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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최고의 작곡가 차이콥스키 | 인문 2021-09-2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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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차이콥스키

정준호 저
arte(아르테) | 202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차이콥스키의 삶과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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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콥스키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 뭐냐고 물어본다며 클래식 음악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곡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그림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차이콥스키의 발레 작품들을 많이 접해왔기에 클래식 음악과 친하지 않았던 몇 년 전이었다면 앞서 언급한 발레곡들을 차이콥스키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클래식은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듣는 음악이라고 치부하며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과 무관한 삶을 보내다가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에서 들은 피아노곡 덕분에 클래식에 입문하게 되었다. 클래식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클래식 대중서에서 알려주는 주요 작곡가들의 대표곡 위주로 들으며 클래식 소양을 조금씩 넓혀 나갔고 러시아의 대표 작곡가 차이콥스키도 다른 작곡가들처럼 사람들이 제일 많이 듣는다는 <피아노협주곡 제1번>이나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제5번>, <교향곡 제6번> 등을 주로 들었다.

 

 차이콥스키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주요 대표곡 몇 곡과 그동안 읽었던 클래식 대중서를 통해 알게 된 단편적인 지식들이 전부였는데 이번에 차이콥스키의 생애와 음악 세계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은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문화예술계 거장들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유명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서 27번째로 나온  [차이콥스키]이다.

 


 

  [차이콥스키]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특징답게 차이콥스키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붓킨스크를 시작으로 10여년 간 음악교수로 지내며 음악적 기틀을 마련한 모스크바, 작곡의 안식처 우크라이나 카미안카, 유럽도시 중 가장 많이 찾았던 프랑스 파리 등 차이콥스키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음악 칼럼리스트인 정준호가 독자들에게 생동감 있게 전해 주고 있다.

 

[죽음]

 차이콥스키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차이콥스키의 죽음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마지막 작품인 <교향곡 제6번 "비창">을 직접 초연한 후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공식적인 사인으로 끓이지 않은 물을 마셔서 당시 유행하던 콜레라로 죽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콜레라가 아닌 차이콥스키의 동성애가 원인이 되어 독약인 비산을 먹고 명예 자살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차이콥스키의 죽음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기에 그의 죽음은 앞으로도 계속 논란거리로 남을 것이다.

 

 차이콥스키의 탄생이 아닌 죽음을 리뷰 첫 키포인트로 시작한 것은 차이콥스키 죽음의 논란거리 중 하나였던 동성애 성향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차이콥스키는 죽을 때까지 동성애자라고 공식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다).

 차이콥스키는 1840년 러시아의 붓킨스크에서 태어나 광산 책임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프랑스인 가정교사가 있을만큼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현재 박물관이 된 사택에는 살림집 주위로 마구간, 마부 처소, 하인 집, 온실, 두 채의 여름 별관이 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인 가정교사에 말에 의하면 차이콥스키는 사소한 일에도 몹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감수성이 예민했던 14살 차이콥스키에게 사랑하는 어머니를 콜레라로 잃게된 것은 큰 충격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여기에 당시 러시아는 사촌끼리의 결혼도 가능했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유연한 시대였기에 차이콥스키는 동년배의 이모나 삼촌, 친구들을 향해 좋아하는 감정이 싹틀 정도로 자연스럽게 동성애적 성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동생뿐만 아니라 논란거리 중 하나인 그의 죽음과 연관된 조카도 동성애 성향이 있었고 굳이 이름은 나열하지 않겠지만 차이콥스키의 친구들 중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젊은 시절 결혼을 약속했을 정도로 사랑했던 여성도 있었고(후에 안토니나 밀류코바와의 결혼은 큰 고통을 주지만) 그의 작품세계에 없어서는 안 될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우정(플라토닉 사랑으로 보인다) 등을 비춰볼 때 그는 친구, 가족, 지인 등 자신과 관계된 모든 사람을 사랑했던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후대에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곡들을 남기지 않았을까?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한 장면, p.238 ~ 239]

 

[작품 세계]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소득이라면 기존에 알고 있던 차이콥스키의 대표곡들뿐만 아니라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발레 <백조의 호수> 등 차이콥스키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알게 된 것이라 하겠다. 차이콥스키는 살아생전 모차르트, 푸시킨, 셰익스피어 등에게 큰 영향을 받으며 작품을 써내려갔는데 푸시킨의 작품 가운데 <예브니겐 오네긴>, <폴타바>, <스페이드의 여왕>을 오페라로 만들었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환상 서곡으로 만들었다. 특히 푸시킨의 작품으로 만든 <예브니겐 오네긴>을 통해 당시 변방에 머물러 있던 러시아 음악을 서유럽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다.

 <예브니겐 오네긴>에서 권총 결투로 극 중 주인공인 렌스키가 헛되이 목숨을 잃는데 원작자인 푸시킨 또한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염문이 있었던 프랑스 장교 당테스와의 명예를 건 권총 결투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된다. 저자와 작품과의 운명적인 이야기에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음악들로 만들어진 오페라 <예브니겐 오네긴>이 당시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아울러 <예브니겐 오네긴>은 차이콥스키에게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작품으로 남게 된다. 

 한편 책에서는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니겐 오네긴>을 비롯해 <차로데이카>, <마제파>, <체레비츠키> 등 작품들의 상세한 줄거리를 만날 수 있어서 혹시 나중에 차이콥스키의 오페라를 관람할 기회가 생긴다면 더욱 공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차이콥스키를 후원한 나데즈다 폴 메크 부인, p.115]

 

[폰 메크 부인]

 친애하는 표트르 일리치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위촉을 그리 빨리 들어주시다니요. 선생님 작품이 제게 주는 황홀감을 말씀드려 보아야 부질없고 부적절하겠죠. 선생님께서는 저 같은 음악 문외한보다 훨씬 중요한 분에게 더한 찬사와 존경을 받는 데 익숙하실 테니까요. 아마 우스우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이없어 할 만한 일을 하고 참을 수 없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만족합니다. 선생님 음악이 제 삶을 위로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고 믿어 주십사 부탁드릴 수 있으니까요.

-1876년 12월 30일, 나데즈다 폰 메크가 차이콥스키에게 보낸 편지 중, p.114

 

 장장 14년에 걸쳐 이어온 예술가 차이콥스키와 후원자 폰 메크 부인과의 수백 통에 달하는 편지 왕래의 첫 시작을 알리는 편지다. 차이콥스키에게 후원자 폰 메크 부인이 없었더라면 후기 수많은 걸작들(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제4번, 제5번,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은 탄생하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만약 모차르트와 슈베르트가 폰 메크 부인 같은 후원자를 만났더라면 가난에 시달리다가 요절하지 않았을테고 더 많은 명작들을 우리에게 남겼을 것이다.

