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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텔러
40대 육아맘. 하지만 책을 사랑하는 20대 감성녀. 삶의 지침에서 벗어나는 힐링 도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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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이제는 내 삶을 사랑할 수 있길 | 서평단 책리뷰(2021년) 2021-04-06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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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

김리하 저
SISO | 2021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이제는 나를 좋아할 수 있길...내 삶을 사랑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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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이 있다>

김리하/ SISO

2021년 2월 26일

 

"이제는 나를 좋아할 수 있길..내 삶을 사랑할 수 있길..."


 


 

1. 들어가며

 

내가 미운 날이 많았다. 

보잘것없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내가 점점 미워져서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이렇게 이 글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며 시작한다. 이 첫 문장을 읽으며 '나도 그랬는데..' 하며 옛 추억 속으로 들어갔다. 한창 육아로 힘들었던 지난 시절, 하마터면 육아우울증으로 더욱더 힘겨운 나날들을 보냈을 수도 있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의 나도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내 자신이 볼품없고, 초라하고, 미워진 시간들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사나.' '남들은 나보다 멋지게 화려하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홈패션 원피스에,  화장기 없는 민낯의 얼굴, 머리는 손질도 못하여 하나로 질끈 묶고 그 하루하루를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엄마'라는 존재로 살아가야 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도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하며 한없이 나를 미워하고 비난하고 질책하곤 했었다.  '엄마'라는 처음 맡는 역할에 서투르고, 온갖 집안일을 하고 살림을 해야하는 '아내'라는 역할도 어려워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후회하곤 했었다. 그런 날들을 보냈기에, 그렇게 한없이 나를 미워했기에 작가가 느끼는 슬픔과 자기 증오를 백번 이해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궁금했다. 왜 작가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이토록 미워하는 것일까? 동화작가이면서 자신을 미워할 일이 뭐가 있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왜 그녀가 이토록 힘들어 했는지, 그녀가 그 슬픔과 고통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서평단을 신청했고 감사하게도 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고,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그녀와 함께 웃고 울었다. 마치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나의 고통과 슬픔인 것처럼..마치 그녀의 모습이 나의 모습인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고통과 슬픔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와 마치 내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이 책에 푹 빠지며 읽을 수 있었다. 나를 웃고 울게 만들고, 나에게 삶에 대한 용기와 위로를 준 이 책의 책장을 다시 조심스럽게 펼쳐보려 한다.

 


 

2. 책 속으로

 

‘뒤늦게 내가 알게 된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조금은 자신을 아껴주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써온 작가가 이번엔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희망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여준다. 일상에서 만나는 소소한 행복과 그런 삶의 순간들 속에서 발견한 작은 위로와 용기에 대해 42편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준다. 작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만나게 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더 공감을 자아내고 작지만 귀중한 깨달음을 준다. 한동안 자신을 미워하던 작가가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스스로를 조금은 더 나은 사람으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보려고 하는 작가의 진심 어린 시선과 마음과 솔직함이 이야기 곳곳에 배어있다. 작가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찾은 하나의 인생의 깨달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그 깨달음은 그녀의 힘든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통해서 나왔기에 더욱더 값지게 느껴진다.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못난 구석을 기어이 찾아내 다그치고 미워하는 것에서 벗어나, 살아온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라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면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이제야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주변의 하찮은 대접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고

가슴 아픈 실패의 소식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 기분만큼은 나를 책임져 줄 수 있도록,

나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을 것이다. 

 

한때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한꺼번에 몰려온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울보라고 불릴 정도로 툭하면 울던 내가 이제는 왠만한 일에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냉정하고 감정에 메마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더군다나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지 나는 우리 아이들의 엄마니까,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돼 하면서 눈물을 참고 참다보니 이제는 눈물조차 없는 것 같다. 그러다 그 참고 참았던 슬픔이 넘쳐흐르면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지난 날의 그 어린 아이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이렇게 감정이 넘쳐나면 부족할 때보다 일상을 유지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그렇게 내 마음을 꽁꽁 숨겨두고 더욱 잘해야 한다며 질책하고 통제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이 글을 읽으며 느꼈다. 이제는 내 기분은 내가 가장 잘 알아주고, 슬프면 슬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내 감정 드러내며, 나는 따뜻하고 사랑하는 시선으로 나를 보고 싶다. 힘들고 지친 나를 안아주고 싶다. 

 

한때 슬픈 감정이 넘쳐나 주체가 안 되던 때가 있었다. 감정도 행동도 기대도 가치 판단도 그 모든 것이 과잉 상태일 때 견디기가 더 힘들었다. 그래서 내게 과잉은, 부족보다는 항상 경계해야 할 단어가 되었다. 그런 마음이 간을 하는 순간에도 소금을 그러쥐고 내어놓지 못하게 만드나 보다.

-오이소박이를 보며 삶의 농도를 맞추다 (p.17)-

 

 

‘나는, 쓰는 삶을 살 것이다.

쓰다 보면 나를 살리게 될 것이다.

끝내 좋은 글을 쓰는 따뜻한 사람이 될 것이다.’

 

 

저자는 글쓰기 덕분에 스스로 화해할 수 있었고 정말로 이제는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의 순간 순간을 기록하면서  나쁜 일이 끝까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이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라는 진리 앞에 고개 숙이게 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는 삶의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오는 어떠한 순간에도 조금씩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게 해준다.

 

나 또한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과 소통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일기쓰기도 겨우 억지로 했던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예전에 책을 읽기만 했을 때는 몰랐다. 내 안의 생각이 이렇게 많은지, 그런 생각들을 자꾸만 내 안에 꾹꾹 담아두기만했다. 나의 생각보다는 타인의 생각을 더 들어주고 존중해주었다. 나의 생각은 보잘것 없다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책을 읽으면 작가의 생각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고, 책 내용을 말그대로 글자 그대로 읽기만 했었다. 책을 읽기만 했지, 나만의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난 나 자신의 생각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책의 내용도 중요했지만, 그 책을 읽고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가 더욱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글쓰기는 나와 만나는 과정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을 느끼고, 생각하고, 나를 알아가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알고싶어만 했지, 정작 중요한 나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나의 삶도 나쁘지만 않구나를 깨달았듯이 나 또한 나의 삶에 대해, 비록 멋지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소중한 나의 삶애 대해 알아가고 발전시켜 가는 삶을 살아가자고 다짐하게 된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내 모습을'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블로그를 시작했다.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내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남들과 비교해서 더 잘나 보이려 한 것도 아니고, 남들과 비교하며 일부러 열등감에 빠지려고 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나 자신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인데, 어느 새 그 사실을 사실을 잊고 있었다. (p.37)

 

이 부분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했다. 그녀가 느끼는 생각과 느낌, 고민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작년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블로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요즘 초심의 마음이 아닌, 쓸데없는 욕삼과 비교병이 생겨서 너무 마음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 책의 작가는 아마도 더욱더 이런 스테레스와 갈등이 더 심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우울증과 자기증오도 이런 글쓰기에 대한, 남과의 비교,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으로부터 왔다고 한다. 자신의 동화가 성공을 거두면 거둘수록  앞으로 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글을 쓸 수 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를 가장 괴롭게 힘들게 만든 것은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타인과의 비교였다. 저 작가는 잘 나가는 데, 저 작가의 책은 잘 팔리는 데 라고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며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게 된 것이다. 나도 내 일상 속에서 그런 순간을 많이 겪게 된다. 저마다 가진 능력과 재능도 다르고, 어떤 일을 하는 데 들이는 노력의 양도 다른데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의 지위와 뛰어난 실적을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와 타인을 비교하게 된다. 그 비교 속에서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끊임없는 자기 증오와 자기 비하인데도 자꾸만 그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작가는 자신만의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일상에서 얻게 된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자신의 소중한 일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기에 그것만으로도 그녀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작가의 모습을 보며 나도 나만의 일상을, 나만의 생각을 써보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베이글에 핀 곰팡이 사건은 내겐 죽비와도 같았다. 절에서 스님들이 시작과 끝을 알리는 데 쓰는 도구인 죽비는 두 개의 대쪽을 합펴 놓아 내리칠 때마다 커다란 소리가 난다. 

욕심이 생기려는 순간, 멈출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내주는 주변의 크고 작은 상황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재미나게 책 읽으며 사색하고, 세상 구경하며 소통하는 삶. 그런 순간순간들을 자연스럽게 기록해 나가는 것.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이다. (p.38)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다짐들>

 

내 몸 어느 구석에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감각들과

거의 시들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의 이파리들이

되살아나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 순간 나의 행동을 더 좋은 방향으로 조금씩 밀어붙여 준다

 

 

나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되살리고, 그 감정을 알아차려 주는 일, 그렇게 자신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 바로 '나'를 있게 하고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나 자신만의 철학'일지 모른다. 그렇게 매순간 나의 삶은 기록되고 있고  그 시간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삶이라는 것이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제 나는 매순간을 함부로 살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매순간 나의 삶은 기록되고 있고 그 시간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고통과 슬픔의 시간 속에서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인생의 방향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삶이 진화될 수 있다'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건강을 위해, 더 나은 습관을 갖기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때론 그 과정 속에서 힘들고 지칠지라도, 마음먹은 대로 잘 되는 일이 없더라도 이런 노력을 하며 우리는 우리 자신을 키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싶다. 손톱 반만큼, 그게 안 된다면 깨알만큼이라도, 겨자씨만큼이라도 나를 성장시키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싶다. (p.68)

 

내게 일어난 일들을 더 이상 지나치게 부풀려 생각하지 않을 때, 실망스러운 순간을 두고두고  곱씹지 않을 때, 대신 사소한 감사거리는 오래 기억해보려 더듬거릴 때 나는 내가 겪어온 세월이 든든한 아군처럼 느껴진다. (p.95)

 

나 또한 나에게 일어났던, 내가 겪어야만 했던 육아와 그로 인한 우을증에 대해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덧 추억의 기억 한편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런 우울증 덕분에 나는 책을 만날 수 있었고, 책을 통해 글과 만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일들이, 그런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성장, 발전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고 증오하는 못난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처럼, 그녀가 겪은 일들과 그런 고통의 시간들, 그런 세월들이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아군이듯, 나의 육아와 그 우울증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나를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 준 든든한 아군일지도 모른다.

 

때론 유연하게

때론 단호하게

현재가 힘이 되는 과거로 잘 자리 잡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즐겁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현재를 잘 보듬으며 과거로 보내고

미지의 미래를 가슴 설레며 맞이하고 싶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관계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자리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사람은 혼자 있으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 있으며 언제나 자신이 어디에 어떤 식으로 위치하는지, 자신의 자리는 어디인지 파악하려고 하는 존재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 찾기'에만 골몰하다 보면 나의 삶속에서 '나만의 자리 찾기'를 종종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내 삶 속에서 '내 자리 찾기'를 먼저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 또한 내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 자리만 찾아주는 데 더 신경쓴 것 같다. 내 자리를 좋고 앉기에 편한 자리일 수 있게 잘 찾았어야 하는데 지금 내가 앉고 있는 인생의 내 자리는 과연 나의 자리가 맞을까 생각해본다. 작가 또한 그런 시련과 고통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못 찾았는데 이제는 '자신의 자리 찾기'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나도 제대로 된 '나의 자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러면 나의 힘든 지난 과거는 잘 보듬어주고 다독거리며 보내고, 앞으로 다가오는, 나의 미래를, 나의 자리를 찾으려고 한다. 

 

 


 

3. 나가며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나름의 답안지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오답도 썼다가 정답도 쓴다.

지웠다가 고쳐 쓰기를 반복한다.

