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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책이네요. 읽어봐야겠네요. 
이 책 꼭 읽어보려고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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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보 페르트의 세계로 | 문학과 예술 2023-03-10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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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아르보 패르트: 기악, 합창 모음집 (Arvo Part: The Collection)

Various Artists
Brilliant Classics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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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없이 틀어놓으면 

마음은 가라앉고 대기는 잠잠해지며 공기의 작은 움직임까지 느껴진다. 

세상이 감사한 곳으로 변화하며 

나를 힘들게 했던 아픔들마저도 나를 성장시킨 고비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아르보 페르트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작곡가다. 미니멀리즘 속에 중세스러운 찬란함을 숨겨놓고 있다. 하나의 음이 다른 음으로 이어지며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흘려가며 마음의 어두운 부분에 밝은 햇살을 밀어넣는다. 

 

품절이더라도 판매 시작 알림 신청을 해두어라. 나도 그렇게 샀으니까. 중복되는 곡들이 많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경제적인 가격의 박스세트니, 이건 충분히 양해가능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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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은 것들, 또는 여성 예술가 | 문학과 예술 2023-01-2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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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알고 싶지 않은 것들

데버라 리비 저/이예원 역
플레이타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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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전에 Deborah Levy에 대한 글을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그 때 알았다면 2018년에 읽었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들은 번역되지 않고 그녀의 에세이만 나와있는 건 다소 의아스럽다. 그러나 어쩌면 누군가가 소설을 번역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동시대 외국 소설에 대한 독자층은 상당히 얇은 것일지도. 

 

몇 편의 에세이가 담긴, 이 짧은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20세기 이후 본격화된 여성 예술가들의 존재는 현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기존 예술사에선 보기 드문 목소리, 태도, 시각, 표현 방식을 선사하며 다양한 측면에서 영향을 끼쳤고, 잘못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던 현대 문명에 대한 반성을 보다 다각적인 방면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아마 남성 예술가라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어떤 것들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 점에서 나는 뤼스 이리가라이의 생각, 타자를 포용하는 여성성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여성예술가들에게 있어, 타자란 자신의 생애 안으로 들어오는 구체적이며 소박한 형태를 띄는 경우가 많다. 이리가라이는 임신이라는 생물학적인 계기에 대해 많은 가치를 부여하였는데, 심지어 혈액형까지 다른 아이를 뱃 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성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타자를 품고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여성들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인가에 대해 언급되진 않지만, 여성 예술가들 대부분 그것이 가지는 고통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름답고 처연한 노래를 부른다. 때론 전투적으로 절망하며, 세상에 대해 분노하지만, 그렇다고 이 세상은 파괴하지 않는다. 결국은 보듬고 이겨내며 앞으로 전진해 나간다. 이 에세이집이 가치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이 될 것이다. 

 

그해 봄, 인생살이가 어지간히 고되고 내 신세와 전재하며 어디로 가야 할 지 통 보이지 않아 막막해 하던 때에, 나는 기차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유난히 많이 울었던 것같다. 내려갈 때는 멀쩡한데 가만히 서서 위로 운반되다 보면 감정이 북받쳤다. (8쪽) 


 

살아가는 게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넋놓고 놓아둘 때도 있지만, 그럴 때 일수록 바깥 세상의 소란스러움이 왜 그리도 따사로와 보이는지 알 턱이 없다. 데버라 리비는 자신의 현재와 유년시절을 돌아보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작가의 삶에 대해 묻는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진지하거나 심각하진 않다. 그 점에서 지나치게 우울해지지 않는다. 살짝 힘든 여행이라는 느낌 정도랄까. 그러나 그 여행에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억을 구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내 다른 기억들에 관해서라면 알고 싶지 않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 내가 원한 건 새로운 기억었다. (100쪽) 


 

새로운 기억이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보다 나은 삶이나 인생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며 개척해 나간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실정은 오히려 남편의 사랑이 그를 그 자신의 인생 밖으로 내몬 꼴에 가까웠다. (30쪽) 

 

내가 앞에서 여성 예술가의 존재를 현대의 축복이라고 한 것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남성이 고전주의 비극의 주인공을 도맡아 하던 시기는 지났음을 뜻한다. 이제 위대한 고전주의 예술가들 중 일부는 여성 예술가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리아도 나도 21세기의 와중에 도망갈 곳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난 깨달았다. 이름이 아망틴이기도 했던 조르주 상드가 19세기에 그러했고, 자마이기도 한 마리아가 20세기에 숨을 돌리며 쉴 곳을 찾고자 했듯이 말이다. 우리는 정치의 언어가 숨기는 거짓말로부터 도주 중이었으며 우리의 성품과 생의 목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신화들로부터 도망 중이었다. 모르긴 해도 우리 스스로의 욕망으로부터, 그게 무엇이건, 도망치는 중이기도 했을 테다. 고로 웃어넘기는 것이 최고였다. (133쪽) 

