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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책 보며 눈물을 훔친다 | 내가 쓰는 리뷰 2023-01-24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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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저
문학동네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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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샘과 눈물샘이 동시에 젖는다(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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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를 봤다.

이 책이 원작이라는 걸 알게되었고, 반가운 마음에 빌려왔다.

분명 눈으로 문장을 읽고 있는데 한석규 목소리로 입력된다. 참 좋다. 

 

"아내를 간호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낯선 부엌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을 길게 늘이고 싶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글로 쓰면 위로가 되었다." (p13)

 

작가는 음식을 하나씩 만들때마다 sns 에 레시피를 올렸다. 그 글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부제는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라 적혀있다. 

에세이가 소설도 아니고 스포일러라고 말하기엔 좀 우스꽝스럽지만 부제가 스포일러다. 

라면밖에 끓이지 못하던 남편이 3년여 동안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 못하는 요리가 없는 실력자가 되었다. 홀로 남겨질 남편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린 아내의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간호한다고 고생 많았어. 당신이 해준 밥을 이렇게 오래 먹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고, 맛있을 거라고는 더욱더. 내가 없어도 밥은 제대로 해먹겠다 싶어서 마음은 편해." (p17)

 

큰 줄기는 요리 레시피이다. 요리책을 보면서 따라 하고 싶은 의지가 불끈 솟아올라야 정상인데 이 요리책(!)은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눈물이 난다. 문장 어디에도 슬픔을 내포한 흔적이 없는데 코가 시큰해지고 시야가 흐려진다.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아픈 아내를 위해 해줄게 요리밖에 없다. 다양한 식재료를 손질하고 씻고 썰고 데친다. 육수를 우려내고 기름을 둘러 볶고, 삶기도 찌기도 한다. 어설프던 솜씨는 점점 나아지고 요리 시간도 짧아진다. 일머리가 생기고 노하우도 쌓인다. 한식은 참 손이 많이 간다. 대부분의 요리가 정성을 들여야만 완성된다. 이런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만들어도 아내 컨디션이 안 좋으면 물 한모금도 삼키지 못한다. 

 

문장들이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우아하다. 

내내 담담한 문체로 어디서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문장이나 표현은 찾아볼수 없다. 

담담한 문장에서 어떻게 사랑과 슬픔이 감지되는지 모르겠다. 글쓰는 순간의 감정과 진심이 녹아들어가서 그런게 아닐까싶다.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담아 뭔가를 만들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목적지는 동일하다. 다만 각각 개인의 종료시간은 짧을수도 길수도 있다. 유한한 생명체로 살면서 영원을 사는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이 마냥 길수는 없는데, 오늘도 티격태격, 고집을 부리고 사소한 것들에 감정을 소비한다.

 

아는 사람의 부고를 듣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상가집이라도 다녀오는 날이면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뭔 호사를 누리겠다고 이리 매 순간 치열하게 사는지, 반성하며 이젠 그리 살지말아야겠다 다짐한다. '느리게, 욕심 버리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인스턴트 다짐을 한다. 다음날이면 다시 제자리다. 

 

책을 다 읽고서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후련하게 한바탕 울고서 남편과 아들을 위해 뭔가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당장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자정이 넘은 시간에 반찬 두가지를 뚝딱 해놓았다. 그러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리뷰로 마무리 한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 기분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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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어떻게 다를까 | 내가 쓰는 리뷰 2023-01-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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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구술문화와 문자문화

Orality and Literacy 저/임명진 역
문예출판사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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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서라기 보다는 교과서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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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와의 소통을 말이나 글로 한다.

 

문어체와 구어체가 있다. 
말할때와 글을 쓸때의 언어는 분명 같은 언어지만 조금 다르다. 
말하듯이 글을 쓰거나, 교과서에 나오는 문장들로 대화 하는건 어쩐지 이상하고 어색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상에 나타난 것은 지금부터 약 5만년전이다. 
또 우리가 아는 최초의 기록물은 기원전 3천5백년 경에 나타났다고 한다. 
구술이 50살을 살아낸 어른이라고 하면 문자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3살 아기이다. 