모범 답안지를 놓고 그대로 베끼는 삶이란 없다

 

우리의 인생에는 정답지가 없다. 하지만 종착점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하나로 정해진 정답지가 있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간다. 남이 정해놓은 기준과 틀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재고 재단하면서 맞추어 살아가려고 한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렇게 정답지에 맞추어서 나의 인생의 오답을 지우고 다시 정답을 쓰면서, 모법 답안지를 놓고 그대로 배끼면서 그렇게 나는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의 삶의 모습과 작가에 말하는 모습이 다르지 않기에, 아니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기에 작가가 진심을 다해 외치고 있는 저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작가 스스로 몸소 겪었기애, 그런 고통과 아픔을 느꼈기에, 그런 힘든 시간을 통해 또 다시 성장했기에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더 강렬하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자신을 사랑하라고,비로소 나다은 삶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으며 나아가라'는 작가의 말에 이제는 나도 이제는 나도 나 자신을 좋아하며, 나 자신의 삶을 사랑하려고 한다. 

그러면 나에게도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그 어떤 날'이 오지 않을까  기다려본다.

 

내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우연찮게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내가 유난히 좋아지기도 한다.

이 책을 펼친 모든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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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작가가 된다는 것은 | 서평단 책리뷰(2021년) 2021-04-03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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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글쓰기에 대하여

마거릿 애트우드 저/박설영 역
프시케의숲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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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통찰을 통해 작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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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마거릿 애트우드/ 박설영 역

프시케의숲/ 2021년 3월 1일

 

"작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통찰을 통해

진정한 작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1. 들어가며

 

"작가란 무엇인가?"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어렸을 때 문학 작품, 추리소설 등을 읽으면서 '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쓰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정말 대단하다.' 라고 생각하며 작가의 스토리 구성, 스토리 내용 및 짜임새 등에 감탄하며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냐.' 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과거의 작가들은 정말 작가 수업, 글쓰기 수업을 전공으로 받고 직업으로 작가를 선택해서 글을 써왔다. 그래서 국문과를 전공하거나 문예창작과 등을 전공하고 수상 실적을 거둬 등단해야 비로소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글쓰기 훈련도, 글쓰기에 대한 전공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여 작가가 되었다. 오히려 오랜 글쓰기 훈련과  전문적인 작가 수업을 받지 않고서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누구나 글을 쓰고, 자신이 원하면 책을 출간해서,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튜버 또는 파워블러거, 주식투자 성공한 사람 등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글로 써서 책을 낸다. 그리고 그 책들은 어느새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래서 요즘 베스트셀러를 검색해보면 전문 작가들의 책보다는 그런 류의 책들이 눈에 많이 띄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책들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보는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고 걱정이 된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쓰고 그것을 책으로 출간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은 좋으나, 글을 쓴다는 것, 작가가 된다는 것의 의미가 너무나 가볍게 느껴지고, 마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라고 하면 작가가 가진 특성과 고유한 본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소위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것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고민과 걱정을 하던 나에게 마거릿 애트우트가 쓴 [글쓰기에 대하여] 는 나의 고민과 걱정을 해결해주었다. 저자의 작가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사유를 통해 나는 비로소 작가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었고, 진정한 작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요즘 같이 너도 나도 작가인 현실 속에서 마거릿 애트우드가 전하는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강의 내용을 들어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2. 책 속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 논의해왔다. 그러나 주로 그들은 글쓰기 기술 측면에 주목하여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 수 있을까에 치중해왔다. 우리들 또한 그런 글쓰기 기법만을 배워 글을 잘 쓰려고만 했지, 근본적으로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작가가 글을 쓰는 행위 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 점에서 작가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다양한 문학작품들을 통한 사유를 보여준 그녀의 글쓰기 강의가 더욱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는 첫 시집으로 단박에 캐나다연방총독상을 받았다. 그 후 50~60년 동안 시집 18종, 단편소설집 9종 등 문학 분야에서 풍성하고 다양한 업적을 기록하였다. 

『눈먼 암살자』(2000)와  『증언들』(2019)로 그녀는 두 차례나 세계적인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아왔으며 매해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책은 마거릿 애트우드가 등단한 지 40년 정도 되는 때에 집필한 것으로 2002년 영미권에 서 초판이 발행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그녀의 강의를 엮은 것이기도 하다. 2000년에 그녀가 『눈먼 암살자』(2000)로 첫 번째 부커상을 받고 나서 케임브리지대학이 '엠프슨 강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에게 강연을 요청했다. 이 엠프슨 강의는 저명한 작가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학자들을 초청해 다양한 문학적, 문화적 주제를 쉽게 탐구하는 독특한 장으로서,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와 영문학부가 공동으로 후원하는 강연 시리즈이다. 강연 요청을 받은 그녀는 2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가지고 난 후 여섯 번의 강의를 했다. 그리고 해당 6회 강의를 원형으로 하여 단행본 형식에 걸맞게 완성도를 높여  『Negotiating with the Dead: A Writer on Writing』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원제인 ‘죽은 자와 협상하기’는 제6장의 부제에서 가져온 것으로, 해당 장은 “이야기를 찾아나는 여정과 그 어둡고도 복잡한 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제목대로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준다. 작가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6개의 장을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해당 주제에 접근할 때 일반적인 작법서나 작가로서의 자서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그보다는 글쓰기를 둘러싼 심오하고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 나가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였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기술이나 방법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그 강의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것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글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나의 저술 활동에 대한 책도, 특정한 사람, 시대, 국가의 글에 대한 책도 아니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으려나? 말하자면 작가가 서 있는 위치에 대한 글이다. 그 위치라는 게 언제나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이 책은 한 40년 동안 글의 광산에서 노동해온 사람이 한밤중에 깨어나 그 긴 세월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다음 날 써볼까 생각해볼 법한 책이다. (p.17)

 



첫 번째 질문: 작가란 무엇인가(1장~2장)

.

"작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글을 쓰면 그게 작가가 아니겠어요?"

-일본 작가 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 중-

종이에 글을 끄적일 줄 아냐고? 이봐, 그거야 맨날 하는 거잖아.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한 단어씩 적으면 되지. (...)학교에서 글 쓰는 건 배웠잖아? 배웠을 거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쳐. 그러면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적어. 그러고 아무나 시켜서 쉼표 나부랭이 같은 것을 넣어달라고 하면 돼. (...) 그건 거기 사람들이 해줄거야." 

-엘모어 레너드의 소설 속 한 마약업자의 대사 중-

 

정말 작가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종이 위에 끄적이면 되는 걸까. 소설 속 마약업자의 말대로 떠오른 아이디어와 말하고 싶은 내용을 그저 적기만 하면 작가가 되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이에 대해 마거릿 애트우드는 그것은 작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는 신문 기사를 쓰거나 판에 박힌 소성을 찍어내는 달인이 아니다. 그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종이에 쓴다고 해서 모두다 작가는 아닌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입밖으로 내지 않을 뿐, 본인 머릿속에 책이 한 권 들어 있다고. 시간만 있으면 글로 풀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실제로 책 한 권은 품고 있다. 즉 사람들이 읽고 싶어할 만한 경험을 하고 산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작가가 된다는 것'과 동의어인 건 아니다. (p.58)

 

그러면 작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의 자전적인 삶을 통해 작가가 된 과정에 대해 말해준다. 그녀는 작가가 되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지 않았다. 말그대로 자신이 선택한 일도, 자신이 선택해야 할 법한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갑자기 그렇게 어느 순간 작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된 걸까요? 작가는 사람들이 변호사나 치과의시가 되겠다고 선택하는 것처럼 내가 택한 일도, 내가 택할 법한 일도 아니었다. 1956년, 축구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던 중에 그냥 갑자기 그렇게 된 거였다.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내가 쓴 시가 훌륭한지 어떤 지도 몰랐다. 하지만 알았대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으니까요. 너무 강렬한 경험이었어요. (p.43)

 

그러면 작가는 그녀의 경험처럼 어느 순간에 갑자기 되어 버리는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에 책 한 권이 들어있을 정도로 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가지고 있는데, 왜 그들은 작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예술가가 되기를 열망하는 작가는. 정말 특별한 사람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2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제2장은 보다 일반적인 논의로 방향을 트는데, 특히 ‘닮은꼴’이라는 개념으로 해당 주제에 접근하는 것이 독특하다. 여기서 작가의 이중성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작가는 두 개의 독립체로 존재한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의 존재, 즉 개를 산책시키고 규칙적으로 세차고 일상생활을 영위해나가는 '생활인'으로서의 작가와 아무도 안 볼 때 그 몸을 넘겨받아 글쓰기에 사용하는 같은 육체를 공유하지만 좀 더 희미하고 애매모호한 또 다른 존재인, 예술성을 추구하는 작가 이렇게 두 개의 작가의 모습이 있다.

 

그러면 난 누구였을까요? 아마 나의 사악한 쌍둥이나 정체가 불분명한 나의 닮은 꼴이었을 겁니다. 어쨌거나 나는 작가이므로 낮이 지나면 정체불명의 닮은꼴을 어딘가 숨겨둬야 하는 밤이 찾아온다. (p.70)

 

이렇듯 작가는 두 개의 자아, 닮은 꼴이 존재한다. 그 닮은 꼴은 정체가 불분명한 존재이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닮은 꼴은 겉으로 드러나서도 안 되고, 남한테 보일 수도 없는 숨겨둬야 하는 존재이다. 그 존재는 오직 예술성을 추구해 글을 쓸 때만 나타날 지도 모른다. 

 

또한 독자로서 우리는 이중성을 가진 작가를 만날 수 없다. 왜냐하면 방금 전에 읽었던 책의 작가를 절대 실제로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글을 쓰고 출간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책을 출간할 때가 되면 책을 썼던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그 책을 썼던 순간의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또한 작가 또한 독자에 대해 모른다. 독자는 대개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를 볼 수 없다. 유일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책이며, 작가가 죽은 지 한참 후에 독자가 책을 접할 수도 있다. 독자와 작가는 오직 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질문: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3장~5장)

 

작가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다름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돈 또는 예술을 위해서, 둘째 도덕과 사회적 책임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독자를 위해서이다. 그래서 이 3가지 대답에 대해 3장, 4장, 5장에서 다양한 문학 작품의 사유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첫째, 돈 or 예술을 위해서

3장에서는 예술과 돈의 대립 속에서 이를 논한다. 작가는 생활인이기도 하고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들도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선느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롯이 작품만을 바라볼 수도, 순전히 돈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작가들을 보면 팔릴 거란 확신도 없으면서 책을 쓰는 데 몇 년을 허비하잖아요.

왜 그런 짓을 할까요?"

"돈 때문이지, 대박이 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p. 103

 

글을 쓰고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

살아남아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다. 

-p.105

 

말그대로 작가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 작가 역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돈이 필요하다. 그들은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원자를 모집하거나, 따로 직장에 다니거나, 시장에 책을 내다 팔 수도 있다. 이렇게 작가가 살아남아야, 돈 문제에 대해 집착하지 않아야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돈 즉 부일까? 작가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글을 써도 되는걸까? 그러나, 우리는 작가가 오직 돈을 벌 목적으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면 그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우리의 인식 속에는 작가는 '부'만을 축적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금기 사항이 자리잡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작가의 현실을 이해하면서도 부를 축적하는 것을 비난하는 걸까? 그것은 오랫동안 신화로서 굳어진 인식과 생각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가난하면서도 진실한 예술가, 또는 부유하면서도 영혼을 팔아넘긴 예술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하거든요. 이렇게 신화가 굳어져가는 것이지요." (p.109)

 

그래서 순수한 야망을 품고 진짜 작가, 진짜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는 젊은 작가에는 이것이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작가는 예술만을 추구해야 할까? 저자는 시나 소설을 예술로 만드는 가치는 시장 교환 영역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한 가치는 작동 방식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다른 영역을 재능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재능은 무게를 재서 측정할 수도,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다. 또한 재능을 기대하고 요구할 수도 없다. 재능은 주어지는 것이기에 다른 방식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존재의 충만함에서 나오는 은총이다. 그래서 재능을 달라고 기도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기도에 꼭 응답을 받는 건 아니다. 