 아무튼 차이콥스키는 6000루불이나 되는 상당한 금액을 폰 메크 부인에게 연금식으로 받게 되면서 모스크바음악원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작품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14년 동안 후원을 했던 폰 메크 부인과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수 백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정신적 사랑을 이어갔지만 백만장자 미망인 후원자와 아홉살이나 어린 천재 예술가(거기에다 동성애자였던)와의 실제 만남은 감당한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는 걸 서로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폰 메크 부인은 공연장 한 편의 좌석에 앉아 직접 작품을 지휘하며 초연하던 차이콥스키를 멀리서나마 응원하지 않았을까?

 14년간 쌓아온 둘의 우정은 폰 메크 부인의 갑작스런 후원 중단으로 끝을 맺는다(딸의 결혼과 부인의 철도 사업이 난관이 부딪힌 것이 이유라고 전한다). 폰 메크 부인이 갑작스런 후원 중단에 차이콥스키는 다음과 같은 편지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과장하지 않고, 당신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단 1분도 잊지 않겠습니다. 저 자신을 생각할 때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당신이 떠오릅니다.

 당신 두 손에 입을 맞춥니다. 알아주세요. 아무도 (당신처럼) 저를 이해하지 못했고, 누구도 (저처럼) 당신의 슬픔을 나누지 못합니다. 

                                                                                            - 당신의 P. 차이콥스키, p.258

 

 운명의 장난인지 러시아에서 저자 정준호가 차이콥스키의 발자취를 찾는 여정에 큰 도움을 준 이가 차이콥스키의 후손인 데니스 폰 메크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차이콥스키의 여동생인 알렉산드라의 딸 안나 다비도바와 폰 메크 부인의 아들 니콜라이 카를로비치가 결혼을 해서 자손을 낳았는데 데니스는 이 부부의 후손이라고 한다. 
 

 독서 중 인상깊은 내용을 키포인트로 정해서 두서없이 리뷰를 썼지만 책은 차이콥스키의 생애를 일대기 순으로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조명해 주고 있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차이콥스키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였다. 클래식에 입문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아직 많은 작곡가들을 만나지는 못 했지만 [차이콥스키]를 읽은 지금 내가 만난 작곡가들 중 최고의 작곡가는 차이콥스키라고 말하고 싶다. 추석 연휴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사상 최대인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바깥 나들이 하기 좋은 화창한 가을이 왔건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음편히 나들이하기 어려워질 것 같다. 이렇게 답답한 현실에서 차이콥스키의 자취를 따라가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프랑스 파리 등을 돌아볼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차이콥스키]를 읽으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찾는 것은 어떨까? 물론 차이콥스키의 대표곡인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등을 함께 들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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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시리즈는 다 이유가 있다. | 인문 2021-01-2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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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 365

최훈 저
비에이블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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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입문교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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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부터 취미란에는 꼭 독서는 포함될 정도로 독서량과는 상관 없이 책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 했다(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게 없기도 했지만). YES24에서 지난해 YES24와 함께한 나의 독서 라이프를 그래프 등으로 알기 쉽게 알려 준 적이 있다. 그동안 YES24에서 활동한 여러 통계 내용을 확인하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하나 있었는데 구매금액이 상위 2%라는 결과였다(수치 오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도 내가 구입한 책보다는 아이들을 위해 사준 책들이 구매금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아무튼 아이들 책들을 빼고 그동안 구입한 책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 주로 좋아하는 분야에 편중되어 있는데, 예전에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 정가보다 대폭 할인된 철학책을 보고 독서 편식을 해소하고자 하는 마음에 구입해서 철학책 읽기에 도전 한 적이 있다. 철학 문외한이라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폭 할인에 눈이 멀어 덥썩 구입한 두꺼운 철학책. 첫 몇 페이지는 그런대로 읽어나갔지만 곧 어려운 철학 용어들의 출현에 유체이탈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책을 덮었다 다시 펼치기를 몇 번을 반복하다가 끝내 책장 인테리어 소품으로 자연스럽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철학책은 거실 중앙 책장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시선을 끌며 나름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두꺼운 철학책은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한데 다른 용도는 각자 상상에 맡긴다).

 

 이런 전력이 있기에 철학에 "철"자만 들어 있어도 어렵다는 생각에 철학책들은 애써 외면 했다. 그렇게 철학과 담을 쌓고 지내던 얼마 전 데이비드 흄에 대한 책(이 책도 좋아하는 시리즈에서 나온 책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을 읽게된 후 철학에 조금씩 관심이 생기던 차에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가 눈에 들어왔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시리즈는 앞서 한국사, 미술사를 통해 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온 예술 입문서로, 바로 전에 출간되었던 미술사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철"자가 들어있는 철학책임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를 믿고 읽게 되었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의 저자는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등의 영역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좋은 논증을 위한 오류 이론 연구>, <동물을 위한 윤리학>, <논리는 나의 힘> 등 여러 책을 쓴 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인 최훈 교수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 시리즈 특징답게 날마다 가볍게 1페이지씩 365개의 철학 내용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MON] 철학의 말: 철학자들의 깊이 있는 생각이 담긴 철학 속 명문장
[TUE] 용어·개념: 철학을 알고 싶다면 꼭 알아야 할 철학 용어와 개념
[WED] 철학자: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위대한 철학자
[THU] 철학사: 고대부터 현대까지 철학의 발전에 영향을 끼친 순간들
[FRI] 삶과 철학: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SAT] 생각법: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철학 도구와 기술
[SUN] 철학 TMI: 철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발견, 다양한 콘텐츠들

 

 자신이 가장 궁금한 주제부터 읽어도 좋고,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도 좋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생각과 지혜의 발전이 내 삶을 철학적으로 만들어주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1페이지씩 읽으면서 나만의 교양 지식을 만들어보세요.

                                                                                                 - 4쪽

 


 

[MON] 철학의 말: 철학자들의 깊이 있는 생각이 담긴 철학 속 명문장

 월요일은 철학자들이 직접 또는 저술을 통해 남긴 명문장들을 주제로 문장 속에 담긴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한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속 문장을 통해 현재 우리가 정보의 홍보 속에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가짜 뉴스에 속지 않는 법(44쪽)을 이야기 하거나, 흄의 <인간의 이해력에 대한 탐구> 속 문장을 통해 의미 있는 인간의 지식은 수학 또는 논리학의 명제이거나 감각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경험적인 명제들로 나누어진다는 흄의 포크(114쪽)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밖에 베이컨의 <신기관>을 통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명언인 "아는 것이 힘이다."에 대해 이야기한다(268쪽).