"구술문화에서의 생각은 일단 끝까지 진행되고 나면, 쓰기의 도움을 받아 생각을 재현할 때만큼 효과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한 생각은 지속적인 지식이 되지 못하며, 비록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순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p77)


텍스트가 없던 시절에는 기록으로 남길수가 없으니 모두 기억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구술문화에서는 말을 기억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반면에 요즘은 초등학생도 휴대폰을 갖고 다닌다. 편하고 익숙한 디지털기기를 휴대한 뒤로 뭔가를 기억하는 능력은 분명 퇴화된거 같다.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 손 안에 인터넷 덕분에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전화번호도 복잡한 공식이나 계산식도, 기억해야할 중요한 일정도 어딘가에 메모를 해두면 된다. 기억보다 어디에 저장해뒀는지 보관 공간을 찾는게 중요하게 되었다. 

 

"어느 중앙 아프리카 사람에게 마을 학교의 새로운 교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춤추는 것을 좀 지켜봐야죠." 라고 대답한 사례도 있다. 구술적인 민족은 지적 능력을 
일부러 꾸며낸 텍스트 퀴즈로 추론하여 평가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평가한다." (p106)

 

어느 학교 출신인지, 배움이 얼마나 길었는지, 경쟁자끼리 서로 비교하여 유리한 스펙을 가진 사람을 합격시키는 게 지금 세상의 규칙이다. 문자문화가 덜 발달된 시절에는 누군가를 평가하는 기준도 재밌는 방법이 동원된다. 이 기준은 그때 그때 다르다고 하니 면접을 봐야하는 사람은 사전에 뭘 준비해 가야했을까. 자신의 어떤 장점을 어필했을까. 


"구술표현은 꼭 쓰기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존재할 수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구술 표현은 
쓰기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쓰기는 구술성 없이는 존재 불가능한 것이다." (p38)

 

"(...) 쓰기는 세 가지 기술 중 어떤 면에서는 가장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쇄술과 컴퓨터는 쓰기에서 시작된 것을 계속해나가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끊임없이 움직이는 소리를 정지된 공간으로 환원하고, 소리로 된 말만이 존재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현재로부터 그 말을 분리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p143)

 

문자, 쓰기, 인쇄술은 모두 구술에서 시작되었다.

지금 시대에 쓰기가 없는 일상은 상상이 어렵지만, 
쓰기가 생겨나던 초기에는 불청객 취급을 받았다. 문자보다 말을 더 신뢰했다. 
위조 문서가 많기도 했고, 원본 문서에 대한 상호 약속된 규칙도 없었다. 
어떤 문서는 원본임을 입증하기 위해 칼을 달아두기도 했다. 
지식인이라 불릴만한 사람들도 모두 부정적인 말들로 쓰기를 거부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는건 어느 시대든 진리인가보다. 

 

 

쓰기는 처음 그렇게 구박을 받고 보조적인 역할만 하다, 성서나 코란 등 종교를 중심으로 쓰기의 영역은 점차 확대되어갔다. 
문자가 없었다면, 쓰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컴퓨터나 인터넷은 꿈도 꾸지 못할 것들이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 디지털이 없는 세상을 이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세탁기, 냉장고, 청소기, 가스렌지 이런게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어찌될까. 모두 자연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저자는 구술과 문자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그둘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왔는지가 궁금했나보다. 수사학을 연구하면서 언어의 구술성과 문자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타계하기 전까지 긴 시간 연구를 이어갔다고 한다. 

 

구술과 문자.

나는 딱히 궁금하거나 호기심이 생기진 않지만 강제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 꾸역꾸역 읽었다.

책 뒷 커버에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 나는 동의하기 좀 어려웠다.
"이 책은 어느 한 전공분야를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인문.사회 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교양서다."
교양서라기 보다는 전공분야를 위한 교과서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 책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독자라면 다르려나. 
내겐 거리가 너무 먼 주제여서 어렵게 느껴진 책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읽어낸 책이라 리뷰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독에 대한 증명이자 버틴 시간에 대한 결과물이 있었으면 했다. 1월은 다시 뭔가를 실천하기에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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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 거리두기 | 일상의 끄적임 2022-12-2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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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우리 딸 0점 맞아도 사랑한다~"

 

아이가 시험을 망쳐 우울해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때 
부모의 사랑을 일깨워주고 인생에서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을 낮춰줌으로써 
다시 일상으로 즐겁게 복귀시키려는 목적의 대화다. 

 

'금쪽같은 내 가족' 이란 제목으로 한 정신과 의사의 비대면 강연을 들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참 다정하네, 멋진 부모네 하며 마음속 한편에 저장해둔다.