 

도망 가서도 마주 하는 건 자신의 기억이며, 삶이며, 일상이다. 데버라 리비는 도망이라는 표현을 하였으나, 그것은 새로운 기억이며, 찬란한 고통과 상처이며, 어느 순간 영광이 될 것이다. 

 

짧지만, 상당히 의미있는 독서였다. 그녀의 소설도 한 권 구해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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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 인문학의 바다 2023-01-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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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피쿠로스 쾌락

에피쿠로스 저/박문재 역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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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부터 받는 해악을 미움, 시기, 경멸에 따라 생기는데, 현자는 이성적으로 극복한다. (99쪽) 

 

 

고전 그리스가 끝나고 혼란스러운 헬레니즘은 알렉산더 대왕과 함께 시작된다. 알렉산더는 지금의 인도까지 내려갔다. 이 정복 활동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하였고 서로 다른 문화들이 섞였다. 안정되고 예측가능했던 시대는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마을의 일상은 새로운 사람들과 문물들로 채워지고 내일은 알지 못하는 것이 되었으며 세계는 나와는 거리를 두며 서로 긴장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헬레니즘 시대 전반을 채우는 이러한 분위기를 예술의 역사에서는 고전주의 뒤에 이어지는 낭만주의적 시대로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철학까지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이 책 <<에피쿠로스 쾌락>>은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좋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책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뒤에 그리스 로마의 주류가 되는 철학이 바로 에피쿠로스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에피쿠로스주의는 서양 중세가 시작하는 시기까지 이어지다가 신플라톤주의와 합쳐져 중세 초기 교부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일반 독자에게 <<에피쿠로스 철학>>은 어떻게 읽혀야 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던 이유는, 몇 천년이 지난 지금 읽으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대단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같기도 하고, 에피쿠로스는 이 글들을 쓰면서 제자들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일까를 선명하게 읽어내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또한 그리스에서 로마로 지중해의 헤게모니가 넘어가던 시기에 대한 사회역사적 배경을 알아야만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그래서 인문학에는 천재가 없으며 그만큼 어렵다).

 

그런데 서양 역사나 지성사(철학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이 책 <<에피쿠로스 쾌락>>을 읽기 위한 전제라기 보다는 인문학 책들을 꾸준히 읽어나갈 수 있고, 그 책 읽기가 즐거워지기 위해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있는 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급하게 서양 역사나 지성사를 익힐 필요 없다. <<에피쿠로스 철학>>을 읽으면서 우리는 헬레니즘 초기의 상황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천히 알아나가면 된다. 대신 지성사나 철학사 한 두 권 정도 집에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로 '즐거움'으로 번역해도 되는 단어이고, 실제로 에피쿠로스는 방탕한 쾌락은 참된 쾌락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으므로, 우리말에서 부정적인 어감을 보이는 "쾌락"이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대체로 인간의 '행복'을 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삼았다는 점에서, 에피쿠로스가 행복을 쾌락(즐거움)과 연결한 것을 이상하게 볼 필요는 없다. (170쪽)

 

'쾌락'이라는 대신 '즐거움'으로 옮겼더라면 에피쿠로스에 대한 많은 선입견이 사라졌을 것이다. 일종의 지적, 이성적, 논리적 접근을 통한 즐거움을 쾌락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쾌락이라는 단어가 감각적인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역자도 책 뒤에 실린 <해제>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너무 오래 동안 '쾌락'으로 번역되어 왔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 다른 철학 유파와 마찬가지로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철학의 제일 목표가 행복을 얻는 것이며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먼저 고통의 주요한 원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에피쿠로스주의에 따르면, 인생의 목표 혹은 최대의 행복이란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동요가 부재한 상태(ataraxia)"이며, 철학은 영혼의 질병(즉, 마음의 불안과 동요)을 치유해서 건강한 자연적 상태로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정신적 동요는 어째서 생겨나는가?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정신적 동요의 주요한 원인을 두 가지(신들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제시했으며, 이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정신적 동요와 두려움을 무지와 헛된 생각의 결과라고 간주했다. (<<서양고대철학2>>, 287쪽) 

 

어떤 문제(위기)가 있다고 치자. 대다수의 현대인들이라면 그 문제가 무엇 때문에 생겼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질문할 것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이런 태도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문제가 생기면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제사를 지내는 이들이 있듯이, 그 때라면 더 심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한 시기에 이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들이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에피쿠로스도 분명히 이야기한다. 알아야 된다고. 알아야만 우리 마음의 불안이 사라진다고.  

