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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 바다와 나비 2021-01-24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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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백수린 저/주정아 그림
마음산책 | 201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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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서 출발해 12월로 끝나는, 달력 같은 느낌을 주는 짧은소설집이다. 짧음이 주는 경쾌함 때문일까 다소 우울할 수 있는 이야기도 사랑스럽게 입을 맞춘다.

 

1 / 어느 멋진 날

 

 딸들을 해변으로 데리고 나가 일광욕을 하는 행위가 어느 곳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여자(엄마 아닌)는 자신의 발목에 시선을 두는 옆 파라솔 남자와 문학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들뜬다. ‘아름답다는 말에 모두가 녹거나 그것을 곱씹으며 자신의 몸을 다르게 바라보는 건 아닐 테다. 어쩌면 그날의 그녀에게 그 말은 너무나 긴요했고 그런 이유로 멋진 날’, 괜찮은 파인 데이로 기록된 게 아닐까.

 

2 / 우리, 키스할까

 

 아, 풋풋하고 싱그러워라.

 누군가는 접촉하고 싶어 애가 타고 상대방은 아직 승낙할 준비가 안 됐다. 한때 처음이었던 떨리며 반짝이는 순간들! 백수린 소설가는 관계의 권태와 위기를 둘이 아닌 제삼자와의 일화를 통해, 시야를 밖에 둠으로써 자연스레 극복하는 화해를 좋아하는 듯하다. 외부적인 자극 없이는 파국에서 벗어나거나, 소생할 자구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일까. 상대가 다시 참을만해지고 사랑스러워지는 심경 변화와 적절한 캐치가 끝나가는 사랑을 가끔은 소생시킨다.

 

 어느 책에서 외로움에는 전염성이 있어 그런 감정을 차단하려면 주위 세 명은 외롭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가을 오후 근린공원이 더욱 알록달록한 이유는 정자 위 청소년 커플 때문일 것이다. 시작하는 연인을 보면 소원한 관계를 풀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것도 비슷한 영향이 아닐까.

 

3 / 완벽한 휴가

 

 내 경우 어디로 잘 떠나는 사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환경 변화에 예민하여 불면하고 사람이 밀집된 공간이나 소란스러운 곳을 피한다. 별난 것보다는 무난하고 익숙한 의식주를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우리가 행하는 결정과 선택 중 하나가 가정을 꾸리는 것일 테고, 가족 소풍이나 가족 여행으로 추억을 쌓는 노력일 것이다.

 

 주인공은 적어도 호기롭게 물살을 가르던 늠름한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어디로든 함께 떠나고 싶은 동반자가 곁에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공항 카페와 식당에서 보내는 여름휴가여도 완벽할 수 있으니.

 

4 / 새벽의 온기

 

# 피로한 얼굴을 감추고, 환하게.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아무리 고단하고 추운 날에도 우리를 잠깐이나마 웃게 하는 거니까, 꽃처럼 피어오르게 하는 거니까. (64)

 

 나도 잘 아는 이야기다. 한밤중에 깨어 혹은 온기나 체온을 나눌 누군가가 너무 절실할 때 강아지 특유의 포근하고 말캉말캉함은 우리를 기꺼이 녹여준다. 굳어 있던 표정마저 풀어지며 터져 나오는 웃음꽃. “너어엉~”

 

 깊은 잠을 앗아가고 주인공을 예민하게 하는 추위와 온갖 걱정과 곱씹는 씁쓸한 말들이 남일 같지 않다. 어디선가 몸이 따뜻해지면 우울감도 낮아진다는 글을 봤다. 올 겨울 유독 추위를 느껴 홍차와 박하 차와 온풍기를 구매한 나는 <새벽의 온기>를 내 일기처럼 받아 읽었다.

 

5 / 봄날의 동물원

 

 연일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하는 양육자와 돌봄 종사들에 대한 보도로 들썩인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거야말로 일종의 일 텐데. 남의 집에 맡겨지고 조숙함이 일찍이 몸에 밴 아이. 가족 소풍과 가족 여행을 추억으로 간직한 사람은 아마 대부분 행복한 유년을 보냈을 것이다.

 

 생명체로 가득한 동물원에서 주인공은 동물 사체를 박제하여 영원히 남기는 일을 한다. 모든 것이 한시적이고 언젠가 끝나는 세상에서 어떤 일은 시간을 연장하는 신의 손길이 되기도 한다. 그런 그를 친척 누나가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겨우 세 살 많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누나가 그를 방문했던 어느 쓸쓸한 날의 기록이다.

