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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그녀에게 산이란... 아무튼, 산 | 문학 2022-11-1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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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튼, 산

장보영 저
코난북스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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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면 돌아오는 주말에 산행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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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 속에서 종종 즐겨 읽는 작은 판형의 책이 있다. 1인 출판사인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가 돌아가면서 출판하는 에세이로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즉 작가의 덕질을 만끽할 수 있는 '아무튼' 시리즈다. 150여쪽의 부담없는 분량이라 종종 회사에서 아침 업무 전이나 점심시간에 틈틈이 읽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아무튼' 시리즈의 스물 아홉번째 이야기인 <아무튼, 산>은 대학생 시절 배낭을 메고 산으로 떠나게 만들었던 세계 최장의 트레일 종주기인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처럼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를 부르는 산'을 만나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등산에 대한 추억과 가슴 속 산에 대한 뜨거움을 되살려주었다.

 

 반복되는 날들, 변함없는 날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 아주 좋지도 그렇다고 썩 나쁘지도 않은 날들, 나는 분명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13쪽

 

  국문과 대학원 졸업 후 30년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중견 출판사에 입사한 저자는 좋아하는 책과 하루를 보내며 다달이 월급이 들어오는 생활에 만족했으나 마냥 좋았던 것들이 익숙해지면서 한 해를 돌아 봄이 찾아왔을 때 일상이 무료해지기 시작한다.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은 반복되는 무료해진 일상 속에서 강렬한 무언가를 찾았던 저자가 선택한 것은 산이었다. 일상의 무료함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지리산 종주산행. 등산을 많이 해 본 사람들도 혹독한 지리산을 용감하게도 첫 산으로 선택한 저자에게 2박 3일간의 지리산 종주길은 녹록치 않은 산행이었지만 산악회 일행들의 배려 속에 무사히(?) 지리산 종주산행을 마치게 된다. 산행 도중 대피소 앞 공터에 배낭을 깔고 비박을 하며 칠흑 같은 까만 밤하늘을 바라본 모습이나 비록 늦잠을 자서 실패했지만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새벽 산행은 공간적 시간적으로 달라도 대학생 시절 떠났던 설악산 산행의 추억을 떠오르게 했다. 

 

 지금은 200m가 조금 넘는 뒷산 등산도 버거울 정도의 체력이지만 푸르렀던 대학생 시절에는 학과 친구들과 머리 위까지 닿는 높은 배낭을 메고 높이가 1,708m가 되는 설악산으로 등산을 가곤했다. 주로 백담사에서 출발해 영시암 → 수렴동산장 →  봉정암 코스를 등산했고 때로는 소청 → 중청대피소 → 대청봉까지 가기도 했다. 설악산을 등산할 때마다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의 무게, 오랜 등산으로 인해 무릎과 발목에 전해지는 고통과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면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후회가 들기도 했고, 등산을 포기하고 하산하자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중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서둘러 올라간 대청봉에서 바라본 일출의 감동, 오랜 산행 후 대피소에서 허기를 채워준 스팸구이와 김치찌개, 하산하면서 마주친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은 오랜 산행으로 겹겹이 쌓인 피로를 잊게해 주었다. 

 


[대학생 시설 설악산 산행 때 배낭에 넣고 다녔던 등산 물품들, 오랫만에 장에서 꺼내 봤다.]

 

 그런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로 했다. 크고 높은 산에 가고 싶다는, 언제나 내 마음 가득 차올라 있던 그 소리를. 나는 생각했다. 산은 눈으로, 추억으로, 상상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심장으로, 가슴으로, 두 다리로 올라야 한다고 - 33쪽

 

 지리산 종주산행 이후 주말마다 산으로 향했지만 회사 생활에 대한 무료함과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앞으로의 삶에 두려움을 느낀 저자는 가감하게 회사를 퇴사하고 네팔 카트만두로로 향한다. 6개월간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저자를 또다른 산들과 만나 강해지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키고 이후 저자에게는 성덕의 나날이 이어진다. 내게도 1년간 정기구독 경험이 있는 '사람과 산'이라는 산악잡지사에 운좋게 입사한 저자는 등산학교에 찾아가 세 계절동안 다니며 등산지식 뿐만 아니라 산에 대한 열정과 순수를 배우고, 잡지사에서 전국 곳곳의 산을 세상에 소개하는 일을 맡아 지리산, 설악산은 물론 평일 한낮의 국립공원도 무시로 다니게 된다. 알프스 몽블랑 원정대의 일원으로 정상 등극에 도전하기도 하고(컨디션 난조로 중간에 하산), 몽블랑 정상을 향한 일원들을 기다리다가 거리에서 우연히 본 포스터를 통해 산악 마라톤까지 도전을 하게 된다. 제주에서 열린 제주 국제 트레일러닝 대회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의 산악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이제 단순한 산행을 넘어 "머리보다 몸이 움직이는 산악 마라토너'가 되어간다. 

