 읽고 쓰는 사람들한텐 이 둘이 마찬가지 일 같습니다. 그냥 읽는거죠 뭐. 읽었으니 해야할 말이 떠오르는 거구요.


네가 깜냥이 되냐? 라고 물어보시면 큰소리로 "네!" 라고 대답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다년간 꾸준히, 꽤 많은 책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이제 막 책을 읽으려는 분들께 제가 깨달은 것들을 전하고 싶습니다.


첫째, 무조건 재미있는 책을 읽으십시요. 


인생은 짧고, 책 읽을 시간은 더더욱 짧습니다. 이 짧은 시간에 어지럽고 불편하고 내 입맛엔 맞지도 않는 양서를 읽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요. 책을 읽는다는 건 에너지가 대단히 많이 드는 일입니다. 이렇게 힘든 일이 재미까지 없다면 그걸 왜 해야합니까? 독서는 취미지 절대 의무가 아닙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면 재미있게 본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 소설을 찾아 읽어보세요. 책과 영상이 표현한 장면들을 차근차근 비교하다보면 글의 한계와 영상의 한계, 그 미학의 특성들이 눈에 드러나 꽤 쏠쏠한 재미를 줄겁니다.


나는 드라마도 영화도 안봐요. 솔직히 내가 뭘 좋아하는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책은 읽고 싶어요. 라는 분이 있다면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취향이 없는 분한테 무슨 수로 추천을 하나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사실은 취향이 있습니다. 본인이 잘 모르거나 남들만큼 뚜렷히 드러나지 않을 뿐이죠. 이런 분들은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차근차근 떠올려 보십시요. 그때 나를 열광케 했던 게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던가, 나를 까르르 웃으며 손뼉치게 만들었던 건 무엇인가 를 천천히 종이에 적어보십시요. 아마 당신도 잊고 있던 당신을 발견하게 될겁니다.


둘째, 책은 결코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답을 얻기 위해 책을 읽지 마세요.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건 스무살 무렵이었습니다. 일종의 에피파니였어요. 다니던 대학의 교정을 걷고 있는데 문득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이치, 세상에 존재하는 현상, 인간, 그들의 행동 기타 등등. 그래서 미친듯이 철학책을 읽었고 그렇게 20년을 보낸 다음에야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책은 더 큰 질문으로 이끄는 문일 뿐 결코 해답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의문이 떠오릅니다. 날적부터 봉사였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눈을 떴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그가 봉사였던 시절 인식했던 세상과 뜬 눈으로 맞이하는 세상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인지 구조의 대격변이 일어날 겁니다.


그래서 여기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읽을수록 의문은 자꾸 커지고, 많아지고, 농밀해지니까요. 그 의문을 해소해보겠다고 또 다시 책을 들지만 몰아치는 바다를 바가지 하나로 퍼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뭔가를 알기 위해 책을 든 분들은 책을 읽을수록 모르는 게 점점 더 많아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책은 저자와의 대화입니다.


책은 절대 권위가 아닙니다. 절대 진실을 말하지도 않고요. 책은 어떤 사람이 어떤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놓은 종이 뭉치일 뿐입니다. 책을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 분야의 진리를 획득한게 아니에요. 여러분이나 저자나 그저 여행 중일 뿐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글쓴이가 여러분보다 한발 앞서 여행을 떠났거나 여러분과는 다르게 자신의 여정을 정리한 것 뿐이죠.


여러분도 이미 충분히 여행을 경험해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생각이 있겠죠. 책을 읽으며 여러분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비교해 보십시요. 그리고 저자의 생각에 의문을 갖고 반론을 펼치고 논쟁을 해보십시요. 책을 읽어 얻게 되는 중요한 자질 하나가 바로 비판적 사고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게 많이 부족한거 같애요. 수천년간 무거운 위계사회를 살다보니 위에서 내려온 말씀엔 토를 달지 않는 성향이 강하게 뿌리를 내린 모양입니다. 유독 한국에서 유행하는 인문학 강연이나 멘토링 같은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애요. 현상을 스스로 해석하고 비판하고 자기 생각을 만들기 보다는 어떤 현자 혹은 권위를 열심히 따라다니며 그 생각을 전수받으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족집게 과외를 기대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떤 사람이 힘들게 쌓아온 결과를 정답만, 한방에 가지려는 거죠. 다른 나라는 백년이 넘어도 못한 일을 불과 수십년 만에 이룩한 기적적 성장의 기억은 힘들고 오래 걸리는 일을 모조리 비효율적이고, 바보같은 일로 간주하는 악습이 되버렸습니다.


