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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육아맘.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20대 감성녀. 삶의 지침에서 벗어나는 힐링 도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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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마음 읽기 정리 리뷰 | book 구매 2021-04-1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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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마음 읽기 정리 리뷰>

[아이의 마음 읽기]는 실제 사례를 들고 있어 아이와 부모들이 왜 어려움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이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양육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부모에게 방법을 제시해주고, 보육 교사들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밝혔듯이, 이 책을 통해 모든 어른들이 소처럼 많은 눈을 갖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길 바란다.

<영유아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사례와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책>

이런 행동을 표출하지 않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원하고 느낄 수 있는 부모의 사랑으로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고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부모의 사랑으로 몸도 마음도 건강할 것이며 올바른 사회성을 갖게 될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본다. 그 행동의 대부분이 사랑받고 싶은 대상인 부모에게 더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고 싶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아이의 마음 읽기]는 영유아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사례와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이 책을 통해 부모 역할의 중요성을 바로 알아야 한다. 아이와의 관계를 잘 만들어서 좋은 애착 관계를 형성해나갈수 있는 육아 지침서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다. 아이와 부모가 행복하고, 더 나아가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이 모든 부모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며 모든 부모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유아교육 현장 경험과 사례가 담긴 부모들의 지침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있다. 그 이야기는 어른의 도움 없이는 세상에 나오기 힘들다. 아이의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민이 그것을 도와주는 역활을 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기에 이러한 신호들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평생 아이의 발달과 심리를 연구하고 부모 역할을 중요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유아교육 경험과 사례를 토대로 엮어낸 부모들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세상은 부모가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부모의 영향이 크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고 소통한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기다리고 믿어준다면, 아이들에게 세상은 행복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교육현장에 있으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순간이다. 부모와 교사, 아이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이 책을 필독하신다면 서로 이해하고 함께 웃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부모와 교사들이 겪는 아이와의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 제공>

[아이의 마음 읽기]에서 저자는 아이가 가장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부모라고 말한다. 부모에게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그 불안함을 행동으로 드러내는데, 저자는 그것을 '문제행동'이라고 '하지 않고 '신경 쓰이는 행동'이리고 표현한다.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행동으로 바라보며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영유아 발달 전문가인 저자는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부모 자식 간의 따스한 관계로 풀어낸다. 육아 현장에서 모든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고, 아이의 마음을 읽고 대응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아이와의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해결책을 제공해준다.

아이 양육의 핵심은 아이 발달에 관해 제대로 알고 이를 적재적소에 적용하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싶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를 원하는 부모와 교사같이 아이들과의 소통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이 한 걸음 더 발전하는 계기가, 이 책이 되었으면 한다.

 

<육아 가치관이 흔들릴 때마다 읽고 싶은 책>

아이는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받아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부모의 노력으로 아이의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과 용기를 주는 책이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라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행복한 인생 각본의 완성을 윟래서는 지금 이 책 [아이의 마음 읽기'를 펼쳐보아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진정한 사랑을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 신경 쓰이는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잘 읽어주면 된다. 아이가 편안하도록 뭘 원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서 채워주자. 

이 시대의 믾은 부모들이 육아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아이의 마음을 잘 들려다본다면, 육아 스트레스는 곧 육아 자신감이 될 것이며 나아가 아이의 잠재력을 키워주는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 읽기]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육아 가치관이 흔들릴 때마다 읽고 싶다. 

 

-머리말-

<아이가 바라는 사랑의 방식>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며며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번 뒤 나중에 아이가 컸을 때 뒷바라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경제활동에 더 주력한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보자. 아이는 누구의 사랑을 가장 받고 싶을 것인가? 당연히 부모다. 우리가 어린 시절 그랬듯이.

할머니나 선생님이 아무리 사랑을 줘도 아이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이 마음 속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아이들은 불안하다. 그 불안이 짜증 내기, 손가락 빨리, 손톱과 발톱 뜯기, 공격적인 행동 보이기, 인형이나 담요 등 애착 물건에 집착하기 등의 행동을 만들어낸다. 이런 행동은 아이를 혼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아이가 불안해하는 원인을 살펴야 이런 행동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 아이가 가장 사랑받고 싶은 대상인 부모의 사랑으로 아이의 마음을 채워주자.

 

이 책 [아이의 마음 읽기]에서는 부모가 주길 원하는 방식의 사랑이 아닌, 아이가 바라는 사랑의 방식을 제시하고 싶었다. 강의를 하면서, 생활하면서 모은 98개의 사례로, 총 5개의 장으로 책을 구성하였다.

 

이렇게 구체적인 사례를 모으고, 여기에서 보인 아이 행동의 원인과 아이의 마음을 읽는 방법, 또 대응하는 방법 등을 알기 쉽게 제시하려 노력했다. 

부디 이 책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아이와 부모가 행복했으면 한다. 그 행복은 곧 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는 것을, 모든 어른들이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제1장_아이의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나요
 

큰아이가 자꾸만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해요
-아이의 행동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이런 모습은 아이의 심리 중 '방어기제'에 해당하는 퇴행을 보여주는 것이다. 7세 아이는 엄마가 동생을 더 사랑하거나, 동생에게 자신의 사랑을 빼앗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이는 지금 엄마의 사랑을 더 받고 싶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에게는 엄마의 사랑이 절대적이다. 그 누가 대신 줄 수 없는 것이다. 엄마가 주는 사랑을 아이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엄마의 사랑을 아이가 느껴야 진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으로 아이는 건강하게 자란다. (27)

 

할퀴고 무는 행동, 불안함이 원인이라고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할퀴거나 무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사랑받고 싶은 대상은 자신의 엄마다. 각각의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질적인 상호작용을 해야만 할퀴고 무는 행동을 없앨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잘해줘도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원한다. 그 사랑의 그릇이 채워질 때 아이는 안정감을 갖고 교사가 양육자가 염려하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29)


늘 손가락을 빨고 있는 아이, 어떡하죠?

-손가락을 빤다는 것은 대표적인 불안 증세이고, 불안정 애착 증상이다. 가정의 양육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할머니가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아이가 가장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은 부모이다. 그런데 부모가 바쁘니 제대로 자신을 돌봐주지 못한다. 그러니 마음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불안하다는 사인으로 손가락을 빨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31)

교사는 부모를 만나 아이의 발달에 대해 상감을 해주고, 부모가 더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또한 어린이집에서도 따뜻하게 아이를 대하고, 또래 관계 형성 등을 통해 언어직 자극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1)

 
공격적인 아이, 사실은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아이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닌, 부모의 욕망이 아이에게 투영된 결과물로 학습지와 학원에 아이가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는 당연히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부모가 변해야 한다. 엄마가 먼저 내 속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를 위로를 해주어 편안해져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한두 가지만 하도록 해야 한다. 부모의 욕심은 사랑이 아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느껴야 ㅎ사랑이다. 그 사랑을 느끼고 받았을 때 아이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어서 깎아준 적이 없어요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어요. 지금 열두 살인데 한 번도 손톱을 깎아준 적이 없어요."

'문제행동'이라 하지 않고 '신경 쓰이는 행동'이라 하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나 문제행동이지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5)

 

유아나 아동이 손톱을 깨무는 것은 발달상 염려가 되는 행동이다.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얻고 즐거움을 얻으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대리 만족적 퇴행 행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열두 살인데도 손톱을 깨문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럴 때엔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더라도 모른 체 해주고 물어뜯지 않았을 때 칭찬을 해주자. 자꾸 지적하면 긴장감이 높아져 더 불안해지고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손으로 점토놀이를 하게 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 손에 만질 수 있는 물건을 들려주는 등 부모의 적절한 양육이 필요하다. (36)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 사랑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이 입장에서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라는 믿음을 주는 심리적 사랑이다.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느낄 때는 부모가 자기가 바라는 것을 해주었을 때이다. 부모가 아이의 요구와 바람을 잘 살펴야 하는 이유다. (36)

 

자다가 경기하는 우리 아이,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자다가 경기를 하고 손톱을 물어뜯는 것은 어린이집보다 가정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보통 아이가 심리적으로 가장 가깝게 느끼고 있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그 원인이 있다. 혹시 아이 앞에 부부싸움은 없었는지, 엄마가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는지 등을 알아봐야 한다. 

부모에게 원에서의 아이의 행동을 사실 그래도 전하고, 함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파트너로서 노력해야 한다. 상담학에서는 '문제 아이는 없다. 문제 부모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즉 아이의 행동은 부모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의 신경 쓰이는 행동은 부모가 변해야 아이도 변한다. 이 사실을 부모가 받아들이고,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의지를 갖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38)


만 2세 아이, 자기주장이 강해서 당혹스러워요
 

발달상 이 시기는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 발달과업이다. 즉 스스로 밥을 먹거나 신발을 신는 등의 행동을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39)

만 1세에서 만 3세 아이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은 고집이 세서 그런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율성을 획득하는 발달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랬을 때 아니는 '아, 내가 해냈구나!'라는 내적 만족감을 갖게 된다. 그러한 경험들은 아이에게 자신이 가치가 있다는 존재감을 갖도록 만들어준다. 또한 아이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통해 선생이나 부모의 칭찬을 받게 되면 소속감이 생겨난다. 즉 반 구성원의 한 사람,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모아지면 아이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자아존중감을 형성하게 된다. 자아존중감은 힘든 일이 있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토대가 된다. (40)

소유욕이 너무 많은 만 1세 아이, 무엇 때문일까요?

할머니가 아무리 사랑을 준다 해도 부모에게 받는 사랑에 견줄 수 없다. 그렇기에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엄격한 양육환경은 아이에게 긴장과 불안을 조성한다. 

아이를 둘러싼 이와 같은 환경이 아이를 불안하게 하고 긴장하게 하며, 자신이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심리적 불편함을 표현하게 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소유욕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43)

아이는 부모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아야 한다. 특히 아이에게 있어서 부모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그 사랑이 부족하면 아이는 그 마음을 여러 행동으로 나타낸다. 아이는 사랑을 받아야 건강하게 자란다. (43)

모든 아이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아야 건강하게 자란다. (44)


눈뜨자마자 TV만 보려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유아기는 구체적인 사물과의 접촉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머릿속에 개념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이다. 아이들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과 운동 기능을 통해 세상과 사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감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46)

아이가  TV 를 덜 보게 하려면 어디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지 파악해서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자.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TV를 보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무조건 못 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분노의 감정이 쌓이게 된다. (47)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파악하고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여, 아이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배우고 구체적인 사물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47)
 

자꾸만 화장실을 가지만 정작 볼일은 보지 않는 아이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신호이다. 관심 끄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아빠와 상의해서 일하는 시간대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빠가 챙겨주는 것도 좋지만, 이 상황에서는 귀가 후에 엄마가 함께헤야 하는 것이 아이 발달에 더 좋다. 아이에게 있어 엄마라는 존재가 우주같이 절대적인 시기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도 엄마가 없다면, 아이의 가슴은 얼마나 스산할 것인가.

 

대부분의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라는 말을 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다. 아이들은 최초로 엄마라는 존재의 집을 짓는다. 엄마라는 타자가 가장 의미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다. (49)


우리 아이는 부끄러움이 많은 것뿐이에요

어느 부모인들 내 아이의 발달 지체를 인정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러다 시기를 놓치면 더 안좋아질 수도 있다. 부모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혹여 발달 상 어떤 문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면 전문가의 진단을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도 해야 한다. 그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부모의 합리적 판단과 선택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51)


말을 더듬거리는 아이, 왜 그럴까요?
 

아이의 문재는 대부분 부모의 문제다. 특히 주 양육자가 엄마일 경우 엄마의 태도가 절대적이다. 엄마의 행동을 살핀다. 하나하나 간섭하고, 뭐든지 잘해주기를 바라고, 이것저것 교육하고 있으리라 본다. 아이는 숨 막히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강압적이고 틈을 주지 않으려는 태도에 짓눌려 아이가 말을 더듬고 있다고 보인다. (53)

불안 장애 중에 선택적 무언증이 있다. 선택적 함묵증이라고도 하는데, 즉 말을 하지 않거나 입을 다무는 증상이다. 언어 유창성 장애라고 하는, 말을 더듬는 행동도 이 범주에 속한다. 말을 잘할 수 있음에도 특정한 상황이나 사람 앞에서 말을 하지 않거나 더듬는다. 

 

엄마는 양육태도를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수용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아직 말을 하지 않는 선택적 무언증까지는 가지 않은 상태이므로 희망을 갖고 엄마가 변해야 한다. (53)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 아이는 없다는 말을 새겨야 한다. (53)


말을 잘 하지 않는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교사가 식사 시간이나 간식 시간에, 반에서 말을 잘 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아이를 아직 말을 잘 못하는 아이 옆에 앉게 하는 것이 좋다. 

이 아이의 경우, 말을 잘 못하는 다른 이유도 찾아봐야 한다. 청력을 검사해볼 필요가 있다. 또 가정에서 상호작용을 잘 해주고 있는지 면담을 통해 알아봐야 한다. 

또래 관계 형성과 청력 검사, 가정에서의 상호 작용 점검이 언어 발달이 늦은 이 아이를 위해 부모와 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55)


아이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아요
 

아이의 행동은 상호작용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가장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낼 엄마가 우리말이 서툴다보니 아이와 상호작용을 많이 해주지 못할 것이다.

어린이집 담임 교사는 의도적으로 아이에게 또래 관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아이의 요구에는 정서적으로 반응해줘야 해요
아이가 전화해서 말합니다, “엄마 빨리 와!”

제2장_우리 아이가 더 좋은 사람으로 자라려면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아이에게
아이가 직접 종이를 오리고 밥을 먹게 하세요
아이들은 자신의 다리로 스스로 걸어야 해요
맨발로 나무에 오르는 세 살배기 아이로 길러봅시다
금지하지 말아요, 주의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혼자서도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가 되어야 해요
아이는 여러 바깥 장소에서 몸으로 체험하며 자라야 합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자연입니다
실패와 성공을 아이가 직접 경험하게 해줘야 합니다
몸은 움직여야 반응하는 것, 오감을 자극하는 신체 활동이 필요해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는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요
함부로 아이를 나무라지 마세요
아이의 질문에는 확장하여 답하는 게 좋아요
아이가 새롭게 발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아이의 엉뚱한 질문을 존중해줍시다
우는 아이에게는 행동뿐 아니라 말로도 공감해주세요
아이에게 말을 걸기보단 아이의 말을 듣고 반응해주세요
“하지 마세요” 보다는 “해줄 수 있겠어요?”
다문화 가정의 두 살짜리 아이는 어떻게 언어 교육을 해야 할까요

한국에 중도 입국한 다문화 가정의 아이는 이렇게 언어를 배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을 돕는 행동을 연습해야 합니다
늘 오던 도서관의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아이
해야 할 일은 미리 해두어 여유를 갖는 버릇을 들여요
가을에는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어봐요
배려 교육은 어려서부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밤 9시까지 혼자 남아 있는 아이의 마음은
그림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는
겁을 주려고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는 건 좋지 않아요
아이를 제대로 관찰해야 건강한 사랑이 가능해요
분홍색 장난감만 가지고 노는 아이에게는
우리 아이들에게 충분한 수면시간을 주세요
감사하는 마음을 통해서 올바른 사회성을 갖게 됩니다

제3장_아이와 함께 좋은 부모자식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먼저 다가가요
충고하고 평가하기보단 공감하고 이해해주세요
아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영유아기 때 부모가 남긴 마음의 상처는
부모는 아이에게 부드럽고 따뜻한 날씨여야 합니다
다시 한번 아이를 진심으로 길러보자
부모의 어긋난 사랑은 자녀를 바보로 만듭니다
아이 때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랑,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어린 시절 엄마와 먹었던 음식이 인스턴트뿐이라면?
어린 시절의 상처가 하고 싶은 일을 바꾸기도 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라도 육아휴직 제도가 꼭 필요합니다
20대 중반의 딸아이가 집에만 있어요
열 살 된 둘째 아이와 다시 애착을 형성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엄마를 만나도 시무룩합니다
학원에 가야 해서 엄마 아빠와 밥 먹을 시간도 없어요

제4장_아이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아이가 지니고 있는 능력을 믿어주세요
부모가 먼저 행복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없으면 아이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아요
위대하고 훌륭한 부모들에게 응원을
부모가 아이를 낳은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선택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절대 왼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만지지 않는답니다
부모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시키지 마세요
아이의 대답을 엄마가 대신하지 말아주세요
엄마의 과한 사랑은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느낄 때 아이는 올곧게 자랍니다
지금 청년세대에겐 사랑받았다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쉽진 않겠지만, 아이에게 온전히 시간과 마음을 내줘야 해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며 배웁니다
더 많은 아이들을 산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돌쟁이 아이를 위해 쉬기로 했다는, 공무원 엄마의 용감한 선택
아이를 경찰서에 데려가지 마세요
부모가 변해야 아이도 변합니다
아이가 부모를 편하게 느끼도록 지켜보고 지지해주기
아이의 초상권을 존중해주는 부모가 됩시다
후회하지 않는 부모가 되려면
아이 양육보다 돈 버는 일을 우선해야 할까요?
아이를 향한 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감정을 배제한 훈육을 할 수 있을까요?