 

 첫날 월요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속 문장을 통해 "철학의 시작은 놀라움"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놀라움, 즉 궁금한 것을 보고 자신의 무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문(철학)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인데, 지금은 누구나 다양한 경로로 쉽게 학문을 접할 수 있지만 고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문장을 빌리자면, "삶에 필요한 것들과 편리함과 여유 있는 삶을 위한 것들이 거의 모두 마련한 뒤에 그런 종류의 지혜가 탐구되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대(우리의 경우 조선시대를 보면)에는 노예나 노비들의 생산 활동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에 지식인들의 학문 활동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고대와 시대적 상황이 바뀌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생산 활동을 하는 사람의 세금으로 국가가 학문을 지원해준다는 말로 저자는 마무리 한다. 

 요즘 연말정산 시즌이라 1년동안 낸 세금을 얼마나 돌려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많은데 내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며 매달 꼬박꼬박 낸 세금들이 바탕이 되어 학문을 지원해준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곳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그건 그렇고 올해는 작년보다 세금을 많이 환급 받았으면 좋겠다).

 


 

 [WED] 철학자: 남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위대한 철학자

 

 수요일은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짧은 한 페이지에 다루고 있지만 정말 다양한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책 속 표지 주인공인 프리드리히 니체(53쪽)를 비롯해 현대 정치(공산주의 국가 탄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의외로 낭비벽이 심했다는 카를 마르크스(59쪽), 최고의 교육론 "에밀"을 썼지만 다섯 아이를 키울 돈이 없다는 이유로 낳자마자 고아원에 보내 지탄을 받았던 장 자크 루소(95쪽), 철학사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뽑혀도 손색이 없는 이마누엘 칸트(102쪽), 노예 철학자 디오게네스(123쪽), 여성 철학자로 상징적 인물인 히파티아(137쪽), 서양 중세를 대표하는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179쪽), 나치 부역의 과오가 평생 따라다녔던 마르틴 하이데거(249쪽), 자유 지상주의자 로버트 노직(333쪽), 한국 출신의 미국 철학자 김재권(347쪽) 등 철학자들의 사상 뿐만 아니라 기억해 둘만한 개인사도 다루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르네 데카르트(32쪽)는 서양 근세 철학을 연 철학자이면서 함수 좌표계를 도입한 수학자로도 유명하다. 이런 데카르트가 천성이 게으르고 몸이 약해서 침대에서 밤늦게까지 누워 사색하고 글을 썼다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도 군대 시절에 난로 안에서 꼼지락거리다가 꿈을 꾼 결과 생각해 낸 말이라고 한다.

 누워 사색하기를 좋아했던 데카르트는 1649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청을 받고 스웨덴으로 가서 여왕의 가정 교사로 일했으나 다음 해에 죽고 말았다. 부지런한 여왕 때문에 새벽 5시에 수업을 해야 했는데 천성에 맞지 않는 갑작스런 생활 변화와 스웨덴의 추운 날씨가 데카르트 죽음에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위대한 철학자의 죽음으로써는 허망하기까지 하다.

 

 데카르트는 난로 안(난로가 있는 방 또는 주택에 난방을 목적으로 하는 방)에 들어가 철학적 사색을 즐겼다고 하는데 추운 겨울날 난로 앞은 사색 즐기기에는 딱 좋은 자리 같다(그런데 난로하면 군밤이나 군고구마가 생각 나는 건 뭐지...).

 


 

 

[SUN] 철학 TMI: 철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발견, 다양한 콘텐츠들

 

 7개의 주제 모두 유익하고 흥미롭지만 특히 내게는 일요일에 만나는 철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발견, 다양한 콘텐츠들이라는 철학 TMI가 아무래도 가장 흥미로웠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자주 외친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라는 카르페 디엠(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 구절에 있다)을 통해 쾌락주의와 욜로족의 생활철학을 이야기 하고(71쪽),  스웨덴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주장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사는 현실이 영화 <매드릭스>가 연상되듯 미래의 후손들이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알기 위해 정교하게 만든 가상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주제(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상 현실이라면)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간다(141쪽).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철학 전공자들이 다른 인문학 전공자보다 양질의 직장에 취업하고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철학을 전공해야 하는 이유(211쪽)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시중에 나오는 우리나라 담배 이름이 하나같이 철학 개념(철학적 담배)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 해준다(274쪽). '레종', '더원', '타임', '디스', '에쎄' 등의 담배에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가장 위대한 철학자는 누구일까? 2005년 영국 BBC 라디오의 <In Our Time>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청취자에게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물었는데 3만 명이 참여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1. 마르크스 2. 흄 3. 비트겐슈타인 4. 니체 5. 플라톤 6. 칸트 7. 아퀴나스 8. 소크라테스 9. 아리스토텔레스, 10. 포퍼

 영국에서(또는 근방) 오랫동안 살았던 철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영국적인 결과이지만 1위인 마르크스(27.93%)가 2위인 흄(12.67%)보다 갑절이 넘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철학자로서도 위대하지만 역사에 끼친 영향(지구상의 1/3을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었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 외에 미국의 철학자 브라이언 라이터가 2017년 철학 소식을 전하는 블로그에 가장 중요한 서양 철학자를 묻는 투표에서(주로 철학 전공자가 투표) 1. 아리스토텔레스 2. 플라톤 3. 칸트 4. 흄 5. 데카르트 6. 소크라테스 등의 순으로 나왔고, 영국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나이절 워버턴이 철학 교수들과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누구냐고 물어봤는데 20%가 데이비드 흄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마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성격에 요리도 잘한(외모도 친근하다) 모습에 철학자들도 흄이라는 철학자에게 호감이 갔을 것 같다. 