소설을 창작할 땐 1할의 영감과 9할의 노력이 필요하다지만, 작품이 예술로서 살아남으려면1할의 영감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 (p.110)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로, 그들에겐 아름다운 것이 오롯이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p.125)

 

이렇듯 작가의 작품이 예술로 인정받으러면 작가에게 영감과 재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가가 예술만을 추구하면 아름다운 것은 오로지 아름다움만을 의미한다. 그리고 작가의 얘술성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능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능과 예술성이 주어지는 대가로 작가는 신으로부터 희생과 헌신을 요구받는다.

예술의 신이 예술가를 선택하는 것이지, 그 반대로는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술가엔 천형처럼 비극과 파멸의 기운이 감돈다. (p.125)

 

“아, 이게 피할 수 없는 예술가의 운명이지요. 많은 사람이 부름을 받지만, 소수만이 선택받고 그 중 일부는 순교하고 맙니다. (p.128)

 

남성 예술가에게도 이런 희생이 요구되었는데 하물며 여성 예술가에게 요구된 희생은 오죽했을까. 이에 대해 저자가 시인 지망생이었을 때 여성 예술가에게 이런 희생과 헌신은 자연스럽게 요구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대중이 원하고 이해하던 여성 예술가의 이미지였다. 반쯤 죽은 수녀의 모습 말이다. (p.129)

 

그러면 ‘길은 좁고 문은 협소한’ 예술지상주의로 향하는 길에 놓인 ‘절망의 늪’을 피해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다른 길을 택하면 어떻게 될까요?

 

둘째, 도덕 and 사회적 책임을 위해서

제4장에서는 예술과 사회적 책임 간의 모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작가의 예술 추구와 사회적 책임 간에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숨겨져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작가들을 훑어보면 그들이 언제나 정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작가에게 정치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성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시릴 코널리,<약속의 적>

 

작가는 예술에 헌신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며 완벽한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자신의 바람직한 목표라고 생각하게 된다. 예술을 추구하고 헌신하는 과정은 수양 과정과 같다. 그 수양 과정에서 기다림의 기도, 영적인 비움, 자아의 부정, 이 모든 것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

 

돈과 권력에 대한 질문은 아주 짧게 요약할 수 있다. 시장에 영혼을 팔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얼마에 팔았느냐? 누가 샀는가? 영혼을 팔지 않는다면 누가 예술가를 껍질 무른 게처럼 짓밟는가? 영혼을 판 대가로 예술가가 얻고자 하는 것 무엇일까?  (p.152)

 

그러면 작가는 도덕적 함의가 전혀 없는 글을 써야만 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도덕적 함의가 담기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나와야 하고, 그 결과물의 옳고 그름에 대해선 독자가 판단할 거예요. 작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말이에요." (p.163)

 

즉 등장인물이나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은 작가가 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아닌 독자가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작품 속 인물을 해석하고,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매일같이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있다. 언어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인간의 뇌가 욕망에 대해 중립적이 않기 때문이며, 그래서 언어 속에는 이미 가치 판단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작가는 보편적 인류와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정말로 권력이 주어진다면, 권력의 사다리 어디쯤에 자리잡아야 할까요? 선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원하는 대로 하고 결과는 스스로 감수하라.'고 말하겠어요. 아니면 "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라"고 혹은 "공들여 쓰다 보면 사회라는 문제는 절로 해결된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작품이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정하는 것은 바로 독자인 것이다. 

 

셋째,  독자를 위해서

-영원한 삼각관계:

: 작가, 독자, 그리고 매개체로서의 책

 

작가와 독자는 양 꼭짓점에 존재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두 점을 연결하는 줄이 없다. 그런 작가와 독자를 중간에 이어주는 꼭짓점이 바로 글자. 텍스트인 책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 번째 점인 책은 유일하게 다른 두 꼭짓점인 작가와 독자에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책을 통해, 즉 지면을 통해서 소통한다. 독자 역시 지면과 소통한다. 즉 작가와 독자는 오직 지면을 통해서만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지면이란 보이지 않는 손이 독자더러 해독하라고 흔적을 남겨놓은 곳이다.  

 

그러면 독자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작가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작가의 이중성 개념을 살펴볼 때 독자가 글을 읽을 때 작가는 이미 그 자리에 없다는 것을 말했다. 만약 같은 장소에 있었으면 서로 말을 나눴거나, 훔쳐보는 현장을 딱 걸렸을 테니까 말이다.

독자는 일종의 스파이다. 스파이, 무단침입자. 남의 편지와 일기를 상습적으로 읽는 사람이요, 듣지 않고 엿듣는다. (p.183)

 

이런 점에서 작가와 독자는 서로 모르는 존재이다. 작가와 독자는 서로에게 '무명인'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책은 익명이고, 모든 독자도 그렇다. 읽고 쓰는 것은, 이를테면 연기하는 것과 극장에 가는 것과는 달리 둘 다 어느 정도의 고독, 나아가 어느 정도의 비밀주의를 전제로 한다. 즉 작가는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군지 알 수도 없는 독자에게 말을 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누군지도 알 수도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알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무명인의 존재인 독자이지만 그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작가는 글을 쓴다. 즉 작가가 글을 쓰는 건 바로 '독자'를 위해서이다. '그들' 이 아닌 '당신'인 독자를 위해, '친애하는 독자를 위해, 누군가, 어떤 ' 한 사람' 을 위해서 작가는 글을 쓰는 것이다.  

 


 

세 번째 질문: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6장)

-죽은 자와 협상하기

누가 왜 지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걸까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이며, 저자의 은유적이지만 글의 근본적인 기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다양한 문학작품 속에 드러난 글  속에 제시된 생각들을 통해 글의 기원을 밝혀내는 과정이 참신하고 좋았다. 

6장에서는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이는 '왜 글을 쓰는가'라는 글쓰기 동기와 관련되어 있다. 저자는 글쓰기란 곧 '어둠을 밝히고 빛 속으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나오리라는 욕망 혹은 충동'이라고 말한다. 그런 관점을 저자는 '삶과 죽음'의 맥락과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즉 어둠 중의 어둠이 죽음이라면, 글쓰기는 인간의 실존과 관련해서 무척이나 중요한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모든 글쓰기는 사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으로부터 비롯한다는 가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글쓰기 자체가 무엇보다도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반작용인 것이다. 

위험을 무릎쓰고 사후세계로 들어가, 죽은 자로부터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데려오고자 하는 욕망에서 글쓰기가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거죠. (p.220)

 

글을 쓰는 행위는 사고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과정으로 남는 건 일련의 화석화된 발자국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예술 형태인 그림, 조각, 음악은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목소리'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글쓰기는 글을 쓰는 행위이고, 목소리를 위한 악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가장 자주 하는 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모든 작가는 '지금'에서' 옛날 옛적'으로 가야 합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과거에 붙잡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보기에 따라서 절도든, 회수든, 뭐든 해야 합니다. 죽은 자들이 제아무리 보물을 갖고 있다고 해도, 산 자들의 땅으로 되가져와 시간 속에 또 한 번 들이지 않는 이상, 그러니까 관객의 영역에, 독자의 영역에, 변화의 영역에 들이지 않는 이상, 그 보물은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요. (p.247)

 

그곳에 가는 건 쉽지만 돌아오는 건 어렵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면 모든 이야기를 돌에 새겨야만 합니다. 운이 좋아 올바른 독자를 만나면 돌이 말을 할 겁니다. 돌이 혼자 세상에 남아 이야기를 들려즐 겁니다. (p.248)

 


 

3. 나가며

 

지금까지 작가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해 답해왔다. 그렇게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마거릿 애트우드의 섬세한 접근 방식이 돋보였다. 저자는 결론을 '이것이다.' 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고 행간을 넉넉히 남겨놓음으로써 가능성과 열린 생각을 허용했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과정 중에 수많은 작가와 수많은 작품을 예로 들면서 화려한 인용을 했다. 단테와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 작가에서부터 에밀리 디킨슨, 엘리스 먼로 같은 뛰어난 소설가, 톨킨과 스티븐 킹 같은 장르 작가 등 8페이지에 걸쳐 인용글을 실을 정도로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생각과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또한 40년 간의 작가 생활을 통해 나온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마거릿 애트우드 만의 특유의 관점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작가에 대한 깊이있는 철학적 통찰과 사유로 인해서 우리는 진정한 작가는 어떠해야 하는지,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써야 하고, 그 글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과 독자가 되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예리하고 깊이있는 사유와 통찰을 통해 진정한 글쓰기와 진정한 책읽기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이 내게 목소리를 남겨놓아,

사람들이 그 목소리로 나를 알아보게 될 겁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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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제로'로 가는 길 | 서평단 책리뷰(2021년) 2021-03-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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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빌 게이츠 저/김민주,이엽 공역
김영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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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는 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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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방법>

빌 게이츠/ 김영사

2021년 2월 16일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는 우리가 가진 솔루션이 무엇이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오늘은 포근한 날씨 속에 전국 곳곳에서 미세먼지가 말썽을 부리겠습니다."

"오전 전국 곳곳에서 안개가 짙은 가운데 수도권과 충청권 일부 지역에서 초미세먼지가 말썽입니다. 수도권은 출근길 안개와 미세먼지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요즘 내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오늘 비가 오는지, 날씨가 맑은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미세먼지 농도가 좋음이냐, 보통이냐, 나쁨이냐 이다. 어쩌면 오히려 비가 오고 추운 날씨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그 덕분에 미세먼지농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새 우리는 이렇게 오늘의 날씨보다 오늘의 미세먼지 농도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새파란 하늘에 양털 구름, 햇빛 쨍쨍하고 투명한 하늘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얼마 전 보았던 전 세계의 아름다운 구름의 모습들의 사진을 찍어서 책으로 만든 구름 사진집이 생각이 난다. 거기에 있는 구름들은 내가 어렸을 때는 자주 볼 수가 있었는데, 도시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밤하늘의 별도, 파란 하늘 하얀 구름도 보지 못한 채, 온종일 마스크를 끼며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한 그런 우리 일상을 위협하고 있고 세계를 팬데믹 사태로 빠뜨리고 우리의 예전 일상을 빼앗아가버린 것도 있다.  

 

"오늘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신규 확진 환자가 500명 넘게 발생했습니다.

36일만에 500명을 넘어섰습니다. "

우리는 이 코로나바이러스와 1년 넘게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이제는 백신도 나와서 잠잠해질만도 한데 또다시 재유행하려는 조짐을 보인다. 밖에는 벚꽃이 피고 목련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봄이 왔음을 축하하고 있건만 우리에겐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연의 봄을 제대로 즐기고 봄꽃 구경도 떠날 수 없다.

 

그리고 곳곳에서 기후이상 반응 소식들이 들려온다. 폭염과 이상고온, 태풍 등의 발생은 이상기후 현상으로 볼 수 있고 해가 갈수록 이런 이상기후 현상은 증가하고 그 강도도 점점 세지고 있다.

 

이런 미세먼지 농도 증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상기후현상 원인은 한 가지이다. 바로 온실가스의 배출량 증가이다. 그리고 이 온실가스 증가의 주범은 이산화탄소이다. 이런 현실과 상황 속에서 빌 게이츠가 10년 간의 연구의 결과로 집필한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방법]을 읽어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 책 속으로

 

빌 게이츠는 혁신적인 엔지니어이자 실용적인 환경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 빌 게이츠는 아내 멀린다와 함께 게이츠 재단(Gates Foundation)을 만들어 주로 세계 공중보건과 미국의 교육 문제에 집중해서 지원을 해왔다. 그리고 그는 지난 10년 간 기후변화 연구에 집중하여 마침내 기후재양을 극복하는 해법과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제시했다. 빌 게이츠는 10년 간 연구결과와 그 기후재양을 피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을 이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방법]에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의 원인 다섯 가지, 기후재앙을 막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책 등을 제시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 정치학, 경제학, 재무학 분야의 전문가와 협력해 발견한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연구 자료, 실제 사례 등이 제시되어 있어 주장에 객관성을 부여하고 실제적으로 현실적으로 그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510억에서 0으로"

기후변화 관련하여 당신이 기억해야 할 숫자가 두 개 있다

하나는 510억이고 다른 하나는 제로(0)다.

