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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구본형, 내 삶의 터닝 포인트

변화경영연구소 저
유심 | 2018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구본형 선생님을 통한 삶을 스스로 변화시킨 제자들의 살아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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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2003) 그리고 구본형 내 삶의 터닝 포인트(2018)

- 거대 조직 IBM을 스스로 나와 스스로 변화한 선생님의 책(2003)과 그를 만나 스스로 삶을 변화시킨 제자들의 이야기(2018)를 읽으면서, 나를 다시 돌이켜본다.

 

나는 1997IMF가 터지기 전에 직장생활을 철도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그 당시에 철도청에 들어갈때에는 지금과 달리는 그렇게 직장을 잡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시기였다. 또한 내가 철도청을 선택한 것은 나는 중학교, 고등학생때부터 원래부터 아주 안정적인 직장을 가고자 결심했고,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고자 하는 어렸을때부터의 아주 얄팍한 마음이 내 마음의 한구석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집안의 가풍 역시도,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공직에 계셨고, 공직자 집안이었기 때문에 아버님과 어머님 모든 분들이 내가 공직에 대한 일을 하는 것을 대찬성을 하셨다. 물론 아버님은 가능하면 행정고시를 보는 그런 길을 이야기 하셨으나, 천성적으로 그리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행정고시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유는 나는 꼼꼼하지 못하여, 틀린 문제를 계속 틀렸기 때문이다.)

 

그런 선택으로 인해서 IMF 전에 안전하게(?) 철도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공부를 별로 한 것이 없는 거의 깡통수준으로 임용이 되었다.

 

그리고 1997년말 IMF 가 시작되고 정말 많은 기업들이 순식간에 도산했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직장이 철밥통이라서 그런 고통은 상당히 비켜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엄청 큰 숲과 같은 아버지님이 지지하셨기 때문에 고생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할 것이다. , 나는 여전히 공무원 초년 생활을 했으나, 정말 철이 없었다. IMF 시기에 미국으로 유학가겠다고 아버님께 유학비를 대달라는 땡깡이나 부리는 그런 철이 덜든 공무원이었다. (지금도 후회한다. )

 

그리고 남들보다 편한 보직으로 군대를 마치고서, 불과 6개월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아버님이 유고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었다. 아버님의 그 큰 숲과 같은 나무가 사라진 이후에 모든 삶의 무게를 견디고서 살아가는 한 명의 온전한 직장인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임명권자(인사권자)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더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그런 현실적인 깨달음이 4만명의 철도청 직원들 중에서 빠른 시간에 현장에서 지역본부를 거쳐 본청에 올라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직장생활 중에는 열심히 일했고, 자는 시간을 줄여서 주경야독으로 공부했다. 또한, 그런 덕분에 승진에서 단 한 번도 누락없이 최소 승진연수만을 채우고서 바로 바로 승진을 할 수 있던 참으로 운이 좋은 케이스 였다.

 

그렇게 주경야독으로 했던 공부는 행자부의 장학생으로 고려대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하였고, 졸업 이후에 얼마가지 않아서 철도청의 기획을 맡게 되는 일을 하게 하였다. 청장님 자문관실에서 아주 큰 철도와 관련된 아젠다들을 철도선배님들을 통해서 그리고 수많은 철도와 교통논문들을 통해서 익히고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삶에서 내가 자기경영과 관련된 책을 정말 무식하게 열심히 읽었던 때는 나의 직장에서 아주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 바로 그 때였다.

 

그것은 철도청 유전사업 이후에 내가 모셨던 철도공사 신광순 사장님과 존경하는 김세호 차관님께서 배임의 혐의로 구속되셨고, 그 당시 청와대에서 새로이 임명하신 이철 사장께서 오신 후에 내가 존경하던 모든 철도청의 임원분들이 단 한칼에 단 한 방에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 분들은 단연코 35천의 철도청 직원들중에서 단연 최고였고, 나에게는 우러러보는 그런 우상과 같은 존재이셨다. 특히, 대한민국으로는 고속철도를 처음으로 개통하고 안정화를 시킨 대단한 공로가 있으신 분들이었으나, 외부에서 오신 철도공사 사장께서는 그 모든 자리에 자신의 사람을 쓰고자 하셨고, 덕분에 그 분들과 열심히 일을 했던 사람들은 당연히 조직내에서 내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 역시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옛날 사람으로 인사권자분에게는 분류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최상위의 변화는 내 삶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계속 자기경영에 빠지게 했다. 최고의 자리에서 조차도 비탄하게 조직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30~40년을 온 인생을 바쳤어도 떨어지는 낙엽과 같다는 한탄이 존경하는 본부장님의 퇴임사에서 나왔다.

 

그래~!! 우리는 조직에서 언젠가는 나온다. 그것이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퇴직일지 혹은 밀려나는 구조조정일지의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이 시점은 언제 나갈지 모르지만(마지막은 나이가 다 차서 퇴직으로 나간다) 그 새로운 변화를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 1주에 무식하게 3-4권씩의 공병호 박사님의 책들과 구본형 선생님의 책들을 미치도록 고려대 경제학 석사공부를 함께 하면서 형광펜으로 읽고, 요약하고 그리고 밑줄쳤다. 그리고 그 중에서 괜찮은 책들을 스마일 경영노트라는 이름으로 요약해서 다른 직원들에게 전달하곤 했다.