 철학 문외한인 내게 누군가 위대한 철학자를 물어본다면(물어볼 사람도 없겠지만) 그저 이름만 간신히 알고 있는 철학자의 이름만 몇 명 대답하고 말텐데(1위는 당연히 데이비드 흄.ㅎ) 책에서 소개한 위대한 철학자 순위를 참고해서 그 철학자들의 사상과 삶에 대해 알아간다면 좀 더 자신있게 위대한 철학자 순위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대며 대답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의 7개 주제에 대해 일일이 다 소개하고 싶었지만 리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7개 주제 중 관심 있게 읽었던 주제를 중심으로 리뷰를 썼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책의 의도대로 매일 주제별로 한 페이지씩 1년간 읽는 것이 제일 좋지만 궁금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먼저 읽어도 좋다. 철학은 왠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하루 1페이지씩 부담없이 다양한 주제로 철학을 접할 수 있는 입문 교양서인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 읽어보기를 철학 문외한이지만 이 책 덕분에 철학에 관심이 생긴 한 사람으로서 적극 추천해 본다. 보통 양과 질을 다 잡기 어려운데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시리즈는 다 이유가 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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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과 함께 떠난 18세기 경험주의 철학 여행 | 인문 2020-12-27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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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데이비드 흄

줄리언 바지니 저/오수원 역
arte(아르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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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경험주의 철학으로의 지적 탐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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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쉬운 제도를 꼽자면 도서정가제가 아닌가 싶다. 물론 책 할인율 제한에 따라 무분별한 가격 경쟁에서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작은 출판사나 작은 책방들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라 생각이 들지만 만만찮은 책값을 볼 때마다 가끔 도서정가제 시행 이전을 그리울 때가 있다. 2014년 11월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여러 권의 책을 급히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구입한 책 목록 중 정가의 90% 파격 할인에 혹한 것이 큰 이유였지만 철학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구입한 두꺼운 철학책 2권도 포함 되어있다. 철학책 2권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깃든 철학 입문서였으나 내겐 잠을 재촉하는 수면제 대용이었고 급할 때 라면 냄비 받침으로 사용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철학. 만약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책을 용기내어 읽게 되었다.

 

 이번에 용기내어 읽게 된 책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25번째로 출간 된 [데이비드 흄 ×줄리언 바지니]이다. 데이비드 흄은 철학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인성론> 등을 펴낸 18세기 경험론의 대표 철학자이며 이 책의 저자 줄리언 바지니는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97년 창간된 계간지 《필로소퍼스 매거진》의 공동 발행인 겸 책임 편집자로 여러 잡지에서 철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철학 칼럼니스트이다.

 

  [데이비드 흄 ×줄리언 바지니]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장점답게 데이비드 흄의 삶과 사상을 그의 생전 발자취를 따라가며 설명해 주고 있을 뿐만아니라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외국인 저자의 번역본을 읽어 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전해 주고 있다.

 

[앨런 램지가 그린 흄, 200쪽]

 

 여기 그동안 생각했던 철학자 이미지와는 다른 철학자의 초상화가 하나 있다. 푸근한 인상에 음식을 좋아할 것 같고 사람 좋아 보이는 초상화의 주인공은 18세기 경험론을 대표하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다. 마치 TV 속 인기 요리연구가 백종원처럼 친근한 이미지의 데이비드 흄은 초상화에서 풍기는 것처럼 온화하고 사교적이었을 뿐만아니라 요리도 잘했던 철학자였다고 한다. 

 

 1711년 4월 26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론마켓에서 변호사인 조피프 흄과 그의 아내 캐서린 팔코노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흄은 소년 시절 대부분을 에드버러에서도 꽤 거리가 있던 외딴 작은 동네인 천사이드에서 보낸다. 그의 대표 저작 『인성론』애서 "놀이와 친구들에 싫증이 나 내 방에서 몽상에 빠지거나 홀로 강가를 산책했던 그때, 나는 머리가 차분해지고 생각이 고요히 가라앉아 독서와 대화 과정에서 씨름했던 온갖 문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24쪽)"라는 구절이 있는 것처럼 외딴 작은 동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은 흄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1723년 2월. 12살의 나이로 에든버러대학교에 입학하지만 대학 교육보다는 랭키니언클럽이라는 지식인 동아리에 참여하여 음식과 술을 즐기며 지식인들과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 결국 대학 교육에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한 흄은 대학을 떠나 수년간 혼자 공부를 하면서 학자이자 철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특히 1729년 6개월동안 몸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사유에만 신경 쓴 끝에 몸은 피폐해지고 우울감에 빠지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몇 년 뒤 펴낸 『인간 오성 연구』에서 "일정 정도의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정신이 주의력과 근면함을 늘 뒷받침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32쪽)"라는 교훈을 남기게 된다. 이 교훈은 4당5락에 신경쓰며 지금도 잠과 사투를 벌이는 이 땅의 수많은 수험생들이 귀담아 들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흄이 예수회대학 시절에 머물렀던 이반도 저택, 65쪽]

 

 5년간 자기 주도 학습을 하던 흄은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야 새로운 철학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브리스틸 퀸스퀘어에 있는 설탕 상인 밑에서 한동안 일을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는지 몇 달 만에 관두고 스코틀랜드보다 물가가 쌌고, 주의를 산만하게 하지 않는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프랑스 랭스를 거쳐 라플레슈로 간 흄은 이곳의 유일한 명물로 기독교 문화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인 예수회대학에서 많은 성직자들과 어울리면서 지적 자극을 받는다. 여기서 잠깐, 데이비드 흄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을까? 흄은 신앙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경험과 관찰을 중시했던 흄은 무신론자에 가까운 형이상학적 불가지론자였다. 흄은 종교에서 나오는 기적들의 증거가 믿음을 줄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며 "기적이 자연법칙을 위반한 것(58쪽)"이라고 기적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다. 인간은 경험상 자연법칙에 늘 예외가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법칙이 통하지 않았다는 주장, 즉 기적은 한 사람이나 소수의 증언들이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증언은 자연의 일관성에 대한 가정을 뒤흔들 만큼의 신빙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흄은 세간의 비난을 우려했는지 신앙이 증명이라는 시련에 어울리지 않다는 점을 시인함으로써 이 문제를 빠져나갔다고 한다.

 

 아무튼 흄이 라플레슈 시절 집필하여 1739년 ~ 1740년에 런던에서 출간한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줄여서 인성론)』는 인간은 이성에 의해 원인과 결과, 자유의지가 나온다는 기존의 사상(이성만이 전부)을 깨고 우리 머리 위에 덧씌워졌던 습관적인 틀(경험)의 일부라는 회의론을 주장했다. 흄은 『인성론』을 가리켜 당대 파란을 일으킬 혁명적 철학이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것은 푸대접이었다. 더구나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종교 부분을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흄은 위험한 사상가로 악명을 떨치게 된다. "인쇄기에서 이미 사산되었다.(102쪽)"는 흄의 주장처럼 『인성론』은 당대에는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한다. 충분한 능력을 가졌던 흄은 무신론자이며 회의론자라는 이유로 대학교수 자리도 얻지 못한다.