 

6 / 누구에게나 필요한 비치 타올

 

# 칼칼한 바람이 부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상준은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 생각할 조금의 여유마저 우리에게서 박탈하는 것은 대체 무얼까 생각했다. 우리로 하여금 끝내 자신의 고통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그것은. (중략)

이 세계는 사람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고 끊임없이 비참하게 만들며 타인에게 잔인해지도록 종용하지만, 이런 세계에 살더라도 그가 아내에게 주고 싶은 것은 아직 사랑뿐이니까. (101-102)

 

 우리는 타인과 나의 생활과 처지를 비교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익숙하다. 내가 조금 더 나아야 부릴 수 있는 여유와 포용력을 은근히 즐긴다. 대학원생 부부라는 설정 자체가 보통 그 나이대의 직장생활이 주는 경제력과 안정감과는 동떨어진 신분을 암시한다. 이런 둘의 조합이란 넉넉하지 않아도 소소한 행복의 교감과 고급진 대화가 가능하다. 안전하게 둘이 사는 섬.

 

 그러나 한 명이 육지에 먼저, 자주 드나들며 다른 바람과 물건과 화폐를 묻혀 나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대로 학생이었던 신분과 강의자인 현재 사이에 끼어 힘이 들고, 학위수여나 학계 진출이 상대적으로 늦어진 사람은 자격지심과 모욕감에 시달린다. 벽이라도 좋으니 수업을 하는 자격을 갖추고 싶은.

 

 이럴 때 이기는 사람은 상대가 좋아할 먹거리로 냉각을 푸는 자가 아닐까. 갑자기 신촌 포장마차 떡볶이가 사정없이 먹고 싶어진다.

 

7 / 어떤 끝

 

 관계가 깊어지고 오래되면 그에 따라 부과되는 다음 숙제가 있다. 결혼이나 임신 같은. 이때 상대의 친숙한 호의나 다정한 이마로는 충분하지 않는 덜컹임이 발생한다. 커플의 오주년 기념 여행은 뜻하지 않게 이별여행이 된다. <어떤 끝>을 읽으며 알랭 드 보통(의 철학 연애소설)이 생각났다.

 

 오년 숙성된 사랑, 하지만 그것은 해묵은 것일 수도 있다. 새벽잠을 줄여 다니던 어학원에서 회화 파트너로 만나 함께 해온 세월이 권태라는 방지턱을 넘지 못한다. 첫 섹스를 나눴던(최상의 오름을 선사했던) 도쿄는 그들의 관계를 갱신할 수 있을까.

 

 남자의 무던함과 달리 여자는 이미 저물기 시작한 사랑(의 변색)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지금은 아닌 그 어떤 것이, 더는 다음을 기약할 수 없게 이끈다. 이별의 장면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먹먹하다.

 

8 / 비포 선라이즈

 

엄마라는 단어와 엄마와의 여행이라는 말을 듣는 내 반응과 온도가 수년 전과는 확실히 다르다. 내 경우 혼자된 엄마가 일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속상해 항시 곁을 지켰었다. ()나 도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리로. 종종 조카까지 끼워 여행과 문화생활을 기획 추진했었다. 어려 내가 누리지 못했던 세상과의 다양한 경험을 조카에게 마련해주는 동시에 이제라도 잃어버린 엄마의 꿈을 되찾아주고 싶은 심정에서.

 

 그러나 꼭 붙어있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함께 한 세월이 많다보니 싫은 부분까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물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라고 믿었던 나의 성향도, 살아온 패턴도 어쩌면 나의 결정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뒤늦은 자각이 들었다. 황정은 소설의 혼잣말처럼 왜 당신의 밥상 앞에 앉은 자식이 저였나요? 아니었다면... 아니었더라면.. 자유롭다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부분 엄마가 접고 싶은 대로 접혀진 내 색종이 인생.

 

 그래도 함께 한 여행과 문화생활이 여명처럼 퍼져온다.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

 

9 / 언제나 해피엔딩

 

# 그리고 잠시 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끝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고 다만 여기, 여기의 온기에 집중하기 위해 아직은 따뜻한 차를 마셨다. (157)

 

 스물다섯부터 서른하나까지 오로지 책과 연애했고 학업에만 매진했던 나. 그 시절의 나도 때때마다 불안했고 걱정이 넘쳤으나 넘실대면서도 그럭저럭 무사히 산들을 넘어왔다. 그런데 그 시절에만 허락되는 눈부시게 투명한 웃음과 울음을 놓친 데에 대한 애석함이 한번씩 밀려들기도 한다.

