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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by 권지예 - '현모양처'라는 베일에 가려진 한 사람의 인생을 오롯이 만나기 | 책리뷰- 소설.문학 2016-09-1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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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권지예 저
자음과모음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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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5일>

*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by 권지예 / 자음과모음

평점 : ★★★★☆

 

사람이 어떠한 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하나 하나의 모습이 켜켜이 쌓여 가능한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의 인생을 논할 때, 그 사람의 한 면만을 보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도 하구요.

사임당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사임당'은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최고의 위인이고, 게다가 몇 되지 않으신 여성 위인이시지요.

오만원권 지폐에서도 볼 수 있는 분이니 더더욱 그렇겠지요.

사실 저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랬고, 주위의 많은 아이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지금처럼 도서관이 흔했던 것도 아니었고, 집에 책이 가득 쌓여 있는 집도 거의 없었구요.

그래서, 신사임당 위인에 대해서는 그저 교과서에 나왔던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현모양처>, <여류화가>,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삶에 대해서가 아닌 자식을 바르게 키워낸 어머니로서의 삶과 그림을 잘 그렸다는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당연히 신사임당의 오롯한 삶을 알지 못했거니와, '현모양처'라는 베일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신사임당의 그림 소재에 대해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산수화가 많았던 그 시대이 작품에 비해 신사임당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미물들이었다는 것에 아무런 의심을 품어 보질 않았습니다.

왜 드넓은 배경이 아니었는지..

그만큼 많은 부분을 알지 못해서, 나와는 거리가 먼 '현모양처'라는 수식어를 따라다니는 분이어서 그렇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신사임당의 일생을 바라본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도 이렇게 신사임당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는 만족감과 흥분감은 제 주위를 휘몰았습니다.

어느새 제 눈에 누구나 알지만, 또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임당의 모습이 아롱거립니다.

자신의 재능을 떳떳하게 내놓지 못한, 평생을 그 무언가의 헛함으로 스스로를 힘들어했던..

여인의 삶이 버거웠던 그녀에게서 안쓰러움이 느껴집니다.

너무나 사랑했던 자신의 삶을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붉은 비단보'라는 작디 작고 은밀한 공간에 꼭꼭 눌러 숨겨 놓아야만 했던,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의 꽃들처럼 슬픔이 모든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P. 81)

언젠가 내가 초롱에게 물었다.

"춤추는 게 그렇게 좋니?" 초롱이 꿈꾸듯 말했다 "응!" 그리고 덧붙였다.

"춤출 때만 내가, 내 몸이 기쁘게 살아 있는 것 같아." 그 대답을 듣고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 말은 내 안의 깊은 속에서도 길어 올려지는 두레박 속 샘물 같은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릴 때면 나도 꼭 그랬다.


(P.121)

마음의 눈으로 보면 마음이 보이는 걸까. 그리고 마음을 그릴 수 있는 것인가. 마음은 뜬구름 같은 게 아닐까.

이 우주 안에서 비로 흩어지고 다시 구름으로 모이고.....있는 듯 없는 듯.

변한다면 변하는 것이고 변치 않는다면 변치 않는 것.

이 높은 곳에서, 내 생이 구름처럼 흘러 지나가는 걸 보니 나는 인연 따라 이르는 곳에 노닐었을 뿐이구나.

지나고 보니 알겠구나. 하지만 아름다운 집착이었다.


(P.381)

꽁꽁 묽은 붉은 비단보는 내 한 점 붉은 마음.

비밀스런 그 마음을 내 어찌 풀까나. 하지만 활활 풀고 가고 싶구나.

꽃이 피어야 한다면……피어야 한다.

꽃이 핀다고 제 속을 부끄러워하랴. 내가 지더라도 언젠가 꽃으로 피어나리……


대목마다 사임당의 흩어지는 목소리가 자꾸만 손길을, 눈길을 멈추게 합니다.

여인으로서의 간절한 욕망과 사랑이 가득한 예술가였던 항아, 사임당..

그 간절함과 애절함으로 버티고 버텨낸 생의 모습이 그녀를 애잔하게 만들어줍니다.

준서라는 한 인물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며.. 그럼에도 살아내는 한 사람의 일생을 눈으로 읽으며 먹먹해지는 느낌..

잔잔하게, 길게 가슴을 때립니다.


저는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스릴러를 즐겨 보기를 좋아하고, 달콤 짜릿한 심쿵 로맨스 소설도 좋아합니다.

또, 내 인생에 변화를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자 자기계발서도 좋아하고, 마음이 힘들때마다 나 자신을 지탱해 주는 에세이집도 좋아하구요.

하지만, 가끔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잔잔한 내용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이 책의 느낌처럼 말이지요.

이 책을 보며 <난설헌>이란 책이 떠올랐습니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이었던 허난설헌의 모습과 신사임당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여자여서 제약이 많던 시대를 살던 인물들이어서 그랬을까요?

이런 나의 느낌은 작가가 의도한 느낌이었나봅니다.

항아의 친구로 나오는 초롱과 가연이 황진이와 허난설헌의 모습을 빗대어 가공한 소설의 인물이었다 하니 말입니다.

'붉은 비단보' 속에 숨겨져 있는 사임당의 인간적인 삶을 엿보다 조선 시대의 여성들의 삶들이 밀물같이 밀려들어와 눈에 고이는 물로 인해 방문이 흐물흐물 흘려내리는 것 같습니다.


" 밤마다 달을 향해 비는 이 마음 (夜夜祈向月)

살아생전 한 번 뵐 수 있기를. (願得見生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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