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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하지만 그 결과는 내 것이 아닌 세상을 넘어서려면 | 이책 저책 기웃기웃 2019-03-1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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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장 지글러 저/양영란 역
시공사 | 2019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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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집권자 개인의 선량한 의지만으로는 사회 구조를 바꾸기 힘들다는 인식은 조선시대에 살던 못 배운 민중들에게도 널리 퍼져있었던가 보다. 저 멀리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빈민들에게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더라도 양극화와 부의 편중이라는 모순은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를 통해 최초의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장 지글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먼 나라에 사는 그들과 우리의 처지가 본질적으로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체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더 자극적으로 이야기하면, 세계의 정점에서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극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일들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쉽다'는 데 있다. 이 책은 장 지글러의 보고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녀(중고생 쯤으로 추정되는)와 자본주의의 모순과 우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전교조 투쟁을 열심히 하시던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2천 년대에 들어 전교조가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것은 싸워야 할 명확한 투쟁의 상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게 기억났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고, 가장은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준다. 투잡 쓰리잡을 뛰지만 아이들의 교육비는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길어지는 수명에 비해 노후대비를 위한 곳간을 채우는 일은 요원하다. 분노는 쌓여가지만 그 분노가 어디를 향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자본주의가 나쁘다는 건 알겠지만 그럼 이건희 회장을 고소해야 하나? 아니면 문재인 대통령을? 그래서 가열차게 싸워온 사람들도 이제는 주말엔 골프장에 라운딩을 나가고 연금을 최대한 많이 탈 수 있는 명예퇴직 타이밍을 잰다. 학교 현장을 좀먹는 일에도 적당히 맞장구치거나 적당히 화낸다. 그리고 일은 아래 세대에게 준다. 시인 김광규의 <상행>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악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 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자본주의의 똥구멍에서 나오는 쥐꼬리만한 꿀물을 받아먹으며 소시민으로 살면서, 타인의 고통에는 공감은 커녕 귀조차 기울이지 않는 세태를 풍자한 작품이다. 끊없는 경쟁 속에 내몰리면서도 타인과의 유대를 당최 기대할 수 없이 파편화되고, 분명히 열심히 사는데 점점 더 힘들어지는 삶은 결코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다. 그 문제의 본질은 개인을 끝까지 쥐어짜내 발생한 이익을 극소수가 다 가져가 버리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이런 현실을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최소의 자원을 들여 최대의 이윤을 낸다는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는 원칙이 인간의 욕망을 만나면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된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말해주고 있다. 다만 그렇다면 우리는 이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 체제는 결코 수리될 수 없으니 바닥부터 모두 뒤엎어야만 하며 그 자리에 새로운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도 그 대안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 행동하는 양심과, 단결해서 일어설 민중들의 의지에 막연하게 희망을 걸고 있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들을수록 암담해지고 더욱 공포스러워지는 자본주의의 폭주 앞에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기 힘들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이를 멈출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노예제도도, 여성의 정치 참여도, 신분 없이 평등한 세상도 한때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다. 누군가 구멍을 냈고, 쌓여오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이 그 구멍을 통해 둑을 무너뜨려온 것이 인류 진보의 발자취였다. 그렇다면, 한 해에 수십만 명이 '굶어서' 죽는 세상도 어쩌면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로부터 빼앗아 올 수 있는 세상이 언젠가는 정말 올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도 가슴아프고 두려운 현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더욱 강한 희망을 꿈꾸게 하는 책이다. 사회 구조에서, 자신의 삶에서 모순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내가 함께하는 아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려 한다. 소박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의 마지막 말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꽃들을 모조리 잘라버릴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한들 절대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파블로 네루다)


 

이 리뷰는 리뷰어 클럽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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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3월 6일의 일기 | 일기 2019-03-0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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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월)