 

 책 속에 써내려간 저자의 삶을 바라보면 저자에게 산은 운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겁도 없이 첫 산으로 지리산 종주길을 떠나고, 유명 산악잡지에 산행 기고를 하려다가 마침 막내기자가 퇴사해 자리가 빈 산악잡지사 편집부에 들어가고, 취재를 위해 다닌 수많은 산들과 해외 원정대 참가, 이어서 운명처럼 다가온 산악 마라톤까지... 저자와 산과의 만남은 중간에 부침(산악잡지사 퇴사 후 문화잡지사에 취직)도 있었지만 스물다섯에 첫 지리산 종주 이후 산과 늘 함께 한 삶이었다. 이 책을 쓰던 2020년은 마침 일본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하던 때라 문화잡지사 퇴사 후 인연이 있던 여행사 세 곳과 기획한 등산 여행 프로그램을 위해 떠나기로 했던 일본과 중국행이 좌절되며 산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저자의 인생 계획이 차질이 생긴다. 통장잔고는 줄어들고 언제 다시 세계의 산으로 향할 수 있을지 기약도 없어져 낙심도 하지만 매일 꾸준히 오를 수 있는 작고 낮은 산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고 낮은 산부터 매일매일 오르고 오르다 보면 "언제나처럼 산이 나를 또다시 다른 산으로 연결해 주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확신을 가진 저자는 오늘의 뒷산으로 향한다.

 

 저자가 지금도 매일 작고 낮은 산을 오르고 있을까? 코로나19도 어느정도 안정되어 막혔던 하늘길도 자유로워진 요즘 아마도 저자는 지금 세계 어느 나라의 산 속을 열심히 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산>은 "산을 매우 사랑하는" 저자 장보영의 산을 향한 덕질을 열세 편의 이야기로 담은 에세이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오래 전 설악산 산행의 뜨거웠던 추억들을 되살리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버킷리스트가 하나 추가 되었다. 바로 대학생 시절 오르던 설악산 산행코스를 다시 한번 도전하자는 것이다. 지금 체력으로는 설악산 산행은 무리한 도전이지만 차근차근 몸을 만들어서 5년 안에 설악산 산행이라는 버킷리스트를 꼭 이루고 싶다. 당장 돌아오는 주말부터 217m 높이의 뒷 산부터 올라야겠다.

 

 산이 있어서 내가 가진 걸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었다. 그리고 산이 있어서 삶의 어느 시기보다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을 멈출 수 있었던 곳도 산이었다. 생의 그 어느 순간보다 빠르게 달렸던 곳도 산이었다. 산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산이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산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에 이어 산에서 도망치고 싶은 날들을 통과했다. 산에서 나는 기뻐했고 슬퍼했다. 사랑했고 미워했다. - 135쪽

 


[대학생 시절 설악산 산행 중 촬영한 설악산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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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물들을 새롭게 만드는 김중혁 작가의 첫 소설 | 문학 2022-11-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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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펭귄뉴스

김중혁 저
문학과지성사 | 200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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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중견 작가가 된 젊은 작가 시절 김중혁 작가의 첫 소설집. 그의 관심사들이 소설 속에 잘 압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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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첫 방송을 시작해서 2019년 종영한 도서 소개 팟캐스트 '빨간책방'의 열렬한 청취자였다. 자기계발서 위주로 읽던 내게 다양한 분야의 책과 만나게 해 준 것도, 이렇게 블로그 공간에 리뷰를 쓰게된 것도 '빨간책방' 덕분이다. 첫 방송은 놓쳤지만 초반부터 거의 빼놓지 않고 들었기에 '빨간책방'을 진행했던 이동진 영화평론가, 김중혁 작가, 그리고 이후에 합류한 이다혜 기자가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세 작가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김중혁 작가라 하겠다. 소설가 김연수와 고향친구이자 중학교 동창인 김중혁 작가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본업인 소설가 외에도 웹툰 작가, 영화 및 음악 칼럼리스트, 영화 소개프로그램 진행, TV 교양프로그램 패널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소문난 수집광이기도 하다. 김중혁 작가를 좋아하다보니 당연히 저자의 작품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동안 출간한 작품들 중 공동저작이랑 일부 소설을 빼고는 거의 구매해서 소장하고 있을 정도다. 얼마 전 인상 깊게 읽은 조혜경 작가의 <책만 읽어도 된다>에서 '전작주의자가 되는 법'이 나온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매력에 빠져 전작주의자가 된 저자의 모습을 이야기 하는데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좋아해 하나 둘 구입한 김중혁 작가의 책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책장에 꽂힌 김중혁 작가의 책들 중 읽은 책보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김중혁 작가의 등단작인 '펭귄뉴스'가 포함되어 있는 중단편집 <펭귄뉴스>를 시작으로 매달 한 권씩 작가의 책을 읽으며 전작주의자가 되리라 마음을 먹게 되었다.