 

천둥이 생기는 이유는 바람이 구름 속 빈 공간에 갇히기 때문일 수도 있고(바람이 갇혀 있는 호리병에서 볼 수 있듯) 바람에 실려 불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타오르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구름이 찢어지고 분리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구름이 얼음처럼 응집되어 서로 부딪치고 파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모든 천체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우리에게 여러 방식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87쪽)

 

이러한 논리적 추론에 대한 글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로는 거의 나오지 않다가  시대가 끝나고 르네상스 초기, 베이컨의 <<신기관>>과 같은 책에서 다시 언급된다.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신>의 대부분은 자연학에 대한 내용이다.  

 

우주는 물체와 허공이다. 물체들이 존재함은 감각 자체에 의해 어디서든 증명되고, 추론을 통해 불확실한 것을 증명하려면 반드시 감각에 근거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허공, 공간, 감각으로 부르는, 인지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물들이 있을 공간도 없고, 우리에게 사물들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움직일 공간도 없을 것이다. (47쪽) 

 

이러한 설명들 대부분은 하나하나 추론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요즘에서야 하나하나 실험을 하고 수학적 근거를 제시하였지만, 이 때만 해도 그것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니.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에피쿠로스는 요즘 기준으로도 일반적인 철학자가 아닌 셈이다. 

 

자연학을 탐구할 때는 근거 없는 전제들과 미리 정해놓은 법칙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현상들이 소리치는 것을 따라야한다. 우리는 소란없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인간의 삶에 비이성적인 것과 근거 없는 생각을 비워내야 하기 때문이다. (77쪽) 

 

피토클레스여, 너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해두라. 그렇게 해야만 많은 경우에 신화에서 벗어나, 여기서 말한 것과 비슷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117쪽) 

 

쾌락, 아니 즐거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지적인 수고로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에피쿠로스는 틈만 나면 강조한다. 즐거움(쾌락)을 얻기 위해 철학한다는 것이 다소 의아스러울 수 있지만, 헬레니즘은 애초부터 그러한 시대였다. 전성기 로마가 실용적인 동시에 오락 중심적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일상에서의 행복 추구는 헬레니즘 전반을 물들이고 있던 어떤 기조였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을 향해 가는 과정을 에피쿠로스는 육체적, 물질적 방탕이 아닌 지적인 추론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은 몇 백년을 이어진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책 <<에피쿠로스 쾌락>>은 지금 얼마 남아있지 않은 에피쿠로스의 글들을 모았다. 에피쿠로스는 중세를 지나면서 그 가치가 폄하되었으며 제대로 된 이해를 받지 못했다. 확실히 반-종교적인 사상이니 말이다. 많은 저서들을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 남아있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몇 천년 전 안정적인 어떤 시대가 물러나고 혼란스러운 새로운 시대가 등장하는 분위기 속에서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아두면 좋을 것같다. 결국 지적인 수고로움을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요즘 말로 '책 좀 읽고 공부 좀 해라'라는 것이긴 하지만).  

 

사려깊고 아름다우며 정의로운 삶 없이는 쾌락의 삶도 없고, 쾌락의 삶 없이는 사려 깊고 아름다우며 정의로운 삶도 없다. 예컨대 아름답고 정의로운 삶이지만 사려 깊지 않다면, 세 가지 중 어느 한가지라도 없는 삶은 쾌락의 삶이 아니다. (138쪽)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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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문학과 예술 2022-12-0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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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지돈 저
문학동네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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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가끔 내가 작가의 길로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조금 끔찍해진다. 분명 문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가 되었다면 하는 생각을 요즘에도 잠시 하곤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국내 작가가 쓴 책보다 외국 작가의 번역된 책을 읽게 된다. 어찌 되었건 이미 검증을 받은 이들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이유로 한국어 번역까지 이루어진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된 책마저도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국내 작가에 대해선 더욱 더 인색해진다. 

