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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절망과 함께 성장하다 | 독서일기 2.0 2012-04-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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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원더보이

김연수 저
문학동네 | 2012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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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다는 것은 과거의 일들과 하나씩 결별하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습관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내 기억에 선명한 습관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었다.   요즘 시골에서는 별보기가 쉽지 않다. 골목마다에 가로등이 설치 돼 있고, 인근 도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오염물질은 밤하늘의 별들을 감추어버린다.   하지만 그 시절엔 달랐다.  마을의 골목길은 무척 어두웠고 공기도 맑아 별빛이 선명했다.  시골 밤은 고요했으며 어두웠다.  그저 별을 보기 위해선 마당에 나오는 것으로 충분했다.

 

여름 어느날엔가 아랫채 지붕위에 돛자리를 깔아놓고 누워 한참동안 별을 본 적도 있다.  저녁을 먹고 홀로 별을 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오른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소년은 엄마와 아버지가 불러도, 누나가 불러도, 한참 동안 내려오지 않고 오랜시간 밤하늘의 별들을 올려다봤다.   생각해보니 그 날이 내가 별을 본 마지막 유년이었다.  왜냐면, 그 이후로 다시 별을 보기 위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숱하게 많은 날 별을 보았겠지만, 그 하루가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

 

"천 개의 눈을 가진 짐승이라는 것은 밤하늘을 뜻했다. 태어나서 그때까지 나는 얼마나 자주 밤하늘을 쳐다봤을까?  모르긴 해도 수백 번은 될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 첫 밤하늘은 어쩐지 그 밤의 하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 116 김연수 <원더보이>

 

한 편의 성장소설을 읽어가는 일은 먼지낀 유년의 시간들을 기억의 창고에서 다시 꺼내보는 일이다.  그동안 쌓인 먼지들을 털고나면 자신이 소설 속 아이와 다를 바 없이 하나의 과정을 통과했을을 직감한다.  그 경험은 같고도 다르다.  소설 <원더보이>의 정훈이 통과한 유년의 시간들을 표현하자면 그것은 `혼란'과 `고통'일 것이다.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고 엄마는 자신을 낳다 죽어서 얼굴조차 모른다.  어느날 우연히 남파간첩을 차로 들이박고 죽은 아버지는 영웅이 되고, 옆자리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  식물인간이 된 후 깨어난 소년은,  초능력을 가진 `원더보이'로 탄생한다.  소년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이제 갖게 된 것이다.

 

정훈은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정훈의 초능력은 단순히 마음을 읽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타인이 고통받을 때 그 마음을 더욱 선명히 읽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작가라는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느끼고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곁을 지켜주는 어른들이 공감의 능력을 통해 작가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돼라고, 응원하는 것은 정훈의 그 능력 때문일테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고 그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상대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그것이 개인이건 국가권력이건, 누구든 말이다.

 

하지만, 1980년 신군부는 광주에서 시민들을 학살하고 국가권력을 접수했다.  그들은 뭇 사람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무감각했기에 그같은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게다.  소년과 신군부가 갈라서는 지점이 거기다.  그들의 권력은 무소불위였고 공작과 사찰은 그네들의 주된 무기였다.  소통과 공감에 관심없는 권력집단아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  소설은 소년의 성장기를 다루지만 정확히 그것은 한 시대의 성장과도 닿아 있다.  하여, 김연수의 <원더보이>는 역사를 성찰하는 성장소설이다.   

 

1980년대는 놀라운 시절이었다.  컬러TV가 보급되고,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다.  보급된 TV를 통해 놀라운 쇼들을 볼 수 있었다.  지구촌 어디에서 UFO가 출연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타고 전해오면, 그 시절 아이들은 외계인의 지구침공을 상상하며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고, 공포에 떨기도 했다.  당시 숟가락을 쳐다보며 구부러져라,라는 주문을 외면 숟가락을 휘게 만들었던 유리겔라의 TV 출연 사건은 초능력자가 실재한다는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뉴욕과 파리와 서울을 위성으로 연결하여 생중계하는 광경을 TV에서 처음 보았을 때,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야 했을 것이다.  이 경이로운 사건들이란 신군부의 기획된 집권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실은 더 쇼킹한 일들이 밀실에서 행해졌다.  감금,폭행,고문,의문사,광주항쟁,불법사찰?

 

정훈은 자신의 초능력을 취조실에서 써먹으려는 권대령을 피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신군부는 정의롭지 못한 세력이었다.  권력이 정의롭지 못할 때, 그들은 끊임없이 그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시민들을 감시하고 구속시켜야 했다.  소년이 그 세력으로부터 벗어나자 이제 그 반대편에서 국가권력과 부당한 시대의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필연이다.  이 소설에서 소년은 성장이란 개인사의 아픔을 감내하며, 또 한 편에선 절망적인 역사의 공간과 시간을 거쳐가는 것이다.  소년이 감당해야할 고통은 개인과 사회, 이중적인 것이다.  소년이 꿈꾸는 미래는 엄마를 되찾는 것이고, 세상이 꿈꾸는 내일은 민주화된 나라다.  그 성장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아픔과 절망을 소설은 추적, 묘사한다.

 

화염병(FB,Fire Bottle)을 가장 잘 던지는 선재 형을 만나고,  군부권력의 손에 첫사랑을 잃고서 남장을 하게 된 강토 형(희선)과 교우한다.  그들을 통해 자신을 이용하려 했던 거대한 국가권력의 실체를 확인한다.  시골에서 단학에 빠져 살며 생명역동농법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무공 아저씨와 17살의 봄의 보내며, 우주의 기운을 받아 농사를 짓는 한 자연인의 삶을 배운다.   단 한 줄의 기사를 트집잡혀 신문사에서 해직당한 기자 재진 아저씨로부터 엄마의 정체가 조류학자일 거라는 확신을 얻는다. 

 

"우주에 그토록 별이 많다면, 우리의 밤은 왜 이다지도 어두울까요? (.....)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304-314  p. 116 김연수 <원더보이>

 

이 소설이 특별한 것은 한 아이의 성장을 한 시대의 성장과 대별시킨데 있다.  불행한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정훈은 엄마의 존재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국제조류학회에 편지를 보내고 결국 엄마의 흔적이 담긴 편지를 손에 넣게 되는 소설의 끝은 의미롭다.  희망이 결국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못한 군부에게 권력을 뺏긴 시민은 1987년이 되어서야, 보통선거권을 되돌려받는다.  역사는 아이와 함께 그 고통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어둠은 빛이 도달하기 전까지만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에 대한 간절함은 배게 된다.  아픔없이 사람이 성장할 수 없듯이,  민주화된 세상도 뭇 사람의 희생을 요구했다.  정훈의 삶에 드리워진 외로움과 절망과 시대의 암울은 그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올려다본 밤하늘은 어두웠기 때문에 그 별빛이 더욱 강렬했고 지금도 그 빛은 우리의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우리가 올려다본 별은 유년의 흔적이고 희망의 증거이자 성장의 기억이었다.

 

어린시절 정훈은 아버지와 함께 별을 올려다본 날의 밤을 기억한다.  그때 아버지는 별빛을 본게 아니라 떠나버린 엄마의 흔적을 그 밤하늘에서 찾고 있었음을 소년은 이제 안다.   그렇게 갈망하는 마음이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자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줄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역사가,  진보하지 않고 후퇴하는 순간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터널의 시작은 어두워서 두렵다.  한데, 어둠은 종료의 시간을 반드시 예정한다.  `밤이 어두운 까닭이 우주가 아직 젊고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표현은 부침많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 하다.

 

 

 

 

20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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