 

 1752년 흄은 변호사협회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게 되면서 도서관의 방대한 자료를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흄의 최고 베스트셀러인  『영국사』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1754년에서 1762년에 걸쳐 출간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흄의  『영국사』는 1780년대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나오기 전까지 영국에서 출간된 최고의 역사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흄이 철학을 포기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저자는 흄의 철학적 연구에 주안점을 둔 지적 전기를 쓴 해리스의 말을 인용해 "흄은 철학을 버리고 평론과 역사서를 쓴 철학자가 아니라 인간 본성, 정치, 종교, 기원전 55년부터 1688년까지의 영국사에 관해 썼던 철학적인 문필가로 보아야 한다.(146쪽)"고 이야기하고 있다.

 

[흄의 초상화 중 가장 자연스럽고 정직한 느낌을 주고 있다는 파리에 있을 때 그린 초상화.181쪽]

 

 이후 1763년 흄은 프랑스 대사로 부임하는 허드포드 경의 비서로 파리로 동행한 후 파리의 살롱을 드나들며 당대 수많은 프랑스 지식인과 살롱의 여주인들을 만나며 지적 교류를 쌓는다. 당시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았던 흄은 많은 환대를 받았으며 온화한 성품에 사교적이고 쾌활한 성격 덕분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정도를 지켰다고 한다. 파리에서 당시 자유사상가들의 지주였으나 많은 분란을 일으켜 떠돌이 생활을 하던 루소를 만난 흄은 그의 재능을 귀하게 여겨 보호자 역할(영국에 은신처까지 마련해 준다)을 자처했으나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흄을 의심하고 비난을 퍼부은 루소로 인해 둘은 절교를 하게 된다. 이 사건은 서로 다른 둘의 철학과 기질의 차이점을 보여주는데 루소의 비난에 분노로 응대하기보다는 연민을 보였던 흄은 루소를 "살아온 인생 내내 오직 감정밖애 없었던 것이었다(201쪽)."라며 루소의 감정에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때문에 그의 판단력이 무더졌다고 생각했다.

 

 1767년 허트포트 경의 동생인 콘웨이 장군이 국무대신이 되자 흄은 그의 차관이 되어 공직생활도 경험하고 2년 뒤 공직에서 물러나 스코틀랜드로 돌아온다.

 흄은 상당한 식도락가였다고 전해지는데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흄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더 큰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에든버러에 새 집을 짓기도 한다. 육식을 등한시 하는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전통 때문에 서구인들은 훌륭한 음식과 철학이 양립 불가능이라고 생각하지만 흄은 "품격 있는 음식 때문에 진지함에 대한 나의 취향이 망가진 적도 없고, 유쾌함 때문에 공부를 망친 적이 없다.(234쪽)"라고 말을 남겼다고 한다.

 

[흄의 무덤, 올드칼튼묘지 247쪽]

 

 

 새 집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1772년부터 건강이 나빠진 흄은 서서히 몸 상태가 나빠지더니 1775년 봄 급작스럽게 악화되었고 이듬해인 1776년 8월 25일 예순다섯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병을 앓는 동안에도 흄은 놀라운 정도로 활기를 잃지 않았는데 정신도 맑았으며 기번과 애덤 스미스에게 그들의 저서에 대한 치하의 편지를 써 보낼 정도였고 독서도 계속 이어갔다고 한다. 죽음은 불가피하며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것은 지상에 있는 동안 좋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수용했던 흄의 말년의 모습을 통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환영하는 것은 다르다. 생애 대한 애정은 생에 대한 집착이 아니다(244쪽)."라는 것을 보여 준다.

 

 [데이비드 흄 ×줄리언 바지니]에서는 이 밖에 모든 것을 의심해야만 확실한 것을 볼 수 있다는 "회의론", 자아는 생각과 감정과 감각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상이한 자각들의 다발 또는 집합이라는 "다발주의", 자유의지나 이성에 관한 사상 등 기존 학설에 매이지 않는 흄의 자유로운 사상들을 만나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특징은 저자의 균형잡힌 시선이라 하겠다. 저자는 데이비드 흄을 신격화하거나 그의 사상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생각이나 백인 우월주의 등 그의 사상도 시대적 한계가 있음을 짚어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18세기 흄이 한 말을 현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자주 인용함으로써 흄의 보석 같은 명언들을 만나게 해 준다. 

  [데이비드 흄 ×줄리언 바지니]는 철학 문외한인 내게 18세기 경험주의 철학으로의 지적 탐구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뜻깊은 여행이었다. 앞으로 철학과 좀 더 가까워진 나를 발견한다면 이 책이 일등공신일 것이다.

 

 이제 시작할 여정의 출발점으로 흄의 펜 끝에서 풀려나온 말 만큼 적절한 것은 없다. "여행에는 장점이 많다. 편견을 몰아내는 데는 여행이 최고다." 이제 함께 길을 나서보자.

                                                                                                                      - PROLOGUE(17쪽)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 오류

  1) 156쪽 17번째 줄 오타

   ○ 도 실신한다. 슬픔이나 고통에 빠진 사람들은 아무다(→아무나) 다 이들의 동

  2) 164쪽 4번째 줄 띄어쓰기

     해도부주의한 → 해도 부주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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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의 선구자 르코르뷔지에 | 인문 2020-09-1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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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르코르뷔지에

신승철 저
arte(아르테)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르코르뷔지에의 대표 건축물을 인터넷으로 찾아봐야한다는 불편함을 빼고는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불과 6년 전만 해도 줄곧 단독주택에서만 살았다. 겨울철 외풍은 당연한 줄 알았고 겨울 한파에 수도관이 종종 터지기도 했다. 주차난 때문에 늦은 퇴근길이면 집 근처를 몇 번을 돌았고 대학가 근처에서 산 덕분에 늦은 시간 소음은 일상으로 자장가라 생각하고 잠을 잤다. 한번은 외출한 사이에 좀도둑이 들어 집안이 엉망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비슷하게 생긴 아파트에서 사는 것보다는 불편해도 단독주택에서 사는 것을 나름 만족해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주변에 원룸 붐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아파트의 편리성과 쾌적함을 몸소 체험하다보니 왜 진작 아파트에 이사를 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아파트 상가에는 편의점, 빵집, 병원이 있고 아파트 단지 내에는 잘 조성된 조경시설과 헬스장, 작은 도서관 등 편의시설까지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내게 편리성과 쾌적함을 알게 해 준 아파트처럼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주택을 만드는데 혁신적 역할을 한 근대 건축의 선구자가 르코르뷔지에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23번째 주인공인 르코르뷔지에는 근대 건축의 5원칙을 구현한 빌라 사보아, 현대식 아파트 위니테 다비타시옹, 가장 조형적인 근대 종교 건축물인 롱샹성당, 빛의 아름다움을 선사한 라투레트수도원 등을 통해  표준화, 규격화된 합리적 건축에서 시적인 건축으로의 변화를 그의 일생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지역건축가에서 국제적 예술가로