제5장_아이를 둘러싼 가족 관계 속에서 제대로 양육하기
형제 사이의 싸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나요?
동생과 자주 싸우는 첫째 아이에게
아빠와 엄마가 함께 육아를 해야 하는 이유
부모와의 관계가 이후 아이가 맺을 관계를 결정합니다
더 많은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감을 맛보길
아이는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사랑의 힘을 평생 안고 살아갑니다
아이와 아빠가 몸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중요해요
어떤 아빠의 사랑법, 아이의 교통카드 여유 있게 충전해주기
점차 늘어나는 할머니의 육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아이들을 친정엄마에게 맡기려고 하는 엄마들에게
아이의 주 양육자는 할머니가 아닌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할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한들 엄마 아빠의 사랑에 비기랴


맺음말_어른들이 건강해야 아이들을 건강하게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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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정리 리뷰 | book 구매 2021-04-0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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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리하

몇 년간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길 잃고 헤매는 동안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어쩌다 한 편씩 쓴 글들이 어느덧 저를 일으켜 세우고 응원해주엇습니다. 글을 쓰면서 제가 세상 모든 것들, 특히 작은 것들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기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제가 원하는 그곳에 가닿기를 바라면서요.

저의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 힘들고 지친 분들에게 정겨운 벗처럼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프롤로그>

더 이상 내가 밉지 않다.

 

내가 미운 날이 많았다. 그때의 나는 몹시 불안했고 힘들고 지쳐 있었다. 보잘것없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내가 점점 미워져서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았어야지..조금 더 노력해서 분명한 성과를 냈어야지..

다그치기만 하던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그 견고해진 덩어리들이 오히려 나를 무겁게 짓눌러서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동안 나는 누워서만 지냈다.

 

기를 쓰고 다시 일어나 보자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다짐은 다짐일 뿐 꿈꾸던 인생들은 나에게 쉽게 미리 보기를 허락해주지 않았다. 어렴풋한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숱한 다짐이 실현되기는커녕 한꺼번에 끝나고 마는 순간들이 눈앞에서 휙휙 지나갔다. 크고 작은 인생의 고비들이 내 삶을 휘철거리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나는 온갖 변명을 둘러댔다.

 

우울했고 무기력했고 슬펐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심하게 마음 앓이를 했다. 글쓰기가 싫었고 나중에는 쓸 수조차 없게 되었다. 나는 나를 위해 준비했던 시간을 내 삶에서 가장 먼저 도려냈다. '나, 보살피기'를 그만둬 버렸다. 나를 둘러싼 상황과 대상을 원망하며 '나 자신을'을 구석으로 좇아 벌세웠던 어리석은 순간들이 믾았다. 이루지 못한 일들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껴안은 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수많은 시간을 뭉텅뭉텅 소비했다.

그런 식으로 미운 나를 괴롭혔다.

 

그즈음 친한 후배를 만난 적이 있엇다.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지기 바로 전에 내가 잠시 자리르 비운 사이, 후배가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의 손에 용돈을 쥐어 주엇다. 돌아와서 그 모습을 본 내가 '애한테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때 후배가 "언니도 나한테 줬었잖아."라며 서둘러 사라졌다. 후배가 딸아이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일 거라고 여기면서 넘겼다. 그 후 시간이 지나 낡운 책갈피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20년 전, 딸아이도 세상에 없던 젊은 날의 내가 그 속에 있었다. 사진을 보다가 그제야 불현듯 기억이 되살아났다. 해외여행 일정 도중에 유학 간 그 후배와 조우했던 순간이 말이다. 라면은 질려서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며 힘들게 공부하고 있던 후배를 만난 날, 우리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부둥켜안았다. 우리의 여행 코스에 그녀를 끌여들여 온전한 하루를 함께 즐겼던 그때, 헤어지면서 나는 그녀의 가방에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찔러 넣었다. 

세월을 견뎌 낸 그 용돈은 돌고 돌아 내 딸아이의 손에 다시 쥐어졌다.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던 20년 전의 기억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끝없는 미움을 멈출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제 더 이상 멋진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될 수 있는 한 나와 불화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나를 누구보다 많이 아끼고 좋아해 주고 싶다.

 

동화 작가로 등단한 지 10년이 되었는데요. 그 기간에 비해 출간한 책이 적은 편이에요.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자책과 더불어 갱년기 증상으로 인해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오랜 기간 무기력하게 지내 왔습니다. 

그사이 나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스스로를 너무 미워했으니까요. 계획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나, 목표한 대로 이루어 내지 못하는 나. 이런 내가 한심해 보였어요. 다른 누구와도 아닌 나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한 거죠.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깨져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별일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괴로움은 갈수록 커져만 갔어요. 그 상태로 몇 년을 보내는 동안, 벗어나 보고자 몸부림을 치기도 했는데요. 우울함이 깊어서 혼자만의 동굴로 굴러떨어지길 반복했지요. 

그러다가 재작년쯤, 인생 후반전에 접어드는 시기에 이르러 각성하고 비로소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루 몇 줄씩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쓰러져 있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좀 살려 보자’는 생각에 글을 썼어요. 그 글들이 모여서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가 되었죠. 책을 내려는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쓴 게 아니라, 우울과 무기력을 떨치고 제자리에 좀 똑바로 앉아 있고 싶어서 글을 썼어요. 당시 저는 거의 누워서만 지냈거든요. 

내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우연찮게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내가 유난히 좋아지기도 한다.

이 책을 펼친 모든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1장 이제야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2장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다짐들

3장 때론 유연하게, 때론 단호하게

4장 지금 그대로,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5장 나다운 나이 듦에 대하여

 

 

‘뒤늦게 내가 알게 된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조금은 자신을 아껴주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동화 작가 김리하의 첫 에세이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써온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에세이,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는 일상에서 만나는 순간들 속에서 발견한 작은 위로와 용기가 담겨 있다. 한동안 미워하던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스스로를 조금은 더 다정하고 살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작가의 솔직함이 곳곳에 배어있다. 결국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못난 구석을 기어이 찾아내 다그치고 미워하는 것에서 벗어나, 살아온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라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면을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펼치는 모든 이들이 앞으로의 남은 인생에서 자신을 좀 더 좋아하고 아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쓰는 삶을 살 것이다.

쓰다 보면 나를 살리게 될 것이다.

끝내 좋은 글을 쓰는 따뜻한 사람이 될 것이다.’

 

결국 그 글쓰기 덕분에 스스로와 화해할 수 있었고 이젠 가끔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까지 맞이하게 된 거죠. 그러니 ‘나쁜 일이 끝까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이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라는 진리 앞에 고개 숙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삶의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 어떠한 순간에도 조금씩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기도 해요. 원망도 하고 자책도 합니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조금씩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 바람직한 쪽으로 변화하려고 노력하지요. 자꾸만 과거에만 매달려 살 수 없고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만을 기약하며 살 수도 없어요. 오늘을 사는 지금의 내 모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 유일무이한 나 자신을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해 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지요. 나이 들수록 내가 좋아지고, 내가 마음에 든다면 꽤 괜찮은 인생 아닐까요? 그러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요. 하루의 일정을 다 마치고 내일도 즐겁게 살아보려는 마음을 낼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중년의 삶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결국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일어서서 두 발로 땅을 디딜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 시련을 극복하고 일어서면 다음번에 맞이하는 시련은 더 잘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극복한 시련들을 지렛대 삼아 더욱 높이 날아오를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내가 나를 좋아하며 믿어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가장 기쁜 일이지요. 저는 이제 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뭘 잘 못 해도 시도해 보려고 노력하는 저를 사랑해 주기로 했어요. 이런 날들이 쌓이면서 제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 하루하루가 생겨납니다. 여러분께도 스스로가 좋아지는 숱한 나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길 바랍니다.

 

목차

프롤로그 - 더 이상 내가 밉지 않다

1장. 이제야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이소박이를 보며 삶의 농도를 맞추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쓸모없는 ‘척’의 세계
나이 드는 건 슬프지 않다
내 삶의 컨트롤 키는 나에게
사랑으로 사랑을 배운다
소중한 건 사라지지 않는다
실패해도 기분까지 깨지지 않도록

2장.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다짐들
코르셋 입은 애호박처럼
나는 오늘도 나를 키운다
시든 감정을 되살리는 시간
느리지만 쉼 없이 돌파하며
물질에는 인색해지기로 했다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며 살기
겸손하면서도 어른스럽게
함께 읽는 즐거움
실패의 시간마저 아군으로

3장. 때론 유연하게, 때론 단호하게
내 고민을 바라보면 타인의 고민도 이해된다
인간관계에서 헤맬 때 나만의 자리 찾기
파리 개선문에서 ‘거리 두기’를 배우다
부탁과 거절 사이에서 중심 잡기
신뢰할 만한 사람을 신뢰하는 것도 능력이다
그건 순전히 인격에서 우러나온 일
배신 앞에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인연을 끝내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4장. 지금 그대로,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 마음속 습기 제거하기
벽 앞에서 찾은 옵션 B
인생, 우울과 우쭐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다
삶이 의자처럼 기울어져도 괜찮아
비교병에서 벗어나기
나쁜 일이 끝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다 갖춰도 덜 행복할 수 있다
물건이 주는 의미에 대하여
자기 계발형 부자가 되는 법

5장. 나다운 나이 듦에 대하여
좋은 사람은 일상에 스며든다
뒷모습에도 삶이 담긴다
원망보다는 배우는 자세로
다 잘할 수도, 다 잘할 필요도 없다
마음속 서랍에 날 위한 말들을 차곡차곡
나를 풍성하게 키울 일은 무엇일까?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유연한 나이 듦을 위한 길

에필로그 - 인도고무나무 막뿌리처럼

 

1장 이제야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주변의 하찮은 대접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고

가슴 아픈 실패의 소식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기분만큼은 나를 책임져 줄 수 있도록,

나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을 것이다. 

 

<오이소박이를 보며 삶의 농도를 맞추다>

 

한때 슬픈 감정이 넘쳐나 주체가 안 되던 때가 있었다.넘쳐나면 부족할 때보다 일상을 유지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감정도 행동도 기대도 가치 판단도 그 모든 것이 과잉 상태일 때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그래서 내게 과일은, 부족보다는 항상 경계해야 할 단어가 되었다. 그런 마음이 간을 하는 순간에도 소금을 그러쥐고 내어놓지 못하게 만드나 보다. (p.17)

 

중간중간 조금 짜더라도 리드미컬하게 살아보는 것, 오늘도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내 삶의 농도를 맟춰가는 중이다. (p.17)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저렴한 가격은 손님들 주머니 사정에까지 일일이 관심을 둔 주인아줌마의 배려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건 능력 중의 능력, 가장 귀하고 따뜻한 능력이다.

나는 이번 주 토요일도 그곳에 머리를 자르러 갈 예정이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수건도 한 장 한 장, 예쁘게 개켜놓고 와야 겠다. (p.23)

 

<쓸모없는 ‘척’의 세계>

다른 사람에게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오히려 가족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남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상대방의 모른다는 반응에 훨씬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p.25)

 

이처럼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 인식의 왜곡을 가리키는 말이 바로 '지식의 저주'이다.

내가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것을 모르는 사람의 상태를 상상하기 어렵다. 이미 알고 있는 나는 남의 심정까지 알아서 살필 수가 없다. 우리는 마음까지도 바쁜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안타깝게도 살필 여력이 없는 것이다. (p.26)

 

지식의 저주에서 비롯된 상대방에 대한 이해 부족 현상이었던 것 같다. 

소중한 가족을 타인의 부당한 대우로부터 보호하겠다며 훈계와 잔소리를 일삼는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자고 다짐했다. 지금 이 순간 웃고 행복해야 할 가족에게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을 투영하여 지식의 저주를 퍼붓는 짓은 하지 말자고 말이다.

 

가족 앞에서는 교사나 강사가 되지 않아야겠다. 가족 누군가 밖에서 마음이 다친 채 돌아왔다면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가족'으로만 남아야갰다. 

각자의 인생에 주어진 일정량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지겠다고 애쓰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테니까. (p.28)

 

<나이 드는 건 슬프지 않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노화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흰머리를 보거나 눈이 침침해지는 순간과 마주하면 낯설다.

겉이 늙는 만큼 감정도 발맟춰 퇴색된다면 사는 게 더 쉬워질까? 아니, 더 어려워질까?

늙는다는 건, 연로하신 엄마를 이해할 거리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는 것과 같다.

엄마의 딸에서 엄마의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해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니 나이 드는 건 슬프지 않다. 다만 간지러울 뿐이다. (p.32)

 

<내 삶의 컨트롤 키는 나에게>

 

내겐 블로그를 할 때가 그렇다. 종종 스탕달 신드롬을 느끼곤 하는데, 일명 '블로그 과몰입 증후군'이다. (p.34)

 

새벽에 일어나서 블로그에 글을 쓴ㄴ 순간 나는 거기에 심하게 몰입하고 만다. 

몰입이 지나쳐 남편의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도 깜빡할 때가 있고, 다림질할 셔츠도 며칠 째 건조대에 그대로 매단 채 내버려 두기도 한다. 블로그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단톡방에 글을 올리는 데 정신을 빼놓은 까닭이다. 

오히려 '밥은 남편이 혼자 알아서 챙겨 먹고 가면 좋을텐데, 셔프도 본인이 직접 다리면 좀 좋아? 하며 자꾸 바라는 게 늘어만 간다. 

나도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미처 몰랐다. (p.35)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건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때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매일 하는 일이 나의 눈에 확실하게 드러나 보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혼자 블로그를 하다 보면 쉽게 지쳐서 지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과 함께 단톡방에 새벽 기상 시간 인증도 하고, 블로그에 쓴 글을 공유하기도 한다. (p.35)

 

내 모습이지만 참 낯설다. 그래서인지 문득문득 예전의 소극적인 나와 마주친다. 

'나 지금 뭐 하는 걸까? 정말 내가 맞는 걸까? 난감해지기도 한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 모습 사이에서 이리저리 헤맨다. (p.36)

 

 하루 방문자 수를 400~500명쯤으로 해서 들쭉날쭉한 그래프를 완만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욕심이 생기면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없다. 내 삶의 컨트롤 키를 남에게 쥐여주는 것과 같다. 욕심이 생긴다는 건 남보다 잘하고 싶다는 것이고, 남과 자꾸 비교하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건 처음 블로그를 하게 된 목적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p.37)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내 모습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블로그를 시작했다.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내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남들과 비교해서 더 잘나 보이려 한 것도 아니고, 남들과 비교하며 일부러 열등감에 빠지려고 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인데, 어느 새 그 사실을 사실을 잊고 있었다. (p.37)

 

베이글에 핀 곰팡이 사건은 내겐 죽비와도 같았다. 절에서 스님들이 시작과 끝을 알리는 데 쓰는 도구인 죽비는 두 개의 대쪽을 합펴 놓아 내리칠 때마다 커다란 소리가 난다. 

욕심히 생기려는 순간, 멈출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주는 주변의 크고 작은 상황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재미나게 책 읽으며 사색하고, 세상 구경하며 소통하는 삶. 그런 순간순간들을 자연스럽게 기록해 나가는 것.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이다.

 

블로그 하면서도 살림도 잘해서 더 이상의 곰팡이는 만들어 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더 길게 더 오랫동안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 테니까. 좌충우돌 일상이 준 삶의 깨달음을 잘 기억해 두아야겠다. (p.38)

 

<사랑으로 사랑을 배운다>
 

침대 위 마른빨래가 전부 개켜져 있었다. 요즘은 소파 대신 침대에 마른빨래를 쌓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두 개씩 접어놓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둔다. 쌓인 옷들 속에서 몇 개씩 골라 입기도 한다. 시간이 점점 부족해지면서 '어차피 매일 갈아입는 옷인데 옷장에 넣을 필요 뭐 있어?"하면서 내버려 둔 것이다. 빨래를 개키지 않고 쌓아뒀다 입으면 중간 과정이 생략되니 시간 절약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p.40)

 

내게 작은언니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친구였다. 작은언니는 평생 내게 모든 걸 양보해 주었다. 같이 늙어가는 지금도 언제나 나의 안부를 묻고 위로해 주며 내 편이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언니가 가져다준 싱겁지만 양은 풍성한 반찬으로 당분간은 든든하고 편하게 밥사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p.43)

 

<소중한 건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과일을 잘 먹지 않지만, 딸아이는 봄에는 딸기, 가을 겨울에는 귤, 이 두 종류를 즐겨 먹는다. 

손바닥과 발바닥이 노랗게 변해 버린 것이었다. 귤에 함유된 카로틴 성분은 주로 피하지방에 축적되어 손바닥과 발바닥을 노랗게 만든다고 한다. 귤 먹기를 멈추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피부색으로 돌아오곤 했으니,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p.45)

 

그 껍질에 영양분이 많다는 걸 아셔도 껍질 없는 귤을 더 좋아하는 딸을 생각하며 날마다 정성껏 귤 탑을 쌓아 올리신 아버지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귤을 볼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귤 하나를 깔 때마다 자식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셨을지, 그 마음이 헤어려지기 때문이다.

 

먼 옛날 임금님께만 바쳐졌던 귤, 딸을 생각하며 속껍질까지 남김없이 다듬으시던 아버지의 귤, 이제는 흔하디흔한 과일이 되었지만, 귤에 담긴 소중하고 귀한 마음을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들이 귤을, 지금의 나를 좋아하게 만든다. 

나는 오늘도 딸아이가 잘 먹는 귤을 제대 깨끗이 씻어서 쟁반에 준비해 놓는다. 내 아버지처럼 속껍질까지 벗겨 주지는 못해도 딸아이와 함께 귤을 나눠 먹는 이 시간은 그때처럼 더할 나의 없이 행복하다. (47)

 

<실패해도 기분까지 깨지지 않도록>

멋지게 대학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만난 날은 내 존재가 얼마나 하찮게 여겨졌는지 모른다.

그런 날 밤은 어김없이 내 방 커츤을 다 닫고 침애 뒤에 엎드려서 한참을 울며 괴로워했다.

'나의 못났음'을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여실힌 느끼고 있었다. (50)

 

그저 우연히 들은 클래식으로 인해 '내 삶도  꽃피는 어느 순간을 살며시 품고 있을지 모른다'라는 희망을 어렴풋하게나마 가질 수 있었다. 