넷째, 행복해지려면 책을 읽지 마십시요.


책읽기는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읽을수록 몸이 뜨거워지고 뼈마디 하나하나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겪습니다. 생각은 인간의 행복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요. 생각이 있고, 그걸로 미래의 고통을 대비한다고 행복이 올까요? 아니요. 살아있는 동안 고통은 끊임없이 찾아올 겁니다. 그건 그냥 그런 거에요. 아무리 뛰어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살아있다는 그 현실만큼은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여러분의 눈엔 미래에서부터 달려오는 더 많은 고통의 무리들이 보일겁니다.


행복해지겠다고, 이 세계가 주는 고통을 좀 덜어보겠다고 책을 읽는 분들은 진정한 해결책과 가장 먼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할수만 있다면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두뇌를 포맷하십시요. 1.5키로짜리 주름 투성이 단백질 덩어리에 아무런 생각도 넣지 않는 것. 그게 바로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왜 이번주에 리뷰를 쓰지 못했냐 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말이 길어졌네요. 아무튼 책읽기에 대한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140자든, 1,400자든.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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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_당신이 궁금해할 모든 것을 적었다 | 기본 카테고리 2014-11-0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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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양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반드시 영화를 본 뒤에 읽으십시요.



나는 단 한 번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감명 깊게 본 적이 없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미래에서 온 안드로이드거나 슈퍼 컴퓨터가 만들어낸 홀로그램이 분명하다. 이 남자의 영화를 보는 건 최첨단 냉장고의 매뉴얼을 읽는 것과 같다. 로봇이 아니라면 이렇게 뻣뻣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항성간 우주 여행을 소재로 다룬다. 이는 이 영화가 배트맨, 인셉션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과학 이론을 활용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사전 공부 없이 영화의 내용을 100%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당신의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가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인터스텔라>의 모든 걸 이해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와 결혼 할 것을 권유한다. 당신의 옆에서 팝콘을 씹는 그 오징어가 세계 상위 0.1% 이내의 천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시간의 상대성


<인터스텔라>의 시간 지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알아야 한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시간은 전 우주에 걸쳐 동일하게 흐르는 절대적 물리량이 아니다. 시간은 물체의 속도 혹은 물체에 가해지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데, 물체의 속도가 빨라 질수록 중력이 강해 질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이 말은 우리가 지구 보다 중력이 10배 강한 행성A로 이사를 갈 경우 10배 느린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편의상 중력의 세기와 시간 지연이 정비례한다고 가정했다). 그렇다고 행성A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입장에선 지구에서 보내는 1년과 행성A에서 보내는 1년은 체감상 완전히 동일하지만 외부 관찰자가 보기에는 행성A의 사람들이 지구인 보다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행성A로 이사간 인류의 수명이 지구인의 10배로 늘어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행성A에서 10년을 산 뒤 지구로 돌아올 경우 우리가 떠날 당시 알고 지냈던 친구들은 거의 죽고 없을 것이다. 시간 지연 현상은 우리를 그저 상대적으로 오래 살게 해 줄 뿐이다.


<인터스텔라>의 초반 밀러 행성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이 같은 시간의 속성을 잘 표현한다.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에 가깝기 때문에 여기서 3시간을 보낸 주인공이 인듀어런스호에 도착했을 때 성년이 된 가족의 영상 편지를 받게 된다. 


밀러는 이 행성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발견하고 적합 신호를 보냈다. 이 신호를 받자마자 쿠퍼 일행이 출발했다고 가정하면 밀러 입장에선 자신이 도착한 뒤 고작 몇 십분 만에 쿠퍼 일행이 도착한 셈이 된다(쿠퍼 일행이 토성의 웜홀까지 2년을 비행하고 웜홀 통과 후 바로 밀러 행성을 찾았다면 아무리 길어도 3년은 안됐을 거고 1시간이 지구의 7년과 같은 밀러 행성에서 이는 고작 20~30분 밖에 안되는 시간이다). 행성을 탈출하며 브랜드가(앤 해서웨이) 했던 대사가 이해 되는 대목이다.