우리는 매년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대기권에 배출한다.

제로는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지구온난화를 멈추고 기후변화가 불러올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인류는 온실가스 배출을 멈춰야 한다. (p.8)

 

빌 게이츠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2050년까지 510억톤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510억톤으로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30년 후 우리는 이 배출량을 0으로 즉, 온실가스를 하나도 배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런 의문을 가질 때쯤 빌 게이츠도 이 목표가 실제로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 속에 담긴 의미는 앞으로 모든 나라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세계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의무가 있지만, 그 에너지는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p. 13)

 

"왜 제로인가?"

우리가 제로를 달성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온실가스는 열을 가두어 지구 표면의 온도를 높이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많을수록 온도가 더 많이 올라간가. 그리고 한번 대기권에 배출된 온실가스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대기권에 머무른다. 오늘날 배출되는 온실가스 가운데 5분의 1은 1만 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대기권에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지구가 계속 더워지면 인류는 번영은커녕 생존조차도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이런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인한 이상기후와 각종 환경, 생태적인 문제점들을 세계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사태와 그로 인한 감염, 사망, 그리고 이상기후 현상, 미세먼지 등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실제로 몸소 겪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의 원인에' 지구온난화' 가 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있다. 이 이산화탄소로 인해 우리의 생존은 위협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왜 이 이산화탄소가 문제가 되고,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발생하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우리는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어왔다. 화석연료는 지하 깊숙한 곳에 묻혀 있던 탄소로 만들어진다. 수백만 년 전의 식물들은 압축되어 석유나 석탄 또는 천연가스가 된다. 우리가 이런 연료를 시추해 태우면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되고, 이렇게 배출되는 탄소가 대기권에 이미 존재하는 탄소에 더해지면서 결국 대기권에 잔존하는 탄소의 총량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가. 빌 게이츠가  주장하는 '제로'는 실제로 탄소배출량 '0'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말이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제로'는 탄소 배출이 제로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제로는 '거의 순 제로(near net zero)'를 의미한다. (p.31)

순 제로는 배출되는 양과 제거되는 양이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어쩌보면 탄소 중립과 일맥 상통할지도 모른다. 물론 탄소를 100퍼센트 제거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 것도 아니고, 99퍼센트만 제거한다 해서 기후재앙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탄소를 제거하는 양이 커질수록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멈춰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배출된 온실 가스 중 일부를 제거해야 한다. 즉 기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대기권에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가 섭씨 1도나 2도 정도만 올라가더라도 실제로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기후학에서는 1~2도는 매우 심각한 문제 상황이다. 가장 최근의 빙하기 때 지구의 온도는 지금보다 겨우 섭씨 6도 낮았을 뿐이다.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 지구의 평균 온도는 지금보다 섭씨 4도 높았을 뿐이고. 이때 북극권 북쪽에서는 악어도 살았다고 한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1850년대 이후 화석연료를 태우는 등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결과로 급격하게 증가해왔다. 왼쪽 그래프는 1850년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얼마나 크게 증가했는지 보여주고 오른쪽 그래프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려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빌 게이츠가 주장하는 탄소 제로화는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실현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도 2장에서 510억톤에서 0으로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라고 말한다. 빌 게이츠 자신도 자신의 주장이 너무 터무니없고 불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왜 이 목표를 달성하자고 하는 걸까. 그가 이렇게 처음부터 말했다면 그의 주장은 이미 실현불가능한 것이지 않은가.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목표 달성을 위해 나아가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완전히 제로로 만들 수는 없어도 제로에 가까워지도록,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은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다섯 가지 활동, 즉 무언가를 만들고, 기르고, 전기를 생산하고, 움직이고, 시원하고 따뜻하게 하는 일에  대해 살펴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섯 가지 질문들"

 

빌 게이츠는 기후변화에 대한 주제를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사고의 틀을 만들었고 이 사고의 틀과 다섯 가지 질문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1.510억 톤 중 얼마일까?

우리의 가장 큰 목표는 매년 배출되는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것이다. 유럽의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매년 1,700만 톤을 제거한다. 1,700만 톤은 전체 배출량의 0.03퍼센트에 불과하다. 510억 톤은 51기가 톤이며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제거하자는 말은 51기가톤의 온실가스를 제거하자는 말과 비슷하다. 그리고 5억 톤은 매년 배출되는 총량의 약 1퍼센트이다. 그러면 510억 톤은 총량의 거의 100퍼센트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즉 배출량 전체를 감소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 목표 정말 가능한 것일까. 

 

2. 시멘트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기후변화에 대한 종합적인 계획에는 전력 생산과 자동차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철강과 시멘트 생산만 해도 배출량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무언가를 만드는 제조 활동에서 온실가스가스 배출량의 31%가 배출된다고 하니 시멘트로 인한 제조 과정에서도 상당히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고 하겠다.  

 

3. 얼마나 많은 전력을 말하는 걸까?

이 질문은 전기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 떠오르는 질문일 것이다. 500메가와트면 어느 정도의 전력량을 말하는 것일까? 메가와트는 100만 와트이고, 1와트는 1초당 1줄이라고 한다. 전력 소비량에 따른 그래프는 다음과 같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킬로와트는 '가정', 기가와트는 '도시' 그리고 수백 기가와트나 그 이상은 '나라'라고 보면 된다. 

 

4. 얼마나 큰 땅이 필요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전력밀도 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전력밀도'란 주어진 크기의 땅이나 물에서 서로 다른 전력원으로 얻을 수 있는 전력의 양을 의미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태양열의 전력밀도가 풍력의 전력밀도보다 더 크다고 한다면, 그 의미는 태양열 대신 풍력을 이용하고 싶다면,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더 많은 토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만약 누군가가 특정 전력원(풍력, 태양열, 원자력 등)으로 세계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필요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큰 장소가 필요할지 계산해보면 발전소 건설에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5. 돈이 얼마나 들어갈까?

이 질문은 탄소배출 감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제로 탄소 기술은 화석연료 기술보다 비싸다. 이에 반해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현재의 에너지 기술은 대안보다 더 싸다. 화석 연료 기술에는 환경에 끼치는 피해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깨끗한 그린에너지 기술에 붙는 가격 프리미엄 즉 그린 프리미엄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고 문제가 되는 게 아마도 그린 프리미엄일 것이다. 아마도 비용 문제가 기후변화에 대한 솔루션을 막는 장애물이 될지도 모른다. 

 


 

"다섯 가지 활동"

빌 게이츠는 제로는 달성하는 것이 아래의 항목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전기 생산, 제조, 사육과 제배, 교통과 운송, 냉방과 난방 이 다섯 가지 활동에 대해서 4장부터 8장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그에 따른 해결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앞에서 5가지 인간 활동에서 탄소가 많이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잘 증명되고 설명이 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사실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런 활동들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지 그 솔루션 위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전기 생산 (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27퍼센트)

전기 생산에서 우리는 탄소 연간 배출량 510억 톤 중에서 27퍼센트에 해당하는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이것은 주로 우리가 전기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 화력발전소에 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여러 발전 비용 중에서 가격이 싸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다양한 발전 측 수력, 풍력, 원자력 등에서 우리는 전기를 생산한다. 수력발전과 풍력발전은 그 주요 에너지원인 물과 바람에서 얻는다. 그러나 물과 바람은 지역마다 일관성이 없고 간헐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그보다는 원자력 발전이 더 효율적이라고는 하나, 방사능 유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직은 많다.

우리는 합리적인 가격의 제로 탄소 전기를 안정적으로 재공하는 새로운 전력망을 개발할기 필요가 있다. 또한 그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도 필요하다. 기후변화의 요인들 중 이 전력 생산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면, 우리가 '깨끗한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 경제의 많은 부분을 '탈산소화'할 수 있을 것이고 기후변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2. 제조 (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31퍼센트)

강철이나 시멘트, 플라스틱 등을 제조하는 데는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제조 과정을 제로 탄소화하는 과정으로 다음의 4가지를 제시한다. 

1. 가능한 모든 과정을 전기화하라.

-하지만 아직도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

2. 이미 탈산소화한 전력망으로부터 전기를 얻어라.

-역시 혁신이 필요하다.

3.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탄소포집 기술을 활용하라.

-역시 아직은 혁신과 개발이 필요하다.

4. 더 효율적으로 자재들을 사용하라.

-역시 마찬가지다.

솔직히 빌 게이츠가 제시한 방법들을 읽어보고 뭐지,. 아무 것도 정해지거나 새롭게 나온 기술이 없잖아. 아직도 연구 개발중이거나, 구상 단계에 있을 뿐이다.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다. 제로 탄소로 가는 길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그 길을 가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개발 연구하고 혁신적인 기술에 투지하고 았다. 그런 우리의 노력들이 나중에는 그 빛을 발하게 될 날도 오지 않을까.

 

3. 사육과 재배(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19퍼센트)

우리가 지금 생산하는 식량보다 더 많은 양을 생산해야 하는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방법으로 하면 기후변화에는 재양이 될 거라고 한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10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식량을 얻을 경우 식품과 관련된 모든 온실가스 배출량은 3분의 2 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고 놀랐다. 우리가 고기와 유제품 등을 생산할 때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하고 그로인해 결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다는 사실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아침마다 어김없이 배달되는 우유와 우리가 즐겨먹는 고기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다니, 갑자기 먹던 고기양과 우유 소비량을 줄이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다음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첫째, 식물에 새로운 비료를 주고, 가축을 기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둘째, 음식 낭비를 줄여야 한다.

셋째, 인공고기를 활용하는 등 고기를 덜 먹는 등 식습관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4. 교통과 운송(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16퍼센트)

효율적인 자동차를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 제로 탄소화를 위한 방법이라고 해도 이것만으로는 제로 탄소를 달성하지 못한다. 휘발유를 덜 사용한다고 해도 휘발유는 여전히 휘발융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통과 운송에서 나오는 배출량을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책에서는 전기차 사용을 늘리고 대체 연료로 전환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전기차와 대체 연료에는 큰 그린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어야 제로 탄소화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5. 냉방과 난방(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7퍼센트)

냉방과 난방에 있어서 전력 소비량은 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화석연료가 아닌 대체 연료들을 사용해서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 이에 더하여 우리의 난방 시스템을 탈탄소화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1. 할 수 있는 만큼 전기화하라.

-가스식 보일러와 온수기를 모두 전기식 열펌프로 교체해야 한다. 

2. 전력망을 탈산소화해라.

-가능한 한 많은 곳에 청정에너지 기술을 도입 및 적용하고 전력의 생산, 저장 , 전송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3. 전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라.

 


 

"제로로 가는 길"

 

1.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정부는 혁신의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혁신의 공급을 확대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연구개발이다. 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따라서 빌 게이츠는 그런 연구개발을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다음의 4가지를 제시한다.

 

1. 10년 내 청정에너지 및 기후변화 관련 연구 개발비 다섯 배 증액. 

연구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공적자금 투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2. 고위험-고보상 연구 개발에 투자

정부가 얼마나 투자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투자하는지도 중요하다.

정부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처럼 수억 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는 최첨단 과학 분야의 발전을 이끌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는 오랜 기간 지속되어야 한다.

3. 연구 개발을 가장 큰 니즈와 연계

우리는 혁신이 가장 필요한 분야에서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통합할 수 있는 더 많은 정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4. 시작 단계부터 기업과 협업 관계 구축

초기 단계부터 정부와 기업이 함께 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장벽을 허물고 혁신 사이클을 가속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기업은 새로운기술이 적용된 시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그리고 대규모 프로젝트에도 공동 투자를 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실험실에서 시험과 검증을 마친 뒤 시장에서 '증명' 되어야 한다. 