 

그 당시 공박사님의 책들은 효율성, 경제성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정확하게, 명확하게 계획을 세워서 탁월하게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반대로 구본형 선생님의 책은 보다 깊이 있게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세워가는 법을 아주 어렴풋이 알려주셨던 기억이 난다.

 

특히, 2005년에 코레일 계열사(현 코레일 네트웤스)의 경영혁신부장을 하면서 옆에 끼고 읽었던 구본형 선생님의 책 익숙한 것과의 결별그리고 그 당시에 함께 열심히 읽었던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 “포트폴리오 인생과 같은 책은 코레일에서 정년을 끝내고 내 스스로를 언젠가 스스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깊은 갈망과 정말로 내 자신을 찾아서 앞으로 조직의 미래가 될 다가올 미래의 professional 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코레일에서 절대로 어떤 일도 회피하지 않았으며, 그런 CEO의 오더를 받으면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될 수 있는 것으로 기획하고, 정말 조직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그것을 정리해서 철도학회에 계속해서 논문으로 출판했다.

특히, 영국으로 MBA 이후에는 다시 코레일로 돌아오니 그동안 영국과 글로벌로 컨설팅을 하면서 익힌 역량을 조직내에서 계속해서 참고 기다리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 모든 것을 시도하지 않고, 계속 위계를 내세우면서 반대를 하지만,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어렵게 하나를 하고 나면.. 모든 공은 위에서 가져가는 허탈한 심정이었다. 덕분에 내가 서울역에 마케팅 팀장을 하고 있을때에 위쪽의 기관에서 승진한 분들이 참으로 많다. 하하

그래도 아주 소수이지만, 나의 본질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철도의 마케팅과 관련된 열차들을 만들면서 새벽 3시까지 직원들을 데리고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딱딱한 반대만을 하는 조직에서 더 있을 수 없었고 내가 제안하는 일들은 전부 내가 부서장(처장급 보직)이 되지 않고서는 실질적으로 추진되기가 어려웠다.

 

특히, 내가 코레일 국제철도연수센터 교수로서 코레일과 한국철도산업의 보다 큰 해외사업을 위해서는 “K-Water와 같은 모델로 ADB와 공동연수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런 프로젝트와 프로그램으로 보다 더 큰 틀에서 협력사업을 발굴하자는 제언들을 했으나, 그런 건설적인 제언들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새로운 기획안들은 채교수가 나중에 국제철도연수센터 처장급이 된 다음에 해라.“는 냉정한 선배님들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결국은 내가 직접 하지 못하였으나, KOTI(한국교통연구원)에서 김경철 원장님 시절에 김경철 원장님과 글로벌협력본부장이셨던 권영인 박사님께서 흔쾌히 받아주셔서 코레일 제대후에 KOTI에서 외부교수로서 MDB와 함께 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은 조직의 Capacity 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오늘 읽은 책은 구본형 선생님을 만난 후, 제자가 되어 스스로 삶의 전환을 이루어낸 제자분들의 책이다.

 

나는 구본형 선생님을 책으로 그리고 간혹 직장인을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으로써 만났지만, 나 역시 스스로 익숙한 것과의 결별그 이후에 스스로 전환과 변화를 이루어 1인 기업으로서 새로움과 창조를 위해서 계속해서 도전해나가는 중이기에 이 책에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시는 분들과 같은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 그래서 더욱 더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생각보면, 그 당시 나는 스스로 먹고 사는 밥에 더 중요함을 느꼈기에 스스로가 구본형 선생님과 같은 좋은 스승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제자는 준비가 될 때 선생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정말 진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그것을 갈구하고 스스로가 변화하기 위해서 계속 책을 읽고 내적인 변화를 만들고 구본형 선생님의 방법대로 내가 진정 좋아하는 글로벌 인프라 개발에 대한 일을 하기 위해서 아직도 전쟁지역이 아프가니탄 카불에서도 근무를 했고, 지금도 ADB의 아프가니스탄 재무부장관의 PPP Advisor의 역할을 하고자 마지막 최종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전으로 상처받아 치유할 길이 없는 그 아프간 카불로 나를 또다시 밀어 넣을 것이다.

 

또한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 비행기를 타며, 전세계에서 인프라 프로젝트로 계속 배우고,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서슴없이 토론하고, 그리고 그것을 배워서 한국에 쓸 수 있는 아무도 하지 않는 그 준비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구본형의 제자는 아니지만, 사숙(私淑)을 했기에 분명히 제자의 맨 가장자리의 언저리와 범주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본형 선생님이 이야기 한 대로 그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나를 스스로 찾아내고(자기발견),

2. 내가 해야 할 북극성(사명)을 알고 있고,

3. 그 북극성을 가는 길은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열심히 나만의 길을 걸어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걸어갈 것이다.

4. 나의 역량이 필요한 커다란 코끼리를 내가 벼룩으로 도와 코끼리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5. 마지막은 나와 같이 커다란 조직을 나와 “Only One”의 스스로가 빛나는 별이 되고자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의 모델을 보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은 미래에 내가 스스로 계속 도전해야 할 새로운 과업이다.

 

채일권 드림 (2019년 새해 첫 날 11일 드림)

글로벌인프라연구소/한양대 MBA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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