밀러는 우리가 도착하기 고작 몇 십분 전에 죽었을 거에요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 그리고 슬링샷


영화를 봤다면 '지평선'이라는 단어가 몇 차례 등장하는 것을 봤을 것이다. 이는 사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그냥 지평선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블랙홀의 중력 경계를 뜻하는 말로 어떤 물체든 이 지점을 넘어가게 되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영원한 암흑 속에서 살아야 한다.


영화 후반부 쿠퍼 일행은 연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건의 지평선을 이용한 중력 슬링샷을 시도한다. 이는 우주선을 사건의 지평선 가까이로 몰고가 안전 궤도로 진입, 일정 시간 비행 후 궤도를 탈출함으로써 궤도를 회전하면서 얻은 가속력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공에 줄을 묶고 빙빙 돌리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이 때 공을 매달은 줄을 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공은 회전 시 얻은 속력을 바탕으로 하늘 멀리 날아가 버릴 것이다. 쿠퍼는 사건의 지평선 궤도 진입 후 인듀어런스호에 도킹한 두 대의 우주선으로 재추진을 하는 데 이 재추진이 바로 공의 줄을 끊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력을 이용한 정보 전달


영화 내내 중력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적은 없기에 나름대로 추측을 해본다.


우선 디지털 정보는 모두 '0'과 '1'로 기술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선의 특정 물체에 중력을 전달하고(1) 전달하지 않는 것(0)으로 원하는 모든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쿠퍼가 머피의 시계 초침을 움직인 방법도 바로 이것). 특히 중력의 전달 속도는 광속이고 전달 거리가 무한대이기 때문에 멀리 나가 있는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신호로 중력만한 게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의 아주 작은 물체에 중력을 전달할 만한 정교한 기술이 존재하냐는 것이다. 인류가 이 정도로 중력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플랜A의 실현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쿠퍼는 블랙홀에 빠진 뒤에도 중력을 이용해 특이점의 관찰 정보를 송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블랙홀의 내부에선 어떠한 정보도 빠져나갈 수 없다. 물론 호킹복사라고 불리는 열이 방출되기는 하지만 이 열은 모든 정보가 뭉개져 있는 상태이므로 그것이 가스불인지, 모닥불인지, 샤넬 백을 원하는 여자 친구의 불타는 욕망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가설은 중력이 '중력자'라고 불리는 물체를 주고 받으면서 전달된다는 양자화된 중력 이론을 이용하는 것인데... 여기서부터는 나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니 이만하고 넘어가도 크게 탓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플랜A, 플랜B


플랜B는 명확하다. 인듀어런스호에 수정란을 싣고 가 적합 판정을 받은 행성에서 새로운 인류를 양성하는 것이다. 만 박사와(맷 데이먼) 아빠 브랜드는(마이클 케인) 애초에 플랜A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쿠퍼 일행을 속여 여행에 나서게 한다. 문제는 진실을 알게 된 쿠퍼가 지구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 이렇게 되면 만과 아빠 브랜드가 계획한 플랜B의 실행이 물거품이 되므로 만이 쿠퍼를 죽이려 한 것이다. 


문제는 플랜A다. 너무 잠깐 언급되는 바람에 이해하기 힘들지만, 힌트는 아빠 브랜드가 쿠퍼를 로켓 발사대로 데려간 뒤 뭔가 이상한 점을 못느끼겠냐고 물어보는 장면이다. 쿠퍼는 "발사대 전체가 원심 분리기 군요"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플랜A는 강력한 원심력을 이용해 지구의 중력을 상쇄, 엄청나게 큰 우주선 혹은 나사 기지 전체를 들어 올려 적합 판정을 받은 행성으로 여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콜로니는 인류가 플랜A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나의 의문은 원심력으로 어떻게 지구의 중력을 상쇄시킬 수 있냐는 것이다. 사실 지구의 중력을 상쇄하기 위해선 우주선이 아니라 지구 자체의 자전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 이 경우 지구 바깥 쪽으로 큰 원심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물체를 지구 안 쪽으로 당기려는 중력을 상쇄할 수 있다. 물론 우주선 주변에 자석을 달아 빠르게 회전시키면 자기장이 발생해 중력을 상쇄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쓰기 위해 중력 방정식이나 블랙홀 특이점의 관찰 정보가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다른 누군가의 해설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그들'의 존재와 영화의 결말


특이점에서 5차원 큐브를 만난 쿠퍼는 이것이 미래의 인류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완벽한 착각이다. 생각해보자. 미래에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 되어 인류가 살아 남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래인에게는 과거의 인류를 도울 아무런 이유가 없다. 물론 미래의 인류가 다음과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면 그들이 과거에 개입하려는 이유가 성립된다.