우선 실험실에서 개발된 새로운 아이디어가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누구보다 먼저 도입하는 데 따르는 비용과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하며, 공급망을 구축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검증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이 새로운 기술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한다면 시장의 불확실성과 비용을 줄여 스타트업이 더 많이 생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p.290)

따라서 정부는 혁신의 공급뿐만 아니라 혁신의 수요도 가속화시켜야 한다. 이 혁신을 가속화하는 방법으로 4가지 방법들이 제시된다.

1. 조달력을 적극 활용하라.

정부는 친환경 제품의 외부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친환경 제품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2. 비용을 절감하고 위험을 줄이는 장려책을 만들어라.

제품 구매 외에도 정부는 민간 기업이 친환경적으로 바뀌도록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를 확대하는 여러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는 제로 탄소 정책을 도입하고 시장이 이런 프로젝트를 위한 투자금을 유치하는 방식을 개선함으로써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정부 정책은 기술중립적이어야 하며, 예측 가능해야 하고, 유연해야 한다. 

3.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런 시장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풍력 및 태양광발전을 위한 송전망, 전기차 충전소, 그리고 포집된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위한 파이프라인이 여기에 포함된다. 

4. 새로운 기술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라.

인프라 구축 후에는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는 중앙 정부가 할 일, 주 정부가 할 일, 지방 정부가 할 일로 나누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은 누구보다 에너지 혁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분야 연구 및 기술 개발에 12개 정부 기관을 참여시킬 마큼 에너지 연구 개발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면서 동시에 투자도 가장 많이 한다.  미국 정부는 에너지 연구 개발의 방향과 속도를 관리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도구를 갖고 있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친환경 제품 및 정책에 대한 수요를 주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신기술 스케일 업에 대해서는 연방정부가 그 누구보다 큰 역할을 맡는다. 연방정부는 주간 거래를 관장하고 국제무역과 투자 정책에 대한 최우선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의회는 연구 개발, 정부 조달, 인프라 개발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청정에너지 관련 정책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금전적 장려책을 만들고 확대해야 한다. (p.299) 

한편 행정부의 에너지부는 자체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외부 프로젝트에도 지원을 하며 연방정부가 청정전기 표준을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제로 달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첫째, 우리는 제로 달성을 위해 거 많은 돈을 투자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더 오래 기울여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와 다국적 은행들은 민간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벙법을 찾아야 한다.

둘째, 기후 투자는 리스크가 큰 장기전이다. 수년 동안 수익이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공공 부문은 재정을 활용해서 투자 기간을 늘려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주정부>

미국의 많은 주들은 기후변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주 정부는 혁신적인 기술과 정책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주 정부는 탄소 가격제, 청정전기 표준, 청정연료 표준과 같은 정책이 전국 단위로 도입되기 전에 시험할 수 있다. 

주 의회는 주 차원의 탄소 가격제, 청정에너지 표준, 청정연료 표준을 도입할 책임이 있다. 그들ㅇ른 또한 주의 여러 기관들, 전력회사의 조달 정책에 차세대 저탄소 기술을 우선시하라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 (p.302)

 

<지방정부>

도시들은 단독으로 차량 배출 기준을 만들지는 못해도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고, 전기차들을 위한 충전소 설치에 투자할 수도 있다. 토지사용제한법을 통해 인구밀도를 높여 직장인들의 출퇴근 거리를 짧게 만들 수도 있다.

시의 회는 기후 관련 정책에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관련 기관에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등 주 의회 및 미국 의회와 비슷한 역할을 맡는다.  (p.303)

지방정부 기관들은 주 정부 기관들 및 중앙정부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정책적 우선순위를 감독한다. (p.304)

 

3.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개인은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그리고 고용주 또는 직장인으로서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시민으로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반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기후 재앙을 피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런 행동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치적 압력으로 바꿔 정치인들이 실제로 행동에 옮기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작접적인 방식은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소리 높여 내면서 투표를 하는 것이다. (p.311)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하는 것은 실제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청정에너지 연구 개발비 증액, 청정에너지 표준, 탄소세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또한 공직에 출마해야 한다. 주의원이나 시의원으로 출마할 수도 있다.

 

<소비자로서>

소비자는 새로운 대안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수도 있다. 수요만 확인되면 기업들은 저탄소 제품 생산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것이다. 그러면 투자자들은 제로 기술을 만드는 혁신적인 기업에 자신감을 가지고 투자할 것이다. (p.313)

1. 청정전기를 신청하라.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소비자들은 프리미엄이 추가된 전기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2. 집 안 배출량을 감축하라. 

3. 전기차를 구매하라. 

사람들이 전기차를 더 많이 구매할수록 기업들은 더 많은 전기차를 생산하게 된다.

4. 인공 고기를 먹어라.

일주일에 한 두번 인공 고기를 먹으면 그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과 같다. 유제품도 마찬가지다. 

 

<고용주 또는 직장인으로서>

실패 가능성이 있디만 친환경 혁신을 일으킬 수도 있는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주들과 이사회가 이런 위험을 기꺼이 분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과 경영진은 기후변화 문제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모험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한다. 또한 기업들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가장 어려운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민간 부문이 취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안이다.

첫째, 내부적인 탄소세를 도입하라.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징수'라는 '조세' 수익은 그린 프리미엄을 낮추는 활동에 사용되거나 청정 에너지 제품을 위한 시장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저탄소 솔루션 혁신을 우선시하라. 

기업들은 저탄소 혁신을 위한 연구 개발을 우선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장기적인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으면 기업들의 비즈니스 경험을 연구 개발에 접목할 수 있다. 

셋째, 얼리어답터가 되어라.  

정부처럼 기업도 구매력을 활용해 신기술의 빠른 도입과 확산에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정책 개발 과정에 참여하라.

기업들은 제로 달성을 위한 기초과학과 연구 개발을 선두에서 이끌어야 한다. 기술 개발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협업은 특히 더 중요하다.

다섯째, 정부 지원 연구와 연계하라. 

정부의 기본 연구와 응용 연구를 통해 아이디어가 실제 제품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업은 정부의 연구 개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은 비용 분담 계약과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의 연구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여섯째, 혁신가들이 죽음의 계곡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라.

기업들은 혁신가들에게 펠로우십이나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신기술에 투자하고 저탄소 혁신에만 집중하는 사업 부서를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저탄소 관련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을 할 수도 있다. 

 


 

 

3. 나가며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팩트풀니스] 저자 한스 로울링-

 

지금까지 우리는 제로 탄소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에 대해 살펴보고 논의해왔다. 지금까지 지구온난화 문제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 심각성과 긴급성을 깨닫지 못했다. 나 또한 그 문제가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기후학자나 과학자들의 문제와 그들의 논쟁거리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직은 기후재앙이 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앞으로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빌 게이츠가 언급한, 세계 유명 생태학자들이 경고한 그런 기후재앙이 올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도 깨달아야 한다. 더욱 사려 깊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기후변화를 논의해야 하며 무엇보다 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들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왜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았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 있어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팬데믹 사태에서 잃어버린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는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 세계인들,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우리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기후를 유지해 수억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인생을 가꿀 수 있도록 돕고, 결과적으로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존할 수 있다.  (p.321)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우리는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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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교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나다. | 서평단 책리뷰(2021년) 2021-03-2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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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최고의 교실

다이앤 태브너 저/우미정 역
더난출판사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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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학교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서밋스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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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교실>

다이앤 태브너 저/ 우미정 역

더난출판사/ 2021년 1월 29일

"진정 아이들을 위한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 서밋 스쿨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1. 들어가며

 

오전 9시 1교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삼삼오오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급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는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반장의 차렷 경례 소리 후 1교시 수업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아침이라 잠이 덜 깬건지, 수업이 지루한지, 눈이 멍해지고,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고, 깨어 있으되 깨어 있지 않은 몽롱한 비몽사몽 상태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아이들은 한 줄씩 떨어져 앉아서 잠을 자도 깨워줄 옆짝도 없고, 모르는 것을 물어볼 친구도 없이, 아이들은 하루종일 마스크를 쓴 채로 수업을 받는다. 답답하기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수업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간간히 게임도 하고, 모둠활동도 하면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코로나 방역으로 모둠활동도, 활동 수업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진도 나가기에 급급할 뿐이다. 또 언제 코로나 확산이 심해져서 아이들이 등교하지 못할지도 모르니, 아이들이 있을 때 진도라도 어서 나가자 하는 마음 뿐이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즐겁게 이야기하며 밥을 먹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지만, 학생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칸막이 속에서, 또는 옆 사람과 거리 두기를 하며 아무 말도 못한 채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어른도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없는데, 아이들이야 오죽 할까. 그래서 아이들은 밥을 반 이상이나 남기며 빨리 식판을 정리한다. 그리고 다시 마스크를 쓰며 복도에 나가서 친구랑 얘기하려고 하지만, 복도를 지키며 질서지도를 하는 선생님 때문에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6교시까지 그렇게 답답함과 외로움 속에서 수업을 받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온다. 

이것이 코로나가 바꾼 우리 교실 풍경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나마 낫긴 했지만, 코로나 이전도, 코로나 이후 교실 풍경도 그렇게 많이 다르진 않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성적에 의해 평가되고, 대학입시를 위해 그들의 젊음을, 열정을 희생하고 있다. 내가 20년 전에도 이런 모습이었는데,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교실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 것 같다. 나에게도 아이들이 있다. 이제 초등학생, 유치원생이지만 지금 딸아이가 받고 있는 교육도, 앞으로 받게 될 교육도 여전히 암울하기만 하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가 받아오는 성적에, 아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에 관심을 갖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나를 본다. 20년 전이나, 20년이 지난 2021년이나 달라진 게 없는 교육과 우리의 교육 현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너무나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 교육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며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받게 해 줄 것인가 고민하던 중에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한 학교를 만났다.

그 학교는 다이앤 태브너가 세운 '서밋 스쿨' 더 정확한 명칭으로는 서밋프리퍼래토리차터하이스쿨(Summit Preparatory Charter High School)이다. 그리고 그 서밋스쿨의 시작과 지금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이 바로 [최고의 교실]이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진정 아이들을 위한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나의 오랜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서밋 스쿨을 알게 되면서,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내 아이들도 그 학교에 입학시켜 교육을 받게 하고 싶을 만큼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고, 나는 그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육이념, 다이앤 태브너의 교육철학 속에서 아이들 미래를 위한 '희망'을 발견했다. 
비록 그 학교에 우리 아이들이 다닐 수는 없더라도 그 학교의 교육이념과 교육방법을 내 아이를 교육시키는 데 적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밋스쿨에 대해 알게 되고 다이앤 태브너처럼 교육의 변화를 시도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 훗날 우리나라에도 서밋 스쿨 같은 학교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이미 많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방향은 여전히 명문대 진학에 맞춰져있고, 소수의 엘리트들을 위한 교육에 집중하고 있어서 아직은 우리에게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 왜 이 서밋스쿨이 최고의 학교, 교실이며 아이들을 위한 학교인지에 대해 살펴보며 우리나라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2. 책 속으로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가 있는가?

어떤 교육이 내 아이의 미래를 준비해줄 것인가?

내 아이의 미래를 무엇으로 채워줄 것인가?