두 달 간의 길고 긴 방학을 끝내고 드디어 맞은 입학식. 긴장한 탓인지 일찍 눈을 떠서 온천엘 갔다. 욕탕에 몸을 담그고 한참을 앉아 오늘 할 일을 정리하고 시뮬레이션도 했다. 여느 날 같으면 어느 정도 차분하게 정리가 됐을 텐데 워낙 여러가지를 생각하다보니 목욕탕을 나서는 순간 아니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둥둥 떠다녔다. 정문에서 아이들과 인사하면서 바뀐 교실을 안내해주고 학생회 아이들과 미리 준비한 팻말을 들고 간단한 학교 규칙에 대해 알렸다. 곧장 식장에 올라가 의자를 깔고 아이들을 학년별로 구분해 앉혔다. 입학식이 무사히 진행되고, 아이들이 가장 고대하는 순서인 교직원 소개. 여고라 선생님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도 있지만 자기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는 담임선생님이 이 순간 발표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에 학생부 계원이자 처음으로 담임을 맡지 않고 부담임으로서 무대에 섰을 때 낯설어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내년엔 아이들에게 환영받는 선생님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체육관 맨 뒤에 서 있다가 부장교사 소개를 받기 위해 단상으로 오르는데 내가 발 내딛는 곳마다 민망해서 얼굴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함성이 쏟아졌다. 행사가 끝나고 인기가 대단하시더란 다른 선생님들의 공치사를 들으면 그냥 너무 나대서 그렇다거나 그냥 아는 선생님이 나가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소릴 지른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지난 한해 동안 노력한 게 아이들에게 가 닿았구나 하는 생각에 뭉클했다.

 

식이 끝나고 이어진 오리엔테이션. 1학년 학생증을 체크카드 겸 교통카드가 되는 카드로 전환하기 위해 국민, 우리, 신한, 농협 담당자들을 학교로 모셔서 설명회를 진행했다. 곧이어 쉴틈없이 급식지도. 천 명이 단 한시간 만에 식사를 마쳐야하니 지도하는 선생님도 밥 먹는 아이들도 정신이 없다. 급식이 아이들 입맛에 맞아야 할텐데. 오늘부터 학생회 신규 모집이라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만나고 메신저로 쏟아져 들어오는 업무 협조에 학생부에서 진행할 각종 업무, 새로 만난 선생님들과 관계를 맺어가기, 혹시나 학폭이 발생하지나 않을까 교육자료를 뿌리며 교직원회의에서 홍보하기... 그렇게 하다보니 네시 오십분. 전 교직원 회식이 다섯시. 주고받는 술잔 속에 흐려지는 정신줄을 겨우 부여잡고 통금이 한 시간 늘어난 열시까지 귀가했다. 그리고는 술이 술을 먹는 시간의 연속. 잠든 줄도 모르게 침대에 누웠다.

 

3월 5일(화)

몸도 마음도 긴장한 탓인지 어제 그렇게 과음했는데도 아침 여섯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교직 십년차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매학년 모든 교실에 처음 들어갈 땐 참 긴장이 많이 된다. 아이들이 빨리 긴장을 풀고 수업으로 들어와주길 바라는 마음에 내가 먼저 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공개하는데 혹시나 그것이 불편하지는 않을지, 별 관심 없으면 어쩌지, 수업에 실수를 하면 어쩌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대부분의 경우 별 문제없이 첫 시간이 지나가지만 또 다른 반에 들어갈 땐 또 똑같이 긴장이 올라온다.

 

오늘도 역시 눈코뜰 새 없는 시간이 흘렀다. 회의, 수업, 업무, 회의, 수업, 업무....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퇴근시간. 집에 가선 하루종일 혼자 육아한 아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마음먹고 집으로 출발한다. 지난 2월 말의 사건 이후로 저녁 시간에 집에 있기도 뭐하고 주말에도 집에서 쉴 수가 없이 밖으로 돌아야 하니 이러다 언제쯤 과부하가 올지 걱정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3월 6일(수)

역시 학교에선 사람들을 대하는 게 제일 힘들다. 오늘 오후에 2학년 수학여행을 위한 회의를 했다. 학생부 전 선생님들, 2학년 부장님과 담임 선생님들 모두가 모였다. 작년에 학급별로 모두 다르게 여행을 떠나다 보니 달랑 담임 부담임 둘이서 2박 3일 동안 아이들 모두를 밤새 지도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규모로 가다보니 지침상 안전요원을 추가로 배치하기가 어렵다. 그럼 네 학급 정도가 뭉쳐서 가면 안전요원을 한 명 정도 배치할 수 있고, 전학년이 통째로 가면 안전요원을 일곱 명 배치할 수 있으니 운영하는 입장에선 참 좋다. 그런데 지침상, 대규모 여행을 지양하라 하고, 여행 장소도 한 곳으로 아이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게다가, 학생부장 경험이 있는 학생부 선생님은 애들을 한 장소에 모아놓으면 반드시 음주, 폭력 같은 사고가 난다고 우려한다.

 

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턱 하니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거나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일단 그 자리에서는 학년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좋은 숙소가 섭외가 돼서 일단 그렇게 추진하기로 하고 회의를 끝냈다. 그런데 만약 학급 단위로 가더라도 안전요원을 배치할 수 있다면, 그리고 1일 정도는 모둠별로 자유 탐방 계획을 세우면 담임들의 수고도 줄고 전체를 모아두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도 예방할 수 있다. 내일 마침 모의고사가 치러지니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이나 준비할 시간이 있어 다행이다. 그래도 차분히 생각하니 대안이 떠올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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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의 목표! | 일기 2019-03-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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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3권을 읽겠다!