"인생 스무 살에 끝나지 않아. 지금 별로라도 나중에 괜찮아질 수 있어. 네가 감당할 능력이 있기에 이런 시련도 온 거야." (51)

 

부정적 시그널이 한참 동안 나를 에워쌀 때 유리병이 깨져버렸다면 구시렁대면서 내 탓, 남 탓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을 거다. '하필 이 유리병을 왜 꺼냈을까? 잘 안 먹던 커피는 왜 마셔서 사고를 쳤을까? 어쩜 이렇게 부실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유리병을 나한테 준 사람은 대테 누구였을까? 이렇게 투덜거릴 이유를 찾아 헤맸을지도 모른다. (51~52)

 

예상 밖의 좌절과 실패, 파괴나 균열의 현장을 맞닥뜨릴 때면 어김없이 우리의 기분도 쪼개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잦은 실패나 사소한 균열을 보고 내 기분과 내 삶에 흠집을 내는 일을 멈추고 싶어졌다. 그건 그저 많고 많은 도전 중 하나가 실패로 돌아갔을 뿐이고, 수많은 그릇 중 하나가 깨진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릇이 깨졌다고 해서 내 삶의 어떤 부분도 똑같이 깨져 나가리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52)

 

컵 하나 깨졌다고, 컵처럼 사소한 일 하나 틀어져 버렸다고, 내 기분까지 망가뜨린느 어리석음은 더 이상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고작 컵 하나일 뿐이다. 다른 컵으로 대체될 수도 있고, 컵이 없으면 대접이나 밥공기에 담아 마실 수도 있다. 대체품을 가진 어떤 물건이나 일 때문에 대체 불가한 유일무이의 나를 원망하거나 내 기분을 망치는 행동은 그만두고 싶다. 내 기분이 나를 홀대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다. (52)

 

앞으로도 삶의 중간중간 일이 안 풀려서 낙담할 때가 있을 것이다. 주변의 하찮은 대접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을 테고, 도전할 때마다 실패의 소식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어 볼 예정이다. 내 기분만큼은 나를 책임져 줄 수 있도록, 유일한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도록 말이다. (53)

 


2장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다짐들

 

내 몸 어느 구석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감각들과

거의 시들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의 이파리들이

되살아나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 순간 나의 행동을 더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 밀어붙여 준다

 

<코르셋 입은 애호박처럼>

 

대형 마트에서 파는 애로박은 모양이 거의 다 비슷하다. 공산품도 아닌데 어쩜 그렇게 찍어내듯 똑같을까? 답은 애호박을 감싼 포장지에 있다. 처음부터 규격화된 포장지 안에서 애호박을 키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애호박은 포장지 이상으로 클 수가 없다. 포장지가 그걸 용납하지 않으니까. (56)

 

에호박은 꽉 끼는 포장지 속에서 자신을 가다듬는다. 아무렇게나 막 자라고 싶은 욕구를 거세당하며 형태를 잡아간다. 포장지 원형 그대로의 애호박이 탄생하는 것이다. 코르셋을 입은 애호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애호박은 포장지를 코르셋 삼아 상하좌우 균형을 맞춰가며 자란다.

그 옛날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글자가 좀 다르게 보였다. 몸통에 선연하게 찍힌 글자를 통해 애호박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성장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애호박의 생의 한 주기, 그 순간의 치열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포장지 속에서 매일매일 일정하게 성장하는 애호박을 보며 내 삶의 루틴을 떠올랐다. 내가 매일 하는 일들을 어떠한 틀 속에 넣어서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58)

 

애호박 포장지가 자유를 속박한다고 생각했으나 이젠 일상을 제어라는 루틴을 생각하기도 하는 나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고가 자유롭게 변화해 감을 느낀다. 보다 긍정적으로 살며 나를 성장시키는 삶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물을 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도 여전히 별 거 아닌 생각들과 정말 중요한 생각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 중에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취사선택하는것만은 고유한 내 권한이니까 말이다. 나는 내 성장을 위해 기꺼이 코르셋 같고. 애호박의 포장지 같은 작은 루틴을 지켜나가고 싶다. (59)

 

<나는 오늘도 나를 키운다>

한낱 기호품에 지나지 않았던 맥주에 대책 없이 취하고 다치기까지 하는 상황이 싫어서였다.

구토하고, 얼굴 다친 것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내 안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좋은 습관은 삶의 방향 역시 좋은 쪽으로 이끌지만 나쁜 습관은 현재 상태에 나를 주저앉히거나 훨씬 귀로 물러서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나쁜 습관은 쉽게 형성되지만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는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말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63)

 

한결같이 정성을 기울이면서 부지런히 하는 그 매일의 일이 바로 '나'이고 '나 자신의 철학'일 테니까 말이다.

삶이라는 것이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제 나는 매 순간을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그렇게 살기 싫어졌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늘어난 경험치를 바탕으로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인생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바뀌며 삶이 진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건강을 위해, 더 좋은 습관을 갖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는중이다.이런 노력을 '나는 나를 키운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나를 키운다

아직 작은 새싹에 지나지 않지만 조금씩 자라날 거라 믿는다. (64)

 

<시든 감정을 되살리는 시간>

새벽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세상에 대한 예민한 감각들이 일깨워졋다. 꾹꾹 눌어 놓아서 내 몸 어느 구석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엇던 감각들이 나를 살며서 흔들어 주었다. 

거의 시들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의 이파리들이 살아나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런 소중한 감정들이 나의 행동을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밀어붙여 준다. (68)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싶다. 손톱 반만큼, 그게 안 된다면 깨알만큼이라도, 겨자씨만큼이라도 나를 성장시키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다. 그 길에서 만난 새벽 기상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68)

 

<느리지만 쉼 없이 돌파하며>

환자들은 통증이 극심하거나 운동을 포기하고 싶을 때를 중심으로 계획을 세웠고, 스스로가 힘든 순간을 이겨 나갈 방법을 고안해 냈기에 회복 속도가 빨랐다는 것이다. (72)

 

의지력이 습관이 되는 순간, 습관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순간만을 꿈꾼다.

 

나는 느리지만 쉼 없이 고통의 변곡점, 마의 8층을 돌파해나갈 것이다. 삶의 중간중간 만나게 될 고통의 순간에도 계단을 오르며 배운 고통의 변곡점을 떠올릴 것이다. 

인증샷을 찍으며 낭비되는 시간을 줄였더니 나 같은 거북이도 조금은 빨라졌다. 이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거북이가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73)

 

<물질에는 인색해지기로 했다>

 

사치품이나 명품을 밝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알뜰 살뜰 절약하며 가계부를 쓴 적도 거의 없다. 뭘 살 때 예산을 염두에 두고 살까 말까 고민한 적도 거의 없다. 그냥 대충 봐서 필요할 듯하면 다 사버렸다. 깊은 고민 없이 샀기에 쓸모를 찾지 못한 물건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남편이 벌어 오는 돈을 알뜰히 모으고 더 신중히 사용했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노후 대비가 잘 된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74)

 

이제는 욕망을 최소화하고, 소비를 최소화한 공간에 내가 진짜 나여야만 하는 이유와 의미를 채우고 싶다. 겨우 형광펜 한 세트. 노트 다섯 권일지라도 내게 필요 없는 소비는 아닌지, 내가 사는 바람에 꼭 필요한 누군가가 못 사게 되는 것은 아닌지를 고민해 본다. 내게는 너무 쉬운 소비가 똑같은 하늘 아래 누군가에게는 어렵고도 힘든 소비인 걸 알게 된 이상,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을 수는 없다. 엄청 늦게 철이 들어 아쉬운 감이 있지만 스스로를 탓하지는 않으려 한다. (76)

 

돈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하면서 쓰지 않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왕 살아가야 한다면 쉬운 쪽보다는 쉽지 않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늘 옳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바로는 어려운 쪽이 항상 기억에 남았고, 그런 순간이 나를 지탱하며 키워준 것이 맞았다. 나는 나를 위한 소비를 지양하고 공짜라는 이유로 타인의 재화를 낭비하는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에게만큼은 물질적으로 조금 더 인색해지려 한다. (77)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며 살기>

 

30년 가까이 믹스 커피만 마시며 살아왔다. 나는 밥은 안 먹어도 믹스 커피만큼은 꼭 챙겨 마셔 왔다. 내게 믹스 커피란, 무언가를 열심히 하기 위해 잠을 쫓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신 음료였다. 모두 잠든 깊은 밤, 손 닿는 곳에 유일하게 있던, 만져질 수 있는 따뜻함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 봉지 하나 뜯어서 뜨거운 물에 후루룩 타 마실 수 있는 편리함이 좋았다.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도 만족스러웠고,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뜨끈함도 마음에 들었다. (79)

 

시도 때도 없이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았다 소용돌이치는 슬픈 감정을 다스리며 빠른 위로를 줄 수 있는 건 믹스 커피밖에 없었다. 고급 커피가 주는 풍미보다 지난 세월 나와 동고동락했던 믹스 커피가 주는 익숙한 맛에 길들여진 셈이다. (80)

 

어떠한 것에 중독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 제품 혹은 대상이 사라졌을 때 우리 자신의 삶이 혼란 속으로 빠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들은 삶에서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만 한다.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 여러 종류의 달콤한 것들과 결별해야만 한다는 걸 안다. 무엇보다 나의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며 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81)

인생 후반전, 나는 나를 조금 더 가다듬으며 잘 키우고 싶다. 좋은 습관을 몸과 마음에 새겨 바르게 살아가고 싶다. 좋은 습관 하나를 익히며 나쁜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좋은 습관이 자리를 잡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다. 옷장 안에서 흰 옷을 빼내지 않은 채 새 옷을 계속 집어넣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뒤죽박죽 상태라면 필요할 때 새 옷도 재빠르게 찾을 수가 없다. 간절한 시기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찾아낼 수 없는 삶, 내 안의 모든 것들이 뒤섞여 우선순위조차 가늠할 수 없는 삶과 헤어져야 한다. (p.82)

 

습관이란 철사를 꼬아 만든 쇠줄이라고 한다. 이왕 쇠줄을 만들 거라면 애초부터 제대로 된 철사로 정성을 다해 꼬아 만들어 내고 싶다. 좋은 습관 하나를 떼어 내는 중이다. 이쯤에서 나는 믹스 커피 중독자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82)

 

<겸손하면서도 어른스럽게>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면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희미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삶에서 무릎이 몇 번씩 꺾이고 나면 긴말아지 않아도 저절로 꿇어앉게 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85)

 

삶의 많은 부분이 겸손하지 못해서 깨지고 파괴되는 것을 본다. 상대방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 이유는 겸손함이 부족한 자리에 자만심이 들어찼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할 때 겉모습만 판단한다면, 남 앞에 나를 드러내고 내세우기를 좋아한다면 실수를 배움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면, 그건 덜 겸손하다는 뜻일 거다. 더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87)

 

지금은 비록 꼬마와 진정한 어른 사이의 꼬마 어른으로 머물지라도 결국 우리들의 지향점은 한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숙한 어른, 성장하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고 싶다. 가다 멈추고, 가다 쓰러지는 날들도 많겠지만 다시 일어나서 걸을 수 있는 자세야말로 겸손이 아닐까. (87)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 모든 것들을 찬찬히, 오래도록 들여다볼 것이다. 이제는 나도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88)

 

<함께 읽는 즐거움>

책은 혼자 읽어도 좋지만 읽은 것을 함께 나무녀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깨달음도 얻게 된다. 책을 읽으며 이야기하는 과정 중에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한 명 한 명 모두가 다 자신만의 인생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책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나는 매주 토요일 독서 모임에서 책과 사람을 만나고 배려와 존중, 나눔과 실천의 자세까지 배우고 돌아온다. (91)

 

그러나 모든 시작에 늦은 때란 없는 법, 이제 나의 성장을 위해 좋은 습관들을 익히며 한 걸음씩 힘차게 내디뎌 볼까 한다. (92)

 

<실패의 시간마저 아군으로>

내게 일어난 일들을 더 이상 지나치게 부풀려 생각하지 않을 때, 실망스러운 순간을 두고두고  곱씹지 않을 때, 대신 사소한 감사거리는 오래 기억해보려 더듬거릴 때 나는 내가 겪어온 세월이 든든한 아군처럼 느껴진다. (95)

 

어차피 나는 또 다른 일들을 내 방식대로 조금씩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배트를 휘두르는 시간이라는것을 알고 있다. 안타 하나 만들어 내기가 어디 쉬운가. 삼진에, 헉스윙에, 내야땅볼에, 파울까지...나는 그 모든 것을 줄줄이 겪어 내는 중이다. 언젠가 만들어 낼지도 모르는 단 하나의 안타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마음을 다 잡고 무엇이든지 새로 시작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97)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현재의 일은 과거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현재가 힘이 되는 과거로 잘 자리 잡기 위해서는 매 순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즐겁게 사는 방식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현재를 잘 보듬으며 과거로 보내고, 미지의 미래를 가슴 설레며 맞이하고 싶다. 그렇게 재미나게 살다가 만나게 될 미래의 어느 날은 지금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도 헛방망이질하며 숱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싫지 않다. 내 노력이 늘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지만, 그리 헛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99)

 


 

3장 때론 유연하게

때론 단호하게

 

현재가 힘이 되는 과거로 잘 자리 잡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잘 보듬으며 과거로 보내고

미지의 미래를 가슴 설레며 맞이하고 싶다.

 

<내 고민을 바라보면 타인의 고민도 이해된다>

 

일상에서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내이고, 며느리이기도 한 우리는 무엇보다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들이다.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의 절반은 '내가 누굴까? 난 뭘 원하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가? 이제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등등 자신을 둘러싼 고민들이다. 사춘기 소냐들 입에서 나올 법한 문제들도 중년인 우리 안에 똑같이 다 들어 있다. 그런데 문제를 바라보고 고민하는 그 과정이 나름 만족스럽다. 

 

고민한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뜻인 거고, 해결 의지가 있는 한 희망도 함께 한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내 고민이 커지는 지점에서 타인의 고민과도 조우하게 된다. 고민에 대한 이해의 폭도 커진다. 나에 대해 고민만 하다가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들의 삶도 더 윤기를 머금을 수 있도록 함께 궁리해 본다. 정확한 해답을 지금 당장 꺼내 놓을 수는 없을지라도 서로의 인생을 위해 의견과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잇다는 사실이 기쁘다. (P.103)

나를 돌아볼 힘이 점차 길러지면,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능력과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104)

 

일기든, 조각 글이든, 무엇이 되었든 일단 쓰는 사람에게 돌아봄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104)

 

실망했던 일, 속상했던 일, 고민과 상처가 되었던 일들도 돌아서서 들여다보면 조금씩 정리되는 순간이 온다. 상처가 차츰 아물면서 힘든 기억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이 생기기도 한다. 내 상처를 극복한 기억과 극복하면서 생긴 힘은 나만 살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다른 고민과 상처를 지닌 누군가에게로 가서 닿는다. 때론 타인의 고민과 상처가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104)

 

타인에게 드러낼 수 있는 나의 고민과 상처는 이미 해결되었거나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다독이는 과정을 거친 사람은 자신과의 화해가 가능하다. 화해의 기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에게도 기꺼이 자신의 고민과 상처를 꺼내 보여줄 수 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연대할 수 있게 된다. (105)

 

작지만 가치 있는 일을 지속하고, 그래서 오늘이 즐거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05)

 

<인간관계에서 헤맬 때 나만의 자리 찾기>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만의 자리 찾기'를 끊임없이 하는 존재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혼자 있으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으나 자신이 어디에 어떤 식으로 위치할지를 계속 욕망하고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존재인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 찾기'에만 골몰하다 보면 나의 삶 속에서 나만의 자리 찾기는 종종 놓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무엇보다 내 삶 속에서 '내 자리 찾기'를 먼저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111)

 

<파리 개선문에서 ‘거리 두기’를 배우다>

 

어떠한 것의 전체 모습은 바짝 붙은 지점, 즉 가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거기에서 나는 일정 수준의 거리가 반드시 확보되어야만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실체를 온전히 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114~115)

 

사람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해 나가기 때문에 깨달은 것을 항상 실천하지 못한다고 해서 깨달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모든 것이 들러붙어 형태가 이지러져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적당한 간격 유지, 거리 두기가 온전한 형태를 지키기 위한 최선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15)

 

삶도 그렇다. 어느 한쪽으로 과도한 치우침이 없게 하려면 자주 들여다보고, 띄엄띄엄 보기도 하고, 가끔은 멀찍이 떨어져 보기도 해야 한다. 제대로 보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을 듯하다. (116)

 

<부탁과 거절 사이에서 중심 잡기>

 

나는 거절을 잘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부탁을 대부분 들어주면서 살아왔다. 내가 해야 할 일도 뒤로 미루고 부탁받은 일을 먼저 처리한 적도 꽤 많다. 실속 없이 산다고 주변의 구박을 받아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가도, 누군가가 부탁을 해오면 여지없이 마음이 흔들린다. (117)

 

누군가 내게 부탁을 했는데 내가 야멸차게 거절하면 상대방은 얼마나 상처 받을까? 괜스레 나를 미워하고 험담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부탁을 들어주는 쪽으로 마음을 정해버리곤 했다. (118)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거절당했을 때 마음을 다치지 말 것, 상대방에게 내 부탁이 거절당한 것이지, 내 존 재 자체가 부정당한 건 아니라고 생각할 것, 또 인품에 의심이 드는 사람이 하는 부탁까지 일일이 신경 쓰지 말 것, 내 노력과 시간을 들려 상대방을 도왔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인사조차 진심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의 부탁을 들어주지 말 것, 이런 다짐으로 나는 부탁과 거절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며 마음 다치는 일을 줄여나갔다. (118)

 

거절을 못해서 부탁받은 일들을 머리에 이고 고민하며 사는 대신 나에게 집중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내 삶의 중간중간에 '별 터지는 느낌;을 더 자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119)

 

<신뢰할 만한 사람을 신뢰하는 것도 능력이다>

 

대인관계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고, 신뢰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120)

 

대인관계에서는 상대방을 진지하게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때 판단 기준은 단 하나다. 신뢰. '그 사람은 믿을 만한가? 내 믿음을 배반하지 않을 만한 사람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의 길이와는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22)

우리는 모두 한정된 시간, 한정된 에너지로 살아간다. 정해진 시간과 에너지를 될 수 있으면 의미있게 사욯했으면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준 도움과 배려로 인해서 돌아오는 대가나 대접도 당당히 받을 줄 알았으면 좋겠다.(122)

 

남은 대접해 주면서 나는 홀대받고 돌아다니는 삶, 이미 가치 없어져 버린 관계에 계속 미련을 두는 삶, 내 존재를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과 자꾸 시간을 나누려는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고 모아 두었다가 나의 진심을 믿어줄, 믿을 만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내보여야 한다. 그래야 덜 후회하고 덜 상처받게 된다. (122)

 

아무한테나 나의 신뢰를 함부로 내어 주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신중히 행동하다 보면 좋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재빨리 알아보고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123)

 

나의 신뢰를 아무것도 아닌 양 무시하는 사람은 나의 대인 관계 목록에서 가차 없이 지우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그런 사람까지 챙겨가며 인생의 귀중한 한때를 낭비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건 순전히 인격에서 우러나온 일>

 

살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때마다 깨달음이라는 별을 가슴속에 하나둘 심는다. 나를 하찮게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사람들은 내게 '답답하다, 바보 같다, 제 몫도 못 챙긴다. 그렇게 살명 안 된다'라고 조언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126)

'대신 그 예의 없는 사람은 나를 잃게 됐잖아.'