 

부모로서 아이를 학교에 보낼 때 내 아이가 최고의 교육을 안심하고 받을 수 있는 학교가 어디있는지, 그런 학교가 있다면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아무리 등록금이 비싸도 보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내 자식만큼은, 나처럼 고생안시키고, 배우고 싶은 거 마음껏 배우고, 공부하고 싶으면 마음껏 공부하면서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겠노라 부모라면 다들 그런 생각과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부모의 바램과 욕심으로 우리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 소위 명문대에 보내려고 한다. 마치 명문대를 나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나 또한 그렇게 교육 받아왔고, 그런 사회적 인식 속에서 살아왔고, 그렇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25년 전 부모님께서 나를 교육시킨 방식 그대로, 나는 아이들을 그렇게 교육시키고 있는 현실을 본다. 내가 어렸을 때도 특목고 열풍은 거세었고, 경쟁이 심했었는데, 지금도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특목고에 보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본다.여전히 SKY를 나와야 출세하고, 돈도 벌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걸까? 몇 년 전 본 SKY캐슬 드라마가 그런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보여주었다. 여전히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이런 고민은 공립학교 여교사였던 다이앤 태브너를 힘들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욕만큼 바꿀 수 없는 교육 현실에 좌절한다. 평교사로서 한계를 인식하고 관리자가 되어 학교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최연소 나이에 교감 시험을 통과해 학교를 변화시키려 하지만 이제는 관리자라는 이유로 동료 교사들에게조차 외면받는다.  교육감에게는 햇병아리 교감 취급을 받으며 무시를 당하고, 학생들은 점점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가 아들 레트가 태어나면서 양육하면서 '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학교가 있을까? 내 아이의 미래를 무엇으로 채워줄까? 어떤 교육이 내 아이의 미래를 채워줄 것인가? 부모로서 아이의 미래에 대해, 좋은 교육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좋은 교육에 대한 고민은 고민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녀는 직접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자신이 학교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 차라리 내가 그런 학교를 만들자!' 이런 발상과 생각으로 서밋 스쿨은 탄생하게 된다. 서밋 스쿨은 내 아이가 최고의 교육을 안심하고 받을 수 있는 학교를 꿈꿨던 부모들의 바람과 선생님의 열정이 만나 작은 교실에서 함께 시작되었다. 

 

이 책은 어떤 상황에 있는 아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그 아이가 그 시기에 필요한 교육을 충분히 받아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실에 관한 이야기다. 학생 한 명 한 명 모두에ㅐ게 사랑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선생님들의 이야기이다. 치열한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상처입고, 소외당하던 아이들이 서밋스쿨에서 꿈과 희망을 발견하고 치유되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서밋스쿨의 교장인 다이앤 태브너는 이렇게 말한다.

서밋스쿨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아이들은 학업적인 성공과 개인적인 웰빙 두 가지를 다 이룰 수 있습니다.”

 

 

서밋 스쿨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러면 서밋 스쿨은 진정 아이들을 위한 학교인가? 어떻게 졸업생 전원이 4년제 대학에 졸업하고,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꿈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학교에는 없고, 서밋 스쿨에만 있는 그 특별한 것은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으로 나는 이 책을 펼쳐들었고, 한 가지 해답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었다. 서밋 스쿨의 모든 교육과정과 교육이념, 교육철학의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런 교육방법이, 이런 교육내용이 과연 아이들의 미래에 필요한 것일까?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일까? 이런 고민 속에서 모든 교육과정과 교육방법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단순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교육내용을 떠먹여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 '배우는 방법을 배우기'였다.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양의 지식과 정보를 알고 있는지보다,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그들의 삶속에서 사용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서밋에는 4개의 특별한 교육방법이 있다.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에는 없고 서밋 스쿨에만 있는 특별한 4가지라고 말하고 싶고 그것이 서밋 스쿨을 성공과 특별함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특별한 4가지에 2부 어떻게 준비하는가(HOW TO PREPARE)-아이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4가지 과정에 실제 사례와 함께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2부의 각 장에서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Project Based Learning).  자기주도(Self-direction), 깊은 사고(Reflection), 협업(Collaboration)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이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서밋이 선택한 과정이다. 이 네 가지 과정이 서밋의 핵심이며  각각 그 자체로 의미 있으면서 서로 보완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 속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여기에서 찾고 싶다. 그래서 지금부터 4가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려고 한다.  

 

① 프로젝트 기반 학습(Project Based Learning)

흔히 PBL이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교수법은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이미 많은 학교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단순히 메인 교수법이 아닌 디저트로서, 연구수업 용 등 특별한 수업, 이벤트성 수업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서밋 스쿨은 이 수업방법을 단순히 일회성, 단기적인 기간동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4년간의 고교 교육과정 전체에서 사용한다. 아이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리고 모든 과목의 수업에서 이 프로젝트 수업을 받고, 4년 간 이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이 프로젝트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핵심 역량들도 개발이 된다. 그러면 왜 이런 좋은 교육방법을 우리나라는 도입은 하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공식적인 PBL의 정의는 학생들이 실제적이고 흥미를 끄는 복잡한 질문, 문제, 도전에 대해 조사하고 답을 구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과제를 수행함으로써 해당 지식과 역량을 획득하는 교육 방법"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될 준비를 하게 한다는 것은, 그들이 세상에 나갔을 때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PBL의 강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교육방법을 현실 속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상다히 오랜 시간과 교사의 열정, 노력, 교육적 고민들이 요구된다. 또한 학교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고품질의 프로젝트 수업 모형이 부족하다. 교사가 매번 매 단원마다, 매 차시마다 프로젝트 수업을 고안한다는 것도, 그것도 모든 교과목 선생님들이 프로젝트 수업 연구를 한다는 것도 현실상 어렵고 힘이 든다. 교사의 노력만으로 프로젝트 수업이 가능하다면야 교사의 열정과 노력을 불살르면 될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주 교재인 '교과서'이다. 우리는 프로젝트 대신 교과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교과서 때문에 프로젝트 수업을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교과서를 버리면 된다고 말하겠지만, 또 걸림돌이 나타난다. 우리에겐 중간, 기말고사라는 표준화된 시험이 있다. 교과서 지식의 유무와 습득한 정도를 평가하는 이런 정기고사는 PBL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교과서와 시험으로 인해 어떤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연결점을 만들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그런 고차원적인 능력을 평가해보고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되었지만,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그 시험 또한 교과서 지식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우리는 PBL을 주요 교육방법으로 채택할 수 있을까? PBL 을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로 교육과정을 구성할 수 있을까? 아런 교육적 문제들이, 걸림돌이 해결되지 않는 한,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PBL은 일회성, 이벤트성에 머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법안이 어떻게 법률이 되는지 그저 외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중요한 문제에 직접 부딪히고 해결해나가면서 그것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기를 원한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이 준비되기를 원하는 것만큼이나 자신이 삶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p.114)

 
아이들은 프로젝트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적 내용들이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정보를 찾고 탐색한다. 그리고 그 해결 과정 속에서 자신이 직접 찾고 습득한 지식이 왜 중요한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몸소 느끼게 된다. 프로젝트는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니만큼 반 친구들과 서로 협력하고 서로의 강점을 되살려 각각 해당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능력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도 도움이 되며 자신의 삶을 위해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자기주도(Self-direction) 

요즘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얼마 전 내가 읽은 책도 '초등 자기주도 공부법'이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 수능에도 좋은 점수를 올려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도 자기주도학습 습관이 잘 형성돤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PBL 과 마찬가지로 이 학습법 또한 인기가 있고 학습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자기주도학습을 잘 하고 있는가? 우리의 자녀들이 자기주도학습 습관이 잘 형성되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성적 하락의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학원을 알아보기에 급급하지는 않았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모든 시대에 늘 그래왔겠지만 특히 오늘날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배울 수 있고 구글을 통해 모든 것을 검색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은 학교 교실에서 가만히 앉아서 정적인 강의를 듣고 노트 필기를 하고 플래시 카드를 만들면서 배우고 있다. 어쩌면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습에 대한 관심도, 동기도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 교사들 또한 내가 이 직업을 가지고 싶었던가,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던가 하며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깊은 고민과 좌절 속에서  교사를 그만두거나 개별 학생의 성공을 통해 작은 승리를 추구하게 된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채 그리도 더욱 중요하게는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습자로서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우리의 교육현실과 달리 자기주도학습을 중시한 서밋의 교육방법이 더욱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서밋의 학생들은 3단계계를 통해서 자기주도학습 습관을 형성하게 된다. 첫번째 단계로 서밋의 학생들은 목적의식에 뿌리를 둔 목표를 설정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그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그 다음은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것인데 이 단계에서 아이들은 배우고 실행한다. 그리고 이 때 교사의 역할은 질문에 대답해주고, 지도해주는 것이지만 교사가 주도하지는 않는다. 서밋의 학생 이선의 자기주도학습 과정 형성을 그 예로 들어본다. 서밋의 학생 이선은 자기주도학습 과정을 적용해 자신과 친구들을 위해 화학에 대한 종합적인 학습 경험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수년 간의 훈련이 필요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1시간 동안 그 과정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런 다음 1시간 또 그다음도 1시간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훈련했다고 한다. 이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주도학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미 사교육에 익숙해져서 학원에서 학교 내신 공부까지 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기주도학습은 이상적인 학습방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이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고 너무나 성급하고 조급하게 그 시간도 기다리지 못한 채 아이를 교육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목표달성을 못했어요. 제가 일반적으로 하던 방식으로는 제대로 되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잉그리드와 라즈가 저와 같은 목표를 정한 걸 보고 스터디 그룹을 만들자고 했죠. 함께 공부한 게 정말 도움이 됐어요.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뭔지 알았고 오늘 드디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어요.“ (서밋 스쿨 학생 샤샤의 말 중에서)

서밋의 학생인 샤샤의 말 속에는 자기주도 학습자의 다섯 가지 강력한 행동 중 하나인 전략 변경의 사례가 들어 있다. 샤샤는 늘 하던 방식으로는 원하는 목표를 성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계획을 다시 생각했고 전략을 수정해서 마침내 그녀 스스로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 그에 합당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다시금 자신의 계획을 생각하고 방법, 전략을 수정해서 자기 혼자의 힘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이 과정이 바로 자기주도학습인 것이다. 서밋의 학생들은 이 과정을 4년간 반복하며 매일매일 훈련하고 그 과정 속에서 배움과 성장은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깊은 사고(Reflection)

예전 학교에는 또래 학습, 멘토-멘티 학습이 있었다. 말 그대로 또래 중 성적이 우수하고, 다른 친구들 학습을 도와줄 수 있는 학생을 멘토라고 정하고 그 멘토들에게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인 멘티들을 연결해주었다. 멘토는 멘티들의 학습을 돕기 위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방과후 시간을 이용해서 멘티가 수업 내용 중 잘 모르는 게 있다면 가르쳐주었다. 말그대로 개인과외였던 셈이다. 교사의 설명보다는 또래 친구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더 쉽게 이해가 가기도 했고, 친구가 열심히 가르쳐주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껴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멘토들도 자신의 공부를 해야하고, 매번 가르쳐주는 데도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아 나중에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지만 흐지부지 되었고, 유지되더라도 의무감에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멘티들 또한 처음에는 열심히 하려고 하다가 생각만큼 성적도 오르지 않고 공부하는 데 힘이 들어 포기하는 경우도 생겼다. 즉 멘토와 멘티 둘다 힘들어하다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런데 서밋 스쿨에서는 멘토 제도가 있고 그 멘토는 학생이 아닌 교사가 학생 15명~20명을 4년간 책임을 지고 담당하게 된다. 각각의 멘토는  학습뿐만 아니라 멘티와 개인적인 관계까지 맺는다. 그러면서 멘토들은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하나의 그룹을 형성한다.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자신의 멘토가 있고, 단순히 학습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와 고민 등도 멘토에게 상담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멘토들은 교사로서, 아이들의 멘토로서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담당한다. 그들은 아이들과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가정환경은 어떤지 등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다. 이런 관계 형성은 4년 간 똑같은 아이들을 담당하게 되면서 그들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그들은 아이들의 부모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가정방문도 자주 가서 아이들의 가족들과 친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서밋의 학생들은 멘토에 대해 아주 편안하게 느끼고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기꺼이 가장 먼저 멘토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솔직히 서밋 스쿨에서 가장 부러웠고 배우고 싶었던 것이 바로 멘토 제도였다. 우리 아이들에겐 멘토가 없다. 물론 학교에는 담임 선생님이 있긴 하지만, 그들이 아이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 담임 선생님 또한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이들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습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담임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하는 ㄱ경우가 많다. 배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 형성' 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과 아이들 간에 레포가 잘 형성이 되어 있으면 선생님의 수업을 아이들이 잘 따라오고, 선생님도 아이들을 좋아하고 수업 시간 동안 상호작용도 활발해지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움도 일어난다. 하지만 아이들과 선생님 간에 제대로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고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수업 또한 매끄럽게 진행이 안 되고 아이들의 반응 또한 제대로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런 관계 속에서 배움이 일어날 리도 없다. 
 