 

 서두가 길었는데 전작주의자로 가는 첫 걸음으로 리뷰를 쓰고있는 <펭귄뉴스>는 김중혁 작가가 2000년 '문학과사회'에 발표한 등단작 중편 <펭귄뉴스>와 동명의 소설로 펭귄뉴스 포함 8편의 중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솔직히 이 소설집은 10여년 전 읽었는데 전작주의자로 도전을 시작하면서 재독을 통해 당시 미래를 알 수 없었던 젊은작가에서 현재는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작가가 된 김중혁 작가의 관심사들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소설에는 라디오, 자전거, 타자기, 지도 등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사물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가게 해 준다. <무용지물 박물관>에서는 그해 겨울 사무실로 찾아온 메이비의 의뢰로 라디오 디자인을 맡은 작은 디자인회사 사장이자 디자이너인 주인공이 메이비가 진행하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라디오에서 시각장애인 청취자들을 위해 묘사한 노란잠수함을 통해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서는 오차 측량원으로 평생 지도 그리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던 '나'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외국에 사는 삼촌에게 소포로 받은 소리와 기억으로 만든 에스키모의 나무지도를 통해 종이 지도에만 천착하다가 정작 세상을 놓쳐버린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회색 괴물>에서는 타자기 수집광인 주인공이  오래된 물건을 파는 상점에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고장난 타자기를 구입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전 주인에게 수리를 도움 받으면서 타자기가 영혼을 가진 생명체라는 주인의 모습을 통해 사물과 밀착되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바나나 주식회사>에서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친구 B가 죽기 전 남긴 암호 같은 메세지를 받고 자전거를 타고 암호 속 장소로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8편의 중단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 <멍청한 유비쿼터스>와 저자의 등단작 <펭귄뉴스>다. 

 <멍청한 유비쿼터스> 한 편의 해커 영화를 보는듯한 단편으로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지향하는 대기업에 의뢰를 받고 대기업의 정보망을 일주일만에 해킹하는 해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직접 정보망을 해킹하기 위해 대기업에 잠입하는 과정을 스릴있게 그리고 있다. 이 단편에서 주목할 부분이 관습이라는 둘레다. 해커는 사흘동안 회사 로비를 드나들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회사 로비의 환경을 미리 파악 후 로비의 안내원과 경비원을 미국 본사 인사팀 직원을 빙자해 속이는가 하면 갓 입사한 여직원의 신상을 알아낸 후 신입 여직원에 다가가 네트워크 팀장이라며 그녀의 메일주소와 비밀번호를 간단히 알아낸다. 직원 카드로만 입장할 수 있는 사무실을 엉성한 직원 카드를 목에 걸고 두 손에 커피를 든 체 사무실로 들어가는 직원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편승해 들어가고, 휴가를 떠난 회계 담당자 자리로 태연한 척 걸어가서 기술지원팀 직원인데 회계 담당자가 휴가 다녀올 때까지 컴퓨터를 고쳐달라는 메세지를 받았다며 천연덕스럽게 옆자리에 앉은 직원의 느린 컴퓨터를 간단히 고쳐주는 여유를 부린다.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회계 담당자 컴퓨터에 스파이웨어를 설치하고 이것저것 데이터를 백업 받고 감시용 무전 조종기 등을 설치하고서는 사무실을 나온다. 임무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엉성한 직원 카드를 알아본 젊은 직원을 만나 정체가 탄로날 큰 위기를 맞지만 보안 감사 직원으로 직원들의 보안상태를 감사 중이라는 말로 위기를 벗어난다. 소설 속 안내원, 경비원, 사무실 직원들이 이전에 입력된 이미지와 정보로 구성된 관습적인 선입견에 의해 침입을 막을 수 있었던(또는 잡을 수 있었던) 해커를 입력된 이미지로 판단함으로써 스스로를 속이는 모습을 보며 나역시 그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관습이 때로는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간들의 믿음이란 정보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가 믿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의사는 돈이 많을 것이라는 이미지, 변호사는 말을 잘할 것이라는 이미지, 소설가는 담배를 많이 피울 것이라는 이미지, 해커는 지저분할 것이라는 이미지, 인간들은 그런 이미지를 자신의 머리 속에 차곡차곡 저장해 놓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이 모여 정보가 된다. 나는 그런 잘못을 정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나는 그 이미지를 이용할 뿐이다. - 116쪽

