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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만 읽음 | 녹는 중(Be Warm) 2022-01-17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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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진영,윤대녕,손홍규,안보윤,진연주,정용준,황현진 공저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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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진영의 소설에 대한 김화영 평론가의 다소 어려운 글은 영화관, 술집, 산책, , 폐허 등이 갖는 공통적인 상징성을 상기시킨다. 이들은 밀실이거나 어둠과 물기가 감도는 곳 또는 자기 안으로 숨어드는 최적의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외부적인 정확하게 정렬된 칼 같은 (상징계적) 시간이 멈추고, 그것을 거스르는 나의 템포와 속도를 되찾는 (상상계적) 시간인 것이다. 산책도 자유로이 트인 걸음이라는 점에서 같이 묶기가 가능하다.

그 공간은 직립한 인간의 시각적, 의식적 공간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비물질적이고 원초적인 냄새와 정답게 부르는 목소리가 지배하는 몽상과 보호와 안식, 그리고 진정한 만남과 통일의 공간이다. (42-43)

 

       

 우연한 재회보다 해후라는 단어에는 남다른 무게가 실린다. 최근 앙상이라는 단어를 유심히 살폈던 터라 시선을 끈다. 윤대녕의 소설을 읽지 않은 나는 엇갈림이라는 단어를 보고 소설이 時計를 말하는 줄 알았다. 한편 욕망은 그 안에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권희철 평론가의 성적 판타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문제 제기는 우리가 시간을 두고 풀어갈 공동의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과 망각의 경계. 사라진 것들과 사라질 것들의 경계를 표시한다는 듯이. 그 한가운데서 양쪽을 뒤섞고 서로에게 유입시키는 어떤 힘이 우리의 삶에 개입해 들어올 때를 기다리면서 항상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는 듯이... 하지만 이제 와서는 불필요해진 그 사라진 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을 이뤄온 거의 전부이고, 우리의 미래라는 것도 사라질 것들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89-91)

 

       

 손홍규의 소설에 대한 전경린 소설가의 리뷰는 대문 밖 삼촌을 향한 곰삭은 오마주를 당장 읽고 싶게 자극한다. 소설가의 글은 순대국 속 순대 한 개로도 유혹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입체적인 인물 평가와 사랑이라니?”라는 되물음(할큄)이 소설을 들이키고 싶게 한다. 그리고 시멘트블록이 굳는 5(90%)과 그 후 삼십년은 근래 일어난 아파트붕괴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안보윤의 소설에 관한 서영인 평론가의 글은 의미심장하다. 곳곳에 도사리는 폭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비롯하여, 나를 경유하는 가까운 폭력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살아서 존재하는 生存이 나 이외의 존재들로 인해 널뛰는 처지를 인간의 숙명으로 단정 짓고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적어도 폭력에 분노하고 정의를 주장할 수 있는 마음(172)”을 지킬 수 있는지 숙고한다. 폭력을 마주하는 데에 남다른 안 소설가가 방조한 폭력을 향해 어떤 정의로운 분노를 그릴지 궁금해진다.

 

       

 진연주의 소설에 관한 차미령의 리뷰는 소설가 특유의 부조리성을 피력한다. 개인적으로 노견을 떠나보냈고 이른 노화를 겪는 내게 걷기굳기로 풀어내는 삶의 경로는 암시적이면서도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좋은 리뷰에 감화되어 언젠가 끝이 있음을 복기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걷는 운동성’(“과정 그 자체의 소중함”)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늙어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이라는 수식어의 차이가 있을 뿐, 존재는 단지 내일보다 덜, 어제보다 더 늙을 수만 있다. 결국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이 죽음을 기다리며. (203)

 

       

 정용준의 소설에 대한 김금희의 리뷰는 읽기도 전에 소설에 반하게 이끈다. 나의 슬픔(일례로 한때 뭐였으나 이제는 아닌 상실’)은 이미 있었던 헌 슬픔의 유형이나 나는 초행자인 것이다.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는 데 익숙한(슬픔에 갇히는) 나는 최근 슬픔도 조각케이크처럼 나누어 먹기가 가능함을 경험했다. “대화가 시작되면서 둘은 서로의 슬픔에 대한 질문자인 동시에 답변자가 된다(247).” 기적과도 같은 낮고 부드러운 이해는 살아갈 격려가 된다. 비록 악기 연주는 짧더라도 허밍으로 남아 언제든 다시 부를 수 있다. 이때가 바로 슬픔이 심플해지는 ㅅㅍ의 순간이다.

 

       

 황현진의 소설에 대한 황 평론가의 글은 권희철의 은근하고 단출한 돌려까기와는 다르게 정면 충격을 가한다. 이전의 유사 다른 소설들과 우위를 두고 비교한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주거 불안이 갖는 특수성과 함께, 동거로도 구제되지 못하는 공포를 충분히 담았다고 보이는데도 그것을 강조하기보다는 일기의 산발적인 비명으로 적시한다. 집다운 집을 갖지 못함은 나다운 나, 삶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함과 직결되는 현시적 위태로움인데 그는 왜 하류계급혹은 위트를 운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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