그런 현실 속에서 서밋의 맥스의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스럽고 멘토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 말더듬이 심했던 신입생 맥스는 목소리 내기 프로젝트 첫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발표'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이는 얼어붙었고, 맥스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발표를 시키지 않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해 조사하고 글을 썼다. 맥스는 선생님에게 매일 자신이 얼마나 못하는지들 고백하면서 발표 리허설까지 했다. 맥스의 발표는 원래 주어진 시간보다 5배가 넘게 걸렸는데 말더듬증 때문에 속도가 매우 느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수업 시간이 이미 지났음에도 모두 자리를 지켰고 맥스가 발표를 끝내자 친구들이 전부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래서 맥스의 발표는 최고로 뽑혀서 1학년 전체 앞에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맥스는 자신이 없었고 내일 발표를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학교에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맥스의 멘토는 맥스를 찾아가 몇 시간동안 함께 발표 전략을 짰다. 그리고 자신없어 하는 맥스에게 자신감을 회복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했고, 마지막으로 맥스의 멘토는 맥스의 선택만이 남았다고 말했다. 다음 날 맥스는 자신있게 나타났고 전교생들 앞에서 자신감있게 발표를 하였다. 맥스가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쳤을 때 학교 전체가 열렬히 환호하며 기립 박수를 보냈고 맥스의 아버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맥스는 훗날 전교생들 앞에서 발표를 했던 그 순간이 잊지 못할 순간이며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맥스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도 눈물이 흘렀다. 말더듬이였던 맥스가 이렇게 훌륭하게 발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맥스가 할 수 있다라는 그 가능성을 믿고 그를 도와주었던 멘토와 그를 믿고 이해해준 친구들,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 사랑으로 만들어낸 기적같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기적같은 일이 우리들의 학교 속에서도, 우리들의 교실에서도 일어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 그러면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고개 숙인 우리 아이들도 이제는 고개를 들고 당당히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또한 멘토는 질문과 청취를 통해 학생 스스로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상황에 있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숙고하도록 이끌어 아이의 삶에 깊은 사고(Reflection)이 일어날 수 있게 도와준다. 깊이 사고하면 할수록 배움과 성장도 높아진다. 서밋은 이런 멘토링 제도를 통해 아이 스스로 깊은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주요 과정 중 하나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협업(Collaboration)

어렸을 때 시험을 보고 나면 반 전체 등수가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등수를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불러주시곤 했다. 그래서 요즘에도 부모들은 아이가 시험을 치르고 나면 아이의 반 등수와 전체 등수를 묻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개인정보보호차원으로 성적 등수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반에서 몇 등을 했느냐, 전체에서 내가 몇 등 안에 드는지는 부모도, 아이도 초유의 관심사이다. 이렇게 우리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교육, 최상위권 학생들이 밑에 있는 학생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혜택을 누리는 교육에 익숙해져왔다. 
'너와 나는 함께 갈 수 없다.' '내가 승자이면 넌 패자인 것이다' 이런 라이벌 의식과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인생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성적, 능력, 성과, 지위 등에 의해 줄 세워지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밋 스쿨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아이들을 줄 세우기하는 그 어떤 평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능력과 가능성을 단순히 시험에 의해 평가받지 않는다. 그들의 배움은 그들의 배움 속에서, 학습 속에서 또래들과의 협업 속에서 평가받고, 수정 보완해나간다. 모든 아이가 각자 필요한 영역에서 준비되려면 매일 매순간 배워야 한다. 아이들은 교사로부터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래서 서밋 스쿨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함께 공부하고,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를 같은 팀의 동료로 바라보게 하는 문화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협업 시스템이 실현되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삶에 대한 전망과 자신만의 진로를 설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서밋 스쿨에서는 이렇게 협업을 할 때 인종, 성별, 국적 등이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 그룹이 편성이 되어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길러주고 있다, 그래서 서밋의 졸업생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이미 수년 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그런 다양성이 관계에 미치는 복잡한 역할에 대해 탐색해가는 것을 오히려 편안하게 느끼고 기꺼이 그들과 협업하고자 한다. 
 

 


 

-서밋은 내가 입학하고 싶은 학교인가?

-서밋은 내가 가르치고 싶은 학교인가?

-서밋은 내 아이를 보내고 싶은 학교인가?

 

만약 이 질문을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YES라고 답할 수 있을까? 이 책에 나와있는 교육방법, 교육철학, 그들의 교육적 효과와 업적만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나는 YES 라고 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서밋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아이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아이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준비시키려고 할 때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로 네 가지를 제시한다. 

성공습관(Successful Habits), 호기심 중심의 지식(Curiosity-Driven Knowledge)‘ ’보편적인 역량(Universal Skills)’ 구체적인 다음 단계(Concrete Next Steps) 이렇게 네 가지 요소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좋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는 이 4가지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성공습관(Successful Habits) 을 쌓아 자신감을 키우고,  호기심 중심의 지식(Curiosity-Driven Knowledge)‘이 지속적으로 학습 의욕을 고취시키고  보편적인 역량(Universal Skills)’ 을 익히며, 구체적인 다음 단계(Concrete Next Steps) 을 구상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점검해본다면 아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했는지, 대학 입학을 넘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더 나은 삶으로 갈 준비가 되었는지 미리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① 성공습관(Successful Habits)

성공습관을 개발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서밋 스쿨에서는 열여섯 가지 블록 쌓기 방법을 사용한다. 학습을 구성하는  이 16가지 블록은 서밋이 추구하는 교육에 매우 유용한 도구라고 한다. 왜냐하면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단순화하고 도식화해서 아이들의 생각 속에 집어넣을 수있기 때문이다.  

 

 

16가지 블록 쌓기 모형에서 보면 하위 요소인 건강한 발달(애착, 스트레스 관리, 자기통제)이 충족이 되어야 그 상위 단계인 학습준비도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피라미드 쌓듯이 블록을 쌓으면 최상위 단계인 독립성과 지속성 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그리고 이 단계는 대부분의 부모가 원하는 아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아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 혼자 힘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 때 필요한 것이 성공 습관이며 이 성공습관을 갖추어야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삶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그 하위 블록 요소들이 흔들린다면 결코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 하위 단계들을 충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자기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 

 

② 호기심 중심의 지식(Curiosity-Driven Knowledge)

호기심 중심의 지식은 콘텐츠를 습득하는 과정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강요된 호기심이 아닌 진짜 호기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짜 궁금해서 알고 싶다는 욕구에 의해 배움은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밋 스쿨에서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선택 과목을 제공한다. 연극, 영화, 사진, 로봇공학, 리더십, 심리학, 과학, 기술, 공학, 미술, 수학, 경제학, 경영학, 웰빙, 미래 설계, 정치, 사회 등 현실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또한 학생들은 기업에서 일선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며 가치 있는 직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아이들은 호기심과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학습하고 '배우는 방법을 배우기'를 통해 학습을 더욱 친숙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다. 
 
 

③ 보편적인 역량(Universal Skills)

보편적인 역량은 서밋 스쿨에서 체계화시켜 측정할 수 있다. 스포츠 선수나 기업가처럼 직업에 따라 요구되는 중요한 역량은 다를 수도 있지만 보편적인 역량으로 서밋 스쿨에서는 의사소통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을 제시하고 그런 보편적인 능력 함양을 목표로 해서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이 성공적인 어른이 되는 데 필요한 보편적인 역량을 확보하게 해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매일 매 순간 그들이 보편적인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p.288)

 

④ 구체적인 다음 단계(Concrete Next Steps)

구체적인 다음 단계는 아이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단계이다. 아이들은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과 연결된 잠재적 삶의 진로를 다양하게 탐색하면서 구체적인 다음 단계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업이나 대학교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의 삶에서 그 길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서밋 스쿨의 시작과 그 여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대화는 바로 아이들로부터 시작됐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 ‘자기주도’ ‘깊은 사고협업하기 라는 네 가지 과정을 통해 시작됐다. 아이들을 읽기와 쓰기 이상의 것을 할 수 있게 준비시킬 수 있다고 믿는 어른들로부터 시작됐다.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할 권리,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근본적인 약속을 믿는 우리로부터 시작됐다. 아직은 많은 아이들에게 성취하는 삶으로 가는 문이 잠겨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잠긴 문의 경첩에 스크루드라이버를 대야 한다. (p.330)

 


 

3. 나가며

어쩌면 서밋 스쿨 또한 완벽한 학교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더라고 지금의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하나의 희망적인 대안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며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하고자 그 방법을 모색하고 지난 16년 간 그 방법을 실천해오고 개선해왔다는 점에서 서밋 스쿨은 앞으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나는 서밋 스쿨에서 찾았다. 그 학교가 훌륭한 이유가 교육제도가 훌륭해서, 교육방법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나는 그 학교에서 희망을 보았고, 진정으로 아이들을 미래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 같은 아이를 위하는 마음을 보았다. 축복받은, 선택받은 아이들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그 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들이, 인종, 성별, 출신, 가정환경 등 모든 면에서 차별받지 않고, 아이 한명 한명의 미래와 인생을 소중히 여겨 모두 4년 제 대학에 진학시키고자 노력하고 애쓰는 모습에서 교육에의 희망을 보았다. 더군다나 대학 진학시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적응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살피고 끝까지 도와주려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교육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서밋 스쿨의 성공 신화는 교육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평생 진정한 교육의 길을 모색한 한 여성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교육에 열정과 열린 사고가 없었더라면 서밋 스쿨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녀의 열정과 노력, 헌신에 감사함을 표한다. 그녀는 교육의 발전을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고분분투하며 서밋 스쿨에서 이뤄낸 교육적 성과와 방법들을 다른 학교들과 나누고 있다. 그녀는 희망한다.  모든 학교들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할 수 있기를 말이다. 

그런 그녀의 노력과 열정과 교육철학 속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이 나아갈 방향과 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우리도 이런 자각과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부모도, 선생님도, 정부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석수장이에게 가서 돌에 실금조차 가지 않지만 그가 백 번의 망치질을 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백한 번째 내리칠 때 돌은 두 쪽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나는 안다. 돌을 두쪽으로 쪼갠 것은 그가 내리친 백한 번째 망치질이 아니라 지금까지 해온 모든 망치질이라는 것을. (p.316)

 

 열정이 가득한 교육자이자 어머니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학교 네트워크 서밋퍼블릭스쿨의 공동창업자 겸 CEO. 10년간 교사, 교육 관리자, 캘리포니아 전역의 공립학교 리더로 일했으며 2003년부터 서밋스쿨을 이끌어오고 있다. 다이앤 태브너는최고의 교실에서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자녀가 미래에 대해 준비된 사람이 될 수 있게 돕는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녀의 개인적인 인생 이야기와 서밋스쿨의 탁월한 멘토 선생님들과 다양한 학생들이 힘든 노력을 통해 얻은 교훈을 공유한다. 모든 아이들이 성취하는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교육 철학을 제공하며 그 지혜를 나누어준다.