 

  <펭귄뉴스>는 '비트' 통제를 두고 정부군과 저항군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래 어느 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인공이 우연히 들은 라디오 방송의 매혹적인 음성(정말 교묘한 비트가 숨어있는)의 여자 진행자와 방송 중 통화를 한 이후 사건에 연루되어(정부군에 잡혀가던 그녀를 구해준다) 라디오 방송 진행자였던 그녀와 '비트 해방 전선'에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트' 하면 허영만 작가의 만화나 배우 정우성이 멋지게 오토바이를 몰던 모습이 인상깊었던 영화가 떠오른다. 원작만화와 영화에서 그린 청춘들의 방황하는 모습이 '비트'라는 단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데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지만 비트를 통제하는 정부 아래(비트가 없는 음악만 듣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늘 전쟁 속보를 방송하는 텔레비전을 따분하고 무감각하게 시청하는 주인공과 비트를 통제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이런 걸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텔레비전에서는 늘 전쟁 속보가 방송된다. 전쟁이 시작되고 1년 동안 거의 매일 방송하고 있는 이 속보는, 이젠 전혀 속보답지가 않다. 거기에는 비트가 없다. 햇볕을 받고 한없이 늘어진 엿 같다. 지금 어딘가에서 누군가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도 정말 기분이 엿 같다. - 262 ~ 263쪽

 

 김중혁 작가의 첫 소설집 <펭귄뉴스>는 작가가 평소 좋아하고 관심갖고 있는 사물들, 이를테면 라디오, 자전거, 타자기, 지도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물들을 소재로 각각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지만, 평범한 소재들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멍청하고 따분하게 관습(습관)에 갇혀살고 있는건 아닌지 자문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몸에 베인 관습(습관)과 이미지를 단숨에 벗어나기란 쉽지 않겠지만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무용지물 박물관> 속 '나'와 삼촌이 보내준 에스키모 지도를 통해 종이 지도에만 천착하다가 정작 세상을 놓쳐버린 것을 깨닫게 된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에서의 '나', 해커에게 너무 손쉽게 속고 마는 <멍청한 유비쿼터스> 속 대기업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관습이라는 익숙함에 너무 안주하거나 무관심해지지 말고 다소 불편하고 힘이 들더라도 관습(습관)에 벗어나기 위해 정치, 환경 등 사회적 문제에 제 목소리를 내는 노력을 해보는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비트'를 몸에 실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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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향한 시선 | 문학 2022-07-0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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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바깥은 여름

김애란 저
문학동네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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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계절이 다가오면 이 단편집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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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부터 내리던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찜통 더위가 찾아왔다. 내겐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 중 하나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읽기라 어떤 책을 읽을까 거실 책꽂이를 훑어보다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제목은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이었다.

 몇 해 전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소설이라 구입을 했었는데 한창 독서 중인 책을 완독한 후 읽겠다고 잠시 미뤄두었던 것이 책꽂이에 오랜시간 머물게 만들었다(이런 책이 한 둘은 아니지만). 책 제목에 '여름'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요며칠 날씨가 무덥지 않았다면 <바깥은 여름>은 좀 더 오랜시간 만나지 못 했을 것이다.

 

 <바깥은 여름>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7편이 실린 단편소설집이다. 

 각 단편들의 주제는 사뭇 다르지만 나와 다른 시차의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긴 책이라 생각이 든다. 단편집의 제일 처음에 자리한 「입동」은 오랜 고생 끝에 장만한 이십사 평의 작은 아파트에서 가족의 행복한 삶을 꿈꾸던 젊은 부부가 불의의 사고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나서 찾아온 아픔과 상실, 타인의 시선을 작가 특유의 담백한 문체로 풀어간 단편이다.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목숨을 잃은 아들. 아들의 죽음으로 받은 보험금을 차마 건들지 못하는 부모, 그리고 아들이 죽은 후 받은 보상금으로 한 몫 잡으려는 건 아니냐는 타인의 시선(아빠의 직업이 보험설계사라는 이유로). 그리고 세상을 떠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애절한 그리움... 