  르코르뷔지에는 시계 산업의 중심지로 스위스의 산간마을인 라쇼드퐁에서 시계 장식가인 아버지와 음악을 가르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가르치던 어머니와 바이올린을 전공한 형 아래에서 자연히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회화에도 소질을 보였다. 형과 다르게 다소 반항적이고 다혈적이었던 르코르뷔지에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시계 장인으로 구성된 지역공동체가 세운 라쇼드퐁미술학교에서 시계 장식과 세공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르코르뷔지는 훗날 자신에게 유일한 스승이라고 했던 장식미술가이자 미술학교 교사였던 샤를 레플라트니를 운명적으로 만난다. 르코르뷔지에의 재능을 알아 본 스승은 제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소년에게 건축주를 설득까지 하며 건축 작업에 투입을 시킨다. 이렇게 처음으로 건축 작업을 하게 된 르코르뷔지에는 스승에게 배운 그대로 지역 고유의 양식에 따라 건물을 짓게 된다. 지금은 절정의 인기를 끌고 있는 대중 연예인들이 신인시절 모습을 부끄러워하듯 르코르뷔지에 또한 자신의 첫 번째 주택을 굉장히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결국 훗날 첫 번째 주택은 작품집에서도 제외했다. 하지만 발연기의 신인 시절이 없었다면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대연기자가 될 수 없듯이 소년 르코르뷔지에(당시에는 에두아르)에게 첫 주택은 시계 장식가가 아닌 건축의 길로 이끄는 징검다리가 된다.


[갈루초에 있는 에마수도원]


 건축을 막 시작한 르코르뷔지에는 첫 주택(빌라 팔레)에서 번 돈으로 르네상스 문명의 중심지인 피렌체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곳곳을 여행하며 건축가로써 자신만의 이상적 모델을 찾아간다. 특히 피렌체 근교 갈루초에 있는 에마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의 사적 공간이 수도원의 공용 공간과 분리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기능적 구성과 함께 창밖 낭만적 풍경은 그에게 큰 감명을 주게 된다.

 이탈리아 여행 후 오스트리아 빈, 독일 뮌헨 등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 도착 한 르코르뷔지에는 오귀스트 페레에게 철근 콘크리트를 활용한 새로운 건축양식을 배우게 되고 독일 베를린에서는 페터 베렌스의 사무소에서 전일제 근무를 하며 고전적인 취향을 현대적인 디자인과 구조 속에 적절히 반영한 현대 건축을 배우게 된다.

 로코르뷔지에는 1911년 봄, 건축가로써 성장에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는 "동방 여행"을 떠나게 된다.


[르코르뷔지에의 동방 여행 경로]


 동방 여행은 뮌헨에서 가까운 사이가 된 클립스탱과 함께 드레스덴을 시작으로 발칸반도와 소아시아,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오는 긴 여정이었다. 다뉴브강가에서 본 각 도시들(세르비아 시골 마을에서의 전통 가옥과 주변 풍경 등), 이스탄불의 이슬람 사원, 그리고 그리스의 아토스산,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의 파르테논 신전을 통해 르코르뷔지에는 진정한 건축가로 거듭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장면은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에서의 르코르뷔지에의 행동이다. 여느 여행가라면 그토록 동경했던 장소를 찾아가게되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 장소로 내달렸을텐데 르코르뷔지에는 항구에 도착한 후 신전을 보기 위해 언덕을 오르는 대신 카페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언덕 위의 신전과 마주하는 오랜 꿈 앞에서 주저한 것이다. 아마도 그에게는 언덕 위 신전에 대한 기대와 함께 큰 실망을 줄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해 왔을 것이다. 그는 해가 질때까지 기다린 후 다음날  드디어 언덕 위 신전 앞으로 간다. 언덕 위의 신전에서 르코르뷔지에는 예술의 본질을 경험하게 된다. 기하학적 조화와 수학적 정밀성, 돌을 다루는 솜씨, 깊은 울림과 환상적인 공간... 그가 언덕 위 신전에서 느낀 전율은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크로폴리스를 올라가며 이어진다. 이렇게 "동방여행"은 훗날 르코르뷔지에 건축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크로폴리스]


여행 중에도 고향에서 건축 설계가 들어오던 르코르뷔지에는 동방 여행 후 고향에서의 지역건축가로써의 삶을 정리하고 드디어 파리에 정착하며 국제적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세계

 파리에 정착한 르코르뷔지에는 페레와 반가운 해후를 한 후 그의 소개로 화가 아데메 오장팡을 만나면서 화가의 꿈을 꾸게 된다. 오장팡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당시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큐비즘에 맞서 기하학 형태와 함께 "순수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르코르뷔지에는 당시 철근콘크리트 건축의 기본 구조가 되는 돔이노 방식을 통해 슬래브와 기둥만으로 주택의 대량 공급이 가능하도록 하여 훗날 현대 건축의 기본 구조로 자리잡게 한다.


[돔이노 방식]


"르코르뷔지에는 집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불렀다. 그는 우리 삶에 최적화된 집을 만들기 위해 자동차, 비행기, 대형 여객선을 모델로 삼았다. 이 기계들은 표준화, 규격화를 거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p.134


 르코르뷔지에는 오귀스트 페레스트를 통해 철근콘크리트인 구조(강)를, 페터 베렌스를 통해 기하학적인 아름다움(미)을, 자동차 등 기계를 통해 표준화(기능)를 거치면서 건축의 3요소를 구현한다.

 이전까지 에두아르로 살았던 르코르뷔지에는 1923년 [건축을 향하여]를 르코르뷔지에라는 필명으로  출간하여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 르코르뷔지에로의 삶을 살아 가게 된다.

 건축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르코르뷔지에는 공간과 각종 편의 시설을 사람 몸에 맞게 치수화하기에 이른다. '모뒬로르'는 인체 치수를 기준으로 한 건축의 척도인데 르코르뷔지에는 영국 경찰관의 키 183cm(6피트)를 기준으로 치수를 확립하게 된다.