 

우리의 헌신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누구와도 엮이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가치관과 인격이 어떠한지 분명히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다. 우리를 귀하게 여겨 주는 사람들과 소중한 인생을 함께 가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성장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129)

 

<배신 앞에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선배 언니가 믿지 못할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을 훌훌 털어버리고 이제는 믿을 만한 사람을 잘 선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배신당했던 일들을 곱씹으며 자신을 탓하느라 행복할 수 있는 이 순간마저 슬프게 보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133)

 

나는 모든 게 비교적 마음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마음을 먹는다고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는 없겠지만, 일정 부분은 해결하면서도 살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이왕이면 세상을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되,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해내는 눈도 키우고 싶다. 그렇게 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져야 누군가 다가와서 거세게 흔들어 대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133)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해골을 떠올리기보다는 하트를 상상할 줄 아는 눈이 지금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많은 배신자를 만났다고 해서 슬퍼할 것도 없다. 많은 배신자들을 뒤로하고 이 자리에 섰으니, 앞으로는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날 일만 남았다. (133)

 

<인연을 끝내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인연을 끝내 버리기엔 그 친구가 너무 아깝지 않아? 좋은 사람이잖아. 그렇게 놓쳐 버리기에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 너도 알잖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비로소 그때까지 친구에게 섭섭했던 기억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작은 실수에 골몰하여 흠집 내고 관계를 끊어 버리는 우매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내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좋은 면이 넘치도록 많았으니까. (139)

 

삶이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중간중간 나를 지켜보고 함께해준 벗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질투하지 않는다.

그녀가 건강하게 지내며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4장 지금 그대로,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나름의 답안지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오답도 썼다가 정답도 쓴다.

지웠다가 고쳐 쓰기를 반복한다.

모범 답안지를 놓고 그대로 베끼는 삶이란 없다.

 

<내 마음속 습기 제거하기>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나고, 적게 오면 가뭄이 드는 것처럼 감정도 그런 것 같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차오르다가 넘쳐 버리고 메마르다가 바닥을 보이기도 한다. (144)

 

내 안의 습기를 나와 함께하는 공간들과 물건들이 분담해서 짊어져 주려고 손 내밀었던 것은 아닐가. 그렇지않다면 물통 속 물이 그토록 금세 차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147)

 

에어드레서 물통에서 물을 비워내며 내 안의 습기도 적절하게 제거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슬픔이 지나치게 차오르지 않도록 나의 감정을 잘 살피며 매만져 주고 싶다. (147)

 

<벽 앞에서 찾은 옵션 B>

시련이나 상실을 이겨내는 긍정의 힘을 '회복 탄력성'이라고 한다. 우리 삶에서 역경이나 좌절, 정신적 충격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노력 여해와 상관없이 어려운 일들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내일의 변화를 위한다면 오늘의 우리는 회복 탄력성을 키워 내야만 한다. (150)

 

회복 탄력성을 저해하는 요소로는 모든 건 내 잘못이라는 생각, 내 삶이 송두리째 망가졌다는 생각, 이 불행이 끝까지 계속될 거라는 생각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한 우리는 나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마음을 추슬러서 회복해야만 다가올 미래도 기대할 수 있을 텐데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어떤 희망도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150)

 

옵션 A 가 닫히면 재빨리 각자의 자리에서 가장 적당한 옵션 B 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꾸 지난 세월을 소급해서 과거에서만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며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법을 적용해봐야 소용없다. 여러 선택지 중에 사라져 버린 A를 그리워하다 B까지 놓치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옵션 B라고 선택할 수 있는 삶을 다행이라 여긴다면 그 순간 회복 탄력성이 증가하지 않을까? (151)

 

어느 날 벼랑 끝까지 내몰려서 떨어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체념할 때, 남들도 나를 못 믿고 나조차도 나를 못 믿는 순간이 왔을 때 핸들을 왼쪽으로 힘차게 꺾어 보는 건 어떨까? 죄회전한 그 곳에 기대하지 않았던 옵션 B가 있을지 모른다. 그 뜻밖의 옵션 B가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 줄수도 있지 않을까? (151)

 

<인생, 우울과 우쭐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파고를 넘나들며 울었다 웃었다 화냈다 화해했다 지지고 볶는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면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고, 이성적으로 감정 조절까지 완벽하게 하는 모범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 모범 답안은 정답지에나 어울리는 것이지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는 아니다. 또 그런 이상적인 모습을 누구나 원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153)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나름의 답안지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오답도 썼다가 정답도 쓴다. 지웠다가 고쳐 쓰기를 반복한다. 모법 답안지를 놓고 그대로 베끼는 삶이란 없다. 모범 답안지는 하나도 틀릴 수 없는 100퍼센트 완벽한 답안지다. 

그런데 누구의 인생이 100퍼센트 완벽할 수 있을가? 또 그걸 베껴 쓴다고 해서 완벽해질 수 있을까? 우리 앞에는 새로운 문제가 시시각각 펼쳐질 텐데 그때마다 누구로부터 모범 답안을 가지고 올 텐가? 옆에서 대기하고 있으면서 매번 모범 답안을 전해 줄 누군가를 알고 있는가? 내 안에서 꺼내 쓰는 수밖에 없다. 틀리든 맞든 내가 아는 바를 있는 그대로 기술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 맞는 답안지를 작성하다가 그 안에서 갈팡질팡, 우물쭈물하는 모든 순간이 실은 나에게 가장 알맞은 답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인생이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154)

 

자랑하고 싶으면 자랑하고 슬프면 목 놓아 울기도 하자. 기쁘면 소리 높여 좋아하고 창피하면 숨기도 하자. 우쭐해지면 웃고 우울해지면 눈물도 흘려 보자. 그 모든 것을 다 마치고 나서 우리 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155)

 

우리는 탕아처럼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우리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잖은가. 단지 우리가 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더 큰 환대를 받아야 마땅하다. 더 큰 환대는 타인이 해주는 게 아니다. 더 큰 환대를 해 줄 타인을 찾다 보니 늘 실말하고 낙담하며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환대해 주면 된다. 헤매다가 끝내는 제자지에 온 자신을 열렬히 지지해 주고 따뜻하게 응원해 주면 된다.

결국 나를 끝까지 데리고 살 사람은 나이니까, 인생의 우물쭈물, 인생의 갈팡질팡도, 인생의 가장 극적인 환대도,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된다. 그 힘으로 우리 모두 마지막까지 잘 살면 된다. 우리 앞에 주어진 생의 길을 따라 또각또각 걸어가면 된다. 

(155)

 

<삶이 의자처럼 기울어져도 괜찮아>

기울어진 의자를 보며 산책하는 동안, 지난 시련은 내 안의 불필요한 것들을 빼내기 위해 꼭 겪어야만 했던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채우려면 그만큼의 또 다른 무언가를 덜어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비우지는 않고 채우기만 하는 '맹목적 채움'이 삶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만든다는 사실도 조금씩 알게 된다. 이런 삶의 진리를 거저 알 수는 없었다.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어낸 귀한 진리를 가슴에 품은 채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살다가 문득문득 어려운 일을 겪어 '이생망'을 외칠 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애쓰고 노력해도 점점 일이 꼬이기만 할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서 갈 곳조차 없을 때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을 때'

-내 인생의 어느 한 페이지에도 기대할 것이 없을 때

 

이처럼 삶에서 원망스러운 일들이 즐비하게 있을 때 우리는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기울어진 야외용 플라스틱 의자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 불필요한 물기들을 털어내고 사람을 앉히기 위한 원래의 용도로 돌아간 의자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우리도 한쪽으로 기울어진 힘들고 지친 시간을 잘 정리하고 다시 일상을 받아 낼 단단한 인생 그릇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159)

 

삶의 어느 한 시기, 의자처럼 기울어져도 괜찮다. 모두 끝난 것 같다고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진짜 삶은 기울어질 때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힘들고 지치게 하는 모든 원망을 털어내면 다시 제자리에 우뚝 서게 되는 날도 올 것이다. 한낱 플라스틱 의자도 '바로 서기'를 한다. 우리의 기울어짐은 바로 서기로 나아가가는 중간 과정일 거라 믿는다. (159)

 

<비교병에서 벗어나기>

많은 사람이 해당된다는 이유로, 즉 평균을 적용하여 개인의 상채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그냥 '나는 나'라는 고유한 사람으로서 각자의 방식대로 살며 자기 삶의 테두리 안에서 조금씩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16년 전 초보 엄마의 미숙함을 버리고 평균은 없다는 사실을 믿으며 저마다의 개개인성을 인정할 만큼, 딱 그만큼은 자란 모양이다. (163)

 

<나쁜 일이 끝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쁜 일이 끝내 나쁜 것만은 아니고, 좋은 일이 끝끝내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생 굽이굽이에서 마주한다. 살다 보면 인생의 명암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고 서 있는 그 자리에 항상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좋아도 너무 좋아하지 말고,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읗 항상 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니까 마음을 조금 더 내려놓으며 가볍게 살아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166)

 

미련이 너무 많으면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워져서 앞으로 나서야 할 때 주저하게 된다. 헤어질 때는 깨끗하게, 미적대지 말고, 지난 시간을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잘 보내주기.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신발 뒤축도 모르느 인생

(167)

 

<다 갖춰도 덜 행복할 수 있다>

뭔가를 끊임없이 사고, 갖고 싶은 욕망이 있는 한 행복은 언제나 내일로 유보될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정리하고 싶지 않을 때는 널브러진 채로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때 정리할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치욱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정리할 것이다. 조건을 내걸며 행복을 미루지 않을 것이고 조건을 만족해야만 행복해질 거라는 허구 앞에서도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내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려 한다. 다 갖춰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덜 갖춰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171)

 

<물건이 주는 의미에 대하여>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때에 불필요한 것들을 털어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175)

 

<자기 계발형 부자가 되는 법>

부자가 계속 부자로 남기 위한 최고의 지름길이 자기 계발인 셈이다. 자기 계발을 열심히 했더니 돈도 벌고 부자도 되었다는 이야기가 책과 SNS를 통해서 소개되곤 한다. (179)

 

어차피 해야 할 생각이라면 자신에게 힘을 주면서 성공과 행복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잇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것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180)

 

우리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으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순간들을 만들어 가면 좋겠다.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살아가며 애쓴 자신을 셀프 포옹해주면서 용기를 주어도 좋겠다.

'이렇게만 살면 나도 곧 백만장자다.'라고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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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정리 리뷰 | book 구매 2021-03-29 19:35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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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청년층과 노년층, 남자와 여자, 문학 전문가와 학생, 일반 독자, 그리고 특히 나보다 경륜이 앝거나 두터운 작가 등 다양한 관객을 대상으로 한 여섯 번의 강의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강의 내용을 음성 언어에서 문자 언어로 바꾸되 구어체적 느낌은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진부한 농담들은 일부 뺐다. 

이 책은 강연이라는 원형에서 그 형태를 물려받은 것이라 챕터 구성이 긴밀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한 챕터에서 다음 챕터로 직선을 그리며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장이 작가. 작가의 매체, 작가의 예술과 관련된 공통의 주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첫 번째 장은 가장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동시에 그간 내가 접해온 작품들이 뭔지 보여주는데, 이 두가지는 작가들이 주로 초창기에 읽고 썼던 경험을 통해 이야기 전달 방식을 채택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 장은 후기 낭만주의 운동의 그림자 속에, 도는 그 그림자의 조각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장은 예술의 신과 상업의 신의 갈등에 대해 다룬다.자신을 예술가라 여기는 작가들조차 여전히 상업의 신에게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네 번째 장은 작가를 환상주의자, 숙련공, 사회 정치권력의 참여자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다섯  번째 장은 작가, 책, 독자의 영원한 삼각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 장에서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과 그 어둡고도 복잡한 길에 대해 다룬다.

 

요컨대 이 책은 많은 작가들을 괴롭혀왔던 수많은 갈등을 붙잡고 씨름한다. 

수많은 글쓰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험난한 지대에서 이루어지는데, 방금 얘기한 갈등들이 이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목차

서론: 미로 속으로

1장 길 찾기: 넌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2장 이중성: 지킬의 손, 하이드의 손, 그리고 모호한 이중성
3장 헌신: 위대한 펜의 신
4장 유혹: 푸로스퍼로, 오즈의 마법사, 메피스토와 그 무리들
5장 성찬식: 무명인에서 무명인으로
6장 하강: 죽은 자와 협상하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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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깊숙한 굴 속에, 거의 완벽한 고독 속에 자리하기, 그리고 오직 글쓰기만이 구원해주리라는 것을 깨닫기, 책에 대해 손톱만큼의 주제도 생각도 없이 있는 것, 이는 다시 한 번 책 앞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이다. 광활한 백지, 잠재적 상태의 책, 무앞에 자리 잡기, 살아 있는 알몸의 글쓰기 같은 무언가, 너무가 끔찍해 이겨내기 힘든 무언가 앞에 있기.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그리트 뒤라스의 글> 

 

<서론>

2000년도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엠프슨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학자와 학생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까지 참석하는 자리에서 여섯 번에 걸쳐 강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내가 제안받은 대략적인 주제는 '글쓰기, 또는 작가가 된다는 것'이었다. 작가로 활동하면서 꾸준히 글을 써왔으니 뭔가 할 말이 있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는 작가들이 수년에 걸쳐 스스로 구축해온 다양한 자기 이미지를 고찰하리라는 원대한 계획이 들어 있었다. 너무 기술적이지도,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모호하게 설명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몸소 겪은 귀중한 경험과 통찰력을 붙이고, 그렇게 함으로ㅗ?써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 나오는 사기꾼 같은 기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개성"있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강렬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전체 분야를 조명하고자 했다. (p.15)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거창하지만 흐리터분한 비전은 기세를 잃고 흩어지며 백지상태가 되었다. 마치 초보 작가가 거대한 도서관에서 그 안에 있는 수천 권의 책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이 과연 이곳에 가치 있는 무언인가를 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진 기분이었다. (p.15)

 

생각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악화되었다. 글쓰기 자체도 언제나 고된 일이지만, 글쓰기에 대해 글을 쓰는 건 별 쓸모가 없다는 면에서 분명 더욱 고된 일이다. 심지어 허구하는 보편적 변명 조차 댈 수 없다. 만약 허구라면, 지어낸 이야기이므로 '그럴듯함'이라는 엄격한 잣대에 메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은 그 강의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것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글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나의 저술 활동에 대한 책도, 특정한 사람, 시대, 국가의 글에 대한 책도 아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으려나? 말하자면 작가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한 글이다. 그 위치라는 게 언제나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이 책은 한 40년 동안 글의 광산에서 노동해온 사람이 한밤중에 깨어나 그 긴 세월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다음 날 써볼까 생각해볼 법한 책이다. (p.17)

 

그녀는 물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해 왔는가? 인간 활동으로서든, 소명으로서든, 직업으로서든, 품팔이로서든, 심지어 예술로서든, 아무튼 이 '글쓰기'라는 건 무엇이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빠져드는 걸까?

 

어떤 점에서 그림, 작곡, 노래, 춤, 연기 같은 것들과 다른 걸까? 그리고 이런 일을 해온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활동을, 그런 활동을 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런 관점이 어떤 위로라도 되는 걸까? 또한 작가들이 설명하는, 작가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개념은 지난 몇 년 동안 조금이라도 변했을까? '작가'라고 부를 때 정확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머릿속으로 어떤 사람을 그리는 걸까? 영국의 시인 셸리가 거창하게 선언한 것처럼 작가는 세상의 비공식적인 법률 제정자일까, 혹은 영국의 비평가 겸 역사가인 칼라일이 말하는 것처럼 완고하고 오만한 위인일까? 아니면 당대 전기 작가들의 총애를 받는, 신경과민에 걸려 징징대는 폐인이자, 무능력하고 나약한 인간인가?