 -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 1권

 - <장서가의 괴로움>

 -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2. 매일 일기를 쓰겠다!

 

3. 아침 수영을 빼먹지 않겠다!

 - 수영장이 문을 열지 않는 월요일엔 근처 온천에서 반신욕을 하겠다!

 

4. 한 주에 회식을 한 번만 하겠다!

 

5. 3kg을 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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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0일~ 3월 3일의 일기 : 왜 선생이 되어서도 일기는 미뤘다가 한꺼번에 몰아 쓰는가 | 일기 2019-03-0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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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수)

아랫집에서 자기들이 이사를 가겠다는 황당한 전화를 받다.

EBS TV 모여라 딩동댕 공개방송에 당첨되어 횡성 문화예술 회관으로 네 식구가 함께 공연으로 보러 다녀오다.

 

2월 21일(목)

어린이집에 두 아이를 모두 보내놓고 아내와 함께 영화 <극한직업>을 보다. 유쾌하게 보고 리뷰도 금방 썼다. 가끔은 이렇게 대놓고 개그하는 영화도 필요하고, 볼 필요도 있다.

 

2월 22일(금)

강원교육과학정보원으로 오후 연수를 다녀왔다. 새로 만들어지는 무슨 지원센터 운영에 관한 설명회였는데 뜬구름 잡는 원칙적인 말들이 사람을 참 지치게 했다.

 

2월 23일(토)

아내는 옛 학교 동료들을 만나러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갔다. 혼자 두 아이와 하루를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부론 금융회계고 잔디 운동장에서 한참 함께 뛰놀고, 여주 곤충박물관에서 함께 탐험 놀이를 했다. 이천 아울렛으로 옮겨 회전목마를 태워주고 함께 옷가게를 돌아다녔다. 만종역에 내린 아내를 픽업해 집으로 함께 돌아왔다.

 

2월 24일(일)

미세먼지가 극성이지만 아랫집 골프채가 더 무서워서 온 식구가 일찍 집에서 나와 늦은 저녁까지 엄청나게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은 어제 갔던 이천 아울렛에 네 식구가 함께 가서 구경도 하고 아이들은 장난감 기차를 태워주었다. 오는 길에 원주 곤충마을에 갈 예정이었으나, 점심을 해결하러 들른 간현유원지에서 작년 3학년 10반 아이들과의 추억을 되짚으며 몇 시간을 함께 걷고 뛰놀았다. 미세먼지가 걱정은 되지만 아이들이 마음껏 뛰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이구나 새삼 느꼈다.

 

2월 25일(월)

새학기 준비를 위해 마음은 급하지만 쉽사리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1학년 학생증을 체크카드 겸 교통카드로 바꿔보기 위해 오늘도 은행 관계자들을 만났다. 새삼스레 부장이 다시 되었다는 무거움이 찾아든다.

입지 않을 정장 한벌을 인터넷 중고 장터 어플에 올렸다.

 

2월 26일(화)

역시 출근해서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하다. 학생회 선발, 학폭예방 교육계획, 2학년 수학여행, 1학년 학생증 전환 등이 현안이다.

 

2월 27일(수)

연가를 내고 강릉엘 다녀왔다. 동화가든 짬뽕 순두부가 너무 먹고 싶었으나 정기휴일. 김우정 순두부도 휴일. 아이들 두 놈을 데리고 교동 짬뽕에서 30분씩 기다리기엔 무서움. 그래서 경포대에 있는 전형적인 관광지 식당에서 내 생애 최악의 짬뽕 순두부를 뱃속에 부었다. 안목 카페거리에서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한잔 하다...가 아이들의 성화에 백사장으로 나왔다. 바다를 보면 그렇게나 신나하는 두 강아지. 가지고 간 과자로 갈매기밥도 주었다. 오죽헌으로 이동.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엿들으며(?) 미친듯이 뛰어다디는 두 녀석을 쫓아다니느라 혼이 나갔다. 아내는 둘째녀석이 율곡 선생처럼 되기를 꿈꾸는 듯 했다. 놀라운 것은 강릉엔 이미 매화가 다 피었다. 돌아오는 길, 주문진에서 놀라운 가격, 놀라운 양의 회를 포장해서 집으로 왔다. 매운탕을 솜씨좋게 끓여 낸 아내 덕에 그 양많은 회를 남기지 않고 샤브샤브로 해 다 먹었다.