 

조곤 조곤 사례와 함께 풀어나간 강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관계'가 조직이나 사회생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필요한 일임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이론대로라면 아빠의 사랑을 확인한 딸은 눈물을 그치고 어깨를 펴며 
평안하고 쾌활한 예전의 아이로 돌아와야 한다. 
따뜻한 감동은 덤으로 가슴 한 편에 다운로드된 상태로 말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반응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리얼하게 일깨운다. 

 

"아빠는 우리 딸 0점 맞아도 사랑한다~"
"그러면 어떡해 내 인생이 달렸는데~"
(아빠 당황... 어, 이게 아닌데...)

 

똑같은 상황이 와도 아이의 반응은 아이의 수만큼 생길 수 있는 변수임을 놓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저런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말을 해줘야 지혜로운 부모일까. 
강연의 의도는 꼭 그렇게 하기보다 상황에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충고였을 테다. 
멘토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리저리 고민하며 응용을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얗다. 이런 상황에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심화단계의 정답을 다시 이리저리 찾게된다. 

 


부모와 자식은 평행선을 달린다. 


가난하고 배움이 많지 않아도 고성장 시대를 겪은 부모세대는 지금과는 다른 환경을 살아왔다. 스펙이 화려하지 않아도 성실과 노력만 있으면 직업을 구할 수 있었고, 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곤 했다. 노력해서 뭔가를 이룬 경험이 있는 부모는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의 눈에 아이들은 끝까지 해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포기한다. 
조금만 더 하면 될 텐데 안타까우면서도 끈기가 없는거 같아 화가난다.

 

가난하진 않지만 비슷비슷한 스펙 경쟁에서 차별화된 뭔가를 더 장착하려 노력한다. 
개인의 스펙은 계속 높아지지만 저성장 시대를 사는 자식들은 청년실업을 면치 못한다. 
불성실한 게 아닌데, 죽을만큼 노력을 하는데도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다. 실패와 좌절을 반복해서 겪는다. 이런 상황인데 부모들은 무턱대고 더 많은 성실과 노력만 강요한다. 
왜 시간낭비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답답하다. 


요즘 MZ 세대는 학교에서 '노력하면 된다'라고 배웠지만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걸 금방 알아챈 세대다.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음에도 현실은 '노답' 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이자 똑똑하고 창의적인 세대' 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도 했다. 

 

성실과 노력말고 어떻게 해야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는지 새로운 길을 궁리한다.
주식과 코인의 열풍은 이런 세대에 청년들이 취할 수 있는 제일 가능성 높은 선택지 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자식은 최소 스무 살 이상의 차이가 난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지는 요즘이라면 나이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스무 살 나는 사람과 대화라는게 제대로 통할리 없다는 걸 안다. 소통이나 상호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가르침이고 충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는 그들을 꼰대로, 불통의 대상으로 만든다. 
의도를 갖고 꼰대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는 그들은 그들대로 억울하다.

 

부모와 자식은 세대차이가 존재하는 채로 태어난다. 불통을 기본값으로 갖고 출발한다. 
불협화음이 당연시된 관계에서 호전을 바라는 일은 요원하다. 수많은 삐걱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릴때부터 계속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정(情)이라는 걸 쌓았다는 점이다. 


아이가 어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 몸도 마음도 부모의 보호가 필요하지 않다.
말 잘 듣던 착한 딸과 아들은 점점 자아가 생기고, 세대차이 나는 부모에 반기를 든다.
성장한 아이는 절대자라고 여겼던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이상 부모를 의지해선 안된다고 느낀다. 자기만의 생각과 취향, 고집이 생긴다. 

 

남, 녀는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하고 다시 반복이다. 
X세대, Z세대, MZ세대 이름만 달리하고 스타일은 조금씩 변화했지만 그 격차는 줄지 않는다.
나란한 평행선은 절대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세대를 막론하고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자연스레 꼰대가 된다. 

꼰대의 세대교체다.

 

평행선은 두 직선이 만나지는 못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걷는다. 