인류는 어찌저찌 살아 남아 웜홀을 만들고 블랙홀 특이점에 원하는 시공간을 만들어 놓을 만큼 기술을 발전시키기는 했으나 여전히 옥수수 재배의 미스테리는 풀지 못했다. 이제 우리가 먹을 식량은 50년 치도 남아 있지 않다(영화에 따르면 웜홀이 생긴건 48년 전이다). 그러니 웜홀을 뚫어 과거 인류에게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지구를 떠나기 위해선 중력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데 지금 상황이 너무 급박하니 직접 알려주기보다는 블랙홀 특이점에 그 해를 숨겨 놓겠다.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말아라. 너희들도 정답을 찾는 재미는 누려야 하지 않겠니?


뿡야!


만에 하나 5차원 큐브가 인류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쿠퍼 일행과 같은 시공간 차원에 존재하는 인류는 아닐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우주와는 완전히 별개인 또 다른 우주, 즉 평행우주의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만약 미래인이라면 나는 결코 과거에 개입해 미래를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꾸려는 과거가 현재와 멀수록 역사의 변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내가 과거를 바꿨다고 내가 원하는 미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영화를 보면 과거의 특정 사건 하나를 바꿀 경우(물론 결정적 계기이기는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무슨 짓을 벌이더라도 미래가 확정되는 것처럼 그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머피에게 방정식의 해가 전달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의 사건은 톱니바퀴 물리듯 착착 진행되어 원하던 미래가 올거라 생각하지 머피가 그 해를 스위스 개인 금고에 넣어두거나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다 감전되어 죽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래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게 맞다면 미래를 바꾸기 위한 우리 노력이 사실은 정해진 미래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거대한 역설에 직면하게 된다. <인터스텔라>는 중력이라는, 인류 최강의 속박을 벗어 던지고 기어이 우주로 향하는 인간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 놀란에게 이와 같은 운명론은 모욕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124세가 된 쿠퍼는 콜로니에서 머피를 만난다. 이 때 머피는 쿠퍼에게 브랜드가 도착한 별로 가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분명 '우리는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는 뉘앙스가 있었다. 콜로니의 환경도 이 주장을 뒷받침 한다. 만약 전 인류를 새로운 행성으로 이송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콜로니 안에 밭과 집을 만들 게 아니라 수 백, 수 천만의 동면 장치를 설치했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콜로니는 토성 궤도를 돌고 있었을까? 웜홀을 통과해 새로운 행성으로 가기 위함인가? 아니다. 붕괴된 특이점에서 빠져나온 쿠퍼가 웜홀을 통해 토성 궤도에 등장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머피는 쿠퍼를 구조하기 위해 수 년 혹은 수십 년 간 토성의 궤도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좀 전에 과거의 특정 사건이 바뀌면 이후 개인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 없이 미래가 고정되는 것이냐고 물은 바 있다. 만약 머피가 콜로니를 이끌고 웜홀을 건너 새로운 행성에 도착했다면 온 힘을 다해 지구 멸망이라는 운명을 거부한 머피가 새롭게 확정된 밝은 운명에는 아무 스스럼 없이 순응하는 웃지 못할 결과를 낳는다. 인간은 자유의지 없이 '그들'이(신, 외계인, 평행우주의 인류 등) 인도하는 미래를 따라야만 하는가?


머피는 이러한 운명을 거부한다. 


머피는 콜로니를 끌고 새로운 행성으로 가지 않고 아버지만을 보낸다. 쿠퍼와 브랜드는 그 곳에서 새로운 인류를 성장시킬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인류는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 존재가 아니라 기꺼이 서로를 돕고 협동하는 신인류로 성장할 것이다. 이를 위해 오염된 우리 구인류는 영원히 우주를 돌며 살아가겠다.


진보는 어둠에 항복하지 않고 분노를 외치는 인류의 노래에서 탄생한다. 절대 어둠에 굴복하지 말라. 그 어둠은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믿는 모든 종류의 운명론이다.



놀란이 노래합니다, 오로지 실재만이 실재를 전달해요


배트맨 시리즈와 인셉션으로 30억 달러(3조 이상)가 넘는 수익을 올린 탓에 영화 제작에 관해서라면 얼마든지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ATM기를 선물 받은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번에도 엄청난 규모의 세트와 Non-CG 특수 효과를 선보인다.