 

2월 28일(목)

학생회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 새학기 캠페인 준비를 했다. 참 좋은 아이들인데 공정성이라는 명분 때문에 그대로 이어나갈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아내는 딸과 단둘이 <신데렐라>라는 영화를 보고 학교로 왔다. 함께 점심을 먹고 영유아 검진을 하는 병원에 데려다주었다.

 

3월 1일(금)

연휴의 시작이다. 학기 중엔 좀 다르겠지만 쉬는 날이 오는 것이 요즘은 더 곤란하다. 집에 있기도 힘들고 나가자니 미세먼지가 극성이라. 그럼에도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강에의 악영향보다 마음의 평안을 선택하고 밖으로 나갔다. 원주 곤충마을에 갔다. 뿔이 멋진 산양에게 먹이를 주고, 동화책에서만 보던 토끼를 실제로 만난 딸아이는 저녁에 잘 때 제 엄마에게 '그렇게 좋은 곳에 데려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라고 말했다. 가슴이 왈칵 했다. 여주에 있는 황학산 수목원에도 다녀왔다. 역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오길 잘 했다고 몇 번이고 생각햇다.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삼겹살에 소주를 한 잔 했다.

 

3월 2일(토)

아버지 생신을 미리 축하하러 네 식구가 함께 부산에 다녀왔다. 물론, 많이 칭얼대긴 하지만 그래도 먼 길 다니는 데 많이 익숙해진 모습이 대견했다. 집 근처 고깃집에 가서 소주잔도 나누고 케이크도 불고 용돈도 드리고 하면서 나도 남들처럼 아버지 생신에 소박하지만 그럴 듯하게 맛있는 걸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 속 생각을 실천할 수 있었다. 사는 보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숙취에도 불구하고 군말없이 따라와 준 아내에게 고마웠다.

 

3월 3일(일)

아침에 일찍 깬 아이들 덕분에 몰운대 백사장을 잠시 거닐었다. 돼지국밥을 포장해다가 다같이 먹고,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할머니는 이제 치매 때문에 나를 당신의 막내아들로 인지하시고, 큰손자라는 존재는 이제 잘 기억하지 못하신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가는 일이 이다지도 서글픈지. 올라오는 길에 단양에 들렀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승우의 본가이자 이병헌의 은신처로 사용된 '새한서점'이라는 환상적인 헌책방에도 들르고 유명하다는 단양 흑마늘 닭강정도 한 상자 사먹었다. 하루종일 이동한 여독에 아이들은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고, 나는 내일 수업 준비와 새 학기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내는 내일 새 반으로 옮기게 되는 큰 아이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는 둘째 아이의 등원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출발, 희망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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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9일(화)의 일기 : 층간소음의 끝에서 골프채를 만나다 | 일기 2019-02-2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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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아이들을 무조건 아홉시에 데리고 들어가서 재운다. 아이들이 졸려하든 졸려하지 않든. 그래서 낮에 적게 논 날은 재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신나게 논 날은 십 분만에 잠이 들기도 한다. 워낙 활동적인 아이들이라 집에서도 콩콩거리는 일이 많고 더구나 두 놈이 함께 뛰는 날엔 아랫집에 참 미안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집 거실엔 태권도장에나 깔 법한 두꺼운 매트를 전체에 깔아놓았다. 구미에 사는 내 친구 병규가 와서 보고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였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아래층에서 조심 좀 해달라고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한번, 그의 아버지가 한번. 출퇴근하면서 가끔 마주치는데 그 아이가 다니는 고등학교가 바로 내가 근무하는 학교다. 교복을 보고 알았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 먼저 인사를 하기에도 좀 그래서 마주쳐도 그냥 어색하게 지나치고는 했다. 4년 전 우리가 이사오던 첫날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고 인사를 하러 떡을 들고 갔다가 문도 열어주지 않아서 그냥 낯가리는 사람들인가보다 했는데 그 낯가림의 뚜껑이 오늘 열렸다.

 

오늘도 평소처럼 아이들을 아홉시에 재우고 실내 자전거를 좀 타볼까 하는데 밖에서 누군가의 아주 화난듯한, 욕설이 섞인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계단 철제 손잡이와 우리집 외벽을 무언가로 내리치는지 쾅쾅거리는 소리가 진동을 했다. 취객인가 싶었지만 우리집 벽 바로 앞에서만 나는 소리라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데 우리집 벨이 울렸다. "누구세요?" "밑엣집인데요."