 두 딸을 둔 아빠로서 어린이집에서 잘못 배송된 복분자 원액이 터져 벽지를 엉망으로 만드는 바람에 다시 새 벽지를 바르다가 발견한 쓰다만 아들의 글씨에 울음을 터트리며 부들부들 떨던 부부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2014년 4월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애달픈 심정을 바라보게 된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 p.21

 

 「건너편」은 오래된 연인들이 겪을 수 있는 이별의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노량진 수험생 시절 교회에서 수험생을 위해 밥을 제공하는 자리에서 만난 이수와 도화. 도화는 재수 끝에 경찰관이 되어 교통정보센터에서 도로별 상황을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있고, 이수는 6년이나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으나 낙방을 하고 몇몇 직장의 인턴생활을 전전하다가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있다.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며 동거를 하게 된 이수와 도화. 시간이 흐르면서 도화는 이별을 준비하지만 매번 일이 생겨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두고 이수는 마지막으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 위해 회사를 관두고 전세금에 손을 댄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이수는 아는 형님이 한다는 횟집을 찾아 노량진수산시장으로 도화를 데리고 가는데,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은 이수와 도화의 8년간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 된다.

 대학 1학년 때 주위의 부러움을 가득 안고 연애를 시작한 CC가 있었다. 당시 남자 동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여자 동기는 의외(?)의 남자 동기와 CC가 되어 오랜시간 연애를 했는데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 모임에서 둘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동기들 이야기로는 성격차이로 헤어진 것 같다고 했지만 오래된 연인의 이별이 대개 그러하듯이 단점도 가릴 수 있었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더 이상 남지 않아서 이별하지 않았을까?

 

- 이수야.

- 응

-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냐.

- ...........

-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 .......... - p.115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젋은 작가상 수상작으로 계곡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가 목숨을 살렸던 제자의 누나 편지를 받고 남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랑하는 자신을 두고 제자를 구하기 위해 계곡물로 뛰어든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는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촌언니가 한 달간 집을 비우는 동안 머물 생각이 없냐는 부탁에 홀로 스코틀랜드로 몸을 싣는다. 에든버러에서 아내는 시간을 아끼거나 낭비하지 않고 도랑 위 쌀뜨물 버리듯 그냥 흘려보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아내는 남편이 살아생전 주말마다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기술인 '시리'에게 짓궂은 질문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시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게 된다.

 

-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시리가 되물었다.

- 어디로 가는 경로 말씀이세요?

- ..........

- 어디로가고 싶으신거에요?

- ............

- 죄송해요. 잘 못 알아들었어요.

- ............ -P.259

 

 스코틀랜드에서 유학간 대학동기를 만난 후 계획보다 일찍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아내는 남편이 구했던 제자의 누나가 쓴 편지를 받고서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살려주세요.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돌이켜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 당신을 보낸 후 줄곧 보지 않으려 한 눈이었다.(중략)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 P.266

 

 2001년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이 선로에 떨어진 생면부지의 일본인 취객을 위해 목숨을 던진 일은 소설 속 문장처럼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지금도 어느 곳에선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조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할 겨를 없이 숭고한 의(義)를 펼치는 의사자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 밖에  「노찬성과 에반」에서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찬성이가 노견인 에반을 만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에반의 병색이 심해지자 안락사를 해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혼자가 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침묵의 미래」에서는 사라져가는 언어들의 마지막 화자들이 가상의 강대국이 만들어놓은 '소수언어박물관'에 모여 박제처럼 생활을 하다가 하나 둘 사라져가는 모습을 영(靈)을 통해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풍경의 쓸모」에서는 교수 임용을 바라보는 시간강사 화자가 임용에 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곽교수의 난처한 상황을 도와준다. 이 후 교수 임용을 고대하며 추운겨울 따뜻한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곽교수의 반대로 교수 임용에 탈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리는 손」에서는 아빠 없이 한국인 엄마와 단둘이 사는 다문화아동인 제이가 십대 무리와 실랑이 끝에 죽은 노인 폭행 사건의 목격자가 된후 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면서 겪는 모습을 통해 너무나 손쉽게 생각했던 편견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오늘 바깥은 곳곳에서 소나기가 내렸지만 최고 기온이 30도가 웃돌 정도로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바깥은 여름이었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는 다른 시차의 계절이었을 것이다. 아들을 잃은 젊은 부부, 무더운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지만 고대하던 교수 임용에 떨어진 정우, 반려견 에반을 잃고 혼자가 된 찬성이, 미래를 함께하기로 약속했던 이수와 헤어진 도화...

