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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 ○ 그니 리뷰 2021-10-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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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이사라 저
문학동네 | 2018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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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클 ]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희로애락

가슴을 버린 지 오래인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사랑이 폭우에 젖어

불어터지게 살아온

네가

나에게 오기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눈물이 가슴보다

먼저 북받친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뒷모습을 보면서

왜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

끝내

가슴속이어야 하나

 

[ 뭉텅 ]


 

살다보면 뭉텅 내려앉는 순간이 있다

 

나는 없어지고

내 그림자가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불투명한 심연으로 무너진

나를 다스리는 시간들이 긴장을 한다

 

계절도 흘러가면서

배경도 흔들고

녹음 지면서 나무들 뭉텅 내려앉고


물위는 투명하고

짙은 햇살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동안

 

그림자 속 진심이 불투명한데

 

뭉텅 가슴 아픈

 

 

[ 그리운 세상 ]


 

햇볕 따스한 오후 세시의 벽에 매달려 있는 그림자들

그들 무게에 늘어지는 시간들

 

문들 담쟁이들

사람들

공기들 작은 벌레들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느슨해진 벽을 뚫고 나와

서로를 쓰다듬으며 털어내는

살아 있는 것들의 먼지들


 

세상의 작은 것들에게 위로가 되는

따스한 먼지가

내 손등에 한 줌 햇볕으로 다시 내려앉고

 

그래서 다시 한번 살아갈

눈 코 입 얼굴 이마 눈썹 속눈썹 목덜미 들이

웅웅거리며

 

한참을 헤매지 않고서도

그리운 세상 속으로 모여든다

 

 

[ 홍조(紅潮)한 세상 ]


 

한 잔의 둥근 달이 뜬다

 

부끄럽게 조심스럽게 떠올라

다정하게 한밤을 감싸안는다

 

두 눈빛 사이에 뜨는

붉게 물든 한 잔

 

두 가슴 사이에 뜨는

충만한 한 잔


 

연민 사이에서 멈추는

한 잔의 눈물이 뜬다

 

우리 사이에서

무르익는 공간이

누룩이든 첫 만남이든

 

노을빛처럼 푹 익을 때까지

끓고 또 끓어오르는

홍조 한 세상을

 

출렁 한 잔으로 지나간다

 

 

[ 한숨 자는 사이 ]


 

분노가 일 때는 한숨 자고 생각하라는 그대여

그대로 인해 오늘 하루도 난 잠만 잤다

 

잠 속에서도 잠만 잤다

 

잠깐 깨어났어도 눈은 떠지지 않았고

분노는 눈꺼플 위를 현란하게 날아다녔다

 

밖은 출렁이고

안은 침몰중이고
 

비바람은 불고

바람끼리도 못 믿겠다고 운다

우는 바람들이 우는 일 말고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대신 생각해주어야지 마음먹다가도

나도 따라 울고 싶어지는데

 

한잠 자는 사이에 한숨은 너무 깊게 흐른다

 

 

...  소/라/향/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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