 

어쩌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젊은이들에게 경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글 쓰는 삶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염려하던 것들이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걱정하는 것들이라서 이 주제들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다 겪은 뒤 자신의 자난한 경험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나이에 다다라서인지 모른다. (p.18)

 

나는 작가이자 독자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학자도 아니고 문학 이론가도 아니다. 이 책에 그런 개념들이 조금이라도 돌아다닌다면 그것은 보통 작가들이 취하는 방식으로 인해 그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다음은 독자와 작가 자신이 작가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쓰는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서문을 쓰면서 이 중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목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동기에 관한 질문이었다. 

 

장애물, 모호함, 공허함, 방향감각 상실,황혼, 암전 등에 더불어 흔히 투쟁, 행호, 여정 등이결합되어 있는 것, 즉 앞을 볼 수 는 없지만 앞으로 길이 나 있으며 가다 보면 결국 앞으로 볼 수 있데 될 거라는 느낌, 이것들이 바로 글쓰기 과정에 대한 수많은 묘사들의 공통 요소다. 

이 책은 그런 어둠, 그런 욕망에 대한 책이다. (p.25)

 

 


 

1장 길 찾기

-넌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작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글쓰기, 작가, 글을 쓰는 삶, 이 주제는 하나의 서브텍스트를 자르면 두 개가 자라나는 머이 여섯 달린 히드라일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작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글을 쓰면 그게 작가가 아니겠어요?"

 

대개 작가들의 어린 시절은 그들의 천직과 남다른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보통은 책과 고독이 함께 한다. 책은 늘 곁에 있었다. 일찍이 읽는 법을 깨쳐서 독서광이 된 나는 책이라는 책은 잡히는 대로 전부 읽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책을 읽는 아이는 매우 조용하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능력,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실제라고 여기는 것들도 상상하는 태도,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이 상상 속의 삶, 창조된 삶이라는 태도 말이다. (p.35)

 

많은 훌륭한 작가들이 고립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살면서 여러 이야기꾼을 만난다. 그녀의 첫 이야기꾼은 그녀의 오빠였다. 

 

누구도 과정이나 직업으로서의 글쓰기. 그러니까 진짜 사람들이 실제로 했던 일로서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읺았다. (p.43)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된 걸까요? 작가는 사람들이 변호사나 치과의시가 되겠다고 선택하는 것처럼 내가 택한 일도, 내가 택할 법한 일도 아니었다. 1956년, 축구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던 중에 그냥 갑자기 그렇게 된 거였다.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내가 쓴 시가 훌륭한지 어떤 지도 몰랐다. 하지만 알았대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으니까요. 너무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p.43)

 

글쓰기를 시작하기까지 내가 거쳐 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 기이한 방향을 택한 이유를 설명할 만한 것, 작가가 안된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스물여섯에 처음 시집을 냈다. 당시 시인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던 것처럼 친구네 지하실에서 평판 인쇄기로 직접 찍은 소책자가 아닌 '진짜' 시집이었다. 

 

특히 남녀 작가가 비평가들에 의해 다르게 취급된다는 게 중요하다. 그런 차별적 태도는 내용과 상관없이 언젠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거든요. (p.52)

 

문을 통과해 시인들이 우글거리는 개미총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보중받은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 보증을 받으러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일까? 어떻게 해야 그만한 수준이 됐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 그나저나 수준이란 걸 뭘까? 이들 중 일부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말인데 '훌륭하다'는 건 뭘까? 누가 훌륭한지 여부를 결정했으며, 어떤 리트머스 시험지를 사용한 걸까? (p.56)

 

누군가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고, 누군가는 남자나 여자를 꼬드기려고 그곳에 오는 게 틀림없었거든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문을 통과해 시인들이 우글거리는 개미총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반드시 무언가를 보증받은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진짜 보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일까?
--- p.56

 

글쓰기가 다른 예술과 차별화되는 한 가지 특징은 외견상 민주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거의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표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종이에 글을 끄적일 줄 아냐고? 이봐, 그거야 맨날 하는 거잖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한 단어씩 적으면 되지. (...)학교에서 글 쓰는 건 배웠잖아? 배웠을 거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쳐. 그러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적어. 그러고 아무나 시켜서 쉼표 나부랭이 같은 것을 넣어달라고 하면 돼. (...) 그건 거기 사람들이 해줄거야."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 속 한 마약업자의 대사 중-

글쓰기를 볼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입밖으로 내지 않을 뿐, 본인 머릿속에 책이 한 권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책 한 권은 품고 있다. 즉 사람들이 읽고 싶어할 만한 경험을 하고 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작가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인 건 아니다. (p.58)

 

작가는 , 그러니까 신문 기사를 쓰거나 판에 박힌 소설을 찍어내는 달인이 아닌 예술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작가는. 정말 특별한 사람일까요?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걸까요? (p.60)

 


 

2장 이중성

-지킬의 손, 하이드의 손, 그리고 모호한 이중성

왜 항상 둘로 나뉘는가

 

나는 이중성의 세계에서 자랐다. 

이번 장에서는 작가로만 활동하는 작가의 이중성에 대해 논의하겠다.

우리가 '작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버리는 두 개의 독립체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개별적인 작가 말이다. 여기서 두 독립체하는 건,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의 존재, 즉 개를 산책시키고 규칙적으로 밀기울을 먹고 세차를 하는 등의 일을 하는 존재와, 아무도 안 볼  때 그 몸을 넘겨받아 글쓰기에 사용하는, 같은 육제를 공유하지만 좀 더 희미하고 애매모호한 또 다른 존재를 의미한다. (p.69)

“작품이 좋아서 작가를 만나고 싶다는 것은 파테가 좋아서 오리를 만나고 싶다는 것과 같다.” 유명인사(심지어 적당히 유명한 사람)를 실제로 만났을 때 느끼는 실망감(그들은 항상 기대한 것보다 키도 작고 나이도 많고 평범하다)을 가볍게 표현한 말이지요. 하지만 좀 더 사악하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파테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는 먼저 오리를 죽여야 한다는 의미로요.
--- p.69

 

그러면 난 누구였을까요? 아마 나의 사악한 쌍둥이나 정체가 불분명한 나의 닮은 꼴이었을 겁니다. 어쨌거나 나는 작가이므로 낮이 지나면 정체불명의 닮은꼴을 어딘가 숨겨둬야 하는 밤이 찾아온다. 나는 우리의 공동 이름이 새겨진 책에 대한 리뷰를 읽다가 저자라고 이름이 올라간 이 닮은 꼴이 내가 아닌 게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글을 여러 번 접했다. (p.70)

 

나는 사랑꾼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같은 이름이 집안에 둘이라 다른 이름을 사용해야 했다. 그바람에 나는 자라면서 아무 법적 효력도 없는 별명으로 불렸다. (p.70)

 

모든 작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방금 전에 읽었던 그 책의 작가를 절대실제로 만날 수 없으니까요. 글을 쓰고 출간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출간할 때가 되면 책을 썼던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이 되고 없지요. 또는 그렇다고 알리바이를 둘러댄다. 작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런 편한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므로 별 신경 쓸 필요는 없으나 그게 사실이다.  (p.71)

 

"작가는 두 자아가 한 몸을 공유하고 있으며 다른 자아로 변하는 순간을 예측하거나 정확하기 어렵다. ' 작가들은 자신들의 이중성 속성에 대해 하나는 일상을 살고 또 하나는 글을 쓰는데, 우울하게 보면 둘은 서로에게 기생한다고 설명한다. 그 둘은 공생관계이기도 하다. 닮은꼴은 정체는 모호하지만 없어선 안  되는 존재이다. (p.72)

 

글을 쓰는 자아('저자'라고 생각되는 자아)가 일상생활을 하는 자아와 같지 않다는 이런 관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어쩌다 작가들은 자신들의 뇌 속에 외계인 비스름한 존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요? 

 

쌍둥이와 닮은꼴은 신화에서도 아주 오래된 모티브예요. 

쌍둥이 또는 쌍둥이 같은 형제는 '문학'의 시대에도 끊임옶이 매력을 발산했다. 

그는 '나'이니까요. 나의 가장 본질적 특징을 공유하는 나이지요.

 

작가는 글을 쓸 때 자신을 작품 속에 집어넣는데 이렇게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진짜 자아라 할 수 있는 것을 잃어버린다. 

'우리 중 누가 이 글을 쓴 건지 모르겠다."

'작가'는 작품 및 작품에 적힌 이름과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작가로 살아가는 쪽, 그러니까 세상 저 바깥에 있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쪽은 피와 살도 없거니와 진짜 인간도 아니다. 그러면 글을 쓴ㄴ '나'는 누구일까요?

펜을 쥐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건 손이지만, 글을 쓰는 순간 그 손을 통제하는 건 누구일까요? 둘 중 하나라면 어느 쪽이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요?  (p.81)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을 깨친 사람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읽기는 희귀한 기술이었으며,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건, 즉 이상하게 생긴 표식을 쳐다보면서 멀리 있는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술술 풀어내는 건 경외의 대상이었어요. 대중의 상상 속에서 책과 마법이 한통속이고 이런 마법이 사악하다고 여겨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지요. 과거 사람들은 악마가 변호사처럼 계약서를 들고 돌아다니며 항상 그 커다란 까만 책에 피로 서명하라고 종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p.83

 

작가가 아무리 우리를 속여도 이야기꾼과는 다르다. 먼저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혼자이다. 책을 쓰는 작가는 이야기꾼보다는 자유롭다. 피드백에 몸을 멜 필요가 없다. 

 

글쓰기는 마음에 부담을 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록된 말은 증거와 흡사해요. 나중에 나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으니까요.
--- p.84

 

작가는 플로베르처럼 문장의 생김새로 고투하고, 적합한 단어를 찾으려고 몸부림치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창밖으로 버리는 , 아니 인물을 몽땅 내다버리는 등 거듭해서 초고를 손볼 수도 있다. (p.86)

 

독자는 대개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개인으로 구성돼 있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를 볼 수 없다. 유일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책이며, 작가가 죽은 지 한참 후에 독자가 책을 접할 수도 있다. (p.86)

 

작가와 독자는 서로를 모른다. 창조하는 행위와 작품을 손에 넣는 행위가 시기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데다 책을 무한정 복제하는 게 가능해진 탓이지요.  작가가 되려면 이중의 자아 중 보이지 않는 쪽이 되는, 그리고 진짜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복제품이 되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들은 전에는 절대 상상할 수 없던 규모로 빠르게 인기를 끌고 엄청난 유명세를 얻게 되었어요. 즉, 실제보다 훨씬 거대하고 훨씬 훌륭한 존재로 비춰지게 된 거지요.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책은 메가폰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목소리는 확대시키지만 그 목소리를 낸 개인은 지우는 거예요. 자연스레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에 의해 가려져버리지요.
--- p.89

 

자연스레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이미지에 의해 가려버린다. 


바이런이 좋은 예입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면서 자신의 시처럼 비장하고 낭만적인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지만, 몸무게가 늘자마자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릴까봐 대중의 시야로부터 벗어났지요. 비장하고 낭만적인 바이런적 영웅이 되는 것은 심지어 바이런에게조차 젊은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었던 겁니다.
--- p.89

그러므로 작가, 그러니까 대문자 A인 작가 Author와 그의 닮은 꼴 존재, 그들은 교대한다. 머리에 머리를 맞대고서 말이다. 각자 자신의 중요한 본질을 비워내 상대방을 채워준다. 둘 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완성된 텍스트는 동일한 두 존재 중 '작가'라는 부분에 속한다. 즉 책 외에는 어떤 육체도 없는 이름에 속한다. 그리고 짐작컨대 그 텍스트를 만든 사람은 이 역동적인 한 쌍 중에서 언젠가는 죽는 평법한 쪽에 속한다. 우리는 두 자아 모두 글을 쓰는 데 관여한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관여하는 것일까요? 글쓰기가 벌어지는 그 중요한 순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들을 현장에서 포착할 수 있으면 더 명쾌한 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하다. 심지어 작가 본인조차 글을 쓰는 도중에 자신을 지켜보는 건 힘들다. 글을 쓸 때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작업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p.92)

 

글을 쓰는 행위는 바로 엘리스가 거울을 통과하는 순간에 벌어진다. 바로 그 순간, 똑 닯은 두 존재를 가로막던 유리 장벽이 녹아내리고 앨리스는 이곳도 저곳도, 예술도 삶도,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 존재하게 된다. 동시에 그 모든 곳에 존재하게도 된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추면서 또한 확장되고, 작가와 독자 모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3장 헌신

-위대한 펜의 신

아폴론 대 마몬:

작가가 숭배해야 하는 제단은 어디일까

 

작가는 두 개의 자아를 가진다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는 일상을 살다가 끝내 죽는 존재이고, 나머지 하나는 육체와는 단절하고 작품과만 밀착한 채 글을 쓰고 이름이 되는 존재이죠. 이번엔 예술과 돈이라는 양 갈래에 대해 알아볼 차례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예술적 기교라는 돌바닥과 월세라는 단단한 바퀴 사이에 꽉 키게 되는 지점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작가는 돈을 위해 글을 써야 할까요? 돈이 아니면 무엇을 목적으로 삼아야 할까요? 어떤 의;도나 동기가 있어야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술적 진실과 돈을 무 자르듯이 나눌 수 있을까요? 작가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헌신해야 할까요? (p.102)

 

"작가들을 보면 팔릴 거란 확신도 없으면서 책을 쓰는 데 몇 년을 허비하잖아요. 왜 그런 짓을 할까요?"

"돈 때문이지,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p. 103

 

작가들도 먹어야 사니까요. 작가 역시 자기 자신의 돈을 가질 수 있죠. 돈과 결혼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후원자를 모집하거나, 따로 직장에 다니거나, 시장에 책을 팔 수도 있죠.

작가에 이런 돈 문제는 선택이다. 오직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p.104)

 

출판사도 도박을 하지만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라는 것. 갈수록 더욱더 그렇지요. 맥스웰 퍼킨스 같은 편집자가 언젠가 크게 빛을 볼 거라면 두 번, 아니 서너 번씩 손해를 감수하고 묵묵히 작가를 지원해주건 그런 날은 갔다. 그나저나 그런 날이 언제였던가요? 

 

글을 쓰고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

살아남아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다. 

-p.105

 

"당신이 '베스트셀러'를 쓴다는 게 사실인가요?" 

"일부러 쓰는 건 아니에요." 

나는 수줍은 듯 답하면서도 한편으론 다소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지요. 이런 상황이라면 나도 못지않게 익숙한 데다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또는 잘 못 번다는 이유로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월의식에는 이미 이골이 났었으니까요.                           

순수한 야망을 품고 진짜 작가, 진짜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는 젋은 작가에게 이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p.109)

 

시나 소설을 예술로 만드는 가치는 시장 교환 영역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한 가치는 작동 방식이 완전히 다른, 재능의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다. 재능은 무게를 재서 측정할 수도,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다. 기대하고 요구할 수도 없다. 재능은 주어지는 것이며, 그 외에 다흔 식으론 얻지 못한다. 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존재의 충만함에서 나오는 은총이지요. 재능을 달라고 기도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기도에 꼭 응답을 받는 건 아니다. 


소설을 창작할 땐 1할의 영감과 9할의 노력이 필요하다지만, 작품이 예슬로서 살아남으려면 그 1할의 영감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 (p.110)

 

문학적 가치와 돈은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돈이 되는 좋은 책, 돈이 되는 나쁜 책, 돈이 안 되는 좋은 책, 돈이 안 되는 나쁜 책. 조합은 이렇게 네가지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조합이 실현 가능하다. (p.111)

 

"예술을 위한 예술' 테오필 고티에가 사회적 선, 개인적 발전, 진실된 도덕성 등에 반항하기 위해 든 깃발에 적인 이 이상한 문장은 마침내 예술을 열렬히 애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며 그들의 신조가 되었다. (p.119)

 

예술가에게 도덕적 삶은 예술의 소재다. (...)예술가는 윤리를 지지하지 않는다. 예술가가 윤리에 찬성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태도다. 예술가가 결코 불건전해서가 아니다. 선과 악은 예술가엑게 예술적 수단이다. (...) 쓸모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에 대한 유일한 변명은 그것을 열렬히 흠모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예술은 쓸모가 없다. 

-오스카 와일드(p.119)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신처럼 이렇게 쓸모없지만 흠모할 만한 것을 만드는 걸까요?