 <바깥은 여름>에서 김애란 작가가 담아낸 7편의 단편들은 타인의 이야기였지만 그저 소설 속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공감하며 타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소설 속 타인들의 삶은 저마다 녹록지 않았겠지만, 소설 밖에서의 타인들의 삶은 시원한 여름을 맞이했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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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재미있는 그녀의 술 인생 | 문학 2022-07-0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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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튼, 술

김혼비 저
제철소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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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가득한 술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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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팬더믹 영향도 있고 주량도 예전만 못해서 요즘은 술자리를 잘 갖지 않지만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한 때는 자주 술자리를 갖곤 했다. 술과 함께 긴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자신의 술 역사를 책 한 권에 써도 모자란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술자리의 안주로 끝나고 마는데, 이러한 주당들의 생각을 실제로 책으로 담아낸 작가가 있으니 <아무튼, 술>의 김혼비 작가다.

 

 블로그 이웃님인 흙속에저바람속에님이 꾸준히 읽고 계시는 아무튼 시리즈의 20번째로 출간한 <아무튼, 술>은 '전국축제자랑',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서 유쾌한 글솜씨를 뽐내었던 김혼비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엮은 에세이다.
 

 지금은 미성년자 술 판매를 엄격히 단속하고 있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수능 100일 전 100일주를 마셔야 시험을 잘 본다는 미신 때문에 100일주를 마시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당시 마음씨 착한 술집 사장님들은 어설픈 어른 행동에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시기도 했는데 김혼비 작가 또한 인생 첫 술로 친구들과 100일주를 마신 웃픈 추억을 책에 담아내고 있다. 미리 알아낸 소주방에 친구들과 최대한 어른스럽게 차려입고(언니 옷이나 엄마 옷을 입고) 수능 100일주를 마신 날 거하게 취한 저자는 친구와 싸우게 되는데...

 

"사실 나는...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사실 나는..."

".....?"

"배추야."

 

 사람이냐 배추냐 옥신각신 친구들과 언성이 높아지다가 평소 얌전하던 친구 원이가 증거를 대라며 따지기 시작하자 저자의 왈(曰)~

 

 "나 이제 더 추워지면 곧 김치 돼. 김치가 된다고. 너 수능 만점 맞을 때 난 이미 김치일걸?"

 

 물론 저자는 술자리에서 있었던 친구와의 싸움을 전혀 기억 못하고 다음날 힘든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지각을 면하며 도착한 학교에서 술자리에 동석했던 친구들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고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이후 저자의 별명은 "배추"가 되었다.

 이렇게 첫 술의 아픈 기억을 가진 김혼비 작가가 이후로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면 우리는 '술'을 주제로 한 이렇게 재미있는 에세이를 만날 수 없었겠지만, 다행히 그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수능 80일 전 '80일간의 세계일주(酒)'를 제안할 정도로 저자는 성년이 된 후 무수히 많은 술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보통 주당들은 빈 속에 쓰린 소주 첫 잔을 들이키는 것을 좋아하는데, 저자는 소주 한 병을 따서 첫 잔을 따를 때의 '똘똘똘똘똘' 소리를 좋아한다고 한다(역시 김혼비 작가는 술꾼이다). 그래서 저자는 항상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소주 두 병을 시켜서 아름다운 소주 오르골 소리를 듣기 위해 첫 잔을 따른 후 줄어든 술 한 병을 다시 채운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난 후 후유증(?)이라면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소주 따르는 소리에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아직 김혼비 작가처럼 소주 첫 잔 따를 때 소리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못 하지만 이제는 술자리에서 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밖에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최고의 술친구가 인연이 되어 평생의 배필(전국축제자랑의 공동저자)이 된 이야기, 주사의 경계에서 행하는 버릇(나는 예전에 거하게 취하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집 앞 분식집을 꼭 들렸다), 요가를 하러갈까 술을 마시러 갈까의 고민(나는 예전에 헬스장을 다닐 때 헬스를 끝마친 후 헬스 동기와 술을 마셨다), 술꾼 저자도 무서운 술 와인 이야기(나는 가볍게 와인 한 잔 하려다가 그만 와인을 다 마셔버려 하루종일 빈 와인병에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을 여러 번 경험했다),  혼술했던 여러 장면들(나는 혼술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임이 없으면 술을 안 마신다) 등 저자 김혼비 작가의 파란만장한 술 인생과 술을 대하는 자세 등을 만나게 된다.