그는 인터스텔라의 광활한 옥수수 밭을 찍기 위해 3년 동안 30만 평의 땅을 사들여 직접 옥수수를 심었고,



무독성, 생분해 골판지 C-90을 갈아 실제 모래 폭풍으로 사용했으며, 



이 정도 우주선은 기본으로 제작했는가 하면,



아일랜드 로케이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 모든 사실이 크리스토퍼 놀란을 신화화 하는 데 한 몫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재밌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인터스텔라>는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내용과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웬지 재미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소개팅에서 만난 못생긴 남자가 알 수 없는 짓을 하면 변태, 오타쿠, 찌질이가 되지만 잘생긴 남자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면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뿜어내는 매력남이 되는 것과 같다. <인터스텔라>가 딱 후자의 경우다. 그러니 이 영화에 광분하여 난리를 치는 사람이 있다면 우선 의심의 눈초리로 보라. 의심은 광명을 안겨줄지니, 저리로서 사기꾼과 멍청이와 오타쿠를 구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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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투자법 - 안티 애플이 만든 영화 '잡스' | 기본 카테고리 2013-09-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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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거 아시죠?


내 보기에 '잡스'는 당신이 지난 3년간 보아온 영화와 앞으로 3년간 보게 될 영화 중 최악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약 당신이 애플의 광팬이고 한 때 스티브 잡스를 정신적, 업무적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이라면 '최악'이라는 평가가 너무나 관대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아마 이들 중 대다수가 영화를 보고 난 뒤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잡스'가 구글 인베스트먼트와 삼성 창업투자의 돈으로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ecutive Producer 이건희, 감독 세르게이 브린. 이것이 바로 적의 투자법!








사실도 아니고, 재미도 없어요


스티브 잡스의 생애는 크게 대학시절, 애플의 창업과 성공, 회사에서 쫓겨남, 픽사의 성공과 애플 복귀, i시리즈 성공(iMac, iPod, iPhone)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라는 초등학생 용 소설 작법 이론을 상기시키지 않아도 이미 삶 자체가 드라마틱한 5단 전개로 되어 있음에도 영화는 어디에 집중을 해야하고 어디서 힘을 빼야 하는지도 모른채 127분간 하염없이 방황한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방황의 화신이었다. 어떻게서든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여러 에피소드를 끼워 맞추는데 설상가상 그것들은 거짓말로 가득 차 있었다. 역사를 거짓말로 바꿨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재미를 줘야 마땅하지만 눈꼽만큼도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거짓말로 점철된 소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문학으로서의 탈출구를 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잡스'는? 이 영화는 과연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했던 걸까!?




정말 여기서 끝내는 건가요?


1999년에 개봉한 영화 '실리콘 밸리의 해적'은 '1984 광고' 촬영 현장에서 시작해 1997년 맥월드 엑스포의 기조 연설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1999년에 개봉한 영화가 고작 2년 전인 1997년까지의 역사를 담기에는 시간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97분이라는 짧은 런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20년이 넘는 애플의 역사를 아주 짜임새 있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잡스'는 30분이나 더 긴 런닝 타임을 가졌다. 이 시간은 '실리콘 밸리의 해적'이 그릴래야 그릴 수 없었던, 그러니까 1997년 잡스의 복귀 이후 그가 이룩한 아이맥, 아이팟, 그리고 대망의 아이폰 신화, 현대 기술 문명을 완전히 해체한 그 혁신적 기기의 탄생 과정을 다뤘어야 했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졌고 고로 더 많은 이야기를 다뤄야 할 의무가 있는 '잡스'가 어째서 '실리콘 밸리의 해적'보다도 적은 양의 역사를 다룬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하마터면 세계 미디어 시장을 뒤에서 주물럭거린다는 유대인 음모설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뻔 했다!! -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모스크바 태생의 유대인이다.



잡스의 복귀작 아이맥. 이 때부터 잡스와 조니 아이브의 시대가 열린다.