와일드는 '예술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예술은 드러나고 예술가는 숨기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스스로를 드러냈던 낭만주의 천재들과 달리, 오늘날의 예술가는 자기를 내세우지 읺는ㄷ.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소명을 섬길 뿐이다. 조이스에 따르면 예술가로서의 작가는 "상상력의 사제"가 되어야 한다. (p.120)

 

배럿 브라우닝의 시에서 음악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도구이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의지로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다. 먼저, 그는 신의 선택을 받는다. 동료들과는 헤어지지만 다시는 그들 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둘째, 훼손된다. 심장이 도려내져 공허하고 메마르고 텅 빈 몸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오직 영감을 통해서만, 신들이 그를 볼 때만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위대한 판 신은 오직 음악에만 신경 쓰며, 자신이 속을 파낸 시인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 이런 버전의 예술의 신(잔인하고 이기적인 신)은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주의 냄새를 풍기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가장 강렬하게 불타올랐던 미학주의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순수예술의 신은 브라우닝의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희생을 요구한다. 예술이 종교이고, 예술가가 사제라면 예술가도 희생해야 마땅하다. 가장 먼저 희생해야 할 것은 가장 인간적인 부위인 심장이다. 사제처럼 신을 더욱 완벼과게 섬기려면 인간을 사랑하는 능력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p.125)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로, 그들에겐 아름다운 것이 오롯이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p.125)

 

예술의 신이 예술가를 선택하는 것이지, 그 반대로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술가엔 천형처럼 비극과 파멸의 기운이 감돈다. (p.125)

 

, 이게 피할 수 없는 예술가의 운명이지요. 많은 사람이 부름을 받지만, 소수만이 선택받고 그 중 일부는 순교하고 맙니다. (p.128)

 

남성 예술가에도 이렇게 희생이 요구됐다면 여성 예술가에게는 어땠을까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에서 죄인으로 낙인 찍힌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화려하게 수놓아진 주홍글씨 A가 간통녀 Adultteress 일 뿐 아니라, 예술가 Artist 또는 작가 Author를 의미한다는 의심이 드는 건 왜일까요? 위대한 예술가 역할을 맡은 남자가 삶을 사는(Live Life)’건 자연스러운 일오 여겨졌는데(그들에겐 자질구레한 일상도 오롯이 예술을 위한 행위니까요), 여기서 삶은 산다는 것은 특히나 술, 여자, 노래를 즐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여자는 술과 와인을 가까이 하면 헤픈 술주정뱅이로 간주됐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었다. (p.128)

 

그것이 바로 대중이 원하고 이해하던 여성 예술가의 이미지였다. 반쯤 죽은 수녀의 모습 말이다. (p.129)

 

내가 시인 지망생이던 1950년대 후반은 이런 희생의 필요성을 자연스레 인정하는 시대였다. 일반 직업을 가진 여성도 그랬지만, 예술을 하는 여성에겐 그런 압박이 훨씬 심했다. 아내이면서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예술가가 되는 건 각각이 완전한 헌신을 필요로 하므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니 예술에 빠지는 건 일종의 악마에 빙의되는 것과 같다. 예술과 춤을 추다가 죽음으로 내몰릴 수도 있으니까요. 예술은 몸속으로 들어와 나를, 아니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나를 사로잡고 파괴한다. (p.130)

 

상상력의 수녀와 상상력의 여사제 모두 결국엔 예술의 제단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여사제는 갈 때 혼자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p.134)

 

내가 작가가 되었을 무렵엔 여성 작가, 특히 여성 시인이 되면 얼마나 고약한 일을 겪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솟구치는 피는 시다.“ ”그것을 멈출 수 있는 건 없다.“ (실비아 플라스가 자살하기 10일 전에 쓴 글 p.135)

상상력의 여사제는 결국 바닥의 붉은 웅덩이에서 생을 마감할 운명인 걸까요?

 

불운한 여성 예술가는 특히 소설가들이 자주 찾는 단골 주제로 아직도 주목받고 있다.

 

목숨을 걸고 할 생각이 없으면, 아니 목숨을 끊을 생각이 없으면 여성 시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p.136)

 

첫 번째 장에서는 작가Writer(대문자 W로 시작하는)의 역할에 다양한 기대와 우려가 투영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장에서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다루었다. 오직 예술만을 섬기기 위해 부의 신이 주는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는 문제, 그리고 이런 예술에 대한 헌신에 따르는 희생이란 개념에 대해서요.

 

하지만 길은 좁고 문은 협소한예술지상주의로 향하는 길에 놓인 절망의 늪을 피해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다른 길을 택하면 어떻게 될까요?

 

하지만 사회적 책임이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결국 예술의 궁전에 놓인 금박 의자에 언어의 덮개를 얹는 정도의 위업은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p.137)

 

 


 

4장 유혹

-푸로스퍼로, 오즈의 마법사, 메피스토와 그 무리들

 

누가 지팡이를 휘두르고, 줄을 조종하고, 악마의 책에 사인을 하는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작가들을 훑어보면 그들이 언제나 정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에게 정치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성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시릴 코널리,<약속의 적>

 

가짜(인간 사회의 요구로 생겨난 예술과 아름다움의 가짜 신을 포함해서)을 숭배하는 것은 중립이 아닌 악마 숭배 행위일가요? 그러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얼마나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요? (p.143)

 

이 새 작품은 최고로 좋은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실재에서 최고로 순수한 정수만 뽑아서 그릇을 채워야 해요. , 그릇 모양을 내기 위해ㅑ 쇠붙이를 망치질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게 두드려야만 합니다. (..) 그리고 작업하는 동안 한 방울의 증류액도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p.144)

 

앞 장에서 나는 예술가로서 작가, 즉 엄하고 고단하고 일견파괴적인 예술지상주의라는 이단을 섬기는 헌신적인 상상력의 사제를 둘러싼 극단적인 신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틀에 발을 담근 작가는 예술에 헌신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며 완벽한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자신의 바람직한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자신의 바람직한 목표라고 생각하게 된다.

종류를 막론하고 예술은 수양이다. 그리고 그 수양 과정에서 기다림의 기도, 영적인 비움, 자아의 부정, 이 모든 것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 (p.146)

 

예술가를 바깥세상, 즉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곳과 연결지어보면 어떨까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 시인은 세상의 공인되지 않은 입법자다. 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작가들이 쓰는 글이 문학이라는 높은 담장 안 정원에만 갇혀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가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낳는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러면 상상력의 사제가 자신의 특권이라 주장하며 무시해왔던 윤리, 책임, 그 비슷한 귀찮은 것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p.147)

그런데 '사제'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까요. 사제가 단순히 의식을 거행하는 숭배자는 아니지 않나요? 백성의 목자이자 신과 인간의 중재자 아닌가요? 
 
만약 작가에세 정말 그런 힘이 있다면, 그 힘을 휘두르는 사람(작가)과 당하는 사람(나머지 사람들)이란 측면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는 게 어떨까요? (p.147)
 
누구든 작가만큼 미워하지 않는다. 개인으로든 직업군으로든 가장 악랄하고 경멸스러운 작가의 초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작가들이 직접 쓴 책이다. 하지만 누구도 작가만큼 작가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과대망상증과 편집증은 작가와 한 거울을 공유한다. 파우스트로서의 작가는 거울을 보며 거만하고 사악하고 초인적인 메피스토펠레스이자, 마술의 대가이자, 운명의 지배자를 마주한다. 그들에게 다른 인간들은 끈으로 조종할 수 잇는 인형이거나 자신들의 마음과 내밀한 비밀을 그의 손바작에 맡긴 바보 같은 존재들이다. (p.147~148)
하지만 메치스토펠레스로서의 작가는 같은 거울 속에 떨고 있는 한심한 파우스트를 발견한다. 영원한 젊음과 끝내주는 잠자리, 엄청난 부를 갈구하는 동시에, 자신이 보잘것없는 끼적임과 유치한 말장난으로 이런 바람을 짠하고 현실로 만들 수 았다는 한심한 망상을 필사적으로 움켜쥔 파우스트 말이에요. 
 
 
글쓰기는 신랑함과 분노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글쓰기가 신랄함과 분노를 낳는 것일까?  
이런 자기 혐오는 왜 발생하는 걸까요? 아마도 낭만주의자로부터 물려받은 이미지와 현실의 격차 때문일 겁니다. (p.150)
 
지금부터는 고상하게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정체성을 대체할 또 다른 정체성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자기 인식의 위기에 대해 논하려 한다.  그중 하나는 예술과 돈과 권력이 엇갈리는 독특한 교차점과 관련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도덕적 책임' 아니면 '사회적 책임' 이라 불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람들이 예술활동을 통제하며 예술가에게 간섭하는 지점은 '돈과 힘'이라고, 예술가가 예술 활동을오 사람들에게 간섭하는 지점은 '도덕 및 사회적 책임'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시장에 영혼을 팔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얼마에 팔았고, 누가 샀는가? 
영혼을 팔지 않았다면 누가 예술가를 껍질 무른 게처럼 짓밟는가?
영혼을 판 대가로 예술가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p.152)
 
사회적 책임 문제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형제를 지키는 보호자인가? 그렇다면 어느 선까지 책임지는가?
자신의 예술적 기준을 어기고 설교자가 될 의향이 있는가?
중요한 메시지를 설파하고 주입하기 위해 기꺼이 2차원 적 이미지를 조작하겠는가? (p.153)
 
 우선 예술 작품의 내용과 도덕적, 사회적 책임 문제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 봅시다.
작가가 책에서 사람을 살해하면, 그러니까 미적으로 뛰어난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완벽한 살인에 집착하는 인물을 그리면 무슨 죄가 될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죄를 판단해야 할까요? 
단지 미학적인 기준으로만, 예술 작품으로만 평가해야 할까요? 혹여 그의 지면 위 살인이 누군가에게 진짜 살인을 하도록 영감을 준다면 어떻게 할까요? (p.154)
 
 
작가는 도덕적 법 위에 있을까요? 지루하고 우둔하고 재능 없는 지극히 평범한 대중은 지켜야만 하는 평범한 규칙을 작가는 전혀 적용받지 않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인 걸까요?
 
 
한편 글쓰기가 예술 작품으로서 그 자체가 아니라 실은 작가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면, 살인을 창조해낸 작가가 드러낸 건 어떤 자아일까요? 별로 훌륭한 자아는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기껏해야 부도덕한 자아, 최악의 경우엔 타인의 고통을 즐거워하는 괴물이라고 여기겠지요. (p.154)
 
작가의 이모가 조카의 신간 소설에 등장하는 방탕한 매춘부가 자기인 것 같다며, 자기는 그런 짓을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감히 자신에게 그럴 수가 있냐며 대화를 차단하는 일 같은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모의 물결 같은 머리 모양과 1945년 스타일의 허리 잘록한 정장을 훔쳐다가 완전히 다른 허구의 인물에 갖다 붙인 것에 대한 앙갚음인 거지요. 하지만 이모의 옷장을 훔치는 게 정말 작가로서의 당연한 권리일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남의 대화를 엿듣고 몰래 재구성해서 자신의 문장에 집어넣어도 괜찮을까요?
--- p.154

 
 
'사람들을 바로 잡는 것' 모든 부모가 예술의 그런 유익한 기능을 간절히 원하고, 북미의 모든 교내이사회가 그 기능에 동의하고, 그 중 일부는 그런 합의를 검열의 구실로 사용하지요. 
 
 
하지만 어떻게 "사람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걸까요?" 그러니까 사람을 바로잡고. 또 일부 사람들이 유해하다고 여기는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는 걸까요? (p.155)
 
재능이 있으면 뭐가 달라질까요? 다른 사람들에겐 당연히 요구되는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훨씬 더 많은 하지만 종류가 다른 의무와 책임감을 갖게 될까요?
관찰자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예술 그 자체만을 추구하고, 심원한 즐거움, 그러니까 삶과 인간 조건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경험을 즐겨도 괜찮을까요? 그런데 이런 것을 즐기기만 하고 사람들과 그들의 욕구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 가고일처럼 자신의 죄를 뒤빕어쓰게 되지는 않을까요?  이 땅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옹호하는 대변자로 한 몸 바쳐야 할까요? 가치 있는 명분을 지지해야 할까요? 아니면 전염병처럼 피해야 할까요? 작가는 평범한 납세자와 비교해 쓸모없는 기생충에 속할까요, 아니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존재에 해당할까요? 지난날의 공산당 정권들에서처럼 작가는 자신이 당의 노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허구한 날 걱정하는 음울한 '지식노동자' 꼬리표를 달아야 할까요? (p.158)
 
 
작가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그것을 책에 담는다고 할 때, 그 다루고자 하는 사안에 대해 주인처럼 장악하게 될까요, 아니면 노예처럼 휘둘리게 될까요? (p.159)
 
 
보통 '좋다'는 표현은 '훌륭하다'와 '잘한다'와 '유익하다'로 구분할 수 있지요. 이 중 예술과 예술가는 어떤 식으로 '좋아'야 할까요?  (p.160)
 
"작가가 되려면 고생을 해야 하나요?"
"좋든 싫든 고생은 절로 하게 될 테니까요." 고생은 글쓰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라고. 
책을 출간하는 것은 때로 자신이 마음속으로 저지른 것과는 전혀 다른 범죄로 재판에 회부되는 것과 같다. 
"소설가야말로 모든 무명과 무시의 바닥에 깔린 분노, 은밀한 삶울 이해하는 존재들이지. 당신들은 반은 살인자야. (p.161)
 
‘예술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예술적 성과를 이루는 것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해서 예술가로서 낙제점인 것을 구제할 수는 없지요. 3옥타브 도에 닿지 못하는 것을 강아지에게 잘해주는 것으로 만회할 수는 없어요.
--- p.166
 
 
이런 점에서 글쓰기는 다른 예술 또는 오늘날의 매체와 어떻게 다를까요? 
'모든 종류의 예술가는 총살 집행장에 일렬로 줄을 서 있다'는 악담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는 전부 같다. 특히 그들을 고발하고 길거리에서 암살하고 헬기에서 떨어뜨릴 힘을 지닌 자들에게 보복당하기 쉽다. 
말이 많기도 하거니와 좋은 싫든 언어에는 도덕적 차원이 내재돼 있거든요. 어떤 식물을 잡초라고 부른다면, 그건 조금 전에 잡초라고 분류한 그 식물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니까요.  (p.162)
 
"도덕적 함의가 전혀 없는 글을 쓰는 게 가능할까요? "
"아뇨."
"도덕적 함의가 담기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나와야 하고, 그 결과물의 옳고 그름에 대해선 독자가 판단할 거예요. 작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말이에요."
 (p.163)
 
등장인물이나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은 작가가 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해선 안 된다. 하지만 독자들은 작품 속 인물을 해석하고, 고로 판단한다.
우리 모두 매일같이 언어는 물론이고 '이것'은 '저것'을 의미한다는 식으로,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모두 해석한다. 아니, 해석해야 한다. 
언어닌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아요. 인간의 뇌가 욕망에 대해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p.164)
 
 
그러면 예술지상주의는 어디에 위치하는 걸까요? 자동문과 돌담 사이 어디쯤일까요?
 
신문과 정치적 반응과 시장의 힘이 공존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상적 세계이자, 예술과 사회 양쪽 모두 표 장사로 번 돈을 세면서 코끼리 똥으로 장식된 성모 마리아 상 같은 것들을 놓고 충돌하는 곳에 있다. (p.164) 
 
 
그렇다면 어떯게 해야 할까요? 어디로 방향을 틀어야 할까요? 어떻게 밀고 나가야 할까요? 예술적 진실과 사회적 책임을 모두 중시하는 작가에게 주체성이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종류의 주체성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지도 모른다. '증인'이 되라고. 가능하다면, 현장을 직접 본 '목격자'기 되라고. (p.171)
 
 
"좋은 산문은 창문과 같다."
조지 오웰의 이 말에는 투명한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실, 온전한 진실, 오직 진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p.172)
 
그는 모든 것을 봐야 하고 그녀는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
 
 
작가는 보편적 인류와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정말로 권력이 주어진다면, 권력의 사다리 어디쯤에 자리잡아야 할까요?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하는 대로 하고 결과는 스스로 감수하라.'고 말하겠어요. 아니면 "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라"고 혹은 "공들여 쓰다 보면 사회라는 문제는 절로 해결된다"고 말이다. 
 
작품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걸 정하는 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예요.  (p.177)
 
 

 

5장 성찬식

-무명인에서 무명인으로

 

영원한 삼각관계:

작가, 독자, 그리고 매개체로서의 책

 

작가와 독자는 양 꼭짓점에 있다. 하지만 두 점을 연결하는 줄은 없다. 그 중간에 세 번째 꼭짓점이 위치하는데, 글자. 텍스트. 책, 시, 편지 등 뭐든 될 수 있다. 이 세 번째 점은 유일하게 다른 두 점과 동시에 연결돼 있다. (p.182)

 

작가는 지면과 소통한다. 독자 역시 지면과 소통한다. 작가와 독자는 오직 지면을 통해서만 소통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삼단논법이다. (p.182)

 

지면이란 보이지 않는 손이 독자더러 해독하라고 흔적을 남겨놓은 곳이다. 

독자는 일종의 스파이다. 스파이, 무단침입자. 남의 편지와 일기를 상습적으로 읽는 사람이요, 듣지 않고 엿듣는다. (p.183)

 

첫째,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둘째,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책의 기능, 의무는 무엇인가?

작가가 생각하는 책의 역할은 무엇인가?

셋째. 독자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작가는 어디에 있나?

 

글을 읽을 때 작가는 같은 방에 없다.

같은 장소에 있었으면 서로 말을 나눴거나, 훔쳐보는 현장을 딱 걸렸을 테니까요.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쓸까요? 

작가들의 공통적인 딜레마는 지금이든 나중이든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읽을까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누가 읽어주기를 바라세요? (p.186)

 

사적인 일기는 '작가 대 독자'라는 설정에서 가장 작은 단위이다. 

보통 작가와 독자가 같으니까요. 형식은 물론, 친밀감에서도 그렇고요.

사적인 편지일 경우는 한 명의 작가와 한 명의 독자가 친밀감을 공유한다.

"이것은 한 번도 답장하지 않은 세상에, 내가 보내는 편지다." 

편지에는 과거시제에 없는 즉시성이 있는 데다 등장인물의 거짓말과 속임수를 '현장'에서 포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는 느낌을 준다. (p.187)

 

모든 편지와 책에는 예상 독자, 진정한 독자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편지난 책을 올바른 독자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나는 무명인이에요. 당신은 누군가요?

당신도 무명인인가요? 

그러면 우리는 잘 어울리는군요!

말하지 마요! 그들이 떠들고 다닐 거예요. 알잖아요!