 

겁이 살짝 났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고 사과를 드려야겠다 싶어 문을 열기로 했다. 지난번에도 한번 찾아오셨을 때 화를 많이 내시기에 그저 드릴 말씀이 없어 죄송하다는 말씀만 연발하고는 내려보냈더랬다. 오늘도 그러리라고 문을 열었는데, 지난 주말에 만난 부장님이 즐겨하시는 표현을 빌자면 '야마가 확 돌았다.' 죄송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문을 연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그의 왼손에 들린 골프채였기 때문이다.

 

적당히 좀 하라는 말에도 죄송하다, 우리 애가 수험생인데 미칠려고 한다는 말에도 죄송하다, 선생님이시라면서 도대체 애들 교육을 어떻게 하냐는 말에도 죄송하다고 하다가 내 귀에 탁탁 걸리는 말들이 몇 개 있었다. 선생님? 내 직업을 알고 있었어? 애들 교육? 수험생? 시선은 여전히 골프채에 두고서 질문을 던졌다. 정면 보면서 말하다가 맞으면 당황스러우니까. 

 

- 수험생이라고 하셨는데 몇 학년입니까?

- 3학년 올라가요.

- 아 그렇군요. 제가 선생인 건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보니까 자녀분이 00여고 다니는 것 같던데 제가 거기 근무합니다.

- 네? 00여고요?(짝다리가 좌우 대칭으로 바뀜)

- 예. 제가 올해 3학년 수업 들어가니까 제가 그 친구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겠습니다.

- 음... 그러실 것까진...

 

이때 아이들을 재우던 아내가 밖에서 싸우는 소리를 듣고 몇마디 거들려고 나온다. 덩달아 따라나온 아이들이 골프채를 들고 있는 덩치 큰 아저시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운다. 나도 점점 더 화가 난다.

 

-보시다시피 저희도 아홉시 전에 아이들을 재웁니다. 그리고 아파트란 게 윗집 소리만 나는 게 아니라 여러 집 소리가 같이 들립니다. 저희 윗집 9층엔 저희 애들보다 더 큰 애들이 훨씬 많이 뛰는데도 저희는 그냥 같이 애 키우는 입장이니까 참고 지냅니다.

-예. 지난 번에도 와서 보니까 거실에 매트를 깔아놓으신 걸 보고 양식이 있는 분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양식이요...(겉으로 욕은 못했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또래였으면 욕이 나갔을 것 같다.) 그래서 지금 골프채를 가지고 올라오셨어요? 그거 지금 저 치려고 가지고 올라오셨어요?

-아. 그게 아니고..

-아니 좀전에 벽이고 어디고 다 부술 것처럼 치시던데 저 치려고 가지고 오셨냐고요. 이거 지금 되게 위험한 상황인거 아세요?

-아 예.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무렴 아버님 자녀분도 제가 가르치는 학생인데 설마 일부러 잘못되라고 뛰겠습니까. 세 살 다섯 살배기한테 매일 뛰지 말라고 혼내고 짜증내는 것도 부모로서 못할 짓입니다. 아무튼 앞으로 더 주의할테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예. 알겠습니다. 저희도 장사를 하고 하는지라... 아무튼 아홉시 이후에만 좀 조심해 주십쇼.

-네.(현관문을 닫는다.)

 

그렇게 아랫집 아저씨가 내려가시곤 아이들을 재우는 데 평소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렸을 때 네 집이 공동 화장실을 쓰는 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온 이후 처음으로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열화와 같은 욕구가 타올랐다. 다시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벽을 살펴보니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진 게 가관이다. 혹시나 해서 사진을 찍어두면서도 선생님, 공무원, 애기 아빠 등등 욱하는 성질을 가라앉힐 수 있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서 화를 참았다. 담배가 집에 있었으면 대번어 피워물었을 거다. 아는 분을 통해 경찰에게도 물어봤는데 이런 경우엔 그저 관계를 원만히 해서 좋게 좋게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송사를 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어린 애들 키우는 집에 골프채라니. 성질대로 행동할 수 없게 교사라는 직업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밤이다. 우리집에도 야구방망이 두 개나 있는데 말이다.

 

이 사연을 친구들의 단톡방에 올렸더니 갖가지 경험담이 쏟아진다. 아랫집 뿐만 아니라 그 아랫집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온다는 친구, 알콜 중독자에 알츠하이머 초기 증세가 있는 아랫집을 만나 술동무도 해주고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통근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전원주택으로 이사간 친구, 무조건 사건 접수해서 본때를 보여주라는 친구 등등. 집과 집 사이를 뭘로 만들어놨기에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지 벽 속을 뜯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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