 

작년 겨울 교보문고 강남점에 갔다가 이 책을 우연히 보았다. 교보문고의 문학 담당 MD의 추천 코너에 이 책이 있는데, 표지도 그렇고 책 사이즈도 마음에 들었다. 손으로 집어 들었을 때의 무게감이랄까, 시야에 들어오는 표지의 존재감이랄까. 내가 이북을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음악도 마찬가지여서 좋은 음악을 듣게 되면, 음반부터 찾는다. 나는 디지털 세계랄까, 온라인 세계랄까, 이런 것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실제 물질 세계가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디지털/온라인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산문집의 시작은 참 좋다. 도시 이야기는 참 시의적절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등장하면서 살짝 맥이 풀리는 느낌이랄까. 내가 기대했던 글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이들이다. 하긴 정지돈의 지인들이니 내가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은 이들 모두 문학 쪽에서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인데, 나는 알지 못했다. 오한기, 금정연, 이상우, ... 이렇게 처음 읽었을 땐 조금 읽다가 말았다. 그러다가 요 며칠 다시 읽었다. 도시, 서울, 파리, 벤야민, 산책, 산책자, ... 적절한 인용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도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마르그리뜨 뒤라스와 알렉산드르 헤몬이 나와서 좋았다. 신변잡기적인 듯하면서도 나름 문화비평적인 색깔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무거운 느낌도 아니고 가벼운 느낌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적절'이라는 단어를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요즘 작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건 한국적인 맥락이 아니라 세계적인 맥락 속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한국 작가의 양식은 아니다. 외국 작가들은 이런 식의 글을 자주 쓰는데, 한국 작가가 쓴 산문들 중에 이 산문집 같았던 책은 없었다. 여러 예술 작품을 언급하고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 이것저것 관심가는 대로 읽고 습득하며 이것들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글을 쓴다. 그것이 문학이든 영화든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이런 점이 좋았다. 그러나 최고의 산문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고의 산문집이란 뭘까. 글쎄다. 그게 뭘까. 

 

종이책이 현재의 코덱스codex 형태가 된 건 서기 4세기에서 5세기경이다. 그 전까지 종이는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펼치는 두루마리 형태의 볼루멘volumen이거나 위에서 아래로 펼치는 로툴루스rotulus였다. 조루주 아감벤은 볼루멘에서 코덱스로 전이되는 과정에 무언가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바로 페이지다. 볼루멘은 하나의 덩어리다. 그에 반해 코덱스는 불연속적이고 구분되는 단위들이다.볼루멘은 처음, 중간, 끝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있으며 지속성을 통해서만 모든 단위를 구현할 수 있다. 반면 코덱스는 글 한 쪽이 다른 쪽을 끊임없이 분리시킨다. 우리가 페이지를 넘기면 이전 페이지는 사라지고 새로운 페이지가 부상한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책은 지금의 책이 되었다. (169쪽~170쪽) 

 

언젠가 어딘가에서 읽었을 내용이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조금 슬프긴 하다. 문학이라든가 예술이라든가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몇 년이 된 것같으니.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반대로 내용으로 인해 새로운 형식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형식에 민감해져야 한다. 이건 장르의 해체같은 게 아니다. 

 

아래는 이 책에서 잠시 언급된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City라는 작품이다. 무려 50년동안 작업을 한 것이며, 며칠 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사막 한 가운데 작품 도시를 구축한 것이다. 좀 생뚱 맞은 대지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마이클 하이저, City


 

버지니아 울프는 <등대로>(1927)를 출간하고 번 돈으로 자동차를 샀다. (199쪽) 

 

1920년대 후반에는 소설을 출간하고 번 돈으로 자동차를 살 수 있었던 듯 싶다. 얼마전에 리뷰를 올렸던 러셀 자코비의 <<마지막 지식인>>에서는 대중을 위해 글을 쓰는 이들이 그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글을 쓸 수 있는 잡지들이 있었고 그 잡지들을 일반인들이 사서 읽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생계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이 지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하우저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근 후에 쓴 책이다. 이 때는 이것이 가능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왜 불가능한지는 한 번 시도해보면 안다. 

