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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재와 환상의 그림갈 15권 리뷰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거다- | 기본 카테고리 2021-03-0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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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재와 환상의 그림갈 15

주몬지 아오 저/시라이 에이리 그림/이형진 역
대원씨아이(단행)(대원키즈)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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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강한 스포일러 주의

 

 

 

 

하루히로등 여러 아이들이 그림갈에 떨어진지도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느 이세계물과 다르게 이들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가혹했던 세계. 기억을 잃은 채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이 살아가기엔 그림갈이라는 세계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끼리끼리 모여 어떻게든 발버둥을 처봤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블린 한 마리를 대여섯 명이 모여 때려잡아도 힘에 부쳐 실패하는 날이 많았다. 갈아입을 속옷이 없어 매일 저녁에 하나뿐인 속옷을 빨아 널어 놓고 지푸라기 침대에 몸을 맡겨 잠들기를, 대체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만 하는지 그땐 기약조차 하질 못했다. 그런 생활 속에서 동료 하나둘씩 잃어가고, 슬픔을 채 털어내기도 전에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묻어났다.

 

레슬리 캠프를 통해 '파라노'로 들어가게 된 '하루히로' 일행은 많은 고초를 격은 끝에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다. 이제 꿈에도 그리던 오르타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어딜 던져 놓아도 정들면 고향이고 보호받을 수 있는 울타리가 있다면 거길 그리워하는 습성이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는 이들의 고향은 따로 있건만 기억에는 없다. 그렇게 알에서 깨어난 생물이 처음 본 생물을 어미로 기억하듯 오르타나를 그리워하며 파라노를 탈출했건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어떻게든 발버둥 처봐야 시궁창뿐이라는 현실이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그림갈로 던져질 때마다 기억이 소실되는 이유는 뭘까. 이번 15권에서 그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린다.

 

하루히로 일행은 파라노에서 다시 그림갈로 넘어왔다. 처음 보는 탑, 그러나 낯설지가 않음에도 어째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소실되었다?' 꿈에도 그리던 도시, 헤어진 유메와 다시 만나기로 했던 도시,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줬던 도시,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이 있는 도시. 그런 기억이 모두 소실되어 버렸다. 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하루히로 일행에게 던져진다. 그림갈에 던져지고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구축했던 싸움의 기술과 지식은 한순간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토록 처절했던 삶은 대체 무엇이었나. 하지만 어째서인지 '메리' 만큼은 기억이 남아 있다. 아마도 그녀는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쨌거나 오르타나로 돌아왔고, 돌아왔다면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메리의 기억에 의존하면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유메와 란타는 외전에서 이미 오르타나로 돌아와 있다. 하지만 기억이 날아가 버린 하루히로 머리엔 이들은 없다. 눈물 나는 상봉을 기대했건만 약간은 쓸쓸한. 그리고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건 오르타라의  현재 상황이다. 이세계엔 '제왕 연합'이라는 게 있다. 불사족 노 라이프 킹을 주축으로 한 마물 군세다. 언데드, 오크, 고블린등 온갖 마물이 군세를 이뤄 인간을 공격한다. 그래서 아라바키아 왕국은 저 멀리 남쪽으로 터를 옮기게 되었고, 인간은 원래의 땅을 되찾기 위해 오르타나를 세웠다. 더불어 데드 캠프, 적야의 기지, 리버사이드 요새도 오르타나와 더불어 인간들이 제왕 연합에 맞서기 위해 세운 요새다. 

 

즉, 오르타나는 전초기지다. 전쟁이 터지면 제일 먼저 포격을 맞고 갈려나가는 포지션이다. 다른 요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인간은 약하다는 것이다. 덧없이 약하다. 고블린 한 마리 잡는데 대여섯이 붙어도 못 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오크는 사신이다. 몇 년 전 데드 캠프를 탈환하기 위해 많은 의용병(하루히로 같은 애들)을 갈아 넣어 간신히 되찾은 데드 캠프는 다시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작야의 기지는 황무지로, 리버사이드는 코볼트에게, 그리고 오르타나는 고블린에게 점령 당하고 만다. 의용병 및 주둔군은 맞서 싸웠다. 하지만 끝끝내 점령 당하고 만다. 그렇담 그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바램은 허용되지 않는다.