 든 것을 표준화하려던 르코르뷔지에는 시행착오도 거치게 되는데 그가 지은 오장팡 스튜디오는 좁은 계단으로 인해 오장팡의 초대형 캔버스를 반출하지 못하게 되었고, 한 아파트에서는 좁은 나선계단으로 인해 상을 당한 시신을 운구하는데 문제가 생겨 결국 건물 밖 크레인으로 실려 내려와야 했다고 한다.

 이후 근대 건축의 5원칙인 필로피,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자유로운 입면을 적용한 빌라 사보아라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짓게 된다. 하지만 비가 오기 전까지 행복에 젖었던 사보아 가족은 방수 문제로 큰 고통을 겪으면서 수차례 르코르뷔지에에게 보수를 요청하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보수를 계속 미루게 되고 결국 참다 못한 사보아 가족은 소송까지 준비하게 되었으나 전쟁이 터지면서 흐지부지 되고 만다. 르코르뷔지에는 왜 빌라 사보아에 대한 보수를 미루었을까? 건축가로써 자기 확신었을까? 아니면 오점을 남긴 건축물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사보아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훗날 빌라 사보아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까지 되어 주요 관광지 중 하나가 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르코르뷔지에에게 기회로 찾아오는데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에 현대식 아파트인 위니테 다비타시옹을 짓게 된 것이다. 현대 아파트의 모태로 한 척의 크루즈선 같은 위니테 다비타시옹은 이후 낭트, 브리에, 그리고 적국인 독일 베를린까지 지어진다.


[프랑스 우표에 그려진 롱샹성당]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던 르코르뷔지에가 시적인 건축으로 극적인 변화가 찾아오는데 대표적 건축물이 마리알랭 쿠튀리에 신부의 조력으로 롱샹 언덕에 짓게 된 롱샹성당이다.  오래 전 동방여행에서 먼난 언덕 위 파르테논신전처럼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는 롱샹성당은 대지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에 어울리는 건물을 지은 것이다. 롱샹의 역사와 가치, 순례자와 미사를 위한 공간, 사용자 편의를 위한 모뒬로르까지 적용한 롱샹성당은 6만 5000명이 언덕에 모인 1873년 9월 8일 기념비적인 미사가 열린다.

 롱샹성당 공사가 끝나기 전에 쿠튀리에 신부의 의뢰로 또 하나의 걸작인 찬란한 빛의 제단이라는 라투레트수도원을 세우게 되는데 빛과 그림자의 다양한 변주가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수도원이다.

 이렇게 말년에 따뜻하고 시적인 감흥을 느끼게 하는 건축물을 짓던 르코르뷔지에는 찬란한 햇살과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지중해를 늘 그리워했듯이 아내 이본이 묻힌 지중해의 로크브륀느카프마르탱에서 직접 지은 작은 오두막에서 말년을 보내던 중 이른 아침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일흔일곱의 생을 마감한다.


[르코르뷔지에]


 건축문외한인 나로써는 [르코르뷔지에]와의 만남은 뜻깊은 시간이었다. 건축 학위나 자격증 하나 없었던 르코르뷔지에는 기술적 합리성으로 집을 장식품이 아닌 살기 편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건축의 척도라는 모뒬로르, 근대 건축의 5가지 원칙 등을 적용하며 일생 열 두개의 나라에 일흔다섯 채의 건물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마흔 두개의 도시계획안과 400여 점의 회화, 8000여 점의 드로잉, 34권의 책 출판까지 하며 단순히 천부적인 재능에만 한정 지을 수 없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과 활동량을 가진 근대 건축의 선구자였다. 그가 말년에 지은 롱샹성당과 라투레트 수도원은 그가 단순히 기계처럼 천편인률적인 주거 공간만 추구한 것이 아닌 건축에 시적 아름다움까지 담은 진정한 건축가임을 보여주고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저자 신승철은 첫 여정을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르코르뷔지에의 무덤이 있는 언덕을 차를 타지 않고 걸어 올라가면서 보고 느낀 감정들을 통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추구하는 인문 여행기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르코르뷔지에]는 독서 전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하고도 남을 구성과 내용을 갖추고 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르코르뷔지가 건축한 대표 건축물들을 책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작권 때문인지 출판사(저자)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르코르뷔지에의 대표 건축물을 인터넷으로 다시 찾아봐야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르코르뷔지에]는 충분히 읽어볼만한 클래식 클라우드의 23번째 책이라 하겠다.


"만약 르코르뷔지에가 건물을 짓지 않았다고 해도 현대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남았을 것이다." - p.248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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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프트의 스핑크스" 페르메이르와의 특별한 만남 | 인문 2020-07-2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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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페르메이르

전원경 저
arte(아르테) | 2020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전원경 작가의 깊이 있는 설명들은 내게 감흥의 여운을 계속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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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메르?  페리메이르? 페르메이드?... 페르메이르! 페르메이르! 

 클래식 클라우드 [페르메이르×전원경] 독서 초반에는 페르메이르 이름이 좀처럼 입에 붙지 않았다. 그만큼 내겐 생소한 화가였다.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화가는 반 고흐 뿐이었고, 오래 전 유럽 배낭 여행 중 하루만 머물었던 네덜란드에서 시간 내어 찾아간 곳도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반 고흐 박물관이었다.


 네덜란드 중서부에 위치한 소도시 델프트에서만 평생 활동했던 페르메이르. 살아생전 썼던 개인 기록이나 편지, 스케치 등이 남아있지 않은 채 200년 넘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사후에 세계 곳곳에 흩어졌던 35점의 그림이 세상에 빛을 보면서 유명해진 그였기에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페르메이르×전원경]은 그간의 시리즈와는 다르게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그가 남긴 그림이 있는 도시(미술관)를 중심으로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만나게 된다.


 저자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클림트]를 썼던 전원경 작가로 현재 예술의 전당 아카데미와 국립중앙박물관 강사, 서울사이버대학교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있으면서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예술가의 거리』, 『예술, 도시를 만나다』 등 유럽의 문화와 예술, 역사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특별한 여행 가이드

 유럽 여행을 경험한 사람이나 유럽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네덜란드는 아마도 여행지 중 그리 주목할만한 곳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처럼 며칠을 머무를만큼 큰 나라가 아니기에 여행 컨셉만 잘 잡으면 알찬 여행이 될 수 있는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여행 가이드라 하겠다. 바로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인 페르메이르의 숨결이 살아있는 소도시 델프트와 그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암스테르담, 헤이그를 방문해 보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해 주는 델프트에서는 화가 조합인 성 루가 길드 자리에 세워진 페르메이르 기념관을 비롯해 페르메이르의 삶의 중심 공간이었던 마르크트 광장, 결혼 직후 살았던 마리아 판 예서 교회 주변, 페르메이르가 묻힌 구교회의 무덤, 그의 작품들 중 남아있는 풍경화 두 작품 [골목길]과 [델프트 풍경]의 배경이 되는 플라밍 거리와 호이카더를 방문하며 페르메이르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전원경 작가의 친절하고 밀도 높은 페르메이르의 작품 설명을 토대로 암스테르담에 있는 네덜란드의 국립미술관과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들러 페르메이르의 작품들을 감상한다면 이보다 더 특별한 네덜란드 여행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좋아하는 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제목처럼 말이다.