 

정지돈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를 재미있게 읽었다.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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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르인의 사막 | 문학과 예술 2022-09-1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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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타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저/한리나 역
문학동네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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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알 도리가 없지요.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으리란 건 다들 압니다. 하지만 사령관이신 대령님이 배운 카드점에 따르면, 아직까지 타타르인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옛 부대에서 잔류한 타타르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고 말이지요." (69쪽)


사막 너머 타타르인들이 살고 있으며, 언젠가 우리를 침략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있고 지키고 있는 이 요새는 그 예정된 전쟁을 막기 위한 최전선이다. 그 곳에 새로 부임한 신참 장교 조반니 드로고도 결국 그 전쟁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 요새를 지키다가 떠나간 많은 군인들이 그러했듯이. 그러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전쟁이 일어날 기미 조차 보이지 않으며 요새 안에서는 전쟁과 무관한, 그러나 그 일어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군대와 군인. 그들은 일어나지 않은 전쟁을 위해 있는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이 시작되어야 하는, 시작된다는 확신을 가져야만 했다.


그들은 침묵에 잠겼다. 바깥에서는 한 밤의 가을비 속에서 경비병들이 걷고 있었다. 테라스 위로 쏟아진 비가 처마를 따라 졸졸 흘러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75쪽)


이렇게만 보면 소설은 상당히 치밀하고 스릴 넘칠 것같지만, 의외로 지루하고 담담하기만 하다. 그런 지루함 속에서 사소한 사건으로 인한 부조리함이 두드러지기도 하지만, 금세 묻힌다. 실은 이 소설을 지배하는 분위기, 설정, 인물들의 태도들 전체가 어떤 부조리함으로 채색되어 있기에 사건은 소설 위로 올라와 독자를 크게 자극하지 못한다.



그들은 생각했다. 이즈음 도시엔 옅은 안개가 끼어 있고, 가로등은 희미한 노란 불빛을 비추겠지. 커플들은 어둠 속에서 한적한 거리를 배회하고, 오페라극장의 북적이는 유리문 앞에서는 마부들의 고함소리가, 부유한 저택의 어둑한 창문에서는 바이올린과 웃음 소리가 여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뒤섞여 나오겠지. 미로 같은 도시의 지붕들 속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은 환한 창문까지도, 청춘의 꿈과 아직 펼쳐지지 않은 모험들로 가득한 매력적인 도시 풍경이었다. (78쪽)



가끔 등장하는 도시에서의 에피소드는 꿈 속의 꿈 같다. 조반니 드로고가 처음에는 가고 싶어했으나, 결국 가지 못한 곳, 더 이상 적응하기도 어려운 공간으로 변해갔다. 쉼 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낯설고 부조리한 공간에서 빠르게 적응해 그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가 더 무서운 것이다. 소설에선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도 잘 느껴지지 않고 속도감도 전혀 없이 그 젊었던 장교 조반니 드로고는 어느새 나이가 들고 병에 걸린다.



검은 대양 위의 희미한 섬들 같은 평야에서는 안개의 혀들이 만들어지며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 혀들 가운데 하나가 수수께끼 같은 물체를 감춘 채 정확히 보루 발밑까지 뻗어왔다. 공기는 습했고, 그로고의 어깨에 걸쳐진 망토는 힘없이 늘어져 무거웠다. (113쪽)



그렇게 사막 평원은 움직임이 없었다. 북쪽 안개도, 규정대로 반복되는 요새의 삶은 그대로 멈춰 있었고, 경비병들은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순찰을 돌면서 항상 똑같은 걸음을 반복했다. (246쪽)



전체적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때때로 너무 현실적이다. 마치 서유럽 어딘가에 타타르인이 숨어 사는 사막이 있는 듯 싶다.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고 수십년 간 요새만 지키다가 병들어 그 곳으로 나오게 되는 드로고를 보면서 우리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소설의 후반부 전투의 조짐이 보이지만, 그 전투가 일어나는지 독자는 알지 못한다. 우리와 함께 하는 드로고는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변호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들 대부분은 우리의 믿음이나 신념이라는 것이 어쩌면 저 사막 너머의 타타르인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아닐까 하며 자조할 것이다. 그건 결국 우리의 존재 의미를 어떻게든 찾기 위한 신기루는 아닐까.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실존주의적이며, 이 계열의 소설들 중에서 최고의 작품들 중 하나로 현재까지 지지받고 있다.



낮의 회색 페이지와 밤의 검은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가면서, 드로고와 오르티츠에게(어쩌면 다른 나이 든 장교들에게도) 더는 떠날 기회가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들어났다. 세월의 무게에 무관심한 북쪽 외인들은 마치 불사불멸의 존재들인 양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기나긴 계절들을 장난삼아 허비해도 그들에게는 그 일이 대수롭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요새에는 시간의 작업과 다다오는 최후의 순간에 무방비한 가련한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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