영화는 재앙이었어요, 재앙이요


조니 아이브스 역을 맡은 배우가 최선을 다해 그의 발음을 따라하려고 한 것, 애쉬튼 커처의 외모가 젊은 시절 잡스와 판박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서 좋았던 점은 단 한개도 없다. 특히 그 엔딩은 피를 토할 정도로 최악이었는데,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혹시 '잡스'가 반지의 제왕과 같은 3부작으로 기획된 것은 아닌가 하여 고군분투 열심히 검색해 보았으나 역시, 허탈함만 더할 뿐이었다.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기는 커녕 더 파묻어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으니, 오호 애재라 내일 아침 비가 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하늘에서 떨구는 잡스의 눈물일 거에요. 돈 있는 분들은 삼성전자나 구글 주식 사두세요. 영화 실패의 반사 이익으로 엄청난 주가 폭등을 기록할지도 몰라.




몇 가지 사실을 바로 잡고 재밌는 얘기를 곁들여 보아요


애플 컴퓨터 탄생시킨 주역 마이크 마쿨라가 9만달러의 투자금을 제안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그는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받는 대신 최고 25만 달러까지 은행 대출 보증을 서주기로 했다. '잡스'는 스티브 잡스의 세일즈맨 기질을 부각시키기 위해 폴 테럴(바이트 숍 주인)과의 에피소드를 비롯 이런 얘기를 추가한 것 같다. 


영화에는 리사 프로젝트에서 물러난 뒤 매킨토시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잡스가 워즈니악에게 합류를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워즈는 이때 이미 애플을 관둔 상태였다. 큰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 한 워즈니악이 남은 공부를 마저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던 것이다.


광고 역사에 길이 길이 남을 전설의 '1984 광고'는 보수적 이사진들에겐 재앙이었다. 그들은 구매해놨던 슈퍼볼 광고 시간을 다른 회사에 되팔기로 결정했고 '1984 광고'는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애플에 놀러온 워즈니악에게 잡스가 이 광고를 보여주게 된다. 워즈는 광고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고 잡스는 80만 달러라고 말한다. 워즈는 그 자리에서 내가 반을 댈테니 니가 나머지 반을 대서 광고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이 실제로 성사되지는 못했는데, 광고를 대행한 '샤이엇 데이'가 광고 시간이 팔리지 않았다고 이사진에게 거짓말을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멍청이들을 제외하고는 이 광고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잡스가 리사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집착한 이유는 애플2가 여전히 애플의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플2가 워즈니악의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잡스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잡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애플2를 지울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작품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와는 달리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떠날 때 단 한 주만을 남겨 놓고 모든 주식을 헐값에 팔아치운다. 이때 확보한 현금은 훗날 아주 커다란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그가 이 돈으로 스타워즈의 감독 죠지 루카스의 CG팀을 인수한 것이다. 이 CG팀은 기술력은 뛰어났지만 쓸데가 없어 애물단지였고 마침 전 부인에게 지급할 위자료가 필요했던 죠지 루카스가 이를 낼름 팔아버린 것이다. 이 쓸모없는 팀은 몇년 뒤 3D 애니메이션 '벅스 라이프'를 만들고 또 몇 년 뒤에는 '토이 스토리'를 만들어 애니메이션계의 애플이 된다. 이 CG팀의 이름은 PIXAR였다.


잡스의 복귀를 설득하기 위해 길 아멜리오 직접 찾아왔다는 것도 순 거짓말이다. 먼저 연락을 한 건 오히려 스티브 잡스였다. 이때 잡스가 애플 복귀를 거절당하자 그의 절친이자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인 오라클의 회장 '래리 앨리슨'이 30억 달러를 투입해 애플을 적대적 인수하고 CEO 자리에 잡스를 앉힐 계획을 제안한다. 잡스는 이를 거절했다. '그들이 나에게 돌아와 달라고 부탁'하길 기다렸기 때문이다. 


2년 후 애플은 신형 운영체제 때문에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다. 이 때 잡스는 자신의 회사를(NeXT. 운영체제를 갖고 있었음) 애플에 매각하기 위해 평생의 세일즈 기술을 발휘했고 결국 애플의 선택을 받는다. 이때 인수된 운영체제가 현재 모든 아이맥과 맥북에 깔려 있으며 iOS를 탄생시킨 OS X의 전신이다. 







잡스가 매킨토시 팀을 맡은 후 팀을 꾸리는 과정에서 '프로그래밍 좀 합니까?'라고 물어봤던 사람이 바로 전설적인 엔지니어 앤디 허츠펠트다. 영화에서처럼 그대로 컴퓨터의 코드를 뽑아 데리고 왔던 이 사람은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대부분과 UI 컴포넌트를 개발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들의 원형을 모두 이 사람이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애플에서 소프트웨어 마술사(Software Wizard)라는 직함으로 일했으며 나중에 회사를 옮겨 구글+의 UX를 총괄한다. 