<사진출처: https://2019ilc.sched.com/speaker/diane_tavenner.1zyvbd7u>
<저자 소개: 예스24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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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가족'으로 인한 상처와 '가족'을 통한 용서와 치유 | 서평단 책리뷰(2021년) 2021-03-15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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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구원의 날

정해연 저
시공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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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와 '가족'을 통한 용서와 치유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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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정해연 저/ 시공사

2021년 2월 4일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와 '가족'을 통한 용서와 치유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1. 들어가며

 

둘째 아이가 5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식료품과 생활용품 구입을 위해 대형마트를 갔다. 그 당시 둘째는 여기저기 호기심이 많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온 사방을 마구마구 뛰어다니던 천방지축 못말리는 남자아이였다. 오랫만에 간 마트나들이라 신이 났던지 온 사방을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뛰어다녔고, 아이가 워낙 빠르게 달려 나는 아이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남편 보고 아이를 챙기라고 하고 나는 첫째 아이와 생활용품 쇼핑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아이가 없어졌다는 남편의 전화였다. 잠시 물건을 구경하던 사이에 자신의 옆에 있었던 아이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자마자 나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마트 여기저기를 달리며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함께 이러다 아이를 못 찾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과 절망감이 밀려왔다. 정말 그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이를 잃어버려 평생을 고통과 슬픔 속에 지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그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그들이 내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때의 절망적이고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아이를 찾았다는 남편의 전화, 그 순간 그것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드디어 만난 아이,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으면 아이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런 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울어버렸다. 아이에게 엄마가 미안하다며, 너를 챙기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자꾸만 말했다. 그렇게 찾은 둘째 아이와 함께 오늘도 나는 소중한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잊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그 몇 시간 아이를 잃어버렸는데도 하늟이 무너진 듯 너무나 절망적이고 슬펐는데, 3년 동안 아이를 찾아 헤맨 그 부모들 심정은 오죽할까. 저자는 이 책을 실종 아동 부모들의 상처와 고통을 모티프로 했다고 한다. 아직도 잃어버린 아이를 찾고 있을 그들의 슬픔과 절망이 내 가슴에도 전해지는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TV 속 광고를 통해, 거리 속 전단지를 통해 접했던 실종 아동과 실종 아동의 가족들의 아픔에 무덤덤하던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의 현실과 고통을 여실히 느끼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같은 엄마의 입장이었기에, 육아의 고통을 여실히 느꼈기에 이야기 속 '예원'의 마음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 자신은 자신을 나쁜 엄마라고 말하지만, 이제야 나는 안다. 그녀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했는지, 좋은 엄마가 되고자 했는지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가족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다시금 나와 내 아이들, 남편의 모습을 둘러보고, 지금 현재 우리 가족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고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2. 책 속으로

 

스릴러 소설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일까. 이야기는 보트놀이를 하는 남녀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즐겁게 보트놀이를 하며 데이트를 즐기던 한 여자가 물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게 된다. 

노에 걸려 떠오른 것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물고기들에게 뜯어 먹혀 백골화된 두개골이었다. 그것은 아주 작았다. (p.8)

물 속에서 발견된 어린아이의 시체는 과연 누구의 시체인가? 이 의문에 대한 경찰이 조사하게 되고 이 소식은 한 남자에게 전해진다. 그 남자는 3년 전 아이를 잃어버린 실종 아동의 아빠 선준이였다. 경찰은 선준에게 그의 잃어버린 아이인 이선우 군의 시신으로 추정된다고 전하게 된다. 그러면서 경찰은 선준에게 이런 사실 또한 알려준다. 

유골과 함께 발견된 목걸이입니다.”

3년 동안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헤매었고 지금도 아이가 살아있을거란 희망으로 겨우 버티는 선준에게 충격과 절망을 준다. 왜냐하면 그 목걸이는 선우의 목걸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이미 몸과 마음, 정신까지 망가져서 정신요양병원에 입원해있는 아이의 엄마 '예원'이 있다. 아이를 잃어버리고서 온전하게 살아갈 엄마가 있을까만은 예원의 정신적인 장애와 발작,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심신상실 등 이미 그녀는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듯 하다.

예원은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가 딛고 선 땅이 조금은 안정될지도 모른다는 선준의 희망도 무너지고 있었다. (p.36)

너무나 괴로워하고 망가져버린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온다.누구보다 그 슬픔과 고통을 공감하고 잘 알기에 그녀의 아픔이 내 가슴에 전해져오는 듯하여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실종 아동의 부모님 선준과 예원은 3년의 시간을 힘겹게 버티고 오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그들은 무너지는 자신들을 일으켜세우는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꼬물꼬물 헤엄치다, 앞다리가 쑥, 뒷다리가 쑥, 똥통에 빠져버렸네 (p.38)

이 노래는 잃어버린 아이 선우가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선우의 노래였는데 그 노랫소리가 예원이 입원한 병원 복도에서 들려온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선우가 이 병원에 있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을텐데. 그렇다 그 노래는 그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선우와 같은 또래의 나이였던 '로운'이라는 아이가 부른 노래였다. 로운이가 선우의 이 노래를 아는 것도 충격적이고 놀라운데 아이는 더욱더 놀라운 말을 한다.

"울림 기도원. 금평 살 때 다녔어요. 거기 선우 있어요. (p.64)

"정말? 정말이야? 네가 우리 선우를 봤다고?" 

선준과 예원은 로원에게서 다시금 선우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선우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로서는 저질러서는 안 되는 죄를 범하게 된다. 자신의 아이를 찾고자 다른 사람의 아이인 로운을 유괴한 것이다. 

 

"이 아이를 돌려보내면 안 돼."

그래야 내 아이를 찾을 수 있어."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을 걸고 아이를 찾으려는 부모와 그 아이를 기억하는 유일한 아이와의 필연적이고도 아이러니한 동행은 시작이 된다. 이 동행 전에는 주로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절망적인 삶의 모습과 고통, 아이를 찾으려는 노력 등의 모습이 주가 되었다면 후반부에는 아이의 유괴를 통해 함께 한 로운과 선준, 예원의 불편한 동행과 사이비 종교단체일지 모를 기도원을 찾는 미스테리한 추적의 과정들이 이어진다. 어느 새 의도하지 않았고 아이를 유괴할 뜻도 없었는데 어느새 유괴범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 부모. 아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유괴범이 되는 것도 참을 수 있는 것일까. 얼마나 그 아이를 찾는 것이 간절하면 자신들의 인생이 망가져도 괜찮은 것인지, 아이를 찾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의 목숨 또한 바칠 수 있다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런 절망적, 극단적인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특히 기도원에 보낼 돈을 마련하고자, 자신의 아파트 추락으로 상해진단보험금을 받으려고 했던 예원의 모습을 보고, 아무리 간절해도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에겐 저런 행동을 할 만한 용기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들과 불편한 동행을 자발적으로 계속하는 아이, 유괴라고 하지만 기꺼이 유괴당한 아이, 오히려 그 아이는 이들의 유괴에 감사하고 있는 듯하다. 병원으로 돌려 보내주겠다는 선준의 말에 아이는 오히려 싫은 내색을 한다. 오히려 그 유괴범들에게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한다.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가자고 해서 왔고, 접으라고 해서 접었짆이. 시키는 대로 계속 기다렸잖아. 그런데도 날 버리는 거야? (p.105)

'관심받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로운이었다. 열 여섯 살의 나이에 로운을 낳은 로운의 엄마는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에겐 로운의 존재가 버겁기만 하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도 로운의 탓이라 생각하며 아이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그러나 로운은 엄마의 관심이 필요했다. 어느 날 사고로 거실에서 넘어져 테이블에 부딪혀서 열 여섯 바늘이 꿰매게 된다. 그 때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던 엄마의 모습이 로운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로운은 엄마의 관심을 끌고자 그 때부터 자해 증상이 생겼고 점점 그 정도가 심해졌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였을 뿐이다. 그렇게 자해를 하고 자폐증상까지 보이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었던 아이를 엄마는 정신요양원에 보내버리게 된다. 아이가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 엄마가 면회도 잘 오지 않고 아이를 보고도 사랑스런 미소 하나 짓지 않고 냉랭하게 대한다. 그런 엄마였기에, 자신을 감금하는 병원이었기에 로운은 아마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선준, 예원, 로운 이 세사람은 이렇게 상처받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선우를 찾겠다는 목표 아래 하나로 뭉칠 수 있었고,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같은 분위기와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가족이라는 안정된 울타리 속에서 로운은 자신이 지금까지 받아오지 못한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며 다소 안정감과 평안함, 행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아이를 결국 찾게 되고 다시금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해피엔딩의 결말일 줄 알았는데, 여기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이 반전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이 반전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반전은 선우가 그동안 부모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이 기도원에서 생활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선우를 만나 기뻐하는 예원에세 선우는 차갑게 말한다.

그럼 나 왜 버렸어?“ (p.237)

 

처음에 이 문장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버리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이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던가, 엄마가 아이를 버린 것이었다는 말인가. 그러면서 왜 잃어버렸다면서 3년 간을 정신없이 찾아 헤맨 것일까. 결코 저자는 이야기를 평범하게 만들 생각이 없다. 만약 이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되었다면 이 장면이 단연 베스트 씬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이 3년 전 진실의 과거로 되돌아간다. 선준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와 그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예원의 아르바이트, 생활고로 인한 고통, 선준에 대한 원망과 미움 등으로 인해 예원은 그 모든 스트레스와 분노를 아들인 선우에게 퍼부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예원 또한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화를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에게 퍼부었고 그 아이는 그것으로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폭죽놀이를 억지로 보러 간 그 날 공원에서 말을 안 든는 아이에게 화가 나서 자신도 모르게 놓아버린 아이의 손...그 손이 영영 이별이 되고 3년 간의 고통의 시작을 가져올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렇게 자신의 손을 일부러 놓아버리고, 자신을 놔두고 등 돌려서 가버린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는 무엇을 느꼈을까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고, 자신은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와 엄마의 이별은 시작되었고 아이는 유괴당하여 기도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매일 매질과 학대를 당하면서도, 엄마,아빠에게 가고 싶지만, 자신이 돌아가면 엄마, 아빠가 죽게 된다는 거짓말에 세뇌당하여 3년의 시간 동안 갖은 학대와 폭행과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보내왔다. 아이의 그 동안 아픔과 슬픔이 전해져와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온다. 그렇게 서로의 오해와 고통의 시간 속에서 엄마와 아이는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각자 치유와 용서의 시간을 가진다. 예원은 선우를 유기한 것과 로운을 유괴한 것에 대해 징역 2년형을 받아 복역하게 된다. 그렇게 2년 간의 시간 동안 예원도, 선우도 각자의 시간 동안 서로를 용서하고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선우가 예원의 손을 잡는다. 

"같이 가요, 엄마."

 선우가 일어서며 예원의 손을 잡아당겼다..

(....) 예원이 선우의 손을 움켜쥐었다. (p.282)

 


 

3. 나가며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면서 그 아픔과 슬픔이 가슴에 전해져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 없었다. 그 먹먹함에 한 동안 허공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과 고통들이 나도 겪고 있는 듯 마음이 아프고 슬프고 괴롭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 속 예원은 어느 덧 내가 되어 있었다.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서 잠시 아이 손을 놓아버린 예원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힘들면 그렇게도 하지 않나. 나 또한 아이가 마트에 갔을 때 떼쓰고 막무가내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할 때 그런 아이 손을 놓은 적이 있었다. 너무나 짜증나서 나혼자 발걸음을 옮겼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 아이가 울면서 따라오고, 나도 내 잘못을 깨닫고 아이에게 다가갔고 아이와 나도 울었었다. 서로 미안하다며 서로 사과하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아이를 키울 때 힘들었던 기억들, 아이와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아이를 잃어버려 찾아 헤맸던 기억도, 아이에게 짜증내고 화풀이했던 기억도, 우는 아이를 혼냈던 기억들도 아이에게 그렇게 미안했던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고, 그런 내 행동들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하는지, 부모라고 하지만 제대로 부모 역할 특히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 가족으로 인해 아이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음을 알게 되고 그 상처 또한 가족이란 이름으로 용서받고 치유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그리고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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