 

코로나로 물리적인 거리두기가 자연스러워졌다. 심적으로도 적당한 거리두기는 필요하나 가족이라면 그 괴리가 좁을수록 화목하다. 쓸쓸하고 서늘한 세상에 따뜻한 온기 하나쯤은 집이, 가족이 제공해야하지 않을까. 사회적인 가면을 벗었을 때, 쉴 수 있는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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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의 안중근을 만나다 | 내가 쓰는 리뷰 2022-11-1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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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얼빈

김훈 저
문학동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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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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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코레아 후라! (대한민국 만세)

 

1909년 10월 26일 세발의 총성.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30살의 청년 안중근.

 

영웅 안중근이 아니라 인간 안중근의 이야기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 
역사속 영웅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각색되고 편집된 경향이 있다. 어릴적 읽은 위인전 느낌이 있다. 나와 같은 인간이면서 같은 인간이라고 동일선상에 올려 견주기에는... '감히' 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인간 안중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가 기대되었다. 

 

안중근은 말수가 적고 우직한 사람이다. 어떤걸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행동으로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가족이나 주변사람을 자상하고 세세하게 살피기 보다 대의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진작에 받기도 했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간 소설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기 전,후의 짧은 기간이 주된 내용이다. 
어떤게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허구인지 구별은 잘 안되지만 충분히 몰입하며 읽었다.

 

"저는 10월 26일에 이토를 쏘았는데, 저의 처자식이 27일에 하얼빈에 도착했습니다. 
저의 처자식이 미리 도착해서 저를 만났다면 저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 겁니다. 
저는 이 하루 차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p268)

 

10/26일 거사를 치르는 동안 아내 김아려는 두 아들과 함께 남편에게 오는중이었다. 
휴대폰이 있거나 하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연락은 안되고, 또 오는 과정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남편 안중근은 26일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김아려는 27일 아침에 하얼빈에 도착했다. 김아려를 기다리는 건 남편이 아니라 하얼빈에 있는 일본 경찰들이었다.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었을테다. 아내와 아들을 만났더라면 아무리 감정표현이 적은, 나그네같던 안중근이더라도 흔들리지 않았을까. 

 

"이토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 보다는, 이토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이토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p89)

 

천주교도 였던 안중근은 사람을 죽이는것에 주저함이 있었다. 과거에 한 전투에서 잡은 포로를 풀어준 일화도 나온다. 그랬던 그였지만 이토의 악행을 멈추기 위해서는 죽이기로 한다. 소거하기로 마음 먹은뒤로는 거침이 없었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빌렘신부에게 모든 죄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에 대해서는 고해성사를 하지 않았다. 스스로 옳은 일을 한거라고 생각했다. 후회도 자책도 없이 당당한 모습이었다.

 

안중근의 거사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긍정적으로 또 부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뮈텔신부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에서는 살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개인(혹은 국가)의 증오를 살인의 방식으로 표출한 안중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종교계에서도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이자 범죄자 취급을 받은셈이다. 
1993년 김수환 추기경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당방위에 손을 들어주며, 최초의 추모미사가 이루어졌다. 안중근 의사 서거로부터 80여년이 지난 꽤 오랜 시간이 지난후였다. 

 

소설에서 안중근의 거사는 짧고 담담하게 묘사한 반면, 체포된 이후의 재판과정을 좀 더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중근의 소망도 이토 히로부미 제거에 있지 않았고, 이토를 쏴야만 했던 죄목을 서방세계에 널리 고발하고 싶어했다. 더 나아가 동양평화론을 주장하기까지 하며 보다 큰 정치적인 명분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이토 히로부미도 동양평화론을 주장했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문명개화의 이름하에 자행된, 수탈과 억압을 통한 철저한 식민지화였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한국, 중국, 일본 등 각자의 나라가 독립된 국가로 존재하며 서로 협력하고 평화를 유지하자는 주의였다. 

 

안중근의 가족은 아내와 2남 1녀의 자식을 두었다. 자녀들의 이야기는 짧게만 언급되는데 특히 둘째아들 안준생은 배신자라느니 친일을 했다느니 하는 얘기도 간단하게 사실적으로만 언급되고 있다. 두루 함께 엮었으면 좋았을텐데 좀 아쉬웠다.