 

 그리고 십 삼년간 이어진 강사생활. 늘 모든 걸 짊어 매고 다녀야 했던 뚜벅이. 늦은 오후 강의는 내 순서가 된 적이 없기에 교내행사에 따른 결강은 거의 해보지 못했다. 오전 강의가 있는 날에는 거의 불면의 밤을 보냈고 이동 중이나 쉬는 시간에도 교재를 손에서 놓지 못했었다. 나에게 허락된 한정적인 체력과 자원과 활기를 그렇게 다 써버린 듯하다..

 

 남들보다 빨리 찾아온 노화에 일순 삶이 허무하고 막막해져 그냥 확 포기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밤들이다. 그 사이를 파고들어 어떻게든 빛()을 찾아내는 작가의 필력이 고맙다. 우리가 스치듯 아는 사람, 특히 일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정확하고 싸한 박 교수가 건네는 그윽한 차에 부유하던 마음이 잡힐 줄. 누가, 언제 가라앉은 마음을 끌어올려줄지 알 수 없기에 여러 사람을 두루 주변에 두는 편이 낫다. 지금 내게 필요한 딱 그 온도의 감싸기()는 반드시 가깝고 오래되었다고 줄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살아보니 그렇다.

 

10 / 여행의 시작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남자는 가족()이 있는 프랑스로 무작정 떠난다. 긴 비행시간과 낯선 문화(푸대접)를 겪으며 불안에 떨다가도 애써 태연한 척 군다. 아내 없이 맞이하는 삼시세끼와 밤이 낯설어 충동적으로 나선 여행에서 그 나라 말을 모르는 그의 이 있기나 할까. 혹시 딸을 놓쳐 국제 미아가 될까봐 보는 이가 다 조마조마하다. 아내가 선망했던 이국의 땅, 그리고 돌아올 생각이 없는 딸이 머무는 그곳에 그의 자리는 아마도 없겠지. 그래서 여행?

 

11 / 오직 눈 감을 때

 

 이십 년 만에 만난 옛 애인과 예전 습관대로 음식과 술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거린다. 밖은 비가 내리고 두 사람에게 서로 집중되는 시간. 너무나 가진 게 없던 스무 살. 아쉬움과 그리움이 남아 여자는 만남 제안에 응하고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거겠지. 상권이 죽고 불 꺼진 거리에서 추억의 장소는 점차 진귀해지는데 상호명이 바뀌더라도 맛과 향이 그곳에 지속되면 좋겠다.

 

 마흔에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데... 그 평화 협정이 얼마나 갈까. 주인공이 비혼주의자든 뭐든 계속 자주권을 보유했으면 싶다.

 

12 / 참담한 빛

 

 세월호 탑승객 전원 구조 소식이 보도되던 시각을 우리는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아침의 안도가 처참한 무력감으로 뒤바뀐 밤. 그 긴 하루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충격이 더 컸음에도 남의 일처럼 여기거나 쉽게 동정하고 끝내 버리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았다. 누군가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실과 고통.. 어린 부모의 낙관과 두려움이 복잡한 심경을 부른다.

 

 어린엄마는 예몽을 꾸고, 예비아빠는 데이터부족을 핑계 삼은 게 아닐까. 건강하게 건재함이 마땅한 아이들. 그것이 당연한 사회가 아니라 소망이나 희망이 되면 참담하다. 아이만이 켤 수 있는 미래의 환희와 축복과 역사 순화력이 있다.

 

 그나저나 이들 부부의 아이가 성인이 되어도 부부는 겨우 마흔이다, .

 

13 / 아무 일도 없는 밤

 

 표제작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의 뜻이 헤아려지는 글이다. 고급 노인병원의 간병인은 어느덧 환자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무심을 지나 무념무상으로 굳어져 버린다. 돈벌이를 위해 타국에 와서 지냈던 남편이 돌연 객사한 뒤로 더 그러하다.

 

 폭설이 내린 밤, 산소마스크를 낀 채 죽어가는 노인 앞에서 간병인은 이전과 달리 기도하는 마음이 물결을 인다. 자식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시라고. 그리고 꺼져가는 생명에 불씨를 지키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홀로 무섭게 떠나는 일 없도록 말이다. 마지막에 곁에 아무도 없을까봐 우리는 두렵고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죄스럽다. 침대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시끌벅적하게 태어나 갈 때는 조용히 가는 인간의 탄생과 임종을 그린 <아침 그리고 저녁>이 일순 떠오른다. 길고도 짧은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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