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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악몽을 변주하다 | 독서일기 2.0 2011-06-2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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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11 제2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김애란 저
문학동네 | 2011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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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회

 

단편집을 자주 읽을 기회가 없는 내게 만남 자체가 가슴 설레는 책이 있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이다.  1회 수상 작품집을 읽은 것이 벌써 일년 전인가?  풋풋한 감성과 기발한 상상력을 앞세운 작가들의 작품집은 내 기억을 여전히 잠식하고 있었나보다. 그간 간간히 소설책을 읽어왔지만 1년이 지나 다시 잡은 2회 수상작품집은 기대와 떨림으로 책장을 펴들게 했다.  우리가 용감하고, 굳건하게 이 생을 견디고 뚜벅뚜벅 한해를 걸어왔듯이 동시대의 작가들도 지난한 인생을 지나 힘겨운 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는 반가움이 앞섰다.  1회 수상에 이어, 2회에 연속해 수상한 작가들의 이름을 보자마자 잊혀진 연인의 과거와 현재가 아스라이 겹치는 이 소회, 무엇이라 할까?  

 

지난 1월 타계한 故 박완서 작가는 이 수상작품집의 본심 심사에 참여했다.  생전 병상의 마지막까지 쓰기와 읽기라는 작가의 본분에 충실했던 그는 후배 작가들의 작품을 꼼꼼히 읽고, 수상작 4편을 추천한다.  본심 심사가 있던 날, 그는 황망하게 이승을 뜨고 말았다. 작가로 평생을 살아왔고, 죽는 날까지 작품 활동을 했으며, 떠나는 날까지 후배들의 작품을 읽었던 그를 독자로서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으랴!

 

총 7 명의 작가, 7 편의 단편이 담긴, 이 작품집에서 나는 문득 어떤 비감(悲感)과 마주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도 작가는 시대와 공명하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그는 동시대의 민감한 리트머스요, 다층적 스펙트럼이어야 한다. 재기 충만한 젊은 작가들, 그들의 문장안에서 나는 내 욕망과 그들의 욕망이 어떻게 겹치고 갈라서는지 확인할 것이요, 시대를 바라보는 공통된 시각과 차이를 발견케 될 것이었다.  한 시대를 온전히 긍정하기란 어렵다.  문제의식 없이, 작가의 길을 갈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은 자신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며, 소리없는 총성이 오가는 삶의 전장에서 무엇을 기록하고 있을까?  이 작품집을 헤집는 나의 눈길이 더없이 분주하다. 

 

 

2) 풍경들

 

"인간은 동료 인간이 맞닥뜨린 궁지가 속속들이 묘사될 때 감동을 받는다"   도러시아 브랜디 <작가수업> 中

 

신은 인간의 운명에 관여하는가?  이 물음은 문명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구원은 이 질문안에 있다.  종교는 경전을 통해 여기에 답하지만, 문학은 묘사와 모방을 통해 이 풍경을 그저 그려낼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곤궁을 그릴 때, 어떤 절박함을 안고 있어야 한다.  절박함이란 절제된 통곡이 평이한 문장속에서 변이하며 독자의 심장에 울림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은 재난 소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재난은 자연적인 것만은 아니다.  은밀한 문장들을 통해 김애란은 사회적 재난의 전형을 `고발'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재난이 지닌 다층적이요, 가학적인 성질을 드러내는데 탁월하다.

 

물과 전기가 끊긴 재개발 아파트 거주자, 투쟁끝에 의문사한 건설 노동자 아버지, 남편의 죽음에 분노하다 당뇨 쇼크로 사망한 엄마, 그리고 긴 장마와 폭우로 고립되어 가는 재개발 아파트, 엄마의 시신을 떠메고 탈출을 감행하는 풍경,을 작가는 분명하고 또렷한 어조로 묘사한다.  이 난망한 상황을 구제해 줄 사람이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고,  그 높은 건설 크레인을 삼켜버린 폭우앞에 절규해 보지만 풍경은 무심히 대답조차 없다.  그를 현재 구제하고 있는 것은 집안의 문짝을 뜯어내 만든 나무배와 페트병 노가 전부다.  무심히 내리는 빗줄기에서 무력한 인간의 힘과 통제불능 자연을 상대로 삶에의 의지를 다진다.  문제는 이 재난의 풍경속에 감추어진 비자연적인 요소의 비정함이다.  누가, 그들을, 유령이 출몰할 재개발 아파트의 폐허 위에 살게 했는가.  아버지의 죽음은 타살였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작가는 담아냈다.

 

개인의 짓누르는 공포와 억압의 결과를 그리고 있는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는 아버지와 세상에 대해 언제나 `예스'로 답하며 살아왔던 `나'의 분노가 인생의 어느 하루, 극과 극으로 분출하는 현상과 풍경을 포착한다.  나른한 오후 상사 A를 `몽둥이처럼 생긴 커다란 선인장'으로 때려주는 상상을 온전히 A의 `금빛 메뉴큐어' 때문이라고 해명하며, 선량하고 고분고분한 `나'는 국밥집의 친절한 아주머니를 살해한다.  마음속에 일렁이는 분노가 이유없는 살인을 부른 것까지야 좋다지만, 대체 왜 죄책감조차 없단 말인가?   분노의 정체가 이처럼 흐릿한 것은 어쩌면 분노의 대상을 오인한 결과는 아니었을까?  되묻게 된다.