Software Wizard 앤디 허츠펠트. 좌측에서부터 세 번째.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는 데 앞장선 아서 록이 처음부터 잡스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잡스는 아서 록을 아버지로 생각할 정도였다. 잡스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마이크 마쿨라를 비롯, 자신이 아버지라고 여긴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잡스는 평생 친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트라우마를 지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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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영화는 아니다 | 기본 카테고리 2013-08-1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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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스포일러가 있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나니, 눈의 고장 어쩌고로 시작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봉준호의 '설국 열차(2013)'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영화의 원작은 1984년에 출간된 프랑스 만화. 홍대의 오래된 서점에서 손에 쥔 순간 끝까지 읽어버렸다는 봉준호. 그는 '괴물(2006)'이 끝난 시점부터 차기작도 아닌 이 만화의 영화화에 대해 줄기차게 얘기했었다. '마더(2009)'가 그닥 그랬던 이유는 어쩌면 봉준호의 마음이 이미 머나먼 동토의 눈 덮인 설원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봉준호를 위한 첫 번째 변명, 설국 열차에선 봉준호의 냄새가 나는가?


이 영화에서 봉준호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과연 봉준호의 스타일은 무엇인가? 박찬욱하면 미장셴이 떠오른다. 김지운은 멋이다. 혹자는 봉준호에게 디테일의 왕관을 씌우지만 나는 봉준호의 영화가 특별히 박찬욱이나 김지운의 것보다 더 섬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다른 작가 감독들과 다른 점은 바로 대중성이다. 그리고 봉준호는 이 대중성을 언제나 유머를 통해 획득해왔다. 


물론 봉준호의 유머는 '마더(2009)'를 기점으로 약간 그로테스크하게 변했으며 이번 영화 또한 그의 변화된 유머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은 나도 불만이다. 내가 좋아하는 유머는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의 드롭킥같은 스트레이트한 것들이지 괴상한 상황과 거기서 나타나는 더 괴상한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기괴한 유머가 아니다. 이를테면 복면을 쓴 적들과 대치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해피 뉴이어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내 개인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설국 열차에는 이러한 유머가 넘쳐난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에서도 마이크 테스트를 포기하지 않는 틸다 스윈튼, 그런 틸다 스윈튼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진지한 표정으로 확성기를 들고 있는 동양인 부관, 피의 잔치 뒤에 벌어지는 한가한 초밥 파티, 윌포드을 찬양하는 아이들의 노래, 심각한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번역기의 어색한 발음 같은 것 말이다. 


설국 열차에서 봉준호의 유머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남궁민수가 감옥에서 구출되는 씬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궁민수의 대사와 번역기와 그의 '일어나'라는 말에 '벌떡 일어나는' 요나의 연기. 괴물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요나의 '기상 연기'가 봉준호의 새로운 트레이드 마크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봉준호를 위한 두 번째 변명, 이 영화는 지루한가?


그렇지 않다. 지루하다는 평가는 설국 열차에 대한 지나친 모욕이다. 그렇다면 뭔가? 정확히 말하면, 긴장감이 부족한 것이다. 


사건은 줄줄이 이어진 기차칸을 따라 쉴새없이 폭발하지만 그것은 쭉 뻗은 기찻길을 그저 빠른 속도로 달릴 뿐이다. KTX를 탄 사람은 편리함과 우아함, 그 놀라운 속도에 감탄을 하지만 그렇다고 KTX가 재미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진짜는 에버랜드의 우든 코스터다. 까마득한 레일을 따라 두근두근 꼭대기에 다다른 뒤 뚝 떨어지는, 이 영화엔 그런 쪼는 맛이 없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남궁민수의 제안, 커티스의 고백성사, 윌포드의 진실 폭로 장면이 별다른 충격없이 넘어가는 것을 보라. 기차는 결정적 추락을 위해 서서히 꼭대기를 향해가야했다. 그러나 과정은 없고 폭로는 너무 급작스럽다. 커티스는 갑자기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고 남궁민수는 미친놈같이 '뜻 밖의 행동'을 하며 윌포드은 10년 전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의 '아키텍트' 코스프레를 한다.