 

"무명인"은 작가이다. 물론 독자도 "무명인"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책은 익명이고, 모든 독자도 그렇다. 읽고 쓰는 것은, 이를테면 연기하는 것과 극장에 가는 것과는 달리 둘 다 어느 정도의 고독, 나아가 어느 정도의 비밀주의를 전제로 하는 활동이다. (p.192)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군지 알 수도 없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군지도 알 수도 없는 작가라는 측면에서 말이지요. 

 

책이 출간되면 모든 게 달라진다. "그들이 떠들고 다닐 거예요,"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경고한다. 일단 책이 시중에 공개되면, 추정 독자는 친구나 연인, 또는 정체 모를 한 사람의 "무명인"과 같은 단 한 명일 수 없게 된다. 출판과 동시에 텍스트는 자기 복제를 하고, 독자는 더 이상 작가와 친밀한 일대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 대신 책의 부수가 늘어나듯 독자가 엄청나게 늘면서 그 모든 무명인들이 한데 뭉쳐 책을 읽는 대중으로 변한다. (p.193)

그러다 책이 성공하면 작가는 "유명인"이 되고, 독자 집단은 그를 흠모하는 "늪지"가 된다. 

하지만 무명인에서 유명인으로 바뀌는 데는 트라우마가 동반된다. 무영인 작가가 투명성이란 망토를 벗어던지고 가시성이라는 망토를 걸치는 과정에서요. (p.193)

메릴린 먼로가 말했다. "다른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무명인은 유명인이 될 수 없다."

 

글을 쓰는 순간의 작가와 최종 수신자로 설정된 '친애하는 독자'와의 관계가 대량생산된 책과 '그 책을 읽는 대중'과의 관계가 똑같을까요? (p.194)

 

"어느 덧 그는 명성이라는 눈부신 탐조등을 달았다. 수백 개의 눈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실패나 자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실패와 자살이 될 터였다. (p.196)

 

전작을 반복하면서 '그들'을 만족시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그들'을 실망시킬 것인가. 더 최악은 '그들'을 만족시키려고 자기 복제를 했는데, 오히려 복제라며 비난받는 경우이다. (p.197)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다른 얼굴을 쓰고 있을까요?

혹은 둘러붙은 얼굴들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번 장의 첫머리에서 나는 세 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첫번째는 작가와 독자에 관한 것으로,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무명인", 그리고 흠모하는 '늪지'를 이야기했다.  (p.199)

 

두 번째 질문은 책에 대한 것이었지요. 책은 작가와 독자의 중간 지점에서 어떤 기능 또는 의무를 맡는가? (p.199)

 

어떻게 텍스트가 성장하고 변화하고 자손을 낳을 수 있다는 걸까요? 오직 작가와 독자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p.200)

 

이렇게 책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책으로 변하는 설정은 사실 꽤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책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책은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물건으로서의 책만 사랑하고 그 속에 든 인간적 요소, 즉 책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우상숭배자,더 정확히 말하면 물신숭배자가 되는 영적 실수를 범하게 된다. (p.207)

 

이 작은 책은 배이며, 고래이며,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에게 축복을 내린 천사이다. 아울러 성찬식에서 섭취되는 대상으로서, 삼켜지지만 파괴되지 않는 음식이다. 또한 축제에 온 손님의 영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스스로도 새로이 거듭나게 하는 축제이다. 천사는 드잡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동화되고 결국 그의 일부가 된다. (p.209)

 

3. 독자가 글을 읽고 있을 때 작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첫째, 작가는 어디에도 없다. 독자가 글을 읽고 있을 때 작가는 심지어 존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작가는 원조 투명인간이다. 그곳에 전연 없으면서 동시에 매우 견고히 있기도 하다. 

 

두 번째 대답은 '바로 여기' 이다. 적어도 우리는 작가가 바로 이곳에, 우리와 같은 방에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거의 들을 수 있다. 혹은 '어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니 들리는 것 같다.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구체적인 단 한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바로 '독자'를 위해서이다. '그들' 이 아닌 '당신'인 독자를 위해, '친애하는 독자를 위해, '갈색 올빼미'와 신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독자를 위해 어쨌거나 이런 이상적인 독자는 누군가, 어떤 ' 한 사람' 이지요. 

독서라는 행위도 글을 쓰는 행위처럼 언제나 단수로 이루어진다. (p.214)

 


 

6장 하강

-죽은 자와 협상하기

누가 왜 지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걸까

 

"에브리맨, 내 너와 동행하며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그대가 나를 간절히 원할 때가 되면."

'지식'이 에브리맨에게 무덤까지 가는 길에 유용한 길잡이가 되겠노라 제안하지요. (p.219)

이번 장의 제목은 '죽은 자와 협상하기'로, 모든 서술적 글쓰기, 아니 어쩌면 모든 글쓰기는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가설을 깔고 있다. 그러니까 위험을 무릎쓰고 사후세계로 들어가, 죽은 자로부터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데려오고자 하는 욕망에서 글쓰기가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p.220)

 

글쓰기 자체가 무엇보다도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말이다. 작가들의 편지와 시 여기저기서 사후에 이름을 남기고 명성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말들을 그렇게 봤는데도, 나는 글쓰기를 죽음의 공포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어떤 생각에 꽂히게 되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법이지요.

 

왜 다른 예술이나 매체가 아닌 굳이 글쓰기가 개인의 최종적 소멸에 대한 불안과 그토록 밀접하게 연결되는 걸까요?

글을 쓰는 행위가 사고 과정을 기록하는 거라면, 그 과정으로 남는 건 일련의 화석화된 발자국이다. 다른 예술 형태(그림, 조각, 음악)도 오래 지속될 수는 있지만, '목소리'로서 살아남지는 못한다. 글쓰기는 글을 쓰는 행위이고, 글이 쓰이면 목소리를 위한 악보가 되는데, 목소리가 가장 자주 하는 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펼쳐지면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p.221)

 

서술(스토리텔링)은 시간에 따라 펼쳐지는 사건들 간의 관계입니다. 소설이라면 작품 속에 시계가 있어야 합니다. 일단 시계가 생기면 죽음도, 죽은 사람들도 생겨납니다.알다시피 시간은 흐르다가 끝나기 마련이고, 산 사람은 시간 속에 그대로 머물지만 죽은 사람은 시간 밖에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마음을 좀처럼 떠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를 불러내 문턱을 가로지르며 그들과 거래를 합니다. 우리 세계와 그들 세계 사이에 언제나 문턱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1. 부

2. 지식

3. 사악한 괴물과 싸울 기회

4. 영영 잃어버린 사랑하는 사람

 

하지만 글을 씀으로써 죽은 자에게 일종의 생명을 부여할 수 있어요.

 

책은 또 다른 나라이다. 그 속에 들어갔다가도 다시 나와야 해요. 지하세계처럼 그곳에서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p.239)

 

시인은 지하세계에 속한 지식을 산 사람의 땅으로 가져올 수 있는 존재이자, 우리 독자에게 이런 지식의 혜택을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번에는 작가로서 지하를 탐험하는 자의 훨씬 오래된 원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길가메시지요.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와 죽음에 대한 공포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밝힌 더들리 영의 논문을 증명하는 선례적 사레에 가까워요. (p.242)

 

"길가메시는 최초의 작가였어요. 그는 삶과 죽음의 비밀을 알기 위해 지옥을 겪고 돌아왔어요. 하지만 불멸은 얻지 못했지요. 얻은 거라곤 달랑 이야기 두 개뿐. 하나는 지옥에 다녀온 이야기, 또 하나는 홍수 이야기죠. 그러니 그가 진짜 가져온 건 이야기 두 개뿐이에요. 

그런 뒤 녹초가 된 몸으로 모든 이야기를 돌에 새기죠."

(p.243)

 

이야기가 있는 곳? 이야기는 암흑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감이 떠오르는 것을 섬광에 비유하는 것이지요. 내러티브 속으로, 내러티브의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건 어두운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요. 시인들도 이 사실을 압니다. 역시나 컴컴한 길을 지나가니까요. 영감의 우물은 저 아래로 이어지는 굴입니다. (p.244)

 

모든 작가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가르침을 얻는다. 계속 글을 쓴느 한, 작가는 앞서 글을 썻던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탐구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들에게 평가받고 질책당한다고 느끼지요. 하지만 작가는 작가로부터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조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죽은 자들은 과거도, 이야기도, 특정한 진실도 모두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이야기를 마음껏 탐닉하려면 결국 지나간 시간에서 온 사람들과 거래를 해야 합니다. 그 지나간 시간이 겨우 어제라 하더라도 과거는 과거이지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아니라. 

 

모든 작가는 '지금'에서' 옛날 옛적'으로 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과거에 붙잡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보기에 따라서 절도든, 회수든, 뭐든 해야 합니다. 죽은 자들이 제아무리 보물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산 자들의 당으로 되가져와 시간 속에 또 한 번 들이지 않는 이상, 그러니까 관객의 영역에, 독자의 영역에, 변화의 영역에 들이지 않는 이상, 그 보물은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요. (p.247)

 

한걸음 더 나아가서 많은 이들이 그래 온 것처럼 작가의 무속적 역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아주 오랫동안 작가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은유일 테지요. (p.247)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과거의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권위를 이용해 지금 이곳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에,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데 우리는 이미 인간이란 종의 독특한 특성이 무엇인지 인식했다. 우리가 여기서 분석하고자 했던 건, 하고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의 서술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서술의 모체였다.

 

그곳에 가는 건 쉽지만 돌아오는 건 어렵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면 모든 이야기를 돌에 새겨야만 합니다. 운이 좋아 올바른 독자를 만나면 돌이 말을 할 겁니다. 돌이 혼자 세상에 남아 이야기를 들려즐 겁니다. (p.248)

 

하지만 운명이 내게 목소리를 남겨놓아,

사람들이 그 목소리로 나를 알아보게 될 겁니다.

 

 

 

그동안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시녀 이야기], [증언들], [그레이스] 등의 소설을 통해 그녀만의 예리한 시선과 신랄한 비판을 만날 수 있고, 곧 작가로서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그녀가 쓴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여섯 번의 강의 내용을 엮은 이 책의 내용이 상당히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했다. 그래서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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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해결사 깜냥 | book 구매 2021-03-2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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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허리를 숙이고 콧잔들에 걸친 안경 너머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제가 보이세요?"

자그마한 고양이가 두 발로 서서 할아버지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어. 점잖게 뒷짐까지 지고서. 

고양이의 머리와 등은 까만색이고, 얼굴이랑 배랑 발은 하얀색이야. 얼필 보면 펭귄 같기도 해.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자기 몸집만 한 여행 가방을 갖고 있다는 거야. 

"여기서 하룻밤 자도 될까요?"

고양이는 부탁하는 것치고는 꽤 당당했어.

"그건 좀 곤란하구나. 주민들이 싫어해서 말이야."

"딱 하룻밤인걸요. 그럼 실례할게요." 라고 말하며 고양이가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거리낌없이 경비실 안으로 들어오는 거였다. (p.11)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은 깜냥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깜냥은 이렇게 하여 경비실에서 하룻밤을 자게 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순찰을 나간 사이에 걸려온 장난 전화 소리에 깜냥은 잠이 다 달아나버린다. 그래서 그 장난 전화를 건 아이들에게 앞으로 장난 전화를 걸지 말라고 말하려는 목적으로 201호의 집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이들만 홀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서워서 같이 있어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에 못 이겨 깜냥은 엄마가 오실 때까지만 함께 있어주기로 한다.

 

 그림책을 읽고 있던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실감나게 읽어야 한다며 깜냥은 그림책 한 권을 온몸으로 익혀 주었다. 사실 깜냥은 아이들에게 인터펀을 누르지 말라고 야단치러 온 것은 어느새 까맣게 잊어볐다. 그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과자를 꺼내 먹었다. 깜냥도 과자를 주워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와삭바삭하고 짭조름한 게 얼마나 맛있는지 부스러기까지 말끔히 먹어 치웠다. 

아이들과 함께 태블릿 피시를 통해 고양이 키우기 영상에 보았고 깜냥은 동영상을 보면서 쉴새없이 말참견을 했다. 그렇게 고양이 키우기 동영상에 푹 빠져 있을 때, 아이들 엄마가 집에 돌아왔다. 

 

그래서 멋지게 미션을 수행한 깜냥은 다시 경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번에는 윗층이 너무 시끄러워 못살겠다고 아래층에 층간소음에 대한 민원이 들어서 깜냥은 직접 602호실로 간다. 가서 살펴보니 윗층에 사는 여자아이가 내일이 춤 동아리 오디션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열심히 연습해야되니 아래층에 그동안 좀 참아달라고 대신 말해달라고 한다. 

그야말로 참 어이없는 노릇이다. 깜냥은 생각한다. '떠돌이 생활 2년 만에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은 처음인 걸' 그러면서 깜냥은 고민한다. 그냥 경비실로 돌아갈지, 아니면 아랫집으로 가서 아이가 한 말을 전할지 말이다. 

마침내 결심을 하고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에게 말한다. 자신이 춤을 봐줄테니 춤을 한번 춰보라고 말이다. 

 

아이의 춤을 보고 깜냥은 생각했어.'오 마이 캣!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도저히 그냥 가면 안 되겠다. 그랬다가는 경비실로 돌아가기 전에 돌이 될 테니까.' 고양이가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몸이 굳어 고양이 모양의 돌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깜냥은 아이를 위해 몸을 마구 흐느적거리며 몸소 춤을 선보인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몸의 털이 리듬을 탔다. 노래가 빨라지면 흐느적거림도 빨라졌다. 노래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쯤 무엇인가 폭죽 터지듯이 천장으로 팍 튀어 올랐다. 바로 깜냥이었다.

깜냥은 아이에게 깔 매트를 가져오라고 말한 다음, 바닥에 두툼하게 깔았다. 이제야 쿵쿵 뛰어도 괜찮을 정도로.. 깜냥과 아이는 그 뒤 신나게 춤을 추었다. 집 안에는 음악 소리와 흥얼거리는 소리, 손뼉 치는 소리만 들렸다. 쿵쿵거리는 발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멋지게 문제를 해결하고 깜냥은 경비실로 돌아온다. 오랫만에 춤을 추니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경비실로 돌아온 깜냥을 보고 할아버지는 어디 갔다 오냐며 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이 있으니 돌아다니지 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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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빌 게이츠 저/김민주,이엽 공역
김영사 | 2021년 02월

 

빌 게이츠 저/ 김영사

2021년 2월


 

1. 들어가며

"오늘은 포근한 날씨 속에 전국 곳곳에서 미세먼지가 말썽을 부리겠습니다."

"오전 전국 곳곳에서 안개가 짙은 가운데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 지역에서 초미세먼지가 말썽입니다. 수도권은 출근길 안개와 미세먼지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내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 비가 오는지, 날씨가 맑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미세먼지 농도가 좋음이냐, 보통이냐, 나쁨이냐 이다. 어쩌면 오히려 비가 오고 추운 날씨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 덕분에 미세먼지농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새 우리는 이렇게 오늘의 날씨보다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새파란 하늘에 양털 구름, 햇빛 쨍쨍하고 투명한 하늘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얼마 전 보았던 전 세계의 아름다운 구름의 모습들의 사진을 찍어서 책으로 만든 구름 사진집이 생각이 난다. 거기에 있는 구름들은 내가 어렸을 때는 자주 볼 수가 있었는데, 도시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밤하늘의 별도, 파란 하늘 하얀 구름도 보지 못한 채, 온종일 마스크를 끼며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한 그런 우리 일상을 위협하고 있고 세계를 팬데믹 사태로 빠뜨리고 우리의 예전 일상을 빼앗가버린 것도 있다.  

"오늘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신규 확진 환자가 500명 넘게 발생했습니다. 36일만에 500명을 넘어섰습니다. "

우리는 이 코로나바이러스와 1년 넘게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이제는 백신도 나와서 잠잠해질만도 한데 또다시 재유행하려는 조짐을 보인다. 밖에는 벚꽃이 피고 목련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봄이 왔음을 축하하고 있건만 우리에겐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연의 봄을 제대로 즐기고 봄꽃 구경도 떠날 수 없다.

그리고 곳곳에서 기후이상 반응 소식들이 들려온다. 폭염과 이상고온, 태풍 등의 발생은 이상기후 현상으로 볼 수 있고 해가 갈수록 이런 이상기후 현상은 증가하고 그 강도도 점점 세지고 있다.

이런 미세먼지 농도 증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상기후현상 원인은 한 가지이다. 바로 온실가스의 배출량 증가이다. 그리고 이 온실가스 증가의 주범은 이산화탄소이다. 이런 현실과 상황 속에서 빌 게이츠가 10년 간의 연구의 결과로 집필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방법]을 읽어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 책 속으로

 

빌 게이츠는 혁신적인 엔지니어이자 실용적인 환경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빌 게이츠는 아내 멀린다와 함께 게이츠 재단(Gates Foundation)을 만들어 주로 세계 공중보건과 미국의 교육 문제에 집중해서 지원을 해왔다. 그리고 그는 지난 10년 간 기후변화 연구에 집중하여 마침내 기후재양을 극복하는 해법과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빌 게이츠는 10년 간 연구결과와 그 기후재양을 피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이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방법]에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의 원인 다섯 가지, 기후재앙을 막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책 등을 제시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 정치학, 경제학, 재무학 분야의 전문가와 협력해 발견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연구 자료, 실제 사례 등이 제시되어 있어 주장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실제적으로 현실적으로 그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510억에서 0으로"

기후변화 관련하여 당신이 기억해야 할 숫자가 두 개 있다

하나는 510억이고 다른 하나는 제로(0)다.

우리는 매년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대기권에 배출한다.