 

가장 소극적인 모습은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김유진의 <여름>과 이장욱의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은 공간이 가진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해설함으로써 독자를 현실과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Y와 B가 거주하는 공간이자 마주한 작업장에서의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특별하고 세밀하게 그려내는 작가는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을 묘사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시간들을 빠짐없이 그려내는데 열중한다.  이장욱은 러시아라는 이질적 공간,  주인공이 기거한 어느 작가의 방에서 일어난 기묘한 사건들을 들려주며 독자를 섬뜩하지만 낯선 사연과 함의가 담긴 공간으로 초대한다. 

 

"욕실에 물을 튼 것이 나라고? 부엌에 가스불을 켠 것도?   이봐, 농담은 그만하라구. 옆방의 신음소리도 나의 것이란 말인가?"  이장욱,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P.121

 

이들 작품들에서 적극적인 의미와 주장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란 작가의 개입없이도 공간과 시간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특별한 암묵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는데 있다. 이 분위기는 물론 동시대의 기운이라 불러야 한다.  이들 작가들의 무심한 문장들을 통해 `수상한 시대'를 외면하고 자신만의 공간으로 유폐된 작가들의 현재를 엿볼 수 있다.

 

편견과 인간의 무절제를 다룬 작품들로서 정용준의 <떠떠떠, 떠>와 김이환의 <너의 변신>이 까다로운 미식가 체질 독자의 기대에 부응한다.  정용준의 작품은 다른 특성, 특별한 개성을 가진 상대에 대해 갖는 부절적한 편견을 질타한다.  말더듬과 간질이란 질병으로 구체화 되었지만  상대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로서 기본적 문법임을 이 작품은 강조하는 것이다.  김이환의 작품은 성형이 만연화된 우리 시대의 어두운 미래를 그려보여 준다. 개성이 사라지고 표준화된 미인들이 미디어를 점령한 시대, 우리는 왜 조작된 아름다움에 열광하는지, 되묻고 있다.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은 종말의 시대, 남겨진 아이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검은 구멍이 가득한 지상의 어느 지점에 떠 있는 집과 세계에 남겨진 소녀와 소년은, 빈 집을 불태우고 마트에 남은 식량으로 연명한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옅은 과거의 추억이자 확신할 수 없는 미래다.  그럼에도 역설적이게 그들은 성장하고 있었다.  작가가 설정한 이 역설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사라지는 세계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김성중 <허공의 아이들> P.209

 

 

 3) 시대의 악몽을 변주하다

 

한 작가의 작품 모음집도 아닌 여러 작가의 수상 작품집에서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포착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들은 사회성과 개인성을 넘나들었고, 상징과 은유를 섞어 인생과 시대를 나름의 작품안에 담아냈다.  그럼에도 나는 `젊은 작가', 라는 하나의 조건에서 또 `동시대' 라는 또하나의 주제에서 이 작품집을 구성하는 일곱 개의 개성을 하나로 묶어내고 싶다.

 

대상 수상작인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을 제외하곤, 어느 작품도 이 시대의 곤궁함을 직접적으로 항의하고, 묘사하진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당면한 현실적인 상황속에서 각개 약진의 자세로 생을 헤쳐나가려 한다.  거대한 폭풍이 다가올 때 가장 안전한 공간은 익숙한 자신의 거처라고 우린 쉽게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쓰나미의 위력에서 보았듯 세상에서 안전한 장소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앞에 겸허해 지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

 

이 작품집에 수록된 수상작들은 하나 행복이나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이 문제일까?  젊음의 특권은 부정과 회의여서, 아니다.  그들의 절망엔 이유가 있다.  이유없는 절망은 허무주의에 닿는다.  그들의 절망이 사적 차원의 것이 아님을 세심한 독자는 눈치챘으리라.  이 사회의 가진 자들이, 이 사회의 지도층들이, 매일 아침 신문의 1면에 등장하는 주제와 형식을 보라.  도대체, 권력과 기득권과 재력에는 좀체 인연이 없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타락과 추함에 주눅들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다. 

 

탐욕으로 물든 사회에서 희망이 거처할 공간은 희박하다.  희망을 지켜내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선 불가능하다.  희망이 광장의 연대속에 피어나는 결실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시대는 양심과 도덕이 실종되었다.  그것뿐인가. 배알도 없고 원칙도 없고, 공정도 없다.  거짓말이 난무하고 사람들은 전쟁의 길로 가면서 평화를 입에 올린다.   그러나, 말은 공정과 사랑과 원칙과 양심을 이야기 한다.  언어와 현실이 거꾸로 가는 이 시대에 정직한 작가라면 악몽에 시달려야 한다.

 

그 증상들은 다양하다. 이 작품집에서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이 이 난관의 풍경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걸 보았다.  또한, 그들은 악몽을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려 한다.    김애란은 신과 세상에 맨몸으로 절규하고 김유진은 다가오는 공포를 침묵으로 무시하려든다. 이장욱은 환상으로 도피하며 김사과는 이유없이 분노한다.  김성중은 종말의 살벌함을 경고하고, 김이환은 인공적 세상을 비꼬며, 정용준은 관용과 사랑을 해법으로 주장한다.  모두 이 시대의 악몽을 글로써 변주하는 나름의 작법이다.

 

"우리는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써야 하기 때문에 쓴다"   윌리엄 서머싯 몸

 

무력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변주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시대의 악몽엔 끝이 있기 때문이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공간에도 `풍경'은 존재한다.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손 끝이다.  악몽의 시대에 잘 쓰여진 글 한 편은,  훗날 잊지 못할 교훈을 남길 것이다.   희망은 결국 그들의 붓끝에서 부활할 것이다.  이 작품집에서 결국 나는 `희망'을 보고야 말았다.

 

 


 

201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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