사실 설국 열차는 봉준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한 영화다. 그가 살인의 추억에서 미스테리와 서스펜스를 얼마나 절묘하게 버무렸던가를 떠올려 보자. 봉준호는 열차칸을 좀 더 치밀하게 배치하고 그것들을 더 단단히 옭아매야 했다. 밀폐된 기차의 내부를 긴장과 호기심으로 터뜨릴 기세로 말이다. 







지루함이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연기였다. 나는 설국 열차를 재미없다고 하는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연기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크리스 에반스(커티스 역), 제이미 벨(에드가 역. 빌리 엘리엇의 그 아이다!), 옥타비아 스펜서(흑인 엄마 타냐 역)의 연기는 어딘지 모르게 붕 떠 있어 가뜩이나 타이트하지 않은 영화를 더더욱 산만하게 만든다. 애드 해리스(윌포드 역), 틸다 스윈튼(총리 메이슨 역), 존 허트(성자 길리엄 역)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영화관을 뛰쳐나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의 실패를 슬퍼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지 모른다.



이제부터 진지한 얘기


영화 형식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이제 좀 진지한 얘기를 해보자.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나는 꼬리칸 사람들이 왜 있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일반적인 지배-피지배 이야기에서처럼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노예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 하는 일 없이 단백질 블럭만 받아 먹는 말 그대로 잉여다. 앞칸 사람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들을 왜 살려두는 걸까?


**스포일러 경보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힌트를 찾아보자. 우리의 현대사는 독재의 역사였다. 그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 독재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외부에 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평등, 민주주의? 적화통일을 꿈꾸는 북한이 저렇게 버젓이 존재하는 한반도에서 그렇게 시시한 논의를 하고 있을 여유가 있습니까? 국민들이여 정신을 차리십시요. 우리가 우리끼리 싸우는 동안, 혹은 자기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이기적인 마음을 먹는 순간 평화로운 우리 삶의 터전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앞칸 사람들끼리도 분명 신분의 차이는 있다. 누군가는 매일매일 클럽에서 약에 찌들어 사는 한편 누군가는 매일매일 농장에서 닭똥 냄새를 맡아야 한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불만은 잡초처럼 자라난다. 이 때 꼬리칸의 위협은 그들에게 긴장감을 부여하고 긴장감은 내부적 결속을 유발해 체제에 대한 불만을 잊게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반란이 꼬리칸 사람들에게 설정하는 강력한 프레임이다. 사실 반란은 윌포드이 꼬리칸과 앞칸 모두를 통제하기 위해 만든 쇼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그 쇼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들은 서로 죽이지도 않아도 되고, 서로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제 3의 길, 즉 기차 문을 부수고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 된다. 


반란군의 리더 커티스는 이런 프레임에 가장 단단히 갇힌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차의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자'는 남궁민수의 제안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기어이 윌포드으로부터 주어진 자신의 역할, 즉 제압된 반란군의 리더를 연기하기 위해 준비된 패배의 길을 걷는다. 


그 패배의 길 위에서 윌포드이 속삭이는 제안은 참으로 달콤하다. 이제부터 기차의 권좌를 맡아달라는 악마의 유혹. 이것은 마치 젊은 시절 전부를 바쳐 싸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게 몸을 팔아 기어이 권력을 쟁취하고 만 문민정부의 탐욕자 김영삼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가 개벽한 듯 선전을 했지만 그 후 20년 동안 세상은 전혀 변한 게 없다. 윌포드의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기차의 주인은 바껴도 기차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 반란은 또 일어날 것이고 그것은 중간에 제압될 것이다. 운 좋게 엔진실까지 온다 하더라도 그에게 권좌를 물려 주고 떠나면 역사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기차는 영원히 달릴 수 있다. 


우리는 이 섬뜩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채 여전히 좌와 우로 나눠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벌이고, 피를 흘린다. 세상은 그 피를 벌컥벌컥 마시며 즐거운 콧노래를 부른다. 







추신, 그런데 왜 곰이죠?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북극곰 얘기를 좀 하자. 곰은 일반적으로 생태계 최상위의 포식자다. 그러니까 곰이 있다는 것은 곰이 먹을 초식 동물이 있다는 것이고(물론 곰은 잡식이긴 하다) 초식 동물이 있다는 건 어딘가에 풀이 있다는 얘기이며 풀이 있다는 것은 어딘가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땅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곰은 세상이 완전히 회복됐다는 것에 대한 암시이며, 새 시대의 상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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