 페르메이르의 고향 델프트는 암스테르담에서 그리 멀지 않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기차는 델프트역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었다. 델프트는 페르메이르의 대표작인 <진주 귀고리 소녀>가 있는 헤이그와 이웃한 도시다. 델프트 기차역에서 트램을 타면 헤이그 중심가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까지 30분 안에 간다. - p.87


 ["델프트 풍경"(좌)과 페르메이르가 <델프트 풍경>을 그리기 위해 운하를 바라본 지점(우)]


  페르메이르의 삶

  페르메이르는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화가다. 완성작 35점을 제외하면 그의 스케치나 다른 기록들은 전혀 남아있지 않고 그저 출생과 결혼, 성 루가 길드 가입일, 사망일 정도만 공식 기록으로 남아 있을 뿐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보냈던 수많은 델프트의 화가 중 한 명에 불과했던 페르메이르가 사후 전 세계로 퍼진 그림들이 20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빛을 보면서 유명해진 덕분이다. 페르메이르의 연구자들은 델프트의 모든 기록들을 뒤져가며 퍼즐을 맞추듯이 페르메이르의 삶을 추적해 갔다.


 그렇기에 수수께끼 같은 인생을 산 페르메이르의 삶을 복원해 낸 [페르메이르×전원경] 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1632년 태어나 1675년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페르메이르는 평생을 델프트에서만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화가 조합인 성 루가 길드에 가입해 화가로 인정 받으며 2번이나 대표를 지냈고 카톨릭을 믿는 부유한 지주 집안의 딸이었던 카타리나와 결혼을 하면서 경제적 안정 속에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다른 화가들은 생계를 위해 1년에 10점 이상 그릴 때 그는 1년에 적게는 1~2점에서 많게는 3 ~ 4점을 그렸으니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페르메이르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컬러가 파랑과 노랑인데 선명한 파란색을 내는 안료로 선택한 라피스라줄리는 17세기에 금보다 비싼 재료였다고 한다. 경제적 안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페르메이르 그림은 나올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페르메이르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델프트의 마르크트 광장]


 말년에 페르메이르에게 시련이 찾아오는데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인해 든든하게 경제적 지원을 해 주던 장모 마리아 틴스가 소유한 농지가 물에 잠기면서 가세가 갑자기 기울게 되자 페르메이르의 화가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꾸준히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구입하던 후원자 판 라위번이 사망하면서 경제적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극심한 생활고로 인해 페르메이르는 작품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말년에 그린 그림 또한 작품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결국 생활고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1675년 갑작스런 심장 발작으로 43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우리는 TV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갑자기 빚더미에 앉은 집안에서 가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후 남은 가족들에게 어떤 시련이 찾아올 지 짐작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화가가 살아 있을 때보다 사망한 후의 이야기를 더 잘 알고 있다. 남아 있는 기록의 대부분이 그가 43세로 급사한 후, 빚더미에 올라앉은 카타리나와 그의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 흔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p.206


[회화의 기술, 화가의 사후 그의 유족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그림(화가가 가장 아낀 그림이었다고 한다)]

  

◇ 페르메이르의 작품세계

 빛, 젊은 여인, 방. 

 페르메이르 작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빛, 젊은 여인, 방이다. 우리가 화가의 이름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비롯하여 [우유를 따르는 하녀],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레이스를 뜨는 아이] , [여인과 하녀] 등 페르메이르의 대부분 작품은 왼쪽 또는 오른쪽(주로 왼쪽)의 반투명 유리를 통해 은은한(순화된) 빛이 비추는 방 안에서 젊은 여인 한 명 또는 두 명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유를 따르는 하녀]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 미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작품 속 여인(하녀)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눈이 시릴 듯한 파란 앞치마, 여인(하녀)의 시선, 부엌의 흰 벽, 처녀가 준비하고 있는 아침 식탁 등 숨은 의미들이 가득한 그림 속 장치들을 저자 전원경의 친절하고 디테일한 설명으로 하나 하나 알아가는 맛은 미술관에서 전담 큐레이터가 온전히 나만을 위해 설명해 주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밖에 페르메이르 작품의 특징은 17세기 네덜란드 사람으로 "근면한 노동은 영혼의 고귀함을 드러내는 신성한 행위"라는 동시대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고, 작품 속에 걸려있는 그림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은연 중에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페르메이르는 이 벽이 실은 빛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라는 사실을 숨기려 한다. 벽에는 못이 박혀 있거나, 못을 뺀 구멍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바닥 가까이에는 세월의 흔적인 얼룩과 때가 보인다. 바닥과 벽 사이 걸레받이 부분에는 델프트 타일이 붙어 있는데 역시 오래된 듯 지저분하다. 이 벽은 빛과 그늘이 만들어낸 놀라운 드라마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여염집의 부엌, 초라한 부엌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법처럼 반짝거리는 그림'인 동시에 '일상에 가장 가까운 장소와 평범한 여자를 그린 그림'이라느 점이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경이로운 면모다. - p.150


[마우리츠하우스 미술관의 <진주 귀고리 소녀>에 푹 빠져 있는 관람객]


  [페르메이르×전원경]을 읽는동안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지만 페르메이르의 아름다운 작품들에 푹 빠져 지냈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말할 것도 없고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회화의 기술> 등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한 전원경 작가의 깊이있는 설명들은 내게 감흥의 여운을 계속 안겨 주었다. 비록 43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며 35점의 작품 밖에 남기지 못한 페르메이르지만 그의 아름다운 그림들은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다. 

 

 끝으로  [페르메이르×전원경] 읽고나서 버킷 리스트가 하나 생겼다. 앞으로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네덜란드를 행선지로 네덜란드 국립 박물관과 마우리츠하우스 미술관애 방문하여 사진 속 관람객처럼 페르메이르 그림에 푹 빠져 보고 싶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아르테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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