제로는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지구온난화를 멈추고 기후변화가 불러올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인류는 온실가스 배출을 멈춰야 한다. (p.8)

 

빌 게이츠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2050년까지 510억톤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510억톤으로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30년 후 우리는 이 배출량을 0으로 즉, 온실가스를 하나도 배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런 의문을 가질 때쯤 빌 게이츠도 이 목표가 실제로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 속에 담긴 의미는 앞으로 모든 나라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세계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의무가 있지만, 그 에너지는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p. 13)

 

"왜 제로인가?"

우리가 제로를 달성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온실가스는 열을 가두어 지구 표면의 온도를 높이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많을수록 온도가 더 많이 올라간가. 그리고 한번 대기권에 배출된 온실가스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대기권에 머무른다. 오늘날 배출되는 온실가스 가운데 5분의 1은 1만 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대기권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지구가 계속 더워지면 인류는 번영은커녕 생존조차도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이런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인한 이상기후와 각종 환경, 생태적인 문제점들을 세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사태와 그로 인한 감염, 사망, 그리고 이상기후 현상, 미세먼지 등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실제로 몸소 겪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의 원인에' 지구온난화' 가 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있다. 이 이산화탄소로 인해 우리의 생존은 위협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왜 이 이산화탄소가 문제가 되고,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발생하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우리는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어왔다. 화석연료는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혀 있던 탄소로 만들어진다. 수백만 년 전의 식물들은 압축되어 석유나 석탄 또는 천연가스가 된다. 우리가 이런 연료를 시추해 태우면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되고, 이렇게 배출되는 탄소가 대기권에 이미 존재하는 탄소에 더해지면서 결국 대기권에 잔존하는 탄소의 총량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가. 빌 게이츠가  주장하는 '제로'는 실제로 탄소배출량 '0'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말이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제로'는 탄소 배출이 제로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제로는 '거의 순 제로(near net zero)'를 의미한다. (p.31)

순 제로는 배출되는 양과 제거되는 양이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어쩌보면 탄소 중립과 일맥 상통할지도 모른다. 물론 탄소를 100퍼센트 제거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것도 아니고, 99퍼센트만 제거한다 해서 기후재앙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탄소를 제거하는 양이 커질수록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멈춰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배출된 온실 가스 중 일부를 제거해야 한다. 즉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대기권에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가 섭씨 1도나 2도 정도만 올라가더라도 실제로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기후학에서는 1~2도는 매우 심각한 문제 상황이다. 가장 최근의 빙하기 때 지구의 온도는 지금보다 겨우 섭씨 6도 낮았을 뿐이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금보다 섭씨 4도 높았을 뿐이고. 이때 북극권 북쪽에서는 악어도 살았다고 한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1850년대 이후 화석연료를 태우는 등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결과로 급격하게 증가해왔다. 왼쪽 그래프는 1850년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크게 증가했는지 보여주고 오른쪽 그래프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려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빌 게이츠가 주장하는 탄소 제로화는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실현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도 2장에서 510억톤에서 0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 자신도 자신의 주장이 너무 터무니없고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왜 이 목표를 달성하자고 하는 걸까. 그가 이렇게 처음부터 말했다면 그의 주장은 이미 실현불가능한 것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목표 달성을 위해 나아가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완전히 제로로 만들 수는 없어도 제로에 가까워지도록,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다섯 가지 활동, 즉 무언가를 만들고, 기르고, 전기를 생산하고, 움직이고, 시원하고 따뜻하게 하는 일에  대해 살펴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섯 가지 질문들"

 

빌 게이츠는 기후변화에 대한 주제를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사고의 틀을 만들었고 이 사고의 틀과 다섯 가지 질문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1.510억 톤 중 얼마일까?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매년 배출되는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것이다. 유럽의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매년 1,700만 톤을 제거한다. 1,700만 톤은 전체 배출량의 0.03퍼센트에 불과하다. 510억 톤은 51기가 톤이며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제거하자는 말은 51기가톤의 온실가스를 제거하자는 말과 비슷하다. 그리고 5억 톤은 매년 배출되는 총량의 약 1퍼센트이다. 그러면 510억 톤은 총량의 거의 100퍼센트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배출량 전체를 감소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 목표 정말 가능한 것일까. 

 

2. 시멘트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기후변화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에는 전력 생산과 자동차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철강과 시멘트 생산만 해도 배출량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무언가를 만드는 제조 활동에서 온실가스가스 배출량의 31%가 배출된다고 하니 시멘트로 인한 제조 과정에서도 상당히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고 하겠다.  

 

3. 얼마나 많은 전력을 말하는 걸까?

이 질문은 전기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 떠오르는 질문일 것이다. 500메가와트면 어느 정도의 전력량을 말하는 것일까? 메가와트는 100만 와트이고, 1와트는 1초당 1줄이라고 한다. 전력 소비량에 따른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킬로와트는 '가정', 기가와트는 '도시' 그리고 수백 기가와트나 그 이상은 '나라'라고 보면 된다. 

 

4. 얼마나 큰 땅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전력밀도 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력밀도'란 주어진 크기의 땅이나 물에서 서로 다른 전력원으로 얻을 수 있는 전력의 양을 의미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태양열의 전력밀도가 풍력의 전력밀도보다 더 크다고 한다면, 그 의미는 태양열 대신 풍력을 이용하고 싶다면,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더 많은 토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만약 누군가가 특정 전력원(풍력, 태양열, 원자력 등)으로 세계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필요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큰 장소가 필요할지 계산해보면 발전소 건설에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5. 돈이 얼마나 들어갈까?

이 질문은 탄소배출 감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제로 탄소 기술은 화석연료 기술보다 비싸다. 이에 반해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현재의 에너지 기술은 대안보다 더 싸다. 화석 연료 기술에는 환경에 끼치는 피해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깨끗한 그린에너지 기술에 붙는 가격 프리미엄 즉 그린 프리미엄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고 문제가 되는 게 아마도 그린 프리미엄일 것이다. 아마도 비용 문제가 기후변화에 대한 솔루션을 막는 장애물이 될지도 모른다. 

 


"다섯 가지 활동"

 

빌 게이츠는 제로는 달성하는 것이 아래의 항목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전기 생산, 제조, 사육과 제배, 교통과 운송, 냉방과 난방 이 다섯 가지 활동에 대해서 4장부터 8장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그에 따른 해결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앞에서 5가지 인간 활동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잘 증명되고 설명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사실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런 활동들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지 그 솔루션 위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전기 생산 (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27퍼센트)

전기 생산에서 우리는 탄소 연간 배출량 510억 톤 중에서 27퍼센트에 해당하는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이것은 주로 우리가 전기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화력발전소에 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여러 발전 비용 중에서 가격이 싸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다양한 발전 측 수력, 풍력, 원자력 등에서 우리는 전기를 생산한다. 수력발전과 풍력발전은 그 주요 에너지원인 물과 바람에서 얻는다. 그러나 물과 바람은 지역마다 일관성이 없고 간헐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그보다는 원자력 발전이 더 효율적이라고는 하나, 방사능 유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직은 많다.

우리는 합리적인 가격의 제로 탄소 전기를 안정적으로 재공하는 새로운 전력망을 개발할기 필요가 있다. 또한 그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도 필요하다. 기후변화의 요인들 중 이 전력 생산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면, 우리가 '깨끗한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 경제의 많은 부분을 '탈산소화'할 수 있을 것이고 기후변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 제조 (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31퍼센트)

강철이나 시멘트, 플라스틱 등을 제조하는 데는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제조 과정을 제로 탄소화하는 과정으로 다음의 4가지를 제시한다. 

1. 가능한 모든 과정을 전기화하라.

-하지만 아직도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

2. 이미 탈산소화한 전력망으로부터 전기를 얻어라.

-역시 혁신이 필요하다.

3.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탄소포집 기술을 활용하라.

-역시 아직은 혁신과 개발이 필요하다.

4. 더 효율적으로 자재들을 사용하라.

-역시 마찬가지다.

솔직히 빌 게이츠가 제시한 방법들을 읽어보고 뭐지,. 아무 것도 정해지거나 새롭게 나온 기술이 없잖아. 아직도 연구 개발중이거나, 구상 단계에 있을 뿐이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다. 제로 탄소로 가는 길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그 길을 가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개발 연구하고 혁신적인 기술에 투지하고 았다. 그런 우리의 노력들이 나중에는 그 빛을 발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3. 사육과 재배(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19퍼센트)

우리가 지금 생산하는 식량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해야 하는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방법으로 하면 기후변화에는 재양이 될 거라고 한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10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식량을 얻을 경우 식품과 관련된 모든 온실가스 배출량은 3분의 2 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고 놀랐다. 우리가 고기와 유제품 등을 생산할 때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하고 그로인해 결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다는 사실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아침마다 어김없이 배달되는 우유와 우리가 즐겨먹는 고기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다니, 갑자기 먹던 고기양과 우유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다음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첫째, 식물에 새로운 비료를 주고, 가축을 기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둘째, 음식 낭비를 줄여야 한다.

셋째, 인공고기를 활용하는 등 고기를 덜 먹는 등 식습관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4. 교통과 운송(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16퍼센트)

효율적인 자동차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 제로 탄소화를 위한 방법이라고 해도 이것만으로는 제로 탄소를 달성하지 못한다. 휘발유를 덜 사용한다고 해도 휘발유는 여전히 휘발융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통과 운송에서 나오는 배출량을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책에서는 전기차 사용을 늘리고 대체 연료로 전환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전기차와 대체 연료에는 큰 그린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어야 제로 탄소화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5. 냉방과 난방(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7퍼센트)

냉방과 난방에 있어서 전력 소비량은 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화석연료가 아닌 대체 연료들을 사용해서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이에 더하여 우리의 난방 시스템을 탈탄소화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1. 할 수 있는 만큼 전기화하라.

-가스식 보일러와 온수기를 모두 전기식 열펌프로 교체해야 한다. 

2. 전력망을 탈산소화해라.

-가능한 한 많은 곳에 청정에너지 기술을 도입 및 적용하고 전력의 생산, 저장 , 전송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3. 전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라.

 


"제로로 가는 길"

 

1.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정부는 혁신의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혁신의 공급을 확대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연구개발이다. 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빌 게이츠는 그런 연구개발을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다음의 4가지를 제시한다.

 

1. 10년 내 청정에너지 및 기후변화 관련 연구 개발비 다섯 배 증액. 

연구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공적자금 투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2. 고위험-고보상 연구 개발에 투자

정부가 얼마나 투자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투자하는지도 중요하다.

정부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처럼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는 최첨단 과학 분야의 발전을 이끌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는 오랜 기간 지속되어야 한다.

3. 연구 개발을 가장 큰 니즈와 연계

우리는 혁신이 가장 필요한 분야에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통합할 수 있는 더 많은 정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4. 시작 단계부터 기업과 협업 관계 구축

초기 단계부터 정부와 기업이 함께 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장벽을 허물고 혁신 사이클을 가속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기업은 새로운기술이 적용된 시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그리고 대규모 프로젝트에도 공동 투자를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실험실에서 시험과 검증을 마친 뒤 시장에서 '증명' 되어야 한다. 

우선 실험실에서 개발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누구보다 먼저 도입하는 데 따르는 비용과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며, 공급망을 구축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이 새로운 기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한다면 시장의 불확실성과 비용을 줄여 스타트업이 더 많이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p.290)

따라서 정부는 혁신의 공급뿐만 아니라 혁신의 수요도 가속화시켜야 한다. 이 혁신을 가속화하는 방법으로 4가지 방법들이 제시된다.

1. 조달력을 적극 활용하라.

정부는 친환경 제품의 외부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친환경 제품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2. 비용을 절감하고 위험을 줄이는 장려책을 만들어라.

제품 구매 외에도 정부는 민간 기업이 친환경적으로 바뀌도록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를 확대하는 여러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는 제로 탄소 정책을 도입하고 시장이 이런 프로젝트를 위한 투자금을 유치하는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정부 정책은 기술중립적이어야 하며, 예측 가능해야 하고, 유연해야 한다. 

3.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런 시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풍력 및 태양광발전을 위한 송전망, 전기차 충전소, 그리고 포집된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위한 파이프라인이 여기에 포함된다. 

4. 새로운 기술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라.

인프라 구축 후에는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중앙 정부가 할 일, 주 정부가 할 일, 지방 정부가 할 일로 나누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은 누구보다 에너지 혁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분야 연구 및 기술 개발에 12개 정부 기관을 참여시킬 마큼 에너지 연구 개발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면서 동시에 투자도 가장 많이 한다.  미국 정부는 에너지 연구 개발의 방향과 속도를 관리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도구를 갖고 있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친환경 제품 및 정책에 대한 수요를 주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신기술 스케일 업에 대해서는 연방정부가 그 누구보다 큰 역할을 맡는다. 연방정부는 주간 거래를 관장하고 국제무역과 투자 정책에 대한 최우선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의회는 연구 개발, 정부 조달, 인프라 개발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청정에너지 관련 정책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금전적 장려책을 만들고 확대해야 한다. (p.299) 

한편 행정부의 에너지부는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외부 프로젝트에도 지원을 하며 연방정부가 청정전기 표준을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제로 달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제로 달성을 위해 거 많은 돈을 투자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더 오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와 다국적 은행들은 민간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벙법을 찾아야 한다.

둘째, 기후 투자는 리스크가 큰 장기전이다. 수년 동안 수익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공공 부문은 재정을 활용해서 투자 기간을 늘려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주정부>

미국의 많은 주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주 정부는 혁신적인 기술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주 정부는 탄소 가격제, 청정전기 표준, 청정연료 표준과 같은 정책이 전국 단위로 도입되기 전에 시험할 수 있다. 

주 의회는 주 차원의 탄소 가격제, 청정에너지 표준, 청정연료 표준을 도입할 책임이 있다. 그들ㅇ른 또한 주의 여러 기관들, 전력회사의 조달 정책에 차세대 저탄소 기술을 우선시하라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p.302)

 

<지방정부>

도시들은 단독으로 차량 배출 기준을 만들지는 못해도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고, 전기차들을 위한 충전소 설치에 투자할 수도 있다. 토지사용제한법을 통해 인구밀도를 높여 직장인들의 출퇴근 거리를 짧게 만들 수도 있다.

시의 회는 기후 관련 정책에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관련 기관에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등 주 의회 및 미국 의회와 비슷한 역할을 맡는다.  (p.303)

지방정부 기관들은 주 정부 기관들 및 중앙정부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정책적 우선순위를 감독한다. (p.304)

 

3.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개인은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그리고 고용주 또는 직장인으로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시민으로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반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기후 재앙을 피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행동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치적 압력으로 바꿔 정치인들이 실제로 행동에 옮기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작접적인 방식은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소리 높여 내면서 투표를 하는 것이다. (p.311)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하는 것은 실제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청정에너지 연구 개발비 증액, 청정에너지 표준, 탄소세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또한 공직에 출마해야 한다. 주의원이나 시의원으로 출마할 수도 있다.

 

<소비자로서>

소비자는 새로운 대안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수도 있다. 수요만 확인되면 기업들은 저탄소 제품 생산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것이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제로 기술을 만드는 혁신적인 기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투자할 것이다. (p.313)

1. 청정전기를 신청하라.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소비자들은 프리미엄이 추가된 전기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2. 집 안 배출량을 감축하라. 

3. 전기차를 구매하라. 

사람들이 전기차를 더 많이 구매할수록 기업들은 더 많은 전기차를 생산하게 된다.

4. 인공 고기를 먹어라.

일주일에 한 두번 인공 고기를 먹으면 그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과 같다. 유제품도 마찬가지다. 

 

<고용주 또는 직장인으로서>

실패 가능성이 있디만 친환경 혁신을 일으킬 수도 있는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주들과 이사회가 이런 위험을 기꺼이 분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과 경영진은 기후변화 문제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모험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한다. 또한 기업들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가장 어려운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민간 부문이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안이다.

첫째, 내부적인 탄소세를 도입하라.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징수'라는 '조세' 수익은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는 활동에 사용되거나 청정 에너지 제품을 위한 시장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저탄소 솔루션 혁신을 우선시하라. 

기업들은 저탄소 혁신을 위한 연구 개발을 우선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장기적인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으면 기업들의 비즈니스 경험을 연구 개발에 접목할 수 있다. 

셋째, 얼리어답터가 되어라.  

정부처럼 기업도 구매력을 활용해 신기술의 빠른 도입과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정책 개발 과정에 참여하라.

기업들은 제로 달성을 위한 기초과학과 연구 개발을 선두에서 이끌어야 한다. 기술 개발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협업은 특히 더 중요하다.

다섯째, 정부 지원 연구와 연계하라. 

정부의 기본 연구와 응용 연구를 통해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업은 정부의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은 비용 분담 계약과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의 연구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여섯째, 혁신가들이 죽음의 계곡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라.

기업들은 혁신가들에게 펠로우십이나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신기술에 투자하고 저탄소 혁신에만 집중하는 사업 부서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저탄소 관련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을 할 수도 있다. 

 


3. 나가며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팩트풀니스] 저자 한스 로울링-

 

지금까지 우리는 제로 탄소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에 대해 살펴보고 논의해왔다. 지금까지 지구온난화 문제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 심각성과 긴급성을 깨닫지 못했다. 나 또한 그 문제가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기후학자나 과학자들의 문제와 그들의 논쟁거리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직은 기후재앙이 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앞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빌 게이츠가 언급한, 세계 유명 생태학자들이 경고한 그런 기후재앙이 올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도 깨달아야 한다. 더욱 사려 깊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논의해야 하며 무엇보다 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들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왜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았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있어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팬데믹 사태에서 잃어버린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는 경종의 목소리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인들,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우리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기후를 유지해 수억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인생을 가꿀 수 있도록 돕고, 결과적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존할 수 있다.  (p.321)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우리는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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