 

하루히로 일행은 살아남은 사람들을 찾아 또다시 떠도는 신세가 된다. 기억을 잃어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 온곳이 마물로 가득하다. 편히 지낼만한 곳은 없다. 그렇게 고생을 하고도 또 고생을 강요 당한다. 그래도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루히로는 이들을 이끌고 또다시 여정에 나선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환경이다. 고블린의 추적과 불사자들의 습격, 먹을 것은 변변찮고 구출될 거라는 기약은 없다. 그럼에도 살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그런 이들 앞에 드디어 아라바키아에서 파견한 원군이 도착하는데...

 

이번 이야기는 적의 수중에 떨어진 오르타나 탈환을 그리고 있다. 기억이 없어도 몸에 밴 습관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는 찌끄레기들이 고기 방패가 되어 또다시 사지로 내몰리는 불합리를 그리고 있다. 오르타나는 궤멸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다. 하루히로는 척후병으로서 오르타나로 보내진다. 사람들은 없다. 도망간 게 아니라 모두 죽임을 당했다. 어딘가 몽환적이고 죽음은 나와는 거리가 있을 거 같았던 분위기는 단숨에 한치 앞도 모르는 사선을 그리게 된다. 고블린은 약하지 않다. 모 작품에서 등장하는 고블린들처럼 이 작품에 나오는 고블린들도 약하지 않다.

 

하루히로 일행에게는 오르타나 탈환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미치고 졸도할 일이지만 힘이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 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을 리 없다. 과연 하루히로는 기억을 잃은 채 오르타나를 탈환할 수 있을까. 비록 고블린이라고는 하나 수천의 군세가 운집해 있다. 오르타나 주둔군은 이들에게 궤멸되어 버렸다. 즉, 훈련을 받은 군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하루히로 일행이 해내야만 한다. 아라바키아에서 파견된 원군은 오합지졸이다. 한마디로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오르타나로 잠입한 하루히로는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강해질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동료를 잃을 때마다 하루히로는 강해져 왔다. 하루히로라는 그가 가진 근본적이고 본질을 깨우쳐준 '스승'의 만남은 어둠 속에서 광명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슬픈 이별을 예고하는 거라는 복선이었다는 것을 하루히로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이 작품은 꿈도 희망도 바램은 이뤄지지 않는다. 스승은 오르타나가 점령되었어도 도망가지 않았다. 4년 만의 스승과 제자의 해후. 이것은 슬픈 결말을 향해가는 전주곡이다. 그래서 스승은 졸업한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뭔가를 남기고 싶었나 보다. 정작 그 제자는 스승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짧은 만남이 있은 후 오르타나 탈환 계획 시기가 확정된다. 스승은 척후로서 다시 오르타나로 돌아간다. 그리고 하루히로가 스승을 다시 만났을 때는... 스승의 가르침은 헛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참 먹먹하게 만든다.

 

14권에서 등장했던 '히요코(혹은 히요무)'라는 소녀의 탈을 쓴 아줌마의 복선이 어느 정도 풀린다. 이제 와 생각났는데 1권에서 하루히로등 그림갈로 넘어온 아이들을 인도했던 여자가 히요코였나 보다. 그 히요코가 파라노에서 그림갈로 넘어올 때 하루히로 일행과 같이 온다. 이로서 현실에서 그림갈로 넘어오는 구조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되고, 그림갈로 던져진 아이들이 기억을 잃게 되는 원인도 대충 밝혀진다. 파라노는 사람의 기억을 풍화 시킨다. 그리고 그 기억을 없애는 주체가 누구인지도 밝혀진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하루히로 일행에겐 힘이 없으니까 그저 던져진 대로 살아갈 뿐이다.

 

맺으며: 강해서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한 거라는 영화 명언이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이세계는 강한자부터 갈려 나간다. 일부는 그걸 극복하고 잘 나가고 있지만 자주 언급이 되지 않으니 일단 논외로 치고. 아무튼 이번 이야기도 어쨌거나 알게 모르게 강해졌지만, 강한 것은 이 작품과 맞지 않다는 듯 애들 기억을 또다시 말소 시켜 버린다. 하지만 기억을 잃음으로써 얻는 것도 있다. 하루히로는 잡생각을 많이 줄었다. 그럼으로써 강해진다는, 굼벵이가 구르고 굴러 결국 나비가 되는 그런 이야기다. 그리고 히로인들이 하루히로에게 기대는 빈도가 높아졌다. 마치 어미새를 기다리는 새끼 새들처럼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는 듯 하루히로를 바라보는 대목에서는 조금은 섬뜩하다고 해야 할지. 계속해서 이야기는 16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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