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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작별인사

김영하 저
복복서가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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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 리뷰 한편을 써보겠다고 이렇게 앉아 있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빈 컴퓨터 모니터... 가 아니라 설거지거리, 빨래통의 빨래,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들... 후딱 후딱 해치우고 앉아서 모니터를 보는데 벌써 9시다. 한 것도 없이 시간만 훌쩍. 닉네임답게 오후에 쓰려고 했는데 밤의 기록이 되어버렸다.

2시간만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 아예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말도 안 되지만 늘 생각한다.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만 그런 건 아닌지 이런 황당한 소망을 상상으로나마 대신 이루어주는 소설들이 있다.

오늘 리뷰 쓸 책도 그 중 하나다.

 

작별 인사. 작년에 출간된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철이는 휴먼매터스라는 세상과 격리된 연구소에서 아빠에게 홈스쿨링을 받으며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그는 무등록 휴머노이드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가고 인간이라 믿던 자신이 휴머노이드 로봇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철이는 그 곳에서 휴머노이드 어린이 민이와 복제 인간 선이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한다. 수용소 밖엔 인간과 휴머노이드간의 전쟁이 한창이고 그 와중에 철이의 몸이 망가진다. 아빠는 철이의 뇌를 찾아 의식을 백업하여 죽음을 막고, 철이는 육신 없이 의식만으로도 살아보고, 고양이의 몸으로도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몸을 얻어 선이를 찾아 시베리아로 떠난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기에 SF소설인 줄 알았는데 철학소설이자, 사회소설이고, 성장소설로도 보인다.

바로 이 점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면서도 꺼리는 이유다. 재미있지만 어려워서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많다.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클론 선이, 싫증난 장난감처럼 버려진 휴머노이드 어린이 민이. 이들은 본래의 목적이 인간을 위한 도구이기에 용도를 다하면 폐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로봇이 인간처럼 의식까지 갖추면서 얘기가 복잡해진다.

 

나는 휴먼매터스 밖으로 나와 진짜 세상을 보았다. 민이 같은 휴머노이드가 존재하는 걸 이미 알아버렸고, 선이처럼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클론과 친구가 되었다. 휴먼매터스는 내 피난처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혼란에 큰 책임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언제나 문제의 일부였다. 아빠가 나를 원하는 것은 아마도 사랑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진행해온 자랑스러운 프로젝트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그가 정확히 나에게서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나를 통해 세상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게 정말 그 휴머노이드를 위해서일까? 인간에게 필요한 장기를 생산하기 위해 선이와 같은 클론을 배양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의 활용을 고민한다. 나의 용도는 정확히 무엇일까?

(p.212~213)

 

따뜻한 인간성을 지닌 휴머노이드에게 정이가고 그들에게 모진 진짜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보이는지. 그렇다면 정말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본주의라는 그럴듯한 말이 실제로 인간이 아닌 것들에 대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는 어디인지.

혼란스럽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을 백업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발칙한 상상.

신화와 종교에서는 초월적 존재로 신이 등장한다. 영원히 사는 존재. 인간은 유한하기에 신이 정한 운명에 복종해야 하고 모든 고난을 이겨낸 인간만이 신의 반열에 오르든지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영생의 실체에 대한 괴담 수준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과학기술로 생명연장을 하겠다는 꿈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유한한 삶, ‘작별 인사할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어떤 연구원에게 들었다면서 수정 공의 비밀에 대해 무서운 이야기를 했다. 휴먼매터스의 연구원 하나가 자살을 했는데, 어느 사악한 스토커가 그녀의 뇌를 몰래 백업한 다음, 그걸 저 수정 공에 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연구원은 영원히 죽지 못한 채 저 수정공 안에서 살아가게 되었다고 했다.

...

그의 말대로 수정 공에 들어 있는 게 자살한 연구원의 백업된 뇌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일종의 휴머노이드의 의식이라고 해서 과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

나 같은 휴머노이드가 만약 육신도 없이 수정 공 같은 장치 안에서 영생한다면? 그 영생은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p.245~247)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단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

(p.276)

 

육체 없이 의식만 있는 삶이 지옥이라면 새로운 몸을 받아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소설 속 철이는 백업된 의식만으로 존재하다가 몸을 얻어 한 번 더 인간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귀찮은 육신이 있는 삶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의식만 있던 삶이 육신을 얻는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예전에 보던 신화와 소설의 단골주제가 아닌가. 다만 예전 이야기 속 인간의 몸은 상이 아닌 벌이었다. 신의 노여움을 사 육신을 얻어 인간계에 내려온 천사,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미하일처럼.

과학기술이 무한한 삶을 추구하는 동안 문학작품은 유한한 삶을 찬양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예전보다 최소 수십 년은 더 살게 된 현대의 사람들이 무의미한 장수나 영생보다 삶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지난 번 읽은, 신의 삶 반납하고 인간이 된다는 이야기 <키르케>처럼 말이다.

작품 속에서 영생의 덧없음을 아무리 강조한다 한들 선택할 수 없는 우리에겐 무의미한 논쟁이다. 다만 분명한건 우리가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이별하는 삶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그러니 너무 세상에 고통을 줘가면서까지 영원에 집착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퇴근 후 잠깐 생각을 정리해서 리뷰쓰기에는 너무너무 버거운 작품을 만났다. 결국 밤에도 다 못쓰고 새벽에 다시 정리하고 있다.

 

.

자다가 문득 이런 대목이 생각났다.

그런데 철아, 너는 아직도 네가 진짜 아들이라고 확신해?”

아무렴. 철이는 최박사 아들이고말고.

배우자와의 랜덤한 유전자 조합으로 태어나는 진짜 자식보다도 철이는 아빠의 모든 것이 구현된 존재가 아닌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철들면서 반항하고 죽도록 싸우는 모습도 현실의 부자와 닮았고, 모두들 영생을 추구할 때 스스로 작별인사를 하는 최박사와 철이의 마지막은 누가 봐도 붕어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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