 

안준생의 이야기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로 보는것에 그쳐서는 안될거 같다. 
실제 내용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친일파 라기보다 안타까운 이야기가 상상된다.
안분도(첫째아들)는 7살에 일본밀정에 의해 죽은것처럼 보인다. 안준생은 살아남았지만 평탄한 삶은 아니었을테다. 직업이나 제대로 얻었을까. 뭘 해먹으며 살았을까. 협박과 감시, 훼방이 평생을 따라다니지 않았을까. 친일을 했다면 죽고 싶지 않은, 생존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주위에선 온통 찬양하는 이야기뿐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이름이 아니었을까.
협박과 감시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상이 이어지면 원망을 넘어 분노에 가까운 감정으로 변하기도 한다.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칭송하는 말이 삶을 1원어치도 바꿀수 없었다. 좋은 칭찬이 쌀이 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습니다.
나는 나라의 재앙이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안준생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들리는듯 하다.

 

이 소설로 안중근에 대해 또 그 가족에 대해, 독립운동을 했던 영웅들에 대해 담담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역사적인 인물이 주인공인 책은 자발적으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김훈 작가가 썼다고 하니 이목을 끌게 되는듯하다.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된 영웅들은 잊혀지면 안된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이유, 한 명 한 명의 영웅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억하고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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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왜 좋아요?" | 일상의 끄적임 2022-09-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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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

 

하루에도 수백 권의 새로운 책이 출간된다. 
소설, 과학, 인문학, 재테크, 자기계발서...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 많은 카테고리 중에서도 나는 특히 에세이를 좋아한다. 

 

지금은 에세이 전성시대라 불릴 만큼 정말 많아졌지만, 예전엔 그 종류가 많지 않았다. 

"에세이가 왜 좋아요?"

산문이 많지 않던 시절에 종종 들었던 질문이다.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답을 내본다. 

 

정신없이 바쁜 사이에도, 반복되는 일상을 생각 없이 살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할 때도 
틈새를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질문들, 상념들, 하찮은 궁금증들.
그때그때 입 밖에 말하기엔 빈도수가 잦고, 매우 사소한 것들이다. 
또 미처 완성되지 못한 잡념을, 우습지 않은 말이 되도록 발화하기엔 가공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쯤 스치듯 지나가는 조각들. 종종 단골처럼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
그런 비슷한 생각을 언어나 문장으로 시원하게 정리된 결과물을 만나는걸 좋아한다. 
그 기쁜 결과물을 대화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지만 문장에서는 어렵지않게 만날 수 있다. 


에세이는 그렇게 나에게 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누군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내 안에선 아직 정돈되지 않은 너저분한 상태로 방치된 것들을
잘 다듬어진 문장으로 만나는 일은 신기하면서 반갑다.

확실한 즐거움을 준다. 소확행이다. 

글을 쓴 작가에게 질투도 느끼지만 감탄하는 데 시간을 더 소비한다. 
그럴때마다 작가를 한번 더 쳐다보고 기억하게 된다. 

 

'와! 멋지다. 이런 표현을 하다니!'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부럽다'

 

나라면 마침표 여럿으로 표현했을 문장을 마침표 1개로 깔끔하고 경제적이게 쓴 글은 
작가의 선천적인 재능일까 노력으로 얻어진걸까 궁금해진다. 
그런 소확행을 자주 느낄수록 최애작가의 반열에 올려둔다. 

 

일상은 누구에게나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동질과 이질이 같이 공존한다. 
내가 접하지 않은 동떨어진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공감할수 있다는 점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책 읽는 즐거움일 수도 있다. 그 즐거움을 나는 에세이에서 더 자주, 많이 느낀다. 

 

에세이를 좋아하고 즐겨읽는 이유는 '공감과 동감'이다. 
친구가 많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는 나는 내가 잘못해서 친구가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있다.  그럴땐 내향적인 사람을 위한 책이나, 소심한 사람들이 쓴 에세이를 찾는다. 그들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내가 가진 불안은 문제라기 보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 된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구나 상기된다. '다른' 사람인거지 '틀린' 사람이 아니라는 자각은 힘이 된다. 타인과의 관계에 쏟는 에너지를 다시 내 안으로 끌어모아 나를 다독이고 쓰다듬는 시간을 갖는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삶을 살것 같은 작가의 생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좋아 보이는 타인의 일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안온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과의 부대낌이 힘에 부칠 때,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예고 없이 마주할 때, 모두가 인싸고 나 혼자 아싸라고 느낄 때. 더 바닥으로 떨어지기전에 자존감을 추슬러야 할 순간이다. 에세이를 주기적으로 밥 먹듯이 찾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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