 

 <아무튼, 술>은 저자 김혼비가 주종별 접근에서 다양한 방법론까지 자신이 직접 마시며 경험한 술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유쾌한 문장으로 풀어낸 에세이로, 친구들과 호기롭게 술집에 들어갔다가 불안해하며 제대로 술도 못 마시고 나왔던 고등학교 시절, 마신 술보다 잔디밭에 버린 술이 더 많았던 대학 시절, 전날 숙취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다가 퇴근할 때쯤 다시 술 생각이 났던 젊은 날 직장 시절 등 나의 술 인생을 추억하며 공감할 수 있었던 즐거운 독서였다. 7월 한 달은 최대한 술자리를 만들지 말자고 다짐 했는데 어제 오랫만에 고등학교 단짝이었던 친구가 연락이 와서 오늘 저녁에 술약속을 잡아 버렸다.

 지금 술을 대하는 나의 마음을 책 속 한 문장으로 대신하며 리뷰를 마무리 한다.

 

 앞으로도 퇴근길마다 뻗쳐오는 유혹을 이겨내고 술을 안 마시기 위해서라도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다.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도 마신다. - p.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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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연주가 천지윤이 말하는 일상과 예술 | 문학 2022-03-01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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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정한 자유

천지윤 저
토일렛프레스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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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윤의 무대 안과 밖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책. 해금에 대한 이야기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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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맛도 변했지만 관심사도 변했다. 젊은 시절 그리 좋아하지 않던 콩국수는 여름이면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고, 한때 최신 가요가 나왔다하면 줄줄 외울 정도로 최신가요 박사(?)였지만 지금은 최신 가요는 둘째치고 가수 이름도 잘 모른다. 대신 클래식 음악 등 예술분야에 관심이 생겨서 예술분야 대중서를 찾아 읽고는 한다. 이번에 만나게 된 [단정한 자유]도 예전 같았으면 관심 밖 책이었을텐데 예술 분야인 해금 연주자 천지윤이 쓴 에세이라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책 제목처럼 깔끔하고 단정한 햐안 양장본으로 만날 수 있는 [단정한 자유]는 27년간 해금을 연주해 온 저자 천지윤이 해금 연주자로 성장하기 까지의 고민과 연주 여행, 일상 등을 전반부에 다루고 있고 후반부에는 해금이라는 악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부터 유래, 쓰임, 해금 명인들, 천지윤의 음반 소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악사상이 근본이 되는 엄격한 학풍이 있는 중, 고등학교에서 해금을 배우던 저자는 대학교에 입학한 후 실험극단 <우투리>에 전통악기 연주자로 합류하면서 중, 고등학교 때의 입시 위주의 규격화된 생활이 아닌 자유롭고 격이 없는 활동을 통해 예술에 대한 뜨거운 희망을 갖게된다.

 

 무대는 온몸으로 구르며 노는 곳일까? 나도 예술가다워질 수 있을까? 예술가가 되고 싶다! 예술은 자유롭고 멋진 것이구나. 라고 나를 흔들어 깨운 경험을 이 연극관에서 많이 했다. 그 현장에는 늘 뜨거운 무언가가 넘실댔다. 그 현장의 맛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무언가를 향해 우직하게 갈 수 있는 것은 '열망'을 연료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 p.19

 

 부끄럽지만 대학시절 잠깐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다. 저자처럼 전문 연극 예술가들이 포진한 연극단체가 아니라 대학의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였지만 지역 작은 연극단체에서 활동하던 선배 덕분에 연극이 처음이었던 동아리 선후배들은 기본적인 연기연습이나 무대 준비 등 스텝 역할들을 배울 수 있었다. 대사 몇 개만 있는 작은 배역이었지만 나도 공연장에서 연습과 연기를 통해 무대에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기에 저자가 연극관에서 느꼈던 뜨거운 무언가를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공감하게 된다. 저자는 당시 그 열망을 연료로 훌륭한 연주자가 되었고 나는 예술가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추억 하나를 꺼내 이렇게 글로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반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연주차 방문한 이국의 도시들에 대한 정서와 그 도시에서 겪은 에피소드라 하겠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되었지만 한국 전통 음악이 해외에서 공연 기회가 의외로 많았다. 미국 샌프라시스코 띵가마직스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하이델베르크 고성 축제, 덴마크 코펜하겐 WOMEX, 스웨덴 웁살라 종교음악 페스티발, 폴란드 바르샤바, 영국 런던, 이탈리아 포르데노네 등 수많은 이국 도시들로 연주 여행을 다닌 저자는 이국의 정취와 함께 공연장의 분위기, 공연 후의 일상을 요란하지 않고 단정하게 책에 담아내고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고성 축제에서는 중세시대 지어진 고성의 낭만에 취하지만 변덕스런 비를 대비하여 테이블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비닐을 준비해 기습적으로 비가 내리면 비닐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 사방에서 비닐을 잡고 테이블 위의 악기를 덮어 놓기도 하고[지나고 보면(중략) 소리를 내며 느꼈던 감흥보다 날다람쥐처럼 비닐을 펼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p.55], 공연이나 연습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는 어김없이 단원들끼리 기나긴 맥주타임이 이루어진다[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맥주를 마셨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까. 이야기들은 기억 속에 모두 휘발되고 말았지만(중략) 수런대던 분위기만큼은 생생하다. -p.57]. 이탈리아 포르데노네로 연주여행을 떠나기 위해 경유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후발대로 함께 간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저자는 그만 탑승 시간을 놓쳐 Vitra라는 가구와 조명회사의 공항용 쇼룸에 비치된 의자에서 노숙을 하게 된다. 공항 노숙을 마친 다음날 이탈리아 포르데노네에 도착하자마자 둘은 카페에 들어간다[우린 다시 느긋한 마음으로 수다를 떨며 이탈리아 카푸치노와 이탈리아 파니니를 주문했다(중략). 포르데노네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 공항 노숙의 악몽은 사라졌고, 여전히 느긋한 두 사람은 이탈리아의 신선하고 행복한 아침을 맞이했다. -p.120]

 

 저자의 이국 도시에서 느낀 정서와 에피소드를 읽다보니 대학시절 유럽배낭 여행 중 겪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함께 간 친구가 과음을 해서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할 정도로 늦게까지 마셨던 독일 맥주(친구들과 한 이야기는 기억이 안 나지만 풍미 가득했던 독일 맥주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밤새 맥주를 마셨던 두 친구는 지금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디즈니 성 같이 생긴 고풍스러운 고성들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들(디즈니 성을 모티브로 한 뮌헨에 있던 성을 가봤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이탈리아 골목길 노상에서 먹던 케밥(이탈리아에서는 좀도둑을 만나기도 했다), 밤새 타고 가던 유럽 침대 열차 등.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직도 당시 상황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무튼 언젠가 다시 유럽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꿈꿔 본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해금을 여덟가지 재료로 구분해서 설명하고[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 (土), (革), 목(木)], 해금의 유래(고려시대 중국-당나라를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쓰임, 해금 대표 명인들(지영희, 김영재, 최태현), 천지윤의 음반 등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해금이 2줄이라는 것에 놀라기도 하고(단 2줄로 독주악기로서 역할을 해내다니), 해금이 우리나라 토착 악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몽골지방 해부족의 악기였다는 이유로 해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는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그동안 생소했던 산조에 대한 이해와 함께 대표적 해금 명인인 지영희를 비롯해 김영재, 최태현 명인(두 명인은 천지윤의 스승이다)을 알게 되고 천지윤의 음반 열람을 통해 천지윤의 음악세계도 만날 수 있다.

 


 

 [단정한 자유]는 앞에서 담아낸 이야기 외에 저자가 연주자로 성장하기까지의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 아빠의 죽음, 임신, 힘들었던 박사 과정, 저자에게 영향을 준 무라카미 하루키, 책 등 저자가 그동안 걸어온 삶과 예술가로서의 시선 등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27년간 해금을 연주해 온 저자의 에세이답게 해금 연주자로서의 삶과 해금이라는 악기에 대해 알 수 있어서 해금을 전공하고 있거나 배우기를 희망하는 학생이라면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 하겠다. 내게는 가끔 국악방송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생소한 악기인 해금을 27년간 연주하며 다양한 장르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저자 천지윤을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읽은 큰 수확이라 하겠다. 해금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후학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천지윤의 서재콘서트>를 4년째 이어가며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저자 천지윤이 펼쳐나갈 앞으로의 다양한 활동을 기대해 본다.

 

띄어쓰기 오류 - 대금의 경우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라 하여